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posts tagged: 한성희

<한성희의 작가 산책> 시인 천양희의 『시의 숲을 거닐다』

 

돌아오지 않기 위해 혼자
떠나 본 적이 있는가

새벽 강에 나가 홀로
울어 본 적이 있는가

늦은 것이 있다고
후회해 본 적이 있는가

한 잎 낙엽같이
버림받은 기분에 젖은 적이 있는가

바람속에 오래
서 있어 본 적이 있는가

한 사람을 나보다
더 사랑한 적이 있는가

증오보다 사랑이
조금 더 아프다고 말한 적이 있는가
그런 날이 있는가

가을은 눈으로 보지 않고
마음으로 보는것
보라
추억을 통해 우리는 지나간다

  • 천양희, 오래된 가을

 

 

시인에게 전화를 드렸습니다. 어렵게 강연을 부탁하자 그녀는 선뜻 수락하셨습니다. 건강은 좋지 않지만 노력해 보겠다면서요.

그녀의 건강이 좋아 지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쓴 여러 권의 시집과 최근 출간한 ‘천양희의 시의 숲을 거닐다’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문학나들이에서 만난 그녀는 시 만큼이나 감성적이고 우아했습니다.

1942년 부산의 부유한 가정에서 출생한 그녀는 이화여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1965년 박두진 선생님의 추천으로〈현대문학〉으로 등단했습니다. 하지만 그 후 1980년까지 시집을 한 권도 내지 못하고 작품도 발표하지 않고 문단활동도 하지 않으며 숨어 살았답니다. 그 공백기는 이혼 이후 의상실을 운영하며 지낸 고통의 시간이었습니다.

세 번씩이나 걸린 결핵에 심장병까지 겹친 냉혹한 현실 앞에 몇 번이나 죽기를 시도하고 현실적 어려움과 정신적 갈등으로 좌절해야 했던 참혹한 시기였답니다. 하지만 그녀는 무작정 견디기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녀의 표현대로 ‘숨어서 피는 꽃’처럼 꾸준히 시를 써왔답니다.

죽기 위해 찾아간 고창 선운사 직소폭포에서 오히려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고 시를 하나 건져 오기도 했습니다. 처절한 고통과 절망을 딛고 시적 성숙을 이룩한 그녀는 시인은 ‘무엇을 쓸 것인가’ 보다 ‘어떻게 쓸 것인가’가 더 중요하답니다. 경험과 상상력과 새로운 인식이나 발견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자기만의 체험이 시의 씨앗이 되게 하라고 했습니다.

20년의 긴 공백 기간을 깬 그녀는 그 후  ‘신이 우리에게 묻는다면’, ‘오래된 골목’,  ‘사람 그리운 도시’,  ‘너무 많은 입’, ‘마음의 수수밭’ 등 주옥같은 시를 발표했습니다.

‘문학의 숲에서 하루를 너끈히 보낼 그대여, 이제는 바람 속에 얼굴을 묻고 울지 말기를, 어떻게 살지 하며 묵은 울음을 참던 친구여, 이제는 문학의 숲에서 시의 세례를 받으며 하루를 시작하기를… ’ 

한 달 내내 그녀의 시의 숲을 거닐며 마냥 행복했습니다.

한 성희<한성희의 작가 산책> 시인 천양희의 『시의 숲을 거닐다』

[한성희의 작가 산책] 시인 김남조의 ‘가난한 이름에게’

나의 밤기도는
길고
한 가지 말만 되풀이한다.

가만히 눈을 뜨는 건
믿을 수 없을 만치의
축원(祝願).

갓 피어난 빛으로만
속속들이 채워 넘친 환한 영혼의
내 사람아.

쓸쓸히
검은 머리 풀고 누워도
이적지 못 가져 본
너그러운 사랑.

너를 위하여
나 살거니
소중한 건 무엇이나 너에게 주마.

이미 준 것은
잊어버리고
못다 준 사랑만을 기억하리라.
나의 사람아.

눈이 내리는
먼 하늘에
달무리 보듯 너를 본다.

오직
너를 위하여
모든 것에 이름이 있고
기쁨이 있단다.
나의 사람아.

시집 『가난한 이름에게』, 「너를 위하여」 전문

***************************************

목요문학나들이를 며칠 앞두고 시인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몇 달 전 미국에 다녀오시면서 다리를 다쳤다는 전갈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혹시나 했는데, 아직도 불편하시다 했습니다.
“나이가 많으니까 뼈도 늙어서 빨리 낫질 않네요. 그래도 약속은 지키겠습니다.”하시더니 시인은 휠체어를 타고 오셨습니다.
걱정이 되어 앉아서 말씀하시라고 의자를 권했지만 서서 하는게 편하다며 지팡이를 짚고, 2시간 내내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강의를 하셨습니다. 강의실을 가득 채운 독자들을 바라보며 꿈꾸는 듯 깊은 머루 빛 눈동자에선 사랑의 기(氣)가 가득 퍼져 나왔습니다.

1927년 경북 대구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국어교육과를 졸업한 시인은 일제 강점기와 6.25등 고통스러운 한국의 현대사를 온몸으로 체험하며 질곡의 시대를 살아온 산 증인이었습니다.
그런 시인에게 문학은 숙명이었겠지요. 해방과 전쟁이라는 소용돌이 속에서 하나뿐인 동생이 죽었고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고 폐결핵이 악화되어 청량리 위생병원에 입원하는 등. 그의 젊은 날은 그야 말고 고통의 나날이었답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간 민족적 비극 앞에,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최소한의 존엄성마저 말살된 상태에서 시인이 할 수 있는 것은 시를 토해내는 것이었답니다.

시인은 첫 시집 ‘목숨’이 나왔을 때를 생각해 보면 전쟁 속에서 보는 평화라는 것이 얼마나 허무하고, 죽음 밭에서 보는 생명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약한지를 절감했습니다. 그때는 인격이 없더라도 좋으니 심장 하나만 남은 생명이라도 허락되기를 간절히 원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신을 찾게 되고 가톨릭에 귀의해 신앙 속에서 은총과 구원을 얻었습니다. 신앙은 인간 존재의 불확실성을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답니다. 시인이라는 존재는 그 시대의 깨어있는 지성이어야 하며, 시대의 불행 속에서도 ‘희망’을 볼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한답니다. 하지만 독선에 빠지는 우(遇)를 범하지 말고 진실을 표현하고자 애쓰라고 했습니다.

“문학은 참다운 넋을 찾기 위해 밝은 쪽으로 창문 하나를 열어두는 것”이라는 시인의 열강에 모두들 마음의 창문을 활짝 열어두는 그런 시간이었습니다.

한 성희[한성희의 작가 산책] 시인 김남조의 ‘가난한 이름에게’

한성희의 작가 산책 – 시인 고형렬의 ‘일편시에 대하여’

모든 세상과 색이 파묻혀 어떤 움직임도 소리도 없었다.
세상은 사진리에서 그 끝까지가 고요, 고요였다.
공룡 청봉이라는 것들이 눈앞에서 잡힐 듯하였다.
후우 세게 입김을 불면 날아가버릴 듯이 작아져서
마치 산은 사진리에서 멀리로 내려다보이는 것 같았다.
나는 그날 오후 이후 이때까지 설악이
그처럼 낮아지고 아름다운 적을 본 적이 없었는데
해가 지고도 한참을 설광 때문에 새벽 같았다.
발간 등불과 후레쉬 불빛이 흔들리기 시작하던 마을
사진리는 그제서야 사람 사는 마을이 되었다.
아흐레 동안 산이 눈 속에 파묻혔던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날 내다본 동해는
무슨 일인지 물속에 다니는 고기 소리가 날 듯이
맑게 개인 하늘 아래 호수처럼 잔잔히 흐르고 있었다.
눈도 한 송이 쌓이지 않고, 그만으로 흐르고 있었다.

-시 ‘사진리 대설’ 중에서-

고형렬 시인은 속초의 시인이었습니다.
1954년 속초에서 태어나 1974년 눈 내리던 날, 강원도 고성의 한 면에서 면서기 생활을 시작했답니다. 꾸준히 시를 쓰다가 1982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하면서 시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1985년 ‘대청봉 수박밭’ 이라는 첫 시집을 낸 그는 30여 년 전 대진 앞바다에서 처음으로 금강산을 보았습니다. 신 새벽 어로저지선까지 나갔다가 아침 햇살을 받는 금강산의 모습에서 짜릿한 전율을 느끼며 환멸의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시’를 쓰고 싶었답니다. 그에게 속초와 그 아래 위의 항구 도시는 삶과 시의 모든 원천이었습니다. 우리가 늘 우울하고 마음 한 쪽이 텅 빈 듯 공허한 것은 그저 ‘인간이니까’ 하는 설익은 감상이아니라 자신의 내면이 가느다랗게나마 뿌리내릴 수 있는 근원이 부재하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시인. 양양 남대천에서 치어로 방류된 연어에 심취해 연어에 대한 글 을 쓰고 싶다는 그의 강연을 들으며 언젠가 그가 쓴 연어를 꼭 읽어보고 싶습니다.

한 성희한성희의 작가 산책 – 시인 고형렬의 ‘일편시에 대하여’

시인 신달자의 ‘백치 애인’

길에서 미열이 나면/ 하느님 하고 부르지만

자다가 신열이 끓으면/ 어머니, 어머니를 불러요

아직도 몸 아프면/ 날 찾느냐고 / 쯧쯧쯧 혀를 차시나요

아이구 이 꼴 저 꼴/ 보기 싫다시며 또 눈물 닦으시나요

나 몸 아파요, 어머니

오늘은 따뜻한 명태국물/ 마시며 누워있고 싶어요

자는 듯 죽은 듯 움직이지 않고/ 부르튼 입으로 어머니 부르며

병뿌리가 빠지는 듯 혼자 앓으면/ 아이구 저 딱한 것

어머니 탄식 귀청을 뚫어요/ 아프다고 해라 / 아프다고 해라

어머니 말씀 / 가슴을 메어요

-시 ‘사모곡’ 전문-

“문학은 타고나는 것도 아니고 이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한사람이 가지는 삶에 대한 환경이 무엇을 쓰게 만들며, 어느 날 밥상처럼 내 앞에 차려져 오는 것” 이라는 신달자 시인.

그녀는 어머니로부터 세 가지 당부를 받았는데, 첫 번째는 죽을 때까지 공부할 것, 두 번째는 돈을 벌 것, 세 번째는 행복한 가정을 이루라는 것이었답니다.

대학원에 들어가 조교를 하다가 연애하고 결혼하면서 어머니께서 당부하신 세 번째 것을 지키려고 모든 것을 버리고 문학도 배신했습니다. 그러다 둘째 아이를 낳으면서 여자가 겪는 경로에 대한 불안감이 엄습해 왔답니다.

그때 박목월 선생님을 만나게 되어 ‘현대문학’으로 등단합니다.

딸이 세 살이 되던 해 시어머니가 쓰러지고 남편마저 쓰러져 24년이란 기나긴 세월을 앓게 됩니다. 갑자기 닥친 절망과 좌절 앞에 삶을 포기 하고 싶었지만 한줄기 빛처럼 다가오는 어머니의 말을 떠올리며 다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환자를 수발하며 석, 박사 학위를 받고 ‘백치 애인’과 ‘물 위를 걷는 여자’도 그때 쓴 것이랍니다.

결국 그녀는 어머니의 세 가지 당부를 모두 지켰습니다. 전혀 고생을 모르고 살아온 듯 곱디고운 그녀를 보며 운명을 이기는 한국의 여인상을 수정해야겠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한 성희시인 신달자의 ‘백치 애인’

한성희의 작가 산책 – 시인 강은교의 ‘헤라클레스의 화살’

강물이 넘어지고 있었네/ 부서진 모래벌 곁에서/ 바위들이 피 흘리고 있었네/
하늘가로는/ 소리 없는 소리들/ 그림자 없는 그림자들/ 강물이 자꾸 넘어지고 있었네/
-시 ‘소리 집’ 중에서-

나들이에서 만난 그녀는 마력의 시인이요 주술의 시인이었습니다. 그녀에게 있어서 허무는 윤회사상으로 발전하고, 윤회사상에 바탕 한 그의 시는 어느새 주술적 가락을 띕니다.
헤라클레스의 화신이란 무엇인가? 에 대해 그녀는 시를 읽고 쓴다는 것은 아주 부드러운 화살을 받고 쏘는 것이랍니다. 펌프질 할 때 한 바가지의 마중물이 땅속 깊이 고여 있는 물을 끌어올리듯 우리 가슴의 샘물을 퍼 올려야 한답니다.
그러기 위해 빈 의자를 만들어 하루에 한 번씩 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자기 성찰의 시간을 가져보라고 권하기도 합니다.

성찰이 들어있는 꿈 꾸기를 하다 보면 분명히 우리 삶 속에 들어있는 그 무엇인가를 꿈꿀 수 있다면서요.
그러면 그것이 시가 되어서 다른 사람의 가슴속에 화살이 되어 들어갈 수 있을 거랍니다.
1968년 ‘사상계’로 등단하여 ‘허무 집’ ‘소리 집’ ‘우리가 물이 되어’ ‘바람의 노래’ 등 많은 시집을 낸 그녀는 우리에게 다가온 소리 없는 헤라클레스의 화살이었습니다.

한 성희한성희의 작가 산책 – 시인 강은교의 ‘헤라클레스의 화살’

시인 유경환의 냉이꽃 따라가면

닭들 뛰고 염소 매애매 울고
사람들 빨래 걷고 저녁비 소나기 질 걸 모두 안다
금붕어처럼 술래잡기하는 아이들만 모르고 논다
놀꽃 구름무늬 속에빠진 밤꽃마을은

– 시 ‘밤꽃마을 그리고 꿈’ – 중에서

이 작품 속의 마을은 부천 원미동을 그린 것입니다.

그 시절 원미동은 집 몇 채가 듬성듬성 있는 시골이었지요. 버스가 신작로를 달리면 뽀얀 먼지가 안개처럼 내려 앉았고요.

가을이오면 논둑길 따라 메뚜기 잡고, 서산에 붉은 노을이지면 풀을 뜯던 염소를 찾으러 나가기도 하였지요. 지금은 모두 회색의 콘크리트 벽에 갇혀 버렸지만요.

그의 시 ‘냉이꽃 따라 가면’ 이라는 동시에도 우리의 유년이 그대로 박제되어 있습니다. 바람, 그리고 싸리가지 엮어 세운 나무울타리와 장독대에 노랗고 하얗게 피어오르는 냉이꽃.

우리는 어른으로서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 것일까? 를 늘 고민하던 부천을 사랑하던 시인은 이제 고인이 되어 아이들만을 위한 동화의 나라로 들어가셨습니다.

한 성희시인 유경환의 냉이꽃 따라가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