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6월 27,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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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니와 수기의 그들의 연애. 제12화 무엇을 위해 웨딩마치를 울렸나? 댕댕댕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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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이 헤밍웨이의 사망 50주기였었다고 합니다.

“무기여, 잘있거라”,”노인과 바다,””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등

다수의 명작을 남긴 작가 ‘헤밍웨이’의 연애사를 다룹니다.

젊을 적 헤밍웨이랍니다. 미..미남이십니다…ㅇ. ㅇ  (톰 크루즈인줄..)

1차 세계대전에 고등학교를 마치고 자원입대한 헤밍웨이는 그곳에서 큰 부상을 입는답니다. 

(이 부상에서… 음… 다쳤다는 … 그래서 작아졌다는.. )

첫사랑. 17살 연상의 금발 간호사. 아그네스 쿠로프스키.

실제 그의 작품 무기여 잘 있거라에 나오는 간호사 캐서린의 실제 모델 ㅇㅇ

(편지를 주고받으며 장거리 연애에 청혼하지만 차입니다.17살연상… 당연한 거 아닐까요?)

이때 차인 경험이 엄청나게 헤밍웨이의 삶에 영향을 줬다고 하네요. -.,-;;(핑계같습니다만)

드디어 첫번째, 결혼! 첫눈에 반했다고 합니다. 늘 그 순간만큼은 진심이었겠죠?

해들리 리처드 1920년 파리에 건너간 헤밍웨이는 1921년 결혼합니다.

우리나라 말로 하자면 어렵고 힘들었을 때 옆에 있어줬던 여인입니다. 조강지처라고 할까요.

파리에서 헤밍웨이의 삶은 꽃을 피웁니다. 비록 돈이 없었지만요.

그때의 이야기가 이렇게 책으로 나왔구요. 제 개인적으론 좀 속이 터집니다.

헤밍웨이는 제일 행복한 시절이었었다네요.

해들리에게 일부다처제가 어떠냐고 했다고 합니다…-.,-  같이살때도 그렇게 첫사랑 아그네스 타령을 했다고…

그리고 두 번째 결혼.  폴린 파이퍼 패션잡지 보그의 편집자였습니다.

해들리 리처드와 결혼생활 중에 불륜으로 만났습니다.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신 분입니다.

13년의 결혼생활. 돈도 많았습니다.

해들리 리처드와 엄청나게 힘들게 살아서 (공동화장실에 시끄러운 수용소 같은 아파트. )

늘 카페에서 글을 쓰던 헤밍웨이는 이제 자신만의 집필실이 생겼고. 전업작가로서 살 수 있었다나요?

하지만 가만히 집에 있는 스타일이 아니었죠.

제이 메이슨이라는 여자와 바람피우고.. 그녀가 나중에 저작권을 다 챙길 만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두 번의 제왕절개로 또 임신하면 생명이 위험해져서 파이퍼가 잠자리를 거부해서 바람피웠다고 하셨다고..-.,-;;;)

 신문연합 특파원으로 스페인으로 건너가서 마사 겔혼을 만납니다.

마사 겔혼도 그 당시 미국의 소설가이자 언론인으로 워낙에 뛰어난 지성과 미모를 가지신 분인지라 이분을 만나서 쿠바의 매력을 알고 ‘노인과 바다’도 탄생하고…

그리고 유일하게 헤밍웨이에게 먼저 이혼하자고 하신 분.

 

 이 둘의 연애사는 왕좌의 게임으로 유명한  HBO에서 TV 영화로 제작했어요. (재미있습니다. ^^;; )

그리고 네번째 결혼! 메리 웰시. 마사겔혼과 이혼하고 두달만에 결혼했습니다.

타임지 기자 랍니다. 헤밍웨이가 금발 성애자 라는 말이 있는데… 그래서인지 늘 염색했다는 말도 있습니다.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 까지 마지막 결혼생활을 오래했습니다.

베네치아에서 당시 18살…;; 이었던 아드리아나 이반치크와 바람핀 건 안비밀이구요..

외국 검색에선 잘 안나온다는데 부상이다 뭐다 하지만…

헤밍웨이가 또 유명한게… 그겁니다.

음..

위대한개츠비의 피츠제럴드와 경쟁을 했다는… 컴플렉스였다고 하네요..


– 이분보다는 나았을 것 같습니다. 결혼도 네번하시고… 꼼꼼히 바람도 피워주시고..

     여자의 사랑을 얻는다는 건 크기와 상관없음을 증명하신… 위대한 작가 헤밍웨이였습니다!!!!!!

 

 

[한성희의 작가 산책] 시인 맹문재의 ‘책이 무거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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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무거운 이유

                                          맹문재

 

어느 시인은 책이 무거운 이유가
나무로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책이 나무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시험을 위해 알았을 뿐
고민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 말에 밑줄을 그었다

나는 그 뒤 책을 읽을 때마다
나무를 떠올리는 버릇이 생겼다
나무만을 너무 생각하느라
자살한 노동자의 유서에 스며 있는 슬픔이나
비전향자의 편지에 쌓인 세월을 잊을지 모른다고
때로 겁났지만
나무를 뽑아낼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나는 한 그루의 나무를 기준으로 삼아
몸무게를 달고
생활계획표를 짜고
유망 직종을 찾아보았다
그럴수록 나무는 말 한마디 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채우는 일이 얼마나 힘든가를 보여주었다

내게 지금 책이 무거운 이유는
눈물조차 보이지 않고 묵묵히 뿌리 박고 서 있는
그 나무 때문이다

 

 

그는 나이에 맞지 않게 젊고 핸섬했습니다. 현재 안양대학교 국문과 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시인이자 평론가이기도 합니다.

오늘 문학나들이에서는 몇 편의 시를 예로 들어가며 자기애를 찾는 일이 시의 출발이라고 심도 있는 강의를 해주었습니다. 소리를 증폭해주는 마이크도 없었지만 오히려 산만하지 않아 강의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 모인 모두는 다시 대학생으로 돌아간 양 맹문재 교수의 강의에 푹 빠져들었습니다.

반쪼가리 자작의 소설을 인용한 그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온전하다고 여기지만 결국 반쪼가리 밖에 되지 않는다는 거였습니다. 반쪽의 한쪽은 사악하고 반쪽의 다른 쪽은 선한데 끊임없이 이 둘은 충돌을 한답니다. 하지만 자기 자신을 사랑할 때 이 반쪼가리의 의미를 깨닫고 자기애를 바탕으로 쓰여지는 시를 발견하게 될 거랍니다.

그는 또 시를 쉽게 쓰는 법을 가르쳐 달라는 사람이 많은데 시는 매우 어렵게 읽고 어렵게 써야 그 가치가 빛난다고 역설합니다. 시를 쓰는 것은 권리가 아니라 의무라며 시 한 편이 한그루의 나무를 베는 것과 같은 값어치를 해야 한답니다. 그래서인지 그의 시는 사물의 움직임을 예리하게 관찰하여 그 본질을 꿰뚫어 보는 특유의 감성적 투시력이 있다고 민병기 시인은 얘기합니다.

그는 다시 라캉의 의식세계를 예로 들어 설명합니다. 의식을 상상계와 상징계, 실재계로 나누는데 상상계는 늘 자기만을 생각하는 단계이고 상징계는 하나의 독립적인 개체로 탄생하는 과정이랍니다. 실재계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Oedipus Complex) 라 부르며 이때 사회규범과 사회질서를 배우게 된다는군요. 사람이 상상계만 머물러 있으면 보통 정신병자라 부른답니다. 글을 쓸 때 자신의 상상 속에만 머물러 있지 말고 실재 속에서 실제를 바라보아야 좋을 글을 쓸 수 있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 하루 종일 귓가에 맴돌았습니다.

 

 

 

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40) – ‘Lost Heroes’ (Iiro Rantala, 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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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 Lost Heroes를 듣기 전까지만 해도 이로 란탈라(Iiro Rantala)를 그저 트리오 토이킷 시절의 유머러스한 피아니스트로만 생각했다. 이로 란탈라는 클래식과 재즈 양 장르의 정규 교육을 모두 이수한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1988년 당시만 해도 재즈의 변방이었던 핀란드에서 말 그대로 혜성처럼 자신의 트리오를 이끌고 나타나 번뜩이는 창의성과 특유의 유머로 화제를 일으켰다. 그러나 다양한 음악적 실험과 창의를 바탕으로 주목을 받았던 트리오 토이킷은 아쉽게도 2007년에 해산하게 된다. 이후 란탈라는 솔로 활동에 매진하면서 음악적 변화를 꾀한다. 그러던 중 2011년 드디어 현재 유럽 재즈의 대표적 레이블로 우뚝 선 레이블 ACT에 입성하게 된다.

2011년 발표된 앨범 Lost Heroes는 이로 란탈라의 첫 솔로 앨범이자 ACT 데뷔 앨범이다. 란탈라 자신의 음악적 삶에 영향을 준 빌 에반스, 자코 파스토리우스, 에스뵈욘 스벤슨, 에롤 가너, 아트 테이텀, 미셸 페트루치아니, 오스카 피터슨과 루치아노 파바로티에 대한 헌정 앨범 격이다. 사실 트리오 토이킷 시절 대표작 Kudos 또한 같은 성격의 작품이니 Lost Heroes는 그 뒤를 잇는 후속 작품이라고도 부를 수 있다. 다만 차이점은 Kudos가 트리오 구성이었다면 Lost Heroes는 란탈라의 솔로 피아노 작품이라는 것. 또 하나는 전작에 비해 좀 더 성숙해진 피아니즘을 보여 준다는 것이다. 마치 성숙한 자기 성찰의 모습을 구현했다고나 할까?

이로써 란탈라는 자신이 단지 재기 넘치는 재즈 피아니스트일 뿐 아니라 예술적 감각까지 겸비한 진정한 아티스트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알린다. 실제로 그는 록과 팝의 경계를 허무는 기교와 무대 퍼포먼스, 재즈 장르의 작곡, 연주뿐만 아니라 정통 고전음악까지 작곡할 정도로 실력이 뛰어난 뮤지션이다.

Lost Heroes 역시 수록된 대부분의 곡들이 란탈라 자신의 자작곡일 만큼 란탈라 자신의 예술성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총 10개 트랙 중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넘길 것이 없으나 특별히 아끼는 트랙은 루치아노 파바로티에 대한 찬사와 존경을 담은 마지막 트랙 Intermezzo다.

Intermezzo는 이탈리아 작곡가 피에트로 마스카니가 작곡한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간주곡 멜로디가 들어가 있다. 워낙 유명한 멜로디라 인트로를 듣는 순간 대개는 알아챌 만한 곡이다. 그러나 란탈로의 연주는 원곡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재즈의 즉흥성이 절묘하게 녹아 있다. 몇 번이고 반복해서 플레이 버튼을 누르게 만들 정도로 매력적이다. 단지 피아노 솔로만으로 이토록 풍부한 감정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건 란탈라의 예술성이라고 밖에 달리 설명할 수가 없다.

개인적인 고백이지만 최근에 부쩍 눈물이 많아졌다. 아무런 이유 없이 그냥 눈물을 쏟으며 울고 싶을 때가 있다. 딱히 우울감이라고만 할 수 없는, 지나온 삶에 대한 감사인지 혹은 아쉬움인지 아니면 성찰인지 모를 모호한 이런 감정을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다. 그럴 때 이 트랙 Intermezzo를 가만히 듣곤 한다. 조금은 도움이 된다. 그러니까 이 트랙은 아무도 모르게 꽁꽁 숨겨 놓고 듣는 일종의 나만의 히든 트랙인 셈이다.

 

 

여계봉의 산정천리-(7)고군산군도, 그곳에 가면 신선을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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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유도와 장자도, 무녀도는 서해 바다에 그림처럼 떠 있다.

늘 그 섬에 가고 싶었다.

바다에 발을 담근 섬 봉우리에 올라 선유8경을 한없이 바라보고 싶었다.

바닷가를 따라 발바닥에 물집이 잡힐 때까지 한없이 거닐고 싶었다.

오늘에서야 신선이 반한 섬 고군산군도를 찾아 떠난다. ​새만금 방조제는 ‘한반도 지도를 새롭게 그렸다’라고 하는 세계 최대의 방조제로, 거칠 것 없는 직선도로 차창 밖으로 산업시설들이 바람처럼 스쳐가고 푸른 바다가 나오면서 자연의 세계로 빨려 들어간다.

신시도 근처에 오니 오른쪽으로 고군산군도 섬들이 도열해서 우리를 반긴다. 선유도가 포함된 고군산군도는 유인도와 무인도로 이루어진 63개의 섬 군락으로 천혜의 해상관광공원이다.

2년전 까지 선유도에 가려면 배편을 이용해야했다. 오늘은 버스로 고군산대교를 건너 무녀도를, 이제 완전 개통된 선유대교를 지나 선유도를, 장자대교를 지나 장자도 주차장에 도착한다.

선유도는 고군산도의 중심 섬이다. 경관이 아름다워 예부터 관광객과 등산객들이 자주 찾았는데, 다리가 개통되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더 잦아졌다. 이제 섬이 아닌 섬이 되었다.

선유도 트레킹 코스는 ‘고군산길’ 또는 ‘구불8길’이라고 부른다. 장자도 주차장을 출발하여 식당촌과 수산물 시장을 지나고 길이 30m 정도 작은 대장교를 건너니 바닷가에 고깃배와 카페촌이 함께 어우러져있다.

팬션 뒤편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대장봉을 향해 산오름을 시작한다. 산자락엔 동백나무와 후박나무가 파란 잎을 반짝인다. 바위를 감싼 해묵은 넝쿨들이 색다른 풍경을 만든다. 밀림 같은 숲을 빠져 나오니 앙칼진 암봉이 떡 하니 버티고 서있다. 암릉 경사면을 따라 한 발 두 발 옮긴다. 단 한 번의 실족도 용납하지 않을 만큼 가파르다.

마침내 대장봉 정상이다. 여기에 서면 선유도 및 장자도가 그림처럼 내려다보인다. 고군산군도 최고의 절경 중 하나다.

선유도와 장자도, 대장도는 평화롭다. 포구 어귀마다 고깃배 몇 척이 출렁이고, 짙게 낀 해무가 하늘빛을 가리지만 아름다움까지 가릴 수 없다. 점점이 떠 있는 섬들은 평범한 그림을 명화로 만드는 화룡점정(畵龍點睛)이다.

선유8경 중 하나인 ‘무산십이봉(無山十二峰)’이 보인다. 바다 건너 북쪽에 한 줄로 선 섬들이 한 폭의 수묵화 같다. 발 아래로 산행 들머리인 대장리가, 장자도의 장자대교 너머로 선유도가 해무로 덮혀 있다. ​대장봉 하산길의 나무데크에서 바라본 선유도 망주봉과 선유도해수욕장은 자연이 그려낸 실루엣 풍경화다.

계단을 내려오면 작은 사당 뒤로 바위 하나가 보인다. 장자 할매바위다. 웅크린 모습이 아직도 무엇인가를 기다리는 듯하다. 대장봉을 내려와 선유도로 들어서기 위해 인도교를 지난다.​ 인도교에서 바라보니 조금 전에 올랐던 대장봉이 해무를 허리에 감고 있다. 주말이라 떼거리로 섬 아래에 몰려든 사람들이 싫었던 것일까.

선유도해수욕장 가는 길에 있는 초분공원은 섬사람들이 전통적으로 해 왔던 독특한 장례문화를 보여준다.

새로 생긴 짚라인 탑승장은 스릴을 즐기려는 손님들로 만원이다. 바다를 가로질러 망주봉 쪽 무인도가 하강지점이다. 해수욕장에서 짚라인 하강장으로 긴 연륙교가 연결되어 있다.

선유도 일대는 청정지역이다. 개발이 항상 최선은 아니다. 자연을 지키면서 최소한의 개발을 해야 궁극적으로 섬도 살고 여행객도 유치할 수 있다.

선유도해수욕장은 명사십리해수욕장으로도 불린다. 모래가 아주 곱고 희다. 유리처럼 투명한 바다와 고운 백사장이 펼쳐진 명사십리 해수욕장는 선유8경 중 2경이고, 그 뒤로 보이는 망주봉은 3경이다. 갯바람에 실려 온 해무가 온 몸을 감싸니 우화등선(羽化登仙), 내가 바로 신선이 아니던가.

망주봉은 산 전체가 하나의 암릉이다. 바위가 미끄러워 등반할 때 로프를 잡고 조심해서 올라야 한다.

망주봉 아래로 노란 유채 밭이 눈에 띤다. 선유도는 오늘도, 내일도, 모래도 신선이 노닐 만한 섬으로 남아야 한다. 때로는 물 위에 뜬 섬으로, 때로는 산 안에 든 물로 살아야 한다. 여행자에게 가슴을 들뜨게 하는 섬으로 남아야 한다.

선유3구 선착장은 군산에서 배가 운항할 때는 활기가 넘치던 어항이었다. 선착장 끝에는 작은 기도등대가 있고, 지금은 고군산군도를 운항하는 유람선이 드나든다.

선유봉은 선유터널에서 20분 정도면 정상에 오를 수 있다. 선유봉을 오르며 잠시 뒤돌아보면 섬을 관통하는 대로 너머로 선유대교가 보인다.

선유도 정상 선유봉(112m)에 서면 5경을 감상할 수 있다. 아름드리 소나무를 품은 산자락이 파란 물색 바다에 발을 담구고 있는 모습이 아름답다. 따뜻한 햇볕은 물색을 옥색으로 만든다. 선유봉 아래 남쪽 옥돌마을은 한가롭기 그지없다. 바닷가에 자그마한 자갈들이 빼곡하게 깔려있어 옥돌해변이라 불린다.

무녀도로 넘어와서 한가로운 어촌 풍경을 보며 바닷가를 걷는다. 이곳은 시간도 잠시 멈춰있는 진정한 ‘섬’이다. 선유도보다 절경은 덜하지만 상업적인 모습이 덜해 오히려 더 찾고 싶은 섬이다.

아쉬움 때문일까. 날이 좋으면 좋은 대로 또 흐리면 흐린 대로 선유도에서의 시간은 빠르게 지나간다.

뭍에서 떨어진 바다에서 펼쳐지는 섬들의 군무를 구경하던 신선들의 발걸음은

 

신시도와 무녀도를 잇는 다리가 놓이는 순간

무녀도와 선유도를 잇는 다리가 놓이는 순간

섬이 곧 섬도 육지도 아닌 것이 되는 순간

 

한꺼번에 사라져 버린 것은 아닐까.

이제 그곳에 가면 다시 신선을 만날 수 있을까.

 

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39) – Cool Struttin’ (Sonny Clark, Blue no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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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사에서는 50~60년대를 일컬어 모던 재즈의 황금기라 부른다. 그만큼 비밥과 쿨, 하드밥을 아우르는 뛰어난 앨범들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시기의 많은 뮤지션들이 술과 마약, 도박 등에 빠져 아까운 그들의 재능과 삶을 탕진했다.

당시에 활동하던 재즈 피아니스트 소니 클락(Sonny Clark) 역시 그들처럼 마약에 빠져 일찍 생을 마감한 뮤지션이다. 불과 32살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50년대 초에 데뷔하여 57년부터 블루노트에서 활동을 시작했고 63년에 사망했으니 58년에 발표된 앨범 Cool Struttin’은 그가 막 세상을 향해 힘차게 날개 짓을 하던 최고의 전성기에 나온 앨범이라 하겠다.

천재 뮤지션의 운명은 어딘가 모르게 공통점이 있다. 빌 에반스 트리오의 창단 멤버였던 베이시스트 스콧 라바로와 트럼페터 클리포드 브라운의 비극적인 삶이 그렇다. 짧은 활동 기간에 비해 역사에 남을 명연주를 남기고 떠난 것도 비슷하다. 그래서 천재의 비극적인 삶이라고 하겠지만 말이다. 당시 쟁쟁한 뮤지션들이 넘치던 시대였음에도 짧은 시기에 활동한 소니 클락의 거의 모든 앨범들이 명반으로 회자되고 있다.

앨범 Cool Struttin’은 우선 자켓 사진부터 눈길을 끈다. 하이힐을 신은 젊은 여성의 세련된 다리를 클로즈업한 사진이다. 들은 바에 의하면 당시에 발매된 앨범 중 가장 섹시한 자켓 사진이었다고 할 만큼 모던한 이미지다. 일반적으로 자켓의 이미지가 앨범 판매량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준다고 알려져 있다. Cool Struttin’이 역대 블루 노트의 앨범 판매 순위에서 언제나 상위에 링크되어 있는 건 아마도 구매욕을 자극하는 자켓 이미지가 한 몫을 하리라 생각된다. 한 가지 아이러니한 점은 1958년 미국에서 발매 당시 국내 판매량은 고작 500여장에 불과했다는 것. 따라서 현재의 명성이 앨범 자체의 예술성 보다는 자켓 이미지에 너무 경도되지 않았는가 하는 의구심을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완벽한 오해다. 앨범 Cool Struttin’은 오히려 자켓 이미지가 앨범 자체의 완성도를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당시의 블루 노트가 지향하는 바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참여하고 있는 뮤지션들은 이름만 나열해도 앨범의 수준을 짐작할 만큼 역대급이다. 트럼펫의 아트 파머, 알토 색소폰의 재키 밀란, 베이스의 폴 챔버스, 드럼의 필리 조 존스가 피아노의 소니 클락과 더불어 기량이 최고조에 달한 상태에서 참여했다.

앨범의 타이틀 곡 Cool Struttin’은 누구나 한번쯤은 들었을 익숙한 멜로디다. 국내 모 라디오 재즈 프로그램의 시그널로도 유명하기 때문이다. 아트 파머의 트럼펫이 압권인 인트로 부분만 들어도 아! 하면 탄성을 지를 것이다. 전형적인 하드밥 장르의 연주임에도 각 멤버들의 절제미가 돋보인다. 그러면서도 하드밥의 분위기를 잃지 않고 있다. 후반부 베이스 솔로 부분에서는 폴 챔버스가 일반적인 피치카토 주법이 아닌 레가토 내지 마르카토 주법으로 연주한다. 특별히 귀 기울여 들을 만하다.

다른 트랙들 역시 놓칠 것이 없다. 특히 재즈가 낯설거나 간혹 어렵다고(?) 토로하는 리스너들한테 강력 추천한다. 귀에 쏙쏙 박힐 것이다. 상상 속 재즈의 모습이 바로 이 앨범에 담겨있기 때문이다.

 

 

 

정정숙의 씨네뮤직(15)아름다운 삶이란 그 삶 자체에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사람!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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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에 처음 영화화된 소설로, 소설의 원제 또한 영화의 제목인 ‘The Secret Life of Walter Mitty’과 같다. 오늘은 2013년에 두 번째로 영화화 된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당신은 상상을 하는가? 한다면 어떤 상상을 하는가? 개인 마다의 차이가 있겠지만 대부분 소심하고 내향적인 사람들이 딱히 움직이지 않고 대신 생각하고 상상하며 많은 시간을 보내기 마련이다. 그래서 외향적이며 활동적인 사람들에게 부러움을 느낄 때도 있다. 나도 가끔은 상상을 하곤 한다. 현실에서 가능하지 못한 일들을 가끔씩 상상 속에서 해결하기도 하는기쁨을 즐기기도 한다. 상상이 현실로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 상상에서 다시 현실로 돌아오면 맥없이 슬퍼지게 된다.

월터는 라이프 잡지사의 사진 현상가로 10년 넘게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성실한 직원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집안의 가장의 역할을 하면서 그 흔한 여행 한 번 떠나보지 못한 소심한 성격의 그에게 있어 유일한 취미는 현실과 전혀 동떨어진 상상을 하는 것이다. 혼자 상상의 세계에 빠져있는 것이 특징인 그는, 오히려 상상 속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행동하게 된다. 그에게 있어 상상력은 답답한 현실을 잊기 위해 몽상에 빠지는 도구로서 존재한다.

잡지사에서 그가 하는 일은 사진 작가가 보내온 필름을 현상하는 것이다. 후배 직원 한 명과 어두운 필름 편집실에서 일한 지 어느덧 16년째, 라이프는 온라인 회사로 거듭나기 위해 구조조정에 들어가고 오프라인 잡지를 폐간하기로 한다. 회사는 마지막 호의 표지 사진을 ‘전설의 사진작가’ 숀 오코넬(숀 펜 분)의 사진으로 장식하기로 결정한다.

사진작가 숀은 자기의 사진을 10년 넘게 현상해준 월터에게 고맙다는 메시지와 함께 지갑을 선물한다. 그런데 월터에게 보낸 그의 25번째에 있어야 할 마지막 사진이 사라진다. 사진을 찾지 못하면 회사에서 해고를 당하게 될 것이 당연한 그는 사진을 찾기 위해 한 번도 가본 적 없고, 한 번도 겪지 않은 일에 부딪히며 험난한 모험을 하게 된다. 국외를 한 번도 나가 보지 못했던 그가 사진을 찾기 위해 숀을 찾아 나서는 여행, 월터는 과연 숀을 만날 수 있을까?

숀을 만나러 가는 과정에서 월터는 너무도 다양한 일들을 겪게 된다. 이륙하는 헬기에 뛰어오르기, 차가운 바다에서 상어와 싸우기, 스케이트보드로 수십 km를 활주하기, 해발 5400m에 달하는 히말라야 고봉에 오르기 등 평범한 직장인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일들을 겪는 월터는 여러 일들에 부딪치면서 낯선 곳에서의 모험과 경이로운 자연 풍경에서 자신도 모르게 성숙해간다.

수많은 모험을 한 그지만 그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헬리콥터를 타고 바다에 뛰어들어 상어와 만나고, 화산 폭발 직전의 마을로 가기 위하여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가는 장면이다. 얼마나 신나게 달리던지 그를 보고 있자니 내가 마치 월터가 된 것만 같아 가슴이 뻥 뚫린 기분이었다. 월터가 보드를 타고 지나가면서 보여지는 풍광들은 우리가 쉽게 볼 수 있는 장면들이 아니었기에, 보는 것만으로도 난 힐링이 되었다. 정말 영화를 보고 있던 내가 벌떡 일어나서 보드를 타고 달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 장면은 지금도 생생하여 눈만 감아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여러 일들에 휘말리며 고생하는 그는 숀에게 다가갈수록 더욱더 험난한 일들만 생긴다. 생전에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일들 사이에서 월터는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된다. 비록 뚜렷한 목적이있어서 시작하게 된 모험이지만, 평소에 소심한 성격으로 사회 생활을 해온 월터에게는 이 기회를 통해 자신의 삶을 바라보고 기존에 하지 못했던 여러 생각들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았다. 그렇게 방황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그를 보는 순간, 나는 그에게 강렬하게 파이팅을 외쳐주고 싶었다.

결국 월터는 숀을 찾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가게 되고, 회사에서는 이미 해고가 되어 자리가 정리되어 있다. 월터가 좋아했던 세릴 또한 해고 되어 빈 자리만 남아 있다.

그 모습을 보고 모든 것을 포기한 월터는 집으로 가게 되는데, 그곳에서 어머니로부터 숀이 집에 다녀갔다는 얘기를 듣는다. 놀랍게 숀이 히말라야에 있다는 이야기를 어머니한테 들은 그는 완전 무장한 채 다시 히말라야로 숀을 찾아 나선다. 결과적으로 숀을 만난 그! 만나고 나서야 그가 선물한 지갑 안에 그렇게 찾던 마지막 사진 필름이 들어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월터는 자기가 좋아했던 추억 가득한 고무 인형을 아이슬란드에서 만난 아이들의 스케이트보드와 교환한다. 미국으로 돌아간 그는, 이 스케이트보드를 셰릴 멜호프(크리스틴 위그 분)의 아들에게 선물한다. 아들은 선물을 무척 마음에 들어 한다. 사실 그에게 셰릴은 직장 동료 이상의 존재였다. 같은 회사에 다니는 셰릴을 좋아하는 그지만, 그녀에게 좋아한다는 말도 데이트 신청도 제대로 못했다. 자신도 없었고 용기도 부족했던 그는 이번 기회로 인하여 셰릴에게 정식으로 고백하게 된다. 모험과 시련을 거치면서 소심함을 벗어버린 그의 더욱 남자다워진 모습에서 그만의 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세상을 보고 무수한 장애물을 넘어 벽을 허물고

더 가까이 서로를 알아가고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목적이다.’

유명 잡지 ‘라이프(LIFE)’의 모토인 이 말은 지갑에 적혀 있었다. 월터에게 있어서만 와닿는 말이 아니라, 영화를 보는 우리에게 있어서도 교훈을 주는 참 좋은 말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영화 속 ‘숀’이 했던 명대사도 잊히지 않는다!

“The Beautiful things don’t ask for attention.”

“아름다운 것은 관심을 바라지 않는다.”

잡지사의 암실에서만 꼬박 16년을 보냈던 월터가 그린란드와 아이슬란드, 그리고 히말라야를 거치며 온갖 역경을 헤쳐나가면서 우리에게 묵직한 따스함을 던져주는 것은 그가 단순히 오지에서 이색적인 체험을 했기 때문이 아닐 것이다. 오히려 16년 동안 자기 삶에 충실했던 주인공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사진 작가를 찾아야 한다는, 너무나도 단순한 목적을 위해 소심하고 내성적인 자기 자신으로부터 벗어나서 어떤 어려움과 고통이라도 감내한 자기 자신을 위한 모험이어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눈 표범을 찍기 위해 히말라야 깊은 산 속까지 들어갔던 사진 작가 숀은, 그곳까지 찾아온 월터에게 이렇게 말한다. “아름다운 것을 보면, 사진을 찍는 것보다는 그저 그 안의 한 부분이 되고싶다”라고. 그리고 그 순간만큼은 누구에게도 방해 받지 않고 그 상황과 동화되고 싶다고. 그가 월터에게 남겼던 히말라야의 눈 표범보다도 아름답다고 자평했던 25번째 사진은, 다름 아닌 월터의 삶 그 자체였다.

삶이 재미없고 지루하다고 하면 많은 이들이 ‘삶’을 내려놓으라고 장난스럽게 말하곤 한다. 하지만 그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늘 한결같기만 한 일상이 따분해서 떠나고 싶지만, 훌쩍 떠날 용기를 내는 것조차도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을 통해서 내 삶을 조금 더 풍부하고 윤택하게 만들 수 있다면, 월터처럼 거창한 여행은 아닐지라도 작은 여행이라도 참 좋을 것 같다. 혼자 여행을 떠나 일상의 삶을 내려놓고 내 자신을 만나보자. 그곳이 자연이라면 자연에 내 자신을 투영시켜 바라볼 수 있어 더욱 좋지 않을까? 일상에 지친 이들에게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는 각박한 세상살이에 얼어붙은 우리들의 마음을 녹여주는 한 편의 따뜻한 핫 초콜렛과 같은 영화가 아닐까 한다.

 

주연 배우이자 감독이기도 한 벤 스틸러(월터 미티 역)는 이 영화를 통해 감독으로써의 재능을 새삼 인정받기도 했다. 영화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나 ‘박물관이 살아있다’ 등에서 주로 코미디 연기를 해온 그는 어릴 때부터 꾸준히 영화 감독의 꿈을 키워왔다고 한다. 미국의 전설적인 코미디언 부부 제리 스틸러와 앤 메라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연기하는 것도 좋아하지만, 어릴 적부터 꿈이 감독이었다.”며  “나에게 감독은 언제나 가장 큰 꿈이고, 가능한 한 오랫동안 계속하고 싶다”고 밝혔는데, 이 영화를 통해 그의 자질을 충분히 보여주지 않았나 생각한다.

벤 스틸러 뿐만 아니라 할리우드 최고의 명배우로 꼽히는 숀 펜과 주목받는 할리우드의 젊은 피 아담 스콧 등 동료 배우들의 매력이 카메라 안에 가득 담겨있는 영화이다. 특히 히말라야고지대에서 만난 숀이 눈 표범을 바라보며 미소 짓는 장면은, 정말이지 숀 펜만이 보여줄 수 있는 표정이었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는 아날로그에 대해 말한다. 아날로그에 대한 막연한 향수가 영화 전반을 뚫고 있다. 덕분에 관객은 필름에 담긴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무료로 감상할 수 있게 된다. 처음부터 끝까지 나오는 자연의 아름다움은, 영화의 스토리만큼이나, 말로 표현 못 할 만큼 인상에 남는다. 그린란드·아이슬란드·히말라야 등 평소에 영상으로도 접하기 힘든 풍광은 물론, 멸종위기종인 히말라야 눈표범의 모습도 눈앞에서 생생히 볼 수 있으니 영화와 다큐멘터리 두 편을 본 느낌이다.

영화 속에 담긴 노래와 음악도 아날로그다. 셰릴이 부르는 노래 ‘우주비행사 톰’의 실제 제목은 ‘Space Oddity’(우주의 괴짜)다. 이 곡은 영국 록가수 데이비드 보위 (David Bowie)가 1969년발표한 노래로, 우주비행사 톰 소령과 지구 지상통제실 사이의 교신 내용을 가사에 담았다. 또한, 헬기 조종사가 그린란드 술집에서 부르는 ‘Don’t You Want Me Baby‘는 벤 스틸러가 고등학교 재학 시절 유행했던 노래라서, 추억을 담기 위해 영화에 실었다고 하니 오늘 한번쯤 들어보고 과거의 향수를 느끼며  앞으로 다가올 모험을 준비하는 것은 어떨까?

 

여계봉의 산정천리-(6)백운산 자락에 핀 동강할미꽃, 그리고 동강에 흐르는 정선 아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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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산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이 핀 동강할미꽃

동강(東江) 백운산 자락에 사는 동강할미꽃을 만나고 싶어 눈이 드문드문 내리는 강원도 길을 달려서 점재마을에 도착한다. 동강할미꽃을 빨리 볼 욕심으로 다리를 건너자마자 강가로 내려서서 할미꽃 군락지가 있는 영월 쪽 방향으로 1 km 정도 강을 따라 내려 낸다.

동강에 기대 사는 사람들은 이 꽃을 그냥 ‘할미꽃’이라 불러왔다. 그러던 것이 ‘동강할미꽃’이라는 근사한 이름을 얻게 된 것은 동강지역에서만 발견되는 한국 특산 식물임이 밝혀지자 지역명인 ‘동강’을 붙여 세계 학계에 공식 발표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 때문에 학명에 서식지인 동강이 표시되는 아주 귀하고 특별한 꽃이 되었다.

그 즈음 동강댐 건설을 추진 중이던 정부의 정책을 포기하게 만든 주인공이 바로 동강할미꽃이기도 하다.

동강할미꽃은 강원도 평창과 정선 지역을 지나는 동강 주변 석회암 바위틈에서 자라는 야생화다. 동강할미꽃은 꽃이 땅을 보고 피는 일반 할미꽃과는 달리 하늘을 향해 피고 바위틈에서 자라는 것이 다르다.

동강할미꽃과의 ‘짧은 만남, 긴 여운’의 조우를 마치고 이제 노루귀 서식처인 칠족령으로 가기 위해 백운산을 오른다.

백운산은 정선에서 흘러나온 조양강과 동남천이 합쳐져서 이루어진 동강을 따라 크고 작은 6개의 봉우리가 이어져 있고, 동강 쪽으로는 칼로 자른 듯 급경사의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오늘 산행은 점재마을을 출발하여 정상에 오른 후 칠족령을 지나 제장마을로 하산하는 약 9km 코스인데, 산행의 시작과 끝에는 동강을 건너야 한다.

유홍준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국토의 오장육부’라고 표현한 정선, 평창, 영월 땅을 차례로 적시고 흐르는 동강은 험한 석회암 절벽을 굽이돌아 흐르는 전형적인 사행천이다.

백운산 산행의 백미는 뱀이 또아리를 튼 것 같이 굽이굽이 돌며 흐르는 동강의 강줄기를 능선을 따라 계속 조망하는데 있다. 그러나 능선 왼쪽 동강 쪽은 급경사의 단애로 군데군데 위험구간이 있고 경사가 가팔라서 산행 내내 조심해야 한다.

백운산은 오르막도 빡세지만 내리막길도 까칠하다. 정상에서 칠족령 가는 길은 경사가 급한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하여 밧줄구간이 많다. 오늘은 눈 때문에 길이 미끄러워 산객들 모두 긴장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칠족령이란 이름에는 유래가 있다. 옛날 옻칠을 하던 백운산 뒤 선비집의 문희라는 개가 발에 옻 칠갑을 하고 도망가서 그 자국을 따라 가보니 이곳까지 오게 되었는데, 여기서 바라본 풍경이 장관이어서 옻칠(漆)자와 발족(足)자를 써서 칠족령이라고 이름 붙였다고 한다. 이 개 때문에 마을 이름도 문희마을이다.

영월 신동에서 큰 고개를 넘으면 나오는 나래소에서 시작하여 동강을 따라 가수리를 지나 정선까지 이어지는 강변길은 기자가 수 십 년 동안 가슴에 혼자 숨겨두고 몰래 찾았던 비경의 길이었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강변길 주변에 각종 위락 시설과 펜션, 전원 주택지가 우후죽순처럼 들어서 이제 원시의 비경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으니 가슴이 너무 아프다.

제장마을 다리를 건너면서 스마트폰으로 정선 아리랑을 듣는다. 정선은 아리랑의 고장이다. 특히 정선 아리랑은 고단했던 민초들의 삶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소리고 노랫말이다.

그렇다면 이곳에서 널리 알려진 동강할미꽃은 민초들의 들꽃이 아니던가.

그러고 보니 허리를 펴고 정선 아리랑 한 자락 뽑아내는 우리 할미 모습 같기도 하다.

오늘도 동강할미꽃은 동강에 흐르는 정선 아라리 자락에 피고 진다.

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38) – <Humair Ultreger Michelot> (Sket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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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ir Ultreger Michelot> (Sketch)는 국내 발매 당시 CD가 세 개나 들어있는 합본반이라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그럼에도 쉽게 구하지 못하는 트리오 HUM의 앨범인데다가 앨범 자켓 디자인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프랑스의 신흥 레이블 Sketch의 첫 앨범이기에 주저 없이 구입했던 기억이 있다.

<HUM>은 드러머 Daniel Humair, 비밥 피아니스트 Rene Ultreger와 자크 루시에 트리오 초기 베이시스트 멤버였던 Pierre Michelot등 프랑스 재즈 1세대들이 만든 트리오다. 트리오라고는 하나 고정적인 활동을 한 건 아니다. HUM이라는 이름이 존재했던 40년 동안 고작 앨범 세 개만을 발표했다.

첫 번째 앨범은 1960년 클럽 생제르맹에서의 실황 녹음반이고 두 번째는 약 20년이 지난 후인 1979년에 녹음, 발매 되었다. 그리고 또 20년 후 즉, 소개하는 앨범 <Humair Ultreger Michelot>이 발매된 1999년 세 번째 녹음이 이루어졌다. 그러니까 앨범 <Humair Ultreger Michelot>는 1999년에 Sketch 레이블로 녹음한 새 앨범과 1960년, 1979년에 각각 발표된 두 앨범을 묶어 발매한 것이다.

앨범에 담겨 있는 연주들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밥 재즈 그 자체다. 밥 스타일 재즈 트리오의 군더더기 없는 미학을 접할 수 있다는 뜻이다. 국내에는 비교적 덜 알려져 낯선 이름들일지 모르나 그렇다고 이들이 그저 그런 B급 연주자들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이들 멤버 모두 당시의 거장들이었던 덱스터 고든, 에릭 돌피, 마일즈 데이비스, 레스터 영, 콜멘 호킨스, 쳇 베이커 등과 협연할 정도로 유럽 재즈의 황금기를 활짝 열었던, 그야말로 관록의 아티스트들이기 때문이다.

1960년 녹음된 첫 번째 음반은 대부분의 트랙이 당시에 유행하던 밥 스타일의 스탠더드로 채워져 있다. 아직은 풋풋한 기운이 느껴지는 연주와 함께 간간히 들리는 청중 소리가 클럽 라이브 녹음다운 현장감을 물씬 풍긴다.

1979년 녹음된 두 번째 음반에서는 비록 이들 멤버들이 트리오 HUM이라는 이름으로 정기적인 활동을 한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HUM이라는 정체성만큼은 유지하고 있었고, 앞으로도 그러리라는 의지가 느껴진다. 이는 3번 트랙 ‘Ballade Au Musehum’ 4번 트랙 ‘Blueshum’ 8번 트랙 ‘Hum Calshum’과 같이 ‘HUM’이라는 이름을 각인시키는 곡들에서 확실히 알 수 있다. 연주 자체는 60년 첫 음반의 풋내기 시절 연주와는 달리 중견 연주자의 품격을 느낄 만큼 여유롭다. 마치 오랜만에 만난 중년 친구들의 유쾌한 모임을 보는 듯하다.

세 번째 음반은 1999년에 녹음되어 그야말로 이들의 40여년 연주 여정을 정리하는 완결판이라 할만하다. 40년의 세월이라면 음악은 물론 인생 자체로서도 각자의 변화가 뚜렷해질 기간이다. 멤버들의 나이도 어느덧 노년이다. 그럼에도 연주는 활기가 넘친다. 더욱이 트리오 HUM이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았다는 듯 각 멤버간의 유기적인 인터플레이는 한결 더 원숙하다. 이번에도 역시 1번 트랙 ‘Humeurs’, 6번 트랙 ‘Le Troisième Hum’, 9번 트랙 ‘Hum-Oiseau’와 같이 ‘HUM’을 강조하는 곡들을 배치 시켰다. 그런가 하면 세 앨범 모두에 ‘Airegin’이라는 곡이 들어가 있다는 것도 재미있는 사실이다. 이 점 또한 기존의 60년, 79년 앨범과의 음악적 연속성이 일치한다는 것을 상징한다. 40여 년 동안 ‘HUM’이라는 이름으로는 단 세 장의 앨범만을 내 놓았으면서도 결코 그 정통성과 정체성을 잃지 않았다는 뜻이다.

앨범의 자켓 디자인으로만 평가해도 대단히 가치 있는 아름다운 음반이다. 특히 인상적인 건 풍부한 자료와 함께 40여 년 동안 변화한 트리오 멤버들의 모습을 담은 라이너 노트다. 이미 작고하신 분이 계신데다 생존해 있는 분들 역시 더 이상 연주활동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래서인지 사진 속 젊은 시절 한창 때의 모습을 보는데도 그저 뭉클하기만 하다.

영원히 후세에 남을 이런 연주를 남긴 삶이란 얼마나 아름답고 경이로운가. 쉽게 가늠할 수가 없다. 늙는다는 것이 단지 세월만 흘려보내는 것만은 아니구나 싶다. 이 앨범들을 차례로 듣고 있노라면 따뜻하기도 하고 감동스럽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때론 울컥하기도 하다. 단 세 장의 앨범에 Humair, Ultreger, Michelot 세 멤버의 모든 삶과 시간들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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