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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劇)만화는 허기를 채워주지만 카툰은 가슴을 따뜻하게 해준다.

중국 청나라의 문인 오교(吳喬)는 산문(散文)은 쌀로 밥을 짓는 것이요,시(詩)는 쌀로 술을 빚는 것이라 비유했다.

밥은 먹으면 배가 부르고 술은 마시면 취하게 되니,무릇 풍류와 미학의 정서적 본향(本鄕)은 시가 더 으뜸이라 하신듯하다.

만화 예술 장르에 있어서 카툰과 극(劇) 만화도 오교 선생의 말씀으로 비유할 수 있겠다.



(카투니스트 박비나 – 낮잠)

극만화는 허기를 채워주지만 카툰은 가슴을 따뜻하게 해준다.

작품을 빚는 카투니스트에 따라서 잘 익은 술 냄새가 나기도 하고 코를 찌르는 독취가 올라오기도 한다.

똑같은 카툰 작품으로부터도 어떤 독자는 일본 나가타 지역의 간빠레 오또상 같은 사케를 맛보고 어떤 이는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지역의 밸런타인을 맛볼 수 있다.


(카투니스트 박비나 – 휴식)
그만큼 만드는 이도 음미하는 이도 식탐이 아닌 미식(味食)의 철학을 갖추어야 제대로 볼 수 있다는 얘기이다.

사석에서 “꼬집히면 벙어리도 운다”라고 표현한 소설가 김동리 선생의 경상도식 발음을 “꽃이 피면 벙어리도 운다”로 잘못(?) 알아듣고 동료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는 서정주 시인의 일화처럼 카투니스트의 오감(五感)은 늘 외계로 열려있다.

만화가 산업적 소재로만 평가받고 더 이상 미학적 담론을 이끌어낼 수 있는 예술 장르로써의 역할과 지위를 잃어버린 쓸쓸한 지금.

카투니스트 - 홍승우
(카투니스트 홍승우 – 뜨거우니까 조심하세요)
2016년을 아쉽게 보내며 술 한잔 청하는 마음으로 비주류 장르를 보듬고 있는 모든 카투니스트들에게 글로나마 위로를 보낸다.

이 원영극(劇)만화는 허기를 채워주지만 카툰은 가슴을 따뜻하게 해준다.

공감능력 부족한 카투니스트들에게..

“아는만큼 보이고,보이는 만큼 생각하고 생각하는 만큼 행동한다.”

논어(論語)에 나오는 이야기로써 이것은 무릇 사람이 세상일을 자각(自覺)하는 단계에서의 지식과 경험이 이후의 행동을 결정짓는데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비유할때 많이 사용된다.

인식론에 관한 이 에피소드가 한때 앞뒤 잘린 채 유홍준 교수의 베스트셀러,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아는만큼 보인다”로 응용되어 누구나 한번쯤 문화에 대한 자신의 무지함을 자책할때 한번 쯤 입에 머금게 되는 유행어로 회자되었었다.

서양에서는 독일 문학의 종결자로 불리는 괴테가 “우리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만 본다”라는 말을 남기는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식과 미학이 움트고 퍼지며 사람들을 이끌어 감에 있어서 기본적이고도 본질적인 문화적 소양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인식은 대개 그 견해들이 비슷하셨던듯하다.

카투니스트가 한컷의 그림속에 자신만의 메세지를 숨기며 자신도 함께 그 속에 웅크리고 틀어앉아 낯선 독자와의 만남을 기다릴 수 있는 것은 분명 독자가 누가 되었건 최소한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미학적 장치를 자신의 작품속에 남겨놓았다는 자신감에 근거한 것이리라 생각해본다.

무릇 볼 줄 알고 느낄 줄 아는 최소한의 공감대를 이해하고 활용할 줄 아는 능력이 바로 작가의 기본 소양일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고백하건대 20세기 초 미국 추상 미술계의 우상인 작가 프랭크 스텔라가 남긴 말처럼 “당신이 보는 것이 당신이 보는 것이다.(What you see is what you see) ” 는 식의 오만함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창작 태도를 갖고 있는 공감 능력 부족한 카투니스트들 또한 더러 많이 만나곤 한다.

여튼..2017년엔 보아주시고 생각해주시고 함께 행동해주실 수 있는 그런 카툰 공동체가 되었으면 좋겠다.

카툰무크지 제3호 “의기양양”에서 발췌

이 원영공감능력 부족한 카투니스트들에게..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그래 카투니스트 당신들이 그렇다

카툰 장르는 소설보다는 시(詩)에 가깝고 스토리보다는 메시지에 천착(穿鑿)한다.

극(劇) 만화는 면과 칸, 동작선과 다양한 기호들을 좀 더 유연한 시간 여행을 통해 나름의 만화적 차원을 생성시키고 소멸시키지만 카투니스트는 한 컷 안에서 끝장을 보아야 하는 마치 목숨을 건 탈출 마법의 비밀 같은 흔치 않은 작업들을 구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체의 대사를 배제한 채 빈 말풍선, 절제된 만화적 기호만으로도 강렬한 호소력을 담아낼 수 있는 넌버블(Nonverbal) 카툰.

페이지를 넘기거나 스크롤하는 일반적인 만화 독법에 변화를 주어 접고, 펼치고, 내리고 덮는 형식의 선택권을 독자들에게 맡겨 버릴 수 있도록 12칸의 만화적 공간에서 4개의 각기 다른 스토리를 담아내는 멀티 엔딩 카툰 등,

그 형식은 다채롭기 그저 없다.

카투니스트들은 태생적으로 늘어지게 긴 화법을 구사하지 못하는 응큼한 종족이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시인이 그의 시 풀꽃에서 지칭한 너… 바로 당신 카투니스트다.

이 원영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그래 카투니스트 당신들이 그렇다

송구영신 카툰전 ‘꼭이요 展’

조류중 유일하게 십이지(十二支)에 간택된 닭.
영어로 겁쟁이를 치킨이라고 하지만,실제 닭은 겁쟁이는커녕 성격이 더럽다
미국 남북전쟁 당시에는 닭을 마스코트로 삼아 데려다닌 부대도 있었는데, 이 닭은 격렬한 라인배틀에서 총상을 입으면서도 물러나지 않았다고 한다.ㅎ.믿거나 말거나.
여튼 닭은 엄연히 프랑스의 상징물이며 국조(國鳥)이기도 하다.
2017년은 희망하건대 멍청한 닭은 잡아들이고 진짜 닭이 제대로 평가받고 활공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대한민국 대표 카툰 작가들의 “닭작품”을 소개한다.소개하는 작품들은 한국만화박물관 4층 카툰갤러리에서 1월 30일까지 가시면 직접 관람하실수 있다.

목계지덕 / 조관제

나무로 만든 닭처럼 자신의 감정을 통제할 줄 알고,상대방으로 하여금 근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보여주는 능력

닭구 / 홍종현

탁구를 치자구! 닭구 말구!!

무제 / 홍성일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토종닭의 새해인사

2017 정유년 / 이영우

올해는 우리의 해라구!!

무제 / 이소풍

근하신년. 수복강령. 가화만사성~~

무제 / 심차섭

수탉의 힘찬 역기신공!

무제 / 성문기

줄탁동기(啐啄同機)의 힘찬 모습을 상상하며..

정유년 아침 / 사이로

모두 건강하게 오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을 닭소리에 실어 표현

정유년닭 / 박비나

‘새해’위에서 닭이 된 2017년

노란 리본닭 / 박비나

2017년에도 잊지 않고 날개짓은 계속 됩니다.

무제 / 강대영

황금알 낳는 2017년 되세요!

정유년 / 김마정

낡은 그 무엇을 밟고 다시 한 번 홰를 친다.

2017 Happy new Year / 김정겸

함께 외쳐요! 해피 뉴이어

무제 / 김흥수

군계일학! 군계일닭!!

닭치고 새해 복 받기 / 김동범

닭치고 새해 복 많이 받아 올 한해도 신나게 놀아요.

무제 / 박근용

닭의 세계에서 보름달은 달걀. 부활과 생명력을 상징하는 달걀은 소원을 비는 보름달과 닯았다.

일어나 / 김동범

새로운 새해가 밝았으니 정신 차리고 벌떡 일어나 힘차게 시작합시다.

다시 출발 / 박현숙

2017년의 상징인 닭을 말처럼 타고 힘찬 기운으로 출발!!

평화 닭 / 박비나

비둘기만 잎을 물고 평화를 외치는 건 아니닭!

무제 / 모해규

풍요롭고 살맛나는 정유년 닭띠 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무제 / 김평현

2017년은 불계승으로 승리하는 해

무제 / 서서영

원숭이 해와 닭의 해가 임무 교대하는 것을 만화적으로 이미지화

무제 / 양창규

올해는 2017개 황금알 받으세요!

벼슬 / 오승수

벼슬을 달았으니 대한민국을 부탁해.

무제 / 유재영

새해 복 많이 많이 받으세요.꼭이요~

무제 / 정은향

닭의 해를 맞이해서 모두가 황금알을 낳기를 기원

Happy 2017 / 조보길

귀여운 닭들의 2017 숫자놀이

근하신년 / 조항리

한자 공부는 언제 했대?

무제 / 허어

부귀영화를 기원하는 덕담

이 원영송구영신 카툰전 ‘꼭이요 展’

선악의 저편

니체는 그의 저서 선악의 저편에서 이렇게 말했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자신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당신이 오랫동안 심연을 들여다 보면, 심연 역시 당신을 들여다 본다. (He who fights with monsters should look to it that he himself does not become a monster. And when you gaze long into an abyss the abyss also gazes into you.)’

요즈음의 우리는 위정자의 눈빛과 말들 속에서 자주 그 섬뜩한 심연과 맞닥뜨리는 느낌이다.

흔히 배울 수 있는 도덕과 사랑, 명예와 신념 따위의 시민적 가치는 최소한 그녀에겐 한심한 자들의 몫일뿐이다.

물러서리라 믿어 의심치 않지만 함께 든 촛불 외에는 저항할 것이 없다는 생각에 그저 두렵고 쓸쓸하기 그지없다.

용기와 정화(淨化)가 필요한 이즈음에 캐나다 작가 롭 곤잘레스와 함께 착시 속 또 다른 미학의 세계라도 한번 둘러보고 오자.
섬뜩함이 아닌 따뜻함으로 가득한, 그들은 감히 이해 못할 우리만의 심연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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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www.facebook.com/RobGonsalves.Official/
Gonsalves was born in Toronto, Ontario. As a young adult he developed an interest in drawing from imagination using various media. By the age of twelve, his awareness of architecture grew as he learned perspective techniques and he began to create his first paintings and renderings of imagined buildings. After an introduction to artists in his thirties Escher, Dalí, and Tanguy, Gonsalves began his first surrealist paintings. The “Magic Realism” approach of Magritte along with the precise perspective illusions of Escher came to be influences in his future work.

이 원영선악의 저편

사라진 존재들에 대한 깊은 회환 – 기억의 촉감

기억의 촉감은 8개의 단편 만화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묶은 김한조 작가의 단편집이다. 그리고 각각의 독립된 이야기들이지만 등장 인물들이 묘하게 얽혀 있어 또 다른 생각 거리를 던져주는 만화책이다.

내가 가진 무언가를 다른 이에게 전하려 할 때 알게 모르게 우리는 각자가 지니고 있는 경험치 속에서 그 기억들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등장인물들이 처한 상황처럼 재미없는 부분일 때가 흔히 있다.비슷한 경험, 시간을 보내던 느낌들을 기억해보라면 지극히 따분하고, 일상적이고 잔잔한 기억들은 무의식 속에 깊숙이 깔려있다 어느 순간 등장하는 것 같다. 그것도 긍정적인 기운보다 이 책에서처럼 죄책감, 아쉬움, 후회 같은 기억의 촉감이 살아날 때 한꺼번에 떠오르는 경우가 많이 있다.

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느낌은 내가 보기엔 죄책감인 것 같다. 지나 보니 용서를 구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는 이미 내 곁에서 사라진 존재들에 대한 깊은 삶의 회한 같다고나 할까.

먼저 떠나보낸 애인에 대한 죄책감, 죽음에 임박한 자신의 곁을 끝까지 지킨 아내에 대한 미안함(기억의 촉감), 미처 태어나지도 못한 낙태아에 대한 처절한 죄책감(목사의 딸), 종교적 원죄의식 등 그 외 현재의 상황이 아닌 과거의 기억들에 붙잡힌 등장인물들 모두가 공허하고 우울한 모습들이다.

지나가서 놓쳐버린 과거가 지금의 일상을 점령해버려 현재 이 순간을 놓치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만나보면서 나 자신도 돌아보게 된다.
어찌할 수 없는 지난 시간은 억지로 벗어나려 하기 보다 그냥 무심하게 그 상태로 머물다 언젠가 지나가겠지 하면 마음을 자연스레 흘러 보내는 마음챙김 요법처럼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현재에 충실한 일상을 보내고 싶다. 바람직한 일보다 바라고 싶은 일을, 좋은 일보다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할 일보다 하고 싶은 일을 우선 순위에 두고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veroni409사라진 존재들에 대한 깊은 회환 – 기억의 촉감

부자의 그림일기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 UCLA의 진화생물학자 제레드 다이아몬드가 말한 일명 안나 카레리나의 법칙이다.

일견 수긍이 가면서도 이것이 소소한 사적 영역이 아닌 사회적,역사적 환경을 전제로 논의된다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일제의 식민 지배, 625 전쟁, 이승만의 친일 세력 연대, 박정희의 독재, 5-18 민주화 항쟁, 도시화로 무너진 농촌.

제각각의 불행한 이유? 가 아닌 우리 모두에게 깊은 상처와 트라우마를 안겨준 엇비슷한 이유들이 아닐까?

오세영의 단편집 부자의 그림일기에는 고샅을 지키는 아이,나라가 없어져 미관 말직 권세를 잃어버린 안초시,서참의 심지어 용도 폐기된 채 북에서 내려온 군마와 518 진압군까지 깊은 내상을 입은채 살고있는 우리 이웃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나아가 그들은 빛바랜 흑백 사진속에서 막 뛰쳐 나온 듯 숨소리,땀냄새,술냄새 풍기며 우리 앞에서 상처받은 사회적 자아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열세편의 단편들 곳곳에는 분열된 자본주적 폭력성의 서사화(고샅을 지키는 아이),자아와 개인의 자각(쏴쏴쏴 탕),자아 찾기와 절망(탈출),일상적 자아의 패배와 거리 두기(목론),무능력한 지식인의 일상적 갈등(복덕방) 등을 대변하는 문학적 캐릭터들이 정교한 수사와 복선,치밀한 플롯과 이야기 전개를 통해 입체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만화와 문학의 경계를 목도하고 싶다거나,스낵 푸드가 아닌 숙성된 홍어 삼합같은 만화의 맛을 경험해보고 싶다면, 지금 바로 오세영 작가를 만나보시길 권하고싶다.

이 원영부자의 그림일기

흙수저 예술인의 처절한 신혼일기 “불편하고 행복하게

홍연식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이다. 표지를 보면 전원생활의 낭만인가 싶은데 낭만과는 거리가 먼 투쟁과도 같은 신혼생활을 그렸다.

요샛말로 금수저.흙수저 로 나뉘는 젊은 세대중에 물려받은 재산은 커녕 오히려 빚만 가진 흙수저예술인의 처절한 신혼일기다.

쫓기듯 달아나듯 아내의 권유로 떠난 시골생활은 낭만은 커녕 하루 하루 버티기조차 버거운 나날의 연속이다. (교통의 불편함, 거리가 멀어졌어도 시골이어도 담당기자와의 변하지 않은 갈등. ,그곳은 지나치게 춥고,입산금지인데도 넘어서는 등산객들의 무례함과 무질서 등)짖누르는 현실 속에서 침잠해가는 부부는 거의 미치기 일보까지 치닫다가 받아들이는 상황에서 부부는 성숙하게 되고 또 현실또한 많이 상황이 풀린다.

개인의 삶이지만 소소한 갈등과 또 그 안에서 느끼는 작은 즐거움의 위안은 우리의 인생을 보는 것 같다. 그리고 작가처럼 아주 가까이 있는 아름다운 것 들을 놓치고 사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아주 좋은 동반자이자 전우인 부인의 부드러운 긍정이 작가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됐을지상상이 간다.-현실의 생각속에 파묻힐때마다 그녀는 남편의 팔꿈치를 살짝 잡아당겨 주변을 보게 한다.(정말 근사한 분이시다)

거짓말같은 부인의 대상수상 을 통해서 그 안에서 작가는 또다시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받아들인다.{부인에게 끊임없이 정석만을 강요한 선생님이기도 했다} 하지만 한편으론 그렇게 힘든 상황에서도 부인의 작품준비를 도우는 주인공의 모습은 부러움을 갖게 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현실은 또다시 부부를 의지와 상관없는 환경으로 몰아넣고.행복하지만 여전히 불편한 삶을 살고 있음을 우리에게 보여주면서 만화는 마무리된다.

인생이 그런 것 아닐까? 오르막과 내리막의 롤러코스터 속에서 작은 기쁨과 슬픔의 반복속에서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라고 작가는 작품을 통해서 얘기하는 것 같다.

박 현숙흙수저 예술인의 처절한 신혼일기 “불편하고 행복하게

따뜻한 카툰 한 잔 – 노부부愛

00912-1

춤추라, 아무도 보지 않는 것처럼.
DANCE. AS IF NO ONE IS WATCHING.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LOVE. AS IF NEVER BEEN HURT.

노래하라, 아무도 듣지 않는 것처럼.
SING. AS IF NO ONE IS LESTENING.

일하라. 돈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WORK. AS IF NO MONEY IS NEEDED.

살아라,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LIVE. AS IF IT’S THE LAST DAY OF YOUR LIFE.

글|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알프레드 디 수자 (Alfred D. suja)

카툰|노부부愛 ⓒ김건

Jihyun Youm따뜻한 카툰 한 잔 – 노부부愛

도시를 움직이는 수많은 기호들, 그속에 숨은 미묘한 차이들

픽토그램 이란, 무언가 중요한 사항이나 장소를 알리기 위해, 그 어떤 사람이 보더라도 같은 의미로 통할 수 있는 그림으로 된 언어체계이다 . 특히 언어의 차이로 소통에 불편함이 있는 외국인들을 위해 사용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외국인의 출입이 특히 많은 공항은 모든곳이 픽토그램으로 도배돼있다. 또한 외국인들이 공항 다음으로 이용빈도가 높은 대중교통 시설과 버스터미널 등지에서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픽토그램의 목적이 어떠한 장소나 의미를 담은 그림문자를 통해 그곳의 문자와 언어를 모르더라도, 모든사람이 알아볼 수 있게 하는것에 있기 때문에, 몇몇 픽토그램은 국제규격으로 정해져 있다.

내국인들 또한 선천적 혹은 후천적 장애로 인해 언어 이해에 불편함이 있는 사람들을 위해 공공시설마다 심심찮게 설치되어 있음을 볼 수 있으며, 내국인 외국인 상관없이 사람은 평범한 문자보단 한눈에 들어오는 그림문자를 더 빠르게 알아보기 때문에, 긴급상황에 탈출을 유도하기 위한 표식은 문자와 함께 픽토그램으로 표시돼있다.

이런류의 픽토그램으로 가장 유명한게 비상구 픽토그램이다. 일본의 센니치 백화점 화재사건때 비상구 표시가 식별이 힘들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만들어졌으며 이 비상구 픽토그램은 국제표준으로 전세계에서 쓰인다.

이 원영도시를 움직이는 수많은 기호들, 그속에 숨은 미묘한 차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