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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 한용운의 심우장에서 심장이 뛰다

성북동을 가기위해 광화문에서 만났다.

광화문!!

광화문하면 무엇이 생각나는가?

맞다 촛불이다.

지난 겨울 그 추위를 다 녹이고도 남을만한

국민의 촛불, 그 속에 나도 있었다.

아무일도 안 일어나도 좋을 만큼 웃으며 그 속에 있는 자체가

의미였던 지난 겨울처럼.

구르는 낙엽만 보아도 웃고울던 중학시절

내 손에는 항상 한용운의 시집이 있었다.

그 시집의 제목은 님의 침묵.

첫 장을 넘기면 나오는 시

님의 침묵.

그의 시를 외워서

학교뒷산 가득한 아카시아 내음새 속에서 누워

친구와 속삭이던 읋었던 지나간 세월 속 오월의 향내가

이번 만저봐 어슬렁 성북동 투어 속에

다시 났다.

그래서, 투어라지만

존경하고 따르던 만해 한용운 시인의 거처,

심우장에서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다들 다녀오세요~ 저는 여기 더 머물러 있겠습니다

라고 말하고 싶었다.

님의 침묵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적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서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어갔습니다.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指針)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한 용 운 –

성북동 투어 덕분에 다시 만난 만해 한용운.

이번 기회에 그의 일생을 살펴보고자 한다.

만해 한용운

그는 충청남도 홍성 출신으로 본관은 청주, 본명은 정옥, 용운은 법명, 만해는 아호이다. 만해는 1919년 승려 백용성 등과 불교계를 대표하여 독립선언 발기인 33인 중의 한 분으로 참가하여 <3·1독립선언문>의 공약 삼장을 집필한 분으로 유명하다. 몰락한 양반 사대부 가문 출신으로 아버지 한응준은 홍성군 관아의 하급 임시 관리였으며, 집안은 몹시 가난하였다. 그의 집안은 형 한윤경이 일시적으로 가세를 일으켜 토지를 마련했지만 만해가 토지를 매각해 독립자금으로 썼다.

유년시대에 관해서는 본인의 술회도 없고 측근에게도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6세부터 성곡리의 서당골 서당에서 한학을 배웠고, 9세에 문리를 통달하여 신동이라 칭송이 자자하였다고 한다.

14살이 되던 해인 1892년 풍속에 의해 지주 집의 딸 전정숙과 결혼했으나 그는 가정에 소홀하였고 16살 되던 해인 1894년부터는 홍성읍 내 서당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출가의 원인은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으나, 당시 고향 홍성군 홍주에서도 동학 농민 운동과 의병운동이 전개된 것으로 미루어 역사적 격변기의 상황에 영향을 받아, 동학 농민 운동에 함께하다가 실패 후 설악산 오세암에 은신해 있다가 다시 고향 홍성군으로 되돌아왔다.

1905년 을사조약 직후 홍성에서는 제2차 의병운동이 일어났고 이때 아버지 한응준은 의병들에 의해 살해되었다. 그의 아버지는 가난때문에 의병을 탄압하는 일본 임시직 일을 하였던 것이다.

그는 아무리 좋은 말씀도 이해를 하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라 주장하였고, 당시 불교 경전의 대부분이 한문으로 되어 있어서 일반인이나 문맹률이 높던 당시에는 일반적으로 읽고 이해하기가 어렵다 하여, 방대한 대장경을 쉽게 옮기는 일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그는 불교의 교리와 활동, 고승 등에 대한 내용을 한글로 표현했으며《불교대전》에는 대장경 등의 내용을 한글로 해석하였는데 이는 바로 그와같은 시도의 결정이다.

또한, 대중의 결혼생활, 가장이라는 짐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중생들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승려의 결혼을 허가해 달라는 그의 주장은 그대로 묵살당한다. 그는 불교의 보편화 운동의 실천을 위하여 ‘승려에서 대중에로’, ‘산간에서 길가로’ 등을 내걸었다.

또한 불교 포교의 대중화를 위해서는 교단, 종단간의 갈등을 줄이고 협력하자는 주장을 펼쳤다.

1919년 3·1 운동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참여하여 독립선언서에 서명하였으며 경성 탑골공원에서 독립 선언서 낭독과 만세 운동에 가담했다가 피신하지 못하고 조선총독부 경찰에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3년 반을 복역하였다. 한편 그는 자수하기 직전의 민족대표자들 중 체포된 뒤 고문당할 것을 두려워하며 걱정하는 민족대표자들을 보고 화장실에서 인분을 퍼다가 머리에 끼얹었다 한다.

1924년부터 조선일보동아일보의 논설위원을 겸하며 계몽, 사회 참여를 촉구, 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칼럼을 송고하였다.

1923년 1월 동아일보에 논설 ‘조선 급(及) 조선인의 번민(煩悶)’을 발표한다. 1924년 조선불교청년회 회장에 취임했고, 다시 조선불교청년회 총재로 선임되었다. 1926년 시집 님의 침묵을 출판하여 저항문학에 앞장섰다.

님의 침묵에서 그는 인위적으로 한글 표준어를 쓰지 않고 충청도 방언과 토속어가 세련되지 않은 표현으로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향토적 정감의 방언 및 토속어 애용과 서민적인 시어의 활용은 님의 침묵에 민중정신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님의 침묵》은 당시 자유주의적, 남녀간의 연애를 위주로 하던 한국문단의 영향을 받지 않고 생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민족의 현실과 이상, 그리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요구되는 주체적 자세에 대해 노래했으며, 더욱이 그것을 풍부한 시적 이미지로 아름답게 형상화해 수준 높은 민족문학의 경지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는 조선의 독립, 혹은 자연을 ‘님’으로 표현하여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부처로도 해석되고 이별한 연인으로도 해석되는 화법을 구사하여 총독부 학무국의 검열 탄압을 피하였다.

그는 조선 불교가 일본 불교에 예속되지 않고 독립해야 함을 역설하였다. 한편 한 강연에서 그는 조선총독부나 일본 불교에 아첨하는 일부 승려들을 질타하기로 했다. 그가 “세상에서 제일 더러운 것이 무엇인지 아느냐”고 묻자 아무도 그 물음에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세상에서 제일 더러운 것은 똥이올시다. 똥! 그런데 그 똥보다 더 더러운 것이 있습니다. 무엇이겠습니까?“

“똥보다 더 더러운 것이 송장 썩는 것이올시다. 똥 옆에서는 식음을 할 수 있어도 송장 썩는 옆에서는 차마 음식이 입에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라는 것이다.

이어 만해는 “시체보다 더 더러운 것이 있으니 그것이 무엇일까?”하고 물었다. 아무도 답을 하지 않자 한용운은 굳은 표정으로 강연대를 주먹으로 내리치며 “그건! 바로 여기 앉아 있는 31본산 주지 네놈들이다!”라고 일갈하고는 즉시 단상에서 내려와 퇴장해버렸다. 반일 혹은 일본 불교에의 흡수를 반대하는 연설이었다.

한편 조선총독부로부터 생계비와 연구비를 지원받는 조건으로 전향한 최남선이 탑골공원 근처에서 마주쳤을 때 “오랜만이오. 만해.”라고 먼저 인사하자 그는 “당신이 누구요?”며 냉정하게 답하였다. 최남선이 “나는 육당이오. 나를 몰라보겠소?”라고 하자 만해는 “뭐, 육당? 그 사람은 내가 장례 지낸 지 오랜 고인이오.”라고 말하고는 사라졌다. 최남선이 전향을 선언하던 날 한용운은 그의 제사상을 마련하고 제사를 지냈다는 소문도 있었다. 시와 작품에 있어 퇴폐적인 서정성을 배격하였으며 조선의 독립 또는 자연을 부처님에 빗대어 불교적인 ‘님’으로 형상화했으며, 고도의 은유법을 구사하여 조선총독부나 일제 정치에 저항하는 민족정신과 불교에 의한 중생제도를 노래하여 조선총독부 학무국의 검열을 교묘하게 피하였다. 여기에서의 님은 보는 관점에 따라 조선의 독립, 자연, 부처님 혹은 이별한 연인 등으로도 해석이 가능한 어법을 구사하였다. 그는 대표작 님의 침묵을 비롯한 시집, 작품집에서 중심을 이루고 있는 ‘님’은 연인·조국·부처 등 다의적인 의미를 지니며 그에 따라 ‘님의 침묵’이라는 표현은 당시의 민족적 상황을 은유적으로 상징하였다. 또한 세속적인 정감의 진솔성이 불러일으키는 인간적 설득력과 함께 세속적인 사랑을 표출하면서도 세속사의 진부함에 떨어지지 않으며 목소리 높여 민중정신을 강조하지도 않는다는 작품평도 있다.

그의 사상과 신념은 모든 중생은 불성을 가지고 있다는 불경의 사상을 인용하여 이를 현대적 자유사상에 연관시켜 생각하였다. 그는 이것이 만인의 평등사상을 설파하였다.

심우장

만해 한용운은 3·1운동으로 3년 옥고를 치르고 나와 성북동 골짜기 셋방에서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 때 승려 벽산 김적음이 자신의 초당을 지으려고 준비한 땅 52평을 내어주자 조선일보사 사장 방응모 등 몇몇 유지들의 도움으로 땅을 더 사서 집을 짓고 ‘심우장이라고 하였다.

‘심우장(尋牛莊)’이란 명칭은 선종의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는 과정을 잃어버린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한 열 가지 수행 단계 중 하나인 ‘자기의 본성인 소를 찾는다’는 심우(尋牛)에서 유래한 것이다. 성북동 북쪽에는 산이 있어 대부분의 집은 남향인데 비해, 심우장만은 북향이다.

만해 한용운은 조선총독부가 있는 남쪽과 마주치기 싫어 북쪽을 향해 집을 지었던 것이다.

한용운이 쓰던 방에는 한용운의 글씨, 연구논문집, 옥중공판기록 등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으며, 심우장의 이름처럼 인간의 본성에 대한 소박한 명상이 가능하다. 마당에는 성북구에서 지정한 아름다운 나무로 소나무와 한용운이 직접 심었다는 향나무가 있으며 한켠에 올래여행(역사문화여행) 스탬프가 있는 우체통이 있다. 만해 한용운은 이 곳 심우장에서 끝내 조죽의 광복을 보지 못하고 1944년 이곳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관람을 원하시는 분들을 위한 메모

주차공간은 별도 없으며,

관람시간은 09:00 ~ 18:00까지이며

관람시간내에는 신발을 벗고 들어가서 마음껏 사진도 찍고 앉아 있을 수 있다.

주변 가볼 만한 곳으로는

성곽과 마을이 아름다운 북정마을과 북정미술관 등이 있다.

오드리 기자만해 한용운의 심우장에서 심장이 뛰다

성북동에서 이태준을 만나다

‘만저봐’ 어슬렁팀과 성북동 투어에 나섰다. 광화문에 모여 경복궁을 지나 청와대 앞길로 사부작사부작 걷기 시작했다.

삼청공원과 말바위 전망대를 2시간쯤 오르내리다 드디어 성북동 비둘기 공원에 도착했다. 김광섭 시인의 시‘성북동 비둘기’의 배경지 ‘북정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세월이 잠자고 있는 듯, 5,60년대의 집들과 골목이 그대로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대로 돌아간 것 같다. 골목골목을 누비다 문인들이 살았던 집들을 기웃거린다. 한용운 시인의 ‘심우장’을 둘러보고 소설가 이태준이 살았던 ‘수연산방’에 도착했다. ‘산속의 작은집’이라는 이름답게 아담하고 정갈스럽다. 집 앞에는 상허 이태준 가옥이라는 푯말이 있다. 그 시절 성북동에는 많은 문인들이 살았단다. 이산 김광섭, 구보 박태원, 청록파 시인 조지훈의 집터가 고만고만 모여 있다. 달동네였던 이곳이 가난한 문인들이 살기엔 좋은 동네였나 보다.

그중에서도 이태준에 끌린 것은 글 모임을 지도해 주시는 부천대 민충환 교수님의 열정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월북 작가 이태준이 해금되자마자 선생님은 그의 작품을 수집하기 위해 출생지인 철원과 살았던 집 성북동과 그가 다녔던 휘문고를 수도 없이 답사했다. 그렇게 발품을 팔아 <이태준 연구>라는 책을 쓰셨다. 오랜 시간 금기였던 그의 이름과 작품이 세상에 알려졌다. 그 과정을 지켜보았기에 ‘수연산방’은 더 특별하게 다가왔다.

‘수연산방’을 둘러본다.

1933년부터 1946년까지 이태준이 가족과 함께 살던 집을 1999년부터 그의 증손녀가 찻집으로 개방해 운영하고 있었다. 원형을 그대로 살려 단아하고 고풍스러운 한옥의 멋을 간직하고 있다. 마당의 작은 정원에는 그가 애지중지 키웠다는 파초의 흔적도 보인다. 집 한쪽 벽에 사진 한 장이 눈에 띈다. 가족사진이다. 빛바랜 사진 속에는 이태준과 그의 아내, 아이들의 모습이 보인다. 아기를 안고 있는 상허와 개구쟁이처럼 웃고 있는 아이들의 표정에서 단란하고 행복했을 가족의 일상이 그려진다.

이태준은 1904년 강원도 철원에서 보통학교 교관과 주사를 지낸 지식층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다. 구한말 나라를 개혁하려고 개화당에 가담했던 아버지는 개혁에 실패하자 가족을 이끌고 블라디보스크로 간다. 이태준이 다섯 살쯤 아버지가 화병으로 죽고 얼마 뒤 어머니마저 세상을 뜨자 고아가 된 그는 누이 둘과 함께 고향 철원의 친척집에 맡겨진다. 하지만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해 친척 어른의 구박을 견디다 못해 가출을 한다. 철원 봉명학교를 졸업하고 1920년 배재학당에 합격하지만 등록금이 없어 다니지 못한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며 1921년 휘문고에 입학한다. 가난했던 그는 교내 청소를 하며 학비를 면제받기도 하고 책장사를 하며 수업료를 벌기도 하며 힘들게 학업을 이어갔다. 학예지 <휘문>의 학예부장을 맡고 기행문과 감상문 등의 작품을 실어 문학적 소양을 발휘하지만 1924년 동맹휴교 주모자로 몰려 퇴학당한다. 1925년 일본으로 건너간 그는 <조선문단>에 소설 <오몽녀>가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한다. 1927년 일본 조치대학 예과에 입학하지만 그 이듬해 자퇴하고 만다. 신문배달을 하며 학비를 벌어보았지만 가난한 고학생에게 대학생활은 궁핍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귀국 후 <개벽사>에 들어가 <학생>과 <신생>의 편집을 맡게 되고 안정된 생활을 누리게 된 그는 1930년 이화여전 음악과 출신의 아내 이순옥을 만나 단란한 가정을 꾸린다.

수연산방에 걸려있는 상허 이태준의 가족사진

1934년 성북동 248번지에 집을 짓고 작품 활동에 몰두한다. 마당의 정원과 돌담에 놓인 돌멩이 하나에도 그의 정성이 안 들어간 곳이 없었다. 이곳에서 「황진이」 「달밤」 「코스모스 피는 정원」 「돌다리」 「왕자호동」 등을 집필했다. 그의 삶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으리라. 그러나 1948년 그렇게 정성스레 지은 집을 버리고 돌연 가족과 함께 월북하고 만다.

그 후 그의 행방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월북 초기에는 ‘조선의 모파상’이라 불리며 극진한 대접을 받은 듯했다. 그러나 남한에서의 ‘구인회’ 활동과 일제 말 친일작품을 쓴 이력으로 사상검증을 받고 결국 숙청당했다고 한다. 본인은 물론 그의 자식들까지 연좌제로 묶여 숙청당하거나 추방당했다.

이상, 박태원, 정지용 등과 함께 1930년대 한국 모더니즘 문학을 대표하는 ‘구인회’에 들어가고 <문장>의 발행인 겸 편집인으로서도 활발하게 활동하며 우리 문학사에 적지 않은 공적을 남긴 상허 이태준.

아름답고 수려한 문장으로 시인 정지용과 쌍벽을 이루었던 천재 문장가는 결국 사망 시기도 밝혀지지 않은 채 소리 소문 없이 가족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글쓰기를 시작하며 교과서처럼 읽었던 이태준의 ‘문장 강화’와 해방 기념 조선 문학상을 받은 단편집 「해방 전후」를 읽으며 그의 문학세계에 빠져들고 있다. 이 소설에는 그의 등단작 「오목녀」를 비롯해 좌파 이념을 선택하게 되는 계기가 된 8.15 전후의 일들을 ‘한 작가의 수기’로 풀어낸 「해방 전후」와 「고향」 「달밤」 「복덕방」 「까마귀」 「밤길」 「돌다리」 등 빼어난 단편소설들이 수록되어 있다.

 

비운의 작가에게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을 ‘수연산방’에 발을 디딘 것만으로도 그를 만난 듯 반갑다. 언제 한가로운 시간에 작가들의 사랑방이었을 툇마루와 사랑채에서 그의 작품을 감상하며 차를 마시고 싶다.

 

 

 

한 성희성북동에서 이태준을 만나다

이민희 작가의 그림책–‘라이카는 말했다’

티없이 맑고 높은 푸른 하늘과, 알록달록 예쁘게 물든 낙엽이 사방에서 뒹구르던 날,그 아름다운 가을과 함께 이민희 작가를 만나러 파주로 갔다.

우연히 접하게 된 작품 ‘라이카는 말했다’ 는 고요하게 내 마음속 깊숙하게 내재해있던 옛 추억을 휘저어 이내 꺼내들게 하였다. 그 추억에서는 그 옛날에 즐겨 보던 은하철도 999가 스쳐 지나갔다.

그 때에는 상상이었지만 자주 우주여행을 하곤 했었다. 세상 그 어떤 것들도 부럽지 않았다. 책을 읽다보니 그 때의 잊혀진 그 느낌이 다시금 돌아오는 것 같았다. 그 느낌을 느껴보고자 작가의 책을 몇 번씩 보다보니 내 자신은 라이카가 되기도, 뿌그인 친구가 되기도 하였다. 그 찰나의 재미는 생각했던 것 보다 큰 감동을 주었고 어느새 곁에 두고 틈날 때마다 가끔씩 보게 되었다. 책을 읽고 날 때마다 어디에선가 라이카의 목소리가 짠하게 들려오는 것 만 같은 것은 왜일까?

책의 제목 ’라이카는 말했다’에 나오는 라이카는 지구에 살고 있는 생명체 중 처음으로 우주 여행을 한 러시아의 강아지이다. 우리에게는 더 익숙할지도 모를 세계 최초의 우주 비행사인 유리 가가린보다도 먼저 우주로 날아간 최초의 우주견인 것이다. 참고로, 유리 가가린은 군인이자 우주비행사로서 1961년 4월 12일에 인류로서는 최초로 지구 궤도를 도는 우주 비행을 하였으며 그 이후로도 6번이나 우주 비행에 성공하였다.

첫 장을 펼치면 왼편에는 라이카가. 오른편에는 유리가가린이 나란히 등장한다. 모스크바 거리의 떠돌이가 어느새 우주의 떠돌이 강아지가 되어 유리 가가린과 함께 우주 여행을 하며 서로가 보고 느낀 점들을 작가의 위트있는 생각을 통해 전달하고 있다.

이러한 책을 펴낸 이민희 작가는 어떤 사람일까 – ‘라이카를 말했다’를 펴낸 2006년을 기점으로 그 이후로 해마다 ‘옛날에는 돼지들이 아주 똑똑했어요’, ‘ 새 사냥’, ’별이 되고 싶어’와 같은 책들을 내었다. 물론 그녀도 슬럼프가 없던 것은 아니다. 책에서는 느끼기 힘들었지만 5살과 9살 두 아들을 키우며 육아에 전념하다보니 몇 년의 슬럼프도 있었다고 했다. 슬럼프를 이겨낸 후로는 ‘돌시계가 쿵!’과 ‘아슬아슬 여치가 걸어갑니다’라는 두 편을 책을 더 내고 지금은 두 아들을 키우며 느낀 아이들의 사랑스러움을 담아낼 아이들의 이야기를 주제로 차기작을 준비하고 있다.

가을 햇살이 예쁘게 비치는 카페의 창가에, 미소가 너무나도 예쁜 작가랑 마주 앉았다.

제일 먼저 그녀에게 묻고 싶었던 질문이 있었다: 어떻게 그림을 그리게 되었을까?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그녀는 어릴 때부터 과학자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고 했다. 과학자에 대한 동경을 품고 대학에서 천문우주학을 전공하게 되었는데 막상 공부를 하다보니 재미가 없었다고 했다. 졸업을 했지만 취직을 하지 못하고, 우연히 컴퓨터 그래픽을 배우게 되었다고 한다. 막연히 마음속에 그려놓은 꿈이었던 컴퓨터 그래픽을 시작하게되면서 다니던 만화학원의 선생님이었던 남편도 만나게 되었으니 만화를 통해 제 2의 삶을 살아가게 된 셈이 아닐까?

그녀의 남편도 그녀와 같은 일을 하는 작가이다. 같은 일을 하기 때문에 서로가 일에 대해 같이 구상할 수 있고,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어 건설적인 피드백을 주고 받을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했다. 낙천적인 성격으로 어린 아이같은 본인의 가치관을 중시하며 함께 살아가는 그녀의 삶은 그녀가 꿈꾸어왔던 목표라고 하였다. 자신이 꿈꾸던 목표를 살아가고 있는 작가를 보면서 그녀의 미소에서 행복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런 그녀의 작품에는 왜 동물이 책마다 등장할까? 어릴 때 시골에서 자랐던 그녀이기 때문에 누구보다 쉽게 동물들을 접할 수가 있었고, 친근한 그 동물들은 쉽게 뇌리에 박혀 들곤 했다고 한다. 그러한 순수한 마음을 갖고 자연을 더욱 더 표현하고 싶은 마음에서 모든 글에 동물이 등장한다고 했다.

이러한 그녀의 순수한 마음은 ‘왜 별이 되고 싶어’라는 이름의 책에서 더욱 뚜렷하고 분명하게 나타난다. 반짝반짝 빛나는 별이 되고 싶어서 “나는 별이 좋아”라고 자신의 꿈을 자신있게 이야기하는 작가의 모습과 먼 훗날 반짝반짝 빛나는 별이 되어 우주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작가의 마음이 가득 담겨 있는 이 책은 제목만 보더라도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지 독자들에게 생생히 전해져 온다.

이렇게 작가는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서 표현하기 위한 도구로 그림을 사용해서 여러 그림책을 써오고 있다. 그녀에게 있어서 그림책은 자신만의 개성이 가득한 세계이다. 그녀는 종종 편하게 잘 놀기 위해서는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춤과 노동을 즐겨라”라고 말한다. 그러한 그녀만의 개성을 담아 시대에 맞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이야기를 그려갈 계획이다. 이에 안주하지 않고,작품 활동을 계속하며 늘어가는 나이와 변해가는 환경에 맞추어 평정심을 유지하여 자신만의 이야기를 자신을 통해 표현하고 싶다고 했다. 그녀에게 있어서 작업은 일 뿐만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놀면서 할 수 있는 춤이자 노동이다. 그 둘을 동시에 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는 그녀.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키우는 작가의 얼굴에는 행복한 사랑이 춤추고 있었다.

정 정숙이민희 작가의 그림책–‘라이카는 말했다’

‘별맛일기’를 읽고, 만난 작가: 심흥아는 누구인가?

별맛일기는 ‘고래가 그랬어’라는 어린이 교양지에 2013-2015년까지 3년간 연재했던 음식 만화이다. 그 당시에는 ‘음식’ 이라는 주제가 유행이어서 좀 식상한 것 같았지만 작가 스타일로 편하게 그린 그림으로 많은 사랑을 받아 결국 올 4월에 보리출판사에서 두 권의 단행본으로 나오게 되었다. 음식을 소재로 하여 미혼모, 다문화 가족, 동성애에 관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는 별맛일기는 정을 나누는 우리의 정서로 모든 이에게 공감되는 따뜻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책에 나오는 음식의 종류는 화려하지도 않고 현대인들이 즐겨 먹는 메뉴 또한 아니다.
우리가 어릴 때 엄마가 해 줘서 누구나 쉽게 즐겨 먹었던 음식들, 레시피가 복잡하지도 않고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이지만 그로 나오는 최고의 맛은 엄마의 사랑 그 맛이었다.

책에서 나오는 별이의 할머니가 엄마의 사랑과 같은 존재이다. 책을 넘겨가면서 별이와 심흥아 작가가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나이가 들수록 유독 맛보고 싶은 음식이 있다는 점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런 음식 곁엔 그 음식과 함께 했던 특정한 사람과 그 때의 특정한 분위기가 있었던 것 같다. 그건 음식이 그리운 것만이 아니라 함께 먹었던 그 사람의 기억과 분위기를 그리워하는건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우리 모두는 사랑하는 엄마, 아빠나 형제자매, 혹은 친구들을 생각하면 생각나는 서로 다른 음식들이 있다.

착하고 배려심이 많아 할머니 말씀을 누구보다 잘 듣고 친구들 마음 또한 잘 헤아릴 줄 아는 착한 별이와 흥아… 그녀는 어릴때부터 누구보다 착한 아이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누구에게나 항상 듣는 말이었기에 언제나 착하게 살려고 더욱 노력했으며, 착하다는 칭찬을 듣던 그 때를 떠올리며 그림을 그렸다고 했다. 어렸을 때의 모습처럼 남들은 그녀를 성실하고 친절한 사람으로만 본다.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그런 모습을 유지하며 살려고 부단히 노력을 하지만, 작가가 보는 본인은 오히려 고집스럽고 눈물이 아주 많은 사람이었다. 항상 착한 사람으로 살려고 애쓰고 있는 그는 앞으로는 나이를 먹을수록 몸은 유연하고 마음은 편안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작가 스스로가 생각하는 만화란 무엇일까? 누구보다 음식과 친숙한 그녀이기에 만화 또한 음식에서 그 답을 찾는다. 종류도 다양하고 숙성 정도에 따라 맛도 다르지만 밥상에 항상 올라오는 친숙한 음식. 또한 만드는 방법도 어렵고 정성이 많이 들어가는 김치에 비유했으며 김치와 만화는 비슷하다고 했다.

그런 작가 자신의 김치는 어떤 김치일까? 아주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고 인기 만화는 즐겨 따라 그렸다던 꿈 많던 어린 아이는 유명한 만화가의 작품이나 만화를 생각보다 많이 보지 못했지만 다양한 스토리를 접할 수 있었다고 했다. 특히나 ‘다니구치 지로’의 ‘열네살’을 너무 좋아하는데, 그 만화를 보면서 스토리의 힘이 얼마나 큰 지 알게 되었다고 한다.


스토리텔링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어느새부터 그림 그리는 일이 자신의 꿈이 되어 있었다는 그녀. 자기만의 특별하고 고유한 스토리를 구상하던 중 열 여덟살 쯤 되었을 때 무렵,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기기 시작하여 구상한 이야기에 그림을 더했더니 만화가 되었다고 했다.

스토리텔링의 목적 뿐만 아니라, 만화를 그리는 과정 자체에서도 작가는 보람을 느끼고 의미를 찾는다고 했다. 그릴 때에는 조금 어렵고 힘들게 느껴질 떄가 있기도 하지만, 구상을 해가는 즐거움과 무엇보다 완성한 후에 느끼는 순간의 즐거움이 바로 그것이다. 구상을 하는 과정에서도, 감정을 구체적으로 길게 표현할 수도 있지만 돌연 반대로 함축적으로 나타낼 수도 있는 만화의 특성상, 표현상의 제약이 없는 그 공간 안에서 작가 자신은 자신이 원하고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자유롭게 담아내고 있었다. 이러한 과정은 그에게 너무나도 훌륭한 마음 치유 방법이 된다고 덧붙였다.


그렇게 그녀는 회사를 다니는 회사원이기 보다는 자기가 하고싶은 이야기를 적은 돈으로도 편하게 하면서 완성시키는 작업을 해오고 있었다. 옛날에는 옷가게도 하고 카페도 운영하면서 (카페 그램) 만화를 그리기도 했는데, 요즘은 만화그리는 일을 전업으로 하고 있다며 “만약에 만화일이 끊기면 또 다시 뭐라도 해 봐야죠!” 라고 웃으며 긍정적인 에너지를 가득 분출하는 그였다.

만화를 읽어가면서 드는 궁금증이 하나 있었다. 작가에게 가족이란 무엇일까? 그녀 있어 가족은 가장 특별하고 소중한 것이었다. 본인을 세상에 있게 탄생 시켜준 존재. 그리고 그로 말미암아 작가 또한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킬 수 있게 되었기 떄문이다. 남편과 함께, 살아가면서 같은 일을 하고 있는지라 그녀는 행복한 삶을 보내고 있었다. 스케줄과 다른 일들이 어긋나지 않아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아름다운 인생을 살고 있는 그녀는 얼마전에 웹툰 ‘카페보문’을 마감하고 지난 여름에 동생이 있는 청주로 이사를 가서 남편과 함께 새로운 웹툰을 작업하고 있다고 한다. 새로운 웹툰은 내년 초에는 만나볼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굳이 웹툰 뿐만이 아니라, 지면에 연재 할 기회가 생기면 출판만화도 틈틈이 해보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앞으로도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구상해 놓을 생각이라고 했다. 작가는 부지런하다.

만화를 김치와 같다고 했지만, 음식에 비유하지 않고 만화를 설명하자면 종합 예술과 같을 것이라고 그녀는 이야기했다. 예를 들어 인쇄할 수 있는 영화와 같이 종합적인 예술의 여러 면면이 녹아있는 것이 만화가 아닐까? 이러한 종합 예술의 첨점에서 즐겁게 그림을 그려가고 스토리텔링을 할 수 있기에 그녀는 만화가 무엇보다 자기에게 찾아온 가장 큰 행운이라고 했다.

미래의 만화는 어떤 모습일지 그녀에게 몹시나 묻고 싶었다. 여리고 약해보이지만 당차고 야무지게 그녀는 자신의 생각을 요모조모 이야기해주었다. 요즘 웹툰의 인기로 만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고, 이는 만화인으로서 기쁜 일이지만 그 관심이 한정되어 있는 점이 그녀는 아쉬운 것 같았다. 출판만화만 보더라도 웹툰과는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지만 이에 대한 관심이 웹툰만큼 높아지지는 않았기에 앞으로 이에 대한 보다 많은 관심과 지원이 늘어나면 좋겠다는 당찬 미래도 그리는 그였다. 그녀와 이야기하며 그려본 미래에는 다양한 작가의 수많은 작품들이 골고루 선보일 수 있고 사랑받을 수 있을 것 같았고, 그런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만화를 통해 이루고 싶은 궁극적인 목표를 이야기했다. 오랜 세월 만화를 그려오면서 그녀는 그녀만의 뚜렷하고 특색있는 목표가 생긴 듯 했다. 처음 만화를 시작할 때에는 단지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점에 만족하였기에 양방향으로 독자들과 소통하기 보다는 일방적으로 스토리텔링을 하는 입장에서 그렸다고 했다. 하지만 이제는 어떻게 독자가 이를 읽어갈지를 염두에 두고 이야기를 구상해가고 있다고 한다. 앞으로도 작가와 독자가 서로 어떻게 다가가야 할 지 고민을 하여 전 지구상의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만화를 그릴 것이라며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잘 먹고 잘 싸고, 잘 쓰고 잘 그리고 잘 나누고 싶다는 그녀의 핑크빛 미래는 만화가 있기에 가능할 것만 같다.

정 정숙‘별맛일기’를 읽고, 만난 작가: 심흥아는 누구인가?

한성희의 작가산책 – 시인 나희덕의 ‘그 말이 잎을 물들었다’

 

 

2001년 8월 30일-시인 나희덕의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깊은 곳에서 네가 나의 뿌리였을 때

나는 막 갈구어진 연한 흙이어서

너를 잘 기억할 수 있다

네 숨결 처음 대이던 그 자리에 더운 김이 오르고

밝은 피 뽑아 제게 흘려보내며 즐거움에 떨던

아, 나의 사랑을

먼 우물 앞에서도 목마르던 나의 뿌리여

나를 뚫고 오르렴

눈 부셔 잘 부스러지는 살이니

내 밝은 피에 즐겁게 발 적시며 뻗어가려므나

-나희덕의 시 ‘뿌리에게’ 중에서

 

교사이면서 시인인 그녀는 청순한 여학생 같았습니다. 그것도 요즘말로 ‘엄친딸’에 속하는 아주 귀티나는 모범생 같은 표정으로 말이지요.

하지만 그녀의 성장기는 그리 평탄하지 않았던가 봅니다. 보육원에서 태어나 대학에 갈 때까지 그곳에서 자랐습니다. 어머니가 보육원 총무일을 보고 계셨기 때문이지요.

그녀의 어머니는 일찍이 부산사범학교를 다니던 수재였는데 기독교에 심취해 산속 공동체로 들어갔고 그곳에서 아버지를 만나 결혼했습니다.

철저한 기독교 정신 안에서 사신 어머니는 그녀를 보육원의 수많은 고아들과 자신의 딸을 똑같이 대했답니다. 그녀는 20년 동안 보육원에서 살며 핵가족이 아니라 공동체 생활을 했습니다. 압력솥의 밥은 먹어보지 못하고 군대식 찜통 밥을 먹으며 밖에서는 보육원 아이이고 안이서는 총무의 딸로 왕따를 당했답니다.

그런 성장과정이 어려운 환경에서도 참아내는 힘과 다른 물에 적응하는 힘을 기르게 되었고, 그게 작가의 밑거름이 되었답니다. 그래서 그녀의 시에는 헌신과 모성과 따뜻함이 배어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1989년 신춘문예에 시 ‘뿌리에게’가 당선되어 등단한 그녀는 그 후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그 곳이 멀지 않다’ 등 시집을 내고 김수영 문학상, 이산문학상, 오늘의 젊은 문학상 등 많은 상을 받았습니다.

6살 때 고속도로 옆 작은 그녀의 집에서 끝없이 이어진 도로를 바라보다가 ‘길 끝엔 무엇이 있을 까! 저 많은 차들은 어디로 갈까!’ 하는 호기심에 혼자 고속도로를 따라갔답니다. 마침내 인터체인지를 만나 서로가 엉킨 도로를 보고 여기가 끝인가! 하고 되돌아 왔다는 그녀는 시는 ‘마음의 일탈에서 벗어나서 보는 눈’이라고 정의합니다.

 

‘자식이 너무 많으신 우리 어머니/나의 어머니라고 고집부리고 나면/왠지 미안해 지는 우리 어머니’같이 그녀의 따뜻한 시세계에 빠져드는 하루였습니다.

 

한 성희한성희의 작가산책 – 시인 나희덕의 ‘그 말이 잎을 물들었다’

‘봄비 한 주머니’-시인 유안진을 만나다

 

 

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 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입은 옷을 갈아입지 않고 김치냄새가 좀 나더라도 흉보지 않을 친구가 우리 집 가까이에 있었으면 좋겠다

비 오는 오후나 눈 내리는 밤에 고무신 끌고 찾아가도 좋을 친구

밤늦도록 공허한 마음도 마음 놓고 불 수 있고

악의 없이 남의 이야기 주고받고 나서도 말이 날까 걱정되지 않는 친구가…

 

유안진 시인의 ‘지란지교를 꿈꾸며’ 의 한소절이었습니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2001년 4월에 만난 유안진 시인은 그의 시 ‘지란지교를 꿈꾸며’ 처럼 꿈을 가득안고 사는 청순한 여인처럼 아름다웠습니다.

 

중학교 때 소월의 ‘산유화’를 읽고 감동받아 문학을 시작했다는 그녀는 시인 외에 아무것도 되지 않으리란 생각으로 대학에 가서도 시를 쓰며 가슴이 후련하고 행복했다고 회상했습니다.

 

1965년 ‘달하’ 라는 시집으로 박목월 시인의 추천을 받아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후 ‘바람꽃은 시들지 않는다’ ‘땡삐’ 등 소설과 ‘그리운 말 한마디’라는 에세이도 선보였습니다.

 

그녀는 인생의 온갖 것이 녹아 가라앉고 그 위로 말갛게 뜨면 건져내 형상화시킨 것이 시라고 정의를 내렸습니다.

 

“시를 데리고 잔다”는 박재삼 시인처럼  시상이 떠오르면 밤에 불도 안 켜고 삐뚤빼뚤 메모하는 습관과 죽어서 저승 가서도 시를 쓸 것이라며 시에 대한 열정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좀 어리석어 보이더라도 침묵하는 연습을 하고 싶다. 그 이유는 많은 말을 하고 난  뒤일수록 더욱 공허를 느끼기 때문이라고.

침묵하는 연습으로 본래의 나로 돌아가 내안에 설익은 생각을 담아 두고 설익은 느낌도 붙잡아 두면서 때를 기다려 무르익히는 시를 쓰고 싶다”는 그녀, 다 익은 생각이나 느낌일지라도 더욱 지긋이 채워 두면서 향기로운 포도주로 발효되는 그런 시인이었습니다.

 

한 성희‘봄비 한 주머니’-시인 유안진을 만나다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 – 시인 정호승을 만나다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겨울 밤 거리에서 귤 몇 개 놓고
살아온 할머니에게
귤 값을 깎으며 기뻐하던 너를 위하여
나의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 주겠다
…… 나는 이제 너에게도 기다림을 주겠다
이 세상에 내리던 함박눈을 멈추겠다
보리밭에 내리던 봄눈들을 데리고
추위에 떠는 사람들의 슬픔에게 다녀와서
눈 그친 눈길을 너와 함께 걷겠다
슬픔의 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가겠다
-정호승의 시 ‘슬픔이 기쁨에게’ 중에서.

2001년 5월 정호승 시인을 만났습니다.
정호승 시인은 “시를 모르고 인생을 사는 것은 밥을 먹지 않고 일생을 사는 것과 같다” 고 했습니다. 그가 쓰는 시의 밑거름은 어릴 때 체험했던 자연이라고 합니다.
꽃밭 가꾸는 어머니를 보면서 세상이 아름답다고 생각했고, 중 2때 처음 본 바다와 수평선은 지금도 충격으로 남아있답니다. 자연은 인간을 위로하고 아름답게 해주는 시가 됩니다. 한편의 시를 읽으면서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일들도 용서하게 된답니다.

그의 시 ‘서울의 예수’는 예수의 신성은 빼버리고 인간성을 부각시킨 시 랍니다. 시를 관통하는 것은 비극인데 그 비극적 서정성에 초점을 맞춰 시를 쓰겠다고 했습니다. 비가 온 뒤 사우디 사막에는 거대한 선인장이 쓰러져 있는데 그 이유가 있답니다. 비가 오면 물을 너무 많이 먹어 제 몸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쓰러져 버리는 거지요. 자신의 생존을 위해 물을 빨아들이지만 죽음에 이르는 어리석은 선인장처럼 물질적 욕망에 사로잡혀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 삶을 돌아보게 하는 것이 ‘시’ 랍니다.

한 그루 나무처럼 내 몸 속에도 서정의 물기가 흐르도록,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어디 여행이라도 떠나고 싶은 시간이었습니다.

한 성희‘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 – 시인 정호승을 만나다

성미급한 작가의 빨리 쓴 만화책- 문지욱 작가의 “눈이 내리면”

책제목이 “눈이 내리면” 이니까..

순수하고 서정적인 첫사랑 이야기가 펼쳐질 것만

같았다.

 

그런데 이게 웬걸?

책을 펼치자마자 첫사랑 이야기에 대한 환상이 깨졌다!


이 책.. 완전 미국식(?) 만화 같달까?

아이패드 프로를 이용해서 아주 휘리릭~ 그려버렸을법한

성미급한 소년이 그린 것 같은 만화다.

뇌에 첫사랑을 담아놓기에도 시간이 아까운 너무나 성미가 급한 소년!

 

하지만 그래도 참 귀엽다.

순수하다.

엉뚱하다.


특히 길가에 며칠동안 죽어있는 다람쥐를 밤새 고민하다가

장례를 치러주는 작가의 엉뚱한 에피소드가 기억에 남는다.

 

이 외에도 소재들이 친숙하다.

학교에 딸린 교구 가게, 피자집, 도서관 사서, 룸메이트, 할인마트 등..



특별하지 않은 소재에 몰입하여

정말 우주로 가는 엉뚱한 결말을 그리고 있을 작가를 떠올리니 웃음이 나왔다.

쓸데없이 귀엽다는 표현은 이런데 쓰는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만학도 소년(사실은 성인임)은

미국 뉴저지 도버에 있는 쿠버트 만화학교를 다닐 때의 에피소드를

자전적 만화로 풀어냈다.

 

자전적 만화라서 사실적 요소도 많긴 하지만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픽션인지 모를만큼

현실과 공상의 세계를 왔다갔다한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여러갈래의 빛 같다.

생각이 정말 빛처럼 빠르다.

 

‘어? 이 결말은 정말 예상못했는데 이상하게 엉뚱하네’

하면서 에피소드가 끝난다.

 

그래서 나는 작가에 대해 상상해봤다.

느긋한 성미를 가진 사람은 아닐 것이라는 것,

소년처럼 아직까지 풍부한 상상력과 창의성을 가진 사람일 것이라는 것이라고 추측하면서

이 흥미로운 작가에 대해 호기심이 생겼다.

이 만화를 그린 문지욱 작가는

목회자의 길을 걷다가, 취미로 그려오던 만화에 인생을 걸어보기로 결심하고

조 쿠버트 만화학교에 입학해 3년간 그림을 공부했다고 한다.

 

조 쿠버트 만화학교가 엄격한 규칙과 강도 높은 훈련으로 유명하다는데

그 설명을 듣고 보니

정말 기계적으로 많은 그림을 그렸겠구나 하는 느낌도 받았다.

기계적인 연습으로 훈련된 자에게 느낄 수 있는

정돈된 느낌과 여유가 느껴졌다.

 

아무튼 작가가 살아온 삶이나 만화를 봤을 때

작가 또한 매우 유쾌한 사람일 것 같다.

곧 있을 작가와의 만남이 기대된다.

서보영성미급한 작가의 빨리 쓴 만화책- 문지욱 작가의 “눈이 내리면”

‘사이’를 읽고 – 진심은 언제나 통하는 법

이 만화는 연수와 유리가 주인공이지만 연수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된다. 말풍선을 제외하고 연수의 입장에서 연수가 직접 상황 설명을 하는 지문으로 만화를 전개해 나간다. 지문을 통해 연수의 속마음을 속속들이 읽다보면 사랑에 빠진 사람의 솔직하고 진솔한 마음을 보며 공감할 수 있게 된다. 사람이 사랑을 하면 알게 모르게 찌질해지고, 어리버리한 모습이 나오게 마련이다. 연수에 이런 모습은 지문을 통해, 또는 작화를 통해 직접 확인을 할 수 있다. 사람이 사랑을 하게 되면 표면적으로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눈에 멋있게 보이고 싶고, 완벽한 사람처럼 보이고 싶지만 결국 사랑에 빠진 사람은 질투를 하고, 내 처지와 상대방의 처지를 비교하고, 상대방의 행동 하나에 일희일비하게 된다.

‘사이’를 보고 있으면 연수가 주인공인 모노드라마를 보고 있는 것 같다. 특히 연수의 감정 기복이 지문과 표정 등을 통해 여실히 들어나는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웃음을 자아내게 만든다. 더불어 4컷의 정형화되어있는 카툰의 규격은 정형화되어있는 앵글을 통해 다양한 구도를 만들어내는 TV드라마와 비슷한 효과를 가져 온다. 똑같은 크기의 앵글에 얼굴만 걸리기도, 상반신이 걸리기도, 전신이 걸리기도 하면서 상황묘사와 심리묘사를 적절하게 그려낸다. 앵글안에 인물을 제외한 다른 공간에 배경을 묘사하기도, 묘사하지 않기도 하고, 채색을 단색으로 하기도, 여러 가지 색으로 하기도 하면서 주인공의 심리에 따라 분위기를 조성하려고 한 작화방식도 모노드라마같은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이렇게 모노드라마 같은 느낌을 통해 연수의 심리 변화와 묘사를 효과적으로 표현하여 연수의 입장에 더욱 몰입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우리는 사랑에 빠졌을 때 나오는 이런 행동들이 찌질한 모습처럼 느껴질 수 있는 사회에 살고 있다. 좋아하는 상대에게 멋있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계산하고, 흔히 말하는 ‘밀당’을 위해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하기도 숨기기도 해야 한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은 어리니까 가능한 감정 소비처럼 느껴진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투명하게 자신의 마음을 보여주기만 하는 것은 왜 어리숙한 모습이 되었고, 때문에 우리는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숨겨야만 한다. 왜 우리는 좋아할 때 당기기만 하면 미련하게 연애를 한다고 비판당하는 사회에 살게 되었을까?

유리가 어학연수를 가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연수는 유리에게 전력투구를 한다. 남들이 보기에는 이루어질 수 없는 관계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연수는 개의치 않고 유리에게 원피스를 선물하면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다. 비록 이뤄지지 않을 관계라고 해도 연수는 마음을 접지 않고 표현한다. 앞으로 만나지 못하게 된다고 하더라고 지금까지 유리와 연수가 지내온 시간들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연수는 유리에게 표현을 한다. 연수에게 이제 만나지 못하게 되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 그 동안 만나왔던 유리의 모습은 너무 예뻤고 그런 유리를 좋아해왔기 때문에 남들이 보기에 멍청해 보일 수도 있는 선물을 하게 된다. 비가 오는 날, 유리의 가게 앞에 심어져 있던 조화 나무에 우산을 씌워준 연수의 모습이 멍청하게 보여도 낭만적으로 느껴지는 것처럼.

연수의 진심은 고스란히 유리에게 전달되었다. 유리가 오랜만에 출근한 어느 날, 자신의 가게 앞에 꽃들에 우산이 씌워져 있는 모습을 보고, 감기에 걸려 카페에는 출근하지 못했지만 유리의 가게에서 가장 예쁜 원피스를 유리를 위해 선물한 모습을 보고 유리는 연수의 진심을 전달받는다. 진심은 언제나 통하는 법이다. 연수는 이를 가장 잘 표현해주는 캐릭터이다. 조금은 멍청해 보이고, 어리숙해 보이고, 찌질해 보일지라도 투명하게 그저 유리를 좋아하는 연수의 마음은 유리로 하여금 먼저 어학연수가 끝나고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하게끔 만들었다. 투명하고 솔직한 진심은 언제나 통한다.

 

김 택상‘사이’를 읽고 – 진심은 언제나 통하는 법

무엇도 해치지 않고 살아갈 순 없을까? – ‘해치지 않아‘를 읽고

수한

사람보다 동물이 좋거든요. 맹목적으로 사랑하고 꼬는 거 없이 곧이곧대로 표현하고.”

 

이은

나도 사람보다 식물이 좋아요. 솔직하잖아요. 목마르면 파시시해지고, 배부르면 물러지고.”

 

 

처음에는 단순히 연애물인 줄 알았지만 읽을수록 책의 작가가 전달하려고 하는 감정은 사랑의 감정이 아닌 배려의 감정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채식주의자인 이은과 수의사인 수한은 각각 식물, 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다. 이은은 직접 채소를 기르며 살아가고, 수한은 버려진 고양이, 강아지들을 구하고 치료하는 역할을 하는 수의사로 살아간다. 이은이 식물을 좋아하는 이유, 수한이 동물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식물과 동물은 솔직하다. 식물은 얼마나 사랑받느냐가 표면적으로 재깍재깍 나타난다. 동물도 마찬가지이다. 목적 없이 사람과 친구가 되고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도 솔직하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현재의 사회와 전혀 반대되는 모습이다. 나의 감정을 최대한 숨겨가며 살아가야 한다. 사람과 사람이 만났을 때 주도권을 잡기 위한 신경전을 벌이고 앞의 사람보다 우위에 서길 원한다. 점점 솔직해 질 수 있는 관계를 맺기에 어려움이 생길 수밖에 없는 사회에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동물과 식물만큼 맹목적으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생물체가 있을까? 내가 사랑을 주면 동물과 식물은 배반하지 않는다. 내가 사랑을 준만큼 나와 유대감을 형성하고 준만큼의 사랑을, 아니 그 보다 더한 사랑을 되돌려 준다. 그에 비해 사람과의 관계는 대부분 사랑을 주는 쪽이 만만히 보인다. 착한 사람, 배려하는 사람은 결국 자신의 잇속을 챙기기 바쁜 사람에게 이용당한다. 오죽했으면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줄 알아요.’라는 영화 대사가 명대사로 뽑히겠는가. 동식물과 사람의 다른 점은 바로 이러한 점에 있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동식물과 사람이 이런 다른 점을 가지게 된 것은 사람들이 더욱 뛰어난 지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뛰어난 지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살아남기 위해서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나의 감정을 숨기고 상대방에게서 필요한 부분을 취하기 위해서 사람들이 이렇게 변화했는지도 모른다. 뛰어난 사람들은 당연히 능력을 인정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뛰어난 사람들이 모두가 옳은 것은 아니다. 모두가 자신이 정의가 되기 위해 경쟁에서 이기려고 하는 것 같다. 하지만 뛰어난 사람이 목적을 달성하고 어느 정도 능력을 인정받게 되었을 때, 뛰어난 사람은 아닌 사람들을 이끌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해치지 않아’의 주인공인 이은과 수한이 꿈꾸는 사회는 바로 그런 사회인 것이다.

만화의 중반부에 이은은 “우리는 무사히 생존할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을 한다. ‘해치지 않아’에서 이은과 수한의 고민은 ‘아무도 해치지 않고 살고 싶은데 그게 그렇게 한심한 걸까?’이다. 생존에 있어서 아무도 해치지 않는 것은, 누군가를 해치며 살아가는 사람에 비해 굉장히 리스크가 크다. 이은과 수한도 이를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생존에 대한 고민을 할 때에는 답을 내리지 못한다. 만화가 점점 후반부로 나아가면서 이은과 수한은 생존을 삶의 목적으로 두는 것이 아닌, 공존을 삶의 목적으로 두어야 된다는 것을 점점 깨닫게 된다. 돈을 많이 벌지 않아도, 누군가의 우위에 서지 않아도, 단지 누군가의 기쁨에 같이 기뻐하고 누군가의 아픔에 같이 아파할 수 있는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것이 공존을 위한 필요조건이다. 생존을 목적으로 두었을 때에는 누군가를 해치지 않으며 살아가는 것에 대해 의심을 가질 수도, 다른 사람의 질타를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공존을 목적으로 두게 되면 해치지 않으며 살아가는 것이 내가 선택한 올바른 삶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게 된다. 뿐만 아니라 해치지 않으며 살아가는 삶에 대한 질타도 나와 다른 목적을 가진 사람의 삶이기 때문에 웃어넘길 수 있게 된다. 공존을 목적으로 할지, 생존을 목적으로 할지는 선택하기 나름이다. 당신은 어떤 삶을 선택할 것인가? 선택은 당신의 몫이다.

Jihyun Youm무엇도 해치지 않고 살아갈 순 없을까? – ‘해치지 않아‘를 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