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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박의 손그림 에세이 (20) “가족”

나도 자유롭고 싶었다.
그래서 스무 살이 넘어서는
발길 닿는 데까지 달아나 보았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시늉도 실컷 했다.
세상의 밑바닥이 궁금하다며, 궁금해야 한다며
멋 부리며 어설프게 굴러다니기도 해 봤지만…

돌이켜보니 소리를 지르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어도, 도무지 자유롭질 않아서
멈춰 서서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자유.
본래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이 더 간절한 법’인가 하다가,
가슴 아래에
‘작지만 무거운’ 돌멩이 같은 것 하나가 콕 박혀있어
내가 아무리 달리고, 날고, 굴러도
나를 가볍게 하지 않았구나 싶은 것이었다.
가족이 언제나 돌멩이처럼 그곳에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자유롭고 싶다.
그래서 내 가슴 아래에서 신호를 보내면
가족을 돌아보기로 했다.
그러면 좀 더 자유로워지는것 같았다.

수박 김김수박의 손그림 에세이 (20) “가족”

가족회의

가족회의

 

의 어린시절. . .

우리 가족은 여섯 식구였다.

아빠, 엄마, 언니, 오빠, 나, 그리고 동생.

 

아빠

는 거의 매일 퇴근 하여 오실 때

양 손에 무겁게

무언가를 들고 오셨다.

 

퇴근 후 대문을 들어오시는 아빠,

“아빠~ 다녀오셨어요!!”

온 가족이 현관문에서 아빠를 맞이했다.

맞이할 때면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아빠의 손을 보았다.

 

우리의 마음을 아시는 듯

아빠의 손에는 항상 무언가가 있었다.

어느 날에는 귤, 호빵, 샘베과자 등.

 

덕분에 온 가족은 모여서 간식을 먹으며

왁자지껄 수다를 떨며 웃음 꽃을 피웠다.

 

요일, 나의 어린 시절 매월 마지막 목요일,

우리 가족은 모두가 일찍 집에 와야 했다.

누구라도 어떤 핑계도 되어선 안된다.

왜냐하면 그 날은 우리 가족이 함께 모여

‘가족 회의’를 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어떤 내용의 회의를 했는지는

솔직히 별로 생각 나지 않는다.

다만 온 가족이 함께 모였고

어른들은 꾀 진지했던 것 같다.

 

그러나 무슨 회의를 했는지

무엇을 회의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나와 동생은

그럼에도 가족회의 날이 무척 기다려졌다.

정말 정말 좋았다.

회의 마지막 부분이 특히 그랬다.

 

의하는 타임이 주어지는데

이 건의 타임에는

누구나 솔직하게 누구에게든, 무엇이든

건의할 수 있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시간에 가장 건의를 많이 받는 사람은 오빠였다.

나와 동생에게 평상시 심부름을 많이 시켰다.

오빠와 나는 나이 차이가 9살이나 났고

그래서 오빠가 심부름을 시키면 감히 거절을 할 수가 없었다.

 

때로는 친구 같이 다정하기도 하고

때로는 영화 속 주인공처럼 멋있었던 오빠이지만

우리가 숙제를 안 했거나

친구를 데려와 집을 엉망으로 만들었을 땐,

도깨비보다도 더 무서웠다.

 

우리는 너무 어려서

오빠가 우리를 위해서 하는 가르침이나

심부름 등의 유익함보다는 불만일 때가 더 많았던 것 같다.

 

그래서 기다리고 기다리던 가족 회의 날,

바로 바로 건의 타임!

나와 동생은 이구동성으로 오빠를 향해

적극적인 아니 공격적인 건의를 했다.

 

“너무 심부름을 많이 시킨다.

오빠가 해도 되는 것 같다.”

 

“무섭다. 너무 무섭다. 아빠보다 무섭다.

사랑한다면 자상하게 해줘라.”

 

“오빠도 청소해라.

아침에 좀 빨리 일어나라

엄마 힘들다 ” 등등

 

무엇이든 마구마구 건의 했다.

 

그럴 때면 오빠는

온가족 앞에서 미안하다고 사과도 했고

스폰지처럼 자상하고 부드러워졌다.

물론 3일도 못 가서

다시 무서워지고 엄격해지고

마구마구 심부름을 시켰지만 말이다.

 

완벽주의자 언니 또한 우리의 건의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언니도

유머와 위트로 우리를 설득하며 부드러워졌다.

 

회의가 끝나고 아빠와 엄마는

나와 동생에게 노래와 춤을 추어보라고 시키기도 했다.

 

특히, 내 동생은 춤을 잘 추었고

온 가족은 박수로 리듬을 맞추며

함박 웃음 소리와 함께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당에는 커다란 해바라기와 청포도 나무가 있던

어릴 적 우리 집 담장 너머로 가족들의 맑고 밝은  웃음 소리가

온 동네, 아니 온 세상으로 퍼져나갔다.

 

지금 생각해보니

우리 가족은 참 민주적이었다.

민주적인 가정을 이끌어가신

멋진 가장, 우리 아버지

 

아버지는 지금 세상에 없다.

그 옛날, 그 시절에 어쩌면 그렇게도 민주적이셨을 수 있으셨는지

참 존경스러운 우리 아버지!

 

립다.

그리워서 아버지 계신 대전에 다녀왔다.

만저봐 4월호 주제 ‘가족’에 관한 글을 쓰기 위해

덕분에 가족에 대해 생각해보았고

어린시절 가족회의를 그리워해보고

또 존경하는 아버지께 다녀올 수 있었다.

참 감사하다.

 

 

 

오드리 기자가족회의

아빠를 찾아서① – 프롤로그

우리 아빠,
나는 아빠의 둘째 딸.

아빠는 늘 곁에 있지만 나는 단지 아빠가 ‘아빠’라는 것 밖에 모른다.
나는 종종 아빠에게 꿈이 뭐냐고 물어볼 때도 있고 아빠의 어린 시절을 묻기도 하고 아빠의 회사생활을 묻기도 한다.
근데 아빠의 대답은 나에게 항상 충분하지 않다.
내가 나를 아는 만큼 아빠와 나의 거리도 좁혀질 수 있을 텐데 우리는 그러지 못했다.


(삽화 – 카투니스트 고구마)

최근에 우연한 만남이 있었다.
아빠가 직장 후배들과 함께 있는 자리에 나를 불러서 ‘내 둘째 딸이야’라고 소개했다.
나는 신이 나서 내가 하는 일도 소개하고,새로 시작한 단체 일도 소개했다.
아빠의 직장 후배들은 아빠에게 ‘딸이 잘 컸으니 걱정 안 해도 되겠다.’고 했다.

아빠의 반응은 달랐다.
공직에서 30년 이상을 계셨고
나와는 다른 직업에 종사하고, 성격이나 취향마저도 아주 달라서 우리의 대화는 종종 말싸움으로 변해간다.
하지만 아빠의 직장 후배들처럼 타인이 딸을 인정해줄 때는 아빠의 입가에 웃음이 번진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집에서 보는 ‘아빠’는 종종 답답하다.
담배냄새, TV 독점, 잔심부름..

그런데 그때 후배들과의 만남을 통해 아빠가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아빠의 후배가 한 말.
‘나는 아빠를 10년 넘게 알았어.
내가 직장 생활에서 만난 선배 중 최고였어.‘라는 말.
나는 왠지 뭉클했다.

‘그리고 아빠가 딸들 걱정을 많이 했어.’
난생 처음으로 아빠의 다른 목소리를 들어본다.

나와 아빠는 얼굴 보고 대화할 때 분명 어려운 지점이 있다.
하지만 타인이 우리 아빠에 대해 얘기할 때,
타인이 우리 딸에 대해 얘기할 때,
아빠와 나는 그제야 서로의 마음이 보인다.

나는 그 이후로도 몇 차례 아빠 지인들과 만남을 통해 나에게는 ‘아빠’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좋은 팀장이자, 좋은 멘토이자, 좋은 선생님이자, 좋은 동네 형이라는것을 배웠다.
아빠 또한 자연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기대받는 많은 역할이 있고 그 역할을 위해 고군분투하며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그런 아빠를 둘째 딸은 슈퍼맨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문제이지만.

아빠는 분명 딸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았을 것이다.
일 때문에 바빠서,
내가 너무 연약해서,
혹은 딸에게는 말하고 싶지 않아서 하고 싶어도 못한 말이 많았을 것이다.

나는 이 기회를 통해 아빠가 나한테 말하지 못한 역할들을 발견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응원하고 싶었다.
아빠 인생 멋있게 사셨구나- 하고.

한 가지 아빠에게 바라는 게 있다면 둘째 딸의 인생이 마냥 지켜보기에 불안하기 짝이 없지만 그저 응원하고 지켜봐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빠의 딸인 만큼 나는 잘 해낼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가족을 위해 30년간
하고 싶은 일을 잠깐 포기하고 살며 나를 예쁘게 낳아주고 이 자리에 있게 해 준 아빠에게 인터뷰를 통해 감동을 드리고 싶다.

나는 이어지는 인터뷰를 통해 그동안 미뤄온, ‘아빠를 샅샅이 살펴보는 일’을 시작해보려 한다.두둥~

서보영아빠를 찾아서① – 프롤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