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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으로 경험하는 영성 – 어슬렁 강릉 뮤지엄산 <제임스 터렐>전

시각으로 경험하는 영성

어슬렁 강릉 뮤지엄산 제임스 터렐전

 

사진출처 : 뮤지엄산 홈페이지

원주 뮤지엄 산에 다녀왔다. 어슬렁 강릉 프로젝트의 마지막을 장식한 뮤지엄산은 사실상 또다른 일정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었다.

솔직하게도 뮤지엄산을 방문하기 전 나는 제임스 터렐에 대해 터럭만큼도 아는 것이 없었다. 콘트리트 외벽을 먼저 연상하게 되는 안도 타다오의 건축에 대한 기대만 가득했다.

공유의 맥심광고 속 뮤지엄 산

원주의 아름다운 자연환경 속에 폭 파묻혀 있는 뮤지엄산을 감상하면서 그다지 큰 기대 없이 제임스 터렐의 전시관으로 들어섰다.

아…

수많은 말들이 떠오르는 순간 가라앉았다.

모든 것은 빛과 어둠 그리고 공간이 만들어내는 마법으로 가득했다.

일생동안 거쳐왔던 수많은 사원들과 종교 건물들 그리고 명상을 위한 미로와 같은 장소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그러나 단언컨대 제임스 터렐이 만들어낸 이 공간과 같은 곳은 아직 경험하지 못했다.

 

이러한 공간을 창조한 이가 누군지 절로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아무런 마음의 준비없이 찾아간 것에 대한 아쉬움이 가득했다.

 

궁금증을 해소하려 찾아 본 제임스 터렐은 누구인가. 그는 1943년 엄격한 퀘이커 부모 아래 태어났다. 아버지는 비행기 엔지니어였고 어머니는 의사였다. 터렐은 16세에 항공기 조종 라이센스를 취득했고 대학에서 지각 심리학을 전공했다. 빛으로 그리는 아티스트로 알려져 있고 가장 유명한 대표작은 로든 크레이터 프로젝트이다. 하늘 위를 나는 조종사로서의 경험과 심리학도와 미술학도로서의 경험이 묻어 있는 듯한 그의 작품들은 다양한 앵글에서 감상할 수 있지만 무엇보다도 위에서 바라보는 시선이 압도적이다.

이러한 것을 보여주는 것이 그의 가장 대표작인 로든 크레이터 프로젝트(Roden Crater Project)이다. 그가 1979년 애리조나 주 북부에 위치한 페인티드 사막 가장자리의 사화산 분화구를 직접 사들여서 작업하기 시작했다. 아직도 완성되지 않은채 진행중이란다. 버킷 리스트에 올리고 언젠가는 방문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방문에서 만난 원주 뮤지엄산의 제임스 터렐전은 총 다섯 개의 작품으로 구성돼 있다. 이중 스페이스 디비전은 일정 시간대와 우천시에만 운영한다. 우리 일행은 시간대도 맞지 않고 비가 오지 않아 감상이 무산돼 아쉬움이 남은 프로그램이다. 비오는 날 방문하는 이에게 뜻밖의 좋은 감상 포인트가 될 것 같다.

사진출처 : 뮤지엄산 홈페이지

첫 전시공간인 ‘스카이스페이스’는 로마 판테온 신전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을 선사한다고 설명돼 있다. 열린 하늘을 바라보는 느낌과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이 바쁜 일상을 잠시 잊게 한다. 주위 사람들이 아닌 나 자신을 마주한다는 도슨트의 설명이 절실히 와닿다.

‘웨지워크’는 빛이 거의 차단되다시피 한 어두운 통로를 지나서 만나는 공간이다. 빛이 암전된 공간과 고요한 공간을 손으로 붙잡은 가드레일에 의지해 더듬더듬 걸으며 긴장하기도 했다. 밤눈이 심하게 어두워 동행한 이의 발을 밟는 실수를 하는 등 당황과 혼란속에 어둠의 공간을 지나고 나서 만나는 약한 빛이라니! 빛의 환영을 이용한 시각 효과가 놀라움을 선사했다. 이 장소 또한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겠다. 그저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며 내가 보는 대로만 믿을 수는 없다는 것을 경험한 곳이다.

‘간츠펠트 효과(Ganzfeld Effect)’로 알려진 간츠펠트 공간은 다양한 색으로 변화하는 스크린을 감상하고 스크린 뒤에서 숨겨진 반전을 만나는 곳이다. 진실의 의미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 볼 수 있다고 한다. 심리학에서는 인간의 시각적 기억이 얼마나 왜곡돼 있고 부정확한지 다양한 실험 결과들이 있다. 이곳 또한 시각 자체가 주는 감각이 현실과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 직접 경험하는 곳 이다. 마치 마술쇼를 보는 듯한 놀라움마저 주는 작품이었다.

호라이즌 룸은 가장 경건한 느낌이 들었다.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 볼때 갖는 무대효과와 더불어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사각의 입구를 향해 걸어 올라갈때의 기대감과 간절함이라니. 아.. 다만 더 좋은 공간이었을 수 있었음에도 현대 자본주의가 끼어들어 분위기를 망친 아쉬움에 대해서는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그러한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공간이었다.

뮤지엄산은 건축 거장 안도 타다오의 작품으로만 알고 가볍게 방문해서 머리로 망치를 맞은 듯한 강렬한 경험을 선물받고 나온 곳이다. 처음에는 알지 못하는 곳을 그냥 방문한데서 오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러나 곱씹어 생각해보니 무지한 상태로 만났기 때문에 더 큰 감동을 만난 것 같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비오는 날 꼭 이곳에 다시 한번 방문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당신이 눈에 보이는 것만 믿는다면 언젠가 그 믿음에 배반당할 수 있다는 진실을 만나는 이 공간을 꼭 방문해 보길 바란다.

 

후니시각으로 경험하는 영성 – 어슬렁 강릉 뮤지엄산 <제임스 터렐>전

커피와 정치가 있던 청탑다방에 다녀오다

강릉, 명주동 뒷골목에서 청탑다방을 만났다.
간판도 맘에 들었고, 강릉 정치 일 번지였다는 점이
더욱 나의 발목을 잡았고, 시선을 모았다.
안에 들어가 보고 싶었으나, 굳게 닫혀있어서 몹시 아쉬웠다.

커피숍의 역사와 유래를 공부할 때
역사 속 카페들이 의식있는 시민들의
정치, 예술, 문화, 사회의 공론장이 되거나
토론, 담소의 장이었다고 배운 것도 생각이 났다.

청탑다방!
1959년 개점이후 지역의 정,관, 언론계 인사들의
단골집으로 명성이 자자하여
강릉정치 일 번지를 자랑하였던 곳,
강릉시와 명주군에 시장과 군수가 새로 부임하면
반드시 들러 인사를 했을 정도였고,
국회의원 등 정치권 인사들도 명절에 들려서
시민을 만나 담소를 나누던 곳이었다.
단골손님중에 애국지사 김삼 선생도 있었고,
최각규, 김진선 전 지사 등 강릉을 거쳐간
굵직한 인물들이 많았다고 한다.

정호돈 전 강릉문화원장도
1989년 강릉부시장으로 부임하면서 청탑다방에 들려
부임인사를 했을 정도로
강릉의 주요 인사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었던 곳으로
오랫동안 단 돈 천원으로 커피를 팔았다고 한다.


사람들은 단 돈 천원에 커피를 마시며,
오늘의 신문을 읽고,
당시의 정치를 담소하였던 것이다.

청탑다방의 대표였던 전영자씨는
단골 손님들이 많이 돌아가시고 집도 너무 낡아서
어쩔 수 없이 문을 닫게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나는 커피를 좋아하고 커피숍을 좋아한다.
그 맛과 향에도 반했지만,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는 그 자체가 좋다.
그리고 또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하려고 마신
커피 그 자체가 좋기도 하다.
맛있는 커피를 만드는 것이 좋고
그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대접하는 것도 좋다.

커피의 역사에서 커피하우스는
꽤 오랫동안 사회활동과 의사소통의 중심지였으며,
사회의 근본을 흔드는 혁명의 근거지였다.

미국 독립혁명의 시발점이 된 보스톤차 사건은
‘그린 드래곤 인 태번 앤드 커피하우스(Green Dragon Inn, Tavern and Coffeehouse)’에서
모의되었고,
미국의 독립선언문(Declaration of Indepedence)이
최초로 일반 대중 앞에서 큰 소리로 낭독된 곳은
필라델피아의 상인들이 만든
‘머천트 커피하우스(Merchant Coffeehouse)’가
이름을 바꾼 ‘시티 태번(City Tavern)’이었다.
시티 태번은
지금의 미합중국(United States of America)으로
발전한 대륙회의(Continental Congress)의
공동회의장이기도 하였다.

조지 워싱턴, 토마스 제퍼슨, 존 애덤스 같은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지적인 대화와 마음을 터놓는 교류”를 나눈다는
명목으로 드나든 커피하우스였다.
미국의 독립과 건국은
커피하우스에서 볶아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초창기 미국의 커피하우스는
사람들의 의사소통과 토론과 공론이
모이는 장소였다.
커피하우스가 생겨나자
사람들은 그곳에 모여 커피를 마시는 것은 물론이고
체스와 같은 게임을 즐기고
그날의 뉴스를 논하고 노래하고 춤추기도 했다.

커피하우스가 자연스럽게
교양있는 사람들이 모여
공론의 장을 제공하자
자연스럽게 정치· 경제 문제에 대한
토론과 함께 통치자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일반인들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커피점은
1554년에 오스만 투르크가 지배하던 시절의
콘스탄티노플에서 처음으로 생겨났다.
물론 그 전에도 메카나 카이로 등
이슬람 지역 여기저기에
커피하우스는 많이 있었으나
일반인이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유럽 최초의 커피하우스는
1650년 영국에서 생겼는데
곧 커피하우스는 전염병처럼
나라 전역에 전파되어 없어서는 안될
만남의 장소로 자리를 굳히게 되었다.

영국에 커피하우스가 처음 나타날 때는
고등교육을 받고 활발한 사회활동을 보이던
부르조아 집단이 새로운 사회의 주도계층으로
부상하던 때였다.
커피하우스는 주로 부르주아 상인과
지식인들이 서로 만나고 교류하는 장소가 되었고
곧바로 공개적인 토론으로 이어져
순식간에 각종 경제와 정치 문제로 확대되었다.

1페니만 내고 커피 한잔을 사서
하루 종일 커피하우스에 앉아 남들이 나누는
이와 같은 토론과 대화를
모두 들을 수 있었기 때문에
영국의 커피하우스는
1페니 대학교(One penny university)로
불리기도 했다.

영국의 커피하우스들은
저마다 단골손님의 유형이 달랐다.
작가들이 즐겨찾는 커피하우스가 있었던 반면,
의사, 정치가, 상인, 변호사, 성직자, 무역업자,
뱃사람들이 즐겨찾는 커피하우스가 따로 있었다.

주간지 ‘태틀러(The Tatler)’와 ‘스펙테이터(Spectator)’ 같은
언론지도 모두 커피하우스에서 탄생했다.
당시 태틀러의 편집자였던
리차드 스틸(Richard Steele)은
태틀러의 주소를 주로 과학자들의
정보교환의 장소였던
‘그레시안 커피하우스 (Grecian Coffee House)’로 기재하고
그 곳에서 기사를 쓰고 편집했다고 한다.

특정 고객층이 단골 커피하우스에 모여
자유롭게 의견과 정보를 교환하게 되자
곧 커피하우스는 우체국 역할도 하게 되었다.
즉 특정 고객들이 출입하는 커피하우스를 기반으로
편지나 신문의 발송과 배달을 조직화한 것이다.

커피하우스에 자루를 걸어놓으면
편지를 보내고 싶은 사람은 그 자루에 편지를 넣고,
어느 정도 편지가 모이면 배달하는 시스템이었다.
국가에서도 1683년에
이러한 방식의 우편제도를 도입하였는데
당시 우체국뿐 아니라
커피하우스도 편지를 모으는 장소로 지정했다.
1710년대 파리에는 300여 곳이 넘는 카페에서
사람들이 모여 앉아 수다를 떨고 있었고
보르도, 낭트, 리옹 마르세유 등
프랑스의 다른 대도시도 마찬가지였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1789년 당시만 해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문맹이어서
사람들은 뉴스를 입소문으로
들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파리의 카페에서는
마치 영국의 1페니 대학교처럼
글을 읽지 못하였더라도
신문지면을 가득 채운 뉴스를 들을 수 있었고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도 말할 수 있었다.

이런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
마침내 1789년 7월 14일
파리의 카페 ‘드 포아(de Foy)’에서
“가자 바스티유”라는 외침과 함께
프랑스혁명의 대서막이 오르게 되었고,
커피하우스는 사회의 대변혁을 이끄는
혁명의 근거지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커피를 마실 때
맥주나 물처럼 후루룩 마시지 않는다.
천천히 음미하며 마시면서 책을 읽거나
대화를 나누거나
혼자서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커피하우스의 역할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변하고 있다.
오늘날의 커피점은
더 이상 사회와 정치활동의 중심이 아니다.

예전의 커피하우스가 네트워크의 장소라면
요즘은 오히려 고립의 장소이기도 한다.
또한 정치, 경제, 사회의 이념을 소통하는 곳에서
단순히 커피라는 상품판매점으로 전락하였다.
또 어떤 이들은 화장실을 찾거나,
와이파이를 이용하기 위해서
커피숍을 이용하기도 한다.

나는 부천에 청탑다방 하나 있었으면 한다.
시민들이 모여 자신이 사는 도시의 성장을 위하여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이슈문제를 공론화하여
더 좋은 방향을 찾아보기도 하고
지역의 다양한 사람들과 작품과 멋을 만날 수 있는
부천만의 청탑다방,
1년 8개월전 시민공익을 위하여
우리가 만든 공간
시민공익플랫폼 채움이 만들어가고 싶다.

시민들의 속삭임이 살아서 정계를 흔들고, 바로잡고,
도시가 함께 성장하는 꿈틀꿈틀되는
부천의 청탑다방이고 싶다.
오드리와 서블리가 만든
우리 채움이.

(돕는 글 : 채움 단체는 의정모니터링을 하는 시민공익활동 단체이며
시민활동을 위하여 열린 공간을 운영하고 있으며, 시민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음.
운영을 돕고자 자체수익활동으로 핸드드립 커피를 판매하고 공간대관 사업을 하기도 함. )

아무튼 강릉에도 또다른 청탑다방이 다시 문을 열기를 바래본다.

오드리 기자커피와 정치가 있던 청탑다방에 다녀오다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커피와 아름다운 카페가 있는 곳, 강릉!

커피를 마시러 카페를 찾는 현대인들은 맛있는 커피도 중요하지만 커피를 마시는 카페가 주는 그 아름다운 공간에다 의미를 더 부여하는지도 모른다. 그 공간은 나만의 특별한 자리인 동시에 혼자인 내 자신을 이해해줄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파도 소리가 들리는 아름다운 바다를 배경으로 커피를 마신다고 생각해보자. 문득 들려오는 매미소리에 귀 기울여지고 요즘같이 무더운날, 그보다 나에게 더 좋은 선물은 없을 것이다. 바다와 커피가 떠오르고 예쁜 카페가 많은 도시, 이번 ‘만저봐 워크샵’을 위해 우리는 강릉으로 떠났다.

차와 커피의 도시로 유명한 강릉, 그 배경에는 산과 바다 호수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자연과 대관령에서 내려오는 맑고 깨끗한 물이 있다. 그래서인지 강릉은 차의 역사가 깊은 곳이기도 하다. 백두대간의 깊은 골짜기에서 흘러내린 석간수로 차를 달였으며 차를 즐기는 사람이 다른 지역보다 많았다고 하는데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바로 ‘물 맛‘때문이라고 한다. 그 물 맛의 역사는 신라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000년 전 신라의 화랑들이 차를 마시던 ‘한송정’이 있을 만큼 예전부터 차를 즐겨 마시는 고장이었으며 ‘한송정’ 정자 주변에는 화랑들이 차를 달여 마실 때 사용한 다구(茶具)가 남아 있다고 한다. 그곳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차 관련 유적지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현지인들은 커피 맛의 비밀이 바로 물 맛이라고 주장한다.

1980년대에는 조용한 어촌 마을이었지만, 인스턴트 커피 자판기가 5~6대 설치된 후 부터는 바다를 보며 자판기에서 뽑아 먹는 커피가 세상에서 가장 맛있다고 입소문이 나면서부터 시작된 ‘안목커피거리’는 어느덧 데이트 장소로 주목받으면서 본격적인 카페거리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카페, 커피 관련 소품이 가득한 앤티크 카페, 로스터가 직접 커피를 볶고 바리스타가 직접 커피를 내리는 카페들이 있는 곳이라면 분명 일상 생활에서 평범하게 접하는 커피보다 비교할 수 없는 맛을 경험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이 든다. 강릉에 커피 붐을 일으킨 드립커피 1세대인 박이추 선생, 커피공장 테라로사의 김용덕 대표, 숯불 로스팅의 대가인 심권섭 대표 등은 강릉을 커피의 성지로 이끈 주역들이다. 커피로 지역을 특화시키려는 강릉시와 시민들의 안목이 빚어낸 결과 강릉에는 안목해변, 정동진해변, 경포해변 등지에 수많은 커피전문점이 생겨났고, 이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이렇게 무수하게 강릉에 자리잡은 커피 전문점의 시초는 커피와 문화를 접목하기 위해 테라로사의 김용덕 대표가 2002년 고향인 강릉시 구정면에 세우게 된 커피 로스팅 공장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후 안목에서 커피전문점으로 시작하여, 우리나라 최초의 커피농장과 함께 커피 박물관 또한 개관하며 커피를 성공적으로 문화에 접목시키기 시작하였다. 그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2009년에 열린 제1회 강릉커피축제를 시작으로 강릉은 이제 차와 커피의 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작년에 테라로사를 방문해서 마셔본 커피 맛을 잊을 수가 없다. 그때의 커피맛에 대한 향수는 비록 커피 그 자체 뿐만이 아니라 산 속에 자리하고 있는 커피 공장 안을 가득 채운 앤티크함 또한 일조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강릉하면 이제는 바다보다 먼저 커피, 카페, 그리고 테라로사를 생각하게 된다. 이제는 대중화된 커피 전문점 스타벅스의 본고장인 미국 시애틀처럼 한국을 대표하는 커피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강릉에 거주하고 있는 이현정 작가는 자주 다니던 카페를 시작으로 개인이 운영하는 카페를 스케치하여 글과 그림을 통해 시리즈로 소개하고 있다. 작가가 소개하는 카페들은 강릉의 아름답고 맛있는 커피를 다 접할 수 있는, 누구나 가보고 싶은 곳들이다. 직접 가보지 않더라도, 작가의 글과 그림을 보면 누구라도 당연하게 이에 동의할지도 모른다. 멋진 인테리어를 갖추고 있지 않더라도, 카페라는 공간 안에 녹아있는 장인들의 철학과 정성, 그리고 그 공간에서 묻어나오는 원두 내음이 사람들을 어느새 사로잡고 있다. 사람들은 이 커피 맛과 풍광을 잊지 못해 전국 방방곡곡에서 주말과 평일을 가리지 않고 찾아온다고 한다.

카페인 강릉 #5 ‘GAEROCK게락’ ⓒ이현정

카페인 강릉 #12 웨이브라운지 ⓒ이현정

우리는 작가가 소개한 카페 ’게락’으로 갔다. 들어서자마자 내 눈에 들어온것은 아담한 카페 안 쪽에 마련되어 있는 로스팅 공간이었다. 찾아오는 손님에게 신선한 품질의 원두를 공급하기 위하여 직접 생두를 수입하여 로스팅을 한다는 그 공간만 보아도 사장님의 커피 철학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곳을 찾아온 고객들은 커피 만드는 과정을 직접 보고 커피가 움직이는 소리를 듣고 커피 향을 맡으며 커피를 마시고 직접 원두를 만지는 등 모든 감각을 동원해 최고의 커피를 경험하는 곳이었다.


오감으로 마시는 커피, 정말 아무나 쉽게 접할 수 없는 커피를 그 날 우리는 만난 것이다. 커피에 대한 철학과 자부심과 친절함이 물씬 풍기는 사장님의 따뜻한 강의와 더불어 게이샤 커피의 유통과정과 여러 커피들이 선사하는 또 다른 세계를 접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한 시간이었다. 단순히 ‘그윽하다, 은은하다’ 라는 단어로 표현하기에는 너무나도 부족한 맛과 향을 가진 게락의 게이샤 커피는 정말 마시기 전까지는 그 맛을 짐작할 수 없을 것만 같은 그런 커피였다.

두 번째로 방문한 ‘웨이브 라운지’는 책과 음악이 가득한, 좋은 사람들이 만나서 커피와 맥주를 즐길 수 있는 곳으로 들어서자마자 높은 천장과 넓은 공간, 그리고 꽂혀있는 많은 책들이 나를 반겨주었다. 그곳에서 커피 전문 강사인 경성현 선생님으로부터 커피에 관한 고급 강의를 들었다. 우리나라에 90년에 처음 들어 왔다는 원두커피의 유래와 역사, 맛있는 커피를 먹을 수 있는 방법, 커피를 내리는 여러 기구들, 어렴풋이 알고 있는 원두 내리는 방법 등 잘못 알고 있었던 상식들을 바로 수정해 주시고 손수 내려주신 맛있는 핸드드립 커피를 웨이브 라운지에서 맛 볼 수 있었다. 내가 그 전까지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커피에 대한 지식들이 한층 더 강화되는 한 편의 강의와도 같은 시간이었기에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더불어 카페를 소개해준 이현정 작가에게도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커피는 각성효과가 있어 정신을 맑게 하고, 집중력을 향상 시키며 편안함을 선사한다. 그만큼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커피는 없어서는 안 될 만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고, 커피 소비 또한 하나의 문화로서 자리잡게 되었다. 어렸을 적에 커피는 인스턴트 커피가 전부였지만, 이제는 커피 원두의 종류도, 즐기는 취향도 사람마다 나라마다 다르고 세분화 되었다. 이는 비단 커피 자체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강릉이라고 하면 이제는 카페 거리뿐만 아니라 커피 도시라는 지역 문화와 조화를 이룬 타이틀도 얻게 되었다. 고객의 습관과 소비가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고객의 요구를 끊임없이 연구하고 예측하는 곳, 카페! 장인 정신이 묻어 나오는 프리미엄 급 커피와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지만, 그런 매장에서 한 잔의 커피를 매개로 고객에게 음료뿐만 아니라 편안한 공간과 즐거운 추억을 선사할 수 있는 곳으로 진정성 있게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한다. 더불어 강릉시 또한 앞으로도 시민들과 지자체 차원에서 커피와 문화를 융합시키는 노력이 계속되어 언제 어디서나 장인들의 손맛을 만날 수 있는 커피의 도시로 성장했으면 한다. 강릉시가 세계적인 커피의 도시로서 발돋움 할 그 날이 머지 않음을 느낀다.

 

정 정숙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커피와 아름다운 카페가 있는 곳, 강릉!

어슬렁 강릉 – 봉봉방앗간

강릉에 계시는 작가님을 통해 많은 정보를 접하였지만
현장에서 본 봉봉방앗간은 방아를 찧는 소리와 기계를 볼수가 없다.

대신 낮선 커피냄새와 떡대신 코를 자극하는 과자와 빵냄새가 스믈스믈 올라온다.

그때 그 사람은 어디로가고 껍데기는 그대로인데…
사람은 가고 없구나…. 옆집의 소나무는 이 모두를 알고 있겠지…

화선지에 수묵 담채로 그리다 크기 69×70 

장 대식어슬렁 강릉 – 봉봉방앗간

뮤지엄 산 따라 걸어보니

‘느린 걸음으로 마음을 따라 산책하십시오.’라고 쓰여있었지만 느리게 걷진 못했다. 1박 2일로 강릉 커피 투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뮤지엄 산에 대해 입소문을 많이 들었다. 다녀온 지인들마다 다시 가보고 싶은 곳이라 했다. 아침 일찍 강릉을 출발해 시간을 쪼갰지만 둘러볼 수 있는 시간은 2시간뿐이었다. 산속으로 산속으로 이런 산속에 무슨 박물관이나 미술관이 있을까 싶었다. 입장료도 비쌌다. 한솔 문화재단에서 운영한다 했다. 원래 개인이 하는 갤러리나 박물관은 좀 비싼 편이긴 하다. 비싼 입장료만큼 뭔가 있을 것 같아 은근히 기대는 됐다.

웰컴센터를 나와 오솔길을 따라 올라갔다. 군데군데 특색 있게 만든 조형물 사이에 패랭이꽃과 자작나무 숲이 우거진 플라워 가든이 펼쳐있다. 아이들을 데리고 온 부부가 꽃밭에서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한다. 내게도 저런 시절이 있었지만 이제는 되돌릴 수 없는 시간. 다음에 손자가 태어나면 꼭 와야지 생각하며 잰걸음으로 걷다보니 눈앞에 빨간 아치가 나타났다. 꽃잎 왕관 같은 아치 둘레에 맑은 물이 흘렀다. 꼭 야외 결혼식장 같다. 아름다운 한쌍의 신랑 신부가 저 멀리서 걸어올 것 같은 착각에 빠져 한참을 바라봤다. 그렇게 워터 가든을 지나 본관으로 들어서니 안내 표지판을 제대로 보지 않으면 길을 잃기 십상인 미로 같은 공간들이 기다리고 있다.

뮤지엄 산(Museum Space Art Nature)은 미니멀한 건축물의 대가 ‘안도 타다오’가 설계한 거였다. 안도 타다오는 이 부지를 보고 아름다운 산과 자연의 아늑함을 느꼈단다. 그리고 그가 받은 인상을 그대로 건축에 반영했다. 대지와 하늘, 사람을 떠올리게 하는 본관은 네 개의 윙(wing) 구조물이 사각, 삼각, 원형의 공간들로 연결되어있었다. 그동안 잊고 지낸 삶의 여유와 자연과 예술 속에서 휴식을 선물하고 싶은 건축가의 마음이 담겨있단다. 그래서일까? 단순하면서도 이 미로 같은 공간을 돌아보는데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편했다. 2시간이라는 시간이 속절없이 흘러도 아무 걱정 없이 시간을 잊어버렸다. 그렇게 종이박물관과 미술관, 박남준 전시관과 트라이앵글 코트를 둘러보고 야외에 있는 스톤 가든으로 나갔다. 설치예술가 제임스 터렐의 작품을 보려면 뜨겁게 달구어진 돌무덤들을 지나야 만 했다.

쨍쨍한 햇빛이 내리 꽂히는 한 낯, 신라의 고분을 모티브로 만들었다는 스톤 가든을 걸으며 잠깐 생각에 잠겼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빛으로의 여정’을 경험하기 위해선 불편과 수고로움을 감내해야 한다는 것을….

제임스 테렐의 작품들은 감상이라기보다 체험이었다. 독실한 퀘이커교도였던 부모님에게 받은 정신적 수련과 엄격한 교육, 거기다 천문학과 심리학, 미술, 수학을 심도 있게 연구한 그의 열정이 작품세계를 완성하는 자양분이 되었단다.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으로 그의 작품에 빠져들었다. 하늘을 향해 열려있는 스카이 페이스(Skypace), 천국의 계단 너머 이상 세계를 꿈꾸게 하는 호라이즌룸(Horizon Room), 어두운 통로를 지나 마주하게 되는, 빛이 만들어낸 모호한 경계 웨지워크( WedgeWork)와 시시각각 다양한 색으로 변하는 스크린과 그 스크린 속으로 들어가 바라보는 빛의 향연 간츠펠트(Gazfeld). 하늘과 빛과 어둠속에서 마치 우주 공간을 여행하는 자유로운 영혼이 되는 순간들이었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처럼 헤어 나올 수 없는 오묘한 세계 빠져 있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세상 밖으로 나왔다. 우리가 약속한 시간은 훌쩍 지나버렸다. 다녀온 지인들마다 이구동성 다시 와보고 싶다는 말을 나도 중얼거리고 있었다. 다음엔 시간을 많이 가지고 느린 걸음으로 천천히 마음을 따라 산책해야겠다고…….

 

 

한 성희뮤지엄 산 따라 걸어보니

방앗간에 참새가 없고 다방에 커피가 없지만 동네엔 사람이 있다

내 기억 속의 강릉은 이별의 장소다.

특히 경포대의 밤바다는 이별을 더욱 참담하게 짓눌렀던 칠흑과 다르지 않았다. 군입대를 며칠 앞두고 친구들과 찾았던 강릉 경포대 밤바다를 바라보며 느꼈던 감정들이 지금도 생생하다. 두려움, 아쉬움. 그리고 이별의 고통. 나와 내 사랑하는 친구들에게 눈알을 부라리고 있는 입대 영장만 없었다면 얼마나 낭만적이었을 것이며, 얼마나 뜨거웠을 바다란 말인가.

1988년의 기억에 존재하는 강릉과 경포대는 그렇다. 정확히 30년이 지났다. 이젠 그 기억을 완전히 지워버려도 좋을 만큼 아름답고 명징한 기억을 담아 왔기에 강릉에 대한 편견을 버릴 것이다.

꽤 오랜만에 찾은 강릉은 품격이 있었다. 암담한 이별을 앞둔 바다에 불과했고, 까짓거 좀더 쳐주면 오죽헌과 선교장이 유명하다. 그리고 해송이 그럭저럭 펼쳐져 있던 바다 뒤편에서 입에 넣던 순두부의 슴슴한 맛밖에 떠올릴 게 없는 곳. 보잘 것 없는 기억만 가졌던 내게 오래된 동네, 명주동이 품격을 선물했다. 덕분에 다시 찾을 땐 더 즐거울 것 같다.

강릉의 오래된 동네 명주동.

과거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고, 다가올 미래의 풍파에 의연하게 대치하고 있는 동네다.

명주동의 과거를 버티고 있는 몇 군데 포인트가 있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곳이 봉봉방앗간이다. 견뎌온 세월을 짐작할 수 있는 겉모습과 달리 명주동을 찾는 이들에게 가장 힙한 공간이다.

*홍상수의 고해성사적(?) 영화라고 오해 받는 <밤의 해변에서 혼자>. 배경 중 하나였던 강릉 명주동의 봉봉방앗간 앞에서 영희가 불륜의 무용함과 부끄러움을 되새기며 담배 연기를 내뿜고 있다. 그들의 사랑이 한 가치의 연기만큼 가벼운 것은 아니었을 텐데.

아주 오래 전엔 참새가 때마다 들러서 배를 채우고 가던 진짜 방앗간이었고, 지금은 커피를 팔고 여러가지 다양한 전시와 문화를 지역 주민과 관광객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방앗간의 자격을 잃고 나서 10여년 동안 방치되었던 건물은 누군가에 의해 새생명과 새 임무를 부여 받았다. 이런 스토리텔링만으로도 봉봉방앗간은 유명해지기에 충분한 자격을 얻었다.

커피의 도시로 급부상한 강릉. 사람들이 몰려드는 곳마다 생겨나는 수많은 강릉의 카페들이 있다. 그러나 분명 봉봉방앗간은 그것들과 다른 결을 가지고 있다.

근대건축물의 외형을 훼손하지 않고 가지고 있는 것도 좋고, 원래 방앗간이었던 곳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카페 이름을 지은 것도 좋고, 문화와 예술을 품고 있는 것도 좋다. 핸드드립 커피만을 고집하는 덕분에 당연히 커피맛도 좋지 않을까.

그래서 다르다.

*홍상수의 영화에서 그랬듯 봉봉방앗간 앞에는 자전거가 딱 1대 필요하다. 그래야 봉봉방앗간스럽다. 그 오래 전 참새들이 들르던 곳에 이젠 자전거가 들러준다.

18세기 유럽. 그 무렵부터 유행이 시작됐던 유럽의 카페는 남자들만 이용할 수 있었다. 금녀의 구역이다. 여자들도 사교를 위해 이야기를 나누고 남자들의 험담을 늘어놓을 공간이 필요했을 텐데. 그러면 어디서 모였을까? 당시의 여자들은 집에서 모일 수밖에 없었다.

이 모습은 유교의 생활 관습이 지배하던 우리의 과거의 장면들과 겹친다. 우리 조상, 선비 사대부들이 얼마나 여인들을 하찮게 여겨 왔는가. 정겨운 느낌을 떠올릴 법한 우리네 ‘사랑방’도 담론을 즐기는 장소였지만 실상은 여자들에겐 절대 금지 구역이었다.

명주동엔 봉봉방앗관과 더불어 또 하나의 인상적인 곳이 있다. 1959년부터 영업을 시작했다는 청탑다방이다.

청탑다방. 어디에서 유래된 것인지 유추해볼 수 있는 단서가 있다.

앞서 언급한 18세기 카페의 이야기로 잠깐 다녀와보자. 카페에 출입이 금지된 여자들은 끼리끼리집에서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차를 나눴다. 그 자리에서 문학과 예술을 논하고 미술 작품을 보고 품평을 했을 것이다. 이런 모임을 싸롱이라고 했다. 대개의 여자들은 이런 모임에 참석할 때 주로 검은 양말을 신었는데, 일부 리더적 경향이 강하거나 개성이 짙은 여자들은 푸른 양말을 즐겨 신었다고 한다. 이들을 블루 스타킹 소사이어티(Blue Stocking Society) 라고 불렀다. 카페에서 향 좋은 커피를 나누며 자기들만의 리그를 향유했던 반페미니스트적 심성의 남성들은 이런 여자들이 당연히 못마땅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들을 비아냥거리며 부르는 말로 이 푸른 양말(blue stocking)’을 갖다 붙였다.  ‘지식과 문화 예술을 탐미하는 여성’을 비하하는 말로 쓴 것이다. 얼마나 옹졸한가. 그리고 푸른 양말은 동양에서 한자어로 ‘청탑(靑鞜)’이라는 말이 대치됐다. ‘푸른 양말’을 한자어(語)로 만들었음을 미루어 짐작해볼 만하다.

명주동의 청탑다방의 가게 작명도 이 단서와 왠지 연관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여기 강릉 명주동에도 청탑다방이 있고, 서울 명동의 한복판에도 일제 시대의 경성 멋쟁이들이 드나들던 청탑다방도 있었다.

지금은 세월의 무게와 현실의 회계장부를 견디다 못해 2011년부터 영업을 종료한 상태다. 이렇게 매력적인 근현대 건축물이 아무 기능도 못하고 있다니 애석하다. 후문에 의하면 영업부진으로 폐업을 한 것은 맞는데, 건물에 대한 권리 관계가 너무 복잡해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라 한다.

몇몇 초로의 신사들이 청탑다방의 문을 열고 들어선다. 함경도에서 피난와 자수성가한 박갑철 씨도 있고 다음 국회의원 선거에 도전을 할 지역 유지 오만득 씨도 보인다. 또 강릉에서 한가락 필명을 날리고 있는 시인 고구만 선생도 보인다.
저녁 식사겸 거나하게 한잔 걸치고 나서 커피를 마시고 한바탕 썰들을 풀려고 모여든 것이다. 과연 강릉의 정치 1번지다운 모습이다. 다방 안 난로 옆의 따뜻한 자리들은 이미 먼저 온 신사들과 노인들에 의해 점령당했지만 뭐 어떠랴. 단아하게 늙어가고 있는 청탑다방의 여사장님이 이들을 반갑게 맞으며 자리를 안내한다.

그런데 이젠 청탑다방에서 커피를 마실 수 없다. 다방에 커피가 없으니 이젠 무어라 불러야 하나.

*이 낡은 건물이 한때 강릉의 유명정치인들과 유력 인사들, 문화, 언론계 명망가들이 모여 앉아 커피를 마셨던 청탑다방이다. 이곳이 청탑다방임을 알리는 간판이 두 개 있는데, 파란색 간판은 청탑다방이라서 너무 자연스러운데, 출입구 위에 있는 빨간색 바탕의 간판은 어색하다. 왜 이렇게 배치를 했을까. 빨간 알약, 파란 알약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영화 <매트릭스>의 주인공인 네오의 운명과 맞닿은 것은 아닐까?

강릉 명주동의 골목길. 야트막한 담장 너머로 동네 주민들의 사는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군데군데 아직 형체를 보존하고 있는 적산가옥도 있고, 끼니 걱정하며 살던 시절의 주택도 개발이 안 된채 버티고 있다. 누군가의 수고 덕분으로 골목길을 꾸미는 그림도 있고 예쁜 화분들도 많다. 그러나 늘 그래왔듯이 돈의 논리로는 이곳을 이대로 둘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이곳에 터를 지어 살고 있는 사람들의 등을 떠밀어 떠나게 할지도 모른다.

기회가 되어 다음에 이곳을 찾았을 때 몰라보게 달라지지만 않길 바랄 뿐이다.

 

글 / 김현국 (만화 콘텐츠 기획자, 스튜디오달 대표)

 

 

김 현국방앗간에 참새가 없고 다방에 커피가 없지만 동네엔 사람이 있다

카페인 강릉 #8. 싱그러운 초록빛의 풍경과 눈부신 채광이 아름다운 카페, ‘엉클밥Uncle Bob’

아주 잠시 망설인 것 같다.

Hello~라고 할것인가,안녕하세요~라고 인사 할 것인가를…
찰나같은 순간이었지만 치열한 갈등 끝에 용기내어 헬로우~ 라고 인사했더니
벽안의 사장님이 내게
네~안녕하세요~ 라고 화답해주신다.
그 억양이나 발음이 보통의 외국인들의 한국어와는 상당한 차이가 느껴져서
흠칫 놀랐다.

-한국말 잘하시네요~
-네 그럼요. 한국인이니까요~
-네? 귀화하신거예요?

하며…우린 대화의 물꼬를 텄었고…
밥 사장님의 유창한 한국어덕분에
<엉클 밥>을 처음 간 그 날…꽤 많은 대화를 했던 기억이 난다.

백발에 참 사람좋아보이는 얼굴을 한, 미.드.나 헐리웃 영화 어디선가 본듯한 인상의 밥 삼촌.
미국인이었으나 8년전부터 한국인으로 살고 있다.
주중엔 대전에 있는 한 대학에서 회계학을 가르치고, 주말엔 카페를 지키고 계신다.
평소엔 아내분이 카페에 계시는데 이분은 오리지널 한국인이다.
국제 결혼이 흔치않던 시절에 특별한 선택을 하신 두 분이
참 멋져보이기도 하고 로맨틱하게 느껴진다.

<엉클 밥>은…주말에 바다보러 가는 길에 지나가면서 늘 유심히 보곤 했던 카페다.
건물 자체도 워낙에 눈에 띄는 외관을 하고 있지만
주변에 카페 몇 채를 제외하곤 온통 논 뿐이라 더더욱 눈에 잘 들어왔다.
사방이 확트인 논 앞에 덩그러니, 예쁘게 지어진…
미국식 주택같기도 하고 산토리니 느낌도 물씬 나는 카페 엉클밥.
국경일에도 미처 게양하는 걸 잊기 십상인 태극기가
엉클밥이라는 지극히 미국적인 영어이름을 지닌 카페 외부에
마치 건물의 일부인 것처럼 늘 걸려있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기도 하고 궁금해서
꼭 한 번 가보고 싶은 곳이었는데…
커피 한잔 테이크아웃하러 어느 날 들어가봤더니…
그렇게 카페 간판에 그려진 캐리커쳐와 똑같이 생기신 서양인 노신사가 나를 맞이해주었었다.

일단 들어와보면
이곳은 밖에서 볼 때 느껴지던 이미지와 사뭇 다르다.
우선 천장이 꽤 높고 사방이 창으로 나있어서 채광이 때론 눈부시다 싶을만큼 너무나 좋다.
그리고 카페 한 쪽 창을 가득 채운 초록빛의 논을 보노라면,
눈이 시원해진다.
마음은 더 없이 편안해진다.
한번도 같은 색깔인 적 없던 바다도 내겐 매력적이지만,
초록색이 사람에게 주는 안정감과 싱그러운 이 느낌도 참 그에 못지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어느 자리에 앉아도 창문으로 저마다의 예쁜 뷰가 보이기 때문에
어디 앉을지가 늘 고민되는 곳.

그래도 내 자리다 싶은 곳은 늘 있는 법인지,
혼자 갈 때면 늘 해가 가장 잘 들어오는 쪽 8인용 긴 원목테이블에 앉곤 한다.
바닷가나 관광지에 위치한 게 아니기에 동네 카페처럼 여유있는 분위기일 때가 많아서
그런 민폐스런 행동을 감행해도 크게 눈치보이진 않는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면 연한거? 진한거? 어떤거 좋아하냐고 꼭 물어봐주시는데
진한거 달라고 하면 투샷으로 주시는데 추가비용이 따로 없다.
심지어 요즘은 정말 어느 카페에서도 거의 해 주지 않는 무료리필까지도 가능하다.

카페 창문에 크게 사장님이 직접 적어놓은
It’s not the coffee,It’s the People!
이 문구가 바로 이 카페가 지향하는 바인데…
손님들을 대하는 두 분의 모습을 보면,
커피로 돈을 벌겠다는 것 보다는
사람이 좋아서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는 그 진심이
정말로 느껴진다.

사람.
카페하면서 가장 좋은 점은 사람을 만나게 되고 알아가는 것이라고.
누구나 편견없이 대하면서 그 사람만의 특별함을 알게되는 것이 참 즐겁다고 하신다.

카페 공간이 자기 집 거실같다는 밥 사장님.
커피마시러 오시는 분들을 자기 집에 온 손님처럼 생각한다고.
실제로 카페에서 쓰는 물건들도 본인 집에서 쓰던 것들이 많아 남다른 애착이 있어보였다.
내가 즐겨앉는 긴 테이블도 집에서 쓰시던 거라 하시며 애정가득 담은 눈빛으로
손으로 테이블을 한번 쓸어보는 모습에서
얼마나 아끼는 가구를 손님들과 셰어하고 있는지가 느껴진다.

젊은 시절 미팔군으로 잠시 다녀갔던 한국에 대한 기억이 너무 좋았던 나머지
미국으로 돌아가서는 한국으로 다시 올 수 있을 만한 직업이 뭐가 있을까를 고민하다
회계사로 진로를 정하고, 결국 그 일 덕분에 한국에 올 수 있게 된 밥 사장님.
워낙에 일을 좋아하는 스타일이라 한국식 직장문화도 너무나 잘 맞아서
치열하게 일에 파묻혀 지내다
은퇴 후 아내분의 고향인 이곳 강릉에 터를 잡게 되었다.

남들은 여유롭게 쉴만한 나이인데도,
대학 강단에도 서며 여전히 젊은 시절 못지않는 열정으로 살고 계신 밥 사장님.
잠시만 대화를 나눠보아도 그 열정적인 에너지가 전해지는 듯하다.

사방에서 쏟아져들어오는 환한 햇살만큼이나
눈부신 그 열정,
참 멋진 삶을 살고계시는 것 같다고 말씀드렸더니
본인도 그렇게 생각한다며 맞장구치신다.
그리고 이렇게 살아 갈 수 있는 현재의 삶이 너무나 감사하다고.

혼자 조용히 한참을 이곳에 있어도
울적해지거나, 센치해지는 게 아니라,
자연이 선사해주는 초록 빛깔의 싱그러움과 밝은 햇살로
왠지 기분이 좋아지는… 그러면서도 마음이 차분해지는 이곳.
처음 간 손님에게도 늘 오던 단골인 것처럼 친근하게 대해주시는
사장님 부부 덕분에 슬쩍 에너지도 생기고
무언가 힐링이 되는 것 같은 이곳.

기분전환이 필요할 때…
너무 과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몇 번이고 원한다면 리필해줄꺼라는
넉넉한 사장님의 인심가득 담긴
이곳의 커피.
한번 꼭 드셔보시길 권한다.
덤으로
나이는 정말 숫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몸소 보여주시는
밥 사장님의 넘치는 열정도
느낄 수 있으니.
무엇보다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두 분의 꽤 괜찮은 삶의 철학도 맛볼 수 있으니.

 

 

이 현정카페인 강릉 #8. 싱그러운 초록빛의 풍경과 눈부신 채광이 아름다운 카페, ‘엉클밥Uncle Bob’

카페인 강릉 #7 행복의,행복을 위한,행복에 의한 베이커리 카페 ‘앤ANNE’

행복이란 단어만큼..
설명하기 다소 막연하고,
애매한.
길가는 열 명에게 물어보면 열 명 다 대답이 다를 것 같은 단어가 또 있을까.
사랑보다 오히려 더 정의가 어려워 보이는 이 단어, 행복.
타인의 삶에는 쉽게 그 단어로 수식할 수 있어도
내 삶을 수식하거나 정의할 때
사용하기에는 어딘가 모르게 쑥스럽고 멋쩍은…
어른이 되어갈수록 왠지 잘 안쓰게 되는 것 같은 이 단어를…
난 오늘 모처럼
정말 많이…들었다.
그것도 타인에게
자신의 삶을 설명하는데 사용된 수식어로.

베이커리 카페 <앤>의 사장님.
그는 지금 현재의 삶이 너무 행복하다 했다.
지금이 너무 좋다고 한다.
행복하다. 행복하다. 행복하다.
아무리 말해도 그가 느끼는 행복감을 다 표현하기에는 부족함이 있는지…
정말이지 수십번 그 단어를 반복해 말했다.
그가 그 ‘행복’을 위해 지불한 그 모든 기회비용들이
남들 눈엔 하나같이 아까워보일만한 것들인데도
정작 그 자신에겐 하나도 아까워보이지 않았다.

청담동 프리마호텔 베이커리파트 총책임자.
전(前)대통령들의 생일파티나 각종행사들…집권정당의 중요한 행사들마다 들어가던,
행사의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키는 삼단케잌들 대부분이
다 그의 손에서 만들어졌다.
베이커리 출신으로 총조리장을 하는 예는 거의 드물기에
사실상 더 이상은 올라갈 곳 없는 최고의 자리에 있던 베이커리 총책임자.
이제 갓 파티시에의 길을 걷고 있는 이들에겐
롤모델이자 꿈의 자리로 보일만한
그 화려해보이는 이력을 뒤로 하고
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는, 강릉에 온지는 이제 일 년 남짓.

내가 자주 걸어다니는 동선에 위치해있던 까닭에
카페가 오픈하기 전 인테리어 할 때부터 내 관심을 끌고 있던 이 카페.
서서히 오픈날짜가 다가오면서 외관에서도 뭔가
아기자기하고 예쁜 느낌이 전해지면서 기대감이 증폭되고 있던 차에
그저 카페였으면 아…또 생겼나부다 그 정도였을텐데…
베이커리 카페라는 간판이 달린 걸 보는 순간!
빵순이 취향 저격.
이보단 더 기쁜 소식은 없었다.

몇해 전 강릉으로 이사 와서 바로 그 다음날인가… 이 곳 지리도 전혀 모를 때,
빵사러 나갔다가 빵집을 못 찾아서 급실망하고 빈손으로 집으로 돌아오던 그 날의 기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집을 나서면 바로 시야에 들어오는 베이커리만 해도 여러개여서
어디서 살지를 고민하던 서울과 달리
한참을 돌아다녀도 빵집하나 없는 이 곳 환경은 내게 너무 낯설었고,
빵순이인 내겐 꽤나 충격적이고, 암울했던지라…
유난히 빵집간판만 보면 남다른 애착같은 게 생기는데..
베이커리와 커피의 조합인 베이커리카페 앤은..
내겐 정말 취향저격이었다.

데생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자주 앤에 들러
주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켜 마셨다.
빵을 노래를 부르더니 커피만 주로 시킨 까닭은
아메리카노 한잔에도
너무너무너무 맛있는 갓 구워낸 쿠키를 곁들여서 내주셨기 때문에
이것이 진정 베이커리 카페의 극장점이로구나 하며…
굳이 따로 뭔가를 주문한 필요성을 못느꼈었다.
달지 않고 건강한 느낌의 딱 홈메이드 쿠키맛.
그러나 내가 구운 것과는 차원이 많이 다른…비교도 안되게 맛있었던 쿠키.
그리고 또 워낙 유행이어서 집에서도 사용하던 아이템이었지만,
막상 또 다른 곳에서 만나게 되면
감탄부터 하게 되는 손잡이 달린 예쁜 유리병.
거기에 한가득 채워 나오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그 둘의 조합은 판타스틱했고,
맛도 훌륭했지만,비주얼도 꽤나 그럴듯해서
갈때마다 사진부터 찍어댔었다.
초여름 더운날
머리가 멍해질정도로 그림그리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들러서 누리는 그 짧게만 느껴지는 그 힐링 타임은
여전히 아련하게 생각날만큼 내겐 참 소중했다.

넓지 않은 카페이지만 혼자 앉아서 그림그리고 책읽고 있어도
별로 눈치보이지 않고, 어색하지 않아서 참 좋아하고 편안했던 곳인데.
수업 종료와 더불어 그리고 걷기보다 차로 이동할 일이 많아지면서
통 발걸음을 못하다가
<카페인 강릉> 작업을 위한 실로 모처럼만의 방문이었다.
그리고 듣게 된 사장님의 라이프스토리.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에서 처럼…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임을…
그와
그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함께 오는…
한 사람의 일생이 온다는

시인의 그 표현이
딱 공감되는…

그런 시간이었다.

성실하고 부지런한 가장이셨던 아버지.
지금은 일하느라 바쁘게 살지만
은퇴하면 여유있게 많이 누리며 살꺼라고 늘 말씀하시던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앞에서
삶의 가장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었다는 사장님.

남들이 보기엔 이루고 싶고 올라가고 싶은 자리에 있었고,
자신도 나름 즐기며 최선을 다해 그 일을 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은 이대로 살면 안되겠다고 결심했다고.

정말 자기가 원하는 삶이 뭘까를 고민하다
자신이 일에 끌려다니는 삶이 아니라,
본인이 컨트롤 할 수 있는 삶.
일도 자기가 원하는 만큼, 즐거울 수 있을 만큼,
본인의 행복에 손상을 주지 않을 만큼만 하고.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내 삶의 여유와 행복을 저당잡히지 않고,
조금 덜 벌더라도
삶의 소소한 즐거움들을 누리고, 여유를 즐기며
살기로 결정한 뒤,
그동안의 모든 삶을 뒤로하고 작년 오월,
한적한 지방 소도시 강릉에 내려와
베이커리 카페를 오픈했다.

그리고 지금,
이 세상 누구보다 행복하게 하루하루를 누리며 살고 계신다.

어떻게 하면 돈을 더 잘 벌수 있고, 어떻게 살면 더 사람들 앞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그이지만,
굳이 그런 선택을 하지 않는다.
행복은 이미
돈에 있지 않음을.. 유명세에 있지 않음을…
누구라도 다 알고 있는 사실이긴 하지만
막상 현실앞에선 돈이나 명예에 끌려다니는 삶을 선택하기 십상인데…
흔들림없이 본인의 결정대로 지금까지 잘 지내올만큼.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그의 삶 가운데 던져준 파장은 꽤나 컸고,
본인이 원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의지는 더욱 확고했다.

어떤 빵이 잘 팔리는 아이템이 되는지도 너무나 잘 알지만
그만큼 일이 많아지면
그만큼 자신이 누릴 수 있는 여유도 줄어들게 되고
그러면 자신이 지켜오고 있는 이 소중한 행복감에
조금이라도 손상이 갈까봐
예민하리만큼 조심하는 모양새다.

화려했던 이력만큼
호텔 베이커리샵에서 흔히 보게 되는
이름도 생소한 특별한 빵들을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생길 법 한데도
보편적인 맛을 내는 빵들을 만드는게 원칙이라 말씀하시는 사장님.
그리고 당일생산 당일판매에다
조금씩만 만들어내기 때문에
단체주문도 많아지고
입소문도 많이 타고 있어
다소 바빠지는 듯한 느낌이라,
또 다시 삶이 원치않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을 피하기 위해
필요이상의 주문은 받지 않으며 끊임없이 상황을 컨드롤해가고 있었다.

사업자본 백프로를 본인이 투자한 카페이지만
함께 일하는 직원과 수익을 똑같이 절반으로 나눠갖는다는 사장님.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된다하더라도
본인이 가진 상식으로는 그래야만 맞다 했다.
이 카페에 대한 주인 의식이 있어야
직원도 자신처럼 행복하게 일하면서 돈을 벌 수 있으므로
과감하게 그런 원칙하에 수익을 분배하고 있다고.

참 멋있다.
자신의 행복만큼이나 타인의 행복도 소중하게 생각하는 그 마음.
손님들에게도 그러한 마음으로 대하는 것인지…
오가는 손님들과 대화나누는 폼이
옆집 형같고, 동생같고, 친구같다는 생각이 들만큼
참 친근하고 진실하게 느껴진다.

그런 작은 누림이 행복하다 했다.
손님들과 알아가고… 함께 식사도 하기도 하고…
바르셀로나에서 온, 지금은 친구가 된 손님이 고향의 빵 맛을 그리워하자
바르셀로나식 브런치를 만들어 대접하기도 하고…
텃밭에서 나는 채소들을 이웃과 함께 나누어 먹고
옆집에서 분양해준 식물들이 자라는 것을 보고 기뻐하며
그렇게 소소한 즐거움을 귀하며 여기며 살아가는 삶.

행복하지 않을 수 없어보였다.

행복을 잡으려하고, 쫓아가려하면
오히려 잡히지 않을 것 같은데,
그저 이렇게 행복을 소중하게 여기고 가꾸고 누리는 사람에겐
그 행복이란 것이…
늘 곁에 함께 있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행복을 곁에 두고 사는 삶.
그 곁에 있으니
나도 덩달아 행복해지는 듯했다.

이 세상 그 누구보다 행복한 파티시에가 만드는 빵이 있는 카페.
그 특별한 맛은 아마도…
먹어본 사람만이 알듯하다.
많이 팔아 많이 벌려고 만든 빵이 아니라,
내가 행복하기 위해 만들어가고 있는 빵이 아니던가.
출발부터가 아예 다른 이 베이커리 카페.
그동안 삶이 너무 분주했다면…
꼭 한번 들러보시길 권한다.
빵과 커피뿐만 아니라
이곳엔 우리가 그토록 갈망하지만 쉽게 쟁취하지 못하는
그 ‘행복’이라는 것을
이미 누리고 있는 자의 여유가 있다.

이 현정카페인 강릉 #7 행복의,행복을 위한,행복에 의한 베이커리 카페 ‘앤ANNE’

카페인 강릉#6 블랙,그린,메탈의 조화로움 그리고 캔커피가 있는 곳, ‘어웨이크 크랙’

크랙을 깨우라니…
직역하니 어째 뜻은 더 모호해지는 듯 하다.
의역을 해보려해도 도무지 감이 오지 않는다.
도대체 무슨 뜻으로 지은건지
진심 궁금했던 카페, 어웨이크 크랙.

이름도 그렇고 카페 외관이나 인테리어도 그렇고
서울 삼청동 예쁜 브런치 카페들 틈바구니에 있어도 조금도 주눅들지 않을만큼
아이덴티티가 매우 확실한 이 카페.
요즘 대세라는 니트로 커피를 강릉에서 가장 먼저 들여온 곳이고,
무엇보다 이 카페의 가장 특징적인 캔에다 커피를 담아주는 아이템은
우리나라 전체 카페시장으로 봐도 선봉 격으로 들여온 이 카페.
이런 카페가 강릉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왠지 모르게 뿌듯해지고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예전에 검색만을 믿고 간 카페에서 한번의 시행착오가 있었기에
선뜻 내키지 않았으나
내가 가본 카페만을 대상으로 작업하는데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어서
검색해서 리스트업해둔 곳 중 정말 궁금했던 곳 중에 하나인 이곳을
조심스레 타깃으로 정했다.

교동 택지에 위치해 있음에도
관광객들도 꽤 많이 찾아온다는
이곳을 포스팅한 블로그마다 칭찬 일색인…
심지어 이 카페 오려고 강릉으로 여행온다는
누가 보면 알바썼나 싶을정도의 팬심 가득한 글들을 한참을 읽고 갔었다.

블로그 맛집 소개를 백퍼센트 믿을 만큼 나이브하진 않지만
그래도 한 번 백프로 믿어보고 싶을 만큼
진심이 묻어난 소개글들을 읽고나서였는데,
그래도 실망하지 않기 위해서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며 크게 기대하지 않은 채 갔었다.
그런데 결론은 나도 아마 지금 팬심 가득한 글 한 편 쓰게 될 듯하다.

트렌디한 카페 어웨이크 크랙.

교동택지의 번화한,복잡한 느낌의 다른 블록들과는 좀 달리
이곳은 사뭇 공기마저도 다르게 느껴질만큼 조용하고 한적한 블록에 위치해있다.
그리고, 같은 블록에 다른 예쁜 카페들도 몇 개 같이 있다보니
이 블록 자체에 동반 이미지 상승효과까지 있어서
이곳은 좀 더 특별하게 느껴지고
왠지모를 고급스러운 느낌마저 든다.

누가봐도 카페 건물이 이 카페를 위해 지어진 것처럼 보일만큼
건물자체가 카페 이미지가 너무 잘 맞아떨어져서
이런 질문은 거의 잘 하지 않는 편인데.
혹시 건물이 본인 소유시냐고까지 물어봤었다.
비록 사장님 건물은 아니었지만,
어쩜 이렇게 맞춤옷처럼 딱 맞게 카페 장소를 찾으셨는지..
사장님의 그 안목이나 감각이 꽤 훌륭하다 싶고,
발품팔아 오랜시간 카페에 걸맞는 최적의 장소를 물색했을 그 노고도 느껴진다.
어쨌든 그 노고는 헛되지 않았다.
최적의 장소에다 최적의 건물이니까.

건물 외벽에
어웨이크 크랙이라고 감각적으로 써놓은 네온사인 간판외에
작게… 마치, 문패라도 되는 것처럼
꽃집,커피집 이라고 한글 궁서체 세로쓰기로 정직하게 써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어지간하면 영어로 도배되기 십상인게 카페 간판인지라,
정직한 글씨체의 그 작은 한글 문패가 난 꽤나 맘에 들었다.
참 감각있어 보였다.

문패에서 보여지듯,
이 카페는 샵인샵처럼 카페안에 공간을 나누어서 한쪽은 꽃집으로 사용하고 있다.
꽃집 사장님은 마침 유럽출장중이시라 만나보진못했지만,
말이 꽃집이지 꽃집이라기 보다는 꽃으로 아트를 하고 계신 듯했다.
천장에 매달아 놓은 감각있는 드라이플라워들의 면면을 봐도 그렇고
여기저기 카페 내부에 내추럴한 감성의 식물들과 화분들만 봐도
보통 감각은 아닌 듯했다.

특히 눈에 띈 건 초록초록한 싱그러운 화분들도 참 좋지만
살짝 톤다운된 식물들만 의도적으로 골라서 배치해놓은 듯한
카페 한 쪽 선반에 놓여진 넝쿨 식물들이었는데,
너무 세련되고 감각있어 보여 카페에 앉아있는 내내 그곳에 시선에 머문다.

그리고 그 식물들과 잘 어울릴것 같지 않은데 너무나 잘 조화를 이루고 있는
블랙과 메탈의 카페 인테리어.
전반적으로 극도로 깔끔하고 미니멀한 느낌인데
꽤나 감각있는 이곳의 인테리어는
사장님이 직접 다 구상하신 것이라고.
커피를 주문하려다 보면 자연스럽게 시선이 갈 수밖에 없는 한쪽 벽면에 설치된
깔끔하고 모던한 느낌의 블랙 선반들.
그리고 그 위에 줄세워놓은 캔들이
이 카페의 아이덴티티를 잘 말해주고 있다.

블랙과 메탈로된 모노톤의 카페 내부와는 반전으로
화장실은 핑크핑크한데,
이곳은 구상만 한게 아니라 손수 힘들게 페인트칠 하신거라 말씀하시는데
구석구석 직접 손길하나 눈길하나 가지 않은 곳 없는 듯한
사장님의 카페에 대한
애정과 뿌듯함이 물씬 느껴진다.

카페에 놓여진 얼핏 보면 평범해 보이는 의자 하나도 자세히 보면
디테일이 남다르고,
무심한 듯 한쪽에 쌓아놓은 여분의 의자들,방석들마저도 엣지있다.

그리고 이런 모던한 인테리어가 주는 이미지와 너무 잘 어울리는 카페의 이름
어웨이크 크랙.
가장 궁금했던 이 이름의 뜻은…
원래 포남동에 크랙 이라는 카페를 운영하시다
이곳으로 옮기시면서 새로운 이름이 필요했는데,
크랙 2호점이라고 하기엔 너무 심심해보여서
어웨이크를 붙여 어웨이크 크랙이라 지었다고 하신다.
크랙에서 깨어난 또다른 곳. 그 정도로 이해해면 되려나.
어쨌든 본점 크랙은 현재 재오픈을 위해 공사중이고
어웨이크 크랙은 본점 크랙의 2호점으로 이곳에 자리하게 된 것이었는데,
그렇게 네이밍한 사장님의 내공이 정말 예사롭지가 않은 듯 하다.
어느 누가 2호점이라든가 크랙 택지점 대신 어웨이크를 붙일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직접 대면해서 인터뷰했더라면 사장님의 이런 남다른 면면을 좀 더 자세히 알 수도 있었으리라 싶지만
마침 외근중이시라 전화상으로 인터뷰하게 되어 살짝 아쉬움이 느껴졌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장님께서 가장 자신있게 말씀해주신 부분은
전화상으로도 그 프라이드가 너무나 잘 전달됬었는데,
다름아니라 이 카페의 커피 추출하는 클라쓰 만큼은 어디다 내놔도 밀리지 않을 만큼 최고 수준이라고 하신다.

그 얘기를 듣고 나니
이곳의 니트로 커피를 마셔볼까 캔에 담아주는 커피를 마셔볼까 하다
아이스 라떼를 캔으로 주문했었는데 잘했다 싶다.
우유와 만나도 진한 커피맛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걸 보니
커피 추출은 정말 제대로인듯 싶었다.
원래도 퀄리티있는 커피가
시각적으로도 재미난 캔에 담겨나오니 더 특별해진다.
알루미늄 캔이 가진 빠른 열전도율로 인해서
아이스로 주문하면 얼음을 조금만 사용해도 금방 시원해지는 효과가 있다고.
몇 캔 사다가 쟁여놓고 싶을 만큼 라떼가 맛있었는데
아무리 캔에 담은 거라 해도 다른 성분이 들어가지 않아서
테이크아웃하더라도 이틀안에 먹어야한다고.

고마운 마음 부담없이 나누고 싶을 때 한 캔 사가서 선물해가면
참 특별한 선물이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라떼를 먹어보니 다른 음료들 맛도 무척이나 궁금해졌다.
한 번 와봤지만 이미 이곳에 팬이 되어버려서
이미 객관성과는 살짝 비켜가있긴한데,
다른 음료들도 아마 분명 기대이상의 맛일 듯하다.

너무 재밌는 책이거나 정말 읽고 싶었던 책을 사면
일부러 한번에 다 읽지 않고 아껴서 읽어나가는 것처럼…
난 이 카페도
한번에 다 섭렵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천천히 알아가고 싶을 만큼
이곳이 참 맘에 든다.
참 좋아졌다.

이 카페에 오기위해 강릉에 여행온다는 어떤 이들의 말,
막상 와보니 과장된 허언만은 아닌듯 싶다.

언제든 맘만 먹으면 십분안에 올 수 있는
강릉 사람이라는 사실이
진심 특권처럼 여겨질 만큼
이 카페와 같은 도시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내심 뿌듯해진다.

강릉사람이라면 프라이드를
타도시에서 왔다면 부러움을 느끼게 될 이곳.
정말 그러한지 꼭 한번 와서 테스트해보시길.

이 현정카페인 강릉#6 블랙,그린,메탈의 조화로움 그리고 캔커피가 있는 곳, ‘어웨이크 크랙’

카페인강릉#5 우리 동네 숨은 보석같은…진짜 스페셜한 스페셜티 카페.’GAEROCK게락’

<게락>

솔직히 별로였다,
겉모습은.
꽤 올드한 느낌으로 지어진 상가건물에다
이곳이 카페인지 술집인지 정체성을 모호하게 만드는 <GAEROCK 게락>이라는 뜻모를 상호까지 더해져
선뜻 들어가기는 쉽지 않았던 이 곳.
실제로 상호에서 느껴지는 뉘앙스 때문에
들어오셔서 술을 주문하시는 손님들도 아직 계시다고 하는
이 독특한 이름의 카페.

그래서 처음 가게 된 것도 가고 싶어서 갔다기 보다는
좀 늦은 시간에 옆 카페에 커피사러 갔다가
이미 마감했단 말에 어쩔 수 없이 들어간 곳이었는데
겉보기와 달리 카페 내부는 생각보다 아늑하고 따뜻한 분위기에
무엇보다 손님들이 테이블마다 앉아있어서 무척 놀랐던 기억이 난다.
옆 카페에 갈 손님들이 다 여기로 온건가 하고 내심 놀라워하고 있었는데
커피를 마셔보니…
그냥 아메리카노였는데도
좀 남다른 맛이 있었다.
프레시하고 맛이 좀 다채롭다고 해야하나?
암튼 생각보다 꽤 괜찮았었다.

집근처에 있는 카페이다보니 가끔씩 테이크아웃해서 먹곤했는데
갈때마다 참 친절한 매너의 사장님과
다양한 종류의 커피와 음료들~~
늘 기대이상의 신선한 느낌이 드는 커피맛에
꽤나 만족도가 높았었는데…
이번 인터뷰를 계기로 나는 이곳의 모든 것들…
창업 비용을 줄이기 위해 사장님이 직접 인테리어 했다는 카페 내부나,
생소한 카페 이름…등등이 다 새롭게 보이고 의미가 부여될 만큼…
더더욱 만족도가 높아졌다.

<게락> 그리 넓지 않은 공간의 카페이지만 직원도 두명이나 둔
서글서글한 인상의 풋풋한 젊은 사장님이 운영하고 계신다.
카페 한 켠에 로스팅공간이 마련되어있어서 직접 로스팅하시는 줄은 알았지만,
생두를 수입하는 일까지 직접 하고 계시다는 말에 적잖이 놀랐다.
매년 최소 세 번 정도는 커피 산지로 가서 길조차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커피생산국에
현지 코디네이터도 없이 혼자 가서 생두를 고르고 계약하고 온다고.

그는 애초에 그냥 커피만 파는 보통의 카페를 차리려는 게 아니었다.
카페를 시작할 때의 청사진이 분명했다.
스케일이 남달랐다.
사장님의 표현에 따라
이 곳 <게락>은
다양하고 퀄리티 있는 원두를 저렴하게 판매하는
그 유명한 강릉의 <테라로사>의 축소판이라 생각하면 될 듯 싶다.

이런 저런 대화들을 나누며 알게 된 게락의 이 젊은 사장님은
사업가로서의 혜안, 그리고 커피에 대한 분명한 철학과 소신과 더불어
커피생두의 품질을 평가하는 ‘컵 오브 액설런스 C.O.E.’ 와 ‘베스트 파나마’ 같은 자리에
심사위원으로 위촉될만큼의
어마어마한 실력자였는데.
믿기지 않을 만큼 화려한 이력과 사업 범위에
미처 못알아본 게 미안할 정도였다.

무엇보다 풋풋한 젊음까지 지닌 청년인데,
나라면 꽤나 기고만장했을 것 같은…그토록 탁월한 실력에
그렇게 겸손할 수 있다니..그저 놀랍기만 하다.

직접 생두를 수입해서 쓰기 때문에
굉장히 퀄리티 있는 원두임에도 가격이 저렴하다.
이곳은 매장에서 커피를 마시는 손님들도 많은 편이긴 하나
한번 이곳 원두를 맛 본 손님들이 지속적으로 재방문하기 때문에
원두를 사가시는 손님들의 비율이 많고
꾸준히 그 비율이 증가하고 있다고 하신다.
애초에 구상했던 카페의 모델이
원두 판매를 통한 수익이 주를 이루는 카페였는데
차츰차츰 처음에 그려본 청사진대로 모습이 갖추어져가고 있다고.

지금은 터미널 인근에 위치해있는데,
다음주면 내곡동에도 2호점도 오픈할 예정이다.
(현재 2호점뿐 아니라, 3호점까지도 오픈한 상태입니다.)
특이한 건 로스팅도 2호점 따로 별도로 하게 된다고 하는데,
그게 사장님의 원칙이라 하신다.
앞으로도 본인이 커버 가능할 만큼만 강릉의 동네마다
로스터리 카페를 내는 게 목표라고 하시는데,
원두는 각 카페마다 로스팅기계를 두고 자체적으로 로스팅하게 하게 할 예정이라고.
왜 그러시냐고 했더니
그래야 가장 신선한 품질의 원두를 손님들에게 공급할 수 있기 때문이라 한다.
카페에서 커피를 판매하는 것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집근처 카페에서 언제든 신선한 원두를 사갈 수 있게끔
그래서 집에서도
질 좋은 신선한 커피를 즐기게 하는 것에 더 목표를 삼고 있다고 하시는 사장님.

알고보니 엄친아 중의 엄친아였는데
강릉이 고향인 그는 공부도 꽤 잘하는 학생이었고
또 번듯한 대기업을 거쳐 공공기관에서도 일한,
지금까지 속한번 썪이지 않던 아들이
좋은 직장까지 그만두고
호주에서 카페에서 잠시 일했을 때의 그 즐거움을 잊지 못해,
그 잘난 아들이 아버지 표현에 의하면 ‘남들 커피타주는’ 일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처음엔 완강히 반대하셨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엔 자식이기는 부모 없는 법인지
‘풍년’ 혹은 ‘많다’라는 정도의 뉘앙스를 지닌 강릉사투리 라고 하는 이 카페의 이름 ‘게락’
을 아버지께서 직장동료들에게 자문을 구하고 투표를 거쳐 지어줄 만큼
결국은 아들의 사업을 지지해주셨고,
지금은 너무나 아들을 자랑스러워하고 뿌듯해하는 든든한 지지자가 되어주신다고.
잠깐 대화를 나눈 나조차도
우리 집 근처에
이런 어마어마한 실력자가 있다는 게 자랑스럽게 느껴지는데
하물며 혈육은 오죽할까싶다.

함께 줄곧 카페에 앉아있던 사장님 후배에게
사장님은 어떤 사람이냐고 물어봤다.
일밖에 몰라서 온 에너지를 다 쏟아 일하고 퇴근후엔 시체처럼 지낸다고.
늘 가까이서 보는 후배가 혀를 내두를 만큼
초인적으로 커피에만 올인해서 에너지를 쏟고 있는 이 젊고, 냉철하면서도, 열정많은 사장님.

매주 추천하는 핸드드립커피가 대여섯가지 새로 리스트업되는 걸 보면
괜찮은 커피 한잔을 손님에게 내놓기 위해
얼마나 각고의 노력을 하고 있는지 느껴진다.

다른 카페에서 쉽게 만날 수 없는
특이한 맛을 가진, 생소한 원두들도 있고
메뉴판에 원두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덧붙여져 있어
낯선 이름의 원두라도
금새 취향대로 선택할 수 있는 이 곳.

이날 마셔본 커피는
차게 마실 때 맛있는 커피로 권해달라고 했더니
망설이지 않고 바로 권해주셔서 마시게된,
케냐 아이멘티 AA TOP 였는데…
아….뭐라고 해야하나.
그 다채로운 커피맛을.
아이스 커피가 그저 시원한 커피가 아니라,
커피의 다양한 풍미를 그렇게 느끼게 해준 아이스 핸드드립 커피는
처음 마셔본 듯 했다.
그 고급스러운 맛에 비해
가격도 저렴하고…
내가 여길 왜 그동안 자주 못왔을까 싶은
아쉬움이 물밀듯이 밀려오는…그런 느낌의 커피.
그리고 직접 구웠다는 적당한 단맛의 브라우니.
환상의 조합이었다.

게락.
커피가 풍년이라는…
카페 <게락>.
살짝 설레고 두근두근 할만큼
이 카페의 앞날이 나는 참 기대가 된다.

커피맛은 생두가 8 로스팅이 1 바리스타가 1 이라는 사장님의 소신에 의해
수입까지 직접하시는 사장님이 골라온 고품질에 원두에다
커피는 과학이라는 신념으로
정확한 측정과 숫자에 의해서 로스팅하고
일정 이상의 품질을 유지하면서도 직접 수입하는 덕분에 저렴하게 공급하는
이곳의 원두를
한번 마셔본 이상 다시 안오긴 힘들다는 건 내가 느껴봤기 때문에
커피애호가들이라면…누구나 팬이 될 것 같다.

아마 머지 않아 이 동네에서 나던 신선한 커피향이
강릉의 다른 동네 곳곳에서도 나게 될 것이다.
풍년이라는…넘치도록 많다는
카페 이름
<게락> 이
강릉 곳곳에…더 나아가 다른 도시에서도 정말 게락이 되는
그런 기대도 한 번 해본다.

‘작가와의 만남’을 위해 원두를 사러갔을때 맛보라며 주신 콜롬비아. 이런 콜롬비아 맛은 처음이다 싶을만큼 다채롭고 맛있었어요….^^

*덧붙임.
기쁜 소식 한 가지 전해드립니다.
저의 기대가 현실이 되어… <게락>만의 스페셜하고도 유니크한 원두를 구매하실수 있는 온라인스토어가 다음달에 오픈될 예정입니다.
주문당일 로스팅해서 익일배송되는 시스템을 추구하는 온라인 매장이 오픈되면
우리동네의 보석같은 카페 <게락>의 어메이징한 커피맛을
타지에 계신 분들도 드디어 맛보실 길이 열리게 되었네요!

이 현정카페인강릉#5 우리 동네 숨은 보석같은…진짜 스페셜한 스페셜티 카페.’GAEROCK게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