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6월 27, 2019
Home Blog Page 2

여계봉의 산정천리-(9)피안의 섬, 소매물도 등대섬 가는 길

6

어느 날의 동화 속 섬을 찾아서

 

인류학자 레비 스트로스는 ‘’여행은 꿈같은 약속이 든 마법의 상자’라고 했다. 6월 초 ‘마법의 상자’에서 나와 ‘꿈같은 약속’을 실현하기 위해 미항 통영으로 달려간다. 서울을 벗어나자 소경의 눈뜸처럼 모든 것이 새롭다. 모처럼 맑고 화창한 날씨가 신경세포를 자극하여 약간 들뜬 분위기다.

한려수도 남해의 아름다운 항구도시 통영. 문화와 예술의 향기 은은하게 펼쳐지는 육지와 더불어 통영 바다에 뿌려진 보석 같은 섬들이 반짝이는 고장. 그가 품은 수많은 섬들 중 기암절벽과 등대섬, 그리고 ‘신비의 바닷길’이 펼쳐지는 소매물도로 떠난다.

어느 날의 동화 속 섬을 찾아서.

거제 저구항에는 소매물도행 선박이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다. 갈매기와 하나되는 순간, 자연과의 친화력이 사람을 더욱 사람답게 만든다. 거제 저구항을 출발한 지 50분 만에 소매물도항에 도착한다. 섬에는 차가 들어갈 수 없어 두 다리로 걸어야만 섬 곳곳을 돌아볼 수 있다. 썰물 때는 소매물도의 몽돌밭으로 모세의 바닷길이 열려 등대섬까지 걸어서 들어갈 수 있는데 하얀 등대가 서 있는 등대섬의 전경을 바라보는 것은 소매물도 여행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소매물도에서 바라본 등대섬’은 <통영 8경>에 포함되는 아름다운 비경이다.

등대섬 트레킹은 총 3.6km로 3시간이면 넉넉하게 원점회귀 할 수 있는 코스다. 약간 가파른 언덕에 펜션과 식당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부둣가를 지나 트레킹 이정표가 있는 곳에서 좌측으로 방향을 잡으면서 트레킹이 시작된다. 섬의 허리를 따라 난 바닷가 산길을 약 40여분 굽어 돌아가면 산길이 끝나는 곳에 심연보다 깊고 푸른 다도해가 산객을 기다리고 있다.

폐교가 있는 언덕에서 땀을 잠시 식히고 아래로 내려서면 등대섬이 눈앞에 펼쳐진다. 등대 왼쪽으로 옛날 중국 진나라 시황제의 신하 서불이 불로초를 구하러 가던 중 그 아름다움에 반해 ‘서불과차(徐市過此)’라고 새겨놓은 글씽이굴이 있으며, 등대섬의 랜드마크 병풍바위가 보인다. 그뿐이랴. 아래로 더 내려가면 소매물도와 등대섬을 잇는 열목개 자갈길도 곧 나타나겠지. 산으로 올라오는 해풍이 이마를 스치자 몸에 배인 땀과 함께 일순간 마음속의 삼독도 사라진다. 해수 관세음보살의 공덕이련가.

매물도는 대매물도와 소매물도, 그리고 등대섬 이렇게 세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다. 이 중 소매물도와 등대섬은 사이좋게 마주해 하루에 두어 번 바다 위에 길을 내어 만난다. 바다 한 가운데 자리해 서로 의지하듯 마주한 두 섬은 거센 파도와 바람이 그려놓은 암벽들 덕분에 빼어난 풍광을 자랑한다.

CF에도 자주 나온 소매물도에서 등대섬 가는 길은 ‘동화 속의 섬’ 만은 아니다. 완급과 오르내림이 반복되는 몇 구비의 고갯길을 거쳐야 갈 수 있는 피안의 세계다. 소매물도와 등대섬은 원래 80m쯤 떨어져 있는데 하루에 두 번 썰물 때면 이 둘 사이에 아담한 ‘모세의 기적’이 일어난다. ‘열목개 자갈길’이라고도 불리는 몽돌해변이 바다 위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래서 배시간과 물때를 잘 맞추어야 등대섬과 소매물도를 오가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몽돌해변을 지나 등대섬 나무데크를 따라 주위 경관을 두루 살피며 유유자적 걷다 보면 어느새 힘 안들이고 등대 위에 올라와 있다. 등대에서 내려다보면 우측 아래로 명물 촛대바위가 우뚝 솟아있다.

소매물도, 매물도의 이름은 유래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조선 초기의 한자 지명은 ‘매매도’, 후기에는 ‘매미도’와 ‘매물도’로 표기했다. 이러한 ‘매’, ‘미’, ‘물’ 등은 물을 의미하던 옛말이었던 것으로 미루어 ‘’육지로부터 아주 먼 바다에 놓인 섬’이란 뜻풀이가 가장 설득력 있게 들린다.

등대에서 내려오다 보니 관사 아래로 선착장 신축 공사가 한창이다. 공사가 끝나 소매물도를 거치지 않고 등대섬으로 바로 입도하는 관광객이 많아지면 이곳 자연 생태계가 제대로 보전될 지 걱정이 앞선다.

포구로 가기 전에 망태봉을 들린다. 망을 보던 봉우리라는 이름에 걸맞게 먼 바다까지 시원하게 조망할 수 있다. 소매물도 북쪽 500m 거리에 맏형격인 대매물도가 자리 잡고 있고, 남쪽으로는 대마도가 불과 70여㎞ 거리에 있다. 망태봉 정상에 있는 관세역사관은 1970~80년대 남해안 일대의 밀수를 감시하던 곳이다. 이곳 감시초소는 첨단시스템이 도입되면서 폐쇄되었고 지금은 관세역사관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섬 모퉁이 휘어질 때마다 저만치서 꿈속에서 보는 풍경처럼 아련하다. 포구 위로 솜털이 촘촘히 박힌 채 움직임 없는 푸른 하늘을 보니 청적(淸寂)이 인다. 다인들이 차를 마실 때 느끼는 최고의 경지가 바로 화경청적(和敬淸寂)이라고 하는데 지금 소매물도 하늘이야말로 바로 청적이 아닐까.

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43) –‘Charlie Haden & Jim Hall’(impulse)

5

베이시스트 찰리 헤이든(Charlie Haden). 평생 동안 혁명을 노래했듯 그의 음악에는 늘 인간에 대한 존엄이 들어있다. 기타리스트 짐 홀(Jim Hall)은 또 어떤가. 누가 들어도 대번에 알아챌 만큼 그의 기타는 특유의 온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짐 홀은 2013년에, 찰리 헤이든은 2014년 여름 연이어 이 세상을 떠났다. 그들의 듀오 앨범 ‘Charlie Haden & Jim Hall’(impulse)은 1990년 실황으로 녹음되었으나 웬일인지 2014년이 되어서야 앨범으로 발매되었다. 자세한 내막이야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추측건대 2013년 짐 홀에 이은 2014년 찰리 헤이든의 타계가 결정적인 발매 동기가 아니겠나 싶다. 아이러니하게도 두 연주자의 부재가 이 역사적인 음반의 발매를 촉진시킨 셈이다. 어찌 되었든 두 거장이 함께 녹음한 앨범은 Charlie Haden & Jim Hall이 최초이자 유일한 음반이다. 더구나 찰리 헤이든에게도, 짐 홀에게도 유작이 되었으니 앨범의 가치는 어떤 수식어를 붙여도 부족하지 않다.

레이블 임펄스(impulse) 특유의 붉은색이 도는 매력 있는 자켓 디자인이다. 두 마리의 고양이 실루엣 역시 사랑스럽다. 연주 자체야 물론 두말할 나위 없이 따뜻하고 아름답다.

언급했다시피 녹음은 1990년 몬트리올 재즈 페스티벌 실황으로 진행되었고 2014년에 발매되었다. 총 8개의 단출한 트랙 중 찰리 헤이든의 곡으로 First Song, In The Moment가 수록 되었고 짐 홀의 곡으로는 Down From Antigua와 Big Blues가 담겨져 있다.

베이스와 기타라는 듀오 구성 특성상 조금은 지루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선입견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워낙 세심한 녹음 작업 덕분인지 베이스와 기타 듀엣의 차분함뿐 아니라 연주 중간이나 마칠 때마다 들리는 박수 소리로 재즈 페스티벌 실황다운 사운드를 즐길 수 있다.

사실 찰리 헤이든 만큼 듀오 연주를 많이 한 연주자도 드물다. 대표적인 작품이 베이스와 기타라는 동일한 포맷으로 1997년에 팻 메스니와 함께 발표한 ‘Beyond The Missouri Sky’(Verve)다. 발매가 훨씬 앞선다고는 하나 사실 Charlie Haden & Jim Hall의 녹음이 1990년에 이루어졌으니 동일한 구성의 후속 작이라 불러도 무방하다.듀오 연주를 즐겼다는 점에서는 짐 홀도 마찬가지다. 특히 재미있는 건 찰리 헤이든의 기타 상대였던 팻 메스니와 짐 홀이 듀오로 발표한 앨범이 있다는 것이다. 1999년 레이블 Telarc에서 발표한 ‘Jim Hall & Pat Metheny’다. 또한 펫 메스니의 1982년 대표작인 ‘Offramp’는 짐 홀의 서정성에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고 찰리 헤이든과 펫 메스니는 모두 미주리 주가 고향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으니 세 사람의 얽히고설킨 관계가 복잡하면서도 재미있다.

앨범 Charlie Haden & Jim Hall의 베스트 트랙은 뭐니 뭐니 해도 찰리 헤이든의 영원한 대표작이자 명작인 두 번째 트랙 First Song이다. 짐 홀 특유의 영롱한 기타 음색과 찰리 헤이든의 든든하면서도 풍부한 베이스에 더해 중간에 터지는 박수 소리를 듣는 묘미가 있다. First Song의 수많은 버전 중에서도 수작에 꼽히는 연주다.

 

박수호 시인의 당신을 위한 시한편 – 나팔꽃 (송수권)

2

바지랑대는 빨랫줄을 받치는 긴 막대기입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잘 모르겠네요. 시골에 가면 아직도 있는 곳이 있습니다.

나팔꽃은 덩굴 식물이라 나무줄기 같은 것을 감고 올라가는 성질이 있습니다.

화자가 보니까 바지랑대 위는 아무것도 없으니까 더는 올라가지 못하겠지 생각했나 봅니다.

이 시에서는 ‘다음 날 아침에 나가보면’이 세 번 나옵니다. 전날 끝이다.

끝하고 생각합니다. (더 이상 못 올라가겠군!)

다음날 보니까 나팔꽃 줄기가 공중에 두 뼘 정도 더 자라서 꼬여 있는 겁니다.

더는 바지랑대는 없는데도 말이지요.

그저 흘러가는 구름과 이슬 정도만 있는데도 나팔꽃 줄기는 계속 뻗어 나가는 겁니다.

그 다음날 아침에 나가보니 이제는 나팔꽃의 덩굴손까지 나와서 허공을 향해 뻗어 있습니다.

참 나팔꽃 대단합니다.

화자는 이쯤하면 나팔꽃도 포기하고 돌아오겠거니 생각했습니다.

화자는 다음날 아침에 나가서 조금 놀란 모양입니다.

그 가냘픈 줄기에 이제 꽃봉오리까지 생긴 것니다.

화자는 것을 두세 개의 종까지 매어 달았다고 표현합니다.

그 종들이 은은한 종소리를 내고 있다고 합니다. 참 표현이 멋지지요.

한계를 모르고 계속 뻗어가는 나팔꽃을 보고 화자는 생각합니다.

화자는 우리가 세상을 살아갈 때 여러 아픔들을 겪게 되는데

그 때에도 나팔꽃처럼 포기하지 말고 더 한 번씩 길게 꼬여서 푸른 종소리를 내자고 말합니다.

한계에 직면하였을 것이라는 화자의 예상과는 달리 끊임없이 뻗어가는 나팔꽃을 통해

인생의 의미를 성찰하는 작품입니다.

화자는 바지랑대의 끝까지 뻗어 있는 나팔꽃을 보며 더 이상 갈 곳이 없으니

그 자리에 멈추어 있을 것이라는 짐작하지만,

화자의 예상과는 달리 다음 날 아침 바지랑대를 넘어

허공으로 나아가는 나팔꽃을 보며 경탄을 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꽃봉오리마저 피워 내는

나팔꽃의 모습에서 화자는 다시 한 번 경탄합니다.

한계에 직면했을 때,

좌절하지 않고 이를 이겨 내려는 나팔꽃의 모습을 통해 우리의 인생도,

그리고 우리의 인생의 슬픔도 더 큰 성장을 위한 밑거름이 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으며

시상을 마무리 짓고 있습니다.

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42) – ‘사형대의 엘리베이터’ (Ascenseur Pour L’echafaud, Miles Davis)

2

6월이 시작되었으니 이제부턴 그야말로 여름이다. 아직 본격적인 무더위는 오지 않았지만 여름엔 그래도 등골이 오싹할 정도의 서늘한 영화 한 편 정도는 봐줘야 한다. 그래서 겸사겸사 고른 음반은 영화 ‘사형대의 엘리베이터’(Ascenseur Pour L’echafaud)의 사운드 트랙이다. 비록 공포영화는 아니지만 ‘사형대’가 자아내는 음침한 분위기를 통해 잠시나마 한여름의 더위를 잊기에 충분하다. 자 그럼 지금부터 사형수의 무거운 발걸음을 함께 사형대로 향하는 길고 음침한 복도를 따라 들어가 보자.

‘사형대의 엘리베이터’ (Ascenseur Pour L’echafaud)는 28세의 젊은 루이 말(Louis Malle)이 감독하고 잔 모로우(Jeanne Moreau)가 주연한 최초의 누벨바그 영화다.

젊고 매력적인 여인 플로랑스와 그녀의 정부(情夫) 줄리앙은 플로랑스의 나이 든 남편(줄리앙의 직장 상사)을 살해하고 사랑의 도피를 계획한다. 그러나 완벽할 것 같았던 범행의 알리바이는 두 사람과는 아무런 상관없던 가난한 연인 루이와 베로니카가 벌인 또 다른 살인 사건과 얽히고 설켜 차질을 빚는다. 거기에 줄리앙이 범행 과정에서 하게 된 어이없는 실수로 차단된 엘리베이터의 전원은 결말에 대한 불안한 암시가 된다. 결국 줄리앙과 플로랑스는 살인에 대한 자백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 영화 최고의 장면이자 반전은 현상액 속에서 서서히 형체를 드러내는 한 장의 사진이다. 이 사진으로 결국 플로랑스와 줄리앙은 살인죄를 벗어날 수 없게 되고 영화는 파별로 끝난다. 사랑의 순간을 담은 사진이 사랑의 파멸을 가져온다. 진부한 역설을 루이 말은 뛰어난 영상미로 승화 시켰다.

“나는 곧 늙겠지. 그러나 사진 속에서 우리는 같이 있어. 거기 어딘가에서 같이… 결코 우리는 서로 떨어질 수 없어.”

플로랑스는 현상액 속에서 차츰 선명해지는 사진을 바라보며 독백처럼 속삭인다. 사랑이란 결코 현실에서는 존재할 수 없다는 걸 말하려는 듯 둘은 오직 한 장의 사진 속에서만 행복하다.

영화 ‘사형대의 엘리베이터’는 영화의 명성만큼 OST 역시 유명하다. 우선 주목할 점은 마일즈 데이비스(Miles Davis)가 남긴 단 하나의 유일한 영화 음악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제작 과정도 극적이다.

루이 말은 마일즈 데이비스를 초청한 후 줄거리조차 알려주지 않은 채 연주를 주문했고 이를 단번에 이해한 마일즈 데이비스는 이틀 동안 주어진 단 몇 시간 만에 즉흥으로 녹음을 끝냈다. 마일즈 데이비스의 모던 재즈가 한편의 누벨바그와 완벽히 합쳐지는 순간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음악과 영상이 한 테이크로 움직이는 영화가 탄생했다는 뜻이다. 어쩌면 마일즈 데이비스가 남긴 가장 위대한 앨범 Kind OF Blue로 시작된 모달 재즈가 이미 이곳 ‘사형대의 엘리베이터’에서 실험되었다고 할 수 있다.

프랑스 누벨바그의 흑백 영상이 마치 청각으로 현현하는 듯한  마일즈 데이비스의 뮤트 트럼펫과 자크 루시에 트리오(Jacques Loussier Trio) 초기 베이시스트인 피에르 미쉘로(Pierre Michelot)의 베이스 소리는 사형대로 올라가는 누군가의 무거운 인기척이라도 되는 듯 러닝타임 73분 45초 동안 처음부터 끝까지 무겁게 압박한다.

그 중에서도 내가 뽑은 최고의 트랙은 Nuit sur les champs-Elysees(상젤리제의 밤)이다. 약속장소에 나타나지 않는 줄리앙을 찾아 상젤리제의 밤을 헤매던 여 주인공 잔 모로가 전화기를 붙들고 통화할 때 들려오는 곡이다.

대부분의 영화 삽입곡들이 다 그렇겠지만 특히 사형대의 엘리베이터의 OST는 그야말로 온전한 영화음악으로서 즐길 때 더욱 가치를 발한다. 음반으로만 듣는 것 보다는 가능하면 영화를 보면서, 영상과 함께 즐기라는 뜻이다. 재즈 문외한이나 마일즈 데이비스의 팬이 아니더라도 틀림없이 엄지를 세우게 될 것이다.

 

수주 변영로 VR문학관 건립 프로젝트 「수주로 가는 시간 여행자」 어슬렁 강진 워크숍 (2019. 6. 1 ~2)

1

카툰캠퍼스는 2017년 유네스코 창의(문학)도시로 지정된 부천의 문학적 자산을 찾아 2018년에는 부천 인문로드의 발견을 진행하였습니다. 그리고 2019년도에는 다양한 전문가 그룹과 시민들이 직접 자료수집·전시기획·홍보·이벤트 등 모든 큐레이션을 진행하여 건립하는 VR 수주 변영로 문학관 건립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번 수주 변영로 VR 문학관 건립 프로젝트를 위한 어슬렁 강진 워크숍에서는 전라남도 강진으로 떠나 시문학파로 활동하던 수주 변영로 선생과 시인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발견하고자 합니다. 이번 워크숍에는 전문가 그룹으로 부천을 빛내주고 계신 김문배 시인(시문학파 김현구 시인의 차남), 박수호 시인, 민충환 교수, 조관제 작가가 함께 해주십니다.

또한 시문학파기념관 김선기 관장의 강진과 시문학파 그리고 시문학파 기념관 건립과정에서부터 내부 전시관 해설까지 들어볼 수있는 특별한 시간도 마련되었습니다. 이번 어슬렁 강진 워크숍에서 보고 듣고 느낀 많은 이야기들은 이후에 우리가 추진할 VR 수주문학관 건립 프로젝트에 기름진 자산이 될 것입니다. 다녀와서 이어질 다양한 리뷰기사들도 기대해주세요.

 

어슬렁강진 탐방코스

시문학파기념관

1930년 창간된 《시문학》을 중심으로 순수시 운동을 주도했던 시문학파 시인들의 문학정신을 계승하고, 20세기 시문학의 산실로 자리매김하고자 ‘시문학지’ 창간일에 맞춰 2012년 3월 5일 개관했다. 영랑 김윤식, 용아 박용철, 정지용, 연포 이하윤, 위당 정인보, 수주 변영로, 김현구, 신석정, 허보 등 아홉 시인의 육필, 유품, 저서, 1920~50년대 문예지 창간호 30여 종, 1920~60년대 희귀도서 500여 종 등이 전시되어 있으며, 고도서 1천 점 이상을 소장하고 있다.

현구길·현구생가

현구 김현구 시인은 1903년 전남 강진에서 태어나 1930년 5월 《시문학》 2호에 「임이여 강물이 몹시도 퍼렇습니다」 등 4편을 발표하면서 김영랑, 용아 박용철, 정지용, 연포 이하윤, 위당 정인보, 수주 변영로, 신석정, 허보 등과 시문학파로 활동했다. 그 후 《문예월간》 (1931), 《문학》 (1934)의 필진으로 참여하면서 1930년대 한국시문학사를 풍요롭게 했으나, 이승에서 시집 한 권 내지 못한 채 85편의 작품을 남기고 1950년 6·25 참화로 불운하게 생을 마감했다.

영랑생가

김영랑이 1903년에 태어나 1948년 9월 가족과 함께 서울로 이주하기 전까지 45년간 살았던 집이다. 영랑이 서울로 이주하면서 생가는 다른 사람의 소유가 되었다. 1970년대 새마을 사업으로 지붕을 시멘트기와로 보수하였고, 기단부와 벽체는 시멘트로 발라 원형을 잃어버렸다. 하지만 1985년 강진군청이 그 집을 다시 사들여 복원작업을 하였고 원래 초가집의 원형으로 다시 지었다. 1986년 2월 17일 전라남도기념물 제89호로 지정되었다가 2007년 10월 12일 국가지정 중요민속자료 제252호로 지정되었다.

다산초당

전라남도 강진군 도암면 만덕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주택. 사적 제107호. 정약용이 신유사옥에 연루되어 유배 생활을 하던 중, 윤규로의 이 초당으로 옮겨 생활하면서 ≪목민심서≫ 등을 저술한 곳이다.

백련사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인 대흥사의 말사이다. 백련사에 대한 사적은 1432년(세종 13) 윤회가 저술한 『팔도지리지와 정약용의 『만덕사지』 등에 나타나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시왕전·나한전·만경루·칠성각·요사채 등의 건물이 있다. 그 밖의 사중유적으로는 만덕산 백련사사적비와 원묘국사중진탑이 있다.

무위사

전남 강진군 성전면 월출산 남동쪽에 있는 고찰이다. 국보 제13호 극락보전, 보물 1312호 아미타여래삼존좌상, 국보 제313호 아미타여래삼존벽화(조선시대 대표작) , 미륵전, 삼층석탑, 신중탱화, 선각대사편광탑비, 나한전, 극락전 후불벽화 뒤편 관음보살도 등이 있다. 이 중 국보 제13호 극락전은 벽에 29점의 벽화가 있었으나, 지금은 본존불 뒤의 탱화만 남아 있고, 28점은 보존각에 소장되어 있다. 이 벽화들은 법당이 완성된 뒤 찾아온 어떤 노거사가 49일 동안 이 안을 들여다보지 말라고 당부한 뒤에 그렸다는 전설이 있다.

강진 달빛한옥마을

강진 달빛한옥마을은 2007년 ‘월남지구 전원마을 조성사업’에 따라 만들어진 30세대 규모의 전통한옥마을(4만2030㎡)로 주민 대부분은 귀농·귀촌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이며 또한, 수려한 월출산과 차향 가득한 녹차밭이 주변으로 들러 쌓인 너무나 멋진 곳으로 이곳에서 여행객들이 하룻밤 머무르면서 한옥체험과 식사를 할수 있는 곳이기도 하며 푸소체험의 집이 있는 곳이다.

여계봉의 산정천리-(8)죽향이 춤추는 섬, 오곡도

2

울타리 너머 대밭에서 죽순을 씹다

 

5월 어느날, 한려수도 미지의 섬 통영 오곡도를 향해 떠난다. 한려수도의 아름다운 비경을 담은 비진도와 용초도, 학림도와 연화도 사이에 쑥스러운 듯 고개를 내민 오곡도는 바람이 거세고 파도가 높아 제대로 된 방파제조차 하나 없는 자그마한 섬이다. 하지만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은 섬 곳곳은 자연 그대로의 순수함과 아름다움을 간직한 천혜의 비경을 속에 품고 있다. 예부터 섬에 까마귀가 많아 까마귀 오(烏)자를 사용했다는 설과 섬의 형세가 하늘을 나는 까마귀를 닮아 오(烏)자를 사용했다는 두 가지 설이 전해지며, 많은 비렁 계곡인 강정이 있다 하여 계곡 곡(谷)자를 따서 ‘오곡’(烏谷)이라 하였다는 지명 유래가 전해진다. 통영 사람들은 이 섬에 오소리가 많이 서식했다 하여 지금도 ‘오시리’라고 부른다.

척포항에서 바다 택시 ‘동성호’를 타고 오곡도를 향해 출발한다. 오곡도는 통영 산양읍 척포 마동마을에서 뱃길로 10여 분 거리의 가까운 섬이지만 정기 여객선은 다니지 않는다. 한려해상국립공원의 남쪽 가장자리에 자리잡은 오곡도는 섬 전역에 동백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으며, 해안 곳곳에 갯바위 낚시터가 있어 낚시꾼들에게는 잘 알려진 섬이기도 하다.

우리가 가는 오곡도에는 친구 별장이 있다. 평소 낚시를 좋아하던 친구가 이곳에 낚시 와서 섬의 아름다움에 반해 조그만 섬마을의 빈집 한 채를 사서 손수 땀 흘리며 리모델링을 한 후 지기들을 불러 모아 정분을 나누는 곳이다.

오곡도에는 작은 마을과 큰 마을이 있다. 큰 마을에서 작은 마을까지는 쉬엄쉬엄 20분이면 갈 수 있고, 한창 번성기 때는 40가구 넘게 살았다고 한다. 현재 작은 마을에는 2가구 2명, 큰 마을에는 2가구 3명이 살고 있다.

배에서 내려 선착장에서 마을로 가는 길은 가파른 언덕을 오르는 것부터 시작된다. 급경사를 이룬 계단을 오르는 길이 만만치 않다. 땅을 보고 수 십 번 절을 하면 동백나무 터널이 다가와 우리를 반긴다. 동백꽃이 떨어질 즈음 이 작은 숲길은 핏빛으로 변한다. 그 때 다시 와야지.

전망 좋은 산 중턱에 자리한 친구 토담집 방문만 열면 대나무로 사이로 비진도, 한산도, 용초도, 연대도 등의 여러 섬들이 고개를 내밀고 섬을 처음 방문한 우리들에게 편히 쉬다 가라고 반겨준다.

집을 둘러싼 대밭에서 “쏴아”하는 댓잎 소리에 담긴 죽향이 온몸에 스며드니 마음이 여유롭고 평온해진다. 토담집에 낚시로 건져 올린 싱싱한 횟감으로 약주 한 잔 나눌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벌써 입에 군침이 돌고 행복해지기 시작한다. 짐을 부리자마자 선착장 방파제로 내려와 낚시를 시작한다. 섬에 오니 마음도 싱싱해진다.

 

​비가 내린 다음날 집 아침 해풍이 불자 근처 대밭에서 대나무들이 춤을 춘다. 덩달아 죽향이 울타리를 넘어 집 안으로 들어온다. 죽향을 따라 울타리 넘어 대밭으로 가니 죽순이 지천이다. 어느 기자가 쓴 요리책 ‘대밭에서 죽순을 씹다’라는 책 제목이 딱 어울리는 순간이다.

토담집을 병풍처럼 둘러싼 대나무와 동백나무, 후박나무의 푸르름과 섬 어느 곳을 둘러 봐도 막힘없이 볼 수 있는 한려수도의 빼어난 풍광에 넋을 잃는다.

다음날 작은 마을을 향해 마실을 나선다. 큰 마을에서 제일 전망이 좋은 집 앞을 지난다. 이 집은 친구 동생집이다.

큰 마을에서 작은 마을로 넘어가는 숲길은 정겨운 오솔길이다. 유유자적 한껏 여유를 부리면서 걷는다. 작은 마을 뒷편 넓은 노지에는 오곡도 특산물인 방풍이 자라고 있다. 여러해살이인 방풍은 한방의 약재로 많이 쓰이는데 중풍을 예방하고 감기와 두통, 발한과 거담 치료에 효과가 탁월하다. 그래서인지 통영시장에서 오곡도 방풍이 나오면 서로 사려고 난리가 난다.

작은 마을 뒷산에 서면 비진도가 보인다. 물이 빠지면 안 섬과 바깥 섬 2개의 섬을 금빛 해변이 아슬아슬하게 이어놓는다. 학림초등학교 동화분교가 있었던 폐교에는 명상수련원이 들어서 있다. 작은 마을은 곳곳이 폐가다. 사람들이 사는 곳보다 빈집이 더 많다. 두 마을을 이어주는 오솔길은 어제 비 먹어 촉촉하다. 이 숲길은 맑은 댓잎과 솔바람, 살랑대는 해풍으로 그득하다.

마을 언덕 너머 몽돌 밭은 오곡도의 숨겨진 비경이다. 둥글둥글한 몽돌과 모나지 않은 큰 바위들이 해변을 가득 메우고 있어 섬의 아름다움을 더한다. 한려수도 푸른 바다의 정기를 한 몸에 받는다로 핑계로 몽돌해변으로 출조하여 제법 쏠쏠하게 물고기를 건져 올린다.

여행이란 그런 것 아닐까. 일상에서 벗어나 나를 찾고 그 힘으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힘을 얻는 것.

눈길 닿는 곳 모두가 비경인 오곡도에서 2박 3일간 일탈을 마음껏 누리고 ​비움과 사색의 묘미를 즐긴 후 산양만으로 돌아가는 바다 택시에 몸을 싣는다.

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41) – Fourplay 4 (Warner, 1998)

8

퓨전 재즈 그룹 포플레이(Fourplay)의 음악을 단 하나의 장르로 규정짓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다. 재즈라고는 하나 그들의 사운드에는 깔끔하면서도 도회적인 느낌의 팝과 그루브가 넘치는 리듬 앤 블루스도 공존한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래서 어떤 이는 스무스 재즈 혹은 퓨전 재즈라고 부르지만 큰 틀에서는 그냥 컨템포러리 재즈 또는 컨템포러리 뮤직이라 일컫는다.

포플레이는 1991년 결성되었다. 첫 앨범 Fourplay는 발매하자마자 100만장이 판매되어 빌보드 컨템포러리 재즈 부문에서 1위에 올랐다. 이후 93년에 2집, 95년에 3집을 발표했고 두 앨범 역시도 연이어 백만 장 이상 판매되어 컨템포러리 재즈에서 그들의 입지를 확고히 다지게 된다.

초기 멤버로는 리더이자 키보드 주자인 밥 제임스, 베이스의 네이단 이스트, 드럼의 하비 메이슨, 기타에 리 릿나워이다. 그러나 1998년 리 릿나워가 떠나고 새로운 기타리스인 래리 칼튼이 들어왔다가 2010년 척 로업으로 바뀌었으나 2017년 작고하여 잠시 활동을 중단한 바 있다. 현재는 기타 대신 색소폰의 커크 웨일럼을 영입하여 활동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각 멤버들은 사실 포플레이라는 그룹의 멤버로서 뿐만 아니라 독자적인 활동으로서도 재즈계의 베테랑이다. 퓨전 재즈의 거장 밥 제임스는 말할 것도 없고 베이시스트 네이단 이스트는 장르를 불문한 최고의 세션맨이다. 드럼의 하비 메이슨은 허비 행콕의 앨범에도 이름을 올릴 정도로 유명한 재즈 드러머이다. 기타의 리 릿나워, 래리 칼튼 등도 마찬가지다.

특히 1998년 리 릿나워(리 리트너)가 자신이 설립한 레이블 I.e. Music을 위해 포플레이를 떠난 것은 당시로서는 제법 큰 이슈였다. 자칫 포플레이가 밴드로서의 수명을 다 하거나 프로젝트 밴드로서의 존재로 그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91년 창단 당시 멤버인 리 릿나워가 포플레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았던 까닭이다.

앨범 ‘Fourplay 4’는 리 릿나워 대신 영입한 래리 칼튼과의 첫 번째 앨범이자 포플레이의 네 번째 앨범이다. 그런 이유에서일까? 팬들은 비교적 손이 덜 가는 앨범이라고는 하나 이상하리만치 나는 이 앨범이 좋다.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래리 칼튼의 기타는 오히려 밴드에 신선함을 불어 넣었고 멤버간의 인터플레이 역시 완벽하다. 모든 곡이 다 좋지만 그중 베스트 트랙은 세 번째 트랙 Sexual Healing. 엘 드바지가 내는 하이 톤의 보컬은 ‘Sexual Healing은 역시 마빈 게이’라는 인식에서 살짝 벗어나게 만드는 청량감을 선사한다. 마빈 케이 목소리만큼의 섹시한 맛은 덜하지만 포플레이의 완벽한 연주에 더해져 도회적인 감성이 차고도 넘친다.

사실 이들이 이토록 오랫동안 인기를 얻고 있는 이유는 변치 않는 탄탄한 연주 실력 때문이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사운드에 과하지 않는 도회적인 불루지함 역시 여타 그룹은 따라올 수 없는 특징이다. 음악으로 청량감을 느끼고 싶을 때 역시도 포플레다. 특히나 이 앨범 Fourplay 4는 요즘 같은 기온의 선선한 바람이 부는 저녁에 야외 테라스에서 마시는 차가운 맥주 첫 한 모금, 바로 그 느낌의 사운드다.

 

[한성희의 작가 산책] 신영복 선생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0
½Å¿µº¹ ¼±»ý, ¾çõ±¸ ¸ñ2µ¿ ÀÚÅÿ¡¼­. °­ÀçÈÆ ¼±ÀÓ±âÀÚ khan@hani.co.kr

 
 

 

소주 ‘처음처럼’의 글씨를 쓰신 분하면 소주 애호가가 아닌 사람도 다 아는 신영복 선생님.  이 시대의 마지막 양심이라 불리는 선생님을 모신다는 흥분으로 밤잠을 설쳤습니다.

숙명여대와 육군사관학교에서 강의하시다가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20년 동안 옥살이를 하면서 쓰신 ‘감옥으로부터의 사색’과 감옥에 들어가기 전 서오릉에서 만난 소년들과의 우정을 그린 ‘청구회의 추억’을 읽으며 선생님의 따뜻한 인간미에 내 삶을 돌이켜보게 하는 거울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처음 뵌 선생님의 모습도 책의 느낌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아담한 키와 백발 섞인 머리와 안경 너머로 빛나는 눈빛이 무척 편안하고 단아했습니다.

부천시청 시의회 강당을 꽉 메운 청중들 앞에서 선생님은 독자들이 제일 궁금해 하는 감옥 이야기부터 시작하셨습니다. “일반적으로 수감자들이 감옥에 가는 것을 학교에 간다고 달리 표현하는데, 자신은 60년 동안 학교에 있었다.’고 소개하셨습니다. 1941년에 태어나 초등학교 입학 전의 7년을 제외하고 첫 20년은 학창시절과 대학 강단에 있었고 두 번째 20년은 감옥살이를 했으며, 현재의 20년은 출옥 후 다시 성공회대학 강단에 서있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제일 황금기 20년을 감옥에서 보낸 선생님에게 감옥에 얽힌 에피소드나 이야기가 많았겠지요. 감옥생활을 할 때에는 독서도 많은 제한을 받고, 집필은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던 시절이라 자신이 부모님에게 보내는 엽서를 통하여 여러 이야기를 썼던 것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란 저서의 밑거름이 되었답니다.

한 번은 직업이 목수인 사람이 감옥에 들어와 집을 그리는데 제일 먼저 주춧돌, 기둥, 지붕 순으로 그리더랍니다. 보통 우리는 지붕, 기둥 순으로 그리는데 말이지요. 그 그림을 보며 오랜 수감생활을 통해 나름대로 자신을 많이 개조했다고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왔던 자신이 부끄러웠답니다.

“하나의 나무는 잎, 줄기, 뿌리로 이루어지지만, 우리 문학은 수목형이 아닌 넝쿨식물처럼 땅으로 기어가다 뿌리는 내리는 숲으로 발전해 나가야 한다.”라고 말씀하신 선생님은 “처음으로 하늘을 나는 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는 새싹처럼, 늘 처음처럼, 언제나 새날 같이” 부천 문학이 발전해 나가길 바란다는 덕담도 잊지 않으셨습니다.

지금도 ‘청구회의 추억’을 읽을 때 마다 고인이 되신 선생님을 떠올립니다.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