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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임 모(母) 전상서

 

 

813년 8월 다산 정약용이 그린 또다른 매조도. 시집 간 딸에게 결혼선물로 주기 위해 같은 해
7월에 그린 매조도와 구도가 비슷하지만, 이 그림에는 새가 한마리만 있다.
강진에서 얻은 딸 홍임을 위해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이 매조도는 2009년 처음 공개됐다. <한겨레 자료사진>

다산초당

 

홍임 모() 전상서

홍임 모, 안녕하신지라? 갈바람에 나뭇잎이 다 떨어지던 날 초당에 갔었지요. 원래 목적은 김영랑 시인 문학제에 갔던 길인데 그래도 다산초당에는 한번 들려야하지 않겠냐는 동인들의 의견에 휘적휘적 초당에 올랐지요.

그때까지도 <목민심서>나 <흠흠신서>를 쓴 실학의 대부 다산만 알았지 홍임 모에 대해선 아무것도 몰랐답니다. 어메는 숨 한번 제대로 쉬지 못하고 다산의 숨겨진 여인으로 어둔 초당에서 뱅뱅 돌고 있었지요. 250년이 지난 후에 어느 소설가가 쓴 ‘다산의 사랑’이라는 책을 통해서 홍임이와 홍임 모를 알게 되었어요.

18년 동안 유배생활하면서 아무리 학식이 많은 선비라도 남자 아닌감요? 아녀자 없이 끼니때마다 음식하고 빨래하고 집안을 건사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홍임 모가 없었다면 아마도 다산은 풍으로 팔다리가 마비되었을 때 이 세상을 하직하고 그 많은 저술도 하지도 못했을 것이구먼요. 지극정성으로 모신 남당네 덕분에 다산이 75세까지 장수했을 것이고요. 청상과부가 된 홍임 모를 다들 남당네라 불렀다지요.

초당의 예전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습디다. 집터만 그대로지 지붕은 기와로 이고 마루랑 토방은 보수공사를 한다고 새끼줄을 처 놔 제대로 보지도 못했네요. 그래도 제자들이 고아 드시라고 가져온 잉어를 놓아준 연못은 그대롭디다. 거기서 남당네가 차를 덖고 마루에 걸레질 하고, 제자들 밥해 먹이고 다산의 팔다리를 주무르며 시중을 드는 모습만 상상하며 둘러보았답니다. 울울한 대숲과 차나무 밭을 지나 백련사 가는 길목, 굽이굽이 선상님을 위해 종종걸음치며 오르내렸을 오솔길을 나도 따라가 보았네요. 백련사 공양주로 있으면서 절 일하랴 초당에 와 살림하랴 하루도 쉴 새 없이 몸을 움직여야 하지만 그래도 어메의 마음은 참 행복했겠어요. 게다가 홍임이까지 낳고 얼마나 알근달근 살았을까. 일찍이 청상되어 이집 저집 허드렛일 하며 몸 붙일 곳 없이 살다가 비록 귀양살이는 하고 있지만 한양에서 큰 벼슬을 하던 명망 높은 분의 소실도 들어갔으니 말이에요. 그래도 홍임 모로 본다면 다산이 해배 되지 않는 게 더 행복했을 텐데. 마음속으로는 선상님이 평생 강진 초당에서 어메랑 홍임이랑 같이 살았으면 하고 바랬을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세상일이 고러코롬 마음대로 되던가요?

어린나이에 시집와 하늘같은 지아비만 바라보며 늙어가는 본부인이 있고, 대나무처럼 곧게 자라는 아들들이 있는데 말이에요.

아들 학유에게서 남당네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시집올 때 입었던 다섯 폭 붉은 치마를 강진으로 보냈다지요. 그것을 보고 본가에 살고 있는 부인을 생각해 달라는 그 애처로운 맴을 저도 알 것 같아요. ‘시앗을 보면 길가의 돌부처도 돌아앉는다.’는데 좋은 시절 청상 아닌 청상처럼 외롭게 살고 있는데 귀양살이 간 지아비가 젊은 여인네 수발을 받고 있으니 어찌 마음이 편했겠어요? 여성 상위시대라는 오늘날에도 남편이 딴 여자를 보면 화병이 도저 죽어뿔 것 같은데. 그 맴을 아는지 모르는지 선상님은 홍씨 부인의 빛바랜 치마폭을 싹둑 잘라 거기다 자식들 일깨우는 글을 썼다니, 같은 여자 맘으로 쪼가 거시기 했겠어요. 아무리 학식이 많아도 남자는 남자지요. 단순한 남정네들이 요로코롬 복잡 미묘한 여자 맴을 어찌 알겠어요.

그러니 선상님이 유배에서 풀려나 홍임 모녀를 불러들였지만 홍씨 마님이 당차게 밀어낸 거지요. 십여 년을 유배지에서 마나님 대신 지극정성으로 지아비를 모셨다면 고맙다고 품어 주어야 마땅한데. 양반가문에서 질투는 ‘칠거지악’이라 했지만 그래도 소실을 보면 속에서 불덩어리가 확 치밀어 오르는 여자의 본심을 어떻게 가리겠어요.

그것도 모르고 해배되어 고향으로 돌아가면 돛배 한 척 사들여 거기에 방을 내고 홍임이와 홍임 모와 유유자적 살겠다던 선상님의 말씀만 믿고 좋아라 한양으로 올라왔지요. 본가 문간방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형네 집 옆 오두막에서 갖은 설움 다 겪으면서 고생고생하며 살아가는 홍임 모를 보며 맴이 쓰려 혼났다니까요. 자식은 내리 사랑이라고 비록 신분이 낮은 어미의 몸에서 낳지만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만큼 이쁜 딸인데 을매나 보고잡었겠어요. 마음은 왼통 홍임이네 식구에게 가 있으면서도 부인과 아들들의 눈치가 무서워 근처도 얼씬하지 않는 선상님이 야속했구만요.

그래도 어메는 참 착한 사람이요. 한 번도 선상님을 원망하지 않고 선상님 맘을 헤아렸으니 말이요. 아니 마음을 비웠는지도 모르지요. 젤 좋은 시절을 선상님 모시고 살았으니 이젠 내어줄 줄도 알아야 한다는 이치를 깨달아 버렸나요?

2년 동안 맘고생만하다가 쫓겨나다시피 다시 강진 초당으로 내려와서도 한 잎 한 잎 찻잎을 따서 정성스레 차를 맹글어 선상님께 올려 보내는 어메의 그 마음에 내도 가슴이 찡하니 목울대로 뜨거운 것이 확 올라오더라고요.

그 심정을 선상님이 아시고 ‘기러기 끊기고 잉어 잠긴 천리 밖, 해마다 오는 소식 한 봉지 차로구나’ 라는 시로 홍임 모녀에 대한 그리움을 담았다지요.

지아비 한 분으로 두 여인네의 삶이 외롭고 고독했지만 그 여인들의 사랑과 정성으로 다산이 저렇듯 높은 경지에까지 올랐으니 그걸로 위안을 삼으셔요.

소식도 없는 아버지를 기다리다 지쳐 출가를 결심한 홍임이가 사람덜은 뭐든지 가질라고 허고 중은 뭐든지 버릴라고 해서 비구니가 되겠다는 말을 듣고 어메도 시상 모든 것 다 버리고 절로 들어가 공양주가 되었는감요?

모녀의 애달픈 삶이 배어 있는 다산초당에서 백련사 가는 산등성을 넘으며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그렇게 살아라.’하신 부처님의 말씀이 떠오릅디다.

이제 편히 쉬시시오.

2018년 11월

 

한 성희홍임 모(母) 전상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