팔레스타인의 양심, 나지 알 알리

87년 7월 영국 첼시에 있는 알 카바(쿠웨이트의 신문) 지사 앞에서 총에 머리를 맞은 사내는

당시 팔레스타인의 양심이자 지성이었던 카투니스트 나지 알 알리(Naji Al Ali)였다.

이스라엘의 배후에 있던 미국의 뻔뻔함과 잔인함과 아랍 세계 여러 국가들의 무책임한 행태들로 인하여,

팔레스타인들이 얼마나 핍박당하고 있는 지 ‘뒷짐 진 한 아이가 무력하듯, 또는 관조하듯

현상을 바라보고 있는 ‘한달라'(맛이 쓴 열매의 이름,’쓰라림’을 뜻함)를 통하여

이 모든 부조리에 대해 단지 카툰으로 그리며 저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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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 감옥에 있을 때, 정치적 표현을 담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그의 카툰은 흑백이다.

선은 투박하고, 유별나게 어둡다.

그러나 그의 카툰은 생명을 얻고 ‘칼날 위를 기어가는 달팽이’의 심정을 느끼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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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잘라는 항상 뒤돌아 서있다. 독자와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그리고 뒷짐을 지고 항상 똑같은 포즈를 취하며 눈앞의 현상을 관조한다.

한잘라의 시선이 어디로 향하는지 독자는 절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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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잘라의 출연”이라는 나지의 독특한 표현방식은 나지의 모든 카툰을 꿰뚫으며,

개개의 작품을 하나로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그의 모든 카툰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한편의 거대한 작품으로 다시 탄생하게 되는 것을 느낄 수 있고,

그 것은 그의 치열한 삶과 동의어 관계를 이룬다.

 

나지의 카툰에 가장 빈번하게 나타나는 이미지 중 하나가 바로 꽃인데,

‘평화’를 꽃말로 삼은 데이지와 많이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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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지는 분단과 좌절의 상징으로 매우 날카로운 이미지로 철조망을 그린다.

철조망은 단절의 이미지이자 경계의 이미지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 유태인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길이 40킬로미터를 철조망과 장벽으로 둘러치고 거주와 이동의 자유를 박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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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지는 그의 어머니가 당시 곧 전쟁이 끝날 것이라는 라디오 방송을 듣고

‘2주 안에’ 집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고 있던 것을 잊지 못한다고 한다.

이 기억은 나지의 카툰에서 열쇠를 걸고 있는 팔레스타인 여인으로 등장한다.

열쇠는 집을 잃어버린 모든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슬픔을 상징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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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군인들의 폭력에 포위됐던 때도, 이스라엘의 폭격 속에서 숨을 죽이던 때도,

나는 그곳에서 나의 펜과 매일 마주 대했다. 나는 결코 공포, 실패, 절망감을 느끼지 않았고

절대 항복하지도 않았다.

나는 카툰 속에서 군인과 맞닥뜨렸고, 꽃, 희망, 총알 등을 함께 그렸다.

그래, 희망이 언제나 본질이었다.

베이루트에서의 내 작품은 나를 난민촌의 가난과 비참함에 더 가까이 갈 수 있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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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목숨을 걸면서 그림을 그렸던 나지 알 알리. 그의 창조력은 오히려 이런 긴장들, 그리고 그 긴장을 넘어서 ‘예술가적 비전’으로 볼 수 있는 ‘희망’에서 나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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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자의 신원은 지금까지도 아랍이 그랬는지, 이스라엘이 그랬는지 밝혀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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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원영끄적끄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