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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미동을 사랑한 양귀자 #2

맨 처음 써니전자의 시내엄마가 왕주가 되어 계원을 모집하기 시작할 때 원미동 여자들은 내가 끼어들지 어떨지 장담을 못하는 눈치였다.
그때 이미 이웃들과 격의없이 지내고 있기는 하였지만 그네들 생각으로 작가는 금반지계 따위의 세속사에 냉담 할 것이 틀림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던 게 분명했다.
원미동 여자들 대부분이 놀고 먹는 처지는 결코 아니었다.
지물포도 그렇고 써니전자, 복덕방,정육점,미장원 등등 모두 안팎이 같이 생업에 매달려 있기는 하였지만 아무래도 소설가란 직업은 생경한 것이었다. 쉽게 말하여서 소설 쓰는 여자의 머릿속은 무엇으로 채워져 있는지 아리송하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당당하게, 조금도 꿀리지 않고 금계에 가입하 여 한달에 이만 몇천원씩을 부어나가기로 하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열심히들 살고 있는 원미동 이웃들 사이에서 떨어져 나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금반지계의 계원이 됨으로해서 나는 보다 확실하게 원미동사람이 될 수 있었다.

이 원영원미동을 사랑한 양귀자 #2

원미동을 사랑한 양귀자 #1

소설 속의 원미동과 현실의 원미동은 각각 다른 지역인가 하는 의문이 나온다.

혹은 작가인 내가 현실의 동네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보다 궁핍한 허구 속의 동네를 형상화했다는 의견도 나온다.

두가지 모두 분명 아니다. 내가 열한편의 연작으로 묘사해낸 원미동은 지금 내가 엎드려 있는 이 동네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더 나아가서,원미동보다야 잘 사는 동네라고 자부하는 당신들의 동네, 그 이웃 어디와도 다르지 않다. 60년 대와 70년대에 걸쳐서 특별시 변두리에 형성된 동네가 달동네의 피폐한 삶이었다면,80년대에 들어와선 달동네의 삶의 보편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하여 특별시 변두리의 이곳 저곳에 원미동들을 양산했다.

이 시대의 평균치 삶이,만연되어 있는 정신의 오염이,경제의 불균형으로 빚어진 인생의 기복이 골고루 배어있는 평균의 동네이다.
….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윈미동의 그 겉과 속이 다른 데서 오는 이질감은 이사회의 겉모습과 안을 들여다볼 때와 아주 흡사하다.
일제의 침탈을 거쳐 강대국 주도의 경제정책에 순응하여 재벌만 키우는 이 시대의 몇 십년이 그 안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것이다.

경제 정책으로 겉모습은 번드르르해졌는지 모르지만 그 내용물은 여전히 황량하기만한 현실의 모습이 원미동에 있다.
이 사회의 발전과정과 원미동은 언제나 같은 궤에 있다.
그래서 원미동은 단순한 고유명사를 뛰어넘어 사회의 보통명사로 남겨지는 것이다.

-양귀자, 1989년 지구를 색칠하는 페인트공, 에피소드 “작별의 시간”에서 발췌

Thanks to 글낭송:이현정 카툰:조관제 화백

이 원영원미동을 사랑한 양귀자 #1

원미동 새로읽기 – 소설속의 원미동과 실재하는 공간 원미동

작품 [원미동 사람들]의 안과 밖을 구분 못한 채 지엽적인 문장과 사건을 부각한 어설픈 평론과 기록들이 지금도 인터넷을 부유하고 있습니다.
[원미동 새로 읽기] 칼럼은 8년 동안 원미동 주민으로 살면서 누구보다 원미동을 사랑한 양귀자 작가에 대한 새로 읽기 를 주제로 계속 연재될 예정입니다.
지금.. 그녀의 목소리에 다시 귀 기울여주세요.

소설 속의 원미동과 현실의 원미동은 각각 다른 지역인가 하는 의문이 나온다. 혹은 작가인 내가 현실의 동네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보다 궁핍한 허구 속의 동네를 형상화했다는 의견도나온다.
두 가지 모두 분명 아니다. 내가 열한 편의 연작으로 묘사해낸 원미동은 지금 내가 엎드려 있는 이 동네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더 나아가서,원미동보다야 잘 사는 동네라고 자부하는 당신들의 동네, 그 이웃 어디와도 다르지 않다. 60년 대와 70년대에 걸쳐서 특별시 변두리에 형성된 동네가 달동네의 피폐한 삶이었다면,80년대에 들어와선 달동네의 삶의 보편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하여 특별시 변두리의 이곳저곳에 원미동들을 양산했다.

이 시대의 평균치 삶이, 만연되어 있는 정신의 오염이,경제의 불균형으로 빚어진 인생의 기복이 골고루 배어있는 평균의 동네이다.
….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윈미동의 그 겉과 속이 다른 데서 오는 이질감은 이사회의 겉모습과 안을 들여다볼 때와 아주 흡사하다.
일제의 침탈을 거쳐 강대국 주도의 경제정책에 순응하여 재벌만 키우는 이 시대의 몇십 년이 그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이다.
경제 정책으로 겉모습은 번드르르해졌는지 모르지만 그 내용물은 여전히 황량하기만 한 현실의 모습이 원미동에 있다.
이 사회의 발전과정과 원미동은 언제나 같은 궤에 있다.

그래서 원미동은 단순한 고유명사를 뛰어넘어 사회의 보통명사로 남겨지는 것이다.
-양귀자, 1989년 지구를 색칠하는 페인트공, 에피소드 “작별의 시간”에서 발췌

이 원영원미동 새로읽기 – 소설속의 원미동과 실재하는 공간 원미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