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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25) – 재즈의 시대

“오히려 유럽으로 수입된 흑인음악과 춤이 더 위험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음악은 유럽의 문화 인구 전체를 정말 열광이라 할 정도로 완전히 끌어들였어요. 흑인들이 자신들의 물신들 주위를 돌며 춤을 출 때와 같은 몸짓의 끊임없는 반복이나 재즈 밴드들의 절분 된 리듬의 계속되는 소리가 아무런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갖지 않는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수백만의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대단히 광범위한 현상이에요. (중략) 나는 그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그가 더 이상 재즈를 들으며 커피를 마시는 일을 그만 둘 수 없으며 앞으로 그는 자신의 핏속에 있는 흑인의 색소를 잡아내기 위해 거울 안에 있는 자신을 보다 가까이 들여다 볼 것이라고 짐작합니다.” <감옥에서 보낸 편지> (안토니오 그람시, 민음사 168p)

20세기 가장 위대한 사상가 중의 한사람이자 파시즘에 대항한 영혼의 승리자이며 위험한 지식이라고도 일컫는 이탈리아 공산당 창시자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가 1928년 2월 20일 밀라노의 감옥에서 자신을 헌신적으로 뒷바라지 해 주었던 처형 타니아에게 보낸 편지 내용 일부다.

1891년 이탈리아의 사르데냐에서 태어난 그람시는 어린 시절 사고로 등이 굽는 장애를 얻었고 성년이 된 이후에도 크고 작은 병치레를 겪으며 결국 토리노 대학을 중퇴하게 된다. 그럼에도 1921년 이탈리아 공산당을 창당하고 1926년 1월 공산당 총서기에 선출되었으나 그해 11월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정권에 체포되어 20년의 형을 받고 수감된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당시 그람시에게 내려진 판결은 ‘20년 동안 저 사람의 두뇌가 활동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결국 형기를 다 채우지도 못한 채 1937년 생애를 마치게 되지만 감옥에서 보낸 10년 동안 노트 30여권에 이르는 많은 글을 남긴다. 그 중 <옥중 수고>와 <감옥에서 보낸 편지>는 그가 남긴 최고의 지적 결과물이다.

<옥중 수고>에는 마르크스 사상의 계보를 잇는 그람시답게 ‘헤게모니’와 ‘진지전’과 같은 정치적 개념과 철학, 역사, 문화에 걸친 방대한 내용을 담았다. 반면 <감옥에서 보낸 편지>는 당시 이탈리아의 정치 현실과 감옥 내에서의 개인적인 고통, 가족들에 대한 염려와 불안 등이 주 내용이다. 그람시의 개인적 면모를 알 수 있는 저작이다. 게다가 이탈리아 문학상까지 수상할 정도로 아름답고 명료한 문체로도 유명하다.

그람시는 편지에서 행상인이 파는 중국풍의 장신구를 이단시하여 유럽이 아시아화(化) 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는 한 복음주의자를 조롱한다. 아시아화(불교에 의한 우상숭배 신앙)를 걱정하면서도 정작 재즈(커피를 포함하여)의 급속한 전파로 인한 흑인화(최소한 혼혈아 단계)는 간과하고 있다며 놀리는 것이다. 커피는 이미 대중화 된지 오래되어 그다지 흥미로울 것이 없으나 재즈에 관한 언급은 의외다. 더욱이 그람시는 ‘춤을 출 때와 같은 몸짓의 끊임없는 반복’이나 ‘절분 된 리듬의 계속되는 소리’등으로 재즈의 특징을 설명하고 있다. 재즈의 ‘블루스’적인 요소와 ‘스윙’의 개념을 정확히 알고 있다는 뜻이다.

평생 자본주의를 경계하여 그 반대편에 서 있었던 그람시에게 조차 재즈와 커피는 우려의 대상이 아닌 민중이 누려야 할 최소한의 가치였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당시에 그람시가 들었던 재즈는 과연 어떤 형태였을까?

1900년대 초에 미국 남부 뉴올리언즈에서 탄생한 재즈는 1920년 중반부터 미시시피 강을 거슬러 올라가 대공황 직전인 1929년까지 ‘재즈의 시대’라고도 일컫는 시카고 시대를 보낸다. 우리가 알고 있는 스콧 피츠제랄드(F. Scott Fitzgerald)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의 배경이 되는 바로 그 시대다. 그람시가 감옥에서 편지를 쓴 시기와 정확히 일치한다. 놀랍게도 재즈가 본토인 미국과 유럽의 변방 이탈리아에서 거의 동시에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이다.

이 시기 대표적인 재즈 아티스트는 단연코 루이 암스트롱이다. 그는 재즈의 대중화 작업에 가장 큰 역할을 했고 솔로 연주와 보컬의 스타일을 정형화 시킨 인물이다. 재즈의 역사에서 그의 이름을 쓰지 않고는 단 한 줄도 이어나갈 수 없다. 한마디로 그의 생애가 바로 재즈의 역사 그 자체다.

1971년 세상을 떠나기까지 전 생애에 걸쳐 발표한 수많은 연주와 앨범은 어느 것 하나 빼놓을 것 없이 좋다. 그 중에서도 나는 1920년대 후반의 연주를 가장 좋아한다. 안토니오 그람시가 수감되어 편지를 쓰던 바로 그 시기다. 비록 소수의 애호가들만 즐기는 초기 재즈지만 루이 암스트롱의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넘치던 풋풋했던 시절의 연주답다. 블루스의 깊은 감성과 스윙의 경쾌함을 모두 품고 있다. 가장 순수한 모습의 재즈다.

경 성현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25) – 재즈의 시대

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24) – Goldberg Variations : Aria and 70 Variations Adapted, Arranged and Composed by Uri Caine

대학 입학 직전 날씨가 매섭게 추웠던 그 날 아침, 아버지와 동네 목욕탕에 가면서 들었던 음악은 바로 골드베르크 변주곡이었다. 연주자가 누구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이어폰으로 들리던 워크맨 속 피아노음은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차가운 날씨, 가슴을 때리던 명징한 피아노 소리, 그레이 컬러의 오버 깃을 올리시고 빠른 걸음으로 나를 재촉하시던 지금 내 나이쯤을 드셨던 아버지의 미소까지도 선명하다. 집에서 목욕탕까지의 거리는 불과 10여 분 남짓이어서 미처 연주를 다 듣진 못했다. 조급한 마음에 젖은 몸을 제대로 말릴 새도 없이 이어폰을 귀에 꽂으며 허겁지겁 목욕탕을 나섰다. 그런 기억 때문에 한겨울에 듣는 바흐의 골드베르크는 나에겐 정말 특별한 음악이다.

무수히 많은 골드베르크 앨범 중에서도 글렌 굴드의 데뷔 앨범인 1955년의 파격적인 연주와 로잘린 투렉이 1999년에 녹음한 정결하고도 사색적인 연주를 특히 좋아하는 편이다. 그 외에 재즈로 변주한 자크 루시에 트리오의 골드베르크 역시 빼놓을 수가 없다.

그러나 이번에 소개하는 골드베르크는 재즈 피아니스트 유리 케인이 그의 앙상블과 함께 2개의 CD에 가득 채워놓은 앨범(원제 Goldberg Variations : Aria and 70 Variations Adapted, Arranged and Composed by Uri Caine)이다.

레이블 W&W에서 발매된 이 앨범은 여타 골드베르크 앨범과는 비교할 수 없이 특이하다. 첫 번째 트랙인 ‘아리아’를 들을 때만 해도 싱커페이션이 다소 들어있기는 하나 평소에 들어왔던 골드베르크의 익숙한 멜로디가 별 거부감이 없이 들린다. 그리 특별한 앨범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러나 트랙이 점차 넘어갈수록 그야말로 파격을 넘는 다양한 스타일로 변주된다. 가히 골드베르크의 코스모스라고나 할까? 이 세상 모든 장르의 음악이 마치 바흐의 골드베르크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바로크 음악의 대가 바흐의 골드베르크가 재즈, 딕시랜드, 가스펠, 뮤지컬, 스윙, 일렉트릭, 힙합 등으로 변주되고 있으니 말이다.

이를테면 바흐 시대에 연주되었을 법한 익숙한 스타일의 변주가 나오다가 난데없이 1920년대 시카고 등지에서 연주되던 루이 암스트롱의 밴드 ‘핫 파이브’ 스타일의 변주가 튀어나온다. 그런가 하면, 현악 4중주와 피아노가 라흐마니노프를 연상케 하는 스타일로 연주되기도 하고 그렉 오즈비의 알토 색소폰이 등장하기도 한다. 급기야 뮤지컬 지킬 박사와 하이드를 능청스러운 남성 보컬로 듣게 되면 반쯤 넋이 나가게 된다. 이쯤에서 대부분의 리스너는 ‘대체 이 앨범의 정체는 뭐지?’라고 하면서 이마에 손을 얹고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 것이 뻔하다.

 

그렇게 두 개의 CD를 혼란과 경이로움 속에서 정신없이 듣다 보면 어느새 CD 2의 32번 트랙인 아리아의 익숙한 선율을 만나게 된다. 그제야 겨우 안도의 숨을 쉬게 된다. 두 시간이 넘는 혼란에서 간신히 빠져 나왔다고 믿는 것이다. 그러나 그 순간 유리 케인은 마음을 놓고 있는 청자의 허를 단숨에 찌른다. 정확히 2분 43초 동안 가느다란 파동만이 존재하는, 진정한 마지막 트랙 33번 ‘Eternal Variation’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희한하지 않은가. 음악을 담은 음반에 일정한 옥타브의 파동만 존재하는 트랙이라니. 이 앨범을 처음 들었던 당시엔 혹, 불량 음반이 아닐까 하고 의심했을 정도다.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은 ‘오리엔탈리즘’의 저자 에드워드 사이드와의 대담집 ‘평행과 역설'(도서출판 마티)에서 ‘침묵에 대한 저항’과 ‘침묵으로의 회귀’에 대하여 말한다. 두 사람이 ‘침묵에의 저항’의 예로 언급한 곡은 바로 베토벤의 교향곡 제 5번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주제 선율의 비장하면서도 강렬한 울림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알다시피 교향곡 제 5번은 운명의 문 앞에서 조차 결코 무력하게 순응하지만은 않는 인간의 위대한 저항을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이른바 ‘운명 교향곡’이라는 표제가 붙어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침묵으로의 회귀’의 적절한 예는 어떤 게 있을까? 책의 내용과는 별개로 감히 나는 이 앨범을 들고 싶다. 위에서 말한 CD 2의 33번 트랙 때문이다. 2분 43초간의 ‘소리 없는’ 마지막 트랙이야말로 ‘침묵으로의 회귀’ 바로 그것이다.

아리아로 시작하여 아리아로 끝나는 보통의 골드베르크와는 달리 이 앨범에서는 텅 빈 소리로 존재하는 33번 트랙을 듣고 나서야 겨우 한숨을 돌리고 눈을 지그시 감게 된다. 2시간 30여분에 걸친 골드베르크에 대한 긴 여정을 비로소 마치게 되었다는 뜻이다. 어찌 보면 인간의 삶 같기도 하다.

 

바흐의 골드베르크를 클래식 본연의 연주는 물론, 재즈, 뮤지컬, 일렉트릭, 힙합까지 아우르는 다양한 스타일로 변주하고 있으니 조금은 난감할 수도 있다. 그런 이유로 맨 정신엔 들을 수 없다고 꾀를 부릴 수는 있겠으나 CD 2의 마지막 트랙인 33번 트랙만큼은 꼭 들어보길 바란다. 2분 43초간의 침묵을 통하여 텅 빈 부족함에서 오히려 풍요로움을 느낄 수 있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독일의 레이블 ‘W&W’에서 발매된 앨범답게 앨범 자켓의 물성 자체 또한 예술적이다. 두툼한 아트지로 한 팩 한 팩 수공예로 제작되었기 때문이다. 여러 면에서 보석 같은 앨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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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23) – ‘Duke Jordan’의 <Flight to Denmark>

겨울이 되면 어김없이 등장하여 거리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는 것이 있다. 붕어빵이다. 붕어빵은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부터 겨우내 보이다가는 날이 풀리면 언제 있었냐는 듯 자취를 감추어 버린다. 온전히 겨울에만 맛 볼 수 있다가 날이 풀리면 식상해져서 사라지든 말든 관심조차 없다. 그러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또다시 기다리게 된다. 굳이 말하자면 붕어빵은 겨울에만 먹을 수 있다. 특별히 감동을 줄 만한 맛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붕어빵이 없는 겨울 거리는 왠지 상상하기 힘들다.

이맘때가 되면 마치 붕어빵처럼 이런저런 매체에서 어김없이 다루어지는 앨범들이 있다. 말할 필요도 없이 겨울의 낭만을 느끼기에 충분한, 따뜻한 감성을 담고 있는 음반들이다.

그 중에서도 겨울 시즌에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앨범은 ‘Duke Jordan’의 <Flight to Denmark> (SteepleChase)이다. Flight to Denmark는 겨울철이면 세상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앨범일 것이다. 재즈 리스너에게 겨울에 어울리는 음반 하나만 고르라고 한다면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이 음반을 선택할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 차가운 겨울 이미지와 정서에 잘 맞는 대중적인 작품이다.

특히 온통 하얀 눈이 덮인 숲 속 빈터에 검정 외투를 입고 서 있는 피아니스트 듀크 조던의 앨범 표지 사진으로도 유명하다. 왠지 모를 신비로운 이미지마저 풍긴다. 그러기에 자켓 사진만으로도 눈길을 끌기에 충분한 앨범이다. 하지만 이러한 음악 외적 이미지도 풍부한 서정미로 넘치는 연주의 퀄리티를 희석시키지는 못한다. 종종 ‘또 이 앨범이냐?’ 하고 볼멘소리로 폄하하는 분들이 있기는 하나 그런 소리를 들을 만큼 허술한 앨범이 아니라는 건 분명하다.

앨범의 주인공 듀크 조던은 1940년대에 이미 찰리 파커, 스탄 겟츠, 마일스 데이비스 등과 같이 연주한 관록의 피아니스트다. 그러나 1960년 이후 별다른 빛을 보지 못하고 5년 동안이나 뉴욕에서 택시 운전을 하는 등 혹독한 시절을 보낸다. 결국 1973년에 덴마크를 방문하여 Flight to Denmark를 발표하게 되었고 앨범은 공전의 히트를 치게 된다. 타국의 낯선 곳에서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 셈이다.

근데 하필 왜 덴마크였을까? 어쩌면 택시를 운전할 정도로 어려워진 환경에서 재즈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이어가기에 당시의 유럽을 대체할 만한 곳은 없었을 것이다. 특히 덴마크를 비롯한 북유럽은 새로 발견한 약속의 땅이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이 앨범을 관통하는 정서는 앨범 재킷의 이미지에서도 느껴지는 겨울의 차가움이 주는 고독함이 아니다. 외롭거나 비장미가 흐르기보다는 장작 몇 개가 활활 타고 있는 벽난로를 연상시키는 따뜻함의 여유가 있다. 담백한 여백을 느끼기에도 충분하다. 매년 겨울 여러 매체에서 추천하는 음반이라 식상하다 여길 수도 있으나 그토록 오랫동안 계속해서 언급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연인이 있다면 꼭 곁에 앉혀두고 함께 듣길 바란다. 붕어빵 몇 개라도 먹으면서 듣는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그러면 서로의 온기가 얼마나 소중한지 더욱 느낄 수 있을 테니까. 우리가 혹독한 겨울을 견딜 수 있는 건 결국 이런 타인의 체온 같은 것들이 있기에 가능한 게 아닐까?

역설적이지만 잘 기억해 두었다가 뜨거운 여름에 이 앨범을 꺼내 들어도 좋다. 솔직히 말하면 난 겨울에 듣기보다는 여름에 더 자주 듣는 앨범이다. 생각해 보라. 자켓 사진만 봐도 더위가 싹 가시지 않겠는가.

경 성현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23) – ‘Duke Jordan’의 <Flight to Denmark>

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22) – 녹턴

‘가즈오 이시구로’는 2017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일본계 영국 작가다. 노벨문학상을 받기 이전에 이미 부커상을 받은 세계적인 작가였지만 처음 작품으로 접한 건 몇 해 전 다섯 개의 소설을 모아 펴 낸 소설집 <녹턴>을 통해서다. 개인적 관심사인 재즈가 무수히 언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재즈 스탠더드 넘버와 뮤지션들의 이야기를 작품에 삽입한 기법 때문에 솔직히 처음엔 무라카미 하루키의 아류쯤으로 생각했었다.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접하고 나서부터 비로소 그런 선입견을 버리게 되었고 하루키와는 다른 층위의 작가라는 사실을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마치 익히 알고는 있었으나 별 관심이 없던 사람의 진면목을 어떤 계기로 인해 새롭게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

작품집 <녹턴>은 애초에 ‘음악과 황혼에 대한 다섯 가지 이야기’라는 부제가 주는 뉘앙스처럼 조금은 가볍게 읽어나갈 수 있는 이야기로 생각했다. 예컨대 대표작인 부커상 수상작 ‘남아 있는 나날’ 같은 작품에 비해서 그렇다. 그렇게 생각한 배경에 실패자라는 존재의 무게는 당연히 가벼울 것이라는 생각도 한 몫을 했다. 화자인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이 그저 그렇고 그런, 결코 성공했다고는 볼 수 없는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목과 부제인 녹턴 혹은 황혼이 주는 의미마냥 결코 맥 빠진 인생만을 그린 것만은 아니다. 작품 속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지난 생을 관조하듯 바라보는 능력의 소유자들이다. 그래서 작가가 직접 희망을 말하지는 않지만 읽는 우리는 결국 미세한 긍정의 울림과 몸부림을 찾아내게 된다. 그리고는 안도한다. 그 미세한 울림과 몸부림은 실패하여 나락으로 떨어졌던 지난 시간뿐만 아니라 지금 이 순간도, 앞으로의 시간들도 모두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깨닫게 해 주기 때문이다.

특히 재즈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작품마다 등장하는 재즈 스탠더드를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읽기에 아주 그만이다. 작품 속에서의 재즈는 엄청난 위상이다. 재즈가 중요한 서사적 매개체가 되고 있으니 재즈를 빼버리면 그야말로 별 특징이 없는 밋밋한 작품으로 기억될 수도 있다. 그래서 작품에 들어있는 재즈에 대해 조금 더 세밀하게 감상해 보는 건 작품 자체를 이해하는데 매우 큰 도움이 된다.

가령 첫 번째 작품 ‘크루너’를 읽는 중에 크루너(Crooner)란 단어의 의미처럼 저음으로 노래하는 남성 가수들, 예컨대 프랭크 시나트라, 자니 하트만, 냇 킹 콜 등을 들으면 작품에 좀 더 깊게 몰입할 수 있다.

‘비가 오나 해가 뜨나’에서 레이먼드와 에밀리가 춤추며 들었던 곡 April in Paris는 콕 찍어서 사라 본과 클리포드 브라운이 함께 연주한 곡이라고 나온다. 작품 속에서는 두 사람이 54년에 녹음한 연주로서 러닝 타임이 8분간 이어진다고 묘사되고 있지만 내가 가진 54년 앨범에서는 6분이 조금 넘는다. 가즈오 이시구로는 아마도 레이먼드와 에밀리가 미묘한 감정을 주고받으며 춤을 추기 위해서는 좀 더 긴 러닝 타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모양이이다. 어찌 되었든 연주 시간까지 정교하게 계산했을 작가의 섬세함에 감탄하게 된다.

이밖에 네 번째 이야기 ‘녹턴’에서 린디에게 들려주었던 주인공 화자의 색소폰 연주곡 The Nearness Of You는 과연 누구의 연주로 듣는 게 가장 좋을지 궁리하는 따위도 즐거운 일이다. 나는 마이클 브레커가 2007년 팻 메스니와 찰리 헤이든 같은 엄청난 사이드맨들과 함께 발표한 <Nearness Of You : The Ballad Book>에서의 연주도 좋아하고, 브랜포드 마살리스가 팔팔한 20대였던 1988년에 내놓은 앨범 <Trio Jeepy>의 두 번째 트랙 The Nearness Of You도 좋아한다. 특히 브랜포드 마살리스의 연주를 머릿속으로 그려가며 이 대목을 읽으면 주인공과 린디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공기의 흐름까지 느껴질 정도로 좋다. 이 작품에서만큼은 특별히 브랜포드 마살리스의 연주가 더 잘 어울린다는 뜻이다.

종종 소설 속에 묘사된 어떤 장면에 특별하게 잘 어울릴 것 같은 재즈를 고르는 작업을 하곤 하는데 개인적으로 무척 즐거운 취미가 되었다. 그런 면에서 <녹턴>은 힘들여 수고할 필요가 없어서 더욱 좋다. 작품 속 연주를 한 곡 한 곡 천천히 찾아 들으며 책장을 넘기면 마치 작품 속에 나 자신이 들어가 있는 듯한 몰입감을 느낄 수 있다. 문학과 재즈의 매력을 동시에 주는 흔치 않으면서도 멋진 작품이다.

경 성현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22) – 녹턴

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21) – Ojos Negros

언젠가 모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커피가 주는 이미지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이는 어쩌면 직업적으로 커피를 다루는 나 같은 사람뿐만 아니라 커피를 좋아하는 애호가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생각해 본 물음일 수도 있다.

나는 ‘커피란 쓰고 검은 어떤 것’이라고 답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커피 맛을 발현하는 최근 추세가 산미를 도드라지게 표현하는 방식이라서 ‘쓰다’라는 표현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커피는 원래 쓴 맛이 본연의 맛이다.

이에 비해 커피의 색이 검은색이라는 말에는 별 이의가 없다. 로스팅된 원두가 대체로 검정색에 가까운 짙은 색깔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또 하나 간과할 수 없는 건 커피 생산지의 확대 과정에서 제국주의 열강들에 의한 식민지 착취라는 검은 역사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 소개하는 앨범 <Ojos Negros> (Dino Saluzzi & Anja Lechner, ECM)는 커피와 매우 잘 어울리는 앨범이다. 살루치와 레흐너가 들려주는 우수에 젖은 탱고의 리듬이 결코 달콤하지만은 않거니와 타이틀인 Ojos Negros (검은 눈동자)가 주는 어두운 이미지 또한 한 몫을 한다.

2007년에 발매된 앨범 Ojos Negros는 아르헨티나의 반도네온 연주자 디노 살루치(Dino Saluzzi)와 독일의 첼리스트 안야 레흐너(Anja Lechner)의 듀오 앨범이다. 디노 살루치가 연주하는 반도네온이야말로 탱고와는 떼어놓을 수 없는 악기이므로 당연히 탱고를 중심으로 한 음악이라고 짐작할 수 있는 앨범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리듬의 탱고 음악이 아니다. 춤을 추기 위한 음악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감상을 위한 탱고라고나 할까? 탱고라는 영역을 뛰어넘어 클래식의 영역에까지도 도달하고 있는 아름다운 앨범이다.

디노 살루치는 피아졸라의 뒤를 잇는 반도네온 연주자다. 연주뿐만 아니라 작곡 능력도 뛰어난 그는 고국이자 탱고의 발상지인 아르헨티나를 벗어나 유럽으로 진출한 이후 더욱 인기를 얻었다.

그의 음악 인생에서 획기적인 터닝 포인트가 된 지점은 무엇보다도 레이블 ECM의 오너이자 프로듀서인 만프레드 아이어(Manfred Eicher)를 만난 일이다.

디노 살루치의 음악에 영감을 받은 만프레드 아이어의 제안으로 1982년 ECM 데뷔작이 발매되었고 이후부터 지금까지 ECM의 여러 연주자들과 함께 한 음반들을 세상에 내놓고 있으니 말이다. 앨범의 또 다른 주인공 첼리스트 안야 레흐너 또한 클래식계에서 활약을 하면서도 탱고에 남다른 애정을 쏟아온 연주자다. 이 둘의 만남은 안야 레흐너가 뮌헨의 어느 극장에서 살루치의 연주를 듣게 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이후 둘은 서로의 음악에 매력을 느끼고 공동으로 작업을 해 왔으며 앨범 Ojos Negros는 두 연주자의 만남이 만들어낸 최고의 결과물이다.

앨범의 타이틀 곡 Ojos Negros는 Black Eyes, 즉 스페인어로 ‘검은 눈동자’라는 뜻이다. 이 곡만이 유일하게 아르헨티나의 탱고 작곡가 비센테 그레코(Vincente Greco)의 곡이며 나머지는 모두 디노 살루치의 곡이다. 물론 타이틀곡이 이 앨범의 정체성을 가장 확실하게 표현해 주고 있기는 하나 다른 트랙들 역시 결코 흘려들어서는 안 되는 곡들이다. 전체적으로는 탱고를 근간으로 한 음악들이지만 그렇다고 탱고에만 머물러 있는 곡들은 아니다. 클래식과 탱고, 거기에 재즈의 즉흥성까지 가미된, 굳이 말하자면 레이블 ECM이 추구하는 음악에 가장 근접하는 앨범이라고나 할까?

첫 트랙 Tango a mi padre는 살루치가 아버지에게 바치는 헌정곡이다. 반도네온과 첼로의 인터플레이가 마치 유년의 살루치와 아버지가 대화하는 듯 애틋하다. 내가 알고 있는 반도네온과 첼로의 협연 중에 이만큼 유기적으로 교감을 나누는 연주도 찾기 힘들다. Esquina, Duetto, Serenata 역시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곡들이다. 들을 때마다 뭔가 설명하지 못 할 아련한 노스텔지어를 느낀다. 눈물이 나도록 따뜻하다.

타이틀곡인 5번 트랙 Ojos Negros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검은 눈동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앨범 전체에는 검은 색이 주는 어두운 이미지뿐만 아니라 진지함과 따뜻함, 듣는 이로 하여금 향수를 느끼게 해주는 분위기가 관통하고 있다. 탱고가 과거의 리듬을 간직한 음악이이 지나간 시간을 조용히 발굴하여 현실에서 충분히 재현하기 때문이다. 살루치와 레흐너의 반도네온과 첼로가 이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해 내고 있음은 물론이다. 장르를 망라하고 내가 늘 추천하는 음반이다.

크리스마스 시즌이다. 무엇이든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는 계절이다. 당연히 음악이든 커피든 밝고 유쾌한 것들이 어울리겠지만 이럴 때 오히려 반도네온과 첼로가 만들어 내는, 우수가 깊게 담긴 탱고 음악을 들어보는 것은 괜찮을 것이다. 여기에 깊고 진하게 내려진 커피 한 잔을 더해 마셔보는 것은 금상첨화다. 연말을 즐기는, 조금은 특별한 방법이 될 것이다.

경 성현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21) – Ojos Negros

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20) – ‘Gogol’

지금은 문을 닫았지만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 우측 담장을 끼고 들어가면 골목 초입에 ‘카페 코’라는 아담한 카페가 하나 있었다. 사연은 모르겠으나 문을 닫은 지 벌써 몇 년은 된 것 같다. 향미가 좋은 스페셜티 원두를 융 드립(Flannel Drip)으로 맛볼 수 있었던 흔치 않은 카페였다. 그리 크지 않은 장소였음에도 프라이버시를 지킬 수 있도록 세심하게 공간을 배치했고 발을 디딜 때마다 자갈 소리가 정겨웠던 야외 테라스를 겸한 조그만 마당을 가지고 있었다. 운이 좋은 날이면 지붕에서 노니는 고양이를 마당 테이블에 앉아 볼 수 있었으니 한적할 때 여유를 갖기에 안성맞춤인 아지트였다.

그러나 이 카페의 상징은 뭐니 뭐니 해도 골목에 면한 카페 대문 위에 떡하니 붙어 있는 커다란 ‘코’ 조형물이다. 말 그대로 사람의 ‘코’ 모양을 한 형상이다. 두 개의 커다란 콧구멍은 말할 것도 없고 마치 술 취한 이의 딸기코를 연상시키듯 커다란 숨구멍들까지 세밀히 표현해 놓았다. 이곳을 지나치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은 미소를 지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담한 카페의 출입문 위에 커다란 코를 붙여 놓은 이유에 대해서는 아는 이가 없었다. 심지어 카페의 바리스타들조차 왜 하필 사람의 코를 붙여놓았냐는 질문에 명쾌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이곳을 드나드는 지인들 대부분은 커피를 파는 카페이니 커피 향을 맡는 코를 붙여놓지 않았겠느냐는 막연한 추측을 했지만 어쩐지 너무 뻔한 상상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난 ‘카페 코’라는 이름의 연원을 다른 곳으로부터 찾았다. 19세기 러시아의 위대한 작가 ‘니콜라이 바실리예비치 고골(Nikolai Vasil’evich Gogol)’이 쓴 ‘코’라는 작품에서다. 물론 확인된 바 없는 나 혼자만의 상상이긴 하다.

1809년에 태어나 1852년까지 살았던 고골은 부패하고 부조리한 당시의 세속적인 욕망으로부터 헤어 나오지 못하는 속물근성의 인간상을 주로 그려냈다. 그 중에서도 소개하는 작품 <코>는 너무나도 단순하면서도 황당한 줄거리의 환상 소설이다. 인간 얼굴에 붙어 있던 코가 어느 날 이유도 없이 떨어져 나와 하나의 인격체로 변신해 거리를 배외하며 사람 행세를 하다가 결국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이야기다. 순전히 고골의 상상만으로 지어진, 서사의 인과성이 없는 구조다. 마치 1915년에 발표된 카프카의 초현실적인 작품 <변신>을 연상케 한다.

어느 날 이발사 이반 야꼬블레비치는 아침 식사용 빵 속에서 큼지막한 사람의 코를 발견한다. 이발사는 난데없이 나타난 코를 처리하기 위해 아무도 없는 다리 위에서 몰래 버리지만 곧 경찰관에게 발각될 위기에 빠진다.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에서 갑자기 단절되고 뜬금없이 코의 진짜 주인 8급 관리 코발료프 소령의 침실로 옮겨 간다. 코발료프는 여느 때처럼 일어나 거울을 보다가 코가 사라진 자신의 얼굴을 보고는 화들짝 놀란다. 그에게 코가 없어졌다는 건 보통 문제가 아니다. 상급 관리로 진급하기 위해서는 사교계에서 활동을 해야 하는데 코가 없어졌다는 건 진급은 이제 물 건너 간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코발료프는 길을 나서고 급기야 자신의 직급보다 높은 5급 관리 행세를 하며 거리를 돌아다니는 코를 발견하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코를 되찾게 되지만 코는 쉽사리 제자리에 붙지 않는다. 그러나 어느 날 아침 원래의 자리에 붙어 있는 코를 발견하고는 평화를 되찾게 된다.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황당한 이야기다.

고골의 작품들을 읽다 보면 늘 생각나는 연주자가 있는데 캐나다 출신의 피아니스트 ‘칠리 곤잘레스(Chilly Gonzales)’다. 그가 연주한 곡 중에 특별히 ‘Gogol’이라는 곡이 있어서 더욱 그렇다.

칠리 곤잘레스는 특이한 이력의 아티스트다. 딱히 재즈에만 국한하지 않는 피아니스트이자 프로듀서이며 영화의 각본, 음악은 물론 주연까지 맡아 열연한다. 그런가 하면 일렉트릭 뮤직에 랩까지 구사하는 토탈 엔터테이너다. 범상치 않는 그의 행보는 마치 고골 소설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면면만큼이나 평범하지 않다.

Rollin & Scratchin (Daft Punk)

I Am Europe

2010년쯤의 아이패드 광고음악인 Never Stop으로 대중성까지 확보했지만 역시나 그의 음악의 예술성은 피아노 솔로 앨범에 있다. 그중 내가 즐겨 듣는 건 첫 번째 앨범인 Gonzales Solo piano다.

모든 트랙이 다 좋으나 베스트 트랙은 단연 첫 번째 트랙 Gogol이다. 솔직히 곡 제목을 Gogol이라 붙인 이유를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들으면 들을수록 작가 고골의 이름에서 차용했다는 확신이 든다. 마치 소설 <코>에서 자신보다 직급이 높은 5급 관리가 되어 잔뜩 허세를 부리는 코발료프의 코이거나 <외투>에서 소중한 외투를 잃고 유령이 되어버린 아카키의 테마곡이라고나 할까? 아니 어쩌면 <광인일기>에서 서서히 미쳐가는 포프리시친의 주제곡일 수도 있겠다. 연주가 몽상적이어서 환상의 세계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잃고 방황하는 소설 속 주인공들의 우울함을 제대로 투영해 놓았다는 느낌이 든다. 그만큼 아스트랄 하다. 나도 모르게 “아. 딱 고골이네” 하면서 무릎을 치게 된다.

생각해 보면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는 시절이다. 현실과 환상은 얼마나 다를까? 아니 정말 다르기만 할까? 그냥 현실이 환상이고 환상이 곧 현실일 것만 같다. 그래서일까. 현재를 사는 우리와 고골의 환상소설 속 주인공들의 분투는 둘 다 눈물겨워서 별반 다르게 느껴지지 않는다.

어느새 12월이니 이제부터는 한겨울이다. 지금부터는 서로의 등을 데워줘야 한다. 그래야만 한다. 우린 비현실적이면서도 엄혹한 이 시대를 함께 살아내고 있는 동지들이 아닌가.

경 성현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20) – ‘Gogol’

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19) – Steal Away

11월은 일 년 중 가장 특별한 일이 없을 것 같은 달이다. 가을 분위기는 이미 퇴색되어 버렸고 그렇다고 떠들썩한 연말 분위기를 내는 건 너무 이르다 싶다.

그러나 지난 일 년을 돌아보며 회상하고 성찰하기엔 오히려 북적북적한 12월보다는 적기라는 생각도 든다. 잡다한 행사가거의 없어 번잡하지도 않을 테니 조용히 자기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시기다. 그런 11월도 어느덧 다 지나가고 있다. 그래서 이 시기엔 화려한 테크닉이나 스윙감이 풍성한 음반은 왠지 어울릴 것 같지 않아 다소 심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찰리 헤이든(Charlie Haden)과 행크 존스(Hank Jones)의 듀오 음반 ‘Steal Away'(Verve)를 소개한다.

앨범 주인공 중 하나인 찰리 헤이든은 1957년 오넷 콜맨의 밴드 일원으로 참여하여 프리재즈에 천착하였지만 10년 뒤(1967년) 키스 자렛과의 활동을 기점으로 서정적인 연주에도 일련의 활동성을 보여준 재즈 베이스의 거장이다. 특히 많은 연주인들과 녹음한 듀오 명반이 많기로 유명하다. 행크 존스와의 Steal Away를 비롯하여, 짐 홀과 함께 한 ‘Charlie Haden & Jim Hall’, 팻 메스니와의 ‘Missouri Sky’, 에그베르토 기스몬티와의 ‘In Montreal’, 키스 자렛과 함께 내놓은 ‘Jasmine’과 ‘Last Dance’ 등이다. 듀오 앨범이 많다는 건 기본적으로 상대방을 배려하는 인터플레이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앨범 Steal Away의 멤버로 참여한 행크 존스 역시 서정적이고도 부드러운 타건으로 대변되는, 본인만의 개성을 나타내기보다는 연주자 간의 조화를 중시하는 피아니스트로 알려져 있다. 엘라 피츠제럴드의 반주자로 활동했던 그의 연주 이력에서도 알 수 있다.

Steal Away는 흑인 영가와 찬송가, 포크송들이 가득하다. 수록곡들 대부분이 재즈의 원류가 되는 곡들이지만 앨범 전체에는 재즈 특유의 스윙감 보다는 차분히 가라앉은 분위기가 더 강하다. 게다가 두 연주자 간 인터플레이는 비워진 공간 같은 여백이 가득하다. 이런 경우 다소 심심하거나 허전하게 느껴질 법도 하나 들으면 들을수록 음과 리듬의 밀도가 무르거나 싱겁지 않고 담백하다. 결코 도드라지는 법 없이 서로를 존중하는 두 사람이기에 가능한 일이리라. 마치 두 사람이 따듯한 대화를 주고받는 듯하다. 한마디로 ‘감사와 배려가 충만한 대화’라고 표현할 만하다.

 

CHARLIE HADEN – STEAL AWAY (FULL ALBUM) 

한편 오래된 옛 교회의 모습이 담긴 재킷 사진과 수록된 곡들의 면면으로 종교적 필터를 끼우고 평할 수도 있으나 오히려 특정할 수 없는 어떤 보편적인 노스탤지어가 느껴진다. 연주는 단 두 사람에 의해 이루어졌지만 혼자서 들어도 좋고 둘이서 들어도 좋고 여럿이서 같이 교감을 나누며 들으면 더욱 좋을 음반이다.

’11’이라는 숫자를 노트에 적고 찬찬히 보고 있으니 숫자 ‘1’ 두 개가 사이좋게 나란히 서 있다. 마치 Steal Away의 앨범 재킷 사진 속 교회 앞에서 찰리 헤이든과 행크 존스 두 연주자가 웃으며 서있는 듯하다. 생각해 보면 이 세상에 나 혼자가 아닌 것만 해도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그저 감사한 마음으로 꽉 채우기만 해도 좋을 일이다.

경 성현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19) – Steal Away

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18) – <Vinding’s Music – Song From The Alder Thicket>

재즈는 미국에서 생겨나 발전한 음악이지만 현대 재즈 음악 시장은 미국보다도 오히려 유럽이 중심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강세이다.

전통적인 유럽 재즈 강국이라 하면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을 꼽을 수 있지만 최근 들어 약진하고 있는 재즈는 단연 ‘스칸디나비아 재즈’로까지 일컬어지는 북유럽 재즈이다. 가장 유럽적인 재즈를 표방하는 레이블인 독일의 ECM과 ACT 조차도 북유럽 출신 연주자들의 발굴과 그들의 신규 앨범 발매에 주력하고 있는 분위기다.

얀 룬드그렌, 마릴린 마주르, 보보 스텐손, 테르예 립달, 닐스 란드그렌, 얀 가바렉, NHOP, 실예 네가드, 리사 엑달, 야콥 영, 이로 난탈로, 토드 구스타프슨, 케틸 비에른스타…

이름만 들어도 북유럽스러운(?) 이들 연주자들은 유럽에서 뿐만 아니라 현재 세계 재즈계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쟁쟁한 뮤지션들이다.

그 중에서도 지난번에도 소개한 바 있는 노르웨이 출신 피아니스트 케틸 뵈른스타드(Ketil Bjørnstad)는 피아니스트이기도 하지만 놀랍게도 1972년에 데뷔하여 이미 삼십여 권이 넘는 시, 소설, 에세이를 펴 낸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다. 아쉽게도 우리나라에서 번역 출간된 그의 작품은 총 3부작으로 집필된 소설의 1부 격인 <음악 속으로> (문학동네)가 유일하다.

<음악 속으로>는 저자의 자전적 소설이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은 주인공 소년 ‘엑셀 빈딩’의 사랑과 죽음, 음악에 대한 열정과 좌절을 3부작으로 그려냈다. 음악적 영감을 주었던 어머니의 불행한 죽음, 자신의 라이벌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고통스런 상황, 대가들을 뛰어넘기 위한 피나는 숙련 과정이 담담하게 그려져 있다. 더불어 클래식 거장들의 음악에 대한 연주평과 등장인물들에 대한 뛰어난 심리 묘사는 이 소설이 단지 재즈 피아니스트의 일탈에 의한 책이 아님을 분명하게 일깨워 준다.

더불어 소개하는 앨범 <Vinding’s Music – Song From The Alder Thicket>은 소설 ‘음악 속으로’에 대한 일종의 북 사운드 트랙이다. 두 개의 CD중 첫 번째 CD는 케틸이 작곡한 오리지널 곡들을 자신의 피아노 솔로 연주로, 두 번째 CD는 소설 속에서 언급되는 쇼팽, 드뷔시, 라흐마니노프, 쇼팽 등을 피아니스트 구닐라 쉬스만 등과 노르웨이 라디오 오케스트라 (Norwegian Radio Orchestra)가 연주한다. 스탠다드한 재즈보다는 자신만의 음악을 더 깊이 추구하는 케틸 비에른스타의 음악적인 정체성이 이 하나의 앨범에 담겨져 있다고나 할까? 가득 채워진 연주들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그저 아름답기만 하다. 재즈 애호가와 클래식에 관심 있는 사람 모두 만족시키는 앨범이다.

보통 케틸 비에른스타의 대표적인 앨범을 꼽는다면 기타리스트 ‘Terje Ripdal’과 첼리스트 ‘David Darling’이 참여한 ‘물’ 3부작 (The sea 1, The Sea 2, The River)을 꼽는다. 모두 ‘물’을 소재로 하고 있다. 이는 소설 ‘음악 속으로’에서 어머니의 비극적인 죽음이 바로 강에서 일어나는 것과 어떤 연관이 있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런 추측을 하게 된다. 물 3부작이 케틸 비에른스타의 내면을 일관되게 담아낸 것이라면 Vinding‘s Music은 케틸 비에른스타의 음악적인 성과라 부르고 싶다. 책은 여태까지 서너 번은 읽었고, 음반은 셀 수 없이 많이 들었다. 그만큼 좋아한다는 뜻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좋아하는 곡은 여섯 번째 트랙 She Didn’t Say다. 가만히 듣고 있노라면 곡속에 스며있는 먹먹한 슬픔이 천천히 가슴속으로 들어와 차오르곤 하는데 도저히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없을 만큼 아름답다. 그러고 보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감정은 바로 슬픔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몇 년을 들어왔는데도 이 곡의 아름다움은 슬퍼서 아름다운 건지, 아름다워서 슬픈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도대체 얼마나 더 들어야 그걸 알게 될까?

경 성현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18) – <Vinding’s Music – Song From The Alder Thicket>

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17) – Rava On the Dance Floor

엔리코 라바(Enrico Rava)의 ‘Rava On the Dance Floor'(Enrico Rava and the Parco della Musica Jazz Lab, ECM)는 재즈 앨범이지만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의 음악으로만 채워져 있다. 난데없이 마이클 잭슨이라니…

마이클 잭슨이라면 익히 알려진 대로 그야말로 팝의 전성시대였던 80년대와 90년대를 휘어잡은, 그 시대 전체를 대표하는, 아울러 비극적인 사망 이후에도 대중음악사에서 그를 빼놓고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진정한 ‘팝의 황제’ 아니던가. 그러니 마이클 잭슨과 재즈를 연관시키는 일은 뜬금없는 연상으로 비추어질 수도 있겠다.

굳이 재즈와의 연관성을 말하자면, 오랫동안 마이클 잭슨의 음악에 관여해온 프로듀서 퀸시 존스(Quincy Jones, 우리에겐 Ai No Corrida로 알려진)가 실은 팝 명반들을 프로듀싱하기 훨씬 이전부터 프랭크 시나트라, 엘라 피츠제럴드 등 재즈 연주자들의 음악을 편곡 또는 프로듀싱 한 재즈 아티스트였다는 사실이다. 또한 마이클 잭슨의 음악 역시 흑인 음악을 기반으로 한 R&B, 소울 등의 성격이 가미된 것들이 많아 대중음악사로 보면 재즈와 마이클 잭슨의 음악 모두 같은 뿌리에서 연유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으므로 마이클 잭슨의 음악과 재즈는 서로 뚝 떼어놓고 얘기할 수만은 없다고도 볼 수 있다. 다만 팝과 재즈는 워낙 걸어온 길이 상이했던 터라 서로의 동질감은 배제되었고 이질감만이 특화된 채로 살아남았으니 지금은 전혀 동떨어진 장르라고 해도 별다른 이의가 없다. 아마도 Enrico Rava 또한 그렇게 생각했을 법 하다.

이탈리아의 트럼페터 Enrico Rava는 모두가 알다시피 현시대를 대표하는 재즈 트럼페터로 주로 아방가르드 한 서정성으로 주목받는 재즈 뮤지션이다. 전해들은 바로는 Enrico Rava 역시 마이클 잭슨의 음악에는 전혀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가 어느 날 문득 마이클 잭슨의 음악이 귀에 들어와 그의 음악을 연주하리라 마음먹었다고 한다. 당연히 기존의 Enrico Rava의 음반만을 생각하고 있는 재즈 팬들에겐 다소 충격적인 앨범이다. ‘Tati’를 비롯한 그의 연주 앨범과는 성격과 차원을 달리하기 때문이다.

내밀한 서정적 세계를 그려온 여태까지의 그는 간데없다. 대신에 마치 마이클 잭슨을 무대 아래 맨 앞자리에 앉혀놓고는 ‘보라. 당신의 음악을 이렇게도 연주할 수 있다’고 상기된 듯 말하고 있는 듯하다. 앨범의 트랙 속에는 너무나도 유명한 ‘Thriller’를 비롯해 ‘I just can’t stop loving you’ ‘Smile’등 생전의 마이클 잭슨이 즐겨 부르던 히트곡들이 Enrico Rava의 트럼펫과 트롬본 연주자인 마우로 오톨리니(Mauro Ottolini)의 편곡과 그가 이끄는 파르코 델라 무지카 재즈 랩(Parco della Musica Jazz Lab)의 협연으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다분히 Enrico Rava의 고유한 성향에 길들여진 팬들이 듣는다면 다소 고개를 갸웃할 수도 있는 문제적 앨범일 수도 있다. 그나마 다행히 첫 번째 트랙 ‘Speechless’는 우리에게 고분고분 서정성을 잃지 않고 들려주고 있다. 곡명 그대로 ‘말문이 턱 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연주다. 마이클 잭슨이 작곡하고 불렀던 곡이지만 Enrico Rava의 언어로 멋지게 구현했다. 사족일 수도 있으나 곡의 아름다움도 뛰어나지만 가사야말로 이곡을 빛나게 해주는 또 하나의 특별한 요소이다.

Speechless, Speechless

That’s how you make me feel

Though I’m with you, I am far away

And nothing is for real

When I’m with you, I am lost for words

I don’t know what to say

말문이 막혀요, 말이 나오지 않아요

당신이 날 그렇게 만들었어요

함께 있더라도 떨어져 있는 것 같고

아무런 실감이 나지 않아요

당신과 함께 있을 땐 할 말을 잃어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요

어떤가. 얼마나 아름다운 고백인가.

나는 이 연주를 좋아한 나머지 아끼는 만년필에 내 이름 대신 ‘Speechless’라고 새겨 넣었다. 오죽 좋아했으면 만년필에 새겨 넣었을까.

오늘도 하루가 다 지나간다. 생존을 실존으로 이기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무료한 일상은 늘 마음을 공허하게 만든다. 그래도 곁에는 책이 있고 커피가 있고 음악이 있다. 우리가 단지 흘러가는 시간으로만 일상을 채운다면 삶은 얼마나 허접스럽고 의미 없는 것이 될까. 그러나 미처 채우지 못한 일상의 허기는 책과 커피와 음악으로 채울 수 있다. 특히 ‘Speechless’를 듣고 있을 때 떠오르는 그녀(그)가 있다면 다행이다. 행복한 일이다. 더욱이 손에서 진땀이 나고 가슴이 벅차오른다면 당신은 지금도 사랑을 하고 있거나 사랑할 준비가 되었다는 증거다. 틀림없다.

 

경 성현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17) – Rava On the Dance Floor

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16) – 재즈의 벨 에포크

우디 앨런이 감독한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주인공 ‘길’은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중 우연히 자신이 꿈꾸던 황금시대인 1920년대 파리로 시간 여행을 하게 된다. 거트루드 스타인에게 자신의 소설을 보여주고, 스콧 피츠제럴드, 헤밍웨이와 대화를 하며 피카소, 달리와 카페에 앉아 한담을 나누는 놀라운 경험을 한다. 그곳에서 피카소의 연인 아드리아나를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정작 아드리아나가 생각하는 황금시대는 1880년대 파리, 곧 벨 에포크(Belle Époque)다. 길과 아드리아나는 일치하지 않은 각자의 황금시대를 포기할 수 없어 결국 헤어지게 된다.

아드리아나가 사랑하고 동경했던 벨 에포크란 ‘좋은 시대’라는 뜻이다. 정확히 말하면 프랑스 대혁명 이후 80여 년간에 걸친 정치적 격랑을 치르고 맞이하게 된 파리의 전성기라 할 수 있다.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배경이 되는 시대, 수많은 인상주의 화가들이 표현하던 화려하고도 선명한 빛이 넘치던 시대다. 가히 파리의 아름다운 시절이라 할 만 하다. 대략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를 말한다.

Boulevard des capucines / Jean George Beraud

길의 1920년대, 아드리아나의 1880년대가 그들의 벨 에포크이자 황금시대라면 재즈의 황금시대는 언제일까? 재즈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제일 먼저 위대한 재즈 시대(Jazz Age)를 머리에 떠올릴 것이다. 증기선 윌리를 타고 미키 마우스가 미시시피강을 거슬러 올라가던 시대, 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의 시대적 배경이 되는 시대다. 라디오가 보급되기 시작하여 클럽에서 직접 듣지 않고도 재즈를 들을 수 있게 된 시대이기도 하다. 이후 재즈는 1930년대 중반 대공황이라는 암흑기를 극복하고 대규모 빅밴드에 의한 스윙 재즈 시대를 열며 화려하게 꽃이 핀다. 그러나 댄스를 위한 흥겨운 리듬(스윙, swing) 위주의 연주는 의식 있는 흑인 연주자들이 자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들 중 몇몇은 정규 연주가 끝난 후에도 남아 궁극적으로 추구하고픈 자신들의 음악을 새벽 늦도록 연주하기 시작한다. 이를 애프터 아워스 (After Hours)라 부른다. 대략 1940년대 초중반의 일이다. 이른바 비밥(Bebop)이 이렇게 탄생한 것이다.

비밥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재즈가 대중지향적인 면을 털어버리고 순수 예술로 인정받게 된다. 그러나 난해한 코드 진행과 리듬의 사용으로 다소 괴팍하게 들리기까지 한 비밥은 결국 재즈가 소수만이 즐기는 음악으로 전락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순수한 예술성과 대중의 관심도는 별개의 문제였던 것이다.

이에 대한 반발(?)로 탄생하게 된 것이 바로 쿨 재즈(Cool Jazz)다. 감상하기가 여간 까다롭지 않았던 비밥에 비해 쿨 재즈는 매우 감상적이다. 1940년대 후반 마일즈 데이비스에 의해 창시되었다고는 하나 빌 에반스, 데이브 브루벡, 쳇 베이커, 폴 데스몬드와 같은 백인 연주자들의 주도로 클래식 음악의 요소가 많이 들어가 있는 까닭이다.

이와는 별도로 1950년대 중반 비밥에서 좀 더 확장된 개념의 하드밥(Hard Bob)이 탄생한다. 백인 위주의 조용하고 차분한 쿨재즈와는 대척점에 있다고나 할까? 하드밥은 매우 열정적인 흑인적인 정서를 보여준다. 쿨재즈와 하드밥이 거의 동시에 등장한 이 시기를 ‘모던 재즈’ 시대라 부른다. 1940년대 후반 ~ 1960년대 전반에 걸쳐 있는 이 시대야말로 진정한 재즈의 황금시대라 이를 만하다. 비밥에 의해 몰락한 대중적인 지지를 어느 정도 회복했는가 하면 하드밥에 의해 흑인들의 정체성 또한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재즈가 술과 춤이 필연적이었던 클럽에서 벗어나 클래식과 대등한 지위를 가지고 정식 콘서트홀에서 연주되기 시작한 시대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이 시기야말로 재즈가 가장 화려하고도 아름답게 꽃을 피웠던 황금시대, 벨 에포크라 부르고 싶다. 10년 남짓 짧았던 시기였음에도 재즈가 결코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대중과 함께 했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앨범 발매 역사적으로도 엄청난 명반들이 대거 쏟아진 시기이기도 하다.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의 길은 1890년대 파리, 즉 벨 에포크에서 머무르려 하는 아드리아나를 설득하며 길은 이렇게 말한다.

“현재는 약간 아쉬운 법이에요. 늘 불만스럽죠. 하지만 우리가 여기에 머무르면 지금이 현재가 되고 그럼 또 다른 과거를 동경하게 될 거예요. 과거에 사는 것만으로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라고.

아드리아나는 현재를 버리면서까지 벨 에포크를 포기하지 않았지만 길은 벨 에포크를 꿈꾸면서도 현재를 버리지 않는다. 마지막 장면에서 현재로 돌아온 길이 새로운 연인과 비를 맞으며 파리를 걷는 마지막 장면에서 이를 암시한다.

이 장면을 대할 때마다 나는 힘을 얻는다. 나의 황금시대 벨 에포크는 반드시 ‘과거에만 존재하거나 과거로부터 소환해야만 존재하게 된다’는 생각을 바꿔주기 때문이다. 어쩌면 지금 내가 마주하고 있는 현재와 앞으로 다가올 미래 또한 나의 벨 에포크일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당신의 벨 에포크는 언제인가? 과거인가, 현재인가, 미래인가?

경 성현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16) – 재즈의 벨 에포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