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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신달자의 ‘백치 애인’

길에서 미열이 나면/ 하느님 하고 부르지만

자다가 신열이 끓으면/ 어머니, 어머니를 불러요

아직도 몸 아프면/ 날 찾느냐고 / 쯧쯧쯧 혀를 차시나요

아이구 이 꼴 저 꼴/ 보기 싫다시며 또 눈물 닦으시나요

나 몸 아파요, 어머니

오늘은 따뜻한 명태국물/ 마시며 누워있고 싶어요

자는 듯 죽은 듯 움직이지 않고/ 부르튼 입으로 어머니 부르며

병뿌리가 빠지는 듯 혼자 앓으면/ 아이구 저 딱한 것

어머니 탄식 귀청을 뚫어요/ 아프다고 해라 / 아프다고 해라

어머니 말씀 / 가슴을 메어요

-시 ‘사모곡’ 전문-

“문학은 타고나는 것도 아니고 이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한사람이 가지는 삶에 대한 환경이 무엇을 쓰게 만들며, 어느 날 밥상처럼 내 앞에 차려져 오는 것” 이라는 신달자 시인.

그녀는 어머니로부터 세 가지 당부를 받았는데, 첫 번째는 죽을 때까지 공부할 것, 두 번째는 돈을 벌 것, 세 번째는 행복한 가정을 이루라는 것이었답니다.

대학원에 들어가 조교를 하다가 연애하고 결혼하면서 어머니께서 당부하신 세 번째 것을 지키려고 모든 것을 버리고 문학도 배신했습니다. 그러다 둘째 아이를 낳으면서 여자가 겪는 경로에 대한 불안감이 엄습해 왔답니다.

그때 박목월 선생님을 만나게 되어 ‘현대문학’으로 등단합니다.

딸이 세 살이 되던 해 시어머니가 쓰러지고 남편마저 쓰러져 24년이란 기나긴 세월을 앓게 됩니다. 갑자기 닥친 절망과 좌절 앞에 삶을 포기 하고 싶었지만 한줄기 빛처럼 다가오는 어머니의 말을 떠올리며 다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환자를 수발하며 석, 박사 학위를 받고 ‘백치 애인’과 ‘물 위를 걷는 여자’도 그때 쓴 것이랍니다.

결국 그녀는 어머니의 세 가지 당부를 모두 지켰습니다. 전혀 고생을 모르고 살아온 듯 곱디고운 그녀를 보며 운명을 이기는 한국의 여인상을 수정해야겠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한 성희시인 신달자의 ‘백치 애인’

오드리의 한술줍쇼 – 전용한 부천시 보건소장을 만나다


 

 

 

the 사람

 

* 보건 : 건강을 지키고 유지하는 일

* 보건소 [保健所] : 전염병 등 질병을 예방하거나 진료하고 공중보건을 향상하는 일을 담당하기 위하여
  각 구, 시, 군에 설치한 공공의료기관

 

부천시민의 건강을 지키고 유지하는 전반적인 업무을 관리하시는 분,

전용한 부천시보건소장님을 만났다.

직책이 그러해서일까 소장님은 인터뷰를 위하여 30분 가량 걸어서

인터뷰 현장에 찾아오셨고 매우 건강해 보이셨다.

 

 소장님 안녕하세요?   이름은? 하하하(이미 알지만)

 전용한 (돼지띠- 몇 셀까요? 하하하)

 댁은 어디셔요?

 부천 상동. 시흥살다 군포살다 90년도에 부천에 왔어요.

 고향은요?

 예산이지요.

아~ 사과요? 어쩐지 피부가 좋으셔요^^ 하~

 

 

 

the 부천

 

  소장님은 부천 어때요?

 좋지요.

 부천을 (       )다라고 한마디로 말한다면요?

 부천은 (역동적)이다

 

 아~ 왜요?

 젊은이들이 많고 그래서 젊은 도시다 싶어요

 

 

 

 

the 일

 

 하시는 일은요?

 하, 오드리 기자님이 잘 아시듯 저는 부천시 보건소장입니다.

부천에 특히, 건강관리를 책임지고 있구요

그래서 매우 보람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이 보람 있으셨어요?

 주로 보건기관을 확충하고 건강버스도 운영하면서

더 시민들과 가까워지는 보건소가 되고자 하구요

시민들이 건강관리를 잘 할 수 있도록 100세건강센터도 열었는데

시민들이 많이 이용해주시고 참 보람이 있어요.

 

 

 

 

 이 일을 한지 낼 모레면(내년) 40년이 되네요

우와~~~ 정말요?

정말 우직하게 한가지 분야에서 오래하셨네요.

일하시면서 보람이 있으시다고 하셨는데요 예를 들면요?

 

 생각한 것들을 다 한 것 같아요.

시민들에게 다가가는 보건사업이 되게 하려고 이런 저런 새로운 사업들을 많이 했는데요

일을 하는데 있어서 김만수 부천시장님과 코드가 맞았어요.

특히 보건사업에 있어서 거의 생각한 대로 다 한 것 같아요.

물론, 앞으로도 할 일이 더 많지만요.

 

 예를 든다면요?

 치매관리 등은 좀 더 확충해야 하고

부천시가 출산최저잖아요, 그래서

1. 출산장려지원센터도 만들어 출산율도 높이고

  1. 소외계층(장애인 등) 재활시설도 더 확충하고 싶어요.

보편적 건강관리 보다는 선택적 건강관리를 해야 해요.

국가가 나서야 하는 일들이죠.

내 남은 임기 마지막까지 그 일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어린이 건강
어르신 행복
건강한 도시 부천“을 위하여

 

 

 

비 오는 날 술터뷰라서 막걸리 집에서 하였는데 

소장님이 주문하신 메뉴도 보건소장님답게 건강식이었다. 

두부김치가 담백하였다.

 

 

 만약, 이 일이 아니면 어떤 일을 하셨을 것 같아요?

 원래 꿈은 교사였어요.

 아~ 선생님이셨다면 엄청 인기많으셨을 것 같아요

 하, 왜요?

 멋있으시잖아요.하하하

 하하하~

곧 퇴직이라, 퇴직 후를 준비하고 있어요. 보건위생 업무와 관련해서요.

 아~ 역쉬~!

 저는 인생은 5막이라고 생각해요

1막은 학창시절

2막은 직장생활

3막은 퇴직 후

4막은 노후

5막은 마지막 정리를 해야죠

 

 아~ 5막이요.

 인생 2막에서는 주어진 것에 열심히 살다가

3막에서는 사회공헌을 하고

4막에서는 건강하게 보내다가

5막, 깔끔하게 마무리를 해야죠.

 

 오~~ 준비와 계획이 완벽하신데요.

일이 철저하신만큼 재미있게 사실 것 같아요.

노래 잘하시죠? 18번은 뭐예요?

 김정호 노래는 다 좋아해요. 하얀나비 등

그리고 나훈아 노래도 다 좋아해요. 사내 등

 

 음식은 뭐를 좋아하셔요?

 안가리고 다 잘 먹지만, 날 음식은 안좋아하고 잘 안먹어요.

 

 그래서 항상 건강하시고 그대로 이신 것 같아요.

 네, 맞아요. 몸무게도 항상 똑같아요.

 

 

더덕막걸리와 꼬막이 이야기를 무르익게 하였다.

 

the 인생

 

 소장님은 인생을 한 마디로 정의하면 뭐라고 생각하셔요?

 인생은 (롤러코스터) 다

인생에는 많은 길이 있잖아요. 가시밭길, 신작로, 언덕길, 흙길, 아스팔트 길

그러나 마지막에는 다 똑같아요.

그러니까 어떤 길을 가느냐도 중요하지만

얼마만큼 즐기느냐, 긍정적으로 재미있게 사느냐

또한 최선을 다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무서워하는 순간 인생은 무너져요.

 

최선을 다해서 살되, 소신껏 즐겁게 살아야해요.

 

또 중요한 것은

내가 편하면 누군가가 힘들어지니까

주변, 동료 등을 생각하면서

같이가고자 하는 마음으로

함께 즐겁게 사는게 중요해요.

 

그래서 그런지 주변에 오랜 인연들이 많아요.

대학원이 가고싶다고 했더니 고등학교 절친이

그 다음날 등록금을 보내줘서 친구덕분에

경희대학교 행정대학원 보건행정학 공부를 했어요.

지금도 그 친구와 부부동반 모임을 하고 있어요.

 

한 마을 초등학교에 16명이었는데

지금도 모임을 하고 있고 암튼 제가 정도 많고 사람도 좋아해요.

 

인간관계나 모임은 스스로 만들어 가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인간관계를 중요시 여기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려고 해요.

또한 모임을 중요시 여기고 조직을 저버리거나 배신하거나 하지 않아요.

항상 패밀리같은 마음으로 대하려고 해요.

 

 

 와~~ 정말 진정성 있으시고 훌륭하셔요.

그래서 그런지 저도 소장님과 업무상 만 1년 일을 했었잖아요?

 그렇지요

 그런데 오랫동안 함께 조직에 있었던 것 같고, 정말 패밀리 같아요.

 

 음… ‘보시’라고 하죠? 베푼다

기분대로 하면 보시는 끊어져요.

저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으로 생각하고 마음과 몸으로 베풀려고 하는 게

제일 큰 보시라고 생각해요.

 

 

 인생 후배들에게 한마디 하신다면요?

 긍정적으로 살자.

딴 거 없죠. 한마디로 웃구 살자.

내 얼굴은 내꺼지만 표정은 상대방꺼라고 생각하고 웃어야해요.

찡그리믄 긍정적인 사고가 날아가고 그때부터 불행해져요.

 

 아~ 그래서 그런지 소장님은 항상 웃는 얼굴이셨군요.

 네~ 그래요. 인생 살다 보면 화날 때도 있지. 왜 없겠어요?

그렇지만 빨리 풀어야해요. 마음에 갖고 있으면 독이 되요.

뭐든지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친구와 술 한잔 하면서

수다도 떨고 웃으면서 풀면서 살면 몸도 건강해요.

 

the 행복

 

 소장님의 지금 현재 행복지수는  1부터 10중에 몇 점일까요?

 9.9

 

 우와~~~!!!  9.9라니 대단한 점수네요.

부족한 0.1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0.1을 남겨둔 것은 여운이죠.

채워가려는 비움이랄까 하하하

 

가정적으로도 어머니도 건강하시고

자녀들고 다 행복하고

손자손녀들만 보면 너무 감사해요.

 

테니스를 30년 쳤고,

암벽등반, 등산, 자전거라이딩도 즐겨했요.

 

 

 

 오~~ 페이스북에서 많이 봤어요. 자전거라이딩을 거의 매주 하시던데요.

 네, 바쁘다면 아무것도 못해요. 바쁘다는 것은 다 핑계예요.

그 시간들을 잘 쪼개서 하는 거죠.

그러려면 불필요한 일들을 버릴 줄 알아야 해요.

생활습관병, 안주하지 말고 아무튼 움직여야 해요.

그래서 저는 항상 걸어다녀요.

아까도 약속시간보다 30분 일찍 나와서 걸어온거예요.

 

어릴 때 좌우명이

“과거를 돌아다보고 슬퍼하거나 괴로워 말자.

그때의 일은 돌아오지 아니할지라

오직 현실을 믿고

미래를 성실하게 살아가자“

 

서산대사의 한시에 보면,

“눈 덮힌 들판을 함부로 걷지 마라
오늘 내가 걷는 길은 후세의 사람들이 따라오는 길이다.”

라고 했어요.

 

신중하게, 그만큼 모든 일을 결정하다보면

최선을 길을 가게 되지 않겠어요?

 

 짝짝짝~~~~ 너무 멋진 말씀을 가득 듣고 담아갑니다.

저도 이제부터 더 신중하게 더 긍정적으로 웃으며

더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야 겠어요.^^

 

소장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페이스북에서 본 소장님의 사진이 생각나네요.

무척 잘 어울렸던 복장이었는데요, 바로 산타복장이었죠.

소장님은 진정 부천시민 모두에게 ‘건강’을 선물해주고 싶어하는

산타할아버지 같았습니다.

 

 

 

 

저 오드리는 이날,

모습과 마음이 너무나 건강한 전용한 소장님의 귀한 말씀 들으며 시간 가는 줄 몰랐구요

제가 좋아하는 부천 맛집 심마니에서 더덕막걸리에 두부김치까지 맛나게 먹은

참 행복한 날이였네요.

 

오드리 기자오드리의 한술줍쇼 – 전용한 부천시 보건소장을 만나다

가족회의

가족회의

 

의 어린시절. . .

우리 가족은 여섯 식구였다.

아빠, 엄마, 언니, 오빠, 나, 그리고 동생.

 

아빠

는 거의 매일 퇴근 하여 오실 때

양 손에 무겁게

무언가를 들고 오셨다.

 

퇴근 후 대문을 들어오시는 아빠,

“아빠~ 다녀오셨어요!!”

온 가족이 현관문에서 아빠를 맞이했다.

맞이할 때면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아빠의 손을 보았다.

 

우리의 마음을 아시는 듯

아빠의 손에는 항상 무언가가 있었다.

어느 날에는 귤, 호빵, 샘베과자 등.

 

덕분에 온 가족은 모여서 간식을 먹으며

왁자지껄 수다를 떨며 웃음 꽃을 피웠다.

 

요일, 나의 어린 시절 매월 마지막 목요일,

우리 가족은 모두가 일찍 집에 와야 했다.

누구라도 어떤 핑계도 되어선 안된다.

왜냐하면 그 날은 우리 가족이 함께 모여

‘가족 회의’를 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어떤 내용의 회의를 했는지는

솔직히 별로 생각 나지 않는다.

다만 온 가족이 함께 모였고

어른들은 꾀 진지했던 것 같다.

 

그러나 무슨 회의를 했는지

무엇을 회의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나와 동생은

그럼에도 가족회의 날이 무척 기다려졌다.

정말 정말 좋았다.

회의 마지막 부분이 특히 그랬다.

 

의하는 타임이 주어지는데

이 건의 타임에는

누구나 솔직하게 누구에게든, 무엇이든

건의할 수 있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시간에 가장 건의를 많이 받는 사람은 오빠였다.

나와 동생에게 평상시 심부름을 많이 시켰다.

오빠와 나는 나이 차이가 9살이나 났고

그래서 오빠가 심부름을 시키면 감히 거절을 할 수가 없었다.

 

때로는 친구 같이 다정하기도 하고

때로는 영화 속 주인공처럼 멋있었던 오빠이지만

우리가 숙제를 안 했거나

친구를 데려와 집을 엉망으로 만들었을 땐,

도깨비보다도 더 무서웠다.

 

우리는 너무 어려서

오빠가 우리를 위해서 하는 가르침이나

심부름 등의 유익함보다는 불만일 때가 더 많았던 것 같다.

 

그래서 기다리고 기다리던 가족 회의 날,

바로 바로 건의 타임!

나와 동생은 이구동성으로 오빠를 향해

적극적인 아니 공격적인 건의를 했다.

 

“너무 심부름을 많이 시킨다.

오빠가 해도 되는 것 같다.”

 

“무섭다. 너무 무섭다. 아빠보다 무섭다.

사랑한다면 자상하게 해줘라.”

 

“오빠도 청소해라.

아침에 좀 빨리 일어나라

엄마 힘들다 ” 등등

 

무엇이든 마구마구 건의 했다.

 

그럴 때면 오빠는

온가족 앞에서 미안하다고 사과도 했고

스폰지처럼 자상하고 부드러워졌다.

물론 3일도 못 가서

다시 무서워지고 엄격해지고

마구마구 심부름을 시켰지만 말이다.

 

완벽주의자 언니 또한 우리의 건의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언니도

유머와 위트로 우리를 설득하며 부드러워졌다.

 

회의가 끝나고 아빠와 엄마는

나와 동생에게 노래와 춤을 추어보라고 시키기도 했다.

 

특히, 내 동생은 춤을 잘 추었고

온 가족은 박수로 리듬을 맞추며

함박 웃음 소리와 함께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당에는 커다란 해바라기와 청포도 나무가 있던

어릴 적 우리 집 담장 너머로 가족들의 맑고 밝은  웃음 소리가

온 동네, 아니 온 세상으로 퍼져나갔다.

 

지금 생각해보니

우리 가족은 참 민주적이었다.

민주적인 가정을 이끌어가신

멋진 가장, 우리 아버지

 

아버지는 지금 세상에 없다.

그 옛날, 그 시절에 어쩌면 그렇게도 민주적이셨을 수 있으셨는지

참 존경스러운 우리 아버지!

 

립다.

그리워서 아버지 계신 대전에 다녀왔다.

만저봐 4월호 주제 ‘가족’에 관한 글을 쓰기 위해

덕분에 가족에 대해 생각해보았고

어린시절 가족회의를 그리워해보고

또 존경하는 아버지께 다녀올 수 있었다.

참 감사하다.

 

 

 

오드리 기자가족회의

빈센트 반 고흐의 봄을 바라봄

올해 겨울은 유난히도 추웠다.
이렇게 춥고 긴 겨울은 내겐 처음이었던 것 같다.
기나긴 겨울을 지나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린다.

봄을 소재로 한 명화들이 많지만 그 중에서 내가 제일 사랑하는 위대한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 속 봄을 함께 느껴보는 건 어떨까?

빈센트 반 고흐가 파리를 떠나 프랑스 남쪽의 작은 도시 아를르에 도착했던 1888년 2월도 60센티미터에 달하는 엄청난 눈이 내렸고 28년 만에 가장 추운 겨울이었다고 한다.

반 고흐의 아를르 시기는 그의 생애에서 작업활동이 가장 왕성했고 그의 주요 걸작들이 많이 탄생했다. 1년 남짓한 아를르 체류기간동안 무려 187점의 유화작품을 그렸다니!

이 시기 탄생한 여러 걸작 중 인물화와 정물화가 아닌 시린 겨울을 이겨내고 꽃망울을 틔워내는 봄의 과수원을 담은 풍경화 연작에 주목해본다.

 

[1888년 3월 30일]

야외 과수원에서 20호 캔버스에 작업을 했어. 찬란한 푸른빛과 흰색 하늘을 배경으로 갈대로 만든 울타리와 분홍색 복숭아나무 두 그루가 있는 연자줏빛 경작지야. 내가 그린 최고의 풍경화가 아닌가 싶다. 

 

사실 아를르의 시기는 불안과 외로움, 실의과 패닉 상태가 절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888년 4월, 고흐는 아를르 근처의 꽃이 활짝 핀 과수원을 그리는데 열정을 다하였다고 한다.

<꽃 핀 복숭아 나무 Peach tree in blossom>은 그가 아를르에서 그린 첫번째 연작이었다.

 

Peach tree in blossom 1888. 3 캔버스에 유화 Van Gogh Museum, Amsterdam

 

    Small pear tree in blossom 1888. 3 캔버스에 유화 Van Gogh Museum, Amsterdam

 

   The pink orchard 1888. 3 캔버스에 유화 Van Gogh Museum, Amsterdam

 

     The white orchard 1888. 4 캔버스에 유화 Van Gogh Museum, Amsterdam

 

 

   The Pink Peach Tree   1888. 캔버스에 유화Van Gogh Museum, Amsterdam

 

[1888년 4월 9일]
늘 그렇듯 현장에서 작업하는 동안 난 데생에서 본질을 포착하려하네. 그 다음 빈 공간에 윤곽선들을 그려넣지. 분명한 부분도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지만, 어느경우라도 마음에 와 닿았던 것들이야. 이것들 역시 단조로운 색채로 채워나간다네. 흙에 해당하는 것은 모두 동일한 보랏빛이고, 하늘은 모두 푸른색을 띠는거야. 초목은 청록색 혹은 황록색이지. 이 경우 노랑이나 푸른 색조들이 의도적으로 강조되네. 

 

솔직히 고흐 작품이라면 떠오르는 그만의 강렬한 색체감이 드러나는 작품은 아니다.

하지만 그가 담아낸 과수원의 풍경에서 봄이 주는 희망과 용기 그리고 결실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한다.

따사로운 봄 햇살이 얼어붙었던 대지를 녹이고 과일나무의 잎새와 탐스런 열매를 맺을 꽃을 풍성하게 피워낸다.
자신의 우울함과 내면의 고통을 딛고 그린 고흐의 봄은 그의 캔버스 안에서 아름다운 꽃을 피웠고 우리들이 맞이 할 봄으로 다가왔다.

고흐의 시선이 머물었던 그곳을 함께 바라본다.

파란 하늘과 초록빛 대지, 핑크빛 하얀 꽃잎 그리고 싱그러운 봄바람…

기나긴 겨울을 보내고 새로운 희망과 기대를 갖게하는 그런 봄이 왔다.

BDQueen빈센트 반 고흐의 봄을 바라봄

느닷없이 오사카

박 현숙느닷없이 오사카

신동아·주간동아 공동기획 | 이제는 ‘도시재생’ 시대! | 〈르포〉 근대문화유산 되살린 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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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우리 만저봐가 군산으로 워크샵을 가야하는 이유. 문화도시, 만화수도, 유네스코 창의문학도시로써의 부천. 도시의 자원을 어떻게 재생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실천적 활동을 모색하는 자리를 꼭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한성희 기자님의 <그곳에 가면> 기사에 영향을 받기도 했구요.

같이 읽어보면 좋을 기사라 소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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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아·주간동아 공동기획 | 이제는 ‘도시재생’ 시대! |

〈르포〉 근대문화유산 되살린 군산

  • ● 2008년부터 근대건축물 살리기 전개…360만 관광객 몰려와
    ● 도시재생 뉴딜 시범사업 선정…옛 항구와 폐철도 살린다
    ● 서울 등 외지에서도 ‘민간 투자’ 문의 쇄도
    ● 협동조합 설립하고 경관협정 맺고…“주민들 힘으로 자생할 것”
    ● 문동신 군산시장, “고군산군도의 자연미 더불어 역사문화도시 발돋움”

적산가옥을 리모델링해 숙박시설로 만든 군산시 월명동 ‘고우당’을 관광객들이 둘러보고 있다. [홍중식 기자]

적산가옥을 리모델링해 숙박시설로 만든 군산시 월명동 ‘고우당’을 관광객들이 둘러보고 있다. [홍중식 기자]

“20년 버텼더니 이런 날도 오는구먼.”

“그냥 맛있게 먹기나 하라”면서도 기자의 방문이 싫지 않은 기색이다. 큰 국자로 떡볶이를 휘젓는 안젤라분식 주인 김영숙 씨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이곳 군산 월명동 영화시장은 한때 군산의 내로라하는 식당이 한데 모인 번화한 곳이었다. 그러나 1996년 시청과 법원 등 관공서가 신도시로 옮겨가면서 영화시장을 포함한 구도심 일대는 쇠락의 길을 걸었다.

요즘은 달라졌다. 외지에서 온 20, 30대 젊은이들이 좁다란 시장 골목으로 떡볶이를 먹으러 온다. 이들의 스마트폰엔 구도심에 산재한 일제강점기 근대건축물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 한가득 담겨 있을 것이다. 김씨는 “젊은 손님들이 이성당 빵을 사 들고 와서 떡볶이를 먹고 간다”며 “도시재생으로 동네가 달라지긴 달라졌다”고 했다. 이성당은 1945년 월명동에서 문을 연, 국내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빵집이다.

최근 군산이 여행지로 각광받는 배경에는 활발하게 보존·활용되고 있는 근대문화유산이 있다. 군산은 일제강점기 미곡 수탈의 현장이었다. 일제는 전국 각지에서 앗아온 쌀을 군산항을 통해 조선 밖으로 빼내 갔다. 1920, 30년대 ‘식민항구도시’ 군산항 인근에는 세관, 은행, 쌀 창고, 무역회사, 곡물검사소, 일본인 적산가옥 등이 속속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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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DQueen신동아·주간동아 공동기획 | 이제는 ‘도시재생’ 시대! | 〈르포〉 근대문화유산 되살린 군산

작가와의 만남 – 박비나 작가의 ‘비나의 봄’

‘비나의 봄’은 시민 카페 채움에서 열린 두번째 전시회이자 박비나 작가의 첫 개인전이다.

지난 4월 26일 채움에서는 박비나 작가와의 만남이 있었다. 박비나 작가는 올해 1월, 전시작 중 하나인 ‘더러운 잠’이 전국적으로 크게 회자되며 논란과 화제를 동시에 불러 일으킨 <곧, 바이 전>에 함께 참여한 프리랜서 일러스트 작가이자 카툰 작가다. 카툰계에서 여성 카투니스트들은 드문 편인데, 박비나 작가는 그 중에서도 꾸준히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일구고 있는 드문 작가다.

이 땅의 워킹맘들의 어깨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짐들이 지워져 있다. 누군가의 엄마와 아내로 규정되는 관계의 타이틀과 함께 많은 이들이 자신의 꿈과 현실 사이 그 어딘가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박비나 작가를 처음 만났을 때 화려한 미모와 젊은 작가의 외모에서 그의 실제 작품 세계를 상상하기는 쉽지 않았다. 다만 국회의원들과 대통령도 읽는다는 82년생 김지영의 주인공, 다른 이름으로는 경단녀라 한다면 작가를 이해하는 한 꼭지 정도는 될 수 있을까?

박비나 작가의 작가명 비나는 만화를 그리고 전문 산악인이기도 한 아버지가 붙여 주신 이름이라 한다. 아들에게는 산을 타는 로프인 ‘자일’로, 딸은 카라비나에서 카라를 빼고 비나로 지었다는 유머러스한 배경을 설명해 주었다. 작가의 아버지는 딸에게 비나라는 이름을 지어주면서 이미 유머와 해학을 담은 작품을 만들어내는 미래를 보았는지도 모르겠다.

비나 작가의 작품 세계에서 두가지 키워드는 관찰과 감상이라고 한다. 작가의 말처럼 작품 곳곳에 관찰과 감상에서 우러나온 경험의 형상화가 공감을 일으킨다.

이번 전시 작품들은 미혼으로 직장생활을 하던 시절부터 결혼을 하고 직장맘으로 육아와 일을 병행하며 시간에 쫓기던 시기를 거쳐 두 아이의 엄마로 살면서 꿈을 놓지 않고 끊임없이 그리고 또 그려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만들어가는 작가의 치열한 시간들이 오롯이 녹아있다. 카툰을 시처럼 봐달라는 작가의 말처럼 그의 작품들에는 함축적인 의미가 여기저기 번뜩인다. 피식 웃음이 나오기도 하고 눈시울이 뜨거워지기도 하는 그림 속에는 우리 모두 고개를 끄덕이곤 하는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이유 ⓒ박비나

아이가 코드를 뽑아서 생각이 나지 않는 상태를 표현한 유쾌한 작품이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면, 아니 어린 아이를 돌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 맞아 맞아 할 수 있으리라.

첫 그림은 놀랍게도 그녀가 미혼일 때 상상하여 그림이다. 아이를 갖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표현하였다. 한참의 세월이 흐른 후 엄마가 된 작가는 아이와 함께 서서 거울을 바라보는 그림을 그린다. 미지의 상태에 대한 두려움을 가졌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아이와 함께 성장해 가는 모습을 담았다고 한다.  더 많은 시간이 흐르면 또 다른 관점의 아이와 함께 하는 작품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숨은그림찾기 ⓒ박비나

제자리로 놓으라는 잔소리에도 치우지 않는 아이의 가방이 놓인 소파 그림. 이 작품을 보는 아이와 씨름하는 엄마들의 입가에 미소가 떠오를 듯 하다.

괜찮아 ⓒ박비나

슬픔이지만 같이 위로해 주는 마음을 상상하며 그림.

악동 ⓒ박비나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춘 익살스런 그림이 미소를 불러일으킨다. 어릴적 누구나 한번쯤은 동물의 꼬리를 잡고 흔들어 보고픈 때가 있었다.

낚시 ⓒ박비나

미혼시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받았다고 고백한 작가의 작품. 원화는 앞으로 또다른 대상의 꿈이 이뤄지기를 응원한다.

세월호를 주제로 한 다양한 작품들

작가이기에 앞서 엄마이기에 결코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사건이 세월호의 아픔이다. 작가는 함께 공감하고 위로하고픈 간절한 마음을 그림 하나하나에 담았다.

그리는 행위와 과정이 치유가 된다고 말하는 박비나 작가의 얼굴 표정은 유난히 밝고 확신에 차 있었다. 직장과 가정사이에서 고군분투 끝에 프리랜서의 길을 택하게 되었지만,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열심히 달리는 모습이 이 땅의 또다른 김지영들에게 위로가 되길 바란다.

후니작가와의 만남 – 박비나 작가의 ‘비나의 봄’

오드리의 끄적끄적(1) : 거시기 허네요~

영화 황산벌

 

거시기허네~

2003년 흥행작 ‘황산벌’에 명장면이 있다.

백제 계백장군이 참모들에게 작전지시를 하는 장면이다.

 

“여그 황산벌전투에서 우리 전략은

한마디로 거시기헐때꺼정 거시기해불자.

바로 요거여. 알것제?”

일사불란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참모들.

 

한편, 이를 숨어 엿듣던 김유신 장군은

당황한 표정으로 부하들에게 명령한다.

“니들 다 들엇제? 거시기의 정체를

정확히 파악할 때까지 총공격은 몬한다카이.”

 

김유신장군은 거시기를 작전상 중요한 암호로 오해한 것이다.

계백장군의 거시기는 승리할 때까지 싸우자는 말이었다.

 

황산벌에는 거시기라는 인물도 나온다.

 

세상 살다보면 거시기할 때가 많다.

보고 느끼는 관점에 따라

그 거시기도 또한 거시기허다.

각자가 느끼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름 속에서 소통해야하는 사람들의 관계는

거시기로 쉽게 통할 수는 없다.

마음하나 믿고, 진실하나 믿고, 거시기하다보면 낭패다.

 

내 부모형제도, 남편, 자녀도

매번 거시기가 통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거.

거시기 이상의 노력으로

모든 관계는 만들어진다는 거.

참, 거시기허네요.

오드리 기자오드리의 끄적끄적(1) : 거시기 허네요~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닌 웃는 얼굴이 더 행복한 작가 – 아주

아주 작가는,
세상을 향한 소통의 문을 여는 여성주의 저널 ‘ 일다 ’에서 그래픽 노블 형식의 작품을 격주로 연재하고 있다. 그리고 생태, 여성, 인권에 이르는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매우 많다.


변산공동체에서의 귀농 생활, 밀양 송전탑 , 인천 인권 영화제, 최근엔 광화문 촛불집회 현장에 이르기까지 그녀는 항상 거기에 있었고 지금도 거기에 있다.

“내가 그림을 그리지 않아도 시시각각. 이곳은 내게 아름다운 그림들을 보여준다.” 2014년 어느 날 변산공동체에서의 서정을 그렇게 SNS에 남기기도 했으나, 그녀는 미치도록 좋아했었던 그림을 다시 그리고 싶어서 도시로 돌아왔다. 현재는 서울의 모 한의원에서 간호조무사로 근무하면서 생계와 예술 모두 열정적으로 잘 꾸려나가고 있다.

지면을 빌어 그녀에 대해서 더욱 자세히 알아보자.
일곱 살 무렵부터 그녀는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부침과 시련이 많았던 삶에서 흔들림 없이 지켜온 그림 그리는 “아주“. 지금 그녀를 지탱하고 있는 든든한 자존감이자 버팀목이라 한다.


서양 회화를 전공했지만 최근의 그녀는 텍스트 다루는 법을 더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글과 그림의 경계를 넘나들다 보니 “만화가”로 불리기도 하지만, 그저 “그림과 글로 표현할 줄 아는 사람” 정도로 평가받고 싶어 한다.

20대 중반까지는 일과 작업의 경계가 애매한 생계형 아티스트로 살았으나, 이젠 생계와 예술작업에 대한 나름의 심리적 가이드라인을 갖고 산다 한다.

현실적인 돈 문제뿐만 아니라, 직장을 다니면서 작업을 하게 되면 그 직업이 무엇이든 작업에 대한 절박함이나 스트레스가 덜해져 안정적으로 하고 싶은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고 결국 작업에 많은 영향을 주기 때문이라 한다.

또한 쳇바퀴 돌리듯이 생계를 위한 직업 생활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 가슴 답답한 통증이 찾아들어, 시간을 할애해서라도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행위를 통해 삶의 의미를 찾는다고도 그녀는 말했다.
그렇다면 그녀에게 있어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다는 것은 정말 행복하기만 한 일인 걸까? 넌지시 물어본 질문에 그녀는 웃으며 말로 다 못할 성취감과 쾌락을 동반하긴 하지만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생계와 작업을 심리적으로나마 분리시키면서 안정적으로 작업에 매진할 수 있게 되었고, 지금은 이에 더 나아가 작업하는 시간을 더 늘리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는데, 결과적으로는 오로지 글과 그림이 자신의 생계를 책임지게 하는 것이 작은 소망이라 한다.

만화 작업을 처음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남들보다 세상에서 일찍 사라지고 묻힐 것만 같았다던 그녀였지만 이제는 그림과 글이 오히려 그녀를 위로하고 이끌어가는 듯하여 만족스럽다고 했다.

그럼 그녀는 어떻게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게 된 것일까?
처음에는 한풀이나 살풀이로 시작된 그림이었지만 점점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런 사람들과의 인연들이 맺은 공감과 위로, 그리고 무엇보다 진심된 소통을 통해 많은 것들을 배우면서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그림으로부터 시작한 작업이기에 아직도 글보다는 그림이 편하다는 그녀는, 비록 글은 시간이 많이 걸리고 어렵지만 보다 아름다운 글을 써 내려가기 위해 항상 쓰고, 읽고, 설득하는 방법의 글쓰기를 공부해가고 있다고 했다. 작업도 하나의 공부이다.라고 부연 설명을 하며 그녀는 오히려 공부를 많이 할 수 있기 때문에 작업을 하면서 즐겁다고 했다. 그녀의 얼굴과 몸동작에서 몸에 밴 부지런함이 수시로 드러난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녀의 작품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주로 등장하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가족 이야기를 주된 소재로 삼는 그녀이기에, 처음에는 어렸을 때 정말 누구보다 힘들고 아프게 살아온 이야기를 소재거리로 하는 것에 거부감도 많이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다사다난했던 이야기뿐만 아니라 사소했던 사건들도 모든 것들이 소재가 될 수 있고 가족 한 명 한 명이 너무나 재미난 캐릭터라서 마르지 않는 오아시스처럼 이야기가 가득하다고 했다.

다만 이러한 이야기를 제한 없이 마구 풀어내기에는 자신의 오빠나 부모님들이 눈에 밟혀 지금은 본인의 이야기를 위주로 담는 편이라며 미소로 말을 아꼈다. 그렇다면 자신의 이야기가 아닌 다른 이야기들은 어떤지에 대한 물음에 그녀는 확신 있는 목소리로 이야기는 음식을 먹고 모든 걸 소화한 상태, 즉 완전히 받아들여져야 가능한 것이라고 했다.
따라서 자신의 이야기는 충분히 소화하여 그려낼 수 있지만, 정확히 알지도 이해하기도 어려운 남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감히 어려운 일일 뿐더러 소화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생각을 해보니 충분히 이해가 가는 답변이다.

그렇다면 그녀가 그려가고 있는 가족이란 무엇인지, 화제를 전환해서 보다 자세히 이야기를 해보기로 했다. “어렸을 때는 되게 이상적으로 생각했고 그렇게 교육을 통해 세뇌가 되어서인지 실망감도 컸던 것 같지만 가족이라는 존재는 아직도 숙제다.” 라며 그녀는 속깊은 답변으로 이야기의 말문을 열었다.


현재 자신에게 있어 가족은 같이 살고 있는 고양이 모리뿐이라며 위트있는 답변으로 순간 웃음이 가득한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했다.
그녀가 생각하는 그녀 자신은 어떨까. 서로 다른 관점에서 그녀를 바라보기로 하였다.

Q:”가족이 보는 아주”
A: 처음에는 고삐 풀린 강아지였다가 요즘에서야 자리를 잡아가는 막내딸, 여동생, 이모 정도가 되지 않을까요? 아버지 큰언니는 연락을 안 드리니까… (이하 생략).

Q:”자기 자신이 보는 아주
A: 마치 활화산에서 터져 나온 뜨겁지만 거친 용암과 같을 것 같아요. 그 역동적인 용암 안에는 아주 괜찮은 지질 시대의 지층이 될 가능성이 있구요. 물론 이는 제가 하기 나름이겠지요.

Q: “친구가 보는 아주”
A: 친구들이랑 종종 이에 관해서 이야기를 해보는데, 아마 가끔은 불안정하고 기복이 있기도 하지만, 점점 안정시키면서 살아보려고 애쓰는 친구라고 말하죠.

아주 작가가 그려내는 그림과 글은, 즉 텍스트와 그림 그리고 이미지들이 경계 없이 하나로 보인다.

글이기도 하고 그림이기도 한 동시에 글도 그림도 아닌 제 3의 발화체인 이코노텍스트의 문법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그녀가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작품을 통해 글과 그림의 만남 뿐만 아니라 모든 영역이 함께 만날 수 있는 것을 꿈꾸는 듯하다.

그림에서 묘사되는 손과 발의 놀림은 마치 실제인 것 처럼 아주 자연스럽다. 어릴 때부터 몸에 베어서 나온 듯한 살아있는 움직임을 통해 그녀는 감정을 전달한다고 했다.
글이나 말, 표정으로도 충분히 감정을 전달할 수 있지만 그녀는 이를 살짝 비틀어 손과 발의 미묘한 움직임으로만 이를 전달하려고 한다. 이를 완벽히 그려내기 위해서인지는 몰라도 그녀는 손기술이 참 좋았다. 이를 통해 작품을 그려내는데, 독특하게도 가족을 배경으로 하는데 작품마다 필명과 등장 인물들의 이름이 모두 다른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매 작품마다 그림에 맞는 필명을 사용하고 싶어 의도적으로 작가명을 바꾼다는 그녀의 말이 왠지 신기하고 독특한 시도처럼 느껴졌다. 요즘에는 사이바라 리에코의 우리집, 아다치 미츠루의 h2, 마츠모토 오카자키의 서플리를 좋아한다는 그녀에게서 얼굴에 미소를 가득 띄고 책을 읽고 있는 맑은 아이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본격적으로 아주 작가의 작품을 알아보자.
홍연이의 세상이라는 작품을 통해 그녀는 자기 자신의 성장과정을 홍연이라는 인물을 통해 노래하고 있다. 사우디 파견 노동자로 떠나신 아빠, 어디에 가서 아버지 없이 컸다는 말을 듣더라도 부끄럽지 않을 사람으로 자식들을 키우겠다며 온 몸을 다해 가게를 하며 힘들게 세 아이를 키우는 엄마, 그런 엄마를 보고 세상엔 남자가 우성 인자로 빛춰지지만 아주 작가에게 있어서 남자는 열성인자일뿐이다..


그리고 질풍 노도의 길을 걷는 민정 언니, 개구쟁이 영재 오빠, 그 공간 속에서 홍연에게 유일한 친구는 비어있는 스케치북이였다. 항상 불안하고 부족한 집에서 아무 말 없이 오랜 시간을 함께 지낼 수 있는 스케치북이란 누구보다 가까운 친구이고, 또 하나의 가족이었다. 스케치북을 친구삼아 그림을 그리는 그 자체가 아름다운 세계, 그녀의 세상이었다.

삼수니라는 작품에서는 작가는 힘들고 지친 삶을 죽을 힘을 다해 이겨내는 방법을, 그리고 살아가야만 하는 자신과의 처절한 내적 갈등을 보여준다. ‘꽃들에게 희망을’이란 책에서 나오는 줄무늬 애벌레의 삶처럼 더 나은 삶을 위해 여러 환경들을 접하면서 위에 있는 봉우리만 보고 무작정 올라갔지만, 누군가를 밟고 쓰러뜨리는 경쟁을 거쳐 올라간 꼭대기 기둥은 그냥 하나의 봉우리에 지나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처절한 현실을 두 눈으로 목격하며 슬럼프에 빠지기도 했지만 ‘괴물로 남지 말고 사람으로 남자!’라는 마음을 먹고 다시 세상에 나와서 만난 것들은 너무나도 다르고 다양한 사람들이었다. 사회 생활을 하면서도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사무치게 일하고, 미치도록 집중해보면서 살아 간다는 것.
그녀는 그렇게 살았다.
그리고 작가로서 살아가면서, 떠날 때에는 미련없이 떠나는 삶의 단편들이 이 작품 안에 아름답게 모여
있었다. 이러한 그녀의 모습을 작품을 통해 접해보면서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한편으로는 그런 치열한 삶을 살아온 그녀가 부러웠다.

2년 후에 다음 작품을 계획하고 있는 그녀는 작업물도 많이 쌓아놓고 이를 통해 적당히 돈을 모아 6개월 정도 자기 자신에게 휴식을 주고 싶다고 하였다. 여유롭게 살면서 전시도 하고, 책도 내고 싶다는 그녀의 굳은 다짐을 들으면서 다음 작품이 더욱 기대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작가들을 취재하면서 항상 궁금했던 점들에 대해 그녀의 생각을 들을 수 있었다.
아주 작가에게 있어 만화란 표현 방식의 하나로서 음식으로 표현하면 친구 같은 막걸리라며 위트있는 멘트를 전했다.
죽을 듯이 하는게 아니라면 하지 말라고 한 누군가의 말을 빌어 본인은 즐겁게 살 것처럼 작품을 하겠다고 했다. 자신이 작업에 흥미를 느끼고 만족하면서 그 결과물이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지고 읽혀지게 되고, 그리고 이를 통해 안정적인 생계 수단으로 자리잡을 수 있는 조화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이 소망이라고 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모든 것들을 글과 그림이라는 과정을 통해 하고 싶을 때까지 미친듯이 해보는 것이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라며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다.
그녀를 알게 된지 며칠 되지 않았지만 누구보다 그녀를 오랫동안 옆에서 지켜봐 온 것 처럼 너무나 많은 것들을 알고 배울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1월 16일 “만화저널 세상을봐” 편집국에서 아주 작가를 다시 만났다.
웹툰으로만 소개되었었던 작품의 원화를 보여주기 위해 꽤 무거워보이는 4권의 바인딩북을 다 챙겨오면서도 힘들어하는 표정 하나 없이 맑고 밝은 얼굴로 들어서는 그녀를 반가운 마음에 냉큼 그녀를 껴안았다.
잠깐의 순간이었지만 홍연이, 삼수니, 그리고 지금의 그녀가 함께 안겨왔다.

두시간전부터 미리와서 기다리고 있었던 많은 만화 애호가들로 북적이며 시끌시끌한 가운데 웃으면서 이런저런 많은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었다.
다들 예쁘다라는 말에 수줍음과 함께, 태어나서 예쁘다라는 말을 이렇게 많이 들어 본 적은 처음이라며 부끄러워하면서도 좋아했다.시간이 흐르고 막걸리 몇 잔에 홍조를 띄며 노래까지 불렀다.


시니어 만화창작 동아리인 “누나쓰” 할머니들은 그녀의 캐리커처를 즉석에서 직접 그려주었다. 캐리커쳐를 받아 잘 보관하겠다며 파일에 넣는 아주의 모습에서 잔잔한 행복을 느낀다.
자신의 작품을 알리러 온 것이 아니라 이 기회를 통해 자기 자신을 반성하며 더 열심히 살겠다는 그녀는 어르신들에게 감사하다며 아름다운 재회를 마무리했다. 즐거운 마음으로 거짓 없이 솔직하고 맨몸으로 세상에 뛰어든 듯이 진정성 있는, 아주 작가는 참으로 겸손했다.

야생화같은 삶을 살면서 비록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날들이 있었겠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맑고 밝은 마음을 갖고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 그녀를 만나 행복이란 무엇이고, 무엇이 우리를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드는가? 하는 의문이 잠시 들었다.

행복의 조건에는 정답이 없다. 스스로가 생각하기 나름이며 본인이 정해가는 것이다.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는 얼굴이 더 행복하다는 것’을 그녀를 통해 알 수 있었다. 그녀는 그랬다.

기사에 인용된 모든 작품컷은 아주 작가의 연재 작품중에서 발췌하였습니다.

다음 웹툰: 홍연이 http://webtoon.daum.net/league/view/11746
다음 웹툰: 삼수니 http://webtoon.daum.net/league/view/13669#pageNo=2&sort=recent
여성주의 저널 일다: 아주의 지멋대로 http://www.ildaro.com/sub.html?page=1&section=sc82&section2=%5B/vc_column_text%5D%5B/vc_column%5D%5B/vc_row%5D

정 정숙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닌 웃는 얼굴이 더 행복한 작가 – 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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