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크리에이터

[후니와 수기의 그들의 연애] 제11화 드라마 눈이 부시게 장준하의 시계와 사랑.

얼마전 종영된 JTBC ‘눈이 부시게’

78세의 국민어머니 김혜자 배우가 열연합니다.

주인공 ‘이준하’ 역할로 열연한 배우 남주혁

드라마에서 남주인공 ‘이준하’ 의 실제 모델로 알려진 ‘장준하’

그는 자유민주주의자였고, 행동하는 지성인이었고, 와는 결코 한 치의 타협도 않는 외곬의 반골이었다. 야인이고, 들사람이고, 현대의 아웃사이더였다. 그는 명철한 언론인이었고, 주체적인 민족주의자이며, 비폭력적인 사회개혁주의자였다- 나무위키

장준하 선생은 1991년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 에서 장하림의 모델이기 합니다.

                               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장준하 전 의원, 문익환 목사, 윤동주 시인,

                                             정일권 전 국회의장. 윤동주기념사업회 제공

장준하는 1938년 3월 신성중학교를 졸업한 후 숭실전문학교를 거쳐 부친처럼 개신교 목사가 될 계획이었으나 숭실전문학교가 신사참배 거부운동으로 폐쇄당하자, 1938년 평안북도 정주에 있던 신안소학교 교사로 부임하여 3년 동안 교사로서 활동하였다 -위키백과

신안소학교 교사시절 부인이된 김희숙여사와 만난다.

1943년 11월 장준하는 신안소학교 시절 제자이자, 같은 마을에 살던 김준덕노선삼의 맏딸인 김희숙과 결혼하였다. 김희숙의 집은 부친 김준덕의 중국 망명으로 조선총독부의 주목을 받았고, 김희숙은 이러한 사정을 장준하에게 알렸다. 결혼을 하는 것이 김희숙을 보호하는 길이라 확신하게 된 장준하는 김희숙의 편지를 받고 바로 귀국하여 김희숙과 결혼하였다- 위키백과

장준하와 김희숙은 스승과 제자이자 사랑하는 사이였고 동료이지 않았을까 추측합니다.

사상계(思想界)는 1953년 4월장준하문교부 기관지인 《사상》을 인수해 창간한 월간 종합교양지이다.

창간호 3,000부가 발간과 동시에 매진되는 등 식자층으로부터 폭넓은 인기를 끌었고, 남북통일 문제 및 노동자 문제 등 당시로써는 공산주의자로 몰리기 쉬운 논쟁에서부터 시, 소설 등의 문학작품까지 폭넓은 분야의 글을 실었다.

하지만 주필 장준하가 5·16 군사정변으로 정권을 탈취한 박정희의 부패, 친일, 언론탄압 의혹을 비판하면서 경영난에 시달렸고, 장준하가 국회의원이 되면서 부완혁에게 주필직을 이양하고 재기를 노렸으나 끝내 1970년 5월의 205호를 마지막으로 발간이 중단되었다.2005년 장준하의 장남 장호권이 복간했고, 그는 2008년 현재까지 발행인과 사장을 겸하고 있다.-위키백과

그뿐이면 말도 안 해. 장 선생은 아내의 옷가지와 패물을 팔아치웠을 뿐 아니라 아내를 아주 혹독하게 부려(?) 먹어. “아내를 시켜 교정을 보게 했다. 생전 처음 하는 일이라 서툴러 빠져 일의 템포가 늦고 그나마 가르쳐 준 대로도 못 할 때면 슬며시 울화도 났지만 그렇다고 남들이 보는 남들의 사무실에서 핀잔을 주어 부부싸움을 벌일 수도 없는 일이었다.” (장준하가 <브니엘>에 쓴 글) 아내에게 생판 해 보지 않은 일을 억지로 떠맡겨 놓고도 미안해하는 기색은커녕 그 서툼을 고발(?)하면서 자신의 인내력(?)을 자랑하고 있는 이 간 큰 남자.-[딴지일보 기사] http://www.ddanzi.com/ddanziNews/120766617

아내의 패물과 옷가지를 팔아치워서 잡지사를 차리고 교정까지 시켰는데 일을 못한다고 그 당시 잡지에 글을 기고함. ~^^:::

장준하는 한때 목회자를 꿈꿨으나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과감히 행동하는 지식인의 삶을 살아갔습니다. 그런 남편을 묵묵히 뒷바라지한 김희숙 여사의 사랑은 참 대단하게 느껴집니다.그리고 그런 부인을 위해 혼인성배를 하면서 개종한 장준하의 사랑 표현방식도 멋집니다.

1975년 8월 17일 장준하 선생은 의문사 합니다. 자살이냐 타살이냐는 최근까지 논란이 많습니다.

1993년 민주당에서 한광옥 최고위원을 위원장으로 장준하 선생 사인규명 진상위원회를 구성하였다. 그리고 8월 20일 2차 답사때 당시 유일한 목격자인 김용환과 함께 사고 현장을 답사하였는 데 김용환은 산행입구를 찾지 못했고, 산악회 일행이 점심 먹었던 장소도 찾지 못했으며, 뛰어넘었다는 2개의 능선과 계곡도 없었고 계곡으로 내려가는 하산길도 찾지 못했으며 지금까지 추락했다고 알려진 14m 70cm 지점이 아닌 엉뚱하게도 훨씬 높은 75m 지점에서 추락했다고 증언했다. 또한 당시 의정부지청 검사였던 서돈양은 김용환이 장준하 선생의 시계를 차고 있어서 머리를 쥐어박았다고 진술했다.- 나무 위키

의문사에 대한 아쉬움이 있어서인지.. 장준하의 시계는 드라마에서도 큰 역할을 합니다. 시간이 흘러도 그에 대한 사랑을 잊지 않고 어려움 속에서 다섯 남매를 키운 김희숙 여사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208241948005

2018년 7월 2일 김희숙 여사는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거기서는 다행히 새로운 대통령이 누구라고 당당히 말씀하셨겠지요?

하늘에서는 두 분이 나라니 이념이니  상관없이 남자와 여자로 만나서 꽁냥꽁냥 살아가시길 …

 

박 현숙[후니와 수기의 그들의 연애] 제11화 드라마 눈이 부시게 장준하의 시계와 사랑.

바리스타 오드리의 원미동카페(3) – 커피 세 잔

 

바리스타 오드리의 원미동카페

세번째 이야기 – 커피 세 잔

 

(펄 시스터즈의 커피 한 잔 이라는 노래 앞부분이 잠깐 흐르고~)

 

카페 문이 열린다.

우르르 단체가 몰려 들어온다.

열명이 들어와서는 아메리카노 두 잔을 시킨다.

 

저들의 왈,

밥을 많이 먹어서 너무 배가 부르단다.

쩝… 밥은 밥집에서 드시고

찻집에 와서 배부르다고!!!

나보러 어쩌라는 건가유?~~~~~~

이런…곤란한 일이!

 

그러나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흔쾌하지 않은 미소로

아메리카노 두 잔을 계산한다.

나의 거짓된 미소, 꾸며진 친절함이 호소력 내지는

전달력이 있었던걸까?

한 잔을 더 시킨다.

 

커피 한 잔, 이 천원!

이럴 때마다 커피값을 오천원으로 팍~~ 올리고 싶다.

 

아무튼 이 손님들,

커피 세 잔에 세 시간을 떠든다.

커피향보다 더 진한 술냄새로 카페를 가득 채워준다.

 

천둥벼락 소리만큼 크고 큰 자기 목소리가

안들린다고 음악을 꺼달란다. 당당하게!

 

셀프테이블에 시럽을 잔뜩 흘린다.

“어이~ 시럽이 없네요~” 흘렸다고 하지 않고 없다고 한다.

새 시럽통을 드리면

급기야 자기 테이블로 가져가버린다.

잠시 후 다른 손님이 시럽찾아 삼만리를 한다.

 

 

 

그렇게 세 시간이 흐르고 그들은,

커피 세 잔,

정수기 물 한 통 일곱 잔,

뜨거운 물 담아서 머그 잔 세 잔,

얼음물 두 잔,

합이 열 다섯 잔으로

테이블에 전쟁이라도 치른 모습을 남기고는

또 우르르 나간다.

 

끄트머리에 한, 두 사람이

빈 잔과 쟁반을 반납하며

아주아주 친절하고 다정하게 말한다.

 

 

 

아유~ 커피가 너무 맛있어~.

배불러서 남겼네~ 미안해

담에 와서 많이 팔아 줄께~

(음… 남기긴 뭐…한 방울 남긴 했네)

 

아하~~ 맛있어서 열 명이 세 잔 시키셨구나~

아하~~ 배불러서 물을 열 두 잔을 드셨구나~

아하~~ 담에 어쩌구 저쩌구 믿지는 않지만 양심을 있구나~

 

커피 세 잔을 시켜놓고

오드리의 속을 까맣게 태우는 원미동 카페~

오드리는 오늘도

그저 웃지요^^

 

(오드리의 씩씩한 커피 한잔 노래가 흐른다)—>>> 노래연습을 못한 관계로 유튜브에서 올립니다 ㅎㅎ

“커피 한잔을 시켜놓고 그대 오기를 기다려 봐도
웬일인지 오지를 않네 내 속을 태우는 구려

8분이 지나고 9분이 오네 1분만 지나면 나는 가요
난 정말 그대를 사랑해 내 속을 태우는 구려

아 그대여 왜 안 오시나
아 사람아 오 오 기다려요

불덩이 같은 이 가슴 엽차 한잔을 시켜 봐도
웬일인지 오지를 않네 내 속을 태우는 구려

아 그대여 왜 안 오시나
아 사람아 오 오 기다려요

불덩이 같은 이 가슴 엽차 한잔을 시켜 봐도
웬일인지 오지를 않네 내 속을 태우는 구려”

 

 

 

 

 

 

오드리 기자바리스타 오드리의 원미동카페(3) – 커피 세 잔

여계봉의 산정천리-(4)눈물겹도록 아름다운 길, ​차마고도 호도협 1

영국의 소설가 제임스 힐튼(James Hilton)이 1933년에 펴낸 『잃어버린 지평선(Lost Horizon)』이란 소설에서 이상향으로 등장하는 가상의 도시 샹그릴라(Sangri-La).

소설 속에서 샹그릴라는 인류가 이상으로 그리는 완전하고 평화로운 상상 속의 세계지만 이 세상 속에서 존재하는 실존의 이상 도시처럼 알려져 많은 히말라야 여행자들이 이상향 샹그릴라에 이르는 길을 발견하지 않을까 하여 히말라야 부근을 기웃거리고 있다. 기자도 그 부류에 속하여 벌써 두 번째 히말라야 자락을 찾고 있다.

“길은 집이고, 집도 길이다. 고로 인생은 길이다.”

역마살이 낀 기자가 평소에 늘 주장하는 해괴한 논리이지만 마음을 열고 길을 나서는 순간, 나를 반겨주는 놀랄 만한 것들이 이 세상에 많다.

그 길에는 풍경뿐 아니라 삶과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차마고도(車馬古道)는 실크로드보다 오래된 교역로로, 당나라와 티벳 토번 왕국이 서로 차와 말을 교역하면서 유래된 이름이다. 윈난성에서 티벳으로 향하는 이 길은 시솽반나(西雙版納)에서 푸얼스(普耳市)를 지나 따리(大理), 리장(麗江), 샹그릴라(香格里拉)를 거쳐 라싸(拉薩)에 이르는데, 리장에서 샹그릴라로 향하는 길목에 호도협이 자리 잡고 있다. 호랑이가 건너다닌 협곡이라는 뜻의 호도협(虎渡峽)은 강의 상류와 하류 낙차가 170m에 이르는 세계에서 가장 깊은 협곡 중의 하나이다.

인천공항을 출발한 지 4시간 만에 쓰촨성 청두공항에 도착하여 공항 근처 호텔에서 눈만 잠시 붙인 후 새벽 첫 비행기를 타고 1시간 걸려 리장공항에 도착한다. 공항에서 호도협 트레킹의 출발지인 교두진을 향해 출발한다. 일행을 태운 버스는 리장 시내를 지나 2시간 만에 상호도협에 도착한다. 나무 계단을 20여분 내려가서 협곡의 끝에 이르면 거친 물소리에 귀가 먹먹해진다. 인도 대륙과 유라시아 대륙의 충돌로 야기된 지각운동은 하나였던 산을 옥룡설산(玉龍雪山)과 합파설산(哈巴雪山)으로 갈라놓았다. 그 갈라진 틈으로 세계에서 3번째로 긴 장강이 금사강(金沙江)으로 이름을 바꾸고 흘러들면서 22km의 길이에 높이 2,000m에 달하는 길고 거대한 협곡을 만든 것이다.

협곡의 물가에 서면 급류에 휘말린 물보라가 거센 포말을 이루며 튀어 오른다. 하얗게 부서지는 물보라와 귓전을 뒤흔드는 물소리에 세상의 온갖 시름이 부서지고, 세상의 온갖 소음은 묻힌다.

호도협트레킹의 시작점은 나시객잔(纳西客栈)이다. 여기서부터 28밴드, 차마객잔, 중도객잔, 티나객잔, 장선생객잔 까지 이어진다. 옥룡설산과 하바설산 사이 협곡에 난 16km 길을 따라 1박 2일 동안 걷게 되는 것이다.

호도협에는 나시족들이 산다. 지금은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숙박업이 더 큰 수입이 되었지만 여전히 옥수수나 곡물을 심고 키우는 일은 나시족의 중요한 일상이기도 하다.

BBC가 선정한 세계 3대 트레킹 중의 하나인 차마고도 호도협트레킹은 수려한 자연 속에서 한 걸음, 한 걸음 느리게 걸어야 한다. 천천히 움직일수록 아름다운 자연이 잘 보이고, 자연으로부터 받는 감동도 더욱 크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전체 트레킹 코스 중 28밴드 시작점에서부터 2km 이상 계속 이어지는 오르막이 호도협트레킹 코스 중 가장 힘든 구간인데, 스물여덟 개의 굽이를 1시간 동안 돌아가며 올라야한다. 이 길을 걷다 보면 경사지고 황량한 이런 곳에 밭을 만들어 곡물을 심고 키워온 나시족들의 어려운 일상을 엿볼 수 있어 힘이 든다고 마냥 불평할 수 없는 처지다.

가파른 길만큼이나 급하게 차오르는 숨을 헉헉거리며 28밴드 정상의 전망대(2,670m)에 서면 감탄사가 절로 터진다. 고개 모퉁이를 돌 때마다 옥룡설산과 금사강이 한눈에 보인다. 호도협 트레킹은 발치에 흐르는 금사강의 옥빛 물결을 즐기며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얼굴을 내민 옥룡설산을 마주 보며 걷는 길이다. 절벽 길 아래로 보이는 상호도협에는 좁은 협곡 사이로 옥빛 물이 흐른다. 지금은 건기라 물이 옥빛처럼 맑지만 우기에는 물이 많이 불어 흙탕물이다.

옥룡설산은 히말라야 동쪽 끝에 위치한 해발 5,596m의 고산으로, 산에 쌓인 눈이 마치 한 마리의 은빛용이 누워 있는 모습과 비슷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 풍경은 생사를 초탈하게 만든다. 용들이 들썩이는 풍경 하나로 일제히 아라한에 이를 듯하다.

나시객잔을 출발한 지 2시간 반 만에 차마객잔(車馬客棧)에 도착한다. 객잔 휴게실에서 옥룡설산을 바라보며 산 기운을 접하면서 칭따오 맥주 한잔으로 갈증을 식힌다.

차마객잔에서 중도객잔으로 이어지는 길은 하얀 몸을 곧추 세운 거대한 산괴가 도열해 있는 장엄하고 경이로운 풍경을 연출한다. 천 오백년 전부터 옛 마방들이 걷던 이 길을 따라 걷다보니 그들이 감내해야 했던 삶의 애환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이곳은 4월부터 우기가 시작되어 6월에서 8월 사이에 절정에 달한다. 이 시기에는 곳곳에서 길이 끊기거나 산사태가 일어나서 사고가 생기기도 한다. 그래서 우기가 끝나는 가을부터 3월까지가 트레킹 적기다.

5,000m가 훨씬 넘는 옥룡설산과 합파설산, 그리고 2,000m 높이의 아찔한 호도협이 만들어낸 경이로운 풍광은 트레킹 내내 끝없는 감탄을 자아낸다. 두 눈에 모조리 쓸어 담기에 족한 함축적인 산경이 파노라마처럼 내내 펼쳐진다. 산을 신이라 불러도 무방하리라.

트레킹 시작한 지 5시간 반 만에 첫날 목적지 중도객잔(中途客栈)에 도착한다. 옥상 휴게실에서 중도객잔의 별미 오골계 백숙으로 원기를 복돋우고, 바이주(白酒) 한잔을 나누며 여정의 피로를 날려 보낸다.

휴게실 벽과 천장은 이곳을 다녀간 우리나라와 외국 산악회의 깃발과 리본으로 도배되어 있다. 밤이 찾아와 중도객잔 전망대의 긴 장의자에 누우면 하늘에서 옥룡설산의 13개 봉우리 위로 쏟아지는 별빛을 마주 할 수 있다. 파란 천공 위를 무수히 수놓은 주먹 별들을 보면 이곳이 선경임을 이내 깨닫는다. 객실의 대형 통유리를 통해 낮에는 은빛용의 등을 연상시키는 하얗고 아름다운 만년설을, 밤에는 하늘을 수놓는 수많은 별들을 볼 수 있다.

객잔 곳곳에 걸린 리본과 플래카드가 마치 룽따처럼 바람에 펄럭인다. 룽따 깃발 아래에 서면 언제나 마음이 설렌다. 바람이 깃발을 지나가면서 내는 소리에 마음이 공명하기 때문이다. 그런 마음의 움직임을 얻으려고 깃발이 생긴 것은 아닐까.

룽따는 소리없는 아우성이 아니다. 사방 하늘을 향해 발복(發福)을 바라는 간절한 외침이다. 결국 색이 바래고 천이 갈기갈기 찢어져 바람과 함께 허공으로 녹아들어 가기까지 복을 부르는 소망이다.

– 다음편에 계속 –

여 계봉여계봉의 산정천리-(4)눈물겹도록 아름다운 길, ​차마고도 호도협 1

모해의 만화일기 – (5) 모해는 건강지킴이①

박태근모해의 만화일기 – (5) 모해는 건강지킴이①

[한성희의 작가 산책] 시인 정희성의 『첫 고백』

 

첫 고백 

정희성

 

오십 평생 살아오는 동안
삼십년이 넘게 군사독재 속에 지내오면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을 증오하다보니
사람 꼴도 말이 아니고
이제는 내 자신도 미워져서
무엇보다 그것이 괴로워 견딜 수 없다고
신부님 앞에서 고백했더니
신부님이 집에 가서 주기도문을 열 번을 외우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어린애 같은 마음이 되어
그냥 그대로 했다

 

정희성 시집《詩를 찾아서》에서. 창작과비평사

 

 

 

몇몇 해 전 새해 첫날, 어느 신문 앞면에 선생님의 ‘첫 고백’이란 시가 실렸습니다.

너무 신선하고 마음에 와 닿아 그 시를 스크랩해놓고 언젠가 이분을 만나길 열망했습니다. 결국 그 바람이 이루어졌습니다.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으로 계시던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더니 쾌히 승낙해 주셨습니다.

목요문학나들이에서 ‘첫 고백’이란 시를 쓰게 된 동기도 들었습니다. 자신이 시를 쓰며 살아온 70~80년대의 사회적이나 시대적 배경이 암울하고 공격적이었기에 정말 어린애 같은 순수한 마음으로 살고파 이 시를 쓰셨답니다.

그러고 보니 1945년 경남 창원에서 해방둥이로 태어난 그는 우리의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젊음을 보냈습니다. 당시 기술직 공무원이었던 아버지는 월급도 제 때 나오지 않아 고무신 한 켤레로 몇 년을 버티고 먹을 게 없어 술지게미와 보리를 맷돌에 갈아 죽을 쑤어 먹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답니다.

그 후 서울대 국문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한 뒤 학교에서 교편을 잡았습니다. 197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변신’이 당선되어 등단한 그는 1974년 첫 시집 ‘답청’을 출간하고 1978년엔 두 번째 시집 ‘저문 강에 삽을 씻고’ 1981년 세 번째 시집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를 내셨습니다. 그의 시는 다분히 저항적인 요소가 많아 대학생들의 의식화 용 교재로 사용되기도 하였답니다.

40년 동안 시집 세 권만 낸 시인도 드물 겁니다. 그만큼 그는 시어들을 아끼고 절제했습니다. 이제 나이도 들고 시대도 변하고 그동안 써 왔던 저항적인 시들에서 탈피해 다시 ‘시를 찾아서’란 시집을 낸 그는 이제 자연과 사랑과 삶에 대한 시를 쓰고 싶답니다. ‘그가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 늙어 죽도록 단돈 5천 원 이면 사볼 수 있는 시집 한 권 안사고 죽는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강의가 끝나자마자 서점으로 달려갔습니다

 

 

 

 

 

한 성희[한성희의 작가 산책] 시인 정희성의 『첫 고백』

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34) – Together (Chet Baker & Paul Desmond, Epic – 472984 2)

쳇 베이커와 폴 데스몬드의 연주 중 몇 개를 추려 담은 일종의 컴필레이션 음반이다. 하지만 고만고만한 컴필 앨범이라고 보기엔 그 무게감이 어마어마하다. 알다시피 트럼펫의 쳇 베이커와 알토 색소폰의 폴 데스몬드는 쿨 재즈를 대표하는 연주자들이기 때문이다.

쳇 베이커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깊은 우수 어린 창백한 얼굴. 반항아적인 외모에 중성적인 목소리. 언뜻 영화배우 제임스 딘을 연상케 한다. 실제로 제임스 딘과 많은 부분 비교되기도 한다. 교통사고로 절명한 제임스 딘이 삶이 비극이었던 것처럼 쳇 베이커 역시 네덜란드의 허름한 호텔 2층 창문에서 추락, 사고사인지 자살인지 불분명한 상황에서 불행한 종말을 맞이한다. 연주 자체가 뛰어나다는 평은 듣지 못했으나 특유의 서정적이면서도 내면의 고독을 관조하는 듯한 연주와 보컬은 쿨 재즈의 대표적 뮤지션으로 불리기에 충분하다. 비록 보편적 기준으로의 그의 삶은 비극 그 자체였지만 어쩌면 실존적 삶의 아이러니와 부조리를 그를 통해 느낄 수 있다고나 할까?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그의 삶과 연결시키든, 삶에서 떼어내든 그의 예술은 예술 그 자체로서 영원히 회자되고 들려질 것이다.

또 한명의 주인공 알토 섹소포니시트 폴 데스몬드는 우리에게 데이브 브루벡 퀄텟의 앨범 ‘Time Out’에서 가장 유명한 곡 ‘Take Five’를 작곡가로도 알려져 있다. 사실 상업적인 면이나 예술적인 면에서나 모두 성공한 이 앨범에 만약 폴 데스몬드가 없었다면 이처럼 뛰어난 결과는 기대할 수 있었을까 하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폴 데스몬드의 영향은 대단하다. 그만큼 작곡과 연주 모두에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아티스트다. 폴 데스몬드의 알토 색소폰은 누가 들어도 단박에 알아 챌 수 있을 만큼 달콤한 음색을 가진다. 금관 악기임에도 마치 목관 악기인 클라리넷의 소리를 연상케 할 만큼 부드럽다.

이밖에 쳇 베이커와 폴 데스몬드를 제외하고서라도 연주에 참여한 사이드맨들의 면면을 보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론 카터, 스티브 갯, 토니 윌리암스, 밥 제임스, 롤랜드 한나, 케니 배론, 짐 홀… 이렇게 화려한 라인업이면 뭐 별 수없이 들어야 한다. 앨범에서 자주 언급되는 연주는 6번째 트랙 Autumn Leaves이나 이제야 막 봄이 시작된 이때 가을 낙엽을 생각하기엔 너무 섣부르다. 대신 추천하는 트랙은 2번 트랙 You Can’t Go Home Again.

오래전에 활약했던 중국계 가수 겸 배우 ‘진추아’가 부른 ‘Never Gonna Fall In Again’의 그 멜로디라고 하면 어쩌면 아하! 하면 미소를 지을 것이다. 언젠가 피켜 스케이팅의 여왕 김연아가 이 곡을 배경으로 우아한 동작을 펼치기도 했다.

이 곡은 원래 1917년 제정 러시아가 무너진 직후 미국으로 망명한 작곡자이자 피아니스트였던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 2번 3악장에 들어있는 유명한 주제다. 라흐마니노프가 베버리 힐즈에서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고국 러시아를 너무나도 그리워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이나 사실 이 곡은 미국으로 망명하기 전인 독일 드레스텐에 거주했을 당시 작곡한 곡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곡의 명성에는 조금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곡 탄생에 관한 극적인 효과는 다소 덜하겠지만 말이다. 이는 순전히 망명을 미리 예감한 듯 이제는 더 이상 고향에 갈 수 없다는 상실감과 안타까움을 유려하고도 서정미 가득한 멜로디에 온전히 담아냈기 덕분이다. 그런 이유에서일까? 어찌나 쳇 베이커가 좋아한 곡이었는지 무수히 많은 앨범에서 그의 연주를 들어볼 수 있다. 마치 쳇 베이커를 위해 만들어진 곡처럼 말이다. 아, 그렇다고 이외의 곡들을 간과는 건 절대 아니다. 물 흘러 가는대로 몸을 맡기듯 첫 트랙부터 마지막 트랙까지 한곡도 빠짐없이 천천히 들어보길 권한다. 트랙의 배치가 얼마나 절묘한지 앨범을 다 듣기까지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라흐마니노프

앨범에서의 쳇 베이커와 폴 데스몬드의 연주를 이러쿵저러쿵 논한다는 건 별 의미가 없다. 그만큼 최고의 전성기 시절 연주들이기 때문이다. 컴필레이션 앨범의 특성상 각 트랙별 연주자들이 약간씩 다르나 이는 오히려 이 앨범의 매력이자 덤이다. 더구나 레이블 CTI가 만든 최고의 명반이자 영원한 베스트셀러인 짐 홀의 앨범 Concierto에 수록된 곡도 두 개나 들어 있으니 덤 치고는 무지 후한 덤이다.

경 성현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34) – Together (Chet Baker & Paul Desmond, Epic – 472984 2)

인천 근대문학관 투어

인천 근대문학관 투어

인천 근대문학관을 다녀왔다.

인천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부천에 살면서도 인천을 너무 몰랐다. 아이들이 어렸을 적엔 자유공원이나 월미도는 자주 갔었다. 놀이기구를 타고, 유람선을 타고, 회를 먹고… 그 후론 인천이 뜸해졌다. 어쩌다 차이나타운에 자장면을 먹으러 간 기억밖에 없다. 차이나타운에 가서도 자장면만 먹고 왔지 바로 옆에 역사적인 근대의 거리와 건축물이 있는 줄 몰랐다. 허 참.

전철로 인천역까지는 30분 남짓 걸렸다. 몇 번 가본 적 있는 동인천역에서 한 정거장 사인인데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뭐랄까!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의 주인공들이 등장할 것 같은 서구식 건물들이 곳곳에 서있었다. 항구에서 인천역으로 이어지는 철로와 허름한 창고들과 문화지구 골목길로 접어들면 옛 일본 가옥에 들어선 찻집도 보이고 개항시기에 은행에서 박물관으로 변신한 건축물도 눈에 띈다. 짜장면 박물관, 개항박물관, 이민사 박물관, 근대 건축 전시관, 제물포 구락부, 미두 취인소(쌀 선물거래소) 등, 서양과 일본 냄새가 묘하게 풍기는 건물들을 지나다 보니 중앙에 근대문학관이 보였다. 일제 강점기에 만든 물류창고를 개조해 문학관으로 활용하고 있단다.

1883년 개항 이후 서구 근대문화가 인천항을 통해 들어오고 우리 물산이 나가면서 개항장 주변에는 물건을 보관하는 창고들이 많았다. 백 년 가까운 세월을 버티면서 우리 민초들의 삶을 지켜보던 건물들이었다. 그중 한 곳에 근대문학관을 만들었다. 한국의 근대문학을 총망라한 문학관은 이곳이 유일하단다.

입구에 들어서자 한국문학사 중 근대 계몽기(1894~191년)부터 한국전쟁 이전까지 한국 근대 문학의 형성과 역사적 흐름이 시대 순으로 나열되어 있었다. 옛 문인들의 희귀본 작품도 전시되어 있고 최남선, 한용운, 나도향, 염상섭 등 우리나라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기라성 같은 문인들의 작품도 만날 수 있었다.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 슬라이드도 감상하고 내가 좋아하는 김소월 작품을 노래로 들어보기도 했다. 진달래꽃, 개여울, 엄마야 누나야, 못 잊어, 초혼, 산유화, 먼 후일,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등. 이별과 슬픔의 정서가 가득한 그의 시 대부분이 노래로 만들어져 울적할 때마다 흥얼거리게 된다.

쭉 둘러보다가 문인들의 얼굴을 벽 전체에 모아놓은 곳에서 저절로 발길이 멎었다. 실제 작가의 얼굴과 똑 같은 캐리커처도 신기했지만 별도의 앱을 다운로드하면 작가와 작품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어서 그곳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2층에는 인천 문학의 역사를 자세히 알 수 있는 데다 옛 물류창고의 세월과 투박함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외벽이 그대로 보존되어 세월의 더께를 실감할 수 있었다. 체험공간에서는 아래층에서 만났던 시대별 주요 작가의 모습이 새겨진 스탬프가 있어 작가마다의 스탬프를 찍으며 추억을 되돌리는 시간여행도 떠나봤다.

그러고 보니 나는 오늘 100년 전 인천으로 시간여행을 온 여행자였다. 인천의 근대사가 그대로 숨 쉬고 있는 개항장 인천을 이제야 찾아와 감탄하는 시간여행자.

나는 거기서 근대문학사에 길이 남을 작가들과 조우하는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한 성희인천 근대문학관 투어

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33) – Love Songs(Anne Sofie Von Otter & Brad Mehldau, naive)

지난 2월 바르셀로나 어딘가에서 있었던 브레드 멜다우와 이안 보스트리지의 공연 소식을 들었다. 재즈 피아노와 테너라니… 멋진 콜라보에 감탄하고 공연장에 있었던 사람들이 한없이 부럽지만 나는 그저 유사 앨범이나 하나 듣는 수밖에 없다. ‬

<Love Songs>(Anne Sofie Von Otter & Brad Mehldau, naive)은 브래드 멜다우와 안네 소피 폰 오터의 듀오 앨범이다. 브래드 멜다우는 90년대에 데뷔, 이제는 엄연히 재즈 피아노의 거장이라고 불러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한마디로 작곡과 편곡과 같은 예술적 감각과 연주 실력을 모두 갖추었다. 빌 에반스와 키스 자렛의 계보를 잇는다는 찬사가 늘 뒤따른다. 또한 활동 기간에 비해 놀라우리만치 많고 다양한 스펙트럼의 앨범들을 때마다 쏟아내고 있다.

그런가 하면 스웨덴의 나이팅게일이라 칭송 받는 메조 소프라노 안네 소피 폰 오터는 또 어떤가. 화려한 기교의 소프라노가 아니라서 무대의 스포트라이트는 조금 덜 받는 낮은 음역대의 메조 소프라노이지만 그녀의 목소리에는 뭔지 모를 품위가 넘친다. 자신의 외모에서 풍기는 우아함과 지적인 아름다움마저 노래에 온전히 담겨 내는 듯하다.

안네 소피 폰 오터는 이전에 이미 엘비스 코스텔로와 For The Stars라는 앨범을 발표한 바 있다. 그래서 재즈 피아노와 정통 클래식 메조소프라노의 듀오 구성이 매우 독특하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녀의 경력으로 보면 그리 낯설지만은 않다. 브래드 멜다우 역시 예상치 못한 연주자들과의 협업으로도 유명하다. 다만 For The Stars의 무게 중심이 엘비스 코스텔로의 리드에 의존한 좀 더 파퓰러한 시도였다면 브래드 멜다우와 안네 소피 폰 오터의 Love Songs은 특별히 어느 한 쪽으로만 치우쳐 있지 않지만 다분히 폰 오터에 대한 멜다우의 차분한 배려가 느껴진다. 그러면서 재즈도 클래식도 아닌 장르의 모호성이 오히려 매력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멜다우가 폰 오터의 그림자만으로 존재하는 건 결코 아니다. 특히나 두 개의 Disc 중 Disc1은 전적으로 멜다우의 음악적 능동성이 돋보인다. 멜다우가 시인 커밍스, 필립 라킨, 사라 티즈데일의 시에 영감을 받아 Love Songs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작곡한 7개의 가곡으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멜다우가 의도한 바인지는 모르겠으나 경우에 따라서는 다소 현대 가곡을 들을 때의 불편함과 난해함을 감수해야 한다. 게다가 멜다우 피아노의 임프로비제이션은 생각만큼 도드라지지 않아서 멜다우가 추구하는 피아니즘을 특별히 기대했다면 조금은 실망할 수도 있다.‬

반면에 Disc2는 익히 알고 있을 레오 페레, 쟈니 미셀, 미셀 르그랑, 비틀즈, 번스타인 등의 친근한 곡으로 구성되어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좋은 건 1번 트랙 Avec Le Temps과 11번째 트랙으로 듣는 바그다드 카페의 Calling You 두 곡이다. 특히 Avec Le Temps을 듣고 나서는 당분간 다른 버전이 귀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프랑스 샹송을 미국 재즈 피아니스트의 반주에 스웨덴의 메조소프라노가 노래하는 격이니 이것만으로도 특정할 수는 없는 의미가 있다. 태생지를 초월한 음악의 근원적인 기능이자 모습이랄까?‬

​’시간이 흐르면 모두 사라지겠지’로 시작하는 가사. 차마 다음 트랙으로 넘기지 못해 몇 번을 반복해서 들었는지 모른다.

 

경 성현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33) – Love Songs(Anne Sofie Von Otter & Brad Mehldau, naive)

여계봉의 산정천리-(3)순백의 황산(黃山)에서 구름바다(雲海)를 건너다 2

배운정은 시야가 확 특여 황산의 기암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최고의 명당이다. 구름과 안개가 서해의 골짜기들을 휘감아 솟아오르다가 이곳에 이르면 저절로 갇혀져서 물리칠 배(排)에 구름 운(雲)을 써서 배운정이라 부른다. 배운정에서 바라본 서해대협곡은 맺고 이어진 주변 산세가 마치 용의 모습, 흐르는 듯 멈춘 듯 솟은 듯 숨죽인 듯 쉬는 듯 꿈틀대는 운무…이를 내려다보니 걷지 아니면 갈 수 없고 보지 아니면 맛볼 수 없는 환희심이 사방에 걸쳐 있는 듯하다. 서해대협곡에 솟아 있는 기암괴석들을 보면 금강산 만물상을 몇 십 개 포개 놓은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작은 정자 지행정(知行亭)에서 ‘아는 것을 행해야 참지식이다.’를 되뇐다. 정자 지붕에 얹힌 눈을 문득 쓸어가는 바람결이 예사롭지 않다. 나그네의 헛 욕심도 바람결에 씻기고 있다.

두번이나 황산에 오른 명나라 지리학자 서하객은 “5악인 태산(泰山), 화산(華山), 형산(衡山), 항산(恒山), 숭산(嵩山)을 보면 다른 산이 생각나지 않는데, 황산을 보고 나면 5악도 생각나지 않는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광명정에 서면 황산의 일출과 일몰, 서해대협곡과 정상인 연화봉까지 모두 조망할 수 있으나 오늘따라 운무에 잠긴 기상대 건물만 어렴풋이 보인다.

재선충병 때문에 죽어가던 황산 소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황산 주변 10km 근방에 있는 소나무를 모두 제거하였더니 그 자리에 자연스럽게 대나무들이 자라게 되었고, 항균성이 강한 대나무 덕분으로 재선충병이 황산에 접근하지 못해 황산 소나무들이 안전해졌다고 한다.

고도 1,500m가 넘는 이곳에는 북해빈관을 비롯하여 서해빈관, 사림빈관, 백운빈관 등 네 곳의 호텔이 있다. 북해빈관 수 백석 대형 식당 내부는 손님들로 가득하다. 산정까지 일일이 식재료를 짊어서 나르는 짐꾼들 정성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깨끗이 그릇을 비운다.

나무도 숲도 계곡도 하늘도 일체가 묵언에 들어 있다. 백아령 가는 잔도를 걸으면 세속에 찌들었던 몸과 마음이 설국에서 깨끗이 헹구어지는 기분이다.

불구부정(不垢不淨). 사실 우리의 생각이 변덕을 부릴 뿐 본래 더러운 것도 깨끗한 것도 없는 것이 아니던가.

문득 솔향기도 유난히 코끝을 스친다. 깊은 산중에 숨어 있어도 골짜기를 타고 흐르는 자신의 향기는 숨길 수 없는 것처럼…

오늘 하루 황산 너른 품 가슴께에 살포시 안겨 잔도를 함께 걸은 나그네들은 기운이 싱싱하고 다사롭다.

백아령에서 운곡 케이블카를 타고 하산한다. 운해를 뚫고 발 아래로 펼쳐지는 비경은 그야말로 선경이다. 황산의 바위틈에서 천년을 살아온 소나무를 보면 자연의 위대함에 보잘것없는 나를 되돌아보게 되고, 이들로부터 인고의 지혜를 배운다.

오늘 우리가 걸었던 황산의 잔도는 뱀처럼 구불구불한 원만한 곡선이다.

덜컹거리는 사각이 번뇌라면 원만한 원은 해탈이다.

오늘 하루 번뇌에서 해탈한 신선이 되어 선계(仙界)의 꿈결 같은 구름바다를 거닐었던 신선노름도 케이블카가 운곡 승강장에 도착하면서 끝이 난다.

굽이굽이 산길을 돌아 황산 대문에 도착하니 이제 서야 꿈과 이상의 판타지 구운몽(九雲夢)에서 깨어난 것 같았는데 시간은 겨우 두 나절만 지났다.

여 계봉여계봉의 산정천리-(3)순백의 황산(黃山)에서 구름바다(雲海)를 건너다 2

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32) – 새로운 시작의 창조자 마일즈 데이비스

무심하게 찾곤 하는 단골 카페가 하나 있다. 가끔 뭔가 끄적거릴 일이 있다거나 읽어야 할 책이 있을 때 종종 들른다. 그러니까 특별히 커피가 맛있다거나 들려주는 음악이 좋다거나 혹은 공간의 분위기가 좋아서가 아니라 다분히 습관처럼 들어가는 곳이다. 늘 비슷한 맛의 커피, 음악, 변함없는 인테리어. 굳이 이유를 들자면 낯설지 않음이 좋아서랄까?

이 카페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던 건 몇 년 전이다. 커피집으로는 결코 좋은 입지라 할 수 없는, 대로변에서도 한참 비껴난 주택가 골목 허름한 건물 일층에 새로 생긴 카페를 발견하고는 반가움에 들어섰다. 프렌차이즈 커피 전문점에서는 느낄 수 없는 정적인 느낌의 분위기가 왠지 마음에 들어 열렬한 단골은 아니더라도 가끔씩 들러 주인장과 아는 체 정도는 하게 되었다. 익숙한 커피 맛, 다분히 주인의 취향이었을 공간과 음악은 늘 한결 같았고 나는 어쩌면 그 익숙함 때문에 단골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오늘도 역시 평소 그랬던 것처럼 주인과의 인사치레를 마치고 늘 같은 창가 구석 자리에 앉아 커피를 한 잔 주문한다. 흘러나오는 음악 또한 평소와 다르지 않은 곡들이다. 그러나 곧 들어올 땐 미처 감지하지 못한 어색함이 느껴진다. 주변을 천천히 둘러본다. 아. 그럼 그렇지. 벽면 한구석에 있던 조그만 커피 원두 사진 액자 대신 이름 모를 작가의 그림이 걸려 있다. 액자 하나를 교체한 것뿐인데 전혀 다른 공간에 앉아 있는 느낌이다. 이윽고 주문한 커피가 내 앞에 놓인다. 평소처럼 특별이 맛이 있을 거라는 기대는 없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오늘은 유난히 향이 짙고 풍미가 좋다. 혹시 바리스타가 새로 들어왔나? 아니면 원두의 종류가 달라졌을까? 그것도 아니면 추출 방법에 변화를 주었을까? 물어보았지만 어느 하나 바뀐 것이 없단다. 주인장의 얼굴을 다시 본다. 이곳의 ‘익숙함’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내가 ‘낯섦’을 경험한 것은 여기에 처음 들어왔던 그 날 이후 처음 겪는 일이다. 희한한 일이다. 단지 액자 하나가 바뀌었을 뿐인데 커피 맛이 달라졌으니 말이다.

단골 카페의 그저 그런 커피가 달라졌던 이유는 작은 변화가 이루어낸 낯섦이다. 이를테면 카페 주인장은 조그만 액자 하나를 바꾼 최소한의 비용으로 커피 맛까지 끌어올린 경영의 고수가 된 셈이다. 그러니 자주 가는 카페의 커피 맛이 달라졌다면 우선 주위를 둘러보라. 뭔가 낯설게 느껴지는 변화가 있을지 모른다.

낯섦이란 철학적 사유다. 새로운 것에 대한 긴장이다. 기존의 모든 것들을 의심할 수 있는 에너지이며 세상을 탐구하고픈 욕구다. 모두 익숙함을 뒤로하고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낯설게 바라볼 때 비로소 시작된다.

재즈계에서 익숙함 보다는 새로운 낯섦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이름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단연 마일즈 데이비스(Miles Davis)다. 마일즈 데이비스의 위상은 대단하다. 메인스트림으로 이룩한 업적도 대단하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새로운 스타일의 재즈를 창조해 낸 위업이 더 높게 평가되는 뮤지션이다. 일찍부터 그는 줄리어드 음대의 정규 음악 교육 체제에 순응하지 않고 뒷거리 연주자들과의 교류를 더 즐겼다. 그는 40년대부터 80년까지 단 한 순간도 같은 스타일을 고수한 적이 없다. 비밥, 하드밥, 쿨, 모달, 재즈락, 퓨전 등 거의 모든 장르를 섭렵했다. ‘쿨’ 재즈의 시조가 되었고 재즈가 침체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는 시기에는 ‘재즈락’을 창시하여 돌파구를 마련하려 했다. 말하자면 결코 익숙함에 함몰되지 않고 기존의 스타일에서 한발자국 앞서가는 새로움을 추구했던 아티스트다.

마일즈 데이비스가 레이블 캐피탈 시절에 머물던 당시 1940년대 후반은 비밥의 광풍이 휘몰아치던 시절이었다. 마일즈 자신 비밥에 천착했던 시절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여기에 안주하지 않고 비밥의 열기를 식히는 앨범 하나 발표한다. 유명한 ‘Birth Of The Cool’이다. 비록 ‘Cool’이라는 이름이 레코드사가 임의로 지은 것이긴 하나 단어의 의미처럼 빠르고 열정적이었던 당시 비밥의 열기를 식히고자 했던 것만은 틀림없다. 그동안 찰리 파커라는 걸출한 레전드 밑에 있던 마일즈 데이비스에게는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고 이는 새로운 스타일의 창조를 의미하기도 했다. 이렇게 탄생한 ‘Birth Of The Cool’은 최초로 시도된 마일즈 데이비스의 혁신이 된다. 비록 상업적 성공을 이루지는 못했으나 낡은 스타일에 안주하지 않은 음악적 삶의 확실한 시초가 되었다.

한편, 1950년대 후반 그가 머물렀던 레이블은 프리스티지였다. 하지만 그에 대한 대우는 형편없었고 급기야 그는 컬럼비아 레이블로 이적을 감행한다. 그러나 프리스티지와의 계약상 미처 채우지 못한 4장 분량의 앨범이 남아 있었기에 부득이 이틀에 걸쳐 녹음을 하게 되는데 이로서 탄생한 앨범이 그 유명한 마일즈 데이비스의 ‘ing’ 시리즈다. 그러니까 네 장의 앨범 ‘Working’, ‘Steaming’, ‘Cooking’, Relaxing’은 놀랍게도 단 이틀에 걸쳐 녹음된 음반이다. 이렇게 짧은 시간에 네 장분의 앨범을 연주하고 녹음했다는 건 아마도 전무후무한 사건일 것이다. 급속히 만들어진 앨범이나 그렇다고 연주의 질이 떨어지는 건 절대 아니다. 존 콜트레인, 폴 챔버스와 같은 멤버들 역시 화려하다. 그렇기에 아이러니하게도 마일즈 데이비스의 여타 무수한 디스크 그래피 중에서 대단히 높은 판매 수위를 달리는 앨범들이다. 그만큼 명반이라는 이야기다. 가히 마일스 데이비스 전성기 시절의 명작이라 할만하다.

그렇다면 그토록 단기간에 연주하고 녹음된 음반이 이렇게 높은 퀄리티를 가지게 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아무리 재즈에서 일회성, 즉흥성을 중요시 여긴다 하더라도 극히 드문 일이기 때문이다. 말했다시피 마일즈 데이비스는 늘 변화를 추구한 아티스트였다. 아마도 그에게 익숙함만큼 따분한 일은 없었을 것이다. 늘 주도적이었고 환경의 변화를 이끄는 리더였다. 질시와 조롱에 휘둘리지도 상처를 받지도 않았다. 그가 내딛는 발걸음 자체가 혁신이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어 내는 일이야말로 그에게 있어서는 어떤 운명이나 소명 같은 일이었는지 모른다. 푸대접 때문에 프리스티지 레이블을 떠나기로 결정 했다기보다는 새로운 레이블에서 펼쳐야 할 구상에 더욱 갈급했을 것이다. 그런 갈급함이 오히려 재즈의 즉흥성에 영감을 불어 넣은 건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할 수밖에 없다. 새로운 곳에서 마음껏 펼칠 미래에 대한 들뜸은 오히려 기존의 스타일을 완벽한 형태로 마무리하게 되는 조건이 된 셈이다.

마일즈 데이비스의 혁신적인 앨범 중에서도 1969년 녹음되고 1970년에 발매되어 재즈락의 효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후 락과 펑크 뮤지션에게도 엄청난 영향을 끼친 ‘Bitches Brew’는 더욱 특별하다. 향후 락(Rock)음악의 우세를 점친 마일즈는 재즈에 과감히 락을 도입하는데 Bitches Brew는 그 최초의 앨범이다. 재즈락 혹은 퓨전 재즈의 기념비적인 앨범이라고 할 수 있다. 당연히 실험적인 요소로 가득하다. 전통적인 스타일과는 완전 동떨어진 혁신적 스타일로 인해 발매 초기부터 상반된 평가를 받았다. 더욱이 평소 마일즈 데이비스가 선호했던 방식처럼 각 연주자들에게는 최소한의 정보만 제공되어 리어설이 없이 즉석에서 녹음된 앨범으로 유명하다.

마일즈 데이비스가 트럼펫 연주 자체로 높은 평가를 받는 건 절대 아니다. 그가 재즈계에서 레전드라 불리며 회자되는 가장 큰 이유는 평생 새로운 스타일을 창조하려 추구했던 끊임없는 혁신과 열정에 있다. 익숙함을 절대 거부했던, 살아서 펄떡이는, 그래서 낯섦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던 정신에 있는 것이다.

낯섦은 때로 불안하고 위험하다. 그러나 낯섦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설렘이 있다. 설렘이 주는 기대는 나를 살아 있게 하는 원천이다. 익숙함에 굴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래서 삶의 경이로움을 매순간 경험할 수 있는 희열을 갖기 위해서는 낯섦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야 내 삶의 진정한 주인으로서 살 수 있는 것이다. 훗날 비참한 후회에 빠지지 않기 위해선 더더욱 그렇다.

경 성현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32) – 새로운 시작의 창조자 마일즈 데이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