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posts tagged: 여계봉

여계봉의 산정천리-(7)고군산군도, 그곳에 가면 신선을 만날 수 있을까

선유도와 장자도, 무녀도는 서해 바다에 그림처럼 떠 있다.

늘 그 섬에 가고 싶었다.

바다에 발을 담근 섬 봉우리에 올라 선유8경을 한없이 바라보고 싶었다.

바닷가를 따라 발바닥에 물집이 잡힐 때까지 한없이 거닐고 싶었다.

오늘에서야 신선이 반한 섬 고군산군도를 찾아 떠난다. ​새만금 방조제는 ‘한반도 지도를 새롭게 그렸다’라고 하는 세계 최대의 방조제로, 거칠 것 없는 직선도로 차창 밖으로 산업시설들이 바람처럼 스쳐가고 푸른 바다가 나오면서 자연의 세계로 빨려 들어간다.

신시도 근처에 오니 오른쪽으로 고군산군도 섬들이 도열해서 우리를 반긴다. 선유도가 포함된 고군산군도는 유인도와 무인도로 이루어진 63개의 섬 군락으로 천혜의 해상관광공원이다.

2년전 까지 선유도에 가려면 배편을 이용해야했다. 오늘은 버스로 고군산대교를 건너 무녀도를, 이제 완전 개통된 선유대교를 지나 선유도를, 장자대교를 지나 장자도 주차장에 도착한다.

선유도는 고군산도의 중심 섬이다. 경관이 아름다워 예부터 관광객과 등산객들이 자주 찾았는데, 다리가 개통되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더 잦아졌다. 이제 섬이 아닌 섬이 되었다.

선유도 트레킹 코스는 ‘고군산길’ 또는 ‘구불8길’이라고 부른다. 장자도 주차장을 출발하여 식당촌과 수산물 시장을 지나고 길이 30m 정도 작은 대장교를 건너니 바닷가에 고깃배와 카페촌이 함께 어우러져있다.

팬션 뒤편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대장봉을 향해 산오름을 시작한다. 산자락엔 동백나무와 후박나무가 파란 잎을 반짝인다. 바위를 감싼 해묵은 넝쿨들이 색다른 풍경을 만든다. 밀림 같은 숲을 빠져 나오니 앙칼진 암봉이 떡 하니 버티고 서있다. 암릉 경사면을 따라 한 발 두 발 옮긴다. 단 한 번의 실족도 용납하지 않을 만큼 가파르다.

마침내 대장봉 정상이다. 여기에 서면 선유도 및 장자도가 그림처럼 내려다보인다. 고군산군도 최고의 절경 중 하나다.

선유도와 장자도, 대장도는 평화롭다. 포구 어귀마다 고깃배 몇 척이 출렁이고, 짙게 낀 해무가 하늘빛을 가리지만 아름다움까지 가릴 수 없다. 점점이 떠 있는 섬들은 평범한 그림을 명화로 만드는 화룡점정(畵龍點睛)이다.

선유8경 중 하나인 ‘무산십이봉(無山十二峰)’이 보인다. 바다 건너 북쪽에 한 줄로 선 섬들이 한 폭의 수묵화 같다. 발 아래로 산행 들머리인 대장리가, 장자도의 장자대교 너머로 선유도가 해무로 덮혀 있다. ​대장봉 하산길의 나무데크에서 바라본 선유도 망주봉과 선유도해수욕장은 자연이 그려낸 실루엣 풍경화다.

계단을 내려오면 작은 사당 뒤로 바위 하나가 보인다. 장자 할매바위다. 웅크린 모습이 아직도 무엇인가를 기다리는 듯하다. 대장봉을 내려와 선유도로 들어서기 위해 인도교를 지난다.​ 인도교에서 바라보니 조금 전에 올랐던 대장봉이 해무를 허리에 감고 있다. 주말이라 떼거리로 섬 아래에 몰려든 사람들이 싫었던 것일까.

선유도해수욕장 가는 길에 있는 초분공원은 섬사람들이 전통적으로 해 왔던 독특한 장례문화를 보여준다.

새로 생긴 짚라인 탑승장은 스릴을 즐기려는 손님들로 만원이다. 바다를 가로질러 망주봉 쪽 무인도가 하강지점이다. 해수욕장에서 짚라인 하강장으로 긴 연륙교가 연결되어 있다.

선유도 일대는 청정지역이다. 개발이 항상 최선은 아니다. 자연을 지키면서 최소한의 개발을 해야 궁극적으로 섬도 살고 여행객도 유치할 수 있다.

선유도해수욕장은 명사십리해수욕장으로도 불린다. 모래가 아주 곱고 희다. 유리처럼 투명한 바다와 고운 백사장이 펼쳐진 명사십리 해수욕장는 선유8경 중 2경이고, 그 뒤로 보이는 망주봉은 3경이다. 갯바람에 실려 온 해무가 온 몸을 감싸니 우화등선(羽化登仙), 내가 바로 신선이 아니던가.

망주봉은 산 전체가 하나의 암릉이다. 바위가 미끄러워 등반할 때 로프를 잡고 조심해서 올라야 한다.

망주봉 아래로 노란 유채 밭이 눈에 띤다. 선유도는 오늘도, 내일도, 모래도 신선이 노닐 만한 섬으로 남아야 한다. 때로는 물 위에 뜬 섬으로, 때로는 산 안에 든 물로 살아야 한다. 여행자에게 가슴을 들뜨게 하는 섬으로 남아야 한다.

선유3구 선착장은 군산에서 배가 운항할 때는 활기가 넘치던 어항이었다. 선착장 끝에는 작은 기도등대가 있고, 지금은 고군산군도를 운항하는 유람선이 드나든다.

선유봉은 선유터널에서 20분 정도면 정상에 오를 수 있다. 선유봉을 오르며 잠시 뒤돌아보면 섬을 관통하는 대로 너머로 선유대교가 보인다.

선유도 정상 선유봉(112m)에 서면 5경을 감상할 수 있다. 아름드리 소나무를 품은 산자락이 파란 물색 바다에 발을 담구고 있는 모습이 아름답다. 따뜻한 햇볕은 물색을 옥색으로 만든다. 선유봉 아래 남쪽 옥돌마을은 한가롭기 그지없다. 바닷가에 자그마한 자갈들이 빼곡하게 깔려있어 옥돌해변이라 불린다.

무녀도로 넘어와서 한가로운 어촌 풍경을 보며 바닷가를 걷는다. 이곳은 시간도 잠시 멈춰있는 진정한 ‘섬’이다. 선유도보다 절경은 덜하지만 상업적인 모습이 덜해 오히려 더 찾고 싶은 섬이다.

아쉬움 때문일까. 날이 좋으면 좋은 대로 또 흐리면 흐린 대로 선유도에서의 시간은 빠르게 지나간다.

뭍에서 떨어진 바다에서 펼쳐지는 섬들의 군무를 구경하던 신선들의 발걸음은

 

신시도와 무녀도를 잇는 다리가 놓이는 순간

무녀도와 선유도를 잇는 다리가 놓이는 순간

섬이 곧 섬도 육지도 아닌 것이 되는 순간

 

한꺼번에 사라져 버린 것은 아닐까.

이제 그곳에 가면 다시 신선을 만날 수 있을까.

 

여 계봉여계봉의 산정천리-(7)고군산군도, 그곳에 가면 신선을 만날 수 있을까

여계봉의 산정천리-(6)백운산 자락에 핀 동강할미꽃, 그리고 동강에 흐르는 정선 아리랑

백운산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이 핀 동강할미꽃

동강(東江) 백운산 자락에 사는 동강할미꽃을 만나고 싶어 눈이 드문드문 내리는 강원도 길을 달려서 점재마을에 도착한다. 동강할미꽃을 빨리 볼 욕심으로 다리를 건너자마자 강가로 내려서서 할미꽃 군락지가 있는 영월 쪽 방향으로 1 km 정도 강을 따라 내려 낸다.

동강에 기대 사는 사람들은 이 꽃을 그냥 ‘할미꽃’이라 불러왔다. 그러던 것이 ‘동강할미꽃’이라는 근사한 이름을 얻게 된 것은 동강지역에서만 발견되는 한국 특산 식물임이 밝혀지자 지역명인 ‘동강’을 붙여 세계 학계에 공식 발표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 때문에 학명에 서식지인 동강이 표시되는 아주 귀하고 특별한 꽃이 되었다.

그 즈음 동강댐 건설을 추진 중이던 정부의 정책을 포기하게 만든 주인공이 바로 동강할미꽃이기도 하다.

동강할미꽃은 강원도 평창과 정선 지역을 지나는 동강 주변 석회암 바위틈에서 자라는 야생화다. 동강할미꽃은 꽃이 땅을 보고 피는 일반 할미꽃과는 달리 하늘을 향해 피고 바위틈에서 자라는 것이 다르다.

동강할미꽃과의 ‘짧은 만남, 긴 여운’의 조우를 마치고 이제 노루귀 서식처인 칠족령으로 가기 위해 백운산을 오른다.

백운산은 정선에서 흘러나온 조양강과 동남천이 합쳐져서 이루어진 동강을 따라 크고 작은 6개의 봉우리가 이어져 있고, 동강 쪽으로는 칼로 자른 듯 급경사의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오늘 산행은 점재마을을 출발하여 정상에 오른 후 칠족령을 지나 제장마을로 하산하는 약 9km 코스인데, 산행의 시작과 끝에는 동강을 건너야 한다.

유홍준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국토의 오장육부’라고 표현한 정선, 평창, 영월 땅을 차례로 적시고 흐르는 동강은 험한 석회암 절벽을 굽이돌아 흐르는 전형적인 사행천이다.

백운산 산행의 백미는 뱀이 또아리를 튼 것 같이 굽이굽이 돌며 흐르는 동강의 강줄기를 능선을 따라 계속 조망하는데 있다. 그러나 능선 왼쪽 동강 쪽은 급경사의 단애로 군데군데 위험구간이 있고 경사가 가팔라서 산행 내내 조심해야 한다.

백운산은 오르막도 빡세지만 내리막길도 까칠하다. 정상에서 칠족령 가는 길은 경사가 급한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하여 밧줄구간이 많다. 오늘은 눈 때문에 길이 미끄러워 산객들 모두 긴장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칠족령이란 이름에는 유래가 있다. 옛날 옻칠을 하던 백운산 뒤 선비집의 문희라는 개가 발에 옻 칠갑을 하고 도망가서 그 자국을 따라 가보니 이곳까지 오게 되었는데, 여기서 바라본 풍경이 장관이어서 옻칠(漆)자와 발족(足)자를 써서 칠족령이라고 이름 붙였다고 한다. 이 개 때문에 마을 이름도 문희마을이다.

영월 신동에서 큰 고개를 넘으면 나오는 나래소에서 시작하여 동강을 따라 가수리를 지나 정선까지 이어지는 강변길은 기자가 수 십 년 동안 가슴에 혼자 숨겨두고 몰래 찾았던 비경의 길이었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강변길 주변에 각종 위락 시설과 펜션, 전원 주택지가 우후죽순처럼 들어서 이제 원시의 비경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으니 가슴이 너무 아프다.

제장마을 다리를 건너면서 스마트폰으로 정선 아리랑을 듣는다. 정선은 아리랑의 고장이다. 특히 정선 아리랑은 고단했던 민초들의 삶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소리고 노랫말이다.

그렇다면 이곳에서 널리 알려진 동강할미꽃은 민초들의 들꽃이 아니던가.

그러고 보니 허리를 펴고 정선 아리랑 한 자락 뽑아내는 우리 할미 모습 같기도 하다.

오늘도 동강할미꽃은 동강에 흐르는 정선 아라리 자락에 피고 진다.

여 계봉여계봉의 산정천리-(6)백운산 자락에 핀 동강할미꽃, 그리고 동강에 흐르는 정선 아리랑

여계봉의 산정천리-(5)눈물겹도록 아름다운 길, ​차마고도 호도협 2

이튿날 중도객잔을 뒤로 하고 중호도협을 향해 출발한다. 아침이 되었건만 깊은 산중의 산자락 마을은 아직도 잠들어 있다. 트레킹 내내 만나게 되는 계단식 논과 집들. 이런 척박한 오지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삶을 이어온 나시족들의 강인한 생명력을 실감할 수 있는 모습들이다.

합파설산 위로 펼쳐지는 드넓은 푸른 하늘, 그 위에 몰려드는 엄청난 구름. 어느 순간 푸른 하늘에 나타나 흐르다가 소멸되는 하얀 구름 같은 우리들의 생(生). 그 길목에서 하루를 보낸 호도협의 여정이 먼 훗날 어떤 의미로 남을 것인지.

보들레르 시 ‘이방인’의 마지막 시구가 떠오른다.

나는 저 구름을 사랑한다.

하염없이 흘러가는 구름을 사랑한다.

보라, 다시 보라. 저 불가사의한 구름을.

절벽 길에서 만나는 관음폭포의 시원한 물줄기는 청량함 그 자체다. 이 물줄기는 절벽의 높이가 2,000m나 되는 깊은 계곡을 따라 산 아래 금사강으로 흘러서 들어간다. 호도협 주민들은 폭포에 파이프를 설치해서 생명수로 사용하고 있다.

차마고도는 겨울에도 영상을 유지하기 때문에 길이 얼지 않아 트레킹이 가능하며, 4월이면 산자락 아래 유채 밭에서는 바람을 타고 일렁이는 노란 물결이 장관이다.

일행들과 떨어져 나 홀로 걷다보면 마치 이름 모를 외계의 행성에 와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든다. 해발 3,000m 되는 차마고도 길가에 평안과 안녕을 기원하는 작은 사원이 숨어 있다. 절해고도나 다름없는 이곳에서는 어떤 신앙이라도 나시족 삶의 전부가 되었을 터.

걸으면서 보이는 설산의 청정한 봉우리, 해가 들지 않는 깊은 산중의 적막, 실같이 가늘게 이어진 길, 도도하게 흐르는 물은 태고의 정서를 하염없이 자아내게 하면서 나그네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아침 햇살 때문에 합파설산(5,396m)의 봉우리들은 맞은 편 옥룡설산(5,596m) 산 그림자로 그윽하다. 골짜기는 푸른 연기같은 이내로 넘쳐 저물녘의 연못 같다. 서로 마주보고 선 두 산은 마치 북한산의 원효봉과 의상봉처럼 친구 같은 사이로 느껴진다. 합파설산 자락의 호두나무숲과 대나무숲을 지나면 티나객잔으로 내려가는 가파른 오솔길이 나온다. 땅에 닿을 듯 고개를 숙이고 한참을 내려와야 티나객잔에 도착한다.

1박 2일 16km의 치열했던 트레킹이 끝나는 순간이다.

바로 지금 여기에서 이 시간을 마음껏 누린 우리는 축복받은 존재들이다.

하지만 길을 걸으며 마냥 즐거웠던 것만은 아니다.

천오백년 전부터 집을 떠나 거칠고 황량한 차마고도에서 고단한 삶의 여정을 살아온 마방들.

가족의 생계를 위해 평생을 생명을 담보로 힘겹게 걷고 걸었던 길.

한과 눈물과 애환의 길.

그러나 그들이 걸었던 길고 긴 노정의 끝은 결국 가족이 기다리는 집이 아니었을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은 집으로 가는 길이다.

그래서 차마고도는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길이다.

여 계봉여계봉의 산정천리-(5)눈물겹도록 아름다운 길, ​차마고도 호도협 2

여계봉의 산정천리-(4)눈물겹도록 아름다운 길, ​차마고도 호도협 1

영국의 소설가 제임스 힐튼(James Hilton)이 1933년에 펴낸 『잃어버린 지평선(Lost Horizon)』이란 소설에서 이상향으로 등장하는 가상의 도시 샹그릴라(Sangri-La).

소설 속에서 샹그릴라는 인류가 이상으로 그리는 완전하고 평화로운 상상 속의 세계지만 이 세상 속에서 존재하는 실존의 이상 도시처럼 알려져 많은 히말라야 여행자들이 이상향 샹그릴라에 이르는 길을 발견하지 않을까 하여 히말라야 부근을 기웃거리고 있다. 기자도 그 부류에 속하여 벌써 두 번째 히말라야 자락을 찾고 있다.

“길은 집이고, 집도 길이다. 고로 인생은 길이다.”

역마살이 낀 기자가 평소에 늘 주장하는 해괴한 논리이지만 마음을 열고 길을 나서는 순간, 나를 반겨주는 놀랄 만한 것들이 이 세상에 많다.

그 길에는 풍경뿐 아니라 삶과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차마고도(車馬古道)는 실크로드보다 오래된 교역로로, 당나라와 티벳 토번 왕국이 서로 차와 말을 교역하면서 유래된 이름이다. 윈난성에서 티벳으로 향하는 이 길은 시솽반나(西雙版納)에서 푸얼스(普耳市)를 지나 따리(大理), 리장(麗江), 샹그릴라(香格里拉)를 거쳐 라싸(拉薩)에 이르는데, 리장에서 샹그릴라로 향하는 길목에 호도협이 자리 잡고 있다. 호랑이가 건너다닌 협곡이라는 뜻의 호도협(虎渡峽)은 강의 상류와 하류 낙차가 170m에 이르는 세계에서 가장 깊은 협곡 중의 하나이다.

인천공항을 출발한 지 4시간 만에 쓰촨성 청두공항에 도착하여 공항 근처 호텔에서 눈만 잠시 붙인 후 새벽 첫 비행기를 타고 1시간 걸려 리장공항에 도착한다. 공항에서 호도협 트레킹의 출발지인 교두진을 향해 출발한다. 일행을 태운 버스는 리장 시내를 지나 2시간 만에 상호도협에 도착한다. 나무 계단을 20여분 내려가서 협곡의 끝에 이르면 거친 물소리에 귀가 먹먹해진다. 인도 대륙과 유라시아 대륙의 충돌로 야기된 지각운동은 하나였던 산을 옥룡설산(玉龍雪山)과 합파설산(哈巴雪山)으로 갈라놓았다. 그 갈라진 틈으로 세계에서 3번째로 긴 장강이 금사강(金沙江)으로 이름을 바꾸고 흘러들면서 22km의 길이에 높이 2,000m에 달하는 길고 거대한 협곡을 만든 것이다.

협곡의 물가에 서면 급류에 휘말린 물보라가 거센 포말을 이루며 튀어 오른다. 하얗게 부서지는 물보라와 귓전을 뒤흔드는 물소리에 세상의 온갖 시름이 부서지고, 세상의 온갖 소음은 묻힌다.

호도협트레킹의 시작점은 나시객잔(纳西客栈)이다. 여기서부터 28밴드, 차마객잔, 중도객잔, 티나객잔, 장선생객잔 까지 이어진다. 옥룡설산과 하바설산 사이 협곡에 난 16km 길을 따라 1박 2일 동안 걷게 되는 것이다.

호도협에는 나시족들이 산다. 지금은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숙박업이 더 큰 수입이 되었지만 여전히 옥수수나 곡물을 심고 키우는 일은 나시족의 중요한 일상이기도 하다.

BBC가 선정한 세계 3대 트레킹 중의 하나인 차마고도 호도협트레킹은 수려한 자연 속에서 한 걸음, 한 걸음 느리게 걸어야 한다. 천천히 움직일수록 아름다운 자연이 잘 보이고, 자연으로부터 받는 감동도 더욱 크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전체 트레킹 코스 중 28밴드 시작점에서부터 2km 이상 계속 이어지는 오르막이 호도협트레킹 코스 중 가장 힘든 구간인데, 스물여덟 개의 굽이를 1시간 동안 돌아가며 올라야한다. 이 길을 걷다 보면 경사지고 황량한 이런 곳에 밭을 만들어 곡물을 심고 키워온 나시족들의 어려운 일상을 엿볼 수 있어 힘이 든다고 마냥 불평할 수 없는 처지다.

가파른 길만큼이나 급하게 차오르는 숨을 헉헉거리며 28밴드 정상의 전망대(2,670m)에 서면 감탄사가 절로 터진다. 고개 모퉁이를 돌 때마다 옥룡설산과 금사강이 한눈에 보인다. 호도협 트레킹은 발치에 흐르는 금사강의 옥빛 물결을 즐기며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얼굴을 내민 옥룡설산을 마주 보며 걷는 길이다. 절벽 길 아래로 보이는 상호도협에는 좁은 협곡 사이로 옥빛 물이 흐른다. 지금은 건기라 물이 옥빛처럼 맑지만 우기에는 물이 많이 불어 흙탕물이다.

옥룡설산은 히말라야 동쪽 끝에 위치한 해발 5,596m의 고산으로, 산에 쌓인 눈이 마치 한 마리의 은빛용이 누워 있는 모습과 비슷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 풍경은 생사를 초탈하게 만든다. 용들이 들썩이는 풍경 하나로 일제히 아라한에 이를 듯하다.

나시객잔을 출발한 지 2시간 반 만에 차마객잔(車馬客棧)에 도착한다. 객잔 휴게실에서 옥룡설산을 바라보며 산 기운을 접하면서 칭따오 맥주 한잔으로 갈증을 식힌다.

차마객잔에서 중도객잔으로 이어지는 길은 하얀 몸을 곧추 세운 거대한 산괴가 도열해 있는 장엄하고 경이로운 풍경을 연출한다. 천 오백년 전부터 옛 마방들이 걷던 이 길을 따라 걷다보니 그들이 감내해야 했던 삶의 애환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이곳은 4월부터 우기가 시작되어 6월에서 8월 사이에 절정에 달한다. 이 시기에는 곳곳에서 길이 끊기거나 산사태가 일어나서 사고가 생기기도 한다. 그래서 우기가 끝나는 가을부터 3월까지가 트레킹 적기다.

5,000m가 훨씬 넘는 옥룡설산과 합파설산, 그리고 2,000m 높이의 아찔한 호도협이 만들어낸 경이로운 풍광은 트레킹 내내 끝없는 감탄을 자아낸다. 두 눈에 모조리 쓸어 담기에 족한 함축적인 산경이 파노라마처럼 내내 펼쳐진다. 산을 신이라 불러도 무방하리라.

트레킹 시작한 지 5시간 반 만에 첫날 목적지 중도객잔(中途客栈)에 도착한다. 옥상 휴게실에서 중도객잔의 별미 오골계 백숙으로 원기를 복돋우고, 바이주(白酒) 한잔을 나누며 여정의 피로를 날려 보낸다.

휴게실 벽과 천장은 이곳을 다녀간 우리나라와 외국 산악회의 깃발과 리본으로 도배되어 있다. 밤이 찾아와 중도객잔 전망대의 긴 장의자에 누우면 하늘에서 옥룡설산의 13개 봉우리 위로 쏟아지는 별빛을 마주 할 수 있다. 파란 천공 위를 무수히 수놓은 주먹 별들을 보면 이곳이 선경임을 이내 깨닫는다. 객실의 대형 통유리를 통해 낮에는 은빛용의 등을 연상시키는 하얗고 아름다운 만년설을, 밤에는 하늘을 수놓는 수많은 별들을 볼 수 있다.

객잔 곳곳에 걸린 리본과 플래카드가 마치 룽따처럼 바람에 펄럭인다. 룽따 깃발 아래에 서면 언제나 마음이 설렌다. 바람이 깃발을 지나가면서 내는 소리에 마음이 공명하기 때문이다. 그런 마음의 움직임을 얻으려고 깃발이 생긴 것은 아닐까.

룽따는 소리없는 아우성이 아니다. 사방 하늘을 향해 발복(發福)을 바라는 간절한 외침이다. 결국 색이 바래고 천이 갈기갈기 찢어져 바람과 함께 허공으로 녹아들어 가기까지 복을 부르는 소망이다.

– 다음편에 계속 –

여 계봉여계봉의 산정천리-(4)눈물겹도록 아름다운 길, ​차마고도 호도협 1

여계봉의 산정천리-(3)순백의 황산(黃山)에서 구름바다(雲海)를 건너다 2

배운정은 시야가 확 특여 황산의 기암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최고의 명당이다. 구름과 안개가 서해의 골짜기들을 휘감아 솟아오르다가 이곳에 이르면 저절로 갇혀져서 물리칠 배(排)에 구름 운(雲)을 써서 배운정이라 부른다. 배운정에서 바라본 서해대협곡은 맺고 이어진 주변 산세가 마치 용의 모습, 흐르는 듯 멈춘 듯 솟은 듯 숨죽인 듯 쉬는 듯 꿈틀대는 운무…이를 내려다보니 걷지 아니면 갈 수 없고 보지 아니면 맛볼 수 없는 환희심이 사방에 걸쳐 있는 듯하다. 서해대협곡에 솟아 있는 기암괴석들을 보면 금강산 만물상을 몇 십 개 포개 놓은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작은 정자 지행정(知行亭)에서 ‘아는 것을 행해야 참지식이다.’를 되뇐다. 정자 지붕에 얹힌 눈을 문득 쓸어가는 바람결이 예사롭지 않다. 나그네의 헛 욕심도 바람결에 씻기고 있다.

두번이나 황산에 오른 명나라 지리학자 서하객은 “5악인 태산(泰山), 화산(華山), 형산(衡山), 항산(恒山), 숭산(嵩山)을 보면 다른 산이 생각나지 않는데, 황산을 보고 나면 5악도 생각나지 않는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광명정에 서면 황산의 일출과 일몰, 서해대협곡과 정상인 연화봉까지 모두 조망할 수 있으나 오늘따라 운무에 잠긴 기상대 건물만 어렴풋이 보인다.

재선충병 때문에 죽어가던 황산 소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황산 주변 10km 근방에 있는 소나무를 모두 제거하였더니 그 자리에 자연스럽게 대나무들이 자라게 되었고, 항균성이 강한 대나무 덕분으로 재선충병이 황산에 접근하지 못해 황산 소나무들이 안전해졌다고 한다.

고도 1,500m가 넘는 이곳에는 북해빈관을 비롯하여 서해빈관, 사림빈관, 백운빈관 등 네 곳의 호텔이 있다. 북해빈관 수 백석 대형 식당 내부는 손님들로 가득하다. 산정까지 일일이 식재료를 짊어서 나르는 짐꾼들 정성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깨끗이 그릇을 비운다.

나무도 숲도 계곡도 하늘도 일체가 묵언에 들어 있다. 백아령 가는 잔도를 걸으면 세속에 찌들었던 몸과 마음이 설국에서 깨끗이 헹구어지는 기분이다.

불구부정(不垢不淨). 사실 우리의 생각이 변덕을 부릴 뿐 본래 더러운 것도 깨끗한 것도 없는 것이 아니던가.

문득 솔향기도 유난히 코끝을 스친다. 깊은 산중에 숨어 있어도 골짜기를 타고 흐르는 자신의 향기는 숨길 수 없는 것처럼…

오늘 하루 황산 너른 품 가슴께에 살포시 안겨 잔도를 함께 걸은 나그네들은 기운이 싱싱하고 다사롭다.

백아령에서 운곡 케이블카를 타고 하산한다. 운해를 뚫고 발 아래로 펼쳐지는 비경은 그야말로 선경이다. 황산의 바위틈에서 천년을 살아온 소나무를 보면 자연의 위대함에 보잘것없는 나를 되돌아보게 되고, 이들로부터 인고의 지혜를 배운다.

오늘 우리가 걸었던 황산의 잔도는 뱀처럼 구불구불한 원만한 곡선이다.

덜컹거리는 사각이 번뇌라면 원만한 원은 해탈이다.

오늘 하루 번뇌에서 해탈한 신선이 되어 선계(仙界)의 꿈결 같은 구름바다를 거닐었던 신선노름도 케이블카가 운곡 승강장에 도착하면서 끝이 난다.

굽이굽이 산길을 돌아 황산 대문에 도착하니 이제 서야 꿈과 이상의 판타지 구운몽(九雲夢)에서 깨어난 것 같았는데 시간은 겨우 두 나절만 지났다.

여 계봉여계봉의 산정천리-(3)순백의 황산(黃山)에서 구름바다(雲海)를 건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