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저널세상을봐

바리스타 오드리의 원미동카페 (1) – 목소리가 큰 사람들

목소리가 큰 사람들

 

 

 

오늘도 나는 귀가 따갑다.

여기 오신 손님들은 하나같이 목소리가 크다.

 

 

그야말로 내가 알고 싶지도 않고, 관심도 없는

자기 집안 얘기를 엄청 크게 떠든다.

 

소송이 어쩌구 저쩌구~

아빠가 바람이 나서 어쩌구 저쩌구~

그눔이 사기를 쳐서 어쩌구 저쩌구~

내가 죽어라 고생을 했잖아 어쩌구 저쩌구~ 등등

 

 

나는 정말 궁금하다.

저들의 이야기 전후사정이 궁금한 게 아니다.

 

왜, 홀에 빈 좌석이 많은데도 내가 있는 카운터 바로 앞 좌석에 앉았는지

그것이 궁금하다.

 

 

한창 목소리를 키우다가

“저기요, 사장님! 음악 좀 꺼주세요.”

띠옹~~~!!!

 

구석에 앉은 커플을 눈으로 가리키며, 억지 미소와 억지 친절로 나는 말한다.

“영업장이라 끌 수는 없고, 조금 줄여드릴께요.”

 

그러고는 두어 차례 더 그들은 나를 부른다.

“저기요, 사장님! 얼음물 좀 주세요!”

“저기요, 사장님! 물티슈 없어요?”

 

 

암튼 나는 “저기요~ 사장님!”을 부르면 겁이 난다.

자다가도 들릴듯한 그들의 큰 목소리는

오늘도 ‘부산행’보다 더 나의 심장을 벌떡 거리게 한다.

오드리 기자바리스타 오드리의 원미동카페 (1) – 목소리가 큰 사람들

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29) – 크레올의 자존심 시드니 베세

어떤 책들은 평소에 눈에 들어오지 않다가 팍팍한 삶이 주는 어떤 문제들에 맞닥뜨려 손을 놓고 침잠할 때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주기도 한다. 이를테면 생텍쥐페리의 <야간 비행>이 그런 류의 책이다.

작가 생텍쥐페리는 남아메리카의 우편비행사업에 참여하여 수많은 비행 임무를 수행한 뛰어난 직업 조종사였다. 문학 작품을 남긴 작가로서는 매우 특별한 경우라 하겠다. 1936년 비행 중 사고로 사하라 사막에 불시착 했다가 극적으로 살아 귀환했던 경험은 후일 <어린왕자>로서 빛을 발하게 된다. 1944년 정찰 비행을 위해 이륙한 생텍쥐페리는 다시 한 번 실종되었고 결국은 돌아오지 못했다. 독일 전투기에 의해 격추 되었을 것이라고 추정될 뿐 정확한 실종 원인은 지금까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그래서 <야간 비행>은 조종사 파비앵이 지상으로 귀환하지 못하고 영원한 비행의 세계로 떠난 것처럼 마치 생텍쥐페리의 회고록처럼 남았다.

 

 

<야간 비행>의 시대적 배경은 항공기의 야간 비행이 위험천만한 모험이었던 시절이다. 어느 날 파타고니아, 칠레, 파라과이에서 각각 우편물을 싣고 이륙한 세 항공기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착륙하기 위해 날아오고, 이들의 우편물을 인계받아 즉각 유럽으로 향할 비행기는 이륙을 준비하고 있다. 당시의 항공기들은 항속거리가 매우 짧았다. 그러므로 장거리로 운송해야했던 국제 우편의 경우 항공기에서 항공기로 이어지는 릴레이식 운송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칠레에서 이륙한 비행기는 무사히 안착했으나 파타고니아발 비행기의 조종사인 파비앵은 뜻하지 않게 사나운 태풍을 만나 추락하게 된다. 사태에 대해 동요하는 지상 직원들과는 달리 항공 우편국 책임자인 리비에르는 무심할 정도로 냉철하다. 결국 파라과이에서 출발한 세 번째 비행기가 도착하면 우편물을 옮겨 싣고 곧바로 이륙할 수 있도록 유럽행 비행기를 대기시키라고 명령하면서 소설을 끝이 난다.

작품을 읽는 ​독자들은 내내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리비에르란 인물에 대한 의문이다. 동료의 비극을 뒤로하고 비행기의 이륙을 지시하는 리비에르를 과연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리비에르에 대한 평가는 1차 세계대전 이후 허무주의의 암운이 짙게 깔려있던 1930년대의 이른바 행동주의 문학을 추구했던 생텍쥐페리를 생각해 봐야 충분한 설득력을 가진다. 실존주의 철학과도 맥이 통하는 행동주의 문학은 주어진 운명에 대항하는 인간 개개인의 내면적 투쟁이 행동 자체로 이어질 때 진정한 힘을 가질 수 있다는 데에서 출발한다.

셍텍쥐페리가 이 작품에서 표면적으로 말하고 있는 건 파비앵이 안전하게 귀환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리비에르가 내린 다음 비행기의 이륙 명령에 대한 당위성이다. 목표의 완성 여부를 떠나 인간의 멈추지 않는 행동과 실천이야말로 우리를 구원해 준다는 메시지다.

그러나 한 가지 의구심은 셍텍쥐페리가 말하고 싶었던 진짜 이야기가 혹시 리비에르가 유럽행 비행기의 이륙 명령을 내리기까지의 고뇌 그 자체가 아닐까? 하는 것이다. 개인이 삶을 희생하면서까지 이루어내야 할 그 무엇에 대한 끊임없는 의문과 질문이 책을 덮고 나서도 오랫동안 머리에서 떠나지 않기 때문이다.

 

「새벽 1시쯤 되면 그녀는 남편이 가까워졌음을 느꼈다. ‘이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을 거야.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보고 있겠지……’ 그러고는 다시 일어나 그를 위해 식사와 따뜻한 커피를 준비했다.」 (야간 비행 p84, 펭귄클래식)

파타고니아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날아오고 있는 파비앵이 안데스 산맥 인근에서 한창 태풍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을 시각, 남편의 안착을 기다리고 있던 아내 시몬 파비앵이 여느 때처럼 식사와 커피를 준비하는 장면이다. 아마도 평소처럼 비행을 마치고 귀가한 파비앵이 대하게 될 따뜻한 정경일 것이다. 고단한 비행을 마치고 아내와 함께하는 식사와 따뜻한 커피. 파비앵이 감행하는 위험천만한 야간 비행의 대가가 고작 이런 거야? 라고 폄하할 수도 있을 만큼 소박하고 조촐하다. 언급은 없지만 재즈 역시 흘러나오고 있을 것만 같은 풍경이다. 그렇다면 이 시기 재즈의 모습은 어땠을까?

<야간비행>은 1931년 발표된 작품이다. 1929년에 시작된 대공황이 1935년에 끝이 나며 빅밴드에 의한 ‘스윙 재즈’가 시작되었으니 아직은 뉴올리언스에서 시작한 초기 재즈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15 Dec 1931, Manhattan, New York, New York, USA — The view of 1931 Manhattan from the 27th floor of the River House. — Image by © CORBIS[/caption]

당시의 대표적인 재즈 뮤지션이라면 단연코 루이 암스트롱이다. 하지만 그의 그늘에 살짝 가린 면이 있으나 색소포니스트 ‘시드니 베세’(Sidney Bechet) 역시 위대한 천재 예술가의 반열에 올린다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음악적인 면에서는 괴팍하고 까다로웠지만 한편으로는 사회적 예법과 도회적인 취향을 동시에 지닌 이색적인 인물이었다. 이름에서 유추해 볼 수 있듯이 그는 프랑스 혈통의 흑인, 즉 크레올이다. 그래서일까? 1925년까지 유럽으로 건너가 1931년 귀국할 때까지 유럽에서 활동을 한 것 외에도 1949년에는 아예 프랑스로 이주하여 59년 사망할 때까지 프랑스는 물론 유럽 전역에 큰 족적을 남겼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에게는 고작 영화 Midnight In Paris의 OST에 삽입된 Si Tu Vois Ma Mere 정도로 알려져 있다.

그가 부는 색소폰의 풍부한 음색은 늘 부드럽고 따뜻하다. 그래서 비행사 남편을 위해 따뜻한 식사와 커피를 준비하던 아내가 내내 듣던 음악이었을 것만 같다. 커피는 식사와 함께하는 것이니 진하게 내린 커피에 따뜻하게 데운 우유를 충분히 부어 만든 카페 오레였을 것이다.

 

겉으로 읽혀지는 이 대목의 풍경은 너무나도 평화롭다. 그러나 비행사 남편 파비앵의 소식이 들려오기 직전의 폭풍전야와도 같은 불길한 평화로움이다. 비극적 결말이 미리 예정되어 있어서 그럴까? 이 부조화가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난 <어린 왕자>를 이성으로 읽고 <야간비행>은 가슴으로 읽는다.

 

경 성현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29) – 크레올의 자존심 시드니 베세

박수호 시인의 당신을 위한 시한편 – ‘입 속의 검은 잎’ 기형도

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혹은 시인에게 더욱 가까운 정서는 행복함이나 긍정적인 것들 보다 우울함과 부정적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단순하게 부정적이고 어둡다고만 이야기 하기에는 기형도 시의 핵심을 비켜가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기형도를 가까이했던 지인들은 평소, 그는 오히려 유쾌한 농담과 재치 넘치는 수다로 주위를 밝히는 편이었다고 회고한다. 그래서 그의 어둡고 절망적인 시를 읽었을 때 무척 당혹스러웠다고 말한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그는 말할 수 없는 아픔을 결코 들키고 싶지 않았거나, 아니면 누구도 들여다볼 수 없는 심연을 가졌던 건 아닐까, 그래서 시를 붙잡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외면과 내면의 간극이 큰 만큼 그의 고독과 외로움은 더 깊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의 시들은 유년시절의 가난, 사랑의 상실, 부조리한 현실의 폭력, 자본주의 사회의 물화物化된 인간의 모습 등을 중심으로 전개되며, 대체로 절망적인 색채를 띠고 있다. 그의 절망은 절망의 끝까지 가 본 자의 도저한 절망으로, 우리 시에서 보기 드문 풍경에 속한다. 이 시는 폭력적인 현실과 그로 인한 죽음, 공포의 삶을 고도의 상징적 표현 속에 담아내고 있다. 이 시는 분명히 알 수 없는 어떤 사건을 시적 동기로 삼고 있다. 그 해 여름, 화자가 신문에서 한번 본 적이 있는 `그’가 `그 일’이 터진 지 얼마 후 죽었다. 거센 비바람 속에 거행된 `그’의 장례식 행렬에 사람들은 악착같이 매달렸고, 많은 사람들이 무더기로 없어졌다가 나타났으며, 망자의 혀가 거리에 넘쳐흘렀다. 그리고 또 어디서 `그 일’이 터질지 아무도 모른다.

그 사건은 80년대 중·후반의 시대상황과 관련이 있다. 정치적인 억압과 사회적 통제가 알게 모르게 강화되었던 당시, 권력에 반대하는 비판 세력의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 시 속의 `그’와 없어졌다가 나타난 많은 사람들은 바로 그 세력들을 뜻한다. 그들은 저항의 결과 혹독한 고통을 당해야 했는데, 죽음과 일시적인 사라짐―투옥―이 그것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은 공포에 질린 채 침묵을 지킨다. 세계의 폭력에 그들은 굴복해 버린 것이다. `안개’와 `흰 연기’는 진실을 은폐하는 부정적인 현실을, `책’과 `검은 잎’은 관념적인 지식과 죽음의 징후들을 단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화자 역시 방관자의 한 사람이며, 먼지 낀 책을 읽는 무력한 지식인이었다. `그 일이 터졌을 때 나는 먼 지방에 있었’고, `먼지의 방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여기서 `먼 지방’과 `먼지의 방’의 발음―띄어쓰기의 차이만이 있는―과 의미―현실과 괴리된 공간으로서의―의 양면에 있어서의 유사성이 흥미롭다.

그의 죽음을 목격한 후 `나의 혀는 천천히 굳어갔으며’, `공포에 질려 나는 더듬거린다’. 할 말을 하지 못하는 `놀란 자의 침묵 앞에’ 용기 있게 실천하는 사람들은 또 다른 압박감으로 다가온다. `침묵은 하인에게 어울린다고 그는’ 비판하며, 죽은 `그 때문에’ `많은 장례식들이 숨죽여야’ 한다. 실천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에게 나약한 방관자들은 부채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들은 이중의 억압을 느끼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사람들은 죽음과 폭력을 비굴한 침묵으로 방어하는 대신, 서로에 대한 믿음을 잃고 파편화되며 방향성을 상실한다. 택시 운전사와 그를 믿지 못하는 `나’, `한번도 만난 적 없는 그’와 나는 서로 먼 거리에 있다. 그러나 더 이상 이런 상태를 지속할 수는 없다. 이제 나는 그가 누구인지, 내가 가는 곳이 어디인지 대답해야만 한다. 어디서 `그 일’이 터질지 모르지만, 예전의 `먼 지방/먼지의 방’이 아닌 `어디든지 가까운 지방’으로 가서 현실에 직접 관여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곳으로 가는 길은 순탄하지 않다. `처음 지나는 벌판과 황혼’으로 암시되는 낯설고 황량하며 어두운 현실, `내 입 속에 악착같이 매달린 검은 잎’이 뜻하는 죽음과 굴복, 타협의 징후들이 끝없이 나를 두렵게 하기 때문이다.

박 수호박수호 시인의 당신을 위한 시한편 – ‘입 속의 검은 잎’ 기형도

기형도 문학관을 다녀오며…우리 어릴 때 삶과 비슷하잖아~

“딸램, 너, 기형도를 아니?”
다짜고짜로 느닷없이 던지는 내 질문에 딸이 말했다.
“응, 알아. 시인인데, <입 속의 검은 잎>이라는 시로 유명해.”
“교과서에도 나오니?”
“아니”라고 답하는 딸은, 친구가 좋아하는 시인이고 팬이라고 했다.
“너도 좋아하니?” 다시 묻자 아니라고 짤막하게 답하는 딸을 보며, 나도 모르게 휴~ 하는 숨죽인 한숨이 나와 버렸다.
짧게 오가는 대화지만 딸의 심정을 조금이라도 알고 싶었다.

언뜻 시인에 대한 평이 조금은 어둔 부분이 있다는 얘길 듣고, 혹시 내 딸이 공감하는 어둔 부분이 있을까봐 내심 걱정 불안은 했다. 아니면 반대로, 책을 좋아하는 딸이 오히려 그동안 맏이라는 삶을 살며 숱하게 싸웠던 우리 부부로 인해 혹여나 아이들이 다칠까봐 걱정하는 나를 배려함이 깔려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난 달, 매주 만나는 만/저/봐 식구들과 광명에 위치한 <기형도 문학관>에 다녀왔다.

답사 전에 미리 읽고 오라고 올려주신 자료 <기형도>, 세 글자를 쓰윽 보고는 막연하게 도형(도)를 생각해 ‘이게 뭐지?’ 했었다. 생각이 생각을 좌우한다고, 이전에 캐드에 관심 가진 나에게 캐드의 기호와 도형을 오버랩 해 마구 섞어버린 것이다. 아무생각 없이 막연한 생각과 시인에 대한 무지에 스스로 무안미소를 보내며…

《기형도 문학관》

카툰캠퍼스에서 합승 후 출발한다기에 시간상 자차 이용이 소요시간을 줄일까하여 선택한 것이 실수였다. 차 안에서 이어지는 이사님의 2차(명)강의를 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드디어 찾아 간 기형도 문학관

반갑게 맞이해 주는 직원의 인사를 뒤로하며 기념관에 들어섰다.

주제별 테마에 맞게 일생의 기록을 중심으로 세심하게 꾸며놓은 요소요소가 발걸음을 멈칫 멈칫하게 했다. 일부는 시인과 공감되는 생활상이 있었고, 일부는 억수로 슬픈, 공감 백배되는 뼈아픈 부분도 있어 속울음을 삼켜야만 했다. 비록 작은 공간으로 느껴지지만, 내실 있고 알차게 꾸며진 <기형도 문학관>은 그 먼 나라에서 바라보며 흐뭇해하시리라.

전시장은 시인의 마음을 모은 글들로, 굵고 진하게 강조한 부분만 보더라도 마치 우리 가정생활을 그대로 그려낸 공통적인 삶이였을 거라고 느껴졌다.
또한 공감할 부분이 많음은 시대적인 삶이 비슷해서 일까. 보통 우리가 살며 느끼던 당시의 생활상을 그대로 재현한 느낌이었다. 특별하게 암울하고 어둡다는 느낌으로 보고 싶지 않았다.

그 시대로 잠시라도 빠져 들면, 시인이 전해주는 감성에서 따라 짜릿하게 전해오는 느낌은 아마도 현장 방문자만 느껴지리라

다음에 우리 아이들과 함께 방문한다면 오늘과 또 다른 느낌이 들겠다는 생각과 정성껏 꾸민 전시관 모습을 기억하며 흩어지지 않도록 머릿속에 담아 두련다.

신 용택기형도 문학관을 다녀오며…우리 어릴 때 삶과 비슷하잖아~

후니와 수기의 그들의 연애 제10화 사랑은 … 양조위, 유가령의 사랑이야기

양조위는 8살때 도박중독자인 아버지가 가족을 버리는 비극을 겪는다.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고 가난한 형편때문에 중학교를 중퇴하게 된다.

그래서 일까? 그의 눈빛이 슬픈 것은…

양조위와 비슷한 처지로 부모의 이혼으로 가난했던 동네친구가 있었다.

바로~ 주성치 였다.

( 아..귀엽다.. 주성치는 애기때부터 야무져 보이고 양조위는 참 착해 보인다)

양조위는 주성치가 보려던 배우 오디션에서 합격하고 주성치는 그 뒤에 여러번 떨어지지만, 결국 먼저 자리잡은 양조위가 이끌어줘서 주성치도 배우로 활약하게 됩니다.

(2008년 금마장 시상식에서 양조위는 ‘2046’으로 남우주연상을, 주성치는 쿵푸허슬로 작품상을 받는 흐믓한 장면~)

 

수기기자는  양조위 하면 의천도룡기를 생각하게 됩니다~ 크흑~~

어색하지만 겁나 풋풋한 양조위~  TV가이드에서 광고사진보고 뿅~ 반합니당

그러나~ 수기 기자가 중딩시절 반했을때는 이미 양조위는 연애를 시작하네요~ 크흑~

 

양조위와 유가령은 1989년부터 사귀기 시작합니다~

(풋풋하여라~ 우리나라로 치면 최수종과 하희라인가??)

 

왕가위 감독의 ‘아비정전’ 에 같이 출연하면서 더더욱 깊어지는 애정.

(수기기자 눈에는 이때 오직 장국영만 보여서… 양조위가 있는 줄 몰랐습니다..ㅠ.ㅠ 크흑~ 의천도룡기의 그 사람이 저 사람인줄 몰라봤…그래도 가장 가까이 있네요. 노란색 옷의 유가령과 검은 옷의 양조위.. )

 

그리고 유명한 사건이 일어나죠. 1990년 유가령이 삼합회에 납치당하고 양조위는 영화촬영하다가중단하고  그녀를 탈출시켜 나옵니다. 하지만 이미 많이 망가져버린 유가령.

나체사진을 찍히고 몹쓸짓을 당했다고 합니다. ㅠ.ㅠ 유가령은 그 이후로 12년동안 마음의 문을 닫는데 양조위는 그녀를 기다립니다. 그리고 2002년 결혼이야기가 나올즈음에 또 고약한 상황이 벌어집니다. 연예신문에서 유가령의 나체사진을 노출시킵니다.

(잔인한 홍콩연예신문)

하지만, 양가위는 오히려 기자회견으로 유가령에게 프로포즈를 합니다!

“ 어떤 일이 있더라도 그녀를 사랑하는 제 마음은 절대 흔들리거나 변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밝힙니다. 저 양조위는, 유가령과 결혼하겠습니다.”

그리고 2008년 그들은 행복한 결혼식을 합니다.

결혼준비는 오직 유가령이 혼자 다 했답니다~ 본인의 의지대로! 부탄에서 행복하고 조용한 결혼식을 합니다. 양조위는 그저 그녀가 원하는대로 모든 걸 맡기고요~

여담이지만, 양조위가 그 유명한 ‘색,계’ 영화를 찍었을때 ~

실연 논란이 일었던 양조위와 탕웨이의 세 번에 걸친 정사신에 대해서는 “진짜든 아니든 상관없다”며 “사람도 많고 카메라도 돌아가는데 즐길 수는 없지 않겠느냐”고 쿨(cool)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뭔가 유가령의 성격이 보인다고나 할까요…?^^;

유가령과 양조위는 아이를 갖지 않기로 했답니다.

이유는 둘다 유명해서 자신들의 아이가 유명세에 시달리기 원하지 않는다고

“아이가 뜻하지 않는 고통에 시달리게 되는 게 싫어요. 그래서 예전부터 아이는 갖지 않기로 결정했죠.”

라고 했답니다~^^

 

그리고 보너스 컷!

1998년 왕가위 감독의 ‘해피 투게더’ ~ 사진과 그 해 금마장 수상식 장면.

유가령과 장국영은 굉장히 절친이었다고 합니다. ㅠ.ㅠ

아아..장국영..ㅠ.ㅠ (최근엔 삼합회에 자살당했다는 풍문도 들리네요.. 장국영이 워낙 있는 집 아들인데다가 엘리트여서 말을 안들었다고.. 라는..)

(양조위의 수상장면과 어린애같이 기뻐하는 장국영과 그 옆 유가령)

 

박 현숙후니와 수기의 그들의 연애 제10화 사랑은 … 양조위, 유가령의 사랑이야기

장화백의 산행일기 – 경주남산

5시 알람에 겨우 일어나 나머지 배낭을 꾸리는데 마눌님께서 간단한 아침 준비를 한다.

버스를 타고 경주 남산으로 남으로 남으로 하염없이 달려간다.

문득 아내의 아침 수발에 고마움을 느꼈다.

아내가 여행갈때 거의 한번도 일어나지도 않고 언제 갔는지도 몰랐던 나였다.

그런데 아내는 과자와 간식 물 등등을 챙겨주며 낭떠러지 근처가지말고 안전하게 다녀오란다.

고맙다.

11시쯤 도착을하여 산행을 시작하는데 아까 먹은 말랑한 과자가 문제였다.

배가 뒤틀리고 금방 터질듯하다. 급히 화장실에 가서 볼일을 보는데 엄청 힘이 들었다. 20분 정도 허비하고 나오니 일행은 모두 떠나고 주차장은 휑-하다.

산 초입부터 여러 불상과 음산한 기운이 돈다. 중간쯤 올랐는데 바위와 소나무가 잘어우러져서 구도와 깊은 속경치를 감상하고 폰과 머리에 저장을 한다.

오르는 내내 바위에 새겨진 불상이 있는데 세월의 풍파에 깍여서 흔적을 잘 볼 수 없다. 그저 안내판의 설명으로 겨우 알 수 있다. 암튼 그때는 기계도 없었을텐데 석공들이 많이 고생하였겠다.

금오봉 정상에 오르니 정상석앞에서 사진을 찍느라 야단법석이다. 멀찍히 떨어져서 인증샷 몇 컷 찍고 조금 빠른길을 택하여 하산한다

1시쯤 점심식사를 할려고 처음로으로 준비한 전투식량인 비빔밥을 먹었는데 참으로 편하다. 뜨거운 물을 붓고 약 20분후 그냥 비벼서 먹으면 된다.

산중턱에 목이 없는 불상이 덩그러니 먼 산을 바라보고있다.

수묵담채로 그리다

한 참을 바라보며 별생각을 다해본다. 아들 낳을려고 떼어갔나? 아니면 머리가 무거워서 스스로 내려 놓다가 산아래로 굴러 떨어졌나? 분명 큰 절터였는데 언제 어떻게 흔적없이 사라졌는지는 전문가도 모른다고 안내판에 쓰여있다. 불상을 뒤로하고 앞을 내다보니 확트인 시야가 너무 좋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경치 좋은곳엔 어김 없이 파헤쳐져서 자연을 훼손하는것이 씁쓸하다.

4시 20분까지 버스에 타라고해서 시간이 좀 넉넉하여 물소리와 새소리가 어우러진 바위 위에서 눈을 감고 자연을 즐긴다. 나를 되돌아보며 큰 틀을 짜본다. 이렇게 건강하게 산을 다니게 하여주신 하나님께 무한 감사 기도를 한다.  

하산을 하여 버스에오니 아직1시간 정도의 시간 여유가 있어서 동네 구경을 하다가 조그만 구멍가게가 보여서 막걸리나 한 잔 하려고 들어가  막걸리 한 병과 소세지 하나를 들고 의자에 갔더니 먼저 온 산꾼 2명이 막걸리 2병을 까고 있었다. 자연스래 어울려 단숨에 1병반을 마신것  같다. 약간 얼큰하다.

아 여기까지가 좋았다~  막걸리나 맥주를 먹으면 바로 반응이와서 1시간도 안되어서 화장실을 가야하는걸 깜빡 잊었다.

출발한지 1시간쯤되니  슬슬 반응이온다.

아! 큰일났다.

차는 이미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고 휴계소까지는 1시간 정도 더가야하는데 애써 상황을 잊으려 오락게임에 집중해봐도 잠시뿐 고속도로에서 차를 세울수도 없고 정말 난처했다.

겨우 휴게소에 도착하여 시원하게 볼 일을 보았으나 버스안에서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식은땀이 흐른다. 조목조목 글쓰는것을 잘못해서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의 느낌을 써보았다.

큰 바위에 새겨진 불상과 바위사이에 뿌리를 내리고 힘찬기상을 뽐내는 소나무를 수묵담채로 그리다

장 대식장화백의 산행일기 – 경주남산

기형도를 만나다.

만저봐 기자님들과 광명에 위치한 기형도 문학관을 다녀왔다.

가벼운 마음으로 갔었는데 집으로 들어와서까지 시커먼 눈썹과 풍성한 머리카락의 그의 얼굴이 아른 거린다.

화선지에 그를 불러 낸다. 여러 모습의 그의 얼굴을 그려본다.

짧은 머리의 기타치는 모습의 그림을 그리는데 문득 그와 막걸리 한 잔 하고팠다.

그림속으로 들어가 그와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나누고 싶었다.

어려운 시기에 나와 시대상은 비슷하였으나 살아온 인생관은 180도 달랐다.

막걸리 한 잔을 따라서 그에게 권했다. 변했는지 잘도 먹는다. 대참에 서너 잔을 마시곤 여러분들이 나를 찾아주고 나의 시를 읽고 감상해 주어서 고맙고 이렇게 막걸리까지 권하며 찾아준 나에게 고맙다는 말을 여러번 되뇌인다.

“멋진 외모와 좋은 머리로 인생을 살았으나 글에 대한 갈망으로 시와 나만의 세계에서 살았었네요. 불행한 가족사와 암울한 현실을 헤쳐나갈 용기와 힘을 글에서 찾았지요.

내 몸을 휘감고 있는 지병을 나만 알고 혼자 끙끙 하기도 했지요.”

내가 물었다? 다른 학우와 같이 술도 마시고 데모도 하면서 잊어버리지 그랬어요?

그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글쎄 맘대로 생각하세요. 지금 나의 심경을 밝히면 지구의 가족과 나를 기억하는 지인들에게 혼란을 줄 것같아 여기까지만 얘기할께요.”

저를 기억해주고 제 시와 글을 읽어주셔서 너무나 감사해요.

어느덧 2대들이 막걸리가 바닥을 보인다.

주전자를 흔들며 마지막 잔을 그에게 따르고 남은 막걸리를 깨끗이 나의 잔에 붓고 잔을 부딪친다.

그리고 원샷, 앞을 보니 기형도는 가고 없다.

거기가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지구보다 멋지고 행복하게 사세요.

장 대식기형도를 만나다.

여계봉의 산정천리-(2)순백의 황산(黃山)에서 구름바다(雲海)를 건너다 1

72개의 기기묘묘한 봉우리와 24개의 계곡을 지닌 ​황산은 중국 안후이성(安徽省) 남쪽에 위치한 화강암으로 구성된 험준한 바위산으로, 당(唐)나라 때 황제의 명령으로 황산(黃山)임을 공표하고 일반인들의 출입을 통제하였다고 한다.

1990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과 문화유산에 동시에 등재된 황산은 중국 산수화의 원류이기도 하다. 이곳은 중국 10대 풍경 명승지 가운데 유일하게 산악 명승지인데, 우리나라 설악산의 약 3배쯤 되는 규모로 외형이 설악산, 금강산과 흡사해서 한국인들이 즐겨 찾는 산이기도 하다.

또한, 일 년 내내 비가 오고 구름이 끼는 날이 많아 산 정상에서 보면 마치 구름바다(雲海)처럼 보여 동서남북과 가운데로 나누어 동해, 서해, 남해, 북해, 천해라고 부른다.

황산의 5대 비경은 소나무, 기암괴석, 운해, 겨울눈, 온천이다. 사계절 내내 모두 아름답지만 그 중에서도 겨울눈과 운해가 절경이다.

황산 시내에서 출발한 버스가 경대고속도로에 올라서니 가는 눈발이 휘날린다. 기사는 황산 현지와 휴대폰으로 계속 날씨를 파악하고 있는데 황산에도 눈이 오고 있어 시계가 좋지 않을 거라고 한다. 1시간 만에 고속도로를 빠져나온 버스는 본격적으로 황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경사가 급한 산길은 눈이 쌓여 있고 눈발도 휘날려 버스기사도 조심스럽게 운전한다. 버스 속은 나지막한 탄성과 함께 얕은 긴장으로 가득하다.

황산을 오르는 데는 운곡, 태평, 옥병 케이블카 등 3군데가 있는데, 오늘 우리 일행은 황산 뒷산 쪽인 송곡암에서 태평케이블카를 타고 배운정, 비래석, 광명정 등 절경을 감상하면서 북해호텔에서 점심식사를 한 후 몽필생화, 흑호송, 시신봉을 거쳐 백아령에서 운곡케이블카를 타고 하산하는 10km 코스를 잡는다.

황산이 관광지로 급부상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개혁 개방을 이끌었던 덩샤오핑이 1979년 75세의 고령에 걸어서 황산에 오른 후 “누구나 황산에 오를 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를 하는 바람에 케이블카가 설치되고 잔도가 만들어지는 등 빠른 속도로 개발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태평케이블카 탑승장에서 금속탐지기로 휴대품 검사를 한 후 케이블카를 타고 단아역까지 올라간다.

단아역에서 내려 우측으로 가면 황산의 숨겨진 비경인 서해대협곡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24개 협곡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는데 천 길 낭떠러지를 내려다보는 비경에 감탄사가 절로 터지는 곳이다. 협곡 아래로 5km 정도 내려가면 모노레일역이 있어 5분 만에 광명정 방향으로 올라가면서 황산 속살의 비경까지 감상할 수 있다. 그러나 겨울에는 잔도가 가파르고 미끄러워 협곡으로 내려갈 수 없고, 모노레일도 운행하지 않는다.

서해대협곡 입구에는 거대한 두 개의 바위가 ‘좁은 문’처럼 버티고 있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날 수 있는 만큼만 열려 있는데, 왜 그럴까. 바위 밖에서 욕심의 체중을 감량하고 들어오라는 말없는 바위의 경책인 성 싶다.

하지만 자연이 주는 보상인가. 그동안 짙은 운무와 눈발로 가려졌던 계곡의 시계가 서서히 열리기 시작하면서 일행들로부터 탄성이 터져 나온다.

황산은 인간 세상에 있는 신선계의 풍경(人間仙境)이라고 불릴 만큼 수려한 경관을 자랑한다. 신비한 봉우리와 서해 대협곡의 아찔한 비경을 보고 숱한 시인과 묵객들이 시와 그림을 남긴다.

 

– 다음편에 계속 –

여 계봉여계봉의 산정천리-(2)순백의 황산(黃山)에서 구름바다(雲海)를 건너다 1

나에게 기형도란? ‘무력감’을 이겨낸 승자이다.

처음만난건..

21살인  5월에 난 책을 한 권 선물 받았다. 그 책이 바로 입속의 검은 잎 기형도 시집이다.

생일도 아니고 특별한 뭔가 이슈가 있는게 아닌데 같은과 언니가 뜬금없이 내 책상위에 올려주었다. 선물이라면서..

지금 그 언니를 생각해 보면 송곳같이 예리한 그 언니만의 화법이 있었다. 약간은 공격적이면서 너무 뚫어 보는거 같아서 술자리때마다 누군가와 언쟁을 했던거 같은..

감정에 크게 동요되지 않는듯 표정으로는 기분을 알기가 어려운 사람이었다.

나랑 많은 대화를 하던 사이도 아니고 그냥 적당한 거리감을 갖고 있던 그 언니가 준 선물이다.

표지를 넘기니 내게 전한 메모가 있었다.

안아주고 싶은 아이? 내가? 그간 알고 있던 언니와 너무 다른 부드러움과 다정함이 넘치는 메모에 가볍게 대답을 하기에는 먹먹함이 앞섰던거 같다.

1996년 그렇게 만난 ‘기형도’이다. 메모가 전해줬던 먹먹한 감정으로 이 책의 페이지를 열었을때 처음 만난건 ‘차례’ 앞페이지에 적혀있는 1988.11 詩作  메모이다.

기.형.도 이름 석자 보다도 시들이 전해주는 울림보다 난 이 메모에 한참을 꽂혀 있었다.

글로 읽히는게 아니라 한 문장문장, 다시 단어 하나하나를 뜯어서 각각을 다시금 생각해보게하는 그래야 조금이나마 그 이해를 더 할 수 있을 것 같은 지금 내 생각의 깊이로는 이해할 수 없는 한없이 내가 작아지는거 같은 말들이었다.

무책임한 자연의 비유를 경계하느라 거리에서 시를 만들었다. / 가장 위대한 잠언은 자연속에 있음을  / 믿음이 언제가 나를 부를 것이다. / 나는 따라갈 준비가 되어있다.

21살 그때는 분명 그랬다.

안되겠다. 이건 너무 어렵다고 생각하며 책을 덮었을때 다시 눈에 들어온건.. 뒷표지. 또 시인이 전하는 詩作 메모(1988.11) 였다.

오랫동안 글을 쓰지 못했던 때가 있었다. 이 땅의 날씨가 나빴고 나는 그 날씨를 견디지 못했다. 그때도 거리는 있었고 자동차는 지나갔다. 가을에는 퇴근길에 커피도 마셨으며 눈이 오는 종로에서 친구를 만나기도 했다. 그러나 시를 쓰지 못했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들은 형식을 찾지 못한 채 대부분 공중에 흩어졌다. 적어도 내게 있어 글을 쓰지 못하는 무력감 육체에 가장 큰 적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나는 그 때 알았다.

그때 눈이 몹시 내렸다. 눈은 하늘 높은 곳에서 지상으로 곤두박질쳤다. 그러나 지상은 눈을 받아주지 않았다. 대지 위에 닿을 듯하던 눈발은 바람의 세찬 거부에 떠밀려 다시 공중으로 날아갔다. 하늘과 지상 어느 곳에서도 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처럼 쓸쓸한 밤눈들이 언젠가는 지상에 내려앉을 것임을 안다.

바람이 그치고 쩡쩡 얼었던 사나운 밤이 물러가면 눈은 또 다른 세상 위에 눈물이 되어 스밀 것임을 나는 믿는다. 그 때까지 어떠한 죽음도 눈에 접근하지 못할 것이다.

<기형도, 詩作  메모(1988.11)>

 

극작을 전공하는 21살 학생인 나에게 ‘글을 쓰지 못하는 무력감’이라는 말이 눈에 꽂히는건 당연한 것일 수도 있지만 이 시집을 다시 펼쳐볼 수 있는 용기를 주는 말이기도 했다.

내 두손에 지금 이 책이 있다는건 그렇다면 어찌되었든 그 글울 쓰지 못하는 시간의 무력감을 이겨냈다는 증거이니까..

그 증거를 앞에 두고 다시 보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인연이 이렇게 시작되었다.

‘글을 쓰지 못하는 무력감’, 무력감이란?

 

기형도를 이해하고 싶어 ‘무력감’ 이란 단어를 하나씩 찾아가다보니

에리히 프롬의 인터뷰 끝맺음 글을 보면서 어쩜 내가 궁금한 답을 여기서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게 되었다.

 

에리히 프롬 사회심리학자 [ Erich Fromm] 1900.3.23. ~ 1980.3.18

“스스로 완전히 타인이었던 사람만이 타인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  저자 에리히 프롬 | 나무생각

여전히 놀라운 현실성과 예리한 통찰

국내에 미발표된 에리히 프롬의 책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 에리히 프롬 진짜 삶을 말하다》는 에리히 프롬이 1930년대부터 쓴 강연록, 논문, 저서의 글을 모은 책이다. 심리적 역학에서 사회적 발전을 일찍부터 알아보았던 프롬의 업적을 확인할 수 있는 힘 있는 작품들을 에리히 프롬의 마지막 조교이자 정신과 전문의인 라이너 풍크가 엮었다.

에리히 프롬은 이 글들을 통해 현대인들에게 진짜 삶에 도전하라고 격려한다.

우리는 왜  무기력함을 느끼나?

이 책에서 가장 집중적으로 얘기하는 것은 왜 우리가 무기력함을 느끼는 그 근원을 찾는 것이다.

원인을 알아야 해결책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에리히 프롬은 우선 우리가 ‘나’ 자신에 대해 모른다’고 말한다.

무기력함은 꼭 축-쳐진 상태가 아닌 오히려 분주하게 생활하고 미래에 어떤 낙관적인 희망을 가지고 있을 때에도 발현될수도 있다.

현대교육은 그 전체가 아이에게 갈등의 경험을 덜어주는 것이 목적이다. 모든 것을 수월하게 해주고 아이를 정성껏 보살피지만 갈등은 해로운것이기에 피해야 한다는 생각은 일반적으로 널리 퍼진 오류다. 사실은 그 반대다. 갈등은 감탄의 원천이며 자신의 힘과 흔히 ‘성격’이라 부르는 것을 개발하는 원천이다.

에리히 프롬은 무기력함을 이겨낸다는건…

 

결국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 세상의 모든 것에 감탄하는 능력
  • 지금 현재 삶에 집중할 수 있는 힘
  • 스스로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는 자아 경험 능력
  • 마지막으로 갈등을 피하지않고 받아들이는 힘이라고 얘기했다.

‘글을 쓰지 못하는 무력감’을 기형도는 어떻게 이겨 냈을까?

 

어느 순간 짠~하고 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하루 하루 단어 하나하나 채워가는 시간에 마음과 몸을 채우고 있던 많은 문제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시간을 통해서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사이에  198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안개’ 당선의 기쁨을 맞으며 더 견고하게 글을 쓸수 있게 되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상식 후 가족과 함께(1985) 출처: ⓒ문학과지성사

시 ‘안개’의 배경이 되었던 안양천변 방죽.388번 종점 근처에서 바라본 풍경. 출처: ⓒ문학과지성사

시 ‘안개’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

2019년 다시 만나는 ‘기형도’는 오랜 시간을 사이에 둔 만큼 많은 다름으로 전해졌다.

책을 다시펼쳐보며 별책부록처럼 소환된 1996년의 21살의 나는 따뜻한 공감과 위로가 필요했다.

그걸 나 스스로도  지금이 되서야 알겠는데 그 시기에 나를 읽어준 언니에게 고맙다.  

추유선나에게 기형도란? ‘무력감’을 이겨낸 승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