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대식

sanguram

산을 좋아하는 한국화가

장화백의 산행일기 – 경주남산

5시 알람에 겨우 일어나 나머지 배낭을 꾸리는데 마눌님께서 간단한 아침 준비를 한다.

버스를 타고 경주 남산으로 남으로 남으로 하염없이 달려간다.

문득 아내의 아침 수발에 고마움을 느꼈다.

아내가 여행갈때 거의 한번도 일어나지도 않고 언제 갔는지도 몰랐던 나였다.

그런데 아내는 과자와 간식 물 등등을 챙겨주며 낭떠러지 근처가지말고 안전하게 다녀오란다.

고맙다.

11시쯤 도착을하여 산행을 시작하는데 아까 먹은 말랑한 과자가 문제였다.

배가 뒤틀리고 금방 터질듯하다. 급히 화장실에 가서 볼일을 보는데 엄청 힘이 들었다. 20분 정도 허비하고 나오니 일행은 모두 떠나고 주차장은 휑-하다.

산 초입부터 여러 불상과 음산한 기운이 돈다. 중간쯤 올랐는데 바위와 소나무가 잘어우러져서 구도와 깊은 속경치를 감상하고 폰과 머리에 저장을 한다.

오르는 내내 바위에 새겨진 불상이 있는데 세월의 풍파에 깍여서 흔적을 잘 볼 수 없다. 그저 안내판의 설명으로 겨우 알 수 있다. 암튼 그때는 기계도 없었을텐데 석공들이 많이 고생하였겠다.

금오봉 정상에 오르니 정상석앞에서 사진을 찍느라 야단법석이다. 멀찍히 떨어져서 인증샷 몇 컷 찍고 조금 빠른길을 택하여 하산한다

1시쯤 점심식사를 할려고 처음로으로 준비한 전투식량인 비빔밥을 먹었는데 참으로 편하다. 뜨거운 물을 붓고 약 20분후 그냥 비벼서 먹으면 된다.

산중턱에 목이 없는 불상이 덩그러니 먼 산을 바라보고있다.

수묵담채로 그리다

한 참을 바라보며 별생각을 다해본다. 아들 낳을려고 떼어갔나? 아니면 머리가 무거워서 스스로 내려 놓다가 산아래로 굴러 떨어졌나? 분명 큰 절터였는데 언제 어떻게 흔적없이 사라졌는지는 전문가도 모른다고 안내판에 쓰여있다. 불상을 뒤로하고 앞을 내다보니 확트인 시야가 너무 좋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경치 좋은곳엔 어김 없이 파헤쳐져서 자연을 훼손하는것이 씁쓸하다.

4시 20분까지 버스에 타라고해서 시간이 좀 넉넉하여 물소리와 새소리가 어우러진 바위 위에서 눈을 감고 자연을 즐긴다. 나를 되돌아보며 큰 틀을 짜본다. 이렇게 건강하게 산을 다니게 하여주신 하나님께 무한 감사 기도를 한다.  

하산을 하여 버스에오니 아직1시간 정도의 시간 여유가 있어서 동네 구경을 하다가 조그만 구멍가게가 보여서 막걸리나 한 잔 하려고 들어가  막걸리 한 병과 소세지 하나를 들고 의자에 갔더니 먼저 온 산꾼 2명이 막걸리 2병을 까고 있었다. 자연스래 어울려 단숨에 1병반을 마신것  같다. 약간 얼큰하다.

아 여기까지가 좋았다~  막걸리나 맥주를 먹으면 바로 반응이와서 1시간도 안되어서 화장실을 가야하는걸 깜빡 잊었다.

출발한지 1시간쯤되니  슬슬 반응이온다.

아! 큰일났다.

차는 이미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고 휴계소까지는 1시간 정도 더가야하는데 애써 상황을 잊으려 오락게임에 집중해봐도 잠시뿐 고속도로에서 차를 세울수도 없고 정말 난처했다.

겨우 휴게소에 도착하여 시원하게 볼 일을 보았으나 버스안에서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식은땀이 흐른다. 조목조목 글쓰는것을 잘못해서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의 느낌을 써보았다.

큰 바위에 새겨진 불상과 바위사이에 뿌리를 내리고 힘찬기상을 뽐내는 소나무를 수묵담채로 그리다

장 대식장화백의 산행일기 – 경주남산

기형도를 만나다.

만저봐 기자님들과 광명에 위치한 기형도 문학관을 다녀왔다.

가벼운 마음으로 갔었는데 집으로 들어와서까지 시커먼 눈썹과 풍성한 머리카락의 그의 얼굴이 아른 거린다.

화선지에 그를 불러 낸다. 여러 모습의 그의 얼굴을 그려본다.

짧은 머리의 기타치는 모습의 그림을 그리는데 문득 그와 막걸리 한 잔 하고팠다.

그림속으로 들어가 그와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나누고 싶었다.

어려운 시기에 나와 시대상은 비슷하였으나 살아온 인생관은 180도 달랐다.

막걸리 한 잔을 따라서 그에게 권했다. 변했는지 잘도 먹는다. 대참에 서너 잔을 마시곤 여러분들이 나를 찾아주고 나의 시를 읽고 감상해 주어서 고맙고 이렇게 막걸리까지 권하며 찾아준 나에게 고맙다는 말을 여러번 되뇌인다.

“멋진 외모와 좋은 머리로 인생을 살았으나 글에 대한 갈망으로 시와 나만의 세계에서 살았었네요. 불행한 가족사와 암울한 현실을 헤쳐나갈 용기와 힘을 글에서 찾았지요.

내 몸을 휘감고 있는 지병을 나만 알고 혼자 끙끙 하기도 했지요.”

내가 물었다? 다른 학우와 같이 술도 마시고 데모도 하면서 잊어버리지 그랬어요?

그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글쎄 맘대로 생각하세요. 지금 나의 심경을 밝히면 지구의 가족과 나를 기억하는 지인들에게 혼란을 줄 것같아 여기까지만 얘기할께요.”

저를 기억해주고 제 시와 글을 읽어주셔서 너무나 감사해요.

어느덧 2대들이 막걸리가 바닥을 보인다.

주전자를 흔들며 마지막 잔을 그에게 따르고 남은 막걸리를 깨끗이 나의 잔에 붓고 잔을 부딪친다.

그리고 원샷, 앞을 보니 기형도는 가고 없다.

거기가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지구보다 멋지고 행복하게 사세요.

장 대식기형도를 만나다.

장화백의 산행일기 – 여계봉산악회

새해 첫 산행을 작년에 같이 공부하고 전시까지 하였던 아재들의 만화일기 팀과 같이 하였다.

초보 산꾼들이 있어서 가까운 관악산 무너미코스를 선택하고 서울대 입구에서 산행을 시작하였다.

산에 대하여 해박한 지식과 연륜을 지니신 여계봉선생님이 선두를 맡아서 리드하셨다.

그래서인지 산악회 이름을 여계봉 산악회로 하자고 의견이 나왔다.

오랜만에 산을 올렸더니 난이도가 아주 쉬운 코스였지만 빨리 몸이 풀리지 않아 초반엔 좀 힘들었다.

그래도 30분정도 지나니 컨디션이 돌아와서 비교적 쉽게 산행을 하였다.

입구에서 많은 사람들 때문에 정신이 없었는데 무너미고개를 들어서니 거짓말처럼 사람들이 없었다.

우리 일행만 남아서 조용하게 자연을 즐길수가 있어서 너무좋았다.

옛날에는 안양과 서울을 넘나들며 장사하러 보부상들이 다니던 길이었다는 여계봉 선생님의 설명을 들었다.

고개 같지않은 고개를 넘어서 하산을 하다가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각자 가져온 간식과 막걸리로 목을 축였다.

요기를 하고 약간의 난이도가 있는 능선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오르내리기를 여러번 하고 드디어 안양 유원지 입구에 도착하였다.

산행시간이 짧아서 특별한 에피소드는 없었지만 같이 산행을 하신 박태근 내과원장님에게 겸손함과 유머를 배울수 있어서 너무좋았다.

식당에서 뒤풀이겸 막걸리 한잔하고 나니 임진왜란부터 시작하여 2차대전 그리고 다부동 전투까지 많은 얘기가 진행되었다.

좋은 사람들과의 산행과 맛있는 술자리를 한 후 지하철을 타고 귀가를 하였다. 다음 산행이 기대된다.

 

장 대식장화백의 산행일기 – 여계봉산악회

신천댁네 새끼돼지~

황금돼지해를 맞이하여 모두 복 많이 받으세요.

 

설이나 추석 연휴때면 엄마가 어려웠던 시집살이 이야기와 장남인 나의 어린시절 개구쟁이 짓을 종종 이야기해 주셨다.
4살때부터 장난과 호기심으로 똘똘뭉친 나는 동네 골목대장이었다. 또래 친구들을 데리고 하루종일 사고만 치고 다녔다.
4살때라 나는 생각이 나지 않는데 엄마는 어제 일 같이 생생하게 기억하며 이야기하신다.
그날도 동네어른들은 모두 들로 논으로 일하러 가시고 온동내는 조용한데 호기심에 낳은지 얼마되지도 않은 우리옆집 신천댁내 새끼돼지를
친구들과 약 5마리를 새끼줄로 줄줄이 묶어서 끌고 다니며 도랑에 가서 목욕도 시키고 달리기도 하며 신나게 놀다가 점심때가 되자 친구들과 헤어져서 집으로 갔다.
그런데 밥먹을 생각에 새끼돼지는 도랑에 그대로 두고 와버린것이다.
들에서 일하고 집으로 온 신천댁이 난리가 났다.
새끼돼지가 모두 없어졌다고 온동네를 찾아다니다가 4마리는 찾고 1마리는 결국 못찾았다.
결국 대식이가 몰고 나갔다고 동네사람들의 증언해서 우리집에 찾아와서 한바탕 난리를 치고 갔다.
그날 아무것도 모르고 놀다가 집으로 들어갔는데 봉당에서 저녁을 드시던 아버님께서 나를 바짝 쳐들고 마당 한구석의 거름덩이에 내동댕이 쳤다고 엄마가 이야기하셨다.
엄마께서 놀라서 얼른 나를 데리러 가려는데…
거름덩이에 떨어지자 말자 벌떡 일어나더니 동구밖으로 총알같이 도망 가버렸다고 하셨다.
그날 저녁 나는 집에도 못들어가고 한동네에 같이 살았던 삼촌집 헛간에서 자고 아침에 몰래 집에 들어갔다.
밤새 걱정하셨던 엄마는 나를 반겨주시며 한마디 하셨단다.
저녁에 잊어버렸던 새끼돼지 한마리가 집을 찾아왔단다. 그러던가 말던가… 나는 어제일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아침을 먹자 마자 동네 친구들과 새끼줄로 무장하고 미루나무에 달려있던 말벌 잡으러 씩씩하게 나갔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도 참 개구쟁이였던것 같다.


설이 다가오는데 이젠 엄마의 옛 이야기를 들을수가 없구나.
하늘나라에 계신 엄마가 그립다.

장 대식신천댁네 새끼돼지~

장화백의 2018년을 돌아보며…

카툰캠퍼스와 인연을 맺고 만저봐 기자님들과 같이한 시간이 어언 1년이란 세윌이 흘렀다.
학교 졸업하고 책과 공부와는 담을쌓고 지냈었는데 만화진흥원에서 이사님과 고구마 작가님 마법의 손을 가진 염실장님 그리고 모두를 아우르는 조대표님 저를 새로운 세계로 나오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만저봐 기자님들 부족한 저를 받아주시고 이끌어 주어서 감사합니다.
세상을 살면서 특별한 상도 받아보지 못했고 특히 제가 상을 줘보지도 못했습니다.
저에게 새로운 삶의 길을 열어주신 카툰캠퍼스 식구들과 만저봐 기자님들께 나름 심혈을 기울여 그린 그림으로 상을 대신 할께요~

조희윤 대표님, 카리스마 넘치는 파워로 모두를 이끌어 주시고 저에게 새로운 힘을주어서 감사.


이원영 이사님, 원시시대에 머물던 저를 4차원 세계로 이끌어주어서 감사.

고구마 작가님, 한국화에 카툰을 접목 할 수 있게 아이디어를 주어서 감사.

염실장님, 저를 책속에서 살아 움직이게 만들어 주어서 감사.


한성희 국장님, 포근한 누님같은 사랑으로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어서 감사.


정정숙 부국장님, 바쁘신 가운데도 우리모두에게 활기찬
웃음을 주시고 모델같이 멋진 패션을 창조하심에 감사.

오드리 기자님, 오나시스 재키같은 외모와 파워플함으로 가정과 일을 병행함을 보고 배움에 감사.


신용택 기자님, 봉사와 봉사를 하심을 보고 저도 나 말고 다른 사람을 위하여 봉사를 생각하고 나자신을 반성하게 하여서 감사.


전지훈기자님, 항상 생각지도 않은 아이디어를 얻게 해주시고 같이 할동한다는 것만으로 글로벌한 마인드를 심어주어서 큰꿈을 가집니다 감사.


박현숙기자님, 부천댁 필명에서 풍기듯이 푸근하시고 무한긍정의 따뜻한 미소가 항상 저에게 기쁨과 너그러운 미소를 가지게 하여서 감사.

서보영 기자님, 항상 상큼하고 밝은 미소로 톡톡튀는 한 줄 영어를 가르쳐 주어서 고마웠고 우리 만저봐 기자님들의 평균 나이를 팍 낮춰 주어서 감사합니다.
큰 꿈을 펼치고 건강하게 아름답고 멋진 삶을 사시고 앞으로도 함께 즐겁게 좋은글 부탁드립니다.


추유선 기자님, 뭔가 큰힘을 가지신것 같아서 기대가 무궁무진 합니다.


이현정 작가님 강릉의 지부장님으로 엄청난 열정으로 많은 할동을하여 만저봐의 위상을 높이시고 큰힘이 되심과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미소를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세상에서 이렇게 행복하게 제가 하고 싶은 그림 맘껏 그리게 건강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장 대식장화백의 2018년을 돌아보며…

장화백의 산행일기 – 한 해를 마무리 하면서…

한 해를 마무리 하면서,

정상 부근에서 세상의 시름을 내려놓고 산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힘들어서 중도에 포기하고 싶었지만 한 발 한 발 묵묵히 왔더니 정상이 눈앞에 있다.

우리들 인생도 그런것 같다.

결혼을 하고 아이들 기르며 바쁘게 살았는데

어느덧 인생의 후반기에 왔다.

충분히 인생을 열심히 살았으니 이제 넒은 시야를 가지고 나만의 길을 가자.

늘 푸른 소나무와 같이…

화선지에 수묵 담채

장 대식장화백의 산행일기 – 한 해를 마무리 하면서…

장화백의 산행일기 – 꽃창매 천지당

내가 태어나서 국민학교 5학년때까지 살았던 고향 현내동은
내 머리속에 영원히 살아있다.

새마을운동이 시작되며 지붕 개량공사와 마을안길 넓히기 등등으로
옛날 모습이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모습이 너무나 아쉬워서 고향에 갈때마다 하나라도 옛 모습
그대로가 남아 있으면 찾아내서 추억을 되새기며 스케치한다.
첨부한 그림은 꽃창매라는 뒷산이고 그 산안에 자리한 천지당이다.

어릴적 정월 대보름때면 온동내 주민들이 횃불을 들고
소나무와 천지당 신에게 건강과 부를 빌고 한지를 잘라서 불을 붙혀
다타고난 재를 하늘로 올리는 행사를 하였는데 지금도 매년 하고 있다.

벌초하러 가서 천지당에 들려 옛날을 회상하며 화선지에 수묵 담채로 그리다

화선지에 수묵 담채

장 대식장화백의 산행일기 – 꽃창매 천지당

하나님 전상서

하나님 아버지 올해도 수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하나님의 은총으로 연말을 맞이 하였습니다.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수없는 반성과 회개를하였지만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또 하나님께 용서를 빌고 하였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은 언제나 저를 용서해 주셨지요.

돌아가신 부모님께 어릴적부터 불효를 하였습니다. 
4살때는 옆집 신천댁 돼지새끼를 몰고다니다
그냥 버리고 와버려서
밤새찾으러 다니시게 만들었고,
초등학교 시절부터 학교에가면
거의 매일 동무들과 하루도 빠지지않고 싸우며 때려서

친구들 부모님 항의도 많이 받았지요.
결혼하고 나서도 사업이 부도가 나서 가족들을 2배로 맘고생 시켰지요.
그나마 늦게서야 약간철이 들어서 돌아가신 다음에야 아버님
이천 호국원으로 모시고 어머님 제집에서 20년 이상 모셨었습니다.
하나님 께서는 이런 나를 무한한 사랑으로 용서해 주셨습니다.
같이 살고있는 아내에게는 더 큰 죄를 지은것 같아서 더욱 더
회개하고 참회를 합니다.
일일이 열거하자면 너무나 잘못된 행동이 많아서
상세히 쓰지않아도 하나님은 모든걸 아실겁니다. 용서해 주세요.
이렇게 아침에 눈뜨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회개 할 수있게 하여 주셔서 정말정말 감사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세상 모든 사람들이 평화롭고 아름다운 삶을 살게 해 주세요.

화선지에 수묵담채로 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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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대식하나님 전상서

장화백의 산행일기 – 자연이 주는 감동

많은 산을 다니다 보면
온갖 경치와 숨어서 자신을 보여주기 싫어하는 자연도 있다.
그들을 찾아 화선지에 담을 때 만족감과 그때의 감동이 다시금 떠오른다.
특히 좁은 바위틈에 생명의 뿌리를 내리고
굳세게 살아가는 소나무를 마주치면 감동과 경의로움에 한동안 멍하니 바라보다
소나무와 대화를 한다.
그리고 강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간단하게 스케치하고 나머진 머리속에 담는다.
오늘도 나는 그들을 그린다.
화선지에 수묵담채로 그리다
장 대식장화백의 산행일기 – 자연이 주는 감동

어슬렁 인문路드에서 만난 ‘소사동 보호수’

카툰캠퍼스 이원영 이사님께 ‘부천 인문路드’ 교육을 받고 마지막 수업으로 오늘은 현장 탐방을 하였다.


만저봐 기자님들과 카툰캠퍼스 식구들
그리고 문화재단 관계자와 일반 시민들이 약 40여 명 참석하였다.

부천서 35년 이상을 살았지만 변영로, 정지용, 양귀자에 대하여 거의 알지를 못였는데 인문로드를 통하여 많은 걸 알 수가 있었다.

특히 양귀자 작가에 대해 많은 편견도 있었는데 소설 속의 장소를 하나하나 찾아서 나아갈때마다 새롭게 모든 걸 알 수가 있어서 좀 더 성숙된 기분을 느꼈다.

그 옛날 한참 일할 때 양귀자 작가가 살던 원미동사람들 같이 나도 책 속의 인물들처럼 그렇게 살았다.

옛 시청 자리 옆 조각공원을 출발하여 무궁화연립, 강노인땅, 장미연립, 원미산 둘레길을 두루 돌아 옛 소사성당으로 왔다.
잠시 쉬는 사이 난생처음 부천서 처음 세워진 소사성당도 볼 수 있었다.


한참을 걸어 경인 국도를 가로질러 소사삼거리에서 정지용 시인 거주터에서는 이원영 이사님의 맛깔난 역사 설명을 들었다.
마지막으로 이유 카페에서 시원한 커피 한 잔을 하며 조관제 선생님의 카툰 작품과 고구마작가님의 멋진 작품을 감상하며 오늘의 공식 일정은 끝이 났다,

바깥에서 여기저기 살피던 중 눈에 확~ 들어오는 나무가 있었다.
소사동에서 보호수로 관리하는 천년이 훌쩍 넘은 은행나무가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고작 백 년도 못 살았고 은행나무보다 오래 산 사람은 없다.

화선지에 수묵담채로 그리다

은행나무가 말을 한다면 이렇게 하지 않을까?

“어리석은 인간들아 한 치 앞을 못 보면서 뭘그리 욕심과 탐욕에 미쳐서 날뛰냐!”

장 대식어슬렁 인문路드에서 만난 ‘소사동 보호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