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크리에이터

왤까? 절망을 말하면서 희망이 되는 시

괜찮은 사람기형도

                               오드리

어느 날 나는

괜찮은 사람기형도를 만나다.

그의 시 속에서

 

그의 시 속에서

나는 또한나를 만나다.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를 삶의 순간을

그는 시로 말하고

나는 마음으로 공감하다.

 

슬프면서도 희락을 느끼다.

아프면서도 치유를 얻다.

들릴듯 말듯 작은 탄식 절로 나와

이내 우렁찬 함성이 되어 우주에 쏟아 붓는다.

 

표정은 여전히 심각한데

속은 시원하구나.

너는 변하지 않았는데

나는 희망이 솟는구나.

 

그가아니 그의 시가

시로 표현된 그의 세상에 대한 공감이

내 일상 속에 부드럽게 다가와

강한 힘을 준다.

 오드리 : “기형도 시인 알아요?”

A : “기형도?” “모르는데요…”

 오드리 : “몰라요유명하다는데…”

A : “뭘로 유명한데요?”

 오드리 : “윤동주 같은 천재 시인이래요근데 천재라 그런지 … 요절했다네요.”

오드리는 평소 유식하고 고상한 A에게 질문을 했다.

A는 기형도라는 사람을 모른다고 했다.

그러나 그냥 지나치지 않고 잿빠르게 인터넷 검색을 했다.

 

A : “정말 그러네요윤동주와는 다른 시대사람인데천재시인 맞네요.”

 오드리 : “함께 글쓰는 모임에서 다들 잘 알던데요저만 모르더라고요.

다행이네요. A씨도 모르는 것 보면 저만 모르는게 아니네요.

저만 몰라서 좀 창피했는데 말이죠… 하하하~

A씨에게 본격적으로 설명을 시작하는 오드리,

 오드리 얼마전 그 모임에서 기형도문학관에 갔었어요저는 너무나 감동했어요.

특히어떤 시 앞에서 숨이 멎고 온 몸이 떨렸어요.

심지어 그 시의 제목이 어떤 메모인거 있죠.

메모조차도 사람의 심금을 울리고 공감을 일으키다니천재시인 맞죠?

A그래요기형도 시가 어땠는데요?

 오드리 슬프면서도 공감을 일으키는 구구절절한 표현들이었어요.

제가 느끼기엔 기형도 시들은 매우 현실성이 강하면서도

가슴 속 깊은 곳에 것을 때로는 수필처럼 묘사하기도 하고

상황표현에 대한 단어가 일으키는 공감력이 대단했어요.

저를 눈물나게 만든 글귀한번 들어보실래요?

A어떤 글인지 궁금하네요

<어떤 메모>

출처 : 기형도 전집 문학과지성사

놀랍게도 내가 하고싶은 이야기와 느끼고 있는 감정들이 이 글에 가득 들어있다.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고하기 싫고할 수 없는 이야기들

글에서라도 공감하며 나는 웃고 또 울었다.

아직 나는 기형도 시인을 모른다.

그의 시는 어렵다슬프다힘들다아프다어둡다.

그런데 쉽고미소짓게 하고안식과 힐링과 희망을 준다.

왤까?

오드리 기자왤까? 절망을 말하면서 희망이 되는 시

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28) – 재즈, 커피에 반하다 ② “Undercurrent (Bill Evans & Jim Hall, Blue Note) 와 과테말라 안티구아 커피”

앨범 Undercurrent (Bill Evans &Jim Hall, Blue Note)는 1962에 발매된 빌 에반스와 짐 홀의 역사적인 듀오 앨범이다. 당시로서는 다분히 희귀했던 피아노와 기타 듀오 구성의 연주임에도 이 앨범을 재즈 미학의 최 정점에 올려놓는 것에 이의를 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또한 두 연주자 모두 쿨 재즈의 대가들이므로 쿨 재즈를 언급할 때 빠트려서는 안 되는 앨범이다.

UNITED KINGDOM – MARCH 19: BBC 2 JAZZ 625 Photo of Bill EVANS and Bill EVANS (Piano) (Photo by David Redfern/Redferns)

UNITED KINGDOM – MARCH 19: BBC 2 JAZZ 625 Photo of Bill EVANS and Bill EVANS (Piano) (Photo by David Redfern/Redferns)

1962년이라면 빌 에반스 트리오의 베이시스트 스콧 라바로가 세상을 떠난 지 1년이 되는 해다. 최고의 파트너이자 친구였던 스콧 라바로의 죽음은 한동안 그에게 연주를 못할 정도의 큰 충격과 비통함을 주었다. 그렇기에 스콧 라바로 타계 이후 첫 녹음 앨범인 Undercurrent는 미처 슬픔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빌 에반스에게 매우 특별한 의미의 작품이다.

그래서일까? 이 앨범에서의 빌 에반스는 이전의 그와는 좀 다르다. 맑고 투명했던 그의 스윙은 뭔가 속마음을 애써 꾹꾹 누르듯 평소보다는 자제되어 있다. 스콧 라바로가 생전이라면 당연히 맡았을 리듬은 짐 홀의 기타가 적절히 감내하고 있다. 마치 스콧 라바로를 추억하는 듯하다.

이 앨범의 첫 번째 인상은 무엇보다도 강렬한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자켓 사진에서 비롯된다. 깊고 어두운 물위에 누워 있는 여인의 모습에서 음울함과 서늘함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완전히 가라앉지도, 그렇다고 부유하듯 떠 있다고도 볼 수 없는 모습이다.

개인적으로는 깊은 물에 트라우마가 있어 타이틀 Undercurrent(암류)와 자켓 사진 그 자체가 압박감이다. 집어들 때마다 늘 주저하게 된다. 마치 Undercurrent가 주는 단어의 의미처럼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불안한 움직임이나 슬픔 같은 감정이다. 음악적인 면을 별개로 하더라도 자켓 사진만으로도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는 앨범이다.

그러나 정작 담긴 음악은 이와는 다른 뉘앙스다. 자켓 이미지와는 정 반대다. 오히려 따뜻하고 포근한 기운마저 느껴진다. 빌 에반스와 짐 홀 두 사람 모두 화려한 스타일과는 거리가 먼 연주자인 만큼 차분하고 조용하다.

앨범이 처음 발매된 당시 피아노와 기타 듀오는 상당히 실험적인 구성이다. 거기에 빌 에반스의 피아노와 짐 홀의 기타는 누가 들어도 구분이 될 만큼 독자적이고 개성이 뚜렷하다. 이 두 사람만으로 구성된 팀이었으니 서로의 존중과 배려가 없다면 정상적인 인터플레이는 기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마치 오랫동안 연주를 통해 우의를 다진 친구들처럼 서로의 음악을 인정해주고 있다. 각자의 영역을 고수하면서도 자신의 빈자리를 메우러 들어오는 상대방을 결코 밀어내지 않는다.

그럼에도 난 이 앨범을 두려움과 불안으로 집어 들어 차분함과 따뜻함으로 듣다가 종래에는 슬픔으로 해석한다. 물론 강렬한 자켓 이미지 탓이 크겠지만 이런 양가감정은 어쩌면 드러내지 못하는 원천적 슬픔과 불안 때문일지도 모른다.

종종 즐겁고 신나야 할 일 앞에서도 그저 덤덤하니 무감해질 때가 있다. 오히려 가슴을 찔러대는 통증에 끙끙대야만 하는 일들이 많아졌다. 이런 저런 사회적 문제의 본질이 결국 내 문제일 수도 있다는 걸 자각하기도 한다. 더욱이 각자의 개인적인 빈곤과 차별, 낙오, 소외, 절망에서 비롯되는 불안과 슬픔은 대놓고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 SNS가 그 창구인 것 같지만 실은 그 반대일 수도 있다는 걸 점점 더 많은 이들이 눈치 채고 있다. 대체 불안과 슬픔이란 어떤 감정이기에 이렇듯 나를 지배하는 걸까?

스피노자는 에티카에서 ‘코나투스(Conatus)’라는 개념을 역설한다. 이에 따르면 모든 양태(사물)는 자신에게 유익한 것은 취하고 자신에게 부적합하거나 위협적인 요소는 피하게 된다. 이는 본성이고 자기 보존 욕망이다. 나아가 이러한 자기 보존 욕망이 증대되는 상태가 기쁨이고, 반대로 자기 보존 욕망이 침해를 받아 내 존재의 힘이 억압받는 상태가 불안이고 슬픔이다. 그러므로 불안과 슬픔은 기쁨에 비해 근본적으로 불완전하다. 기쁨으로 치환하기 위한 노력이야말로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과정인 셈이다. 스피노자의 궁극적인 목표는 행복한 삶을 찾는 것이다. 그러므로 순전히 스피노자에 따른다면 인간은 언제나 불안과 슬픔을 멀리하고 기쁨을 추구하는 삶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리라. 이것이 아마도 스피노자의 철학을 기쁨과 긍정의 철학이라 일컫는 이유일 것이다.

Undercurrent의 자켓 이미지와 연주가 서로 상충하는 이유를 혹 여기에서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불안과 슬픔을 안고 살아야 함에도 빌 에반스와 짐 홀이 그렇듯 타인의 존재를 인정하고 서로의 빈자리를 기꺼이 메워주는 것. 그런 노력을 하는 것. 그것이 불안과 슬픔을 조금씩이나마 이기는 방법이 아닐까?

앨범 Undercurrent의 자켓 사진은 불안과 슬픔의 이미지를 주는 것에 반해 실제 수록된 음악은 따뜻하고 다정한 음악인 것처럼 서로 상반된 이미지와 맛을 가진 커피가 있다. 과테말라의 커피가 그렇다. 과테말라 커피는 왠지 모르게 거칠고 강한 쓴맛의 이미지를 가졌으나 실은 밝고 따뜻한 풍미를 더욱 많이 가지고 있다.

과테말라는 국토의 대부분이 화산재 토양이다. 또한 일교차가 크고 건기와 우기가 뚜렷하다. 특히 화산재 토양의 특성상 미네랄이 풍부하고 배수성이 우수해 커피 재배에 최적이다. 커피 수출액이 과테말라 전체 수출액의 거의 3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커피 산업이 발달되어 있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과테말라 안티구아 (Guatemala Antigua)라는 명칭은 과테말라 내에서도 대표적인 커피 재배지로 유명한 안티구아 지역 커피를 의미한다. 화산재 토양의 고지대에서 주로 생산되는 커피로서 강렬한 스모크(Smoke) 향을 가진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산미 또한 엄청나게 풍부한 커피이기도 하다. 바디감이 뛰어난 건 물론이고 달콤함 마저 우수하다. 나무가 타들어갈 때 나는 훈제 향이 강하다는 인식 때문에 전통적으로 강하게 로스팅 하는 대표적인 품종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중간 혹은 약하게 로스팅 하는 추세가 늘어났다. 그래서 고유의 스모크한 향은 여전히 뛰어나면서도 상큼한 산미 역시 도드라진 과테말라안티구아를 많이 접할 수 있다. 한마디로 스모크 향이라는 강렬한 이미지 때문에 스트롱(Strong)한 향과 맛을 생각했다가 의외의 산미와 부드러움을 경험하는 것이다. 마치 음울한 불안과 슬픔이 배어 있는 이미지와는 달리 실제로는 밝고 따뜻하고 나른한 음악을 담은 앨범 Undercurrent 같다.

 

경 성현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28) – 재즈, 커피에 반하다 ② “Undercurrent (Bill Evans & Jim Hall, Blue Note) 와 과테말라 안티구아 커피”

정정숙의 씨네뮤직 (13) 가족은 나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 ‘동경가족’

가족 영화의 대가 야마다 요지 감독의 101번째 작품이자 베니스 영화제 출품작이기도 한 ‘동경가족’은 제2차 세계대전의 상흔을 뒤로 하고 급속도로 산업화되면서 가족이 해체되는 일본의 풍경을 담담하게 묘사한 걸작이다. 영화는 사랑이 녹아 있는 가족, 부모와 자식, 삶과 죽음에서 현대 가족의 자화상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몇년전 아들이 영화를 보고 크게 감동 받았다며, 나에게 추천해 준 영화이기도 하다.

가부장적이고 고지식하고 뻣뻣한 성격으로 시골 섬에서 학교 선생님을 한 아버지와, 사랑이 넘치는 어머니 (히라야마 부부)는 결혼하여 도쿄에 살고 있는 자식 세 남매를 만나기 위해 모처럼 신칸센을 타고 도쿄로 올라간다. 노부부의 일주일간의 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의사인 큰아들 코이치와 미용실을 운영하는 딸 시게코, 둘째 아들은 일용직으로 무대 일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오랜만에 만난 부모님을 뵙고 자식들은 모두 잘해드린다. 하지만 시간이 길어지면서 분주한 일상을 핑계로 노부부의 방문을 귀찮아하고 부담스러워 하게된다. 딸은 바쁘다는 핑계로 호텔 숙박을 제안하고, 사실 부모님이 언제까지 도쿄에 머무르실지 부담을 갖고 불안해한다. 하지만 영화 속 부모님, 그리고 그들을 비롯한 세상의 모든 부모님,은 누구보다 자식들의 삶을 이해하기에 서운해도 그 서운함을 내색하지 않는다. 마냥 자식들이 잘 살기 바랄뿐이다.

부모님은 익숙하지 않은 호텔이 싫어서 하루 만에 집으로 돌아오고 만다. 그런 부모님께 딸은 비싼 호텔인데 지내지 않고 다시 왔다고 또 매정하게 말한다. 영화를 보면서 그렇게 말하는 딸이 조금은 이해가 갔다. 생업에 쫓기는 자식들은 부모님과 시간을 같이 보내기가 사실 어렵기는 하다. 얼마 전에 우리 엄마가 우리 집에 오셨다. 보고 싶은 엄마가 집에 오셔서 너무 좋긴 했지만 오후에 출근을 해야 하는 나는 엄마를 챙겨 드려야 한다는 게 쉽지가 않았다. 하지만 몸이 불편한 엄마는 오히려 당신이 딸을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밖으로 내색은 안했지만 엄마로서 딸로서 서로가 쉬운 일은 아니었다. 엄마가 가고난 뒤에, 나름 한다고 했지만 더 잘해 드릴 것을, 남는 것은 항상 후회뿐이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보자. 큰아들과 딸은 바쁘다는 핑계로 부모님을 소홀하게 대하지만, 막내아들 쇼지는 자원봉사를 하다가 만난 여자 친구 노리코 (마미코라고 부른다)와 자기가 살고 있는 곳이 비록 단칸방이지만 그곳에서 함께 부모님을 따뜻하게 보살핀다. 엄마는 아들의 여자 친구 노리코의 착한 인품과 고운 성품을 무척 마음에 들어 한다. 못난 아들을 부탁하는 어머니와 어머니를 어르신으로 공경하며 모시는 마미코를 보면서 진정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마미코는 심지어 쇼지가 아침 일찍 출근하고 혼자 집에 계신 어머니를 걱정해서 전날 밤에 냉장고가 비어있다는 것을 알고, 자기도 출근길에 바쁜데도 불구하고 아침거리를 사다드리고 간다. 그런 그녀를 보면서 아들에게 좋은 여자 친구가 있다는 것을 엄마는 너무나 좋아한다. 그런 어머니가 갑자기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지는 예기치 않은 사건으로 가족에게 위기가 닥친다.

병원에 입원을 하면서, 온가족이 병원에 모이고 쇼지로부터 어머니가 쓰러지셨다는 문자를 받은 마미코도 병원으로 온다. 하지만, 그렇게 어머니는 돌아가시게 된다. 아버지가 마미코와의 결혼을 반대하면 엄마가 자신의 편을 들어주기로 하셨는데, 그렇게 마미코를 맘에 들어 하시던 어머니가 하루아침에 돌아가시니 쇼지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다. 그 뿐만 아니라 쇼지의 형제 자매들도 오열을 한다. 장례를 위해 어머님을 고향 섬에 모시는 자리에 마미코도 따라가게 된다.

큰아들과 딸은 장례가 끝나고 바쁘다는 이유로 막내에게 아버지를 맡기고 도쿄로 돌아간다. 현실도 이와 비슷하다.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잠시 슬퍼할 뿐 형과 누나와 마찬가지로 또다시 그 삶속에 우리모두는 들어가기 바쁘다. 막내 쇼지는 장례를 위해 같이 와준 여자친구 마미코에게 어머니가 항상 차고 다니던 손목시계를 유품이라며 준다.

그렇게 아버지를 섬에 홀로 남겨둔 채 자식들은 모두 도시로 돌아간다. 영화는 우리들의 보통적이고 평범한 삶을 담은 것 같으면서도, 마지막까지도 굉장히 감동과 여운이 많이 남는 담백한 영화다. 특히나, 이 영화는 인간의 삶이란 평범한 일상 속에서 뜻밖의 감동적 순간이 찾아오기 마련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영화는 가족이라는 모두가 공감할 만한 주제와 이야기로 국가와 인종을 뛰어넘는 감동을 자아내는 우리들의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그래서인지 평론가들은 반세기가 지난 현재에도 현대사회 가족의 모습을 현실적이고도 섬세하게 그려낸 여전히 공감되는 영화라며 극찬하기도 했고 실제로 제63회 베를린국제영화제 ‘베를리날레 스페셜 갈라’ 부문에 초청받기도 했다.

무엇보다 영화 ‘동경가족’은 세계적인 영화 음악의 거장 히사이시 조의 참여로 특히 뜨거운 주목을 받았다. 히사이시 조는 대학생 시절부터 모더니즘 음악가로 명성을 쌓기 시작했으며, 1982년에 첫 번째 앨범을 발매했다. 발매하는 앨범마다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며 제4회 대한민국 영화대상 음악상, 제3회 아시안필름 어워즈 작곡상 등의 영예를 안기도 하였다. 작품에 참여하게 되어 영광이라고 밝힌 히사이시 조 음악감독은 ‘동경가족’은 개인적으로 굉장히 고민을 많이 한 작품으로 어떤 의미론 무겁고, 어떤 의미로 밝은 영화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야마다 요지 감독은 “공기 같은 음악,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 음악을 원했고 영화 자체가 음악이 많이 필요한 영화가 아니었기 때문에 극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함께 공존하는 음악을 만들고 싶었다.”라고 말하며 작품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현대 사회는 물질적 가치의 생산 증대만을 지나치게 중시하다 보니,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다’는 황금만능주의의 풍조가 나타나게 되면서 가족의 모습도 급변하게 변화하고 있다. 가족의 가치와 의미를 높이 평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낮은 혼인율, 하락하는 출산율,증가하는 이혼율로 현대 사회의 가족은 내적으로 여전히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특히 사회적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가정적인 문제들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이 과거와 다르게 아주 크게 되었다.  특히나 노부모의 부양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요즘, 주변의 이집저집에서 노부모 모시기로 인한 형제자매간 문제도 만만치 않다고 한다. 이 영화를 보면서 지금 우리는 내 부모에게 어떤 아들과 딸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힘든 상황에 빠져있을때에 비로소 가족의 소중함을 절절하게 깨닫는다. 헤쳐 나가기 힘든 고통을 겪을 때 가족은 실로 마음의 큰 위로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이기적인 태도는 나중에 후회만을 남기기 마련이다. 하루하루 살아가기 바쁘고 힘들더라도, 가족을 챙기고 때로는 관심과 사랑으로 손을 내밀자. 내가 가족으로부터 받았던 사랑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그 어떤걸 차치하더라도, 부모님은 물론이고 가족은 누구보다 나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동경가족의 OST는 저작권 문제상 1분짜리 축약본을 올린다. 관심이 있는 사람은 서점이나 음반 가게에서 OST 음반을 살 수 있다고 한다. 

하사이시조의 ost 연주곡

 

정 정숙정정숙의 씨네뮤직 (13) 가족은 나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 ‘동경가족’

시인 기형도를 찾아서

광명시에 있는 기형도 문학관을 다녀왔다. 수년 전부터 지방에 근무하는 아들을 픽업하러 광명 KTX 역을 수시로 드나들면서도 기형도 문학관을 몰랐나 했다. 알고 보니 2017년에 건립되었단다. 문학관은 신식 건물답게 깨끗하고 아늑하게 꾸며져 있었다. 기형도 시인의 누나가 관장으로 있는데 시인이 살았던 집터에서 조금 비켜지었단다. 원래의 집터 위로는 다리가 놓아지고 아파트가 들어섰다.

문학관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먼저 들어오는 것은 기형도 시인의 사진이었다. 우수에 찬 눈빛이 나를 확 끌어들였다. 순수하면서도 어두움이 공존하는 눈빛이었다. 사실 나는 기형도 시인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었다. 알고 있다면 그의 시 ‘엄마 걱정’이나 ‘빈집’ 정도였다. 문학관을 둘러보며 그의 삶과 시와 행적을 더듬는다. 1960년생, 한 살 어린 내 남동생과 동갑이니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았다. 그의 삶은 내 어린 시절과 비슷했다. 시인처럼 서울 근교가 아니라 소읍이었지만 가난하긴 마찬가지였다. 그 시절 대학교육까지 받은 우리 아버지도 병든 몸으로 방구석에 누워계셨고 엄마가 보따리 행상을 하며 가족을 먹여 살렸다. 시인의 ‘엄마 걱정’을 읽으며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을 떠올리곤 했다. 그래도 지금은 그런 추억거리라도 있어 행복하다.

‘나리 나리 개나리’ ‘가을 무덤‘에서 젊은 나이에 심근경색으로 갑자기 삶을 등진 남동생이 생각나 가슴이 먹먹해졌다. 한 살 차이라고 지지 않고 맞먹으려고 해 티격태격 싸우기도 했지만 서울 살이에서는 서로 의지가 되었던 든든한 동생이었다. 그 일로 우리 가족은 아직도 우울한 집단 최면에 걸려있다. 동생의 이름을 부르는 것도 금기다. 어쩌다 동생의 친구라도 만나면 엄마는 몇날 며칠 식음을 끊고 기도실에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그러니 그의 가족들은 어찌 견뎠을까. 가구나 전자제품은 하나의 선택으로 10년을 좌우한다지만 사람은 어린 시절의 경험이 평생을 좌우하기도 한다. 그의 시 ‘위험한 가계’를 읽으면서 그동안 잊고 있었던 아니 일부러 구겨 넣고 꺼내지 않았던 유년시절의 무의식이 떠올라 버렸다. 내 안에 켜켜이 쌓여있던 아픔들이 고백성사처럼 터져 나왔다. 그 시절엔 누구나 다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 가난이 당연한 것인 줄 알았고 그래도 앞으로의 희망의 끈을 바라보며 살았다. 시인처럼 똑똑한 아이가 아니어서 무뎠는지도 모르겠다. 아니지 그 시대 사회라는 것에 눈감아 버려서, 적절히 타협하며 나 편한 대로 살았을 수도 있다. 전시실에 걸려있는 그의 생애를 보면 어린 시절부터 가슴 깊이 상처를 묻어두었지만 공부 잘하고 노래도 잘 부르는 모범생으로 살았다. 자신 안에서 깊게 뿌리내리고 있는 음울과 허무가 쑥쑥 자라는 모습을 속수무책 바라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기형도 문학관을 다녀온 뒤 그의 시 90여 편을 찾아 읽어 보았다. 거의가 죽음과 허무와 우울로 가득 차있다. 마치 그에게 전염된 듯 나도 그 세계에 빠져들어 한참을 허우적거렸다.

‘나무들은 그리고 황폐한 내부를 숨기기 위해 크고 넓은 이파리들을 가득 피워냈다.’<길 위에서 중얼거리다> 그는 29년의 짧은 인생으로 막을 내렸지만 살아있는 우리는 아직도 크고 넓은 이파리들을 피우느라 매일이 전쟁터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질투는 나의 힘> 했지만 그는 죽음으로 자신을 사랑했고 그의 시로 다시 태어났다.

‘나의 영혼은 검은 페이지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누가 나를 펼쳐볼 것인가.’

이제부터 <오래된 서적>그의 검은 페이지를 펼쳐볼 것이다. 우울하지만 묘하게 끌어들이는 그의 문학적 순수함을 배우고 싶어서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던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빈집>

그가 간지 30년이 된 지금 이제 그는 빈집에 홀로 갇혀있지 않았다.

그의 시는 외로운 사람들의 적막한 영혼을 흔들고 문학관을 찾는 많은 사람들의 말동무가 되어주고 있었다.

한 성희시인 기형도를 찾아서

잃어버린 시인을 생각하며 나는 쓰네

오는 3월 7일이면 기형도 시인이 우리와 이 세상으로부터 작별한지 30년이 된다.

내가 그를 시로써 만난 지도 얼추 비슷한 시간이 흘렀다.

유럽여행 중 (1987) 출처: ⓒ문학과지성사

 

어느날 문구점에서 우연히 마주친 코팅 책받침 속 시, ‘입속의 검은 잎’이 주었던 충격을 잊을 수 없다. 아직도 손끝에 느껴지던 책받침의 촉감이 생생하다. 예쁘고 잘생긴 배우의 사진이 들어간 매끈한 코팅을 기대하며 뒤적이다 뜬금없이 마주쳤기 때문일까. ‘악착같이 매달린 입속의 검은 잎이 두렵다’는 마지막 구절에 나도 모르게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등뼈를 타고 흐르던 알 수 없는 공포와 불편한 기분. 그것이 첫 인상이었다. 그때는 군사정권을 벗어난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박종철과 이한열같은 이름이 회자되던 시절이기도 했다.

그렇게 마주친 시가 서점으로 인도했다. 그리고 동명의 유고시집 ‘입속의 검은 잎’을 만났다. 때로는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시울이 빨개지며, 또 암울함에 답답한 가슴을 달래며 읽고 또 읽었다. 온통 사로잡혀 빠져들게 한 시들이었지만 언어는 밝음이 느껴지지 않았다.

출처: ⓒ문학과지성사

나중에서야 우연히 영화를 보러 들른 극장이 그의 죽음을 목격한 장소였음을 알게됐다. 시인을 알기 전에는 하나의 극장일 뿐이었지만 안타까움과 슬픈 기억을 불러 일으키는 그곳에 다시는 갈 수 없었다. 그토록 기형도 시인의 갑작스런 부고는 더 아프게 다가왔다.

시인은 무슨 생각을 하며 슬픔과 공포, 상실감과 애잔함과 고통이 가득한 그 시들을 썼을까. 그때는 그랬다. 나만이 아니었구나. 이 사람도 두려웠고 외로웠구나. 깊이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시집속에서 넘어오는 감정들이 지나치게 선연했으니 말이다. 어릴 적 엄마가 열무 삼십단 이고 나가지는 않았지만 텅 빈 집에 ‘찬밥’처럼 남겨져 공포를 느낀 기억이 생생하다. 또, 가족 또는 가까운 지인의 죽음과 와병 앞에서 절망과 슬픔을 느낀 기억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이렇게 공감하는 것. 바로 이런 것들이 위로를 전했다. 그러니 놀라울 수 밖에. 어둡고 암울하지만 나 홀로가 아님을 알게 하는 것이 그의 시가 가진 힘이다. 이렇듯 갑작스럽게 나타난 시집 한 권이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함으로 잠식돼 있던 나의 이십대 초중반을 관통하며 지나갔다.

그의 시들은 현대시 중에서도 아직까지 그 열기가 이어지고 있다. 사람이 제각각이라 하나 느끼는 감정은 크게 다르지 않음이 그의 시가 영속성을 가지고 살아 숨쉬는 이유가 아닐까. 1989년이나 30년이 흐른 지금이나 가난, 가족의 죽음과 같은 삶의 불행은 변함없이 힘들고 괴롭다.  나이들어가며 무르익어 흘러나오는 시들을 읽고 싶건만, 그는 영원한 29세 청춘으로 남았다. 아주 먼 옛날같이 느껴지는 30년 전,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이 살아있음을 더 생생히 느끼게 해주는 듯 하다.

후니잃어버린 시인을 생각하며 나는 쓰네

박수호 시인의 당신을 위한 시한편 – ‘해남에서 온 편지’ 이지엽

진한 남도사투리의 편지 사연에 푹 빠져 읽어가노라면 그 정서가 덩어리째 스며든다. 따로 사투리 해석이 없어도 오 난독의 염려가 별로 없지 싶으나 몇 가지 시인이 알려주는 대로 풀이하자면, 비민하것냐만→ 어련히 알아 하겠냐만, 징허긴 징헌갑다→ 심하긴 심한가보다, 너할코→ 너마저, 제금 나고→ 결혼해서 떠나고를 뜻한다. 그리고 이 시의 배경에 대해서도 언급한 바 있어 마저 소개한다.

“내가 있는 학교의 제자 중에 수녀가 한 사람 있었다. 몇 해 전 남도 답사길에 학생 몇이랑 그 수녀의 고향집을 들르게 되었는데 다 제금 나고 노모 한 분만 집을 지키고 있었다. 생전에 남편이 꽃과 나무를 좋아해 집안은 물론 텃밭까지 꽃들이 혼자 보기에는 민망할 정도로 흐드러져 있었다.”

어머니가 딸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을 빌린 넋두리로 씌어진 이 작품은 어머니 혼자서 빈집을 지키며 살아가는 농촌생활의 피폐함과 쓸쓸함, 그리고 수녀가 되겠다는 딸에 대한 안타까움 같은 것이 진하게 배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분위기를 일시에 반전시키는 마지막의 처리가 인상적이다. 농촌의 어두운 분위기와는 아랑곳없이 ‘복사꽃 저리 환하게’ 피었기 때문이다. 즉 인간사와는 상관없이 자연은 어김없이 그 질서를 되풀이하는 것이다. ‘혼자 볼랑께 영 아깝다’는 구절 속에는 보고 싶은 딸과 죽은 남편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친다.

그리움은 보고픈 감정이 해결되지 않을 때의 묵힌 정서 상황이다. 사랑하는 사람 사이의 그리움이 별밭에 일렁이는 은하수라면 고향에 계시는 부모들의 도회로 나간 자식들에 대한 그리움은 차라리 겨울 비탈에 선 애절한 나목이다. 부모 둥지 떠난 자식들의 고향 찾는 횟수가 고작해야 일 년에 두어 번. 아니면 그조차 여의치 않을 수도 있다. 너나없이 승용차가 있고 씽씽 KTX가 달린다한들 사정은 별로 나아진 게 없다. 힘들게 고향을 찾아와서도 재깍 내빼고 튈 궁리만 앞선다. 처음부터 복귀할 만반의 태세를 갖춘 사람 같다. 그래야 잘 나가는 자식의 유세처럼 보인다. 더구나 올해는 추석을 끼고 3일간 도로 통행료를 면제해 준다니 웬만큼 산다 싶은 이도 얼씨구나 찬스를 놓치지 않으려 시방 고속도로는 북새통이다.

우리 ‘엄니’들이 일찌감치 명절날 달력에 동그라미 치고 그리움을 예약하시는 마음에 비해 추석 한나절부터 서두르는 귀경행렬을 보면 도회 사는 자식들의 부모에 대한 그리움은 참 야속하고 사무적이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해남 출신 이지엽 시인의 시에 등장하는 이 노모는 홀로지만 참으로 꿋꿋하다. 복사꽃 저리 환하게 핀 것을 혼자 보기 아깝다면서 짐짓 자식들에게 유혹의 추파를 보내지만 먹혀들지 않으리란 것도 잘 안다. 마침내 대한민국은 ‘고령사회’로 진입했다.

노인 홀로 가구는 늘고만 있다. 수녀가 되어 종신서원 받은 딸자식과 엄마의 특수한 관계와 사정은 별개로 치고, 지금 우리가 부모를 생각하는 마음이 부모의 그것에 훨씬 못 미친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장차는 그 불균형이 더욱 심화되리란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어머니 떠나시고서 지난 설에 이어 두 번째 맞는 명절이다. 어머니 안 계시는 추석을 지내고보니 어머니가 드리웠던 사랑의 그늘이 얼마나 넓은지를 새삼 깨달았다. 남 보기엔 무심한척 해도 혼자 있을 때 불쑥불쑥 치밀어 오르는 그리움은 어찌할 수 없다. 일반화시켜 말할 건 아니지만 우리 자식들이 부모를 받들어줄 것이란 기대는 거의 무망하다. 노후의 경제적 안정 못지않게 정서적 안정과 자립이 필요한 때다. 도리 없다, 자식에 대한 기대는 팍팍 줄이고 그리움 또한 탈탈 털어내는 수밖에는.

박 수호박수호 시인의 당신을 위한 시한편 – ‘해남에서 온 편지’ 이지엽

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27) – 재즈, 커피에 반하다 ① “Clifford Brown With Strings & 케냐산(産) 원두”

1956년 6월 26일.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시카고로 향하던 한 대의 승용차가 도로를 달리던 중 5미터 높이의 제방 밑으로 추락하는 사고가 일어난다. 당시의 필라델피아의 기상은 폭우가 쏟아지던 상태였다. 차를 타고 있던 세 명의 승객 모두는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처음엔 단순한 교통사고로 보도되었을 뿐이다. 하지만 이 사고는 곧 재즈사에 영원히 언급될 한 젊은 연주자의 죽음을 의미하는 비극이 되었다.

클리포드 브라운(Clifford Brown). 그를 언급할 때마다 떠오르는 수식어가 있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신이 그의 재능을 질투한 바람에 너무나 빨리 세상을 등지게 된 천재. 26년의 짧은 생애. 레코딩 기간은 겨우 4년. 그리고는 신기루처럼 떠나버린 비운의 천재 트럼페터. 그러나 그 짧은 기간에 남긴 음반들은 하나같이 역사적인 명반으로 남았다.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고 하지만 그가 만약 그렇게 일찍 절명하지 않았더라면 과연 재즈는 현재 어떤 모습으로 우리 앞에 존재할까? 그의 음악은 끝까지 완벽함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그만큼 그가 남긴 흔적들이 강렬했기에 가능한 물음이고 가정이다.

사고 당일 그는 피아니스트 버드 파웰의 동생 리치 파월과 그의 부인 크리스와 함께 시카고의 클럽으로 연주하러 가던 길이었다. 불행하게도 자동차 주인인 리치 파웰은 미숙했던 그의 부인에게 운전을 맡겼고, 차는 빗길에 미끄러져 사고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마디로 일어나지 않아도 되었을 어이없는 사고였다는 것이다.

그의 죽음은 당시 재즈계에도 엄청난 충격을 불러왔다. 술과 마약으로 취해있던 대부분의 연주자들과는 달리 그는 마약에 전혀 손을 대지 않았고 깨끗한 사생활과 인성으로 주변의 평도 훌륭했다. 이튿날 사고 소식을 들은 디지 길레스피 악단의 멤버들은 공연 진행이 어려울 정도로 통곡하는 바람에 공연을 엉망으로 마쳤다는 일화가 전해질 정도였다.

애니메이션 치코와 리타에 깜짝등장하는 디지 길레스피악단

단명한 뮤지션으로 이토록 강렬한 인상을 주고 떠난 경우는 빌 에반스 트리오의 베이시스트 스콧 라바로 정도가 있을까? 이 시기를 대표하는 재즈 트럼페터는 당연히 마일즈 데이비스를 들 수 있다. 그러나 클리포드 브라운이 계속 활동을 했더라면 어쩌면 마일즈는 오늘날 그가 가지고 있는 명성의 상당부분을 클리포드 브라운에게 양보해야 할지도 모른다.

1930년생인 클리포드 브라운은 여러 악기를 다룬 아버지의 영향을 받았지만 고교 입학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음악을 시작하였고 대학 졸업 후인 1952년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단지 4년 후에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하게 되지만 이 짧은 시기 비교적 많은 앨범을 남겼다. 이 앨범들 모두가 비교할 수 없는 높은 완성도로 고고하게 빛나고 있으니 수혜를 받는 우리로서는 그저 다행할 뿐이다.

최초의 녹음은 1952년 5월 시카고에서 이루어졌으나 정식 앨범을 위해 작업한 것은 아니라서 그의 사후 기록을 뒤져 찾은 끝에 발매될 수 있었다. 결국 실질적인 데뷔 앨범으로 꼽는 것은 1953년 뉴욕에서 녹음한 ‘Clifford Brown Memorial Album’이다. 그러나 이 역시 앨범 제목에서도 볼 수 있다시피 그에 대한 추모 앨범 형식으로 사후에 발매되었다.

그가 생존했던 당시에 앨범이 발매되지 않았다는 건 당시만 해도 그가 그다지 중요한 인물로 부각되지 않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1953년에 입단한 라이오넬 햄프턴 밴드에서의 입지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밴드의 유럽 순회공연 당시 개별 음악활동 금지라는 규칙을 어긴 일로 밴드에서 쫓겨나게 된다. 하지만 곧 아트 블래키에 발탁되는 행운을 얻게 된다. 클리포드 브라운으로서는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1954년 2월 2일은 기념비적인 날이다. 뉴욕의 클럽 ‘버드랜드’에서 향후 재즈사에 남을 위대한 공연이 열렸기 때문이다. 진정한 하드 밥의 태동이 이날 이루어졌고 그 주인공은 단연 클리포드 브라운이다. 대중들이 그간 들었던 마일즈 데이비스의 트럼펫과는 완전히 대비되는 속주와 파워풀한 블로잉은 클리포드 브라운 자신은 물론 리더 아트 블래키와 그의 밴드 재즈 메신져스, 그리고 호레이스 실버의 등장을 알리게 된 엄청난 사건이 되었다.

이후 그는 자신의 입지를 확고히 굳히게 되어 드러머 맥스 로치와 더불어 ‘브라운 & 로치’라는 퀸텟을 만들게 된다. 두 리더를 제외한 멤버들의 교체로 구성에 다소 부침이 있었으나 워낙 클리포드 브라운과 맥스 로치의 역량이 뛰어났기에 큰 문제는 없었다. 특히 이 시기에 레이블 ‘엠아시’에서 녹음한 ‘Clifford Brown And Max Roach’를 비롯한 다수의 앨범과 다이나 워싱턴, 헬렌 메릴, 사라 본 등 실력 있는 여성 보컬과 각각 협연한 앨범들은 모두 명반으로 일컬어지는 수작이 되었다. 특히 이번에 소개할 ‘Clifford Brown With Strings’는 특이하게도 현악 오케스트라와 함께 했다.

‘Clifford Brown With Strings’는 1955년 작품이다. 이전에 나온 여타 엠아시의 앨범들에 비해 한결 부드러우면서도 감성적인 클리포드 브라운의 브로잉이 배경음으로 퍼지는 현악 오케스트라의 사운드와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클래식컬 하면서도 결코 재즈의 주제 선율을 잃지 않고 있다. 수록곡들 모두 주옥같은 재즈 스탠더드 발라드다. 언제, 어디서, 누가 들어도 만족할 만한 연주다. 절제된 맥스 로치의 드러밍 또한 놓쳐서는 안 될 명작이다.

이 아름다운 앨범 Clifford Brown With Strings에 어울릴만한 커피를 고른다면 제일 먼저 케냐산(産) 원두를 꼽는다.

19세기 후반 인접 국가인 에티오피아를 통해 도입된 케냐의 커피는 거의 해발 1,500미터 이상 고지대에서 재배되며 대부분 지역의 기온과 강우량, 토질, 일조량 등이 커피 재배 조건에 이상적이다. 전반적으로 품질이 균일하고 신뢰할 만하다. 재배와 가공, 선별, 판매 시스템이 국가적 차원에서 관리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AA 등급의 원두를 흔히 접할 수 있어 일반적인 등급으로 오해하기 쉬우나 AA 등급은 실제로 케냐 커피 중에서도 최고의 등급을 말한다. 그만큼 맛과 향을 보장할 수 있다. 또한 로스팅의 스펙트럼이 넓기로 유명하다. 즉, 약볶음부터 강볶음까지 어떤 포인트로 로스팅을 해도 저마다의 향미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발현된다는 뜻이다. 깊고 묵직한 바디감과 향기로운 꽃향, 감귤류의 산미와 너트류의 고소함, 다크 초콜렛의 쓴 맛과 달콤함, 중후함과 산뜻함을 동시에 가진 최고의 밸런스를 자랑한다. 커피는 원래 호불호가 극명한 기호품이지만 케냐 커피만큼은 누가 마시든 우호적으로 평가하는 몇 안 되는 원두다. 앨범 Clifford Brown With Strings이 누구나 좋아할 만한 보편적인 감성을 표현한 것과 비슷하다.

어쩌면 절정의 기량을 가진 상태에서 절명했기 때문에 클리포드 브라운이 더욱 위대한 이름으로 칭송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최고의 연주와 앨범을 만들어내고는 홀연히 사라져서 세인의 입에 오르내리기도 전에 이미 전설이 되었기 때문이다. 마일즈 데이비스가 오랜 기간 혁신과 창조를 우리에게 선사했다면 그 반대편엔 당대의 순간을 보석처럼 화려하게 빛나게 한 클리포드 브라운이 있다. 1952년부터 1956년까지는 그야말로 온전히 클리포드 브라운의 시대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는 고루한 말은 진정 클리포드 브라운 때문에 영원히 격언으로 남을 수 있게 되었다.

경 성현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27) – 재즈, 커피에 반하다 ① “Clifford Brown With Strings & 케냐산(産) 원두”

모해의 만화일기 – (2)외모지상주의

박태근모해의 만화일기 – (2)외모지상주의

후니와 수기의 그들의 연애 – 제9화 화려함 속에 감춰진 그들의 인생극장.- 이브생로랑과 베르사체.

후니와 수기의 그들의 연애

제 9화 화려함 속에 감춰진 그들의 인생극장.- 이브생로랑과 베르사체.

패션에 대해 깜깜인 저에게 이브생로랑은 아름다운 외모와 영화로 먼저 알게 됐습니다.

[뭐지? 이 단정한 느낌의 사람은?? 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브생로랑은1936년 알제리 오랑에서 태어났습니다.

[이브생로랑 1936-2008]

이 섬세한 천재디자이너의 비극은 원하지 않는 군 징집에서부터였네요. 짧았지만 엄청난 생채기를 남겼습니다.

프랑스에서 인기가 많아서 [생 로랑]-왼쪽 과 [이브생로랑]-오른쪽이라는 두편의 영화가 나왔답니다.

파트너 피에르베르제가 인정한 영화는 [이브생로랑] 이라네요?하지만 영화평론가들은 [생 로랑]의 편을 들어줬답니다.

[남자의턱시도를 변형시킨 르 스모킹 룩]

[사파리 룩을 최초로 고안했다 하네요?]

                                      [자신이 직접 (최초의)누드모델로 나선 남성용 향수 YSL]

http://www.elle.co.kr/article/view.asp?MenuCode=en010103&intSno=7081

그의 패션업적은 여기를 클릭해서 보시면 됩니당~!

                                                [훈훈한 미남 이브생로랑]

      [이브생로랑과 백년해로(?) 한 피에르 베르제. 처음엔 이성적 끌림이었다가 나중엔 사업 파트너로서 더 큰 역할을 한 듯 합니다.]-다큐멘터리영화도 있습니다.’이브생로랑의 라무르’

 

2018년 11월에 이브생로랑의 절친 ‘쉘부르의 우산’으로 유명한 여배우 까뜨린드뇌브가 자신이 가진 이브생로랑의 옷을 경매로 내놓는다고 해서 화제가 됐었답니다.

 

                         이브생로랑이 뭔가 절제된 미가 있었다면 다음 디자이너는 베르사체입니다.

                                              [메두사 로고가 유명한 이탈리아명품입니다.]

‘Gianni Versace’는 1946년 이탈리아 남부 카리브리에서 태어난 그는 건축을 전공 했지만 이탈리아 인기브랜드에 디자인을 제공하는 프리랜서로 일을 시작했다.

 

26살에 밀라노에 디자이너로 입성한 ‘Gianni Versace’는 1978년데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로 독특한 패션세계를 구축했다.

.-출처 https://brandhistory.weebly.com/versace.html

              [이 디자인은 모두 아시죠? 베르사체입니다.2018년에 베르사체 40주년이었답니다.]

 

역사와 예술사에 대한 남다른 지식과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베르사체는 자신의 작품세계에 다양한 고전 문화들과 사상들을 섞어 배합하는 포스트 모더니즘 패션을 탄생시키는데 그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시대,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의 문화 예술들을 화려하게 섞고 녹아내며 화려하고 심오한 문양과 프린트를 가진 그만의 독특하고도 화려한 작품들을 만들어내었다.

-출처

http://koreafashion.org/info/info_content_view.asp?flag=2&cataIdx=803&boardId=story&clientIdx=307&num=271

[지아니 베르사체와 그의 연인인 안토니오 다미코 는 베르사체의 유언에 따라 매달 2만6000달러의 연금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베르사체의 끝사랑 이었나봅니다.-훈훈한 두사람인데..게이군요ㅠ.ㅠ ]

                        [베르사체를 죽인 앤드류 커내넌의 수배 사진- 결국 그는 변사체로 발견됩니다.]

베르사체가 죽은 이후에 여동생 도나텔라 베르사체가 사업을 이끌었는데 결국 팔렸습니다.

[베르사체 세 남매. 왼쪽부터 산토, 도나텔라, 지아니 베르사체]

[지나친 성형으로 미국에서 코미디의 소재가 되는 것 같습니다.ㅠ.ㅠ ]

 

기사의 마무리는 아름다운 이브생로랑의 전성기시절 사진으로 합니다.

천재의 삶은 화려해 보이지만 치열하고 기구한가 봅니다.

 

 

 

박 현숙후니와 수기의 그들의 연애 – 제9화 화려함 속에 감춰진 그들의 인생극장.- 이브생로랑과 베르사체.

여계봉의 산정천리-(1)神이 빚은 雪國에 혼저옵서예

한라산을 오를 때마다 항상 가슴 설렌다특히 겨울 한라를 오를 때는 설렘이 두 배다며칠간 내린 폭설로 한라산 오르는 모든 도로가 결빙되어 입산이 통제되었다가 오늘 아침에서야 풀린다오늘은 돈내코를 출발하여 한라산 남벽과 서북벽을 거쳐 윗세오름을 지나 영실로 하산한다정상인 백록담은 오르지 못하지만 한라산 최고의 눈꽃 산행 코스다.

15년간의 긴 휴식년을 끝내고 2009년 재개방된 돈내코 탐방로는 한라산 100만 명 탐방객 시대에 포화상태에 있는 탐방객의 분산효과를 갖고탐방로마다 다양한 특색이 있는 한라산을 보여주는 효과도 있다.

돈내코 탐방로는 친환경적인 탐방로다다른 탐방로보다 오르고 내리기가 상대적으로 편하다봄에는 참나무 꽃과 살채기도에 소나무숲이 반기고 평궤 대피소부터는 한라산 남벽의 수려한 경관을 탐방 내내 감상할 수 있으며최고의 철쭉 군락지와 넓은 고산지대의 희귀한 식물들웅장한 백록담 화구벽과 평궤에서 바라보는 서귀포 시내와 남태평양의 조망은 막힌 가슴을 탁 트이게 한다한라산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최고의 탐방로라 할 수 있다.

한라산에 오르면 겨울에도 늘 푸르게 보이는 나무가 굴거리나무다겨울이 되면 키높은 나무들의 이파리가 떨구어지니 햇살을 잘 받아 겨우내 광합성을 열심히 하여 그 싱그러움이 더욱 유지된다그 사이로 내려앉는 햇살은 수정처럼 파랗게 투명하다햇살의 보시이게 바로 무상의 보시가 아닌가.

등산로를 걷다보면 눈에 파묻혀 힘겨워하는 무성한 조릿대가 가엽다그래서인지 바람에 댓잎 부딪치는 소리가 아름다우면서도 가슴 저미는 선율로 다가온다숨찬 고개를 뒤로 꺾어 걸어온 길을 내려다보면 거기에 사바는 없고 항상 새벽같이 깨어 있는 백색 숲의 이랑만 가득하다.

평궤대피소 인근에 이르면 비로소 밀림 속에 가렸던 하늘이 열리고 사방천지 시야가 트이면서 남태평양과 서귀포 쪽이 시원스레 조망되고 고개를 돌리면 바로 한라산 정상이 올려다 보인다참호처럼 만들어진 평궤대피소는 굴처럼 생긴 독특한 건축물이다원래 라는 것이 바위와 절벽으로 이루어진 푹 파인 굴이라는 뜻이다.

작가 오희삼은 <한라산 편지>에서 백두산이 북녘 땅 만주벌판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아내는 곳이라면한라산은 망망대해 태평양에서 불어오는 태풍을 온몸으로 껴안는 우리 국토의 파수꾼인 셈이다.’라고 두 산을 명료하게 정의 내린다.

남벽이 그 장엄한 모습으로 우리 일행에게 서서히 다가오자 소리 없는 장중한 음악이 온 설원을 뒤흔든다걸음을 멈추고 숨소리까지 줄여가며 황홀하게 그 모습을 바라본다세월에서 묵은 때저자에서 얻은 먼지를 여기에서 털어내며 설경의 운치를 훔친다.

윗세오름 주변의 1600~1700m 고도에서 구름을 거두어 맑은 하늘을 준 것이 마치 우리의 간절한 바램을 들어준 한라산의 신령하심으로 느껴진다산과 나무와 풀과 숲과 자연 속의 생명을 사랑하는 우리의 작은 정성을 갸륵하게 여겨주신 듯하다.

방아오름샘에 고인 맑은 약수를 한 모금 삼키니 폐부까지 얼얼해진다약수 한 잔에 오롯이 살아 있음을 자각한다방아오름샘을 지나니 기차터널처럼 긴 눈 터널이 우리 일행을 기다린다.

남벽을 지나 서북벽을 향하면서 등로 왼쪽으로 하얀 산호초로 뒤덮인 오름이 나타난다한라산에서 만난 자연은 한마디로 신들의 정원이다말없이 큰 가르침을 들려주는 자연은 또 하나의 크나큰 스승이다어디를 향해 가는지도 모른 채 앞만 보고 숨 가쁘게 달려가는 사람들에게 자연은 경전이자 성경이다.

어떤 작가는 제주도와 한라산은 하나라고 말한다한라산이 백록담에서 뻗어내려 해안선에 이르면서 제주도라는 섬을 이룬다는 것인데한라산은 제주도라는 나무의 뿌리이면서 줄기라는 것이다결국 한라산이 제주도이며제주도가 한라산인 셈이다.

나무도 숲도 계곡도 하늘도 일체가 묵언에 들어 있다눈 외투를 두른 하얀 산에 눈꽃이 난무하니 그건 아마도 적멸의 꽃이다.눈 천지 속을 누가 앞서간 흔적그 알 수 없는 이의 발자취가 뒷사람에게는 바로 길이 된다.

인적 끓긴 윗세오름대피소는 모든 것이 얼어붙어 있다. ‘바람이 멈춘 뒤에 꽃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노래하는 새소리로 산이 고요한 것을 안다.’라고 말씀하신 어느 스님의 반어적 법어가 생각난다그러나 이곳은 바람은 있으나 소리는 없다소리조차 얼어붙어 있다.

우리가 지나가는 선작지왓은 한없이 넓은 초원의 광야이다봄에는 난쟁이 산죽이 온 산을 뒤덮고 있지만 지금은 백설로 가득하다이곳이 바로 선작지왓이다선작지왓에서 은 서 있다‘, ‘작지는 을 가리키는 말이고, ‘은 제주 사투리로서 을 이른다봄에는 돌 틈 사이로 피어나는 산철쭉과 털진달래가 붉게 꽃의 바다를 이루고여름에는 하얀 뭉게구름과 함께 녹색의 물결을 이루어 산상의 정원이라고 부른다여기의 작은 나무들이 가을에는 단풍을겨울에는 설경을 만드는 이 초원은 한라산이 자랑하고 있는 식물들의 보고다.

윗세오름(1,700m)에서 영실휴게소까지 고도차는 비록 420m이지만 그리 녹녹한 코스는 아니다하산 길은 강풍에 날리는 얼음 알갱이 때문에 고글이 없으면 눈을 뜰 수 없는 극한 상황이다해발 1,600m 지점을 지나자 몰아치는 눈보라에 한라산 정상은 눈앞의 시야에서 사라지고 등로를 가리키는 빨간 깃발만이 바람을 타고 있다아득한 광야에서 혹독한 자연의 시련을 겪는 노루들이 귀를 쫑긋 세우고 금방이라도 우리 눈앞에 나타날 것 같다.

병풍바위와 오백나한으로 둘러싸인 영실기암은 천태만상의 기암괴석들이 울창한 숲과 어우러져 절경을 이룬다영실기암 머리 위로 구름은 화살처럼 빨리 흐르고 기상은 급격히 나빠져 앞과 뒤 구분이 잘 되지 않는다.

등로 왼쪽으로 신들의 거처라고 불리는 거대한 병풍바위가 우리 앞을 가로막는다수직의 바위들이 절리를 이루며 마치 병풍을 펼쳐 놓은 것 같다병풍바위는 얼어붙은 비폭포와 함께 겨울의 깊은 심연 속에 잠들어있다.

병풍바위 아래에 깔린 연무를 헤치니 서귀포 시가지가 아련하게 보인다세찬 골바람이 데려오는 산 아래 번거로운 소식은 어림없다마음이 번거로우면 세상이 번거롭고마음이 밝으면 세상이 밝다.

쥐고 있는 것들다 놔버려라.

병풍바위를 지나서 가파른 등로를 내려서면 구상나무 숲 사이로 산죽길이 나타난다주목과 비슷한 구상나무 군락지는 백록담을 중심으로 하여 해발 약 1,400m 이상의 고지 8백만 평의 넓은 땅에서 자라고 있는데제주도 기후가 변하면서 군락지가 계속 줄어들고 있다니 유감스럽기 그지없다.

한라산은 봄이면 절벽 사이로 화사하게 피어나는 철쭉꽃한 여름에는 비가 오고 난 후 짙은 녹음 사이로 떨어지는 폭포수가을에는 만산홍엽(萬山紅葉)으로 치장한 단풍으로 선경을 이룬다.

오늘은 우리에게 순백으로 단장한 기암괴석과 만개한 설화의 절경을 보여준다순백의 눈꽃은 봄 생명을 잉태하기 위한 전령이다.

순백색 순정함으로 삶을 환기시키는 눈 산을 오르는 일은 얼마나 큰 길운인가.

영실휴게소 입구를 들어서면 처음 만나는 것이 <영실 소나무 숲>인데 산림청이 주관한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우수상을 수상한 그 숲이다.

13km의 눈길을 5시간 이상 걸으면서 신이 빚은 설국에서 천상의 설경을 원도 한도 없이 마음껏 구경했건만 내 심장으로 찾아와 그리움으로 핀 설화는 계속해서 눈앞에 아른거린다.

천상의 설원에 봄날이 찾아와 천상의 화원으로 옷을 바꾸어 입으면 이 계절의 들꽃만이 연주할 수 있는 봄날의 향연에 다시 초대받고 싶다.

그리하여 흐르는 구름으로 나그네 되어 어지러운 꽃 바다의 들판에서 꽃날의 몽환에 한줌 내 영혼을 빼앗기고 싶다.

여 계봉여계봉의 산정천리-(1)神이 빚은 雪國에 혼저옵서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