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posts tagged: 경성현

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20) – ‘Gogol’

지금은 문을 닫았지만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 우측 담장을 끼고 들어가면 골목 초입에 ‘카페 코’라는 아담한 카페가 하나 있었다. 사연은 모르겠으나 문을 닫은 지 벌써 몇 년은 된 것 같다. 향미가 좋은 스페셜티 원두를 융 드립(Flannel Drip)으로 맛볼 수 있었던 흔치 않은 카페였다. 그리 크지 않은 장소였음에도 프라이버시를 지킬 수 있도록 세심하게 공간을 배치했고 발을 디딜

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19) – Steal Away

11월은 일 년 중 가장 특별한 일이 없을 것 같은 달이다. 가을 분위기는 이미 퇴색되어 버렸고 그렇다고 떠들썩한 연말 분위기를 내는 건 너무 이르다 싶다. 그러나 지난 일 년을 돌아보며 회상하고 성찰하기엔 오히려 북적북적한 12월보다는 적기라는 생각도 든다. 잡다한 행사가거의 없어 번잡하지도 않을 테니 조용히 자기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시기다. 그런 11월도 어느덧 다 지나가고 있다.

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18) – <Vinding’s Music – Song From The Alder Thicket>

재즈는 미국에서 생겨나 발전한 음악이지만 현대 재즈 음악 시장은 미국보다도 오히려 유럽이 중심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강세이다. 전통적인 유럽 재즈 강국이라 하면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을 꼽을 수 있지만 최근 들어 약진하고 있는 재즈는 단연 ‘스칸디나비아 재즈’로까지 일컬어지는 북유럽 재즈이다. 가장 유럽적인 재즈를 표방하는 레이블인 독일의 ECM과 ACT 조차도 북유럽 출신 연주자들의 발굴과 그들의 신규

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17) – Rava On the Dance Floor

엔리코 라바(Enrico Rava)의 ‘Rava On the Dance Floor'(Enrico Rava and the Parco della Musica Jazz Lab, ECM)는 재즈 앨범이지만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의 음악으로만 채워져 있다. 난데없이 마이클 잭슨이라니… 마이클 잭슨이라면 익히 알려진 대로 그야말로 팝의 전성시대였던 80년대와 90년대를 휘어잡은, 그 시대 전체를 대표하는, 아울러 비극적인 사망 이후에도 대중음악사에서 그를 빼놓고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진정한

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16) – 재즈의 벨 에포크

우디 앨런이 감독한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주인공 ‘길’은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중 우연히 자신이 꿈꾸던 황금시대인 1920년대 파리로 시간 여행을 하게 된다. 거트루드 스타인에게 자신의 소설을 보여주고, 스콧 피츠제럴드, 헤밍웨이와 대화를 하며 피카소, 달리와 카페에 앉아 한담을 나누는 놀라운 경험을 한다. 그곳에서 피카소의 연인 아드리아나를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정작 아드리아나가 생각하는 황금시대는 1880년대

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15) – ‘Things'(Paolo Fresu & Uri Caine, Blue Note)

마르셀 프루스트는 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이른바 ‘무의지적 기억’의 특별함을 말한다. 주인공인 화자에게 마들렌은 단순히 버터와 설탕, 밀가루로 반죽되어 구워진 달콤한 과자로서만 존재하는 사물이 아니다. 마들렌의 냄새를 맡고, 맛을 본 후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는, 즉 의식하지 않고 있었던 과거의 어떤 일들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마들렌은 일정한 물성을 지닌 단순한 사물로서가 아니라 화자의 의지 외부에 있었던(혹은

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14) – Autumn Leaves

이즈음 가을에 가장 많이 연주되는 음악 하나만 고르라면? 쉽게 Autumn Leaves를 끄집어내는 사람이 많다. 특히나 어느 영화에선가 이브 몽땅이 불렀던 고엽(Les feuilles mortes)은 누가 들어도 가을 낭만의 한가운데로 떨어지는 낙엽의 궤적을 떠올리게 한다. 원래 Autumn Leaves는 샹송의 대표곡이다. 1946년 영화 ‘밤의 문’에서 이브 몽땅이 처음 불렀다고 알려져 있다. 이후 많은 샹송 가수들이 불렀고 특히 유명한

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13) – Offramp

1789년 7월 역사적인 프랑스 대혁명 당시 파리 시내 ‘카페 프와’의 탁자 위로 올라간 카미유 데물렝(Camille Desmoulins)은 왕과 귀족들에 대항하여 무장할 것을 촉구하며 혁명가 일행과 함께 바스티유로의 행진을 시작했다. 당시의 카페가 다양한 계층의 모임 장소로 활용되었던 것만큼 계몽사상과 혁명의 장소적 단초가 되었던 것이다. 그런 역사적인 유래가 있어서인지 프랑스 국민들의 카페와 커피 사랑은 더욱 각별하다. 소설가 알베르

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12) – Lady in Satin

지금 내 방안에는 Sidney Bechet의 Si Tu Ma Mere가 흐느끼듯 흐르고 있다. 곡의 제목이 조금은 낯설어 보일 수도 있지만 영화 Midnight in Paris에서 두 남녀가 비가 후두둑 떨어지는 파리의 거리를 천천히 걷는 마지막 장면 뒤로 흐르던 연주곡이다. 그런데 이 마지막 장면 속 계절이 무엇이었는지는 뚜렷하게 기억나지 않으면서도 왠지 가을일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그만큼 가을이 주는 감정의

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11) – A passion for John Donne

니콜라스 홀트와 휴 그랜트가 주연했던 영화 <어바웃 어 보이, 2002>는 인간은 ‘섬’이라 생각하며 살고 있는 한 남자와 인간은 결코 ‘섬’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소년의 이야기다. 경제적으로도 부족할 것 없고 책임질 가족도 없는 부유한 독신남 윌(휴 그랜트 분)은 도대체 왜 여자를 만나 사랑하고 가정을 꾸리고 살아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는 남자다. 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순간의 쾌락을 즐기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