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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막연히 시작했지만 묵직한 만화의 세계 ‘톨이야 놀자’ 이기량 작가

“변화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막연히 시작했지만 묵직한 만화의 세계 ‘톨이야 놀자’

  이기량 작가

 

만화책을 먼저 접했을 때 낯설음을 느꼈다.

어린이 만화라 하면은 학습적인 내용이 주요된 내용이거나 아니면 만화보다는 순수미술 적인 부분이 강한 출판만화를 그리는 분들이 많은 요즘 트렌드에 이기량 작가님의 만화는 나 어릴적 잡지 ‘보물섬’에서 봤던 그런 순수만화 였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그런 익숙한 느낌이 오히려 낯설었다.

굉장히 밝고 귀여운 만화였다.

하지만 뭔가 다르다는 기운은 프로필 컷을 통해서 조금 느꼈다.

과연 작가님을 만나보니 프로필 사진에 가까웠다.

대부분의 만화가는 자신의 그림과 닮았는데 이기량 작가님은 요샛말로 작업하시는 그림과 1도 안 닮은 느낌이었다.밝은 토리와는 다르게 차분하고 진중한 느낌이었다.

 

-만화는 언제부터 하게 되신 겁니까?

“어릴 때부터 만화가 좋았습니다. 그렇게 만화를 그렸습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만화를 해야겠다 생각한 건 고등학생 때부터였습니다. 상명대 만화과를 진학했고. 나중에 졸업하고 깨달았는데 제가 만화를 좋아하긴 했지만 막연히 좋아 했구나 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본격적으로 만화를 그린 건 대학졸업하고 부터였습니다. 블로그로 주로 만화를 그리다가 2003-4년 도에 ‘악진’ 이란 웹진에 만화를 시작했고. 거기에서 인연이 되어 ‘새만화책’ 에 그리고 거기에 주로 활동했던 작가분들이 어린이 잡지 ‘고래가그랬어’ 에 많이 작업했고 저도 같이 하게 되었습니다.”

“지원사업을 받고 ‘공포’라든가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뜻이 맞는 작가와 동인지를 만들었습니다. 아이패드 전용이었지만 앱도 만들어서 6호까지 활동했었습니다.“

-앞으로 웹툰작업은 하실 건가요?

“웹툰작업은 계속 고민 중입니다. 출판지향적인 작가들은 대중친화적이진 않아서 고민인 부분도 있습니다. 일반독자들이 접근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대중친화적 이란 건 무엇일까요?

“작가보다는 대중의 취향이 많이 적용된 것 아닐까요?”

-좋아하는 작가는 누구입니까?

“그때그때 다릅니다. 어릴때는 ‘보물섬’에 연재하는 작가들을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중학교때 ‘영점프‘가 나오면서 일본만화의 영향을 받게 된 것 같아요. ’조르프의 기묘한 병‘ 그렇게 일본만화를 좋아했습니다. 새만화책에서 작업을 하면서 유럽만화 쪽을 좋아하게 됐습니다.”

-어린이 만화뿐만 아니라 다른 성인들을 위한 만화도 준비하고 있습니까?

“어린이 만화뿐만 아니라 성인 작품도 준비는 하고 있습니다만 어린이 만화아닌 다른 것들은 뭔가 진행이 되려다가 잘 안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오래전 미국인친구와 만들었던 독립출판 책도 보여주셨다.

색다르고 훌륭한 책 내용에 흥분한 기자가 다시 더 출판하거나 새로 도전할 의향이 없냐는 질문을 쏟아냈다. 그러자 작가님은 그냥 책이 나온 것으로 만족하신다고 하셨다.

(딱 8권있는 중에 만저봐 기자들에게 무려 2권을 주셨다. )

 

이기량 작가님은 출판만화의 위축을 아쉬워했다.

워낙 말씀이 적고 낯을 가리시는 작가님이신 것 같았다. 도깨비 톨이처럼 외톨이 아니냐는 짖궂은 질문에 20대때는 블러그 활동을 활발히 해서 하루 방문만 만 명이 넘게 올때도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못 견디게 되었다고 하셨다. 이 기량 작가님이 좋아하는 다른 작가들의 성향도 그렇지만 사람들과 만나는 것 보다는 작품에 집중하는 게 더 편하다고 하셨다.

(사인을 정성스럽게 해주셨다)

작가님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많이 고개를 끄덕이고 호응해 주셨다.

(여기에서 누가 취재를 당하는 건지.)

 

스토리를 쓰는 게 많이 어렵다고 하셨다.

그러나 만화는 작가의 고민과 다르게 더없이 맑고 술술 읽혔으며 흥겨웠다.

그만큼 작가님의 고뇌와 노력이 들어간 덕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이기량 작가님은 조용하지만 자신이 하는 만화에 대해서는 묵직함을 가졌다.

조용할 뿐이지 자신의 작품과 작업에 대한 재미에 푹 빠지신 것 같았다. 실제로 ‘톨이야 놀자’ 같은 경우 출판사에 보여주기 위해 책이 나오기도 전에 직접 디자인해서 보여주는 샘플책을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막연히~, 그냥 흘러가는 대로~’ 라는 단어를 많이 쓰셨지만 작가님은 누구보다 진지하고 성실하셨다.

 

 

혹시 다른 독립출판작가님들처럼 조금은 자신의 삶을 만화로 그리면 어떠냐는 질문에 만화로 만들어내기엔 평범하다고 손사래를 치는 겸손함을 가지신 작가님이었다.

‘톨이야 놀자’ 는  안정적으로 연재중이시고 진흥원 지원작인 ‘신통방통 도감’에 애정이 있으신 듯 했다. 무수히 많은 한국요괴라던가 민담.설화 를 수집중이시라 했다. 만저봐 기자단 사이에서는 ‘톨이야 놀자’ 보다는 ‘신통방통 도감’이 더 재밌었다고. 그런 반응에 작가님은 감사해 하시고 뿌듯 해 하셨다.

동인지 ‘우주사우나’ 의 도가도로 활동했던 작품같은 성인취향의 그림은 그리실 의향은 없냐고도 물어봤다. 작가님은 ‘변화를 준비 중’ 이시라고 하셨다.  독자들은 앞으로 작가님의 도전을 더 많이 보게 될 지도 모른다.

타협하지 않았음을 ‘철없었다’ 로 웃어넘기는 작가님이 인상 깊었다.

 

그냥(?) 어린이작품 작가 라고 하기엔 내공이 깊고 저력이 많은, 앞으로의 더 많은 변화를 해 나갈 이기량 작가님의 작품세계를 응원합니다!

 

 

 

 

박 현숙“변화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막연히 시작했지만 묵직한 만화의 세계 ‘톨이야 놀자’ 이기량 작가

카투니스트 사이로 전시판매전< 꿈속으로 가는 고향길>

“내 사전엔 은퇴란 없다” ”

52년째 카툰 인생을 걸어온 카툰계의 대부 사이로 작가님의 명언입니다.

올해로 78세가 되는 작가님은 아무리 바빠도 하루에 한 작품씩 “1일 1 작품”의 원칙을 지키며 창작활동에 전념하고 있답니다.
아무리 바빠도 작품 창작보다는 “1일 1병”의 원칙을 지키며 음주 활동에 전념하고 있는 필자로써는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저를 보고 작가로서의 책무를 다하지 않았으니 “직무유기야!”
벌써 은퇴하려고 그래? 나는 지금부터 52년은 더 그릴 건데. 허허~~~~
매일 창작의 고통?을 경험하면서도 지금부터가 시작이라는 작가님의 말씀을 들으니 카툰을 그리는 게 아니라 카툰 하고 결혼했다고 하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현재까지 몇 천 개의 카툰 작품을 보유하고 있는 작가님의 작은 바람은 카툰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접할 수 있게 전시를 여는 것이라고 하셨는데요.
자식과도 같은 작품이 태어나서 세상 어느 누군가 하고는 한 번쯤은 만나봐야 되지 않겠냐며 전시에 대한 강한 열망을 보이시며 이번에도 또 큰일을 내셨습니다.

“자연의 아름다움, 엉뚱하고 서정적인 여백의 미”를 살린 카투니스트 사이로의 <꿈속으로 가는 고향길> 전시가 만화도시 부천에서 열립니다.
향기로운 커피 한 잔에 몸을 채우고 따뜻한 카툰 한 점에 마음을 채우는 카툰 펠로우 샵 “만화로 채움” 갤러리 카페에서 작가님의 판화작품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작품 전시뿐만 아니라 <작가와의 만남 특별이벤트>가 있어 “작가 사이로”의 작품관과 “인간사이로” 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보실 수 있습니다.

거장의 작품을 감상하고 평생 소장하고 싶다면 주저 말고 GO GO!!

artboy goguma카투니스트 사이로 전시판매전< 꿈속으로 가는 고향길>

고구마의 술애바퀴-두 번째 잔 “애주가&애주가”

고구마의 술애바퀴두 번째 잔 애주가&애주가

*애주가&애주가 : 술을 사랑하는 사람&술로 애먹이는 사람

 

평생을 국가와 가정의 안위를 핑계로 애주가로 사신지 76년째 되시는 아버지.

아버지의 생간 DNA를 하사 받은 지 41년째 되는 오늘….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아버지는 지금의 내 나이 때 어떤 과연 모습으로 살고 계셨을까?

나는 어떤 모습으로 아버지를 기억하고 있을까 말이다.

이 세상에 날 태어나게 해주시고 건강히 길러주신 아버지의 헌신적인 모습도 있겠지만 이런 아름다운 기억은 마음으로 담아두기로 하고, 나에게는 파격적이었던 기억! 아버지에게는 감추고 싶은 기억! 을 꺼내볼까 한다.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 1987~1988년쯤. 올림픽 개최로 나라가 떠들썩할 무렵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어릴 적 아버지는 충청도 시골 마을의 사람 치고는 외모가 제법 뛰어났다. 그 당시 키 182의 건장한 체격에 얼굴은 훈남 스타일에 소싯적에 동네 처자 여러 명 울렸을법한 외모였다.

 

<고구마 아버지>

 

동네 친구 분들은 아버지를 “돼지”라고 부르셨다.

“우리 록이는 뭐 하나 빠지는 게 없어요”

떡대 “돼지”

얼굴 “돼지”

인기 “돼지”

30년이 지난 지금 들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아재 개그로 기억한다.

외모뿐만 아니라 자기 일에 있어서는 성실함도 “돼지” 자식들에게는 한없이 자상함도 “돼지” 친구들에게는 우리가 남이가! 의리도 “돼지”

뭐 하나 안 되는 것 없이 다되는 아버지! 동네를 넘어 읍내까지 “돼지”로 통했던 나름 시골에서 꽤 인기 있었던 아버지였다.

그런데 인류는 공평하다고 했던가….

뭐 하나 빠질 것 같지 않던 아버지에게도 한 가지 결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술~ 술~~ 술~~~ “술!”이다.

주체할 수 없는 힘을 해만 지면 풀어야 했던 아버지는 “하루라도 술친구를 안 만나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 희귀병? 과 투병 중이셨다.

그 당시 정보원들의 기록에 의하면 낮에는 “우리 동네 돼지”로 통하지만

평일 밤에는 “밤에 피는 장미”, 주말 밤에는 “밤에 피고 아침에는 더 피는 장미”였다고 한다.

아버지가 밤에 피실 때 주특기가 있었는데 피기 직전 공중전화로 집에 전화를 걸어 “한잔만 먹고 바로 출발할게! 맛있는 거 사갈께 “였다.

한잔만 드시고 맛있는 것을 사 오실 아버지를 위해 해장국을 준비하는 엄마와 먹을 것에 매우 들뜬 우리 형제.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한 시간, 두 시간이 지나고 자정이 훌쩍 지나도록 오시지 않는 아버지였다!

 

“한잔만 먹고 바로 출발할게! 맛있는 거 사갈께 “는 ”짜장면집에서 지금 출발했어요 “라는 멘트와 전혀 다를 게 없다는 것을 몇 번의 값진 경험을 통해서 깨달았다.

평일은 물론 주말에는 더욱더 어머니를 기다림에 지쳐 긴 밤 지새우게 하고, 해가 뜨기 직전 영롱한 아침이슬 맞고 귀가하는 아버지!

이런 아버지의 술사랑으로 인해 그 피해는 오로지 우리에게로 왔다.

초딩 형제의 천국인 일요일 아침! 학업의 지친 피로를 풀기 위해 늘어지게 자려했건만……

성탄 특선영화 “나 홀로 집에”가 매년 되풀이되듯이 우리 집은 일요일 아침만 되면 어김없이 아버지를 향한 “어머니의 바가지 퍼포먼스”가 되풀이되었다.

그 소리에 형제는 군대 기상나팔 소리에 깨듯이 눈이 자동으로 떠졌다.

맨 처음에는 고통스러웠지만 반복될수록 익숙해져만 갔다..

그래도 제일 고통스러운 것은 죄를 지은? 아버지가 아닐까 싶다.

평소에는 그렇게 당당할 수가 없는데 아침이슬을 맞고 들어오신 날은 그렇게 초라해 보일 수가 없었다.

눈치 빠른 우리는 아버지의 “얘들아~니들이 좀 도와줘”라는 구원의 눈빛을 보내면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질 수 있으니 애써 눈을 피하고 몸을 잽싸게 대문 밖으로 숨겼다.

<울 엄마의 바가지>고구마

냉정함을 잃지 않고 현명하게 대처한 우리의 행동이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들리진 않았지만 아버지의 서운함, 원망이 눈앞에 아른거리는 거 빼고는 말이다.

“아버지 다 인과응보예요. 시간이 약이니 조금만 참고 견디세요! 쨍하고 해 뜰 날 올 거예요.” 하며 마음으로 응원만 보냈다.

어머니의 바가지 퍼포먼스가 시작된 지 두어 시간이 지나고 해가 중천에 뜰 무렵

아버지는 어머니의 “모진 바가지 고문”을 끝내고 어렵사리 풀려나시어 대청마루에 걸터앉아 참회의 담배 한 모금을 피우신다. 다크서클이 발톱까지 내려온 걸 봐서 고문의 강도가 예측이 된다.

속 보이지만 그대쯤… 우리 형제는 해맑은 표정으로 아버지를 향해 달려갔다.

무슨 말이 필요 있을까~ 대충 위로하는 척 만 하고 형제가 향한 곳은~~

부엌이다.

대장금도 울고 갈 형제의 속풀이 해장라면 하나면 아버지의 서운함도 확 풀리는 것을 알기에…

시무룩했던 아버지의 입가엔 미소 가득. 우리 형제도 공로를 높이 인정받아 공기 사발에 라면을 하사 받는다. 밥보다 라면이 더 맛있었던 그때 “원님 덕에 나팔 분다는 게 이거구나? 생각했다.”

“三부자” 는 게눈 감추듯 라면 국물 한 방울까지 남기지 않고 맛나게 먹었다.

원더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형제의 해장라면에 감탄하시는 아버지.

그제야 어머니의 분노도 “에그 내가 자식들 때문에 참는다.”며 푸념으로 바뀐다.

형제의 눈치코치 작전으로 가정의 평화를 되찾은 후 부엌의 마무리 작업은 항상 서열 막내인 내가 자처해서 맡았다.

그런데 그날 부엌에서 평소와는 다르게 무언가를 보았고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울 아버지의 성냥갑>고구마

그 당시엔 단지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야사시한 성냥갑이라 잠시 흐뭇해했을 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아궁이에 버렸다.

그 후로도 가끔 아버지에 대한 어머니의 바가지 강도가 유난히 센 날이면 야사시한 성냥갑이 집안 어디에선가 꼭 발견되었는데 왜 꼭 내 눈에만 뜨였는지는 아직까지도 미스터리다.

시간이 흐른 뒤 어른이 되고 난 뒤 비로소 성냥갑의 숨겨진 진실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술에 얽힌 사랑싸움”이 3년 정도 지속되다 내가 중학교 입학할 무렵에 종지부를 찍었다.

어머니한테 여쭤봤다.

“엄니 요즘 아버지가 정신 차리고 꽤 일찍 들어오시네요” 하니

어머니 왈

“요즘 낮술 혀”

라는 말씀을 하시고는 대청마루에 자리를 피시더니 다듬이질을 야무지게 하신다. 어머니의 허탈한 웃음과 다듬이질 소리가 “애주가 남편을 둔 여인의 가슴앓이”처럼 들린다.

 

“훨훨 동네 구석구석 울려 퍼져라~~~~~”

 

<애주가 남편을 둔 여인의 비녀>고구마

-2부끝-

 

artboy goguma고구마의 술애바퀴-두 번째 잔 “애주가&애주가”

고구마의 술애바퀴-첫 번째 잔 “주도의 시작”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

안중근 의사의 명언처럼

이러면 좋으련만…..

난…

“하루라도 술을 먹지 않으면 술집 사장님들의 매상이 걱정돼서 일이 손에 잡이지 않는다.”

알코올 중독자라고 오해받을까 봐 변명하는 글은 절대 아니다.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술 좋아하는 사람 치고 호인 아닌 이 별로 없고 그 덕분에 주변에는 형님, 동생, 친구들로 넘쳐난다. 술집에 처음 들어갈 때는 사장님과 손님으로 만나지만 같은 곳을 문지방이 닳도록 들락거리다 보면 어느새 친구 같은 존재가 된다. 서로 고향이 어디이고, 취미는 무엇이며, 결혼은 했는지, 자식들은 몇 명인지, 집에 땅은 좀 있는지, 건강은 어떤지, 요즘 매상은 좀 어떤지 다 알게 된다.

물론 모든 애주가들이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나는 적어도 그렇다는 이야기다.

앞서 언급했던 “하루라도 술을 먹지 않으면 술집 사장님들의 매상이 걱정돼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의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정”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같은 하늘 아래 살면서 술을 통해 관계를 맺고 정을 쌓았으니 어찌 걱정하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내가 술과 사람, 정을 중시하는 데에는 애주가인 아버지의 생간 DNA를 물려받은 이유도 있겠지만 어릴 적 환경적인 영향이 컷 던 것 같다.

어릴 적부터 태어나고 자랐으며 현재도 부모님이 터를 잡고 계시는 나의 고향은 “돌~굴~러~가~유~”, “에유~그렇게 급하면 어제 오지 그랬슈” 로 유명한 충청도 영동의 한 시골마을이다.

마을 규모는 약 60가구 정도로 시골마을 치고는 꽤 많은 주민들이 살았다.

그 당시 여느 시골 마을들이 그렇듯이 이웃주민들끼리 누구 아무개네 숟가락이 몇 개인지 훤히 다 알 정도로 친하였다.

그러다 보니 기쁜 일로 잔치가 있을 때나, 상을 당했을 때나 너 나 할 것 없이 격려해주고 도와주는 정이 넘치는 마을이었다.

아무튼 이런 정이 넘치는 마을에서 제일 좋았던 것은 따로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일이다.

시골이다 보니 농번기 때면 농사 준비하고 수확하는데 정말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다. 그럴 때 면각 가정마다 날짜를 정해서 오늘은 “이 아무개네”, “내일은 저 아무개네”, “낼모레는 그 아무개네”로 쭈욱~ 돌아가며 서로 품앗이를 했다.

그렇게 여러 집을 돌다 보면 자연스레 우리 집 차례도 돌아온다.

시골에서는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농사일하는 것에 예외는 없었다. 그리하여 우리 형제도 새마을 모자 비스무리한 것에 목장갑에 장화를 신고 끌려나가야만 했다.

그 당시에 우리 집은 자두 과수원을 하고 있었고 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다 보니 집에서 꽤 걸어야만 했다. 걷고 또 걷고 농사일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우리 형제는 산행하느라 진을 다 빼야만 했다.

우리와는 달리 아버지, 어머니, 동네 아저씨, 아줌마들은 연륜 때문인지 매우 여유로워 보였다.

마치 말년병장과 자대 배치받고 처음 훈련 나간 이등병의 차이쯤이랄까…..

과수원에 도착해 일을 시작한 지 두어 시간이 지났을까! 분명 아침에 머슴밥 두 그릇을 비우고 왔는데 목도 바짝바짝 마르고 시장기가 몰려왔다. 그도 그럴 것이 자두의 수확시기가 여름인 탓에 뙤약볕을 맞으며 산행과 노동을 하였고, 먹어도 먹어도 뒤돌면 배고플 나이가 아니었던가!

아~난 여기 왜 있나 자괴감이 들 때쯤…

그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목소리!

애주가 울 아버지의 새참가는 길<고구마>

 

“새참 왔어유~~우”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려보니 잠시 전만 해도 옆에서 일하셨던 어머니가 쟁반에 먹거리를

가득이고 오시는 게 아닌가. 엄마는 신출귀몰 도깨비인가 싶다.

새참이 오자 일에 열중하던 아버지, 동네 아저씨, 아줌마들은 그제야 허리를 펴고 “오늘은 뭐 맛난 거 한겨~”, “물 한 사발만 가져오면 되는데” , “쓸데없는 짓을 하고 그랴~”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약속이나 한 듯 내뱉으신다. 역시 충청도다(ㅎㅎ)

새참을 보니 “수육에 김치”, “노릇노릇 감자전” , “새콤달콤 비빔국수” 등 손 큰 어머니답게 푸짐하게 장만해오셨다.

풀밭에 뺑 둘러앉아 맛난 음식 먹을 준비를 할 때쯤 동네 아저씨들이 한 결 같이 말씀하신다. “거~없어” 하니 아버지가 손뼉을 치며 “거~있지”하며 부리나케 어디론가 쏜살같이 달려가신다.

울 아버지의 막걸리 전용주전자<고구마>

 

잠시 후에 나타난 아버지의 손에는 커다란 말통이 들려져 있었고 동네 아저씨들은 얼굴에 화색이 돌면서 “거~왔네”하며 반가워하였다.

알고 보니 말통의 정체는 막걸리였다. “거~없어”의 뜻을 풀이하니 “막걸리~없어?”였다.

아침에 경운기에 싣고 온 막걸리를 시원하게 마실 수 있도록 한 여름에도 차가운 계곡물에 미리 담가 둔 것이다. 장인정신까지 느껴지기도 하고, 역시 애주가 아버지답다.

냉면사발에 막걸리를 벌컥벌컥 마시는 아저씨들의 목 넘김 소리와 “캬~” 감탄사가 어찌나 시원해 보이던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때였다!

동네 아저씨가 쓱 다가오더니 “함~혀(한번 먹어볼래)” 하시는 게 아닌가!

형은 망설였으나 나는 어른이 권하는 술은 못 이기는 척하며 먹어도 된다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들어 막걸리를 두 손 모아 경건하게 원샷하였다.

아~황홀한 맛이었다! 집에서 몰래 찔끔찔끔 먹던 막걸리 하고는 차원이 달랐다.

타들어가던 갈증은 사라지고 허기진 배는 벌떡 일어나니 천하를 다 얻은 기분이었다.

이 맛에 아저씨들이 “캬~”하는구나 그렇구나~ 깨달았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너희 아버지 아들 맞네”, “내 잔도 받아” 하시며 몰아주셨다.

두 번째 들어오는 술잔 공격을 받아내고, 에라 모르겠다! 세 번째 술잔, 네 번째 술잔을 넙죽넙죽 받아내다 결국 필름이 끊겼다.

그리고 한참이 지났을까..

누가 어깨를 흔들며 깨우는 것 같았다.

눈앞에 아버지가 희미하게 보였다. 사방을 둘러보니 동네 아줌마, 아저씨들은 없고 웬 익숙한 풍경의 방이었다. 알고 보니 과수원에서 술 먹고 꽐라 되어 잠든 나를 아버지가 둘러업고 와 집에 눕혔다 한다.

이 사건 이후로 나는 동네 창피해서 한동안 일부러 밖을 않나 갔는데 이런 나의 생각은 기우에 불과했다. 오히려 붙임성 좋고 남자답다는 소문이 돌아 한순간에 동네의 엄친아가 되었다.

참 지금 봐도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지만 막걸리가 내 인생의 일부분으로 자리 잡는 계기가 되었는데 그 당시 과수원에서 일하던 부모님과 동네 어르신들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본다.

단비<고구마>

 

“열매를 수확하기 위해 힘든 노동을 하는 농부”들에게 가뭄에 단비 내리 듯 갈증을 해소해주는 막걸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내게 있어 좋은 사람들과의 정이 넘치는 술자리도 떼려야 뗄 수 없는 숙명이 아니겠는가 싶다. 오늘도 숙명적 만남을 위해 휴대폰 전화번호를 뒤져 음주 화이트리스트들에게 번개를 날린다.

 

고구마의 술애바퀴 다음 2편도 많이 기대해주세요!

artboy goguma고구마의 술애바퀴-첫 번째 잔 “주도의 시작”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닌 웃는 얼굴이 더 행복한 작가 – 아주

아주 작가는,
세상을 향한 소통의 문을 여는 여성주의 저널 ‘ 일다 ’에서 그래픽 노블 형식의 작품을 격주로 연재하고 있다. 그리고 생태, 여성, 인권에 이르는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매우 많다.


변산공동체에서의 귀농 생활, 밀양 송전탑 , 인천 인권 영화제, 최근엔 광화문 촛불집회 현장에 이르기까지 그녀는 항상 거기에 있었고 지금도 거기에 있다.

“내가 그림을 그리지 않아도 시시각각. 이곳은 내게 아름다운 그림들을 보여준다.” 2014년 어느 날 변산공동체에서의 서정을 그렇게 SNS에 남기기도 했으나, 그녀는 미치도록 좋아했었던 그림을 다시 그리고 싶어서 도시로 돌아왔다. 현재는 서울의 모 한의원에서 간호조무사로 근무하면서 생계와 예술 모두 열정적으로 잘 꾸려나가고 있다.

지면을 빌어 그녀에 대해서 더욱 자세히 알아보자.
일곱 살 무렵부터 그녀는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부침과 시련이 많았던 삶에서 흔들림 없이 지켜온 그림 그리는 “아주“. 지금 그녀를 지탱하고 있는 든든한 자존감이자 버팀목이라 한다.


서양 회화를 전공했지만 최근의 그녀는 텍스트 다루는 법을 더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글과 그림의 경계를 넘나들다 보니 “만화가”로 불리기도 하지만, 그저 “그림과 글로 표현할 줄 아는 사람” 정도로 평가받고 싶어 한다.

20대 중반까지는 일과 작업의 경계가 애매한 생계형 아티스트로 살았으나, 이젠 생계와 예술작업에 대한 나름의 심리적 가이드라인을 갖고 산다 한다.

현실적인 돈 문제뿐만 아니라, 직장을 다니면서 작업을 하게 되면 그 직업이 무엇이든 작업에 대한 절박함이나 스트레스가 덜해져 안정적으로 하고 싶은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고 결국 작업에 많은 영향을 주기 때문이라 한다.

또한 쳇바퀴 돌리듯이 생계를 위한 직업 생활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 가슴 답답한 통증이 찾아들어, 시간을 할애해서라도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행위를 통해 삶의 의미를 찾는다고도 그녀는 말했다.
그렇다면 그녀에게 있어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다는 것은 정말 행복하기만 한 일인 걸까? 넌지시 물어본 질문에 그녀는 웃으며 말로 다 못할 성취감과 쾌락을 동반하긴 하지만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생계와 작업을 심리적으로나마 분리시키면서 안정적으로 작업에 매진할 수 있게 되었고, 지금은 이에 더 나아가 작업하는 시간을 더 늘리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는데, 결과적으로는 오로지 글과 그림이 자신의 생계를 책임지게 하는 것이 작은 소망이라 한다.

만화 작업을 처음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남들보다 세상에서 일찍 사라지고 묻힐 것만 같았다던 그녀였지만 이제는 그림과 글이 오히려 그녀를 위로하고 이끌어가는 듯하여 만족스럽다고 했다.

그럼 그녀는 어떻게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게 된 것일까?
처음에는 한풀이나 살풀이로 시작된 그림이었지만 점점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런 사람들과의 인연들이 맺은 공감과 위로, 그리고 무엇보다 진심된 소통을 통해 많은 것들을 배우면서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그림으로부터 시작한 작업이기에 아직도 글보다는 그림이 편하다는 그녀는, 비록 글은 시간이 많이 걸리고 어렵지만 보다 아름다운 글을 써 내려가기 위해 항상 쓰고, 읽고, 설득하는 방법의 글쓰기를 공부해가고 있다고 했다. 작업도 하나의 공부이다.라고 부연 설명을 하며 그녀는 오히려 공부를 많이 할 수 있기 때문에 작업을 하면서 즐겁다고 했다. 그녀의 얼굴과 몸동작에서 몸에 밴 부지런함이 수시로 드러난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녀의 작품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주로 등장하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가족 이야기를 주된 소재로 삼는 그녀이기에, 처음에는 어렸을 때 정말 누구보다 힘들고 아프게 살아온 이야기를 소재거리로 하는 것에 거부감도 많이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다사다난했던 이야기뿐만 아니라 사소했던 사건들도 모든 것들이 소재가 될 수 있고 가족 한 명 한 명이 너무나 재미난 캐릭터라서 마르지 않는 오아시스처럼 이야기가 가득하다고 했다.

다만 이러한 이야기를 제한 없이 마구 풀어내기에는 자신의 오빠나 부모님들이 눈에 밟혀 지금은 본인의 이야기를 위주로 담는 편이라며 미소로 말을 아꼈다. 그렇다면 자신의 이야기가 아닌 다른 이야기들은 어떤지에 대한 물음에 그녀는 확신 있는 목소리로 이야기는 음식을 먹고 모든 걸 소화한 상태, 즉 완전히 받아들여져야 가능한 것이라고 했다.
따라서 자신의 이야기는 충분히 소화하여 그려낼 수 있지만, 정확히 알지도 이해하기도 어려운 남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감히 어려운 일일 뿐더러 소화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생각을 해보니 충분히 이해가 가는 답변이다.

그렇다면 그녀가 그려가고 있는 가족이란 무엇인지, 화제를 전환해서 보다 자세히 이야기를 해보기로 했다. “어렸을 때는 되게 이상적으로 생각했고 그렇게 교육을 통해 세뇌가 되어서인지 실망감도 컸던 것 같지만 가족이라는 존재는 아직도 숙제다.” 라며 그녀는 속깊은 답변으로 이야기의 말문을 열었다.


현재 자신에게 있어 가족은 같이 살고 있는 고양이 모리뿐이라며 위트있는 답변으로 순간 웃음이 가득한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했다.
그녀가 생각하는 그녀 자신은 어떨까. 서로 다른 관점에서 그녀를 바라보기로 하였다.

Q:”가족이 보는 아주”
A: 처음에는 고삐 풀린 강아지였다가 요즘에서야 자리를 잡아가는 막내딸, 여동생, 이모 정도가 되지 않을까요? 아버지 큰언니는 연락을 안 드리니까… (이하 생략).

Q:”자기 자신이 보는 아주
A: 마치 활화산에서 터져 나온 뜨겁지만 거친 용암과 같을 것 같아요. 그 역동적인 용암 안에는 아주 괜찮은 지질 시대의 지층이 될 가능성이 있구요. 물론 이는 제가 하기 나름이겠지요.

Q: “친구가 보는 아주”
A: 친구들이랑 종종 이에 관해서 이야기를 해보는데, 아마 가끔은 불안정하고 기복이 있기도 하지만, 점점 안정시키면서 살아보려고 애쓰는 친구라고 말하죠.

아주 작가가 그려내는 그림과 글은, 즉 텍스트와 그림 그리고 이미지들이 경계 없이 하나로 보인다.

글이기도 하고 그림이기도 한 동시에 글도 그림도 아닌 제 3의 발화체인 이코노텍스트의 문법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그녀가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작품을 통해 글과 그림의 만남 뿐만 아니라 모든 영역이 함께 만날 수 있는 것을 꿈꾸는 듯하다.

그림에서 묘사되는 손과 발의 놀림은 마치 실제인 것 처럼 아주 자연스럽다. 어릴 때부터 몸에 베어서 나온 듯한 살아있는 움직임을 통해 그녀는 감정을 전달한다고 했다.
글이나 말, 표정으로도 충분히 감정을 전달할 수 있지만 그녀는 이를 살짝 비틀어 손과 발의 미묘한 움직임으로만 이를 전달하려고 한다. 이를 완벽히 그려내기 위해서인지는 몰라도 그녀는 손기술이 참 좋았다. 이를 통해 작품을 그려내는데, 독특하게도 가족을 배경으로 하는데 작품마다 필명과 등장 인물들의 이름이 모두 다른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매 작품마다 그림에 맞는 필명을 사용하고 싶어 의도적으로 작가명을 바꾼다는 그녀의 말이 왠지 신기하고 독특한 시도처럼 느껴졌다. 요즘에는 사이바라 리에코의 우리집, 아다치 미츠루의 h2, 마츠모토 오카자키의 서플리를 좋아한다는 그녀에게서 얼굴에 미소를 가득 띄고 책을 읽고 있는 맑은 아이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본격적으로 아주 작가의 작품을 알아보자.
홍연이의 세상이라는 작품을 통해 그녀는 자기 자신의 성장과정을 홍연이라는 인물을 통해 노래하고 있다. 사우디 파견 노동자로 떠나신 아빠, 어디에 가서 아버지 없이 컸다는 말을 듣더라도 부끄럽지 않을 사람으로 자식들을 키우겠다며 온 몸을 다해 가게를 하며 힘들게 세 아이를 키우는 엄마, 그런 엄마를 보고 세상엔 남자가 우성 인자로 빛춰지지만 아주 작가에게 있어서 남자는 열성인자일뿐이다..


그리고 질풍 노도의 길을 걷는 민정 언니, 개구쟁이 영재 오빠, 그 공간 속에서 홍연에게 유일한 친구는 비어있는 스케치북이였다. 항상 불안하고 부족한 집에서 아무 말 없이 오랜 시간을 함께 지낼 수 있는 스케치북이란 누구보다 가까운 친구이고, 또 하나의 가족이었다. 스케치북을 친구삼아 그림을 그리는 그 자체가 아름다운 세계, 그녀의 세상이었다.

삼수니라는 작품에서는 작가는 힘들고 지친 삶을 죽을 힘을 다해 이겨내는 방법을, 그리고 살아가야만 하는 자신과의 처절한 내적 갈등을 보여준다. ‘꽃들에게 희망을’이란 책에서 나오는 줄무늬 애벌레의 삶처럼 더 나은 삶을 위해 여러 환경들을 접하면서 위에 있는 봉우리만 보고 무작정 올라갔지만, 누군가를 밟고 쓰러뜨리는 경쟁을 거쳐 올라간 꼭대기 기둥은 그냥 하나의 봉우리에 지나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처절한 현실을 두 눈으로 목격하며 슬럼프에 빠지기도 했지만 ‘괴물로 남지 말고 사람으로 남자!’라는 마음을 먹고 다시 세상에 나와서 만난 것들은 너무나도 다르고 다양한 사람들이었다. 사회 생활을 하면서도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사무치게 일하고, 미치도록 집중해보면서 살아 간다는 것.
그녀는 그렇게 살았다.
그리고 작가로서 살아가면서, 떠날 때에는 미련없이 떠나는 삶의 단편들이 이 작품 안에 아름답게 모여
있었다. 이러한 그녀의 모습을 작품을 통해 접해보면서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한편으로는 그런 치열한 삶을 살아온 그녀가 부러웠다.

2년 후에 다음 작품을 계획하고 있는 그녀는 작업물도 많이 쌓아놓고 이를 통해 적당히 돈을 모아 6개월 정도 자기 자신에게 휴식을 주고 싶다고 하였다. 여유롭게 살면서 전시도 하고, 책도 내고 싶다는 그녀의 굳은 다짐을 들으면서 다음 작품이 더욱 기대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작가들을 취재하면서 항상 궁금했던 점들에 대해 그녀의 생각을 들을 수 있었다.
아주 작가에게 있어 만화란 표현 방식의 하나로서 음식으로 표현하면 친구 같은 막걸리라며 위트있는 멘트를 전했다.
죽을 듯이 하는게 아니라면 하지 말라고 한 누군가의 말을 빌어 본인은 즐겁게 살 것처럼 작품을 하겠다고 했다. 자신이 작업에 흥미를 느끼고 만족하면서 그 결과물이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지고 읽혀지게 되고, 그리고 이를 통해 안정적인 생계 수단으로 자리잡을 수 있는 조화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이 소망이라고 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모든 것들을 글과 그림이라는 과정을 통해 하고 싶을 때까지 미친듯이 해보는 것이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라며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다.
그녀를 알게 된지 며칠 되지 않았지만 누구보다 그녀를 오랫동안 옆에서 지켜봐 온 것 처럼 너무나 많은 것들을 알고 배울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1월 16일 “만화저널 세상을봐” 편집국에서 아주 작가를 다시 만났다.
웹툰으로만 소개되었었던 작품의 원화를 보여주기 위해 꽤 무거워보이는 4권의 바인딩북을 다 챙겨오면서도 힘들어하는 표정 하나 없이 맑고 밝은 얼굴로 들어서는 그녀를 반가운 마음에 냉큼 그녀를 껴안았다.
잠깐의 순간이었지만 홍연이, 삼수니, 그리고 지금의 그녀가 함께 안겨왔다.

두시간전부터 미리와서 기다리고 있었던 많은 만화 애호가들로 북적이며 시끌시끌한 가운데 웃으면서 이런저런 많은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었다.
다들 예쁘다라는 말에 수줍음과 함께, 태어나서 예쁘다라는 말을 이렇게 많이 들어 본 적은 처음이라며 부끄러워하면서도 좋아했다.시간이 흐르고 막걸리 몇 잔에 홍조를 띄며 노래까지 불렀다.


시니어 만화창작 동아리인 “누나쓰” 할머니들은 그녀의 캐리커처를 즉석에서 직접 그려주었다. 캐리커쳐를 받아 잘 보관하겠다며 파일에 넣는 아주의 모습에서 잔잔한 행복을 느낀다.
자신의 작품을 알리러 온 것이 아니라 이 기회를 통해 자기 자신을 반성하며 더 열심히 살겠다는 그녀는 어르신들에게 감사하다며 아름다운 재회를 마무리했다. 즐거운 마음으로 거짓 없이 솔직하고 맨몸으로 세상에 뛰어든 듯이 진정성 있는, 아주 작가는 참으로 겸손했다.

야생화같은 삶을 살면서 비록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날들이 있었겠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맑고 밝은 마음을 갖고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 그녀를 만나 행복이란 무엇이고, 무엇이 우리를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드는가? 하는 의문이 잠시 들었다.

행복의 조건에는 정답이 없다. 스스로가 생각하기 나름이며 본인이 정해가는 것이다.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는 얼굴이 더 행복하다는 것’을 그녀를 통해 알 수 있었다. 그녀는 그랬다.

기사에 인용된 모든 작품컷은 아주 작가의 연재 작품중에서 발췌하였습니다.

다음 웹툰: 홍연이 http://webtoon.daum.net/league/view/11746
다음 웹툰: 삼수니 http://webtoon.daum.net/league/view/13669#pageNo=2&sort=recent
여성주의 저널 일다: 아주의 지멋대로 http://www.ildaro.com/sub.html?page=1&section=sc82&section2=%5B/vc_column_text%5D%5B/vc_column%5D%5B/vc_row%5D

정 정숙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닌 웃는 얼굴이 더 행복한 작가 – 아주

예술의 본질은 다름에서 닮음을 찾아내는 과정이다.

본질(本質)은 그것이 그것으로서 있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을 말한다.

금을 예로 들어보면 이런 것이다. 금으로 반지도 만들고 시계도, 목걸이도 만든다. 반지와 시계, 목걸이 등이 되기 위해 금은 녹여져 아예 그 형태가 변했지만 금은 여전히 금이다.

여기에서 금은 “본질”이고 반지와 시계는 “드러난 가치”로 분류해볼 수 있다.


프랑스의 여류 작가이자 철학자 시몬느 드 보봐르는 이 생각을 기본으로, “사람은 여자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자가 된다”라는 말로써 존재의 본질을 설명하기도 한다.

비즈니스에서도 바로 이 본질을 파악하고 다루는 역량은 기업의 운명을 결정짓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한국에서는 시들하지만 O2O(online to offline) 서비스의 대표적인 사례로써 손꼽히는 우버는 기존 택시 서비스로부터 불편을 겪어본 승객들의 수요를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기다려야 하고 목적지를 설명해야 하고 요금까지 실랑이해야 하는 문제들을 일순간에 해결해버렸는데, 2016년 현재 우버의 기업가치는 GM, 포드의 자산 규모와 맞먹는 625억 달러(한화로 약 80조)로 평가받고 있다.

사람들이 도시생활에서 겪게 되는 일상적인 문제의 본질을 들여다보고 해결해내는 것.
우버의 O2O 케이스는 문제의 본질에 대한 분석과 해결 과정에 대한 좋은 사례로 참조해볼 수 있겠다.

그렇다면 예술에 있어서 본질은 어떤 관점에서 얘기될 수 있을까?
예술의 본질은 다름에서 닮음을 찾아내는 과정이다. 당연히 그 본질을 꿰뚫고 다룰 줄 아는 사람들을 우리는 예술가라 부른다.

알파고와 같은 인공지능이 감히 넘볼 수 없는 영역이 예술가의 창의성이라고 한다. 예술가는 “꽃이 피면 벙어리도 운다는데”라고 표현할 수 있지만 인공지능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꽃’이 피어나는 현상과 ‘벙어리’의 신체적 제약 사항이 가지는 본질을 파악하여 은유하고 치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창의성이란 속성이 다른 여러 사물의 본질을 파악한 뒤 본질 간 경계를 허물어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능력이기 때문에 기계 따위가 범접할 수 있는 영역이 애초에 아니다.

그런데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작금의 세상은 이런류의 창의성이 천대받고 있다.

2016년 발간된 ‘예술인 맞춤형 사회복지사업 개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전업 예술인의 68.7%가 예술 관련 활동으로 벌어들이는 월수입이 100만 원 미만이며, 이 가운데 43.1%는 월수입이 50만 원 미만이라고 한다.

이런식의 가치 전도된 통계만 보더라도 우리가 사는 사회는 분명 어디에선가부터 문제가 생겼고 조율하지 못한 채 성장(?)해왔다.

다시 한번 본질의 의미를 생각해보자. “그것이 그것으로서 있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되는 것”

설 명절을 앞두고 만화 관련 협회들의 총회와 신년회 소식이 들려온다.
바라건대,“만화가 만화로 있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 무엇인지 본질적인 성찰과 토론이 함께할 수 있는 그런 자리들이 되셨으면 좋겠다.

더불어 부천시에도 한 가지 묻고 싶다. 예술 정책에 있어서 “정책 용어”는 사업의 본질을 담아내는 그릇인데 근래에 “만화 웹툰 중심도시”라는 이상한 신조어를 내보내고 있다.

이게 무슨말인지 궁금하다.
만화라는 본질에 해당하는 뿌리와 웹툰이라는 드러난 가치에 해당하는 열매를 동시에 풍성하게 키워보겠다는 정책적 의지를 엿볼수 있긴하다.
그런데,웹툰이 만화의 유일한 열매는 아니지 않는가?
….

본질을 추구하는 정책은 가치에 집중하고, 현상을 따라가는 정책은 좀 더 대중적인 반응과 트렌드에 목말라 한다.
그런데,현상을 쫓더라도 진정성있고 창의적이라면, 어느정도 이해가 되지만 그저 개념없이 숟가락 얹히는 태도라면 좀 볼썽사납다.

이 원영예술의 본질은 다름에서 닮음을 찾아내는 과정이다.

기회의 신 – 카이로스(Kairos)

나의 앞머리가 무성한 이유는 사람들이 나를 보았을때 쉽게 붙잡을 수 있게 하기 위함 이고, 뒷머리가 대머리인 이유는 내가 지나가고 나면 다시는 나를 붙잡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며, 발에 날개가 달린 이유는 그들 앞에서 최대한 빨리 사라지기 위해서이다. 나의 이름은…..기회이다.
-이탈리아 토리노 박물관에 있는 기회의 신 ‘카이로스(Kairos)’ 의 석상에 적힌 글귀이다.

기회에 대한 비유치고는 꽤나 시크하고 낭만적인 표현인듯하다.
근데 늘 운명과 현실의 경계를 주유(周遊)하는 저 기회라는 신을 우리는 살아가면서 얼마나 만나고 있는걸까?

특히 생애 처음으로 자신이 만든 세계와 이야기속으로 독자들을 끌어들여야 하는 신출 내기 창작자들에게는 이미 공고하게 시스템화되어있는 퍼블리싱 플랫폼과 자본들로 부터 간택을 받기위해 어떤 기회들의 머리채를 쥐어잡아야 하는걸까?

여기 기회의 신 ‘카이로스(Kairos)’를 만나는 대신 자신이 스스로 ‘카이로스(Kairos)’가 되어버린 작가들을 소개해볼까 한다.

저술 경험이 전혀 없었던 노년의 여성 클레어 디킨스(Clare Dickens)는 워싱턴의 지역에 위치한 독립 서점 “정치와 산문 (Politics and Prose)에서 에스프레소 북머신 을 활용하여 즉석에서 자비로 책을 출간했다.

그녀의 아들 타이더스(Titus)는 양극성장애(조울증)를 앓다가 결국 25살의 나이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는데 그녀의 출간 목적은 바로 상업적인 이익이 아니라 자신의 아들과 같은 병으로 고생하는 다른 사람들을 돕고자 함이었다.

그녀의 회고록 위험한 재능(A Dangerous Gift)은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권당 $10.38 비용이 들었고, 책은 권당 16불에 판매되었다. 한 달 만에 수백권이 팔려나갔고, 페이퍼백으로 5,000권 이상이 팔렸다. 이것은 대형출판사의 저자들보다 좋은 성적이었다.

하버드대 출신의 신경과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었던 리사 제노바(Lisa Genova)는 알츠하이머에 걸린 자기 할머니의 사연을 토대로 소설을 집필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소설 원고를 들고 다수의 출판사를 찾아갔지만 전부 거절당했다.

제노바는 450달러를 들여 과감히 자비출판을 단행했는데 그렇게 나온 책이 바로 (스틸 앨리스)다.
입소문으로 시작된 작품의 인기는 보스턴 글로브지 비벌리 베컴의 서평을 필두로 평단의 호평을 이끌어냈고 2015년 배우 줄리안 무어에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안겨주는 행운을 이어갔다.

독일 작가 넬레 노이하우스는 남편의 소시지 공장에서 20년 가까이 일한 것 외에는 책을 출간한 경력이 없었다.

그녀의 첫작품 “타우누스”는 출판사에서 관심을 보이지 않아 자비로 출판하였는데, 이후 2009년 ‘타우누스’ 시리즈 신간 (너무 친한 친구들) 은 독일에서 성탄 시즌 <해리 포터> 신간을 누르며 대박을 터뜨렸다.

“미국과 유럽을 사로잡은 마약 작가” 로 불리는 콜린 후버Slammed(국내 출간 명: 내가 너의 시를 노래할게)은 아마존에서 자비로 출판된 작품으로는 최초로 뉴욕타임스 3주 연속 1위를 차지 했다.

그 후 발간하는 책마다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랭크되고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유럽 권에 수출되며 미국에서 유럽까지 지지를 얻고 있다.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일하는 앤디 위어가 쓴 첫 장편 (마션)은 그의 블로그에 친구들을 상대로 소소하게 연재한 작품이었으며, 2012년 전자책을 자비로 낸 데 이어 2014년 크라운출판사와 계약해 종이책으로 출간했다.

화성 탐사 승무원들의 실패 사례를 작품 소재로 활용한 그의 작품은 이후 리들리 스콧 감독,맷데이먼 주연으로 영화화되었고 책은 현재 독일·중국·일본·스페인 등 29개국에서 번역 출간되었다.

영국의 폴라 호킨스는 기자로 일하다가 불경기로 실직한 뒤 필명으로 로맨스를 썼으나 잘 풀리지 않았고, 스릴러로 방향을 틀어 첫 책으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케이스다.

최근에 영화로도 나온 (걸 온 더 트레인)이 바로 그녀의 작품이다.

클레어 디킨스(Clare Dickens),리사 제노바(Lisa Genova),넬레 노이하우스,콜린 후버,앤디 위어,폴라 호킨스외에도 자비출판을 통해 인기 작가의 반열에 오르는 성공 사례는 당분간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근래 네이버에서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자사 플랫폼에서 활동중인 예술가들의 규모는 아래와 같다고 한다.

웹툰 연재 작가 400명
웹소설 작가 150명
일러스트레이터 10,000명
예비 뮤지션 3,300명

이외에도 다양한 군소 플랫폼에서 치열하게 살고 있는 창작자들을 포함하여 한말씀 드리고 싶다.
“기회의 신 ‘카이로스 (Kairos)’ 는 이미 당신안에 웅크리고 있습니다. 파이팅!!”

이 원영기회의 신 – 카이로스(Kairos)

허공도 캔버스다. 카투니스트 사이로와 부르노 카탈라노

카투니스트 “사이로”는 그의 작품집 <사이로, 카툰 꿈꾸는 선>에서 여백의 미학에 대한 자신의 예술적 견해를 이렇게 밝혔다.

(사이로 작가,1965.8.아리랑 신인 만화상으로 데뷔)

“여백이란, 표현을 하고 어쩔 수 없이 남는 빈 곳이 아니라, 공간을 먼저 생각하고 그 공간들이 화면을 지배할 때 우리는 그 공간을 여백이라 한다” -사이로,2010년
비우는 것이 곧 채우는 과정이라는 그만의 패러독스는 당연히 그의 작품 활동 전반을 지배하는 세계관이기도 한다.


(사이로,작품명:드골)

(사이로,작품명:스케이드보드)

(사이로,작품명:위기)

(사이로,작품명:무제)

(사이로,작품명:고추잠자리의 전설)

(사이로,작품명:하늘카누)

(사이로,작품명:정유년아침)

그리고 여기 30넘은 나이에 독학으로 조각 공부를 시작하여 지금은 대가의 반열에 오른 프랑스 조각가 부르노 카탈라노의 여백을 함께 즐겨보자.


(부르노 카탈라노,조각,가방을 든 여행자 연작중)

(부르노 카탈라노,조각,가방을 든 여행자 연작중)

(부르노 카탈라노,조각,가방을 든 여행자 연작중)

(부르노 카탈라노,조각,가방을 든 여행자 연작중)

(부르노 카탈라노,조각,가방을 든 여행자 연작중)

(부르노 카탈라노,조각,가방을 든 여행자 연작중)

자연적 공간을 대상으로 하는 비움과 채움의 과정이 카투니스트 사이로의 예술적 접근이라면 부르노 카탈라노는 관념적 공간을 그 대상으로 비움과채움을 시도하고 있는듯하다.
그리고 좀 더 적극적으로 도시와 사람, 일상이 작품과 자연스럽게 결합될 수 있는 영리한 장치로써 조각 예술을 활용하고 있다.

“서정이란, 작가가 어떤 대상에 대해서 아주 깊은 명상으로 객관화시킨 감정이다”
-카투니스트 사이로,2010년

원로 작가의 말씀처럼 서양이든 동양이든 여백이 “서정”이라는 하나의 미학적 가치를 품어내기까지는 결코 녹록치 않은 작가적 고뇌와 명상이 필요했을것이다….미루어 생각해보며 이땅의 모든 예술가들에게 따뜻한 응원을 보내고 싶다.감사합니다.

작품 출처
부르노 카탈라노: http://brunocatalano.com/
사이로 : 사단법인 한국카툰협회

이 원영허공도 캔버스다. 카투니스트 사이로와 부르노 카탈라노

균와아집도(筠窩雅集圖) – 조선시대 최고의 콜라보레이션

균와아집도(筠窩雅集圖) – 조선시대 최고의 콜라보레이션

작품의 우측에 쓰여진 발문의 내용은 이러하다.
“책상에 기대어 거문고를 타는 사람은 표암(강세황). 곁에 앉은 아이는 김덕형. 담뱃대를 물고 곁에 앉은 사람은 현재(심사정). 치건을 쓰고 바둑을 두는 사람은 호생관(최북)… 퉁소를 부는 사람은 홍도(김홍도)이다.”

그렇다.한 사람의 작품이 아니다.

오늘날의 회화비평에 해당하는 조선시대 화평(畵評)의 영역을 개척한 표암 강세황,심사정, 최북, 김홍도, 김덕형 등 무려 다섯명의 대가들이 함께 만든 작품이다.

강세황은 그림의 위치를 배열했고, 최북은 색을 입혔고 김홍도는 인물을, 심사정은 소나무와 돌을 그렸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발문은 조선후기 학자이자 화가였던 허필이 썼다.

어느 한적한 소나무 그늘 아래에서 출신 성분의 차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어떤 마음으로 이런 콜라보레이션을 함께 했을까?

말 그대로 협업은 협업이며 예술은 예술이다.
노동이 아니기에..최소한 작품안에서는 평등했고 서로를 지극히 존중했다.
명작은 그래서 명작으로… 오래 살아남을 이야기를 품고 우리곁에 남는다.

그리고…균와아집도(筠窩雅集圖)의 “균와(筠窩)”는 지금의 안산으로 추정되는 지역이다.

이 원영균와아집도(筠窩雅集圖) – 조선시대 최고의 콜라보레이션

제임스 서버와 웅초 김규택


어느 날 스튜디오 공사를 하던 몇 사람 인부가 들판에다 커다란 판유리 한 장을 세워놓았답니다. 마침 들판을 급히 날아가던 한 마리 방울새가 판유리에 머리를 부딪쳐 정신을 잃고 말았어요. 정신을 차린 다음에 그 방울새는 클럽(새들이 모이는)으로 갔습니다. 그 곳에서 일하던 종업원(새)이 그의 머리에 붕대를 감아 주고는 독한 술을 한잔 주었어요.

“도대체 어찌 된 일이야?” 갈매기가 물었습니다.
“내가 들판을 가로질러 날아가고 있을 때 갑자기 공기가 얼어붙어 부딪쳤어.” 방울새가 답했습니다.

그곳에 있던 갈매기와 독수리, 매 등이 어이없어 하자, 옆에 있던 제비는 심각한 표정으로 방울새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습니다.
“15년간 살아온 나는 이 나라 하늘을 수없이 날아다녔다. 하지만 공기가 얼어붙는다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는 처음 듣는다. 물이야 추우면 얼어붙겠지만, 공기는 얼 수가 없다.” 라고 독수리가 말했습니다.

“넌 아마 우박을 맞았을 거야.” 방울새에게 매가 말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심장마비를 일으켰을지도 모르지, 제비야 넌 어떻게 생각하니?” 갈매기가 물었습니다.
“글쎄, 나는 공기가 얼어붙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 제비가 답하자, 큰새들은 말도 안 된다며 박장대소했습니다.

약이 오른 방울새는 자기가 날아가던 들판을 따라가면 틀림없이 얼어붙은 공기에 부딪칠 것이라고 하며, 맛있는 벌레 열 마리를 걸고 내기를 하자고 했습니다. 그러자 갈매기 독수리, 매들은 모두 내기에 응했고 방울새가 가르쳐 준 길을 다라 모두 날아가 보기로 했습니다.

“너도 따라오지 않을래?” 그 새들은 제비에게 말했습니다.
“글세, 난 그만둘래.” 하고 제비가 말하자,
“그럼, 할 수 없지.” 라고 말하며, 갈매기와 독수리, 매는 방울새가 가리켜 준 들판을 가로질러 날아가서, 인부들이 세워놓은 커다란 판유리에 모두 부딪쳐 정신을 잃고 말았답니다.

이 이야기는 제임스서버(James Thurber 1894~1961)가 쓴 <우리시대의 우화> 중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서버는 카투니스트이며 문필가이다. 1925년 창립된 잡지 <뉴요커>의 만화 담당 편집장을 지내면서 많은 만화(카툰)를 발표했다.


(제임스 서버의 목적지,1946년)

그의 카툰은 독특한 선과 단순화된 유니크한 그림으로 명성을 얻었다. 그는 피터.헤렌 호킨슨.윌리암 스타이크.조지 부스.찰스 아담스.소울 스타인버그 등과 함께 <뉴요커>의 위대한 카투니스트들 맨 앞에 거론되고 있다.
그는 카툰 뿐만 아니라 글 재능도 뛰어나 소설가 수필가로도 유명했다. <내 삶의 어려웠던 시절>, <우리 시대의 우화>, <마지막 꽃>, <로스와 같이 지낸 세월>, <위대한 퀼로우> 등등 많은 작품들을 남겼는데, 그가 1930~1940년대에 쓴 몇 몇 작품들은 현대 고전으로 꼽히고 있다.

내가 만화가의 꿈을 키우던 무렵, 서버의 카툰을 처음 본 것은 1956년 발행된 <만화춘추>10월호에 소개된 해외 만화중 한 컷이었다. 그림이 간결하고 감각적이긴 하지만, 내용도 그저 그래, 내 마음에 와 닿지는 않았었다.

그 후 청계천7가,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책들을 취급하는 헌책방에서 표지가 뜯겨진 <뉴요커 카툰앨범 1925~1950>을 구입했다. 국배판 크기에 400여 페이지로 아트지를 사용한 고급 책이었다. 그 책에 서버의 카툰이 수록되어 있었다.
나는 서버의 카툰 여러 편을 보다보니, 서버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하지만 그 책에 수록된 많은 카투니스트의 카툰 중에 내 마음에 끌리는 것은 오토소글로우의 카툰이었다. 군더더기 없이 생략된 그림, 세련되고 매끈한 선이 좋았다.
그리고 내용도 캡션이 없어 이해하기가 수월했다. 특히 그의 연작<리틀킹>은 나를 매료시켰었다.

한참 후 <뉴요커 카툰앨범>을 구입했던 그 헌책방에서 서버의 카툰집 <남자, 여자 그리고 개> 1946년도 판 페이버백을 구입했다.
240페이지나 되는 그 책을 자세히 보면서, 나는 서버카툰의 진면목을 느끼게 되었다.
미국에 제임스 서버가 있었다면, 한국에는 웅초 김규택(1906~1962)선생이 있었다. 한국 만화의 효시는 관제 이도영 화백이다. 그 뒤 심산. 청전 화백 등이 만화의 선구자로 알려져 있으나, 그들은 동양화가로 만화나 삽화를 여가로서 했을 뿐이었고, 본격적인 전업만화가는 웅초 선생이 최초다.

웅초 선생은 아동만화, 시사만화, 성인만화 등 다양한 만화를 했으며 신문, 잡지의 삽화도 많이 그렸다. 그림에 관한 한 무소불위였다.
이것만이 아니었다. 웅초 선생은 화재(畵才) 못지않게 문재(文才)도 뛰어나 소설 창작도 여려편 발표했다.


“형과 내가 허교(許交)를 맺어 온지 근 30년 그 동안에 소설과 삽화로 짝을 지어온 것도 한두 차례만이 아니었지만 그러한 직업적인 관련보다도 나는 형의 그 기발하고도 유머러스한 만화에 매양 경탄해 마지않았고, 더구나 일제시대에 형이 집필한 장편유머소설 <망부석>, <억지 춘향전> 등의 작품에는 최대의 찬사를 보내도록 열광적인 애독자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세상에서는 형을 단순한 만화가로 알고 있는지 몰라도 형의 유머소설은 어휘의 풍부성에 있어서나 문장의 착실성에 있어서나 또는 구성의 오묘한 점에 있어서나 오랜 옛날에 이미 일가를 이룬 분이라고 믿어왔던 것입니다…………(이하 생략)

이글은 한국소설계의 거목 정비석 선생이 쓴 ‘웅초 김규택 화백’ 이라는 글 가운데 앞부분을 인용한 것이다.
내가 웅초 선생의 만화를 보게 된 것은 1960년 초 신문에 게재된 주로 붓으로 그린 선이 굵고, 텁텁한 토속적인 냄새가 나는 시사만평과 4컷 만화였다.


그전에는 선배들의 말과 어쩌다 오래된 잡지에서 삽화를 몇 컷 본 것이 전부였다. 그도 그럴것이 웅초 선생은 6.25 전쟁중에 일본 도쿄에 있는 UN군 사령부 심리작전과 전속 만화가로 근무하면서 국내에서는 작품 활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1960년 10월 중순경, 나는 채일병과 같이 조선일보사 편집 고문실(?)로 웅초 김규택 선생님을 직접 찾아뵈었다. 선생님이 도쿄에서 8년간 작품 활동을 하시다 귀국하신지 1년쯤 됐을 때였다.

선생님을 뵙게 된 것은 우리들이 ‘중앙아동만화작가협회’를 창립하고는, 만화가의 대선배이신 선생님을 협회 고문으로 모시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확답을 듣지 못하고 돌아왔었다.
다음 해(1961년) 웅초 선생은 한국일보로 자리를 옮겨 사회면에 4컷 만화<명동 태자>를 연재했다.
<명동태자>는 붓과 펜을 병용하여 선이 투박함을 느끼게 했고, 무게감을 주는 구수한 캐릭터였다.
하지만, 세련된 펜선과 단순화된 양식에 익숙해져있던 나는 솔직히 말해 <명동 태자>는 젊은 나에게 크게 어필하지는 않았다.

웅초 선생은 <명동태자>를 135회로 끝내고, 1962년 4월 지병으로 타계하시고 말았다.
국내 현역 만화가 중에도 화재와 문재를 겸비한 이들이 여럿 있으나, 웅초 선생처럼 문단에서도 소설가로 인정할 정도의 만화가는 아직 없다.


지난 6월 2일, 건대역 근처 ‘롯데시네마’에서 김태익 감독의 극장용 장편애니메이션 <스퀴시> 시사회에 참석했다. 만화가 김산호, 권영섭, 백성민 등이 참석했으나 이외로 애니메이션계 인사들은 눈에 띄지 않았다. 몇 명을 초청했으나 사정이 있어 못 온 모양이었다.
90분가량 되는 <스퀴시>를 관람하고 저녁식사를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김 감독이 “조 선생님, 제가 새 작품을 구상중인데 시나리오를 부탁합니다.” 한다.

내가 <썬더A>, <슈퍼태권V>, <우뢰매> 등 10여 편을 넘게 시나리오를 집필한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한 말이었다.
“김 감독, 나는 자신 없어요. 이젠 젊은 사람들에 비해 감각도 무디어지고 창의력도 전만 못해요.”하며 거절했다.
앞에 예를 든 제임스 서버의 우화처럼, 방울새의 내기에 갈매기, 독수리, 매가 상황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무모하게 날아가서 들판에 세워 논 유리에 모두 부딪치는 우를 범하기 보다는, 제비처럼 그 새들을 따라가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조 항리제임스 서버와 웅초 김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