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저널세상을봐

신천댁네 새끼돼지~

황금돼지해를 맞이하여 모두 복 많이 받으세요.

 

설이나 추석 연휴때면 엄마가 어려웠던 시집살이 이야기와 장남인 나의 어린시절 개구쟁이 짓을 종종 이야기해 주셨다.
4살때부터 장난과 호기심으로 똘똘뭉친 나는 동네 골목대장이었다. 또래 친구들을 데리고 하루종일 사고만 치고 다녔다.
4살때라 나는 생각이 나지 않는데 엄마는 어제 일 같이 생생하게 기억하며 이야기하신다.
그날도 동네어른들은 모두 들로 논으로 일하러 가시고 온동내는 조용한데 호기심에 낳은지 얼마되지도 않은 우리옆집 신천댁내 새끼돼지를
친구들과 약 5마리를 새끼줄로 줄줄이 묶어서 끌고 다니며 도랑에 가서 목욕도 시키고 달리기도 하며 신나게 놀다가 점심때가 되자 친구들과 헤어져서 집으로 갔다.
그런데 밥먹을 생각에 새끼돼지는 도랑에 그대로 두고 와버린것이다.
들에서 일하고 집으로 온 신천댁이 난리가 났다.
새끼돼지가 모두 없어졌다고 온동네를 찾아다니다가 4마리는 찾고 1마리는 결국 못찾았다.
결국 대식이가 몰고 나갔다고 동네사람들의 증언해서 우리집에 찾아와서 한바탕 난리를 치고 갔다.
그날 아무것도 모르고 놀다가 집으로 들어갔는데 봉당에서 저녁을 드시던 아버님께서 나를 바짝 쳐들고 마당 한구석의 거름덩이에 내동댕이 쳤다고 엄마가 이야기하셨다.
엄마께서 놀라서 얼른 나를 데리러 가려는데…
거름덩이에 떨어지자 말자 벌떡 일어나더니 동구밖으로 총알같이 도망 가버렸다고 하셨다.
그날 저녁 나는 집에도 못들어가고 한동네에 같이 살았던 삼촌집 헛간에서 자고 아침에 몰래 집에 들어갔다.
밤새 걱정하셨던 엄마는 나를 반겨주시며 한마디 하셨단다.
저녁에 잊어버렸던 새끼돼지 한마리가 집을 찾아왔단다. 그러던가 말던가… 나는 어제일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아침을 먹자 마자 동네 친구들과 새끼줄로 무장하고 미루나무에 달려있던 말벌 잡으러 씩씩하게 나갔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도 참 개구쟁이였던것 같다.


설이 다가오는데 이젠 엄마의 옛 이야기를 들을수가 없구나.
하늘나라에 계신 엄마가 그립다.

장 대식신천댁네 새끼돼지~

장화백의 2018년을 돌아보며…

카툰캠퍼스와 인연을 맺고 만저봐 기자님들과 같이한 시간이 어언 1년이란 세윌이 흘렀다.
학교 졸업하고 책과 공부와는 담을쌓고 지냈었는데 만화진흥원에서 이사님과 고구마 작가님 마법의 손을 가진 염실장님 그리고 모두를 아우르는 조대표님 저를 새로운 세계로 나오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만저봐 기자님들 부족한 저를 받아주시고 이끌어 주어서 감사합니다.
세상을 살면서 특별한 상도 받아보지 못했고 특히 제가 상을 줘보지도 못했습니다.
저에게 새로운 삶의 길을 열어주신 카툰캠퍼스 식구들과 만저봐 기자님들께 나름 심혈을 기울여 그린 그림으로 상을 대신 할께요~

조희윤 대표님, 카리스마 넘치는 파워로 모두를 이끌어 주시고 저에게 새로운 힘을주어서 감사.


이원영 이사님, 원시시대에 머물던 저를 4차원 세계로 이끌어주어서 감사.

고구마 작가님, 한국화에 카툰을 접목 할 수 있게 아이디어를 주어서 감사.

염실장님, 저를 책속에서 살아 움직이게 만들어 주어서 감사.


한성희 국장님, 포근한 누님같은 사랑으로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어서 감사.


정정숙 부국장님, 바쁘신 가운데도 우리모두에게 활기찬
웃음을 주시고 모델같이 멋진 패션을 창조하심에 감사.

오드리 기자님, 오나시스 재키같은 외모와 파워플함으로 가정과 일을 병행함을 보고 배움에 감사.


신용택 기자님, 봉사와 봉사를 하심을 보고 저도 나 말고 다른 사람을 위하여 봉사를 생각하고 나자신을 반성하게 하여서 감사.


전지훈기자님, 항상 생각지도 않은 아이디어를 얻게 해주시고 같이 할동한다는 것만으로 글로벌한 마인드를 심어주어서 큰꿈을 가집니다 감사.


박현숙기자님, 부천댁 필명에서 풍기듯이 푸근하시고 무한긍정의 따뜻한 미소가 항상 저에게 기쁨과 너그러운 미소를 가지게 하여서 감사.

서보영 기자님, 항상 상큼하고 밝은 미소로 톡톡튀는 한 줄 영어를 가르쳐 주어서 고마웠고 우리 만저봐 기자님들의 평균 나이를 팍 낮춰 주어서 감사합니다.
큰 꿈을 펼치고 건강하게 아름답고 멋진 삶을 사시고 앞으로도 함께 즐겁게 좋은글 부탁드립니다.


추유선 기자님, 뭔가 큰힘을 가지신것 같아서 기대가 무궁무진 합니다.


마지막으로 세상에서 이렇게 행복하게 제가 하고 싶은 그림 맘껏 그리게 건강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장 대식장화백의 2018년을 돌아보며…

김수박의 손그림 에세이 (19) “빈 땅에 기쁨”

자취하던 서울의 한 동네에 재개발이 결정되자
철거가 시작되었다.

집들이 하나씩 없어지고 그곳은 빈 땅이 되었다.
할머니들은 빈 땅을 그냥 놔두지 않았다.
상추와 깻잎, 파와 오이를 심더니 그것들이 자라자 나누어 먹었다.
젊은 나는 라면을 끓이거나 친구들과 삼겹살을 구워 먹을 때
파나 상추를 조금 훔쳐 먹은 게 사실이다. ㅡㅡ;;

어느날 내 집을 노크한 옆집 할머니께서 배추 두 포기를 주고 가셨다.
밭일이라곤 할 줄 몰랐기에 어찌하나 고민하다가
어머니가 보내주신 반찬들을 나누어서 갖다드렸다.
아직도 ‘오고 가는 기쁨’이 어색하지만,
그것이 기쁨임에는 틀림없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빈 땅들이
살아있는 초록으로 메워지던 모습은
하나의 설렘이었다.

얼마 후엔 나도 동네를 떠났고,
나중에 그곳은 당연히 네모난 아파트로 메워졌다.

수박 김김수박의 손그림 에세이 (19) “빈 땅에 기쁨”

행복하면 돼지~

1월부터 부천시에서 주관하는 ‘책 쓰기 지도자 양성과정’을 듣게 되었다. 새로운 출발이다.

내겐 배움의 욕심이 많은 가보다. 글쓰기를 좋아해 문예창작을 전공하고 대학원 진학을 진지하게 고민했던 적이 있었다. 아이들은 적극 지원했지만 경제적 부담으로 포기했다. 하지만 배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사회복지와 상담심리학을 공부했다. 혹시나 하는, 앞으로의 생계를 위한 보험 같은 거였다. 하지만 끝까지 가지 못했다. 졸업 한 학기를 남겨 놓고 포기하고 말았다. 공부에 대한 지독한 스트레스로 몸이 망가져버려서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해야 능률이 오른다는 걸 뼈아프게 체험한 순간이었다. 설상가상 갱년기까지 겹쳐 삶의 의욕이 시나브로 빠져나갔다. 집에만 있으면 우울증이 심해질까 봐 이런저런 활동을 했지만 즐겁지 않았다. 참 이상했다. 의욕을 가지고 열심히 하려 해도 내 맘을 내가 컨트롤할 수 없었다. 고1 때 한 맹장수술(충수염)을 시작으로 암, 대장, 담낭 등 몇 번의 수술로 건강 염려증도 생겨버렸다. 부르시면 언제라도 가겠다고, 마음을 비웠지만 빈말이라도 내가 없으면 자기도 따라가겠다는 남편의 위로가 살아갈 힘이 되었다.

2년 전 카툰에서 실시하는 시민만화기자단 수업을 듣게 되었다. 9개월간의 교육을 수료하고 ‘만저봐(만화저널 세상을 봐)’ 기자로 거듭났다. 처음엔 그냥 그냥 그랬다. 뭘 해야 할지 확실한 주제도 없이 우왕좌왕했다. 하지만 2년이 흐른 지금 체계가 잡히고 점점 의욕이 생기고 삶이 즐거워지고 있다. 이제 ‘만저봐’는 내 힐링의 공간이 되었다.

책 쓰기 지도자 과정도 그러리라 생각한다. 36주의 심화과정을 거치고 나면 뭔가 달라진 내가 되어 있을 것 같다. 만저봐 처럼….

‘돈 같은 보상보다 자기만족을 위해 일해야 성과가 더 좋다.’ 신문에서 우연히 읽게 된 글귀인데 내 마음에 쏙 든다. 보수 같은 외부적 보상과 상관없이 자신의 흥미나 만족감을 위하여 일할 때 더 즐겁고 성과도 좋다는 것은 내 평생의 체험으로 잘 안다. 이제까지 돈을 위해 일해본 적은 학교 졸업 후 1년이 전부다. 결혼과 함께 전업주부로 30년을 넘게 살았다. 그렇다고 집에서 무위도식한 건 아니다. 끊임없이 배우고, 봉사하며 활발하게 살았다. 보수가 없었을 뿐이다. 남편은 그런 노력으로 생활전선에 뛰어들었으면 자기보다 연봉이 훨씬 많았을 거라고 농담을 해댔다.

동양철학을 공부한 지인이 내 사주를 봐준 적이 있는데 ‘아름다운 정원에 잘 가꾸어진 작은 나무’라 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보여질 때 행복하단다.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언변이 좋거나 특출나게 잘나지 못해 사람들 앞에 나서진 못하지만 혼자 있는 것보다는 여럿이 함께할 때 즐겁고 생기가 돈다.

이제 나쁜 기운은 다 떨쳐버리고 올해는 일상이 즐겁고 에너지가 넘치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내재적 동기에 따라 새롭게 시작하는 작은 도전을 위하여~~~ 힘차게 파이팅이다!!!

한 성희행복하면 돼지~

<한성희의 작가 산책> 시인 천양희의 『시의 숲을 거닐다』

 

돌아오지 않기 위해 혼자
떠나 본 적이 있는가

새벽 강에 나가 홀로
울어 본 적이 있는가

늦은 것이 있다고
후회해 본 적이 있는가

한 잎 낙엽같이
버림받은 기분에 젖은 적이 있는가

바람속에 오래
서 있어 본 적이 있는가

한 사람을 나보다
더 사랑한 적이 있는가

증오보다 사랑이
조금 더 아프다고 말한 적이 있는가
그런 날이 있는가

가을은 눈으로 보지 않고
마음으로 보는것
보라
추억을 통해 우리는 지나간다

  • 천양희, 오래된 가을

 

 

시인에게 전화를 드렸습니다. 어렵게 강연을 부탁하자 그녀는 선뜻 수락하셨습니다. 건강은 좋지 않지만 노력해 보겠다면서요.

그녀의 건강이 좋아 지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쓴 여러 권의 시집과 최근 출간한 ‘천양희의 시의 숲을 거닐다’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문학나들이에서 만난 그녀는 시 만큼이나 감성적이고 우아했습니다.

1942년 부산의 부유한 가정에서 출생한 그녀는 이화여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1965년 박두진 선생님의 추천으로〈현대문학〉으로 등단했습니다. 하지만 그 후 1980년까지 시집을 한 권도 내지 못하고 작품도 발표하지 않고 문단활동도 하지 않으며 숨어 살았답니다. 그 공백기는 이혼 이후 의상실을 운영하며 지낸 고통의 시간이었습니다.

세 번씩이나 걸린 결핵에 심장병까지 겹친 냉혹한 현실 앞에 몇 번이나 죽기를 시도하고 현실적 어려움과 정신적 갈등으로 좌절해야 했던 참혹한 시기였답니다. 하지만 그녀는 무작정 견디기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녀의 표현대로 ‘숨어서 피는 꽃’처럼 꾸준히 시를 써왔답니다.

죽기 위해 찾아간 고창 선운사 직소폭포에서 오히려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고 시를 하나 건져 오기도 했습니다. 처절한 고통과 절망을 딛고 시적 성숙을 이룩한 그녀는 시인은 ‘무엇을 쓸 것인가’ 보다 ‘어떻게 쓸 것인가’가 더 중요하답니다. 경험과 상상력과 새로운 인식이나 발견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자기만의 체험이 시의 씨앗이 되게 하라고 했습니다.

20년의 긴 공백 기간을 깬 그녀는 그 후  ‘신이 우리에게 묻는다면’, ‘오래된 골목’,  ‘사람 그리운 도시’,  ‘너무 많은 입’, ‘마음의 수수밭’ 등 주옥같은 시를 발표했습니다.

‘문학의 숲에서 하루를 너끈히 보낼 그대여, 이제는 바람 속에 얼굴을 묻고 울지 말기를, 어떻게 살지 하며 묵은 울음을 참던 친구여, 이제는 문학의 숲에서 시의 세례를 받으며 하루를 시작하기를… ’ 

한 달 내내 그녀의 시의 숲을 거닐며 마냥 행복했습니다.

한 성희<한성희의 작가 산책> 시인 천양희의 『시의 숲을 거닐다』

2019년은 설렘을 맞이하면 돼지!

미니멀리즘 열풍이 불기 한참 전이었던 2011년 경이다. 우연히 100개의 물건으로 1년을 살아낸 경험담을 엮은 책을 소개한 기사를 접했다. 데이브 브루노의 ‘100개 만으로 살아보기’란 책이었다.

데이브 브루노의 ‘도전 100개로 살기’ 책. 미니멀리즘의 풀뿌리 운동을 일으켰다

 

수없는 이사를 거치며 깨지고 망가지는 것들에 속상할 때마다 물건에 종속된 기분이 들어 답답함을 느끼곤 하던 차였다. 영감과 용기를 얻었다. 끈끈하게 달라붙는 미련을 떨치고 한 달 동안 상당히 많은 물건을 처분했다.

데이브 브루노의 책을 만난 그 해 일본은 동일본 대지진을 겪으며 큰 충격을 받았다. 인간의 무력함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재해 앞에 많은 일본인들이 삶에 대해 되돌아보게 됐다고 한다.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경험을 통해 소유물에 대해 집착하는 것이 무의미함을 깨닫는 계기가 된 것이다. 일본은 그 이후 실제로 결혼과 출산이 늘었고 동시에 미니멀리즘의 열풍을 경험하게 된다.

한국도 웰빙과 웰다잉, 에코 리빙을 표방하는 요즘, 미니멀리즘의 기세는 수그러들지 않는 것 같다. 일하면서 쌓이는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무언가를 사고 그러한 소비를 유지하기 위해 여유도 없이 일해야 하는 삶에 과감히 작별을 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늘고 있다. 한때 몰아쳤던 제주도 이민 열풍과 한달살이 열풍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 책과 방송과 기사와 각종 SNS를 통해 단순하게 사는 삶을 소개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그 가운데 또다시 눈길을 끌었던 책이 생겼다. 정리전문가로 일하는 일본의 곤도 마리에라는 작가다. 여러 권의 책을 냈고 정리를 어려워하는 이들을 돕고 있다. 이 작가의 정리 철칙은 ‘설레지 않으면 버리라’는 것이다.

이 문구는 어느 순간 또다시 돌아보는 계기를 만들어 줬다. 이 모든 것은 결국 삶에 좀 더 집중하고 중요하지 않은 것들을 쳐내는 과정이어야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정리 그 자체에 집착하고 만 것이다. 어쩌다 보니 꼭 필요한 것은 버리고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남기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때로 미니멀리즘 관련 책자에서 언급된 브랜드의 물건이란 이유로 필요도 없는 물건을 구매하는 정말 쓸데없는 소비도 했다.

위대한 종교와 사상들은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우는 것을 설파한다. 그리하여 자주 잊어버리지만 알고 있다. 물건을 사는 것으로 허전한 마음을 채울 수 없다는 걸. 방안에 쌓인 택배 박스가 주는 흥분은 며칠도 못 가 사그라들기 마련이다.

요트로 세계일주를 한 이에게서 들은 말이 있다. 배를 사면 이틀이 가장 행복한데 바로 산 날과 파는 날이라고. 깔깔 웃으며 지나갔던 말이 지금 또다시 생각하게 한다.

21세기는 물건이 아닌 가치와 경험을 소비하는 세대가 떠오른다고도 한다. 어쩌다 보니 또다시 쌓이는 물건에 더이상 치이지 않기로 마음을 다잡는다. 2019년 한 해는 정말 손에서 놓아야 할 것은 붙들고 있고, 놓지 말아야 할 것은 놓아 버리는 것을 멈춰야겠다. 그리고 한 해동안 설렘에 집중하려 한다. 나에게 설렘을 주는 것, 주는 일, 주는 사람, 주는 경험에 집중하고 싶다. 설렘으로 가득한 삶. 그 얼마나 멋진가. 인생은 다른 일에 매어 있기에는 너무나 짧다. 하고 싶었던 가슴 설레는 일을 시작하고 설레는 사람들을 만나 설레는 시간을 보내려 한다. 그리하여 즐겁고 설레는 기해년이면 돼지. 그렇지 아니한가?

후니2019년은 설렘을 맞이하면 돼지!

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25) – 재즈의 시대

“오히려 유럽으로 수입된 흑인음악과 춤이 더 위험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음악은 유럽의 문화 인구 전체를 정말 열광이라 할 정도로 완전히 끌어들였어요. 흑인들이 자신들의 물신들 주위를 돌며 춤을 출 때와 같은 몸짓의 끊임없는 반복이나 재즈 밴드들의 절분 된 리듬의 계속되는 소리가 아무런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갖지 않는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수백만의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대단히 광범위한 현상이에요. (중략) 나는 그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그가 더 이상 재즈를 들으며 커피를 마시는 일을 그만 둘 수 없으며 앞으로 그는 자신의 핏속에 있는 흑인의 색소를 잡아내기 위해 거울 안에 있는 자신을 보다 가까이 들여다 볼 것이라고 짐작합니다.” <감옥에서 보낸 편지> (안토니오 그람시, 민음사 168p)

20세기 가장 위대한 사상가 중의 한사람이자 파시즘에 대항한 영혼의 승리자이며 위험한 지식이라고도 일컫는 이탈리아 공산당 창시자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가 1928년 2월 20일 밀라노의 감옥에서 자신을 헌신적으로 뒷바라지 해 주었던 처형 타니아에게 보낸 편지 내용 일부다.

1891년 이탈리아의 사르데냐에서 태어난 그람시는 어린 시절 사고로 등이 굽는 장애를 얻었고 성년이 된 이후에도 크고 작은 병치레를 겪으며 결국 토리노 대학을 중퇴하게 된다. 그럼에도 1921년 이탈리아 공산당을 창당하고 1926년 1월 공산당 총서기에 선출되었으나 그해 11월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정권에 체포되어 20년의 형을 받고 수감된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당시 그람시에게 내려진 판결은 ‘20년 동안 저 사람의 두뇌가 활동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결국 형기를 다 채우지도 못한 채 1937년 생애를 마치게 되지만 감옥에서 보낸 10년 동안 노트 30여권에 이르는 많은 글을 남긴다. 그 중 <옥중 수고>와 <감옥에서 보낸 편지>는 그가 남긴 최고의 지적 결과물이다.

<옥중 수고>에는 마르크스 사상의 계보를 잇는 그람시답게 ‘헤게모니’와 ‘진지전’과 같은 정치적 개념과 철학, 역사, 문화에 걸친 방대한 내용을 담았다. 반면 <감옥에서 보낸 편지>는 당시 이탈리아의 정치 현실과 감옥 내에서의 개인적인 고통, 가족들에 대한 염려와 불안 등이 주 내용이다. 그람시의 개인적 면모를 알 수 있는 저작이다. 게다가 이탈리아 문학상까지 수상할 정도로 아름답고 명료한 문체로도 유명하다.

그람시는 편지에서 행상인이 파는 중국풍의 장신구를 이단시하여 유럽이 아시아화(化) 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는 한 복음주의자를 조롱한다. 아시아화(불교에 의한 우상숭배 신앙)를 걱정하면서도 정작 재즈(커피를 포함하여)의 급속한 전파로 인한 흑인화(최소한 혼혈아 단계)는 간과하고 있다며 놀리는 것이다. 커피는 이미 대중화 된지 오래되어 그다지 흥미로울 것이 없으나 재즈에 관한 언급은 의외다. 더욱이 그람시는 ‘춤을 출 때와 같은 몸짓의 끊임없는 반복’이나 ‘절분 된 리듬의 계속되는 소리’등으로 재즈의 특징을 설명하고 있다. 재즈의 ‘블루스’적인 요소와 ‘스윙’의 개념을 정확히 알고 있다는 뜻이다.

평생 자본주의를 경계하여 그 반대편에 서 있었던 그람시에게 조차 재즈와 커피는 우려의 대상이 아닌 민중이 누려야 할 최소한의 가치였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당시에 그람시가 들었던 재즈는 과연 어떤 형태였을까?

1900년대 초에 미국 남부 뉴올리언즈에서 탄생한 재즈는 1920년 중반부터 미시시피 강을 거슬러 올라가 대공황 직전인 1929년까지 ‘재즈의 시대’라고도 일컫는 시카고 시대를 보낸다. 우리가 알고 있는 스콧 피츠제랄드(F. Scott Fitzgerald)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의 배경이 되는 바로 그 시대다. 그람시가 감옥에서 편지를 쓴 시기와 정확히 일치한다. 놀랍게도 재즈가 본토인 미국과 유럽의 변방 이탈리아에서 거의 동시에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이다.

이 시기 대표적인 재즈 아티스트는 단연코 루이 암스트롱이다. 그는 재즈의 대중화 작업에 가장 큰 역할을 했고 솔로 연주와 보컬의 스타일을 정형화 시킨 인물이다. 재즈의 역사에서 그의 이름을 쓰지 않고는 단 한 줄도 이어나갈 수 없다. 한마디로 그의 생애가 바로 재즈의 역사 그 자체다.

1971년 세상을 떠나기까지 전 생애에 걸쳐 발표한 수많은 연주와 앨범은 어느 것 하나 빼놓을 것 없이 좋다. 그 중에서도 나는 1920년대 후반의 연주를 가장 좋아한다. 안토니오 그람시가 수감되어 편지를 쓰던 바로 그 시기다. 비록 소수의 애호가들만 즐기는 초기 재즈지만 루이 암스트롱의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넘치던 풋풋했던 시절의 연주답다. 블루스의 깊은 감성과 스윙의 경쾌함을 모두 품고 있다. 가장 순수한 모습의 재즈다.

성현 경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25) – 재즈의 시대

2019년 ‘비밀’을 풀기 위해 ‘고마움 돌멩이’ 하나 주머니 속에 품으면 돼~~~지!!

작은 행동일지 모르지 작은 마음의 씨앗 

얼마나 결과 내게 돌아올지 지금부터 설렌다.

 

  1.  감정은 대단히 중요하다.  감정은 우리가 뭘 생각하는지 알게 해주는 멋진 선물이다.
  2.  기분이 좋으면 동시에 부정적인 생각을 할 수 없다. 기분이 좋다면 좋은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3.  기분이 좋은 순간을 포착하고 그 순간을 최대한 활용하자. 기분이 좋을때 ‘좋은 일을 더 많이 끌어당기고 있음’을 꼭 기억하자.
  4.  내가 무얼 생각하는지 알게 해 주려고 ‘우주’가 보내는 신호가 바로 ‘감정’ 이다.
  5.  사랑이라는 가장 높은 주파수의 파장을 위해서 더 큰 사랑을 느끼고 내뿜을수록, 더 큰 힘을 이용할 수 있다.

 

시크릿 책을 읽고 난 다섯가지를 내 삶에 안착하고 싶어서, 2019년가지 행동을 결심했다.

 

추유선2019년 ‘비밀’을 풀기 위해 ‘고마움 돌멩이’ 하나 주머니 속에 품으면 돼~~~지!!

김수박의 손그림 에세이 (18) “좋은사람”

언젠가 그는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라고 물었다.
나는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을 찾아 나섰다.
그는 아버지와 나라는 노래에서 진솔한 마음을 읊조렸고,
나로 하여금 무뚝뚝해서 미운 아버지를 끌어안게 했다.
나는 일상으로의 초대라는 노래가 좋았는데,
‘해가 저물면 둘이 나란히 지친 몸을 서로에 기댈’ 아내를 나는 만났다.
이란 호칭이 잘 어울리는 사람.
해철이 형.

그는 멈추지 않고 사람들을 더 새롭게 했고,
가만히 있지 않음으로써 사람들을 더 자유롭게 했다.
왜 좋은 사람이 먼저 가느냐는 물음이 자꾸 맴돈다.

그의 노래는 오래 남아 사람들을 더 새롭고 자유롭게 만든다.
무엇보다 그는 좋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수박 김김수박의 손그림 에세이 (18) “좋은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