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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내게 준 추억! 그리고 행복!

언제부터였을까? 돌이켜 생각해보니 도서관에 갔을 때였다. 당시에 필요한 책을 대여하고 나오다 눈에 들어왔던 책!나도 모르게 잠깐 걸음을 멈추게 되었다. 무언가에 홀린듯이 묘한 기분으로 노란책 표지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혼자 오니?’ 라는 이름의 책을 그렇게 처음 잡게 되었다. 표지를 보고만 있어도 그 옛날 나의 어린시절, 내가 자랐던 예쁘고 따스한 우리 동네의 풍경이 모락모락 떠올랐다. 그 기억은 노란 유채 밭을 넘어, 들에서 일하시던 엄마와 아버지를 지나서, 그 옆에서 놀고 있던 나와 동생, 그리고 친구들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검정 고무신과 구멍 난 바지 저고리는 아니었지만 책 속에 나오는 아이는 어렸을 때 내가 했던 행동들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신기하고 또 신기한 마음에 눈을 감고 잠시 시간여행을 하기로 했다!

책 표지에 그려져 있는 노란 유채, 노란 민들레와 개나리, 그리고 초록 풀 들로부터 봄날의 생동감이 물씬 느껴진다.그리고 그림 속에 등장하는 어린 형제의 스토리는 바로 나의 이야기처럼 다가온다. 그림으로부터 소환되어온 오래된 기억속의 우리 형제들에겐 무어라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정과 사랑이 넘치고 있었다. 책을 넘길수록 나의 유년시절 속 아름다웠던 풍경이 새록새록 떠오르면서도, 잠시 잊고 살았던 미련스럽고 안타까웠던 추억까지도 생각나게 했다.그렇게 작가는 은은하면서도 아름다운 봄의 향기를 순수하고 예쁜 아이의 마음이 묻어있는 그림을 통해 그대로 그려내고 있었다. 작가를 직접 만난적은 없어도 누구보다 작가의 추억을 잘 알고 있었던냥 자연스럽게 작품속으로 빠져들었다.  마치 나의 어린 시절로 시간 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말이다.

혼자서 집을 찾아오는 길, 언제나 그렇듯 형은 동생을 살피고 있다. 어미를 따르는 송아지처럼 어린 동생의 걸음 걸음은 사랑스러우며, 동시에 행복하다.  잠시 형처럼 송아지를 만졌다가 되려 겁이 나서 뒤로 물러서는 경이를 나는 이해한다. 그 마음을 나는 누구보다 잘 안다. 그 옛날, 우리집 송아지를 만졌다가 어미소의 뿔 난 행동에 기겁을 하며 달아나곤 했었던 나는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그어미소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소를 보면 경이처럼 먼저 겁이 난다.

 

노란 개나리가 펴 있는 개울가를 지나오면서 경이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하고 싶은 행동들을 자유롭게 할 수 있었겠지만, 혼자 두고 가 버린 형을 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생각해보라. 형 없이 개울가를 혼자 건너보는 경이는 얼마나 무서웠을까? 하지만 이를 이겨냈을 때 얻어낸 성취감은 그 무엇보다 짜릿했을 것이라 생각하니 웃음이 저절로 난다.

경이가 걸어가는 길을 따라가다 보면 노란 민들레가 핀 들판도 그냥 지날 수 없다. 옆으로 다가가 예쁜 민들레를 하나 꺾어 꽃씨를 불어본다. 둥둥 날아가는 꽃씨들이 어디까지 날아갈까 하늘도 빼꼼 쳐다보니 아버지와 함께 했던 순간이 떠오른다. 그 날도 따뜻한 봄날이었다.

태양을 어깨지고 아버지를 따라 뒷산에 오르며 나는 찔레순을 따서 먹어 본 적이 있다. 찔레나무 옆에 서서 찔레순을 따다보니 때로는 가시가 손가락을 찌르기도 했었다. 찔레순의 새콤달콤한 그 맛은 가시에 찔린 아픔을 잊게 한 봄의 바로 그 맛이었다. 찔려서 아프지만 새콤달콤한 그 맛은 예쁜 유채 밭에서 나비와 씨름하는 경이와 닮았다. 나비 한 마리를 잡으려고 온 신경을 집중해서 걸어가는 경이가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다. “어머나! 잡지 못하고 나비를 놓쳐 버렸네!” 하며 나도 모르게 감탄이 터져나온다. 잡다가 놓쳤을 때  잡아보지 못한 사람은 절대 알 수 없는 그 기분을  나는 누구보다 잘 안다.

산에 오를 때에는 울창한 수풀만큼 뱀 또한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나의 오랜 시절 기억에는, 아버지를 따라 산에서 내려오던 길 한복판에서 뱀을 보고 “걸음아 나 살려라!”를 외치며 뒤도 안돌아보고 달리던 기억들이 지금도 생생하다. 물론 지금도 나는 뱀이 제일 무섭다.

그 옛날 내가 수많은 시련과 모험을 했던 것 처럼, 그 많은 어려움과 무서움을 이기고서 경이는 드디어 집에 도착했다. 책이 거의 마지막에 다다랐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경이가 얼마나 대견했는지 모른다. 그런 나와 비슷하게도 형은 담벼락 끝에서 동생을 지켜보고 서 있다. 동생을 먼 발치에서 다 보고 있었던 형은 동생이 얼마나 대견스러웠을까? 서로를 걱정하는 형제의 사랑에서 봄이 준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경북 영천에서 태어난 김순희 작가는 이러한 아름다운 이야기를 여러 그림책에 담아왔는데, 쓰고 그린 그림책으로는 ‘누구야!’와 ’내 꺼야!’, 그리고 ‘따라 하지 마!’ 등 이 있으며, 그림을 그린 그림책으로는 ‘산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와 ‘새는 새는 나무 자고’ 등이 있다.

유년의 기억이 엇비슷한 그녀를 언젠가는 한번 보게 될 날 이 있을듯하다. 마치 어릴적 동네 친구를 만나듯이.

정 정숙봄이 내게 준 추억! 그리고 행복!

어둠 속에서 피어난 숨비소리 그리고 휘이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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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부터 성년이 되기까지 아주 오랜 기간 가난과 아빠의 엄마를 향한 일방적인 주폭(酒暴)에 그대로 노출된 채 살아왔다. 그래서 휘이 작가는 속으로는 제대로 저항하지 못하고 견뎌온 엄마 또한 많이 원망하며 자랐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녀가 자신의 엄마라는 존재로 아직 함께 숨 쉬고 있음에 늘 감사할 따름이다.


(작품 숨비소리의 한장면)

그녀는 요즘 시대의 아들, 딸들과 다르게 효녀다. 외면하고 싶어도, 혼자 자유롭게 살고 싶어도, 눈에 밟히는 존재라고 그녀는 말한다. 지지고 볶아도 같은 공간에 있어야 마음이 놓이는 사람, 불쌍하고 나이 들어 약하고 아픈 사람, 그래서 화나게 하고 외면하지 못하게 하고 힘들게 하는 그런 여자!
영원히 자기와 함께 하면서 끝없이 미안하고 불쌍하고 안타까운 감정을 주는 존재, 그녀에게 엄마란 그런 존재이다.
얼마 전부터는 블로그에 엄마의 이야기를 하루에 한 컷씩 연재하고 있다. 결혼하기 전에 엄마와 함께 한 이야기들을 더 하고 싶고, 행복한 추억으로 남기고 싶어서라고 그녀는 말한다.

어렸을 때부터 힘들거나 기분이 안 좋을 때 만화를 많이 즐겨 보았는데, 그러고 나면 신기하게 축 쳐져있던 기분이 좋아지고 마음이 즐거워졌다. 그렇게 엄마가 일을 마치고 들어오기 전까지 새벽 내내 기다리며 만화책을 보게 되었다. 만화를 보면서, 웃다가 울기도 하고 때로는 즐겁기도 떨리기도 하면서 이에 푹 빠져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면서 막연하게 만화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다만, 넉넉하지 못한 살림에 대학에 갈 엄두가 나지 않았고, 그렇다고 전문적으로 배운 적도 없다. 처음 아카데미에서 만화를 배울 때를 회상해보아도 생계 문제에 계속 신경을 쓸 수 밖에 없었고, 처음이라 익숙하지 못했던 작품을 그려가는 작업은 더욱 어려웠다. 첫 도전에 크게 좌절하고 있을 때, 옆에서 누군가가 해준 ‘완벽한 그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스토리가 더 중요하다’라는 말에 자신의 마음을 읽은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고 용기를 얻었다. 자신감을 가지고 절실함을 무기로 그려낸 작품을 통해 20, 30 대까지 그림을 그리다보니 그녀는 어느새 지금의 휘이로 만화를 그리고 있다고 했다.

그녀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이 만화를 그리는 일이기에 만화라는 존재는 그녀에게 있어서 너무나 좋고 고맙지만, 반면에 ‘지금 하고 있는 만화는 잘 하고 있는 것일까?’, ‘이 다음 만화는 잘 해낼 수 있을까?’, ‘연재 계약을 할 수 있을까? 이를 통해 먹고 살 수 있을까?’ 와 같이 꼬리의 꼬리를 무는 생각들을 낳아 자신을 불안하게 한다고도 했다. 양날의 검인 셈이다.

그렇기 때문인지, 한 곳에서 하는 만화를 마감하기 전에 다음 연재를 준비한다는 그녀는 망설임 없이 당당하게 도전한다. 생계의 불안에서 오는 행동들이 어느새 손에 익은 습관이 되어 버렸다고도 볼 수 있겠다. 그렇지만 만화는 생계 수단 이외에도 감정과 이야기를 풀어내는 표출구로서 작용하기에, 너무나도 고마운 소울메이트와 같은 존재라고 그녀는 털어놓았다.

본격적으로 만화 작업을 하기로 마음을 먹으면서 20대 중반에 4-5년간 봉사 활동을 한 경험을 토대로 ‘소녀, 일흔살’이라는 작품을 1인 출판 지원을 받아서 책으로 냈다.


(작품 소녀,일흔살의 에피소스들)

봉사 활동을 하면서 각기 다른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고, 그 사람들의 서로 다른 가치관들을 자신만의 특색 있는 방법으로 담아내고 싶었다고 한다. 그녀 주변의 많은 작가들로부터 영향을 받아, 우울하고 어두운 현실을 지루하지 않고 가볍게 잘 풀어내는 만화를 담았다. 지금 생각나는 작품은 ‘스누피’, ‘자학의 시’,‘푸른 알약’ 이 있으며, 특히, ‘자학의 시’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 이후에는 어린이 만화를 비롯해 단편 등 두 세 작품들을 하다가, 30대 초반에 진입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살아 온 경험을 토대로 ‘숨비소리’라는 작품을 레진 코믹스에 연재하게 되었다고 한다.


흑백의 색으로 그려낸 작품이지만, 이를 웹툰이라는 포맷으로 연재를 할 수 있다는 점에 너무나 감사했다. 하지만 연재를 하는 중간 중간에도 항상 언제 짤릴까 전전긍긍하면서 작업을 이어갔다고 한다.
2년 후, 다행히 완결까지 마무리 할 수 있게 되었고, 이런 자신을 그녀는 운이 좋은 행운아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이 외에 초등학생에서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만화 강의를 한 지 10년 정도가 되었고, 지금도 서울에니메이션센터와 한국만화박물관에서 의뢰가 들어 올 때 마다 하고 있다. 그림책을 좋아하고 일러스트 그리는 것도 너무나 좋아하는 그녀기에, 가끔 잡지표지 의뢰가 들어올 때도 있는데 그때는 즐거운 마음으로 그림을 그린다고 한다.

애착이 가는 자신의 그림을 골라달라고 하자, 그녀는 야생화 그림을 골랐다. 어린이 만화를 연재하던 때에, 만화 속에 들어간 일러스트인데 야생화를 좋아하기에 동심으로 돌아가 즐겁고 재밌는 마음으로 그렸다고 한다.

(휘이 작가의 일러스트 작품 컷)

그녀가 보여준 이 그림을 보면서 작가와 엄마의 간절한 자석같은 사랑이 느껴졌다. 수묵화와 수채화의 살아 움직이는 야생화 그림은, 아름다운 색감을 자랑한다. 살아있는 자연을 노래하는 그림 속에 그녀의 존재를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지금은 첫 19금 연애 만화 ‘이것도 연애’ 를 레진 코믹스에 연재중이다.

다음 작품은 좀비물로 하고 싶은데, 요즘에 좀비물이 비단 만화뿐만 아니라 영화에서도 볼 수 있듯이 너무 인기가 많고 훌륭한 작품들이 많이 있어서 작가만이 할 수 있는 특별한 좀비 만화를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고 했다. 그녀만의 가늘고 아름다운 그림으로 그려내는 좀비물은 어떠할지 너무나 기대가 된다.

휘이 작가가 바라는 미래의 만화상…
‘요즘 만화의 장르가 예전과 비교했을 때 많아지고 다양해졌다고 하는데, 그 장르와 종류가 더욱 더 다양해졌으면 좋겠다.’
‘만화를 그리는 작가들은 대부분 생계에 대한 부담과 불안감을 안고 만화를 그린다. 그런 걱정 없이 훌륭한 작품들을 많이 만들 수 있게 되는 그런 만화판이 되었으면 한다.’

그녀에게 만화를 통해 이루고 싶은 궁극적인 목표가 무엇인지 물었다. 미소를 지으며 그녀는 하고 싶은 이야기를 꾸준히 하면서 자신과 가족, 친구들 혹은 애인과 같이 많은 사람들과 순간순간 행복을 느끼면서 살아갈 수 있는 좋은 에너지와 생활력을 얻는 것이 자신의 꿈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가늘고 길게 살면서 나이를 먹어 할머니가 되어 손이 덜덜 떨리더라도, 그 떨리는 손으로 죽기 전까지 만화를 그리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소박하지만 너무나 아름다운 인생의 목표가 아닐까?

그녀는 그녀의 작품을 통해서, 마치 그녀와 같은 사람들에게 비록 겉이 화려하거나 빛나지는 않지만, 그들 모두 너무나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현실이 구질구질하더라도 그 속에서 반짝이는 별들을 찾아내어 굳이 멋부리지 않더라도 있는 그대로 그 빛을 표현할 수 있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이러한 현실 그대로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그리고 이야기하는 것에 있어서 제한을 두지 않고 품을 수 있는 한, 모두 이야기할 수 있는 무제한의 작가로 그녀는 어엿하게 우뚝 서고 싶다.
이런 그녀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친구나 지인들은 꾸역꾸역 열심히 살아가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나도 기특하고 대견하다고 말을 아끼지 않았다. 매일매일이 불안하고, 하루하루 살아가는게 지치고 힘들더라도 좋아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것들을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그들과 함께할 때는 온전한 행복을 느낄수 있다고 하는 그녀는 밝고 가공하지 않은 원석의 순수함을 가득 품고 있었다.

누구나 다 어린 시절의 상처를 떠안고 자라면서 어른이 된다. 사람이 살다보면 이런저런 불행한 경험을 하기는 마련이지만, 어린 시절의 상처는 어른이 되어 생기는 상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치명적이다. 사람은 어렸을 때 있었던 일들을 뚜렷하게 회상하여 읊을 수는 없지만, 몸은 그 상처들을 기억한다고 한다. 그렇기에, 행복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린 시절의 상처를 치유해야만 할 것이다.
그녀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무척이나 강했고, 동시에 밝고 예뻤다. 많은 상처와 아픔과 어려움을 겪고 힘들게 살아왔고, 지금도 생계에 대한 걱정으로 불안해하고 있지만 그녀는 지금의 자기 자신이 너무 행복하다고 한다. 너무나 좋아하고, 하고 싶었던 만화와 함께하기 때문에 행복한 그녀는 도전하는데에 있어 망설임이 없다. 어둠 속 깊이 자리잡고 있는 누군가에게 한 번 쯤은 ‘휘이’ 하며 숨을 쉬라고, 그리고 아무리 어둡고 깊은 곳에 있어도 빛은 비추어 진다고 그녀는 말한다.

위대한 예술 작품들은, 비록 글이나 그림 그리고 음악과 같이 그 형태는 달라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심금을 울릴 수 있다는 점에서 큰 공통점을 갖는다. 그래서 그녀는 그녀만의 만화로 시공을 초월해 많은 사람들과 공감하며 어두움 속에서 빛을 찾아간다. 그것이 그녀에게 있어 만화를 하는 이유이자 앞으로도 계속해야 하는 까닭이기에..

그녀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생각나는 아티스트가 있다.
자라온 환경이나 시대는 다르지만, 불우한 유년 시절을 이겨내고 오로지 예술에 대한 열정과 도전으로 달려와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 뮤지션으로서의 고뇌를 털어 놓을때 그의 눈빛, 목소리, 표정에서 묻어나는 진실함이란 엄청난 소용돌이 같은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그의 삶을 지탱해주는 힘이기 때문이다.


(리처드용재 오닐의 공연 사진)

리처드 용재 오닐, 그의 음악은 따뜻하고 감미롭다.
‘섬 집 아이’라는 유명한 동요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해 낸 연주를 들을 때에는 그 곡 안으로 들어가 빠져 나오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는 내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그 감정이 무엇일까 한참을 곱씹어보다 엄마라는, 그리고 휘이 작가의 그림에서 묻어나는 애절함과도 맞물려 있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그리고 저 어딘선가 ‘숨비소리’ (해녀가 잠수했다가 숨이차서 밖으로 나올때 ‘휘이, 휘이’하며 숨을 내쉬는 소리) 가 들려온다.

정 정숙어둠 속에서 피어난 숨비소리 그리고 휘이 작가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닌 웃는 얼굴이 더 행복한 작가 – 아주

아주 작가는,
세상을 향한 소통의 문을 여는 여성주의 저널 ‘ 일다 ’에서 그래픽 노블 형식의 작품을 격주로 연재하고 있다. 그리고 생태, 여성, 인권에 이르는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매우 많다.


변산공동체에서의 귀농 생활, 밀양 송전탑 , 인천 인권 영화제, 최근엔 광화문 촛불집회 현장에 이르기까지 그녀는 항상 거기에 있었고 지금도 거기에 있다.

“내가 그림을 그리지 않아도 시시각각. 이곳은 내게 아름다운 그림들을 보여준다.” 2014년 어느 날 변산공동체에서의 서정을 그렇게 SNS에 남기기도 했으나, 그녀는 미치도록 좋아했었던 그림을 다시 그리고 싶어서 도시로 돌아왔다. 현재는 서울의 모 한의원에서 간호조무사로 근무하면서 생계와 예술 모두 열정적으로 잘 꾸려나가고 있다.

지면을 빌어 그녀에 대해서 더욱 자세히 알아보자.
일곱 살 무렵부터 그녀는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부침과 시련이 많았던 삶에서 흔들림 없이 지켜온 그림 그리는 “아주“. 지금 그녀를 지탱하고 있는 든든한 자존감이자 버팀목이라 한다.


서양 회화를 전공했지만 최근의 그녀는 텍스트 다루는 법을 더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글과 그림의 경계를 넘나들다 보니 “만화가”로 불리기도 하지만, 그저 “그림과 글로 표현할 줄 아는 사람” 정도로 평가받고 싶어 한다.

20대 중반까지는 일과 작업의 경계가 애매한 생계형 아티스트로 살았으나, 이젠 생계와 예술작업에 대한 나름의 심리적 가이드라인을 갖고 산다 한다.

현실적인 돈 문제뿐만 아니라, 직장을 다니면서 작업을 하게 되면 그 직업이 무엇이든 작업에 대한 절박함이나 스트레스가 덜해져 안정적으로 하고 싶은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고 결국 작업에 많은 영향을 주기 때문이라 한다.

또한 쳇바퀴 돌리듯이 생계를 위한 직업 생활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 가슴 답답한 통증이 찾아들어, 시간을 할애해서라도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행위를 통해 삶의 의미를 찾는다고도 그녀는 말했다.
그렇다면 그녀에게 있어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다는 것은 정말 행복하기만 한 일인 걸까? 넌지시 물어본 질문에 그녀는 웃으며 말로 다 못할 성취감과 쾌락을 동반하긴 하지만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생계와 작업을 심리적으로나마 분리시키면서 안정적으로 작업에 매진할 수 있게 되었고, 지금은 이에 더 나아가 작업하는 시간을 더 늘리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는데, 결과적으로는 오로지 글과 그림이 자신의 생계를 책임지게 하는 것이 작은 소망이라 한다.

만화 작업을 처음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남들보다 세상에서 일찍 사라지고 묻힐 것만 같았다던 그녀였지만 이제는 그림과 글이 오히려 그녀를 위로하고 이끌어가는 듯하여 만족스럽다고 했다.

그럼 그녀는 어떻게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게 된 것일까?
처음에는 한풀이나 살풀이로 시작된 그림이었지만 점점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런 사람들과의 인연들이 맺은 공감과 위로, 그리고 무엇보다 진심된 소통을 통해 많은 것들을 배우면서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그림으로부터 시작한 작업이기에 아직도 글보다는 그림이 편하다는 그녀는, 비록 글은 시간이 많이 걸리고 어렵지만 보다 아름다운 글을 써 내려가기 위해 항상 쓰고, 읽고, 설득하는 방법의 글쓰기를 공부해가고 있다고 했다. 작업도 하나의 공부이다.라고 부연 설명을 하며 그녀는 오히려 공부를 많이 할 수 있기 때문에 작업을 하면서 즐겁다고 했다. 그녀의 얼굴과 몸동작에서 몸에 밴 부지런함이 수시로 드러난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녀의 작품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주로 등장하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가족 이야기를 주된 소재로 삼는 그녀이기에, 처음에는 어렸을 때 정말 누구보다 힘들고 아프게 살아온 이야기를 소재거리로 하는 것에 거부감도 많이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다사다난했던 이야기뿐만 아니라 사소했던 사건들도 모든 것들이 소재가 될 수 있고 가족 한 명 한 명이 너무나 재미난 캐릭터라서 마르지 않는 오아시스처럼 이야기가 가득하다고 했다.

다만 이러한 이야기를 제한 없이 마구 풀어내기에는 자신의 오빠나 부모님들이 눈에 밟혀 지금은 본인의 이야기를 위주로 담는 편이라며 미소로 말을 아꼈다. 그렇다면 자신의 이야기가 아닌 다른 이야기들은 어떤지에 대한 물음에 그녀는 확신 있는 목소리로 이야기는 음식을 먹고 모든 걸 소화한 상태, 즉 완전히 받아들여져야 가능한 것이라고 했다.
따라서 자신의 이야기는 충분히 소화하여 그려낼 수 있지만, 정확히 알지도 이해하기도 어려운 남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감히 어려운 일일 뿐더러 소화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생각을 해보니 충분히 이해가 가는 답변이다.

그렇다면 그녀가 그려가고 있는 가족이란 무엇인지, 화제를 전환해서 보다 자세히 이야기를 해보기로 했다. “어렸을 때는 되게 이상적으로 생각했고 그렇게 교육을 통해 세뇌가 되어서인지 실망감도 컸던 것 같지만 가족이라는 존재는 아직도 숙제다.” 라며 그녀는 속깊은 답변으로 이야기의 말문을 열었다.


현재 자신에게 있어 가족은 같이 살고 있는 고양이 모리뿐이라며 위트있는 답변으로 순간 웃음이 가득한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했다.
그녀가 생각하는 그녀 자신은 어떨까. 서로 다른 관점에서 그녀를 바라보기로 하였다.

Q:”가족이 보는 아주”
A: 처음에는 고삐 풀린 강아지였다가 요즘에서야 자리를 잡아가는 막내딸, 여동생, 이모 정도가 되지 않을까요? 아버지 큰언니는 연락을 안 드리니까… (이하 생략).

Q:”자기 자신이 보는 아주
A: 마치 활화산에서 터져 나온 뜨겁지만 거친 용암과 같을 것 같아요. 그 역동적인 용암 안에는 아주 괜찮은 지질 시대의 지층이 될 가능성이 있구요. 물론 이는 제가 하기 나름이겠지요.

Q: “친구가 보는 아주”
A: 친구들이랑 종종 이에 관해서 이야기를 해보는데, 아마 가끔은 불안정하고 기복이 있기도 하지만, 점점 안정시키면서 살아보려고 애쓰는 친구라고 말하죠.

아주 작가가 그려내는 그림과 글은, 즉 텍스트와 그림 그리고 이미지들이 경계 없이 하나로 보인다.

글이기도 하고 그림이기도 한 동시에 글도 그림도 아닌 제 3의 발화체인 이코노텍스트의 문법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그녀가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작품을 통해 글과 그림의 만남 뿐만 아니라 모든 영역이 함께 만날 수 있는 것을 꿈꾸는 듯하다.

그림에서 묘사되는 손과 발의 놀림은 마치 실제인 것 처럼 아주 자연스럽다. 어릴 때부터 몸에 베어서 나온 듯한 살아있는 움직임을 통해 그녀는 감정을 전달한다고 했다.
글이나 말, 표정으로도 충분히 감정을 전달할 수 있지만 그녀는 이를 살짝 비틀어 손과 발의 미묘한 움직임으로만 이를 전달하려고 한다. 이를 완벽히 그려내기 위해서인지는 몰라도 그녀는 손기술이 참 좋았다. 이를 통해 작품을 그려내는데, 독특하게도 가족을 배경으로 하는데 작품마다 필명과 등장 인물들의 이름이 모두 다른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매 작품마다 그림에 맞는 필명을 사용하고 싶어 의도적으로 작가명을 바꾼다는 그녀의 말이 왠지 신기하고 독특한 시도처럼 느껴졌다. 요즘에는 사이바라 리에코의 우리집, 아다치 미츠루의 h2, 마츠모토 오카자키의 서플리를 좋아한다는 그녀에게서 얼굴에 미소를 가득 띄고 책을 읽고 있는 맑은 아이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본격적으로 아주 작가의 작품을 알아보자.
홍연이의 세상이라는 작품을 통해 그녀는 자기 자신의 성장과정을 홍연이라는 인물을 통해 노래하고 있다. 사우디 파견 노동자로 떠나신 아빠, 어디에 가서 아버지 없이 컸다는 말을 듣더라도 부끄럽지 않을 사람으로 자식들을 키우겠다며 온 몸을 다해 가게를 하며 힘들게 세 아이를 키우는 엄마, 그런 엄마를 보고 세상엔 남자가 우성 인자로 빛춰지지만 아주 작가에게 있어서 남자는 열성인자일뿐이다..


그리고 질풍 노도의 길을 걷는 민정 언니, 개구쟁이 영재 오빠, 그 공간 속에서 홍연에게 유일한 친구는 비어있는 스케치북이였다. 항상 불안하고 부족한 집에서 아무 말 없이 오랜 시간을 함께 지낼 수 있는 스케치북이란 누구보다 가까운 친구이고, 또 하나의 가족이었다. 스케치북을 친구삼아 그림을 그리는 그 자체가 아름다운 세계, 그녀의 세상이었다.

삼수니라는 작품에서는 작가는 힘들고 지친 삶을 죽을 힘을 다해 이겨내는 방법을, 그리고 살아가야만 하는 자신과의 처절한 내적 갈등을 보여준다. ‘꽃들에게 희망을’이란 책에서 나오는 줄무늬 애벌레의 삶처럼 더 나은 삶을 위해 여러 환경들을 접하면서 위에 있는 봉우리만 보고 무작정 올라갔지만, 누군가를 밟고 쓰러뜨리는 경쟁을 거쳐 올라간 꼭대기 기둥은 그냥 하나의 봉우리에 지나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처절한 현실을 두 눈으로 목격하며 슬럼프에 빠지기도 했지만 ‘괴물로 남지 말고 사람으로 남자!’라는 마음을 먹고 다시 세상에 나와서 만난 것들은 너무나도 다르고 다양한 사람들이었다. 사회 생활을 하면서도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사무치게 일하고, 미치도록 집중해보면서 살아 간다는 것.
그녀는 그렇게 살았다.
그리고 작가로서 살아가면서, 떠날 때에는 미련없이 떠나는 삶의 단편들이 이 작품 안에 아름답게 모여
있었다. 이러한 그녀의 모습을 작품을 통해 접해보면서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한편으로는 그런 치열한 삶을 살아온 그녀가 부러웠다.

2년 후에 다음 작품을 계획하고 있는 그녀는 작업물도 많이 쌓아놓고 이를 통해 적당히 돈을 모아 6개월 정도 자기 자신에게 휴식을 주고 싶다고 하였다. 여유롭게 살면서 전시도 하고, 책도 내고 싶다는 그녀의 굳은 다짐을 들으면서 다음 작품이 더욱 기대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작가들을 취재하면서 항상 궁금했던 점들에 대해 그녀의 생각을 들을 수 있었다.
아주 작가에게 있어 만화란 표현 방식의 하나로서 음식으로 표현하면 친구 같은 막걸리라며 위트있는 멘트를 전했다.
죽을 듯이 하는게 아니라면 하지 말라고 한 누군가의 말을 빌어 본인은 즐겁게 살 것처럼 작품을 하겠다고 했다. 자신이 작업에 흥미를 느끼고 만족하면서 그 결과물이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지고 읽혀지게 되고, 그리고 이를 통해 안정적인 생계 수단으로 자리잡을 수 있는 조화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이 소망이라고 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모든 것들을 글과 그림이라는 과정을 통해 하고 싶을 때까지 미친듯이 해보는 것이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라며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다.
그녀를 알게 된지 며칠 되지 않았지만 누구보다 그녀를 오랫동안 옆에서 지켜봐 온 것 처럼 너무나 많은 것들을 알고 배울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1월 16일 “만화저널 세상을봐” 편집국에서 아주 작가를 다시 만났다.
웹툰으로만 소개되었었던 작품의 원화를 보여주기 위해 꽤 무거워보이는 4권의 바인딩북을 다 챙겨오면서도 힘들어하는 표정 하나 없이 맑고 밝은 얼굴로 들어서는 그녀를 반가운 마음에 냉큼 그녀를 껴안았다.
잠깐의 순간이었지만 홍연이, 삼수니, 그리고 지금의 그녀가 함께 안겨왔다.

두시간전부터 미리와서 기다리고 있었던 많은 만화 애호가들로 북적이며 시끌시끌한 가운데 웃으면서 이런저런 많은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었다.
다들 예쁘다라는 말에 수줍음과 함께, 태어나서 예쁘다라는 말을 이렇게 많이 들어 본 적은 처음이라며 부끄러워하면서도 좋아했다.시간이 흐르고 막걸리 몇 잔에 홍조를 띄며 노래까지 불렀다.


시니어 만화창작 동아리인 “누나쓰” 할머니들은 그녀의 캐리커처를 즉석에서 직접 그려주었다. 캐리커쳐를 받아 잘 보관하겠다며 파일에 넣는 아주의 모습에서 잔잔한 행복을 느낀다.
자신의 작품을 알리러 온 것이 아니라 이 기회를 통해 자기 자신을 반성하며 더 열심히 살겠다는 그녀는 어르신들에게 감사하다며 아름다운 재회를 마무리했다. 즐거운 마음으로 거짓 없이 솔직하고 맨몸으로 세상에 뛰어든 듯이 진정성 있는, 아주 작가는 참으로 겸손했다.

야생화같은 삶을 살면서 비록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날들이 있었겠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맑고 밝은 마음을 갖고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 그녀를 만나 행복이란 무엇이고, 무엇이 우리를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드는가? 하는 의문이 잠시 들었다.

행복의 조건에는 정답이 없다. 스스로가 생각하기 나름이며 본인이 정해가는 것이다.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는 얼굴이 더 행복하다는 것’을 그녀를 통해 알 수 있었다. 그녀는 그랬다.

기사에 인용된 모든 작품컷은 아주 작가의 연재 작품중에서 발췌하였습니다.

다음 웹툰: 홍연이 http://webtoon.daum.net/league/view/11746
다음 웹툰: 삼수니 http://webtoon.daum.net/league/view/13669#pageNo=2&sort=recent
여성주의 저널 일다: 아주의 지멋대로 http://www.ildaro.com/sub.html?page=1&section=sc82&section2=%5B/vc_column_text%5D%5B/vc_column%5D%5B/vc_row%5D

정 정숙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닌 웃는 얼굴이 더 행복한 작가 – 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