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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인강릉#23 독보적인 고급스러움과 우아함이 있는 플라워 카페,’명주바람’

카페 이름만 되뇌어도
문득 감성에 젖게 되는
특별한 매력이 느껴지는 카페 ‘명주바람’.
가보기 전부터도 바람부는 초록빛 언덕에 덩그러니 지어진 카페가 연상될만큼
이름에서 낭만이 느껴진다.
어떻게 이렇게 서정적이고 감성적으로 네이밍할 수 있었을까 싶다.
무엇보다 카페의 분위기와 이렇게나 잘 맞게 말이다.

‘명주바람’을 알게 된 것은
sns에 올려진 ‘명주바람’의 대표 메뉴 브런치 사진을 보면서였다.
요즘 sns에 올리는 사진들은 웬만하면 다 예쁘고 감각적으로 느껴지기 마련인지라,
음식사진들은 거의 비슷한 느낌으로 보게되는데,
‘명주바람’의 브런치를 찍은 그 사진이
내 눈길을 끌었던 건
음식도 예뻤지만 무엇보다 식기와 커트러리 때문이었다.
좋은 그릇은 손님대접할때만 쓰지 말고 내가 데일리로 쓰자는 주의인데,
이곳의 식기들은 내가 평소 쓰고 싶어했던
금박테두리가 입혀진 멋진 그릇들과 고급 커트러리를 쓰고 있었다.
이 정도 식기들을 손님들께 내놓을 정도의 마인드를 가진 사장님이 운영하는 카페라면
카페의 다른 부분들도 신경을 많이 쓰셨을 것 같아서 너무 궁금하고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사진에 반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이곳을 방문했다.

위촌리 한적한 마을에 펜션처럼 예쁘게 흰색의 서양식 단독 건물로 지어진 ‘명주바람’.
단정한 글씨체과 잘 어울리게 리스문양을 넣어 디자인된 간판이
그냥 간판이 아니라 예술작품처럼
카페 입구에 세워져있다.
그리고 정원과 곳곳에 무심한듯 내츄럴한 감성으로 심겨진 화초들과 데크 위에 놓여진 화분들…
참 내가 좋아하는 취향의 화초들이다.
정원부터 마음에 쏙 들다보니 더 기대감을 갖고서 카페로 들어갔더니,
역시나 들어가는 입구부터가 포토존이다.
이곳은 자매가 운영하고 있는 카페인데
꽃을 공부한 동생의 머릿속에서 이곳의 모든 디자인이 구상된 것이라 한다.
카페의 인테리어나 색감이나 모든 요소들에서
일관되게 느껴지는 고급스러움과 우아함은 두 자매의 모습과도 참 잘 매치가 되는 느낌이다.

정원의 화초들은 그래도 쉽게 볼 수 있던 것들인데
카페 내부의 곳곳에 배치된 식물들은 흔하게 볼 수 없었던 느낌이다.
인테리어잡지에 나올법한 이곳의 인테리어를 보고있으면
동생분의 감각이 보통은 아니구나 싶은 생각이 절로 드는데
일관된 아이덴티티가 흐르면서도 다양한 화초들과 소품 그리고 여러 장식들이 서로 조화를 이룬 모습이 참 세련되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흰색이 기본칼라이나 이곳저곳의 포인트들로인해 전반적으로 과하지 않고 차분한 느낌을 주는 이곳.
2층으로 되어있는 카페인데 1층에서와는 또 다른 분위기가 느껴지는 2층에서는 다락방 보다는 좀 규모가 크지만 다락방 느낌도 나고 빨간머리 앤이 살았던 공간이 연상되는 아담하고 아름다운 곳이다.
2층까지 하나로 이어진 정면의 통유리 창으로 내다보이는 초록초록한 정원과 카페 주변의 자연경관은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너무나 평화로워진다.
1층 중앙에 배치된 길쭉한 메인테이블에는 센터피스로 언제나 멋진 꽃장식이 되어있는데,
이런 꽃도 있었구나 싶은 생각이 드는 독특한 매력의 예쁜 꽃들이 매주 새롭게 바뀌며 장식되고 있다.
메인테이블에 센터피스가 가장 크고 화려해서 시선을 끌긴 하지만,
테이블마다 한두송이씩 무심하게 꽂아놓은 꽃들도 내겐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곳곳에 놓인 식물들과 드라이플라워들도 아름답지만 그것들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소품도
하나하나 고급스럽고 참 예쁘기만 한데,
눈에 띄지 않는 작은 것까지 일일이 섬세하게 신경을 쓴 사장님의 꼼꼼함과 완벽함과 배려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이곳에서 처음 주문해본 메뉴는 커피와 쿠키 그리고 스콘이었는데
사진에서 봤던 대로 이렇게 고급스러워도 되나 싶을 만큼 아름다운 그릇에 하나하나 멋지게 플레이팅 되어 나왔다.
반짝이는 금빛테두리 식기들에 담겨있으니 간단한 디저트인데도 고급요리로 착각할만큼 플레이팅이 남달랐다.
눈으로 먹는다는게 이럴때 쓰는 말이구나 싶었다.
직접 먹어보니 다크한 맛의 커피와 직접 구운 디저트의 조화가 썩 훌륭했다.
야금야금 먹다보니 혼자서 그 많은 디저트들을 다 먹어치울 만큼 맛있었다.
혼자 2층에 앉아서 넓은 긴 창으로 내다보이는 풍경을 흘끔거리며 커피와 쿠키를 함께 하는 그 맛이란.
이런게 바로 소확행이구나 싶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이곳은 브런치가 유명한 곳이었는데
먹어보니…보기에만 아름다운 게 아니라, 맛도 너무나 훌륭했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에피타이저로 나오는 요거트.
어찌나 예쁘게 장식되어 나오는지 먹기가 아까울 정도였는데
맛은 비쥬얼만큼이나 훌륭해서 별도로 판매하면 좋겠다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우아한 아우라가 가득 느껴지는 두 자매 사장님이
직접 만들어 내오는 이곳의 메뉴들.
하나같이 아름답고 정성이 가득들어있어
커피 한잔 마시는데도 융숭한 대접을 받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이렇게 멋진 곳을 오픈한지 일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서 알았다는게 좀 억울한 기분인데,
외곽에 떨어져있다보니 아직도 천천히 입소문을 타고 있어, 여전히 많은 이들에겐 숨겨진 보석같은 카페다.

이 카페의 꽃들만 실컷 보고와도
힐링이 될 것 같은 이곳.
시원한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는 듯한
편안한 쉼과 격식있는 우아함이 공존하는 이곳.
강릉 어느 카페에서도 쉽게 찾아볼수 없는 고급스러움으로 가득한 이곳.

가보지 못한 분들은 이 카페의 존재를 알게 된 이 순간,
당장 가보기를 권한다.
이 카페를 알고서도 방문시기를 늦춘다면
늦춰진 시간만큼
왜 진작 오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만 더 커질 뿐이다.
부디 하루 빨리 마음 속에 감성의 바람이 부는 이곳
‘명주 바람’을 꼭 한번 방문해보시길.

명주바람
강원 강릉시 성산면 소목길 253

이 현정카페인강릉#23 독보적인 고급스러움과 우아함이 있는 플라워 카페,’명주바람’

커피와 정치가 있던 청탑다방에 다녀오다

강릉, 명주동 뒷골목에서 청탑다방을 만났다.
간판도 맘에 들었고, 강릉 정치 일 번지였다는 점이
더욱 나의 발목을 잡았고, 시선을 모았다.
안에 들어가 보고 싶었으나, 굳게 닫혀있어서 몹시 아쉬웠다.

커피숍의 역사와 유래를 공부할 때
역사 속 카페들이 의식있는 시민들의
정치, 예술, 문화, 사회의 공론장이 되거나
토론, 담소의 장이었다고 배운 것도 생각이 났다.

청탑다방!
1959년 개점이후 지역의 정,관, 언론계 인사들의
단골집으로 명성이 자자하여
강릉정치 일 번지를 자랑하였던 곳,
강릉시와 명주군에 시장과 군수가 새로 부임하면
반드시 들러 인사를 했을 정도였고,
국회의원 등 정치권 인사들도 명절에 들려서
시민을 만나 담소를 나누던 곳이었다.
단골손님중에 애국지사 김삼 선생도 있었고,
최각규, 김진선 전 지사 등 강릉을 거쳐간
굵직한 인물들이 많았다고 한다.

정호돈 전 강릉문화원장도
1989년 강릉부시장으로 부임하면서 청탑다방에 들려
부임인사를 했을 정도로
강릉의 주요 인사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었던 곳으로
오랫동안 단 돈 천원으로 커피를 팔았다고 한다.


사람들은 단 돈 천원에 커피를 마시며,
오늘의 신문을 읽고,
당시의 정치를 담소하였던 것이다.

청탑다방의 대표였던 전영자씨는
단골 손님들이 많이 돌아가시고 집도 너무 낡아서
어쩔 수 없이 문을 닫게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나는 커피를 좋아하고 커피숍을 좋아한다.
그 맛과 향에도 반했지만,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는 그 자체가 좋다.
그리고 또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하려고 마신
커피 그 자체가 좋기도 하다.
맛있는 커피를 만드는 것이 좋고
그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대접하는 것도 좋다.

커피의 역사에서 커피하우스는
꽤 오랫동안 사회활동과 의사소통의 중심지였으며,
사회의 근본을 흔드는 혁명의 근거지였다.

미국 독립혁명의 시발점이 된 보스톤차 사건은
‘그린 드래곤 인 태번 앤드 커피하우스(Green Dragon Inn, Tavern and Coffeehouse)’에서
모의되었고,
미국의 독립선언문(Declaration of Indepedence)이
최초로 일반 대중 앞에서 큰 소리로 낭독된 곳은
필라델피아의 상인들이 만든
‘머천트 커피하우스(Merchant Coffeehouse)’가
이름을 바꾼 ‘시티 태번(City Tavern)’이었다.
시티 태번은
지금의 미합중국(United States of America)으로
발전한 대륙회의(Continental Congress)의
공동회의장이기도 하였다.

조지 워싱턴, 토마스 제퍼슨, 존 애덤스 같은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지적인 대화와 마음을 터놓는 교류”를 나눈다는
명목으로 드나든 커피하우스였다.
미국의 독립과 건국은
커피하우스에서 볶아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초창기 미국의 커피하우스는
사람들의 의사소통과 토론과 공론이
모이는 장소였다.
커피하우스가 생겨나자
사람들은 그곳에 모여 커피를 마시는 것은 물론이고
체스와 같은 게임을 즐기고
그날의 뉴스를 논하고 노래하고 춤추기도 했다.

커피하우스가 자연스럽게
교양있는 사람들이 모여
공론의 장을 제공하자
자연스럽게 정치· 경제 문제에 대한
토론과 함께 통치자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일반인들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커피점은
1554년에 오스만 투르크가 지배하던 시절의
콘스탄티노플에서 처음으로 생겨났다.
물론 그 전에도 메카나 카이로 등
이슬람 지역 여기저기에
커피하우스는 많이 있었으나
일반인이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유럽 최초의 커피하우스는
1650년 영국에서 생겼는데
곧 커피하우스는 전염병처럼
나라 전역에 전파되어 없어서는 안될
만남의 장소로 자리를 굳히게 되었다.

영국에 커피하우스가 처음 나타날 때는
고등교육을 받고 활발한 사회활동을 보이던
부르조아 집단이 새로운 사회의 주도계층으로
부상하던 때였다.
커피하우스는 주로 부르주아 상인과
지식인들이 서로 만나고 교류하는 장소가 되었고
곧바로 공개적인 토론으로 이어져
순식간에 각종 경제와 정치 문제로 확대되었다.

1페니만 내고 커피 한잔을 사서
하루 종일 커피하우스에 앉아 남들이 나누는
이와 같은 토론과 대화를
모두 들을 수 있었기 때문에
영국의 커피하우스는
1페니 대학교(One penny university)로
불리기도 했다.

영국의 커피하우스들은
저마다 단골손님의 유형이 달랐다.
작가들이 즐겨찾는 커피하우스가 있었던 반면,
의사, 정치가, 상인, 변호사, 성직자, 무역업자,
뱃사람들이 즐겨찾는 커피하우스가 따로 있었다.

주간지 ‘태틀러(The Tatler)’와 ‘스펙테이터(Spectator)’ 같은
언론지도 모두 커피하우스에서 탄생했다.
당시 태틀러의 편집자였던
리차드 스틸(Richard Steele)은
태틀러의 주소를 주로 과학자들의
정보교환의 장소였던
‘그레시안 커피하우스 (Grecian Coffee House)’로 기재하고
그 곳에서 기사를 쓰고 편집했다고 한다.

특정 고객층이 단골 커피하우스에 모여
자유롭게 의견과 정보를 교환하게 되자
곧 커피하우스는 우체국 역할도 하게 되었다.
즉 특정 고객들이 출입하는 커피하우스를 기반으로
편지나 신문의 발송과 배달을 조직화한 것이다.

커피하우스에 자루를 걸어놓으면
편지를 보내고 싶은 사람은 그 자루에 편지를 넣고,
어느 정도 편지가 모이면 배달하는 시스템이었다.
국가에서도 1683년에
이러한 방식의 우편제도를 도입하였는데
당시 우체국뿐 아니라
커피하우스도 편지를 모으는 장소로 지정했다.
1710년대 파리에는 300여 곳이 넘는 카페에서
사람들이 모여 앉아 수다를 떨고 있었고
보르도, 낭트, 리옹 마르세유 등
프랑스의 다른 대도시도 마찬가지였다.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1789년 당시만 해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문맹이어서
사람들은 뉴스를 입소문으로
들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파리의 카페에서는
마치 영국의 1페니 대학교처럼
글을 읽지 못하였더라도
신문지면을 가득 채운 뉴스를 들을 수 있었고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도 말할 수 있었다.

이런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
마침내 1789년 7월 14일
파리의 카페 ‘드 포아(de Foy)’에서
“가자 바스티유”라는 외침과 함께
프랑스혁명의 대서막이 오르게 되었고,
커피하우스는 사회의 대변혁을 이끄는
혁명의 근거지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커피를 마실 때
맥주나 물처럼 후루룩 마시지 않는다.
천천히 음미하며 마시면서 책을 읽거나
대화를 나누거나
혼자서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커피하우스의 역할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변하고 있다.
오늘날의 커피점은
더 이상 사회와 정치활동의 중심이 아니다.

예전의 커피하우스가 네트워크의 장소라면
요즘은 오히려 고립의 장소이기도 한다.
또한 정치, 경제, 사회의 이념을 소통하는 곳에서
단순히 커피라는 상품판매점으로 전락하였다.
또 어떤 이들은 화장실을 찾거나,
와이파이를 이용하기 위해서
커피숍을 이용하기도 한다.

나는 부천에 청탑다방 하나 있었으면 한다.
시민들이 모여 자신이 사는 도시의 성장을 위하여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이슈문제를 공론화하여
더 좋은 방향을 찾아보기도 하고
지역의 다양한 사람들과 작품과 멋을 만날 수 있는
부천만의 청탑다방,
1년 8개월전 시민공익을 위하여
우리가 만든 공간
시민공익플랫폼 채움이 만들어가고 싶다.

시민들의 속삭임이 살아서 정계를 흔들고, 바로잡고,
도시가 함께 성장하는 꿈틀꿈틀되는
부천의 청탑다방이고 싶다.
오드리와 서블리가 만든
우리 채움이.

(돕는 글 : 채움 단체는 의정모니터링을 하는 시민공익활동 단체이며
시민활동을 위하여 열린 공간을 운영하고 있으며, 시민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음.
운영을 돕고자 자체수익활동으로 핸드드립 커피를 판매하고 공간대관 사업을 하기도 함. )

아무튼 강릉에도 또다른 청탑다방이 다시 문을 열기를 바래본다.

오드리 기자커피와 정치가 있던 청탑다방에 다녀오다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커피와 아름다운 카페가 있는 곳, 강릉!

커피를 마시러 카페를 찾는 현대인들은 맛있는 커피도 중요하지만 커피를 마시는 카페가 주는 그 아름다운 공간에다 의미를 더 부여하는지도 모른다. 그 공간은 나만의 특별한 자리인 동시에 혼자인 내 자신을 이해해줄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파도 소리가 들리는 아름다운 바다를 배경으로 커피를 마신다고 생각해보자. 문득 들려오는 매미소리에 귀 기울여지고 요즘같이 무더운날, 그보다 나에게 더 좋은 선물은 없을 것이다. 바다와 커피가 떠오르고 예쁜 카페가 많은 도시, 이번 ‘만저봐 워크샵’을 위해 우리는 강릉으로 떠났다.

차와 커피의 도시로 유명한 강릉, 그 배경에는 산과 바다 호수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자연과 대관령에서 내려오는 맑고 깨끗한 물이 있다. 그래서인지 강릉은 차의 역사가 깊은 곳이기도 하다. 백두대간의 깊은 골짜기에서 흘러내린 석간수로 차를 달였으며 차를 즐기는 사람이 다른 지역보다 많았다고 하는데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바로 ‘물 맛‘때문이라고 한다. 그 물 맛의 역사는 신라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000년 전 신라의 화랑들이 차를 마시던 ‘한송정’이 있을 만큼 예전부터 차를 즐겨 마시는 고장이었으며 ‘한송정’ 정자 주변에는 화랑들이 차를 달여 마실 때 사용한 다구(茶具)가 남아 있다고 한다. 그곳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차 관련 유적지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현지인들은 커피 맛의 비밀이 바로 물 맛이라고 주장한다.

1980년대에는 조용한 어촌 마을이었지만, 인스턴트 커피 자판기가 5~6대 설치된 후 부터는 바다를 보며 자판기에서 뽑아 먹는 커피가 세상에서 가장 맛있다고 입소문이 나면서부터 시작된 ‘안목커피거리’는 어느덧 데이트 장소로 주목받으면서 본격적인 카페거리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카페, 커피 관련 소품이 가득한 앤티크 카페, 로스터가 직접 커피를 볶고 바리스타가 직접 커피를 내리는 카페들이 있는 곳이라면 분명 일상 생활에서 평범하게 접하는 커피보다 비교할 수 없는 맛을 경험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이 든다. 강릉에 커피 붐을 일으킨 드립커피 1세대인 박이추 선생, 커피공장 테라로사의 김용덕 대표, 숯불 로스팅의 대가인 심권섭 대표 등은 강릉을 커피의 성지로 이끈 주역들이다. 커피로 지역을 특화시키려는 강릉시와 시민들의 안목이 빚어낸 결과 강릉에는 안목해변, 정동진해변, 경포해변 등지에 수많은 커피전문점이 생겨났고, 이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이렇게 무수하게 강릉에 자리잡은 커피 전문점의 시초는 커피와 문화를 접목하기 위해 테라로사의 김용덕 대표가 2002년 고향인 강릉시 구정면에 세우게 된 커피 로스팅 공장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후 안목에서 커피전문점으로 시작하여, 우리나라 최초의 커피농장과 함께 커피 박물관 또한 개관하며 커피를 성공적으로 문화에 접목시키기 시작하였다. 그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2009년에 열린 제1회 강릉커피축제를 시작으로 강릉은 이제 차와 커피의 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작년에 테라로사를 방문해서 마셔본 커피 맛을 잊을 수가 없다. 그때의 커피맛에 대한 향수는 비록 커피 그 자체 뿐만이 아니라 산 속에 자리하고 있는 커피 공장 안을 가득 채운 앤티크함 또한 일조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강릉하면 이제는 바다보다 먼저 커피, 카페, 그리고 테라로사를 생각하게 된다. 이제는 대중화된 커피 전문점 스타벅스의 본고장인 미국 시애틀처럼 한국을 대표하는 커피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강릉에 거주하고 있는 이현정 작가는 자주 다니던 카페를 시작으로 개인이 운영하는 카페를 스케치하여 글과 그림을 통해 시리즈로 소개하고 있다. 작가가 소개하는 카페들은 강릉의 아름답고 맛있는 커피를 다 접할 수 있는, 누구나 가보고 싶은 곳들이다. 직접 가보지 않더라도, 작가의 글과 그림을 보면 누구라도 당연하게 이에 동의할지도 모른다. 멋진 인테리어를 갖추고 있지 않더라도, 카페라는 공간 안에 녹아있는 장인들의 철학과 정성, 그리고 그 공간에서 묻어나오는 원두 내음이 사람들을 어느새 사로잡고 있다. 사람들은 이 커피 맛과 풍광을 잊지 못해 전국 방방곡곡에서 주말과 평일을 가리지 않고 찾아온다고 한다.

카페인 강릉 #5 ‘GAEROCK게락’ ⓒ이현정

카페인 강릉 #12 웨이브라운지 ⓒ이현정

우리는 작가가 소개한 카페 ’게락’으로 갔다. 들어서자마자 내 눈에 들어온것은 아담한 카페 안 쪽에 마련되어 있는 로스팅 공간이었다. 찾아오는 손님에게 신선한 품질의 원두를 공급하기 위하여 직접 생두를 수입하여 로스팅을 한다는 그 공간만 보아도 사장님의 커피 철학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곳을 찾아온 고객들은 커피 만드는 과정을 직접 보고 커피가 움직이는 소리를 듣고 커피 향을 맡으며 커피를 마시고 직접 원두를 만지는 등 모든 감각을 동원해 최고의 커피를 경험하는 곳이었다.


오감으로 마시는 커피, 정말 아무나 쉽게 접할 수 없는 커피를 그 날 우리는 만난 것이다. 커피에 대한 철학과 자부심과 친절함이 물씬 풍기는 사장님의 따뜻한 강의와 더불어 게이샤 커피의 유통과정과 여러 커피들이 선사하는 또 다른 세계를 접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한 시간이었다. 단순히 ‘그윽하다, 은은하다’ 라는 단어로 표현하기에는 너무나도 부족한 맛과 향을 가진 게락의 게이샤 커피는 정말 마시기 전까지는 그 맛을 짐작할 수 없을 것만 같은 그런 커피였다.

두 번째로 방문한 ‘웨이브 라운지’는 책과 음악이 가득한, 좋은 사람들이 만나서 커피와 맥주를 즐길 수 있는 곳으로 들어서자마자 높은 천장과 넓은 공간, 그리고 꽂혀있는 많은 책들이 나를 반겨주었다. 그곳에서 커피 전문 강사인 경성현 선생님으로부터 커피에 관한 고급 강의를 들었다. 우리나라에 90년에 처음 들어 왔다는 원두커피의 유래와 역사, 맛있는 커피를 먹을 수 있는 방법, 커피를 내리는 여러 기구들, 어렴풋이 알고 있는 원두 내리는 방법 등 잘못 알고 있었던 상식들을 바로 수정해 주시고 손수 내려주신 맛있는 핸드드립 커피를 웨이브 라운지에서 맛 볼 수 있었다. 내가 그 전까지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커피에 대한 지식들이 한층 더 강화되는 한 편의 강의와도 같은 시간이었기에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더불어 카페를 소개해준 이현정 작가에게도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커피는 각성효과가 있어 정신을 맑게 하고, 집중력을 향상 시키며 편안함을 선사한다. 그만큼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커피는 없어서는 안 될 만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고, 커피 소비 또한 하나의 문화로서 자리잡게 되었다. 어렸을 적에 커피는 인스턴트 커피가 전부였지만, 이제는 커피 원두의 종류도, 즐기는 취향도 사람마다 나라마다 다르고 세분화 되었다. 이는 비단 커피 자체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강릉이라고 하면 이제는 카페 거리뿐만 아니라 커피 도시라는 지역 문화와 조화를 이룬 타이틀도 얻게 되었다. 고객의 습관과 소비가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고객의 요구를 끊임없이 연구하고 예측하는 곳, 카페! 장인 정신이 묻어 나오는 프리미엄 급 커피와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지만, 그런 매장에서 한 잔의 커피를 매개로 고객에게 음료뿐만 아니라 편안한 공간과 즐거운 추억을 선사할 수 있는 곳으로 진정성 있게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한다. 더불어 강릉시 또한 앞으로도 시민들과 지자체 차원에서 커피와 문화를 융합시키는 노력이 계속되어 언제 어디서나 장인들의 손맛을 만날 수 있는 커피의 도시로 성장했으면 한다. 강릉시가 세계적인 커피의 도시로서 발돋움 할 그 날이 머지 않음을 느낀다.

 

정 정숙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커피와 아름다운 카페가 있는 곳, 강릉!

방앗간에 참새가 없고 다방에 커피가 없지만 동네엔 사람이 있다

내 기억 속의 강릉은 이별의 장소다.

특히 경포대의 밤바다는 이별을 더욱 참담하게 짓눌렀던 칠흑과 다르지 않았다. 군입대를 며칠 앞두고 친구들과 찾았던 강릉 경포대 밤바다를 바라보며 느꼈던 감정들이 지금도 생생하다. 두려움, 아쉬움. 그리고 이별의 고통. 나와 내 사랑하는 친구들에게 눈알을 부라리고 있는 입대 영장만 없었다면 얼마나 낭만적이었을 것이며, 얼마나 뜨거웠을 바다란 말인가.

1988년의 기억에 존재하는 강릉과 경포대는 그렇다. 정확히 30년이 지났다. 이젠 그 기억을 완전히 지워버려도 좋을 만큼 아름답고 명징한 기억을 담아 왔기에 강릉에 대한 편견을 버릴 것이다.

꽤 오랜만에 찾은 강릉은 품격이 있었다. 암담한 이별을 앞둔 바다에 불과했고, 까짓거 좀더 쳐주면 오죽헌과 선교장이 유명하다. 그리고 해송이 그럭저럭 펼쳐져 있던 바다 뒤편에서 입에 넣던 순두부의 슴슴한 맛밖에 떠올릴 게 없는 곳. 보잘 것 없는 기억만 가졌던 내게 오래된 동네, 명주동이 품격을 선물했다. 덕분에 다시 찾을 땐 더 즐거울 것 같다.

강릉의 오래된 동네 명주동.

과거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고, 다가올 미래의 풍파에 의연하게 대치하고 있는 동네다.

명주동의 과거를 버티고 있는 몇 군데 포인트가 있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곳이 봉봉방앗간이다. 견뎌온 세월을 짐작할 수 있는 겉모습과 달리 명주동을 찾는 이들에게 가장 힙한 공간이다.

*홍상수의 고해성사적(?) 영화라고 오해 받는 <밤의 해변에서 혼자>. 배경 중 하나였던 강릉 명주동의 봉봉방앗간 앞에서 영희가 불륜의 무용함과 부끄러움을 되새기며 담배 연기를 내뿜고 있다. 그들의 사랑이 한 가치의 연기만큼 가벼운 것은 아니었을 텐데.

아주 오래 전엔 참새가 때마다 들러서 배를 채우고 가던 진짜 방앗간이었고, 지금은 커피를 팔고 여러가지 다양한 전시와 문화를 지역 주민과 관광객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방앗간의 자격을 잃고 나서 10여년 동안 방치되었던 건물은 누군가에 의해 새생명과 새 임무를 부여 받았다. 이런 스토리텔링만으로도 봉봉방앗간은 유명해지기에 충분한 자격을 얻었다.

커피의 도시로 급부상한 강릉. 사람들이 몰려드는 곳마다 생겨나는 수많은 강릉의 카페들이 있다. 그러나 분명 봉봉방앗간은 그것들과 다른 결을 가지고 있다.

근대건축물의 외형을 훼손하지 않고 가지고 있는 것도 좋고, 원래 방앗간이었던 곳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카페 이름을 지은 것도 좋고, 문화와 예술을 품고 있는 것도 좋다. 핸드드립 커피만을 고집하는 덕분에 당연히 커피맛도 좋지 않을까.

그래서 다르다.

*홍상수의 영화에서 그랬듯 봉봉방앗간 앞에는 자전거가 딱 1대 필요하다. 그래야 봉봉방앗간스럽다. 그 오래 전 참새들이 들르던 곳에 이젠 자전거가 들러준다.

18세기 유럽. 그 무렵부터 유행이 시작됐던 유럽의 카페는 남자들만 이용할 수 있었다. 금녀의 구역이다. 여자들도 사교를 위해 이야기를 나누고 남자들의 험담을 늘어놓을 공간이 필요했을 텐데. 그러면 어디서 모였을까? 당시의 여자들은 집에서 모일 수밖에 없었다.

이 모습은 유교의 생활 관습이 지배하던 우리의 과거의 장면들과 겹친다. 우리 조상, 선비 사대부들이 얼마나 여인들을 하찮게 여겨 왔는가. 정겨운 느낌을 떠올릴 법한 우리네 ‘사랑방’도 담론을 즐기는 장소였지만 실상은 여자들에겐 절대 금지 구역이었다.

명주동엔 봉봉방앗관과 더불어 또 하나의 인상적인 곳이 있다. 1959년부터 영업을 시작했다는 청탑다방이다.

청탑다방. 어디에서 유래된 것인지 유추해볼 수 있는 단서가 있다.

앞서 언급한 18세기 카페의 이야기로 잠깐 다녀와보자. 카페에 출입이 금지된 여자들은 끼리끼리집에서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차를 나눴다. 그 자리에서 문학과 예술을 논하고 미술 작품을 보고 품평을 했을 것이다. 이런 모임을 싸롱이라고 했다. 대개의 여자들은 이런 모임에 참석할 때 주로 검은 양말을 신었는데, 일부 리더적 경향이 강하거나 개성이 짙은 여자들은 푸른 양말을 즐겨 신었다고 한다. 이들을 블루 스타킹 소사이어티(Blue Stocking Society) 라고 불렀다. 카페에서 향 좋은 커피를 나누며 자기들만의 리그를 향유했던 반페미니스트적 심성의 남성들은 이런 여자들이 당연히 못마땅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들을 비아냥거리며 부르는 말로 이 푸른 양말(blue stocking)’을 갖다 붙였다.  ‘지식과 문화 예술을 탐미하는 여성’을 비하하는 말로 쓴 것이다. 얼마나 옹졸한가. 그리고 푸른 양말은 동양에서 한자어로 ‘청탑(靑鞜)’이라는 말이 대치됐다. ‘푸른 양말’을 한자어(語)로 만들었음을 미루어 짐작해볼 만하다.

명주동의 청탑다방의 가게 작명도 이 단서와 왠지 연관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여기 강릉 명주동에도 청탑다방이 있고, 서울 명동의 한복판에도 일제 시대의 경성 멋쟁이들이 드나들던 청탑다방도 있었다.

지금은 세월의 무게와 현실의 회계장부를 견디다 못해 2011년부터 영업을 종료한 상태다. 이렇게 매력적인 근현대 건축물이 아무 기능도 못하고 있다니 애석하다. 후문에 의하면 영업부진으로 폐업을 한 것은 맞는데, 건물에 대한 권리 관계가 너무 복잡해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라 한다.

몇몇 초로의 신사들이 청탑다방의 문을 열고 들어선다. 함경도에서 피난와 자수성가한 박갑철 씨도 있고 다음 국회의원 선거에 도전을 할 지역 유지 오만득 씨도 보인다. 또 강릉에서 한가락 필명을 날리고 있는 시인 고구만 선생도 보인다.
저녁 식사겸 거나하게 한잔 걸치고 나서 커피를 마시고 한바탕 썰들을 풀려고 모여든 것이다. 과연 강릉의 정치 1번지다운 모습이다. 다방 안 난로 옆의 따뜻한 자리들은 이미 먼저 온 신사들과 노인들에 의해 점령당했지만 뭐 어떠랴. 단아하게 늙어가고 있는 청탑다방의 여사장님이 이들을 반갑게 맞으며 자리를 안내한다.

그런데 이젠 청탑다방에서 커피를 마실 수 없다. 다방에 커피가 없으니 이젠 무어라 불러야 하나.

*이 낡은 건물이 한때 강릉의 유명정치인들과 유력 인사들, 문화, 언론계 명망가들이 모여 앉아 커피를 마셨던 청탑다방이다. 이곳이 청탑다방임을 알리는 간판이 두 개 있는데, 파란색 간판은 청탑다방이라서 너무 자연스러운데, 출입구 위에 있는 빨간색 바탕의 간판은 어색하다. 왜 이렇게 배치를 했을까. 빨간 알약, 파란 알약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영화 <매트릭스>의 주인공인 네오의 운명과 맞닿은 것은 아닐까?

강릉 명주동의 골목길. 야트막한 담장 너머로 동네 주민들의 사는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군데군데 아직 형체를 보존하고 있는 적산가옥도 있고, 끼니 걱정하며 살던 시절의 주택도 개발이 안 된채 버티고 있다. 누군가의 수고 덕분으로 골목길을 꾸미는 그림도 있고 예쁜 화분들도 많다. 그러나 늘 그래왔듯이 돈의 논리로는 이곳을 이대로 둘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이곳에 터를 지어 살고 있는 사람들의 등을 떠밀어 떠나게 할지도 모른다.

기회가 되어 다음에 이곳을 찾았을 때 몰라보게 달라지지만 않길 바랄 뿐이다.

 

글 / 김현국 (만화 콘텐츠 기획자, 스튜디오달 대표)

 

 

현국 김방앗간에 참새가 없고 다방에 커피가 없지만 동네엔 사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