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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20) – ‘Gogol’

지금은 문을 닫았지만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 우측 담장을 끼고 들어가면 골목 초입에 ‘카페 코’라는 아담한 카페가 하나 있었다. 사연은 모르겠으나 문을 닫은 지 벌써 몇 년은 된 것 같다. 향미가 좋은 스페셜티 원두를 융 드립(Flannel Drip)으로 맛볼 수 있었던 흔치 않은 카페였다. 그리 크지 않은 장소였음에도 프라이버시를 지킬 수 있도록 세심하게 공간을 배치했고 발을 디딜 때마다 자갈 소리가 정겨웠던 야외 테라스를 겸한 조그만 마당을 가지고 있었다. 운이 좋은 날이면 지붕에서 노니는 고양이를 마당 테이블에 앉아 볼 수 있었으니 한적할 때 여유를 갖기에 안성맞춤인 아지트였다.

그러나 이 카페의 상징은 뭐니 뭐니 해도 골목에 면한 카페 대문 위에 떡하니 붙어 있는 커다란 ‘코’ 조형물이다. 말 그대로 사람의 ‘코’ 모양을 한 형상이다. 두 개의 커다란 콧구멍은 말할 것도 없고 마치 술 취한 이의 딸기코를 연상시키듯 커다란 숨구멍들까지 세밀히 표현해 놓았다. 이곳을 지나치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은 미소를 지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담한 카페의 출입문 위에 커다란 코를 붙여 놓은 이유에 대해서는 아는 이가 없었다. 심지어 카페의 바리스타들조차 왜 하필 사람의 코를 붙여놓았냐는 질문에 명쾌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이곳을 드나드는 지인들 대부분은 커피를 파는 카페이니 커피 향을 맡는 코를 붙여놓지 않았겠느냐는 막연한 추측을 했지만 어쩐지 너무 뻔한 상상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난 ‘카페 코’라는 이름의 연원을 다른 곳으로부터 찾았다. 19세기 러시아의 위대한 작가 ‘니콜라이 바실리예비치 고골(Nikolai Vasil’evich Gogol)’이 쓴 ‘코’라는 작품에서다. 물론 확인된 바 없는 나 혼자만의 상상이긴 하다.

1809년에 태어나 1852년까지 살았던 고골은 부패하고 부조리한 당시의 세속적인 욕망으로부터 헤어 나오지 못하는 속물근성의 인간상을 주로 그려냈다. 그 중에서도 소개하는 작품 <코>는 너무나도 단순하면서도 황당한 줄거리의 환상 소설이다. 인간 얼굴에 붙어 있던 코가 어느 날 이유도 없이 떨어져 나와 하나의 인격체로 변신해 거리를 배외하며 사람 행세를 하다가 결국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이야기다. 순전히 고골의 상상만으로 지어진, 서사의 인과성이 없는 구조다. 마치 1915년에 발표된 카프카의 초현실적인 작품 <변신>을 연상케 한다.

어느 날 이발사 이반 야꼬블레비치는 아침 식사용 빵 속에서 큼지막한 사람의 코를 발견한다. 이발사는 난데없이 나타난 코를 처리하기 위해 아무도 없는 다리 위에서 몰래 버리지만 곧 경찰관에게 발각될 위기에 빠진다.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에서 갑자기 단절되고 뜬금없이 코의 진짜 주인 8급 관리 코발료프 소령의 침실로 옮겨 간다. 코발료프는 여느 때처럼 일어나 거울을 보다가 코가 사라진 자신의 얼굴을 보고는 화들짝 놀란다. 그에게 코가 없어졌다는 건 보통 문제가 아니다. 상급 관리로 진급하기 위해서는 사교계에서 활동을 해야 하는데 코가 없어졌다는 건 진급은 이제 물 건너 간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코발료프는 길을 나서고 급기야 자신의 직급보다 높은 5급 관리 행세를 하며 거리를 돌아다니는 코를 발견하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코를 되찾게 되지만 코는 쉽사리 제자리에 붙지 않는다. 그러나 어느 날 아침 원래의 자리에 붙어 있는 코를 발견하고는 평화를 되찾게 된다.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황당한 이야기다.

고골의 작품들을 읽다 보면 늘 생각나는 연주자가 있는데 캐나다 출신의 피아니스트 ‘칠리 곤잘레스(Chilly Gonzales)’다. 그가 연주한 곡 중에 특별히 ‘Gogol’이라는 곡이 있어서 더욱 그렇다.

칠리 곤잘레스는 특이한 이력의 아티스트다. 딱히 재즈에만 국한하지 않는 피아니스트이자 프로듀서이며 영화의 각본, 음악은 물론 주연까지 맡아 열연한다. 그런가 하면 일렉트릭 뮤직에 랩까지 구사하는 토탈 엔터테이너다. 범상치 않는 그의 행보는 마치 고골 소설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면면만큼이나 평범하지 않다.

Rollin & Scratchin (Daft Punk)

I Am Europe

2010년쯤의 아이패드 광고음악인 Never Stop으로 대중성까지 확보했지만 역시나 그의 음악의 예술성은 피아노 솔로 앨범에 있다. 그중 내가 즐겨 듣는 건 첫 번째 앨범인 Gonzales Solo piano다.

모든 트랙이 다 좋으나 베스트 트랙은 단연 첫 번째 트랙 Gogol이다. 솔직히 곡 제목을 Gogol이라 붙인 이유를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들으면 들을수록 작가 고골의 이름에서 차용했다는 확신이 든다. 마치 소설 <코>에서 자신보다 직급이 높은 5급 관리가 되어 잔뜩 허세를 부리는 코발료프의 코이거나 <외투>에서 소중한 외투를 잃고 유령이 되어버린 아카키의 테마곡이라고나 할까? 아니 어쩌면 <광인일기>에서 서서히 미쳐가는 포프리시친의 주제곡일 수도 있겠다. 연주가 몽상적이어서 환상의 세계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잃고 방황하는 소설 속 주인공들의 우울함을 제대로 투영해 놓았다는 느낌이 든다. 그만큼 아스트랄 하다. 나도 모르게 “아. 딱 고골이네” 하면서 무릎을 치게 된다.

생각해 보면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는 시절이다. 현실과 환상은 얼마나 다를까? 아니 정말 다르기만 할까? 그냥 현실이 환상이고 환상이 곧 현실일 것만 같다. 그래서일까. 현재를 사는 우리와 고골의 환상소설 속 주인공들의 분투는 둘 다 눈물겨워서 별반 다르게 느껴지지 않는다.

어느새 12월이니 이제부터는 한겨울이다. 지금부터는 서로의 등을 데워줘야 한다. 그래야만 한다. 우린 비현실적이면서도 엄혹한 이 시대를 함께 살아내고 있는 동지들이 아닌가.

경 성현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20) – ‘Gogo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