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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박의 손그림 에세이 (15) “내 자리”

저곳은 누구의 자리인가? 청소, 육아… 다른 것은 몰라도 저곳은 내 자리이겠다고 다짐했다. 설겆이는 나의 것! 수세미, 주방세제의 교체도, 음식 쓰레기 처리도 내 몫이리라. 요즘 좀 바쁘다고 나라가 이 꼴이라며 내 자리를 잊고 살았네. 여보, 미안해. 그러나 오늘부터라도 저곳은 내 자리.

김수박의 손그림 에세이 (14) “문방구”

어릴적에, 나는 커서 냉차 파는 아저씨가 되고 싶었고 (냉차를 실컷 마실 수 있을 것 같아서), 엿장수도 되고 싶었다. (같은 이유로). 학교를 다니면서 꿈을 바꿨다. 연필도 공책도 있지만, 신기한 장난감과 (어른들은 싫어하고) 아이들만 좋아하는 ‘얄궂은’ 불샹식품이 가득한 보물창고 같은 문방구 주인이 되고 싶었다. 학교를 마치면 와글와글 모여드는 아이들을 보면서 흐믓한 미소를 짓고 싶었다. (‘뽑기’ 상품을 숨겨놓고서).

김수박의 손그림 에세이 (13) “밤 불빛”

이런들 저런들, 서울의 불빛은 아름답다. 특히, 다리를 가로질러 강을 건너는 지하철에서는… 차창에 머리를 기대면 흘러간 사람들이 생각나기도 하고, 이 매력적인 서울을 결코 떠날 수 없을 것만 같다. 한 동안 서울을 미워하기도 했다. 너무 많은 욕망들을 따라가기 숨이 차서. 나중에는, 미워하지만 사랑한다는 걸 깨달았다. 미워도 사랑할 수 있다. 서울은.

김수박의 손그림 에세이 (12) “창문”

멋진 경치다. 저 수많은 창문 중의 단 하나도 내 것이 될 수 없다고 결론 내린지 오래다. 당연한 일일까? 뭐가 모자라서 저 수많은 창문 중 하나를 가질 자격을 처음부터 얻지 못했나? ‘자수성가(自手成家)’란 말을 믿고 자랐다. 만약 내가 저 창문 두 칸을 꿈꾼 적이 있다면, 자수성가란 도구로 가능했을까? 이런 방식이라면 자수성가는 미신이다. 믿을 게 못된다. 우리나라는 그렇게

김수박의 손그림 에세이 (11) “정의”

분명히 초등학생 때부터 배웠다. 정의. 선생님께서 매일같이 말씀하시진 않았어도, 등하굣길에서 매일 보았다. 정의를 말하면 바보취급 받는 가운데에도, 커다란 돌에 ‘정의‘라는 단어가 새겨져 있었다. 지금도 많은 학교에 저 단어가 새겨져 있다. 선생님께서는 어른이 되면 필요 없는 것이라고 말씀해 주시지 않았다. 가끔 어른 흉내를 먼저 낼 줄 아는 녀석이 비웃기는 했어도, 마음속은 알고 있었다. 옳은 것은 정의란

김수박의 손그림 에세이 (10) “낙엽”

두 번의 가을이 있다고 생각한다. 단풍의 가을과 낙엽의 가을. 지독한 가을에는 지독하게 외롭겠다. 쓸쓸한 곳으로 걸어가리. 틀림없는 사실은 사그라짐이 있어야 다시 피어난다는 것. 새로움과 기쁨을 위해 필요한 역사이었기를… 저 단풍의 계절이 아름답다고 생각해 본 적이 있었을까? 아마도 ‘내 속엔 내가 너무 많은 것 같아…’^^ 지난 봄의 희망을 떠올려 보아도 그 설렘이 기억나지 않고, 지난 여름의

김수박의 손그림 에세이 (9) “철거촌”

재개발을 앞둔 철거촌을 한 번 쯤 걸어보았는지… 붉은 색 가위표는 부술 집을 뜻하는가보다. 떠날 수 없어서 버티는 사람들의 주장도 적혀 있다. 예전부터 궁금했다. 흔치 않게 보게 되는 저 해골 그림은 뭔지. 버티는 사람들에게 겁을 주는 그림이다. ‘더럽고 치사해서’ 떠나게 만들려는 수많은 수단 중 하나이다. 법과 현실 사이에 공백이 있다는 뜻이다. 그 공백에서 협박과 폭력이 발생하고

김수박의 손그림 에세이 (8) “골목”

깡그리 부수고 새로운 곳이 되기엔… 저 골목을 따라 남겨진 내 노곤한 귀가길의 추억은 어떡하나? 문득,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버릴까 두려워 눈에 새기고 마음에 새겨본다. 이제는… 지내온 시간들을 귀하게 여기고 기꺼이 담아내는 ‘새로움’도 고려할만하지 않을까? 그 아련한 기억들은 우리 모두 가지고 있잖아.

김수박의 손그림 에세이 (7) “시골길”

집과 가까운 시골길을 달리는데, 라디오에서 양희은 씨가 부른 [인생의 선물]이란 노래가 흘러나왔다. 문득 차를 멈추었다. 바람도 불고, 땅거미도 지고해서 말이다. “만약에 누군가가 내게 다시 세월을 돌려준다 하더라도, 웃으면서 조용히 싫다고 말을 할 테야… …나이든 지금이 더 좋아.” 나이를 먹는다는 것, 막을 수 없는 일인데, 나이 먹어도 좋다고 인생의 선배님이 말해주는 것 같아 고마웠다. 바람 불던

김수박의 손그림 에세이 (6) “벽돌집”

이제 나와 동생들도 독립하여 아버지, 어머니 두분이 사시는(1980년대에 지은 벽돌)집은 낡을 대로 낡았다. 회벽은 페인트가 죄다 벗겨지고 물때가 가득하다. 보수나 ‘리모델링’을 하자고 하여도 절대 싫다고 하신다. 가족들은 답답하다. 어느 날, 세월의 가치가 눈에 들어왔다. 이 낡은 집은 80년대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젊고 패기 있던 아버지와 어머니의 그 때가, 순진하고 불안한 눈빛의 어린 내가 남아있다. 또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