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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슬렁 인문路드에서 만난 ‘소사동 보호수’

카툰캠퍼스 이원영 이사님께 ‘부천 인문路드’ 교육을 받고 마지막 수업으로 오늘은 현장 탐방을 하였다.


만저봐 기자님들과 카툰캠퍼스 식구들
그리고 문화재단 관계자와 일반 시민들이 약 40여 명 참석하였다.

부천서 35년 이상을 살았지만 변영로, 정지용, 양귀자에 대하여 거의 알지를 못였는데 인문로드를 통하여 많은 걸 알 수가 있었다.

특히 양귀자 작가에 대해 많은 편견도 있었는데 소설 속의 장소를 하나하나 찾아서 나아갈때마다 새롭게 모든 걸 알 수가 있어서 좀 더 성숙된 기분을 느꼈다.

그 옛날 한참 일할 때 양귀자 작가가 살던 원미동사람들 같이 나도 책 속의 인물들처럼 그렇게 살았다.

옛 시청 자리 옆 조각공원을 출발하여 무궁화연립, 강노인땅, 장미연립, 원미산 둘레길을 두루 돌아 옛 소사성당으로 왔다.
잠시 쉬는 사이 난생처음 부천서 처음 세워진 소사성당도 볼 수 있었다.


한참을 걸어 경인 국도를 가로질러 소사삼거리에서 정지용 시인 거주터에서는 이원영 이사님의 맛깔난 역사 설명을 들었다.
마지막으로 이유 카페에서 시원한 커피 한 잔을 하며 조관제 선생님의 카툰 작품과 고구마작가님의 멋진 작품을 감상하며 오늘의 공식 일정은 끝이 났다,

바깥에서 여기저기 살피던 중 눈에 확~ 들어오는 나무가 있었다.
소사동에서 보호수로 관리하는 천년이 훌쩍 넘은 은행나무가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고작 백 년도 못 살았고 은행나무보다 오래 산 사람은 없다.

화선지에 수묵담채로 그리다

은행나무가 말을 한다면 이렇게 하지 않을까?

“어리석은 인간들아 한 치 앞을 못 보면서 뭘그리 욕심과 탐욕에 미쳐서 날뛰냐!”

장 대식어슬렁 인문路드에서 만난 ‘소사동 보호수’

부천 인문路드에서 만난 양귀자

부천 인문로드를 걸었다. 양귀자 소설가의 ‘원미동사람들’의 주 배경인 원미동을 출발해 원미산 둘레길을 넘어 정지용 시인이 거주했던 소사동으로 넘어가는 코스다. 부천에 살고 있으면서도 7~80년대 문학계를 주름잡던 양귀자의 ‘원미동사람들’을 읽지 않았었다. 그러다 TV 드라마로 방영되고 드라마가 인기를 끌고 나서야 책을 사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 후로 그녀가 쓴 소설들을 다 사서 읽기 시작했다.

2000년대 초반, 부천작가회의에서 주최하는 ‘작가와의 만남’ 프로그램이 있었다. 그때 부천을 빛낸 작가로 양귀자소설가를 초대하려 했었다. 그러나 그 초대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녀는 잊혀갔다.

2017년 부천이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로 선정되었다. 시인 변영로, 정지용, 소설가 양귀자, 동요작가 목일신, 펄벅 등 부천출신이거나 부천에서 사신 분들의 힘이다. 그중 양귀자소설가는 9년 가까이 원미동에 거주하며 활발하게 창작활동을 했다. 그녀의 수필이나 소설에 부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일 거다. 부천에서 수주 변영로 시인과 목일신 동요작가, 펄벅기념사업 등은 성대히 치르고 있지만 양귀자 소설가는 묻혀있었다. 문학창의도시가 되고 부천의 문인들이 재조명되면서 양귀자를 다시 보게 되었다.

양귀자 소설가는 1955년 전주에서 태어났다. 문예장학생으로 원광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잠시 교사생활을 하다가 1978년 ‘다시 시작하는 아침’(문학사상)으로 등단했다. 그 후 부천으로 이사와 소시민의 삶을 다룬 ‘원미동 사람들’을 발표해 큰 인기를 얻었다. 지구를 색칠하는 페인트공, 희망,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숨은 꽃, 천년의 사랑, 곰 이야기, 모순 등 많은 소설을 발표하고 유주현문학상과 이상문학상, 현대문학상을 받았다. 그의 소설‘ 원미동사람들’은 중학교 교과서에 실리고 ‘모순’, ‘나는 소망한다…’ 등은 드라마로도 제작되며 8, 90년대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에는 작품 활동이 뜸해져 그의 신작 소설을 접할 수 없었다.

부천출신 작가들의 작품세계를 좀 더 깊이 들여다보기 위해 마련한 이번 인문路드는 원미동사람들 조각공원(원미 어울마당)에서 출발해 소설 속 배경지인 무궁화연립과 강노인의 땅, 장미연립들을 둘러보는 것으로 시작됐다. 소설의 주 무대였던 무궁화연립은 현대식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그렇게 지키려고 애썼던 강노인의 밭도 공원으로 변해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세탁소나 동네 주변이 있어 소설 속 이웃들의 소소한 이야기가 들리는 듯 정겨웠다.

인문로드 투어를 모두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서재 구석에 잠자고 있던 양귀자 소설들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처음 읽었을 땐 잘 와 닿지 않았던 원미동 23통 동네 전경이 눈에 선하게 그려졌다. 지금은 표지석만 덩그러니 놓여있지만 길 오른편에 강노인 밭과 은혜네가 살던 무궁화연립, 형제슈퍼가 있고, 길 왼편으론 원미지물포와 써니전자, 행복사진관, 강남부동산과 정육점, 싱싱 청과물이 죽 늘어선 시장골목도 보인다.

 

원미동 시인 몽달씨와 형제슈퍼 김반장, 행복사진관 엄씨와 으악새 할아버지, 등장인물 모두가 생존을 위해 아귀다툼도 하지만 서로 보듬고 살아가는 주민들의 따뜻한 시선이 글 곳곳에 묻어있다. 가난하지만 국수 한 그릇도 나누어 먹던 그 시절, 우리는 다 그렇게 살았다.

숨은 꽃, 천년의 사랑, 모순 등, 다시 읽어도 그녀의 글에 빠지면 헤어 나올 수가 없다. 80년대 젊었던 시절로 되돌아간 듯 소설에 푹 빠져 밤을 새웠다.

소설 속 밤무대 가수 은자가 허스키한 목소리로 부르던 ‘한계령’이 귓전에서 맴돈다.

“이 산 전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한줄기 바람처럼 살다가고파”

한 성희부천 인문路드에서 만난 양귀자

원미동을 사랑한 양귀자 #2

맨 처음 써니전자의 시내엄마가 왕주가 되어 계원을 모집하기 시작할 때 원미동 여자들은 내가 끼어들지 어떨지 장담을 못하는 눈치였다.
그때 이미 이웃들과 격의없이 지내고 있기는 하였지만 그네들 생각으로 작가는 금반지계 따위의 세속사에 냉담 할 것이 틀림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던 게 분명했다.
원미동 여자들 대부분이 놀고 먹는 처지는 결코 아니었다.
지물포도 그렇고 써니전자, 복덕방,정육점,미장원 등등 모두 안팎이 같이 생업에 매달려 있기는 하였지만 아무래도 소설가란 직업은 생경한 것이었다. 쉽게 말하여서 소설 쓰는 여자의 머릿속은 무엇으로 채워져 있는지 아리송하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당당하게, 조금도 꿀리지 않고 금계에 가입하 여 한달에 이만 몇천원씩을 부어나가기로 하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열심히들 살고 있는 원미동 이웃들 사이에서 떨어져 나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금반지계의 계원이 됨으로해서 나는 보다 확실하게 원미동사람이 될 수 있었다.

이 원영원미동을 사랑한 양귀자 #2

원미동을 사랑한 양귀자 #1

소설 속의 원미동과 현실의 원미동은 각각 다른 지역인가 하는 의문이 나온다.

혹은 작가인 내가 현실의 동네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보다 궁핍한 허구 속의 동네를 형상화했다는 의견도 나온다.

두가지 모두 분명 아니다. 내가 열한편의 연작으로 묘사해낸 원미동은 지금 내가 엎드려 있는 이 동네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더 나아가서,원미동보다야 잘 사는 동네라고 자부하는 당신들의 동네, 그 이웃 어디와도 다르지 않다. 60년 대와 70년대에 걸쳐서 특별시 변두리에 형성된 동네가 달동네의 피폐한 삶이었다면,80년대에 들어와선 달동네의 삶의 보편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하여 특별시 변두리의 이곳 저곳에 원미동들을 양산했다.

이 시대의 평균치 삶이,만연되어 있는 정신의 오염이,경제의 불균형으로 빚어진 인생의 기복이 골고루 배어있는 평균의 동네이다.
….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윈미동의 그 겉과 속이 다른 데서 오는 이질감은 이사회의 겉모습과 안을 들여다볼 때와 아주 흡사하다.
일제의 침탈을 거쳐 강대국 주도의 경제정책에 순응하여 재벌만 키우는 이 시대의 몇 십년이 그 안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것이다.

경제 정책으로 겉모습은 번드르르해졌는지 모르지만 그 내용물은 여전히 황량하기만한 현실의 모습이 원미동에 있다.
이 사회의 발전과정과 원미동은 언제나 같은 궤에 있다.
그래서 원미동은 단순한 고유명사를 뛰어넘어 사회의 보통명사로 남겨지는 것이다.

-양귀자, 1989년 지구를 색칠하는 페인트공, 에피소드 “작별의 시간”에서 발췌

Thanks to 글낭송:이현정 카툰:조관제 화백

이 원영원미동을 사랑한 양귀자 #1

원미동 새로읽기 – 소설속의 원미동과 실재하는 공간 원미동

작품 [원미동 사람들]의 안과 밖을 구분 못한 채 지엽적인 문장과 사건을 부각한 어설픈 평론과 기록들이 지금도 인터넷을 부유하고 있습니다.
[원미동 새로 읽기] 칼럼은 8년 동안 원미동 주민으로 살면서 누구보다 원미동을 사랑한 양귀자 작가에 대한 새로 읽기 를 주제로 계속 연재될 예정입니다.
지금.. 그녀의 목소리에 다시 귀 기울여주세요.

소설 속의 원미동과 현실의 원미동은 각각 다른 지역인가 하는 의문이 나온다. 혹은 작가인 내가 현실의 동네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보다 궁핍한 허구 속의 동네를 형상화했다는 의견도나온다.
두 가지 모두 분명 아니다. 내가 열한 편의 연작으로 묘사해낸 원미동은 지금 내가 엎드려 있는 이 동네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더 나아가서,원미동보다야 잘 사는 동네라고 자부하는 당신들의 동네, 그 이웃 어디와도 다르지 않다. 60년 대와 70년대에 걸쳐서 특별시 변두리에 형성된 동네가 달동네의 피폐한 삶이었다면,80년대에 들어와선 달동네의 삶의 보편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하여 특별시 변두리의 이곳저곳에 원미동들을 양산했다.

이 시대의 평균치 삶이, 만연되어 있는 정신의 오염이,경제의 불균형으로 빚어진 인생의 기복이 골고루 배어있는 평균의 동네이다.
….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윈미동의 그 겉과 속이 다른 데서 오는 이질감은 이사회의 겉모습과 안을 들여다볼 때와 아주 흡사하다.
일제의 침탈을 거쳐 강대국 주도의 경제정책에 순응하여 재벌만 키우는 이 시대의 몇십 년이 그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이다.
경제 정책으로 겉모습은 번드르르해졌는지 모르지만 그 내용물은 여전히 황량하기만 한 현실의 모습이 원미동에 있다.
이 사회의 발전과정과 원미동은 언제나 같은 궤에 있다.

그래서 원미동은 단순한 고유명사를 뛰어넘어 사회의 보통명사로 남겨지는 것이다.
-양귀자, 1989년 지구를 색칠하는 페인트공, 에피소드 “작별의 시간”에서 발췌

이 원영원미동 새로읽기 – 소설속의 원미동과 실재하는 공간 원미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