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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계봉의 산정천리-(3)순백의 황산(黃山)에서 구름바다(雲海)를 건너다 2

배운정은 시야가 확 특여 황산의 기암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최고의 명당이다. 구름과 안개가 서해의 골짜기들을 휘감아 솟아오르다가 이곳에 이르면 저절로 갇혀져서 물리칠 배(排)에 구름 운(雲)을 써서 배운정이라 부른다. 배운정에서 바라본 서해대협곡은 맺고 이어진 주변 산세가 마치 용의 모습, 흐르는 듯 멈춘 듯 솟은 듯 숨죽인 듯 쉬는 듯 꿈틀대는 운무…이를 내려다보니 걷지 아니면 갈 수 없고 보지 아니면 맛볼 수 없는 환희심이 사방에 걸쳐 있는 듯하다. 서해대협곡에 솟아 있는 기암괴석들을 보면 금강산 만물상을 몇 십 개 포개 놓은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작은 정자 지행정(知行亭)에서 ‘아는 것을 행해야 참지식이다.’를 되뇐다. 정자 지붕에 얹힌 눈을 문득 쓸어가는 바람결이 예사롭지 않다. 나그네의 헛 욕심도 바람결에 씻기고 있다.

두번이나 황산에 오른 명나라 지리학자 서하객은 “5악인 태산(泰山), 화산(華山), 형산(衡山), 항산(恒山), 숭산(嵩山)을 보면 다른 산이 생각나지 않는데, 황산을 보고 나면 5악도 생각나지 않는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광명정에 서면 황산의 일출과 일몰, 서해대협곡과 정상인 연화봉까지 모두 조망할 수 있으나 오늘따라 운무에 잠긴 기상대 건물만 어렴풋이 보인다.

재선충병 때문에 죽어가던 황산 소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황산 주변 10km 근방에 있는 소나무를 모두 제거하였더니 그 자리에 자연스럽게 대나무들이 자라게 되었고, 항균성이 강한 대나무 덕분으로 재선충병이 황산에 접근하지 못해 황산 소나무들이 안전해졌다고 한다.

고도 1,500m가 넘는 이곳에는 북해빈관을 비롯하여 서해빈관, 사림빈관, 백운빈관 등 네 곳의 호텔이 있다. 북해빈관 수 백석 대형 식당 내부는 손님들로 가득하다. 산정까지 일일이 식재료를 짊어서 나르는 짐꾼들 정성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깨끗이 그릇을 비운다.

나무도 숲도 계곡도 하늘도 일체가 묵언에 들어 있다. 백아령 가는 잔도를 걸으면 세속에 찌들었던 몸과 마음이 설국에서 깨끗이 헹구어지는 기분이다.

불구부정(不垢不淨). 사실 우리의 생각이 변덕을 부릴 뿐 본래 더러운 것도 깨끗한 것도 없는 것이 아니던가.

문득 솔향기도 유난히 코끝을 스친다. 깊은 산중에 숨어 있어도 골짜기를 타고 흐르는 자신의 향기는 숨길 수 없는 것처럼…

오늘 하루 황산 너른 품 가슴께에 살포시 안겨 잔도를 함께 걸은 나그네들은 기운이 싱싱하고 다사롭다.

백아령에서 운곡 케이블카를 타고 하산한다. 운해를 뚫고 발 아래로 펼쳐지는 비경은 그야말로 선경이다. 황산의 바위틈에서 천년을 살아온 소나무를 보면 자연의 위대함에 보잘것없는 나를 되돌아보게 되고, 이들로부터 인고의 지혜를 배운다.

오늘 우리가 걸었던 황산의 잔도는 뱀처럼 구불구불한 원만한 곡선이다.

덜컹거리는 사각이 번뇌라면 원만한 원은 해탈이다.

오늘 하루 번뇌에서 해탈한 신선이 되어 선계(仙界)의 꿈결 같은 구름바다를 거닐었던 신선노름도 케이블카가 운곡 승강장에 도착하면서 끝이 난다.

굽이굽이 산길을 돌아 황산 대문에 도착하니 이제 서야 꿈과 이상의 판타지 구운몽(九雲夢)에서 깨어난 것 같았는데 시간은 겨우 두 나절만 지났다.

여 계봉여계봉의 산정천리-(3)순백의 황산(黃山)에서 구름바다(雲海)를 건너다 2

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32) – 새로운 시작의 창조자 마일즈 데이비스

무심하게 찾곤 하는 단골 카페가 하나 있다. 가끔 뭔가 끄적거릴 일이 있다거나 읽어야 할 책이 있을 때 종종 들른다. 그러니까 특별히 커피가 맛있다거나 들려주는 음악이 좋다거나 혹은 공간의 분위기가 좋아서가 아니라 다분히 습관처럼 들어가는 곳이다. 늘 비슷한 맛의 커피, 음악, 변함없는 인테리어. 굳이 이유를 들자면 낯설지 않음이 좋아서랄까?

이 카페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던 건 몇 년 전이다. 커피집으로는 결코 좋은 입지라 할 수 없는, 대로변에서도 한참 비껴난 주택가 골목 허름한 건물 일층에 새로 생긴 카페를 발견하고는 반가움에 들어섰다. 프렌차이즈 커피 전문점에서는 느낄 수 없는 정적인 느낌의 분위기가 왠지 마음에 들어 열렬한 단골은 아니더라도 가끔씩 들러 주인장과 아는 체 정도는 하게 되었다. 익숙한 커피 맛, 다분히 주인의 취향이었을 공간과 음악은 늘 한결 같았고 나는 어쩌면 그 익숙함 때문에 단골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오늘도 역시 평소 그랬던 것처럼 주인과의 인사치레를 마치고 늘 같은 창가 구석 자리에 앉아 커피를 한 잔 주문한다. 흘러나오는 음악 또한 평소와 다르지 않은 곡들이다. 그러나 곧 들어올 땐 미처 감지하지 못한 어색함이 느껴진다. 주변을 천천히 둘러본다. 아. 그럼 그렇지. 벽면 한구석에 있던 조그만 커피 원두 사진 액자 대신 이름 모를 작가의 그림이 걸려 있다. 액자 하나를 교체한 것뿐인데 전혀 다른 공간에 앉아 있는 느낌이다. 이윽고 주문한 커피가 내 앞에 놓인다. 평소처럼 특별이 맛이 있을 거라는 기대는 없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오늘은 유난히 향이 짙고 풍미가 좋다. 혹시 바리스타가 새로 들어왔나? 아니면 원두의 종류가 달라졌을까? 그것도 아니면 추출 방법에 변화를 주었을까? 물어보았지만 어느 하나 바뀐 것이 없단다. 주인장의 얼굴을 다시 본다. 이곳의 ‘익숙함’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내가 ‘낯섦’을 경험한 것은 여기에 처음 들어왔던 그 날 이후 처음 겪는 일이다. 희한한 일이다. 단지 액자 하나가 바뀌었을 뿐인데 커피 맛이 달라졌으니 말이다.

단골 카페의 그저 그런 커피가 달라졌던 이유는 작은 변화가 이루어낸 낯섦이다. 이를테면 카페 주인장은 조그만 액자 하나를 바꾼 최소한의 비용으로 커피 맛까지 끌어올린 경영의 고수가 된 셈이다. 그러니 자주 가는 카페의 커피 맛이 달라졌다면 우선 주위를 둘러보라. 뭔가 낯설게 느껴지는 변화가 있을지 모른다.

낯섦이란 철학적 사유다. 새로운 것에 대한 긴장이다. 기존의 모든 것들을 의심할 수 있는 에너지이며 세상을 탐구하고픈 욕구다. 모두 익숙함을 뒤로하고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낯설게 바라볼 때 비로소 시작된다.

재즈계에서 익숙함 보다는 새로운 낯섦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이름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단연 마일즈 데이비스(Miles Davis)다. 마일즈 데이비스의 위상은 대단하다. 메인스트림으로 이룩한 업적도 대단하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새로운 스타일의 재즈를 창조해 낸 위업이 더 높게 평가되는 뮤지션이다. 일찍부터 그는 줄리어드 음대의 정규 음악 교육 체제에 순응하지 않고 뒷거리 연주자들과의 교류를 더 즐겼다. 그는 40년대부터 80년까지 단 한 순간도 같은 스타일을 고수한 적이 없다. 비밥, 하드밥, 쿨, 모달, 재즈락, 퓨전 등 거의 모든 장르를 섭렵했다. ‘쿨’ 재즈의 시조가 되었고 재즈가 침체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는 시기에는 ‘재즈락’을 창시하여 돌파구를 마련하려 했다. 말하자면 결코 익숙함에 함몰되지 않고 기존의 스타일에서 한발자국 앞서가는 새로움을 추구했던 아티스트다.

마일즈 데이비스가 레이블 캐피탈 시절에 머물던 당시 1940년대 후반은 비밥의 광풍이 휘몰아치던 시절이었다. 마일즈 자신 비밥에 천착했던 시절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여기에 안주하지 않고 비밥의 열기를 식히는 앨범 하나 발표한다. 유명한 ‘Birth Of The Cool’이다. 비록 ‘Cool’이라는 이름이 레코드사가 임의로 지은 것이긴 하나 단어의 의미처럼 빠르고 열정적이었던 당시 비밥의 열기를 식히고자 했던 것만은 틀림없다. 그동안 찰리 파커라는 걸출한 레전드 밑에 있던 마일즈 데이비스에게는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고 이는 새로운 스타일의 창조를 의미하기도 했다. 이렇게 탄생한 ‘Birth Of The Cool’은 최초로 시도된 마일즈 데이비스의 혁신이 된다. 비록 상업적 성공을 이루지는 못했으나 낡은 스타일에 안주하지 않은 음악적 삶의 확실한 시초가 되었다.

한편, 1950년대 후반 그가 머물렀던 레이블은 프리스티지였다. 하지만 그에 대한 대우는 형편없었고 급기야 그는 컬럼비아 레이블로 이적을 감행한다. 그러나 프리스티지와의 계약상 미처 채우지 못한 4장 분량의 앨범이 남아 있었기에 부득이 이틀에 걸쳐 녹음을 하게 되는데 이로서 탄생한 앨범이 그 유명한 마일즈 데이비스의 ‘ing’ 시리즈다. 그러니까 네 장의 앨범 ‘Working’, ‘Steaming’, ‘Cooking’, Relaxing’은 놀랍게도 단 이틀에 걸쳐 녹음된 음반이다. 이렇게 짧은 시간에 네 장분의 앨범을 연주하고 녹음했다는 건 아마도 전무후무한 사건일 것이다. 급속히 만들어진 앨범이나 그렇다고 연주의 질이 떨어지는 건 절대 아니다. 존 콜트레인, 폴 챔버스와 같은 멤버들 역시 화려하다. 그렇기에 아이러니하게도 마일즈 데이비스의 여타 무수한 디스크 그래피 중에서 대단히 높은 판매 수위를 달리는 앨범들이다. 그만큼 명반이라는 이야기다. 가히 마일스 데이비스 전성기 시절의 명작이라 할만하다.

그렇다면 그토록 단기간에 연주하고 녹음된 음반이 이렇게 높은 퀄리티를 가지게 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아무리 재즈에서 일회성, 즉흥성을 중요시 여긴다 하더라도 극히 드문 일이기 때문이다. 말했다시피 마일즈 데이비스는 늘 변화를 추구한 아티스트였다. 아마도 그에게 익숙함만큼 따분한 일은 없었을 것이다. 늘 주도적이었고 환경의 변화를 이끄는 리더였다. 질시와 조롱에 휘둘리지도 상처를 받지도 않았다. 그가 내딛는 발걸음 자체가 혁신이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어 내는 일이야말로 그에게 있어서는 어떤 운명이나 소명 같은 일이었는지 모른다. 푸대접 때문에 프리스티지 레이블을 떠나기로 결정 했다기보다는 새로운 레이블에서 펼쳐야 할 구상에 더욱 갈급했을 것이다. 그런 갈급함이 오히려 재즈의 즉흥성에 영감을 불어 넣은 건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할 수밖에 없다. 새로운 곳에서 마음껏 펼칠 미래에 대한 들뜸은 오히려 기존의 스타일을 완벽한 형태로 마무리하게 되는 조건이 된 셈이다.

마일즈 데이비스의 혁신적인 앨범 중에서도 1969년 녹음되고 1970년에 발매되어 재즈락의 효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후 락과 펑크 뮤지션에게도 엄청난 영향을 끼친 ‘Bitches Brew’는 더욱 특별하다. 향후 락(Rock)음악의 우세를 점친 마일즈는 재즈에 과감히 락을 도입하는데 Bitches Brew는 그 최초의 앨범이다. 재즈락 혹은 퓨전 재즈의 기념비적인 앨범이라고 할 수 있다. 당연히 실험적인 요소로 가득하다. 전통적인 스타일과는 완전 동떨어진 혁신적 스타일로 인해 발매 초기부터 상반된 평가를 받았다. 더욱이 평소 마일즈 데이비스가 선호했던 방식처럼 각 연주자들에게는 최소한의 정보만 제공되어 리어설이 없이 즉석에서 녹음된 앨범으로 유명하다.

마일즈 데이비스가 트럼펫 연주 자체로 높은 평가를 받는 건 절대 아니다. 그가 재즈계에서 레전드라 불리며 회자되는 가장 큰 이유는 평생 새로운 스타일을 창조하려 추구했던 끊임없는 혁신과 열정에 있다. 익숙함을 절대 거부했던, 살아서 펄떡이는, 그래서 낯섦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던 정신에 있는 것이다.

낯섦은 때로 불안하고 위험하다. 그러나 낯섦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설렘이 있다. 설렘이 주는 기대는 나를 살아 있게 하는 원천이다. 익숙함에 굴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래서 삶의 경이로움을 매순간 경험할 수 있는 희열을 갖기 위해서는 낯섦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야 내 삶의 진정한 주인으로서 살 수 있는 것이다. 훗날 비참한 후회에 빠지지 않기 위해선 더더욱 그렇다.

경 성현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32) – 새로운 시작의 창조자 마일즈 데이비스

모해의 만화일기 – (4)혼자 떠난 오사카 1박2일 여행일기

박태근모해의 만화일기 – (4)혼자 떠난 오사카 1박2일 여행일기

원미동카페(2) – 두 개의 이쑤시개

 

 

 

 

 

 

 

원미동카페(2) – 두 개의 이쑤시개

 

이곳은 카페다.

그런데 여기저기 바닥에, 그리고 테이블에

빨대가 아닌 이쑤시개가 굴러다닌다.

 

 

 

어떤 이쑤시개는 두 조각으로 동강이 나 있고

어떤 이쑤시개는 아예 가루가 되어있다.

빗자루로 쓸어도 잘 쓸리지가 않는다.

작지만 보기에도 비위가 상하고 흉하다.

 

카페오기 전 들른 식당에 것을,

그 흉칙한 것을 들고와서는

얼마든지 살짝 버릴 수 있는데도

보란듯이 바닥에 떡~ 하니 대 놓고 버린다.

알 수가 없다.

 

 

이 알 수 없는 것을

매일 뒷처리하는 순간만큼은 정말

세상이(원미동) 한심하게 느껴진다.

(여기서 세상이란 원미동이다)

 

그 작은 이쑤시개 뒷처리도 못하는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란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쑤시개 하나로 세상까지 논한다.

 

 

 

원미동은 도시재생으로 매우 시끌시끌한 마을 중 하나이다.

어마어마한 국비 예산으로 도시를 재생한다고 한다.

도시재생으로 원미동이 변했으면 좋겠다.

자신의 이쑤시개 정도는 쓰레기통에 살짝 버리는

기본매너를 선택하는 삶이었으면 좋겠다.

 

 

이쑤시개의 반전

 

 

 

“어유~~ 사장님, 이거 조금 드셔봐”

“어머~ 뭐예요? 떡이네 맛있겠다. 고맙습니다.”

 

이쑤시개가 하나 꽂힌 떡 작은 세덩이를

접시도 아닌 꾸깃꾸깃 뭔가가 좀 묻은듯한 비닐에 얹어서 주신다.

 

 

평소 떡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오드리지만

그래도 준 성의가 고마워서

오버액션 잔뜩 취하며 떡비닐을 받는다.

 

떡 세덩이라도 나눠먹고 싶은 마음

꾸깃꾸깃한 비닐이라도 담아서 내는 정성

조금이지만 잡수어보시라는 따뜻한 말투와 눈빛이

함께 전해진 이쑤시개라서 그럴까?

 

 

 

바닥에 굴러다니고 테이블에 날아다니고

의자사이에 숨어있던 아까의 이쑤시개랑은 느낌이 다르다.

아까 그 한심해 보이던 이쑤시개는 간데없고

정겹고 똘똘해 보이는 이쑤시개만 있다.

 

 

그러고 보니 사람들도 차림에 비해 눈동자가 살아있다.

똘똘한 원미동이다. 살만한 원미동이다.

 

이곳 원미동은

이쑤시개 하나만으로도 이야기거리가 무궁무진한 그런 곳이다.

 

오드리 기자원미동카페(2) – 두 개의 이쑤시개

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31) – 영원한 바흐 스페셜리스트. 자크 루시에

지난 3월 5일(현지시간) 바흐 스페셜리스트라 불리며 평생 바흐의 음악을 재즈로 재해석 했던 프랑스 출신 피아니스트 자크 루시에(Jacques Loussier)가 영면하셨다. 향년 84세.

자크 루시에는 파리 국립음악원에서 정통 클래식 피아노를 전공한 후 클래식을 재즈로 연주하던 모던 재즈 퀄텟(MJQ)의 음악을 접한 이후에 클래식 음악을 재즈로 해석하고 연주하는 작업에 몰두하였다. 특히 바흐 음악에 심취하여 1959년 처음 베이시스트 피에르 미셸로, 드러머 크리스티앙 가로와 함께 ‘플레이 바흐 트리오’를 결성하였다. 곧바로 내놓은 바흐의 앨범들은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며 ‘바흐 스페셜리스트’라는 명성을 얻는다.

그러나 1978년 돌연 팀을 해체한 후 직접 녹음 스튜디오를 만들어 핑크 플로이드, AC/DC, 엘튼 존, 스팅 등 대중음악인들과 협업을 하는가 하면 영화 음악을 작곡하기도 하며 이전의 음악들과는 다소 거리를 두기도 했던 특이한 경력도 가지고 있다.

그러던 중 1985년 새로운 트리오를 결성하여 다시 바흐의 음악을 재즈로 연주하다가 1997년에는 바흐의 음악에서 탈피, 비발디의 사계를 재즈로 연주하여 새로운 음악적 전기를 마련한다.

이후부터는 헨델, 모짜르트, 베토벤, 쇼팽, 슈만, 그리고 인상주의의 대표적 작곡가인 라벨과 드뷔시와 사티의 음악까지 연주하는 등 클래식 음악 전반에 걸쳐 음악적 스펙트럼을 넓혔다.

개인적으로는 국내에 발매되고 있는 자크 루시에의 거의 모든 앨범을 소장할 정도로 좋아한다. 오래전 앨범 몇 개에 사인을 받으며 잠깐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그날 어찌나 기분이 좋았는지 밤새 앨범들을 어루만지며 기뻐했던 기억이 난다.

그간 클래식을 재즈로 연주한 연주자들은 무수히 많았으나 이렇듯 적절하게 스윙을 녹여낸 연주자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독보적인 위치에 서 있다. 그의 연주를 듣고 있노라면 재즈와 클래식의 경계를 나눈다는 것이 얼마나 헛된 일인지 금방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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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연주에서는 경쾌함을 유지하면서도 결코 가볍지 않은 스윙을 구사하기에 클래식의 깊은 해석과 재즈의 자유로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아마도 클래식과 재즈 애호가 모두를 이토록 완벽하게 만족시키는 연주자도 드물 것이다. 음악이라는 밤하늘에 너무나도 아름답게 반짝였던 별 하나를 또 하나 잃어버렸다.

경 성현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31) – 영원한 바흐 스페셜리스트. 자크 루시에

별주는 오드리(10) – 증인

 

 

 

 

 

           별주는 오드리의 영화편(10)  – 증인

 

2019년 2월 13일 개봉, 한국, 12세 관람가, 감독은 이한

오드리의 별은 반올림해서 별 다섯 개입니다 !

이제 별도 반올림을 해보려고 해요.

과연 올해에는 별 다섯개 영화가 몇 개가 나올지 궁금합니다.

그래서 증인의 평점은 9.8! 입니다.

 

특성 이미지 제거

 

 

이 영화는 좋은 영화 입니까??

암요 암요~ 정우성이 나오는데 좋은 영화 맞지요.

 

영화 ‘증인’은
유력한 살인 용의자의 무죄를 입증해야 하는 변호사 순호 역에 정우성이!

사건 현장의 유일한 목격자인 자폐 소녀 지우역에 김향기가! 열연은 하겠지만

제목에서부터 예측가능한  스토리라서

사실 저는 큰 기대는 없었습니다.

 

그냥 정우성이 나오고,

목격자니, 자페아니 하니까

억울하고 슬프지만 따뜻한 영화겠거니 생각하고

극장으로 향했습니다.

 

처음부터 범인도 알겠더라구요.

착한 듯 보이는 가정부 아주머니의 모습 속에

범인의 그림자가 있더라구요.

 

 

 

 

그렇게 늘 있었던 영화스토리 배경에

멋진 배우 정우성이 나오는지라 기대보다는 편한 마음으로

그리고 혹 기대이하라 해도 정우성을 보니까 만족해야지 하는 식의

관람객이었던 저 오드리!

 

그러나 영화가 시작하는 순간부터

오~ 영화 재미 있겠는걸~ 하며 점점 집중하게 되더라구요.

그리고 그렇게 영화를 끝까지 보고는 감동하는 오드리,

공감하는 오드리가 되었습니다.

게다가 약간 기대는 했었으나

김향기라는 배우를 새롭게 만나게 되었습니다.

 

 

 

 

영화 ‘증인’의 시나리오는

알고보면

제5회 롯데 시나리오 공모대전 대상 수상작에다가

‘완득이’ ‘우아한 거짓말’ 을 감독한

이한 감독이 그 특유의 섬세함으로 연출한 작품이었습니다.

오늘 날짜로(2019. 3. 1)

200만 관객을 넘었다고 하니, 그럴만한 탄탄한 배경이 있었네요.

 

200만이라니, 대단하죠?

하지만 관객 수 200만을 넘긴 영화라는 사실보다

더 더 더 감동적인 공감력이 있었습니다.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안 할 수 없는 공감 100퍼 질문이 하나 생기더군요.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

 

자신에게 질문하게 되고

또 누군가에게 질문하고 싶게 만드는

 

영화 속 향기는 질문합니다.

아니, 복잡한 오늘날 삶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잠시 하던 일을 멈추라고 합니다.

그리고 묵직하고 맑은 질문 하나를 던집니다.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

“그 일은 좋은 일입니까?”

 

정확히 말하면 세상사는 우리 모두의

세상사는 정답이고, 바램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와 너는 좋은 사람이 되자!

우리 함께 좋은 사람이 되자!

그러면 세상이 조금 더 좋아질 것이다 라는

이 시대의 바램말입니다.

 

저 오드리는 그래서 2019년 영화 중 영화가 될 영화!

증인을 여러분에게 강추드립니다~~~!!

 

 

오드리 기자별주는 오드리(10) – 증인

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30) – 재즈, 혁명을 노래하다.

겨우내 움츠려야 했던 몸을 기지개 펴듯 역동하게 만드는 봄이 시작됐다. 적어도 우리에게 봄은 혁명의 계절이기도 하다. 언제나 그렇듯 3월을 3.1 만세 운동 기념일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 역사에서는 4.19 혁명, 5.18 광주 민주화 운동으로 이어지는, 어떤 특정 정치 세력에 의한 것이 아닌 민중 스스로 이루어 낸 민중 항거가 유독 봄에 주로 일어났다. 애써 의미를 확대하자면 2016년 가을에 시작한 촛불 혁명 역시 이듬해 봄인 2017년 4월에 완성 되었다. 올해는 특히 “3.1 독립 만세 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이니만큼 봄을 대하는 마음이 사뭇 남다르다.Ego sum operarius studens (에고 숨 오페라리우스 스투덴스)

내가 좋아하는 ‘나는 공부하는 노동자입니다’라는 뜻의 라틴어 문장이다. 나는 이 말이 학문을 연구하는 직업을 가진, 예컨대 교수나 학자를 일컫기 보다는 노동을 하고 그 임금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유일한 여가인 밤에 시간을 쪼개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라 생각하는 편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는 박사 학위 논문을 준비하는 중에 노동계급 자료 보관서를 뒤지다 1830 ~ 1850년대 노동자들이 남긴 문서들을 발견한다. 애초에 랑시에르가 노동자들이 남긴 자료에서 예상했던 것은 ‘난폭한 저항’ 따위의 거친 표현들이었다. 하지만 실제 발견된 것들은 뜻밖에도 고된 노동을 끝낸 후 휴식을 뒤로 한 채 치열하게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철학을 공부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이었다. 사유하고 철학하는 행위는 지식인들만이 공유하는 형식이라는 것에 저항하던 ‘프롤레타리아의 밤’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노동자들 스스로 노동자란 ‘사유하지 않아도 별 탈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운명’이라는 만연된 무력감과 보편적 정체성에 반기를 든 셈이다. 노동자란 그저 노동을 제공하고 그에 대한 임금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일상의 시간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수동적 존재로서가 아니라 그들의 유일한 휴식인 밤을 소환하면서까지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이끌어 나가는 ‘다른 존재’로서의 인간일 수 있다고 자각했던 것이다. 그들이야말로 Ego sum operarius studens라는 말이 의미하는 바로 그 공부하는 노동자들이다.

이 위대한 ‘프롤레타리아의 밤’의 발굴은 격동의 68혁명 당시 랑시에르가 혁명과 저항의 전선에서 전위(지식인)와 대중(노동자)은 결코 분리될 수 없다고 주장하여 스승인 루이 알튀세르와 결별하게 만드는 기폭제가 되기도 한다. 랑시에르에 의해 역사의 수면위로 부상한 노동자 스스로 생각하고 말 할 수 있는 권리를 알튀세르는 인정할 수 없었다. 마찬가지로 노동자(대중)는 노동에 전념하고 지식인(전위)은 생각하고 말하고 실천해야 한다는 기본 질서를 포기하지 않은 알튀세르를 랑시에르 역시 추종하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그러므로 이른바 전위와 대중의 ‘역할 분담’이라는 대전제가 뒤엎어지게 되었다.

내가 랑시에르에게 주목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알튀세르가 기본적으로 노동자 착취와 지배 구조에 대해 담론으로 접근했다. 반면에 랑시에르의 관심은 인간의 지적 능력을 포함한 문화 향유 욕구와 자격, 그리고 사유하고 표현할 수 있는 권리, 능력이 누구에게나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정체성의 문제에 있었다. 자격뿐만이 아니라 그러한 능력도 있다는 것을 노동자와 대중이 ‘자각’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의해 대변되어지는 노동자의 목소리가 아닌 노동자 스스로 발화하는 목소리가 존재하고 부당한 체제나 억압에서 해방되어야 하고 그 주체는 바로 노동자 자신들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자를 민중으로 변환한다 해도 의미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3.1 만세 운동, 4.19 혁명, 5.18 광주 민주화 운동과 최근의 촛불 혁명이야말로 이를 완벽히 증명했고 실천한 민중 혁명이다.

‘AVANTI!’ (Giovanni Mirabassi, Sketch)는 앨범 자켓의 디자인이 매우 강렬한 느낌을 주는 피아노 솔로 앨범이다. 붉은 색 바탕에 검고 굵은 서체로 쓰여 있는 ‘Avanti’라는 단어는 이탈리아어로 ‘전진’ 혹은 ‘진군’이라는 의미이다. 2001년 발표될 당시 엄청난 찬사를 받으며 이탈리아 출신 재즈 피아니스트 지오바니 미라바시(Giovanni Miravassi)를 세계적인 연주자로 각인시켰다.

‘AVANTI!’는 세계 곳곳의 민중 투쟁 현장에서 울려 퍼지던 혁명과 저항 음악만을 담은 앨범이다. 서정적인 피아니즘으로 유명한 엔리코 피에라눈찌(Enrico Pieranunzi)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알려주기라도 하듯 저항과 혁명이 주는 강렬한 인상을 서정미 가득한 아름다움으로 재편하고 재해석했다.

첫 트랙 ‘El pueblo unido jamas sera vencido’는 우리의 ‘임을 위한 행진곡’같은 저항 음악이다. ‘단결된 민중은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로 번역되는 이 노래는 1973년 피노체트에 의한 쿠테타에 맨몸으로 맞서 싸운 칠레 민중들이 거리에서 부르던 저항운동의 상징과도 같은 곡이다. 실제 미라바시는 내한 공연 중에 ‘임을 위한 행진곡’을 연주하기도 했다. 칠레의 투쟁 현장에서 울려 퍼지던 이 곡을 미라바시는 지극히 아름다운 서정미를 담아 연주한다. 이외에도 파리 꼬뮨의 상징 ‘Le Temps Des Cerises’, 체 게바라의 주제곡이라 할 수 있는 Hasta Siempre, 백인으로서 남아공의 아파르트 헤이트에 저항했던 자니 클렉의 ‘A Si M’Bonanga’, 2차대전 당시 이탈리아 파르티잔을 위한 ‘Bella Ciao’, 반전을 상징하는 존 레논의 ‘Imagine’과 자신의 자작곡 ‘Revolution’등이 수록되어 있다.

혁명의 계절이자 봄이 시작되는 3월, 혁명을 노래하는 앨범 ‘AVANTI!’만큼 의미 있는 재즈 앨범도 드물다. 거칠고 투박한 혁명의 목소리를 재즈 미학으로 다듬고 승화시켜 새로운 음악으로 만들어 낸 놀랍도록 아름다운 앨범이다.

경 성현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30) – 재즈, 혁명을 노래하다.

내 동생 형도는, 참 괜찮은 사람이었다.

서점에서 시집으로 나는 그 시인을 처음 만났다. 크고 동그란 우수에 젖은 눈, 그 눈이 날 사로잡았고 그 속에서 헤어나지 못했던 그 때 그 날이 생각난다. 뭐라 말하지 않아도, 시인에 대해 아는 것 하나 없어도, 그의 눈은 모든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시인의 글들을 보면, 자신의 소설, 편지, 여행기 등 삶의 숨결이 고스란히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우울한 내용이라 싫어하는 사람도 여럿 있지만, 외롭고 쓸쓸하고 서글펐던 그의 생애가 진솔하게 담겨져 있어서 나는 좋았다. 다른 작가들에 비하여 꾸밈과 과장이 없이 감성과 추억들로 그 시대를 책을 통해 알 수 있었고,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가슴 저릴 만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시간이 흘렀어도 그의 글을 찾아 읽고 싶어 하는지도 모른다.

문학관 곳곳에는 시인을 사랑한 사람들의 수고와 노력으로 꾸며져 있었다. 시인의 시 중에 ‘엄마걱정’이라는 시가 있는데,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아하는 시 중에 하나이다. 그 속에는 외롭고 쓸쓸하고 서글펐던 어린 시절의 자아가 나타나는데, 직접 문학관을 돌아다니다 보면 우리는 그 시에 담겨있는 그의 생각을 생생히 접할 수 있다. 그 뿐만이 아니다. ‘빈집’을 노래하면서 시인은 어떤 생각을 했을지 궁금했었는데, 실제로 문학관에 들어가면 빈집이라는 이름의 빈 공간이 있었다.

다음은 시인의 궁금한 점에 대한 누나와의 문답이다.

 

문학관 전시관을 통해 본 시인의 성격은?

어린 시절부터 시를 썼고 시인이 되고 싶었던 그는, 겸손하고 다정다감했으며 정이 많았던 사람이었어요. 집으로 돌아올 때는 꼭 가족 한명 한명을 위해 과자를 사오던 그런 다정한 사람이었지요. 세심하고 치밀하기까지 했던 그의 성격은 문학관에 있는 전시물들을 보면 유추해 볼 수 있을거에요.

문학관에는 공책, 글씨체, 만든 지도공작, 축구팀을 그린 그림 등 시인이 보관해 두었던 물품들이 전시 되어 있다.

어머니가 기억하는 아들은?

학교에서 돌아오거나 직장에서 집에 와서는 어머니가 계신 곳을 확인하곤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책을 좋아해서 항상 정리해서 책을 꽂는 습관이 있었고, 친구들이나 조카들에게 위로하는 방법이 또한 남달랐어요. 어머니의 입장에서는, 아들에게 특별히 야단칠 것이 없었다고 하십니다. 착하고 말 잘 듣고 초등학교 때 일기를 보면 그날그날 반성해야 할 것 들 뿐만 아니라 생각하는 것들도 빼곡히 적어 놓을 정도였어요. 그래서일까. 어릴 때부터 시인은 메모하는 좋은 습관으로 글을 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생선국이나 고깃국을 끓여 식사를 할 때면 본인의 국그릇에 있는 고기를 건져 엄마 국그릇에 옮겨 놓곤 하던 다정스런 효자인 아들이었지만 학교에서 상을 타오는 날에는 “엄마는 내가 공부 잘해서 상을 타 왔는데도 눈깔사탕 하나 사 주지 않는다.” 는 말도 했다고 하십니다.

누구나 엄마에게 칭찬받고 싶고 관심 받고 싶었던 것처럼 시인 또한 마찬가지였을 것이라 짐작된다.

누나가 기억하는 동생은?

어려서부터 집안 살림을 걱정해야했던 저는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 정답게 제 마음을 표현 못했지만 늘 동생이 사랑스럽고 또 자랑스러웠어요. 무엇보다 동생은 참 괜찮은 사람이었어요. 아주 겸손하고 다정다감했으며 정도 많았고 부모님께 속 한 번 썩힌 적이 없었지요.

동네에서도 동생이 세상을 떠난 다음에야 어떤 사람인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어려운 형편에 가정을 먼저 생각했어야 했던 때라 동생에게 용돈을 많이 주지 못해서, 줄 때면 좀 더 주지 못했던 점이 가슴 아팠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서로가 마음을 나누고 많은 이야기를 하지 못한 시간들이 아쉽고 안타깝지요. 동생이 막내아들로 엄마에게 아들 노릇할 때, 그리고 돼지를 함께 돌보던 일들이 기억 납니다.

친구들이 기억하는 시인은?

다정다감했던 동생은 친구들과의 모든 일에서 화목하게 어울렸다고 합니다. 그가 시에서 말한 ‘생활에 밑줄을 그어야한다“고 말했던 것처럼 가족에게도 그랬듯이, 보이던 보이지 않던 자신의 마음에 충실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작가가 살아있다면 시를 쓰는 것 외에 무엇을 하면 살고 있을까?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이 되고 기뻐하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생전에 어머니는 동생에게 글 쓰는 사람은 가난하다며 걱정하셨지요. 그럴 때면 시인은 어머니에게 “나는 글 쓰는 것 말고도 그림도 그릴 수 있고 노래도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것이 참 많아요.” 라고 했다고 합니다. 친구들과 지인들이 어떤 모임에서 만날 때면 자연스럽게 그에게 노래를 부르게 했다고 합니다. 노래 뿐 만 아니라 어렸을 때에는 그림과 만화를 그려서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곤 했습니다.

시인은 정말로 팔방미인이었던 것 같다.

누나로 동생을 생각하면 유고시집이 발간된 것은 그의 죽음이 세상에 알려졌다고 생각되고 동생이 살다 간 자리인 광명시에 문학관이 세워진 것은 그가 다시 살아 돌아온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광명시민들과 기형도의 문학세계와 시를 사랑하는 모든 분들이 함께 힘을 모아 문학관을 건립해 주신 것에 대해 늘 감사하는 마음이지요.

2019년 기형도시인 30주기를 맞이하여 30주기 기념시집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문학과 지성사, 3월 발간 예정)’, 추모 콘서트, 낭독의 밤, 추모제, 일러스트 전시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진행한다고 한다.

 

추모 콘서트는 3월 5일(화요일) 광명시민회관에서 저녁 7시 열리며 콘서트 제목은, ‘정거장에서의 충고’다. 시집을 준비하던 기형도시인은 ‘정거장에서 충고’,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를 놓고 많은 생각을 하였다고 한다. 올해 30주기를 맞아 더욱 큰 의미로 다가오지 않을까 생각이 된다. 기회가 된다면 많은 분들이 기형도 문학관 관람 및 30주기 추모 행사도 참여하고 이번에 새로 출간되는 기념시집도 접해보길 권하고 싶다.


3월 출간  문학과지성사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 출처 알라딘

 

 

정 정숙내 동생 형도는, 참 괜찮은 사람이었다.

바리스타 오드리의 원미동카페 (1) – 목소리가 큰 사람들

목소리가 큰 사람들

 

 

 

오늘도 나는 귀가 따갑다.

여기 오신 손님들은 하나같이 목소리가 크다.

 

 

그야말로 내가 알고 싶지도 않고, 관심도 없는

자기 집안 얘기를 엄청 크게 떠든다.

 

소송이 어쩌구 저쩌구~

아빠가 바람이 나서 어쩌구 저쩌구~

그눔이 사기를 쳐서 어쩌구 저쩌구~

내가 죽어라 고생을 했잖아 어쩌구 저쩌구~ 등등

 

 

나는 정말 궁금하다.

저들의 이야기 전후사정이 궁금한 게 아니다.

 

왜, 홀에 빈 좌석이 많은데도 내가 있는 카운터 바로 앞 좌석에 앉았는지

그것이 궁금하다.

 

 

한창 목소리를 키우다가

“저기요, 사장님! 음악 좀 꺼주세요.”

띠옹~~~!!!

 

구석에 앉은 커플을 눈으로 가리키며, 억지 미소와 억지 친절로 나는 말한다.

“영업장이라 끌 수는 없고, 조금 줄여드릴께요.”

 

그러고는 두어 차례 더 그들은 나를 부른다.

“저기요, 사장님! 얼음물 좀 주세요!”

“저기요, 사장님! 물티슈 없어요?”

 

 

암튼 나는 “저기요~ 사장님!”을 부르면 겁이 난다.

자다가도 들릴듯한 그들의 큰 목소리는

오늘도 ‘부산행’보다 더 나의 심장을 벌떡 거리게 한다.

오드리 기자바리스타 오드리의 원미동카페 (1) – 목소리가 큰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