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 성현

Readiens

재즈를 듣고 사진을 찍으며 철학과 인문학속에서 길을 찾고 있는 커피 로스터.

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36) – ‘Jazz at Massey Hall’ (The Quintet, debut, 1953)

벨 에포크(Belle Époque)는 황금시대(Golden Age)를 의미하는 말이다. 가령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주인공 ‘길’이 꿈꾸던 벨 에포크는 1920년대 파리이며 그곳에서 만난 연인 아드리아나의 황금시대는 그 이전의 또 다른 과거인 1880년대이다.

예컨대 커피의 벨 에포크를 콕 집어 굳이 말하자면 프랑스 대혁명 직전의 시대, 이른바 구시대라 일컬어지는 ‘앙시앵 레짐’이다. 커피 하우스에 모여 술 대신 커피를 마시며 자유로운 토론을 통해 위대한 사상과 과학, 문화를 발전시킬 수 있었던, 역설적이지만 커피가 사회를 분명하게 각성시킨 시대였기 때문이다.

카페 드 프로코프의 볼테르(손을 들고 있는 사람). 이미지 출처 : wikipedia.org

그렇다면 재즈의 황금시대는 언제일까? 혹자들은 뉴올리언즈, 시키고 시대를 지나 역사상 가장 대중적인 음악이라는 지위를 누린 스윙 시대를 떠올릴 수 있겠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비밥뿐만 아니라 쿨재즈와 하드밥이 거의 동시에 만개한 1950년대를 진정한 재즈의 황금시대라 부르고 싶다.

이 시대 이후 재즈는 록을 위시한 기타 여러 다른 요소가 결합된 형태, 즉 퓨전 재즈(Fusion Jazz)에 들어가게 된다. 퓨전 재즈의 도래야말로 재즈로 하여금 돌이킬 수 없이 침잠하게 했으니 1950년대야말로 재즈가 가장 화려하고도 아름답게 꽃을 피웠던 황금시대, 벨 에포크다. 10년 남짓 짧았던 시기였음에도 재즈가 결코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대중과 함께 했다.

The Quintet 의 ‘Jazz at Massey Hall’은 이 시대를 대표하는 비밥의 명반이다. 디지 길레스피, 찰리 파커, 버드 파웰, 찰스 밍거스, 맥스 로치 등 참여한 뮤지션들의 면면을 들여다봐도 그렇다. 가히 어지간한 비밥의 명수들은 이 퀸텟에 다 모여 있는 듯하다.

실황 녹음이므로 당시 공연장이었던 캐나다 토론토 ‘Massey Hall’의 열기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첫 트랙부터 뿜어져 나오는 비밥의 격렬함이 약간의 부담을 주는 것도 같지만 디지 길레스피와 찰리 파커를 비롯한 각 멤버들의 솔로에서는 격렬함 속에서도 자유로움을 잃지 않는 그들의 호흡을 느낄 수 있다.

특히 두 번째 트랙 Salt Peanuts 에서의 장난기 가득한 보컬을 듣고 있노라면 지금이라도 곧바로 달려가고 싶을 만큼 기분이 좋아진다. 또한 다섯 번째 트랙 Hot House에서는 색소폰의 찰리 파커와 트럼펫의 디지 길레스피, 베이스의 찰스 밍거스에 의한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에 나오는 유명한 아리아 ‘하바네라’의 멜로디 라인이 깜짝 등장한다. 재즈의 매력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어떤 장르의 음악이든 재즈라는 자유 구역에 들어오기만 하면 서로 어깨동무를 하면서 친구가 된다.

아주 오랜만에 비밥의 감각을 온몸으로 느끼며 되살리고 있다. 하지만 순수한 비밥이 퇴조한 지금 시대에서는 웬만한 재즈 팬이 아니면 선뜻 손이 가는 음반은 아니리라. 나 역시 이 음반을 까맣게 잊고 있다가 아주 오랜만에 듣는다. 왜 여태까지 잊고 있었는지 스스로 원망할 정도로 좋다.

경 성현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36) – ‘Jazz at Massey Hall’ (The Quintet, debut, 1953)

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35) – malo 3 벚꽃지다

4월. 남도에서의 꽃소식이 엊그제 같더니 어느새 온 세상이 꽃으로 지천이다. 하지만 피는가 싶으면 곧바로 지는 게 꽃이다. 특히 봄꽃은 더 그렇다. 그 중에서도 피었다 지는 속도가 으뜸인 건 벚꽃이다. 비할 데 없이 화려하지만 가벼운 빗방울에도, 살랑살랑 부는 봄바람에도 여지없이 흩날린다. 찰나에 피었다 찰나에 지는 꽃이다.

그 꽃잎들이 바람에 날리며 떨어지는 모습은 비장함을 느끼다 못해 차라리 처연하다. 벚꽃의 매력은 어쩌면 그 화려함에 대한 찬사보다도 흩날리며 지는 것에 있는지도 모른다. 마치 해가 넘어가기 직전에 발하는 노을의 그 빛이 아름다운 것처럼 말이다.

​벚꽃이 피기 시작할 무렵인 이맘때면 습관처럼 당연하다는 듯 집어 드는 음반이 하나 있다. ‘malo 3 벚꽃지다’는 한국의 대표적인 재즈 보컬 ‘말로’가 2003년에 발표한 그의 3집 앨범이다. 우선 재킷 사진부터가 사뭇 아름답다. 맨발 주위에 벚꽃 잎들이 떨어져 있다. 이 앨범의 정서를 이끌고 있다는 느낌이다.

재즈 보컬 ‘말로’는 한국적인 재즈를 표방하고 있는 대표적인 보컬이다. 꾸준한 활동에 걸맞은 대중적 인기와 함께 한국적 정서를 그녀만큼 노래 속에 잘 버무려 내놓는 싱어도 없다. 특히 가사의 전달력, 섬세함은 가히 타의 주종을 불허할 만큼 독보적이다. 특히나 그가 구사하는 화려한 스캣은 세상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는다. 오죽하면 한국의 엘라 피츠제럴드(Ella Fitzgerald)라고 부르겠는가. 자작곡 ‘그루터기’로 1993년 제5회 ‘유재하 음악 경연 대회에서 은상을 차지하며 화려하게 데뷔하는가 싶더니만 1995년 돌연 미국 보스턴의 버클리 음대에 입학해 공부한 수재이기도 하다.

그의 3집 앨범 ‘malo 3 벚꽃지다’는 순전히 한국적이다. 여기에서 한국적이라는 뜻은 여태까지 한국의 많은 재즈 싱어들이 그래온 것처럼 재즈 스탠더드를 단순히 영어 가사로 내놓은 음반과는 격이 다르다는 뜻이다. 특히 앨범에 수록된 전곡을 작곡, 편곡, 노래, 프로듀싱까지 도맡아 이끌어 낸 것은 굉장히 획기적인 사건이다. 그러면서도 앨범 전체를 다분히 한국적이면서도 수채화 같은 감성들로 가득 채워냈다. 재즈 분야에서 한국적인 정서를 드러낸다는 것은 자칫 재즈를 어설프게 흉내 낸 것으로 치부될 수 있다. 그런 분위기가 팽배해 있기에 그의 감칠맛 나는 보컬은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할 만큼 성공적으로 평가된다. 단순히 한국어로 재즈를 잘 불렀다는 칭찬이 아니라 이 앨범이 한국적인 재즈가 나아갈 새로운 길잡이가 되었다는 뜻이다.

3번 트랙이자 타이특 곡인 ‘벚꽃지다’는 말로의 음악적인 감각과 보컬로서의 재능이 어떤 수준인가를 명징하게 들려주고 있다. 보사노바의 리듬과 더불어 인트로 부분의 가슴 떨리듯 애절하게 들리는 ‘전제덕’의 하모니카는 정말 최고다. 전제덕의 하모니카는 이 앨범에서 말로에게 수여된 최고의 선물이다.

전제덕 하모니카 버전 벚꽃지다

아코디언 버전 말로 벚꽃지다

꽃잎 날리네 햇살 속으로 한 세상 지네 슬픔 날리네 눈부신 날들 가네

꽃그늘 아래 맑은 웃음들 모두 어디로 갔나 바람 손잡고 꽃잎 날리네

오지 못할 날들이 가네 바람길 따라 꽃잎 날리네 눈부신 슬픔들이 지네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자연스레 바람에 날리며 떨어지는 꽃잎을 상상을 하게 된다. 말로의 스캣은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인 듯하고 가사는 마치 ‘말.로.’는 다 하지 못할 사랑을 ‘노.래.’로 하고 있는 듯하다. 반복해서 들으면 감정에 취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밤을 새울지도 모른다. 어디 날리는 꽃잎 같은 허무한 사랑 한번 안 해 본 사람이 있으랴. 노래를 들을 때 가슴속에서 꽃잎이 떨어지는가? 만약 그렇다면 당신은 아직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이다.

경 성현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35) – malo 3 벚꽃지다

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34) – Together (Chet Baker & Paul Desmond, Epic – 472984 2)

쳇 베이커와 폴 데스몬드의 연주 중 몇 개를 추려 담은 일종의 컴필레이션 음반이다. 하지만 고만고만한 컴필 앨범이라고 보기엔 그 무게감이 어마어마하다. 알다시피 트럼펫의 쳇 베이커와 알토 색소폰의 폴 데스몬드는 쿨 재즈를 대표하는 연주자들이기 때문이다.

쳇 베이커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깊은 우수 어린 창백한 얼굴. 반항아적인 외모에 중성적인 목소리. 언뜻 영화배우 제임스 딘을 연상케 한다. 실제로 제임스 딘과 많은 부분 비교되기도 한다. 교통사고로 절명한 제임스 딘이 삶이 비극이었던 것처럼 쳇 베이커 역시 네덜란드의 허름한 호텔 2층 창문에서 추락, 사고사인지 자살인지 불분명한 상황에서 불행한 종말을 맞이한다. 연주 자체가 뛰어나다는 평은 듣지 못했으나 특유의 서정적이면서도 내면의 고독을 관조하는 듯한 연주와 보컬은 쿨 재즈의 대표적 뮤지션으로 불리기에 충분하다. 비록 보편적 기준으로의 그의 삶은 비극 그 자체였지만 어쩌면 실존적 삶의 아이러니와 부조리를 그를 통해 느낄 수 있다고나 할까?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그의 삶과 연결시키든, 삶에서 떼어내든 그의 예술은 예술 그 자체로서 영원히 회자되고 들려질 것이다.

또 한명의 주인공 알토 섹소포니시트 폴 데스몬드는 우리에게 데이브 브루벡 퀄텟의 앨범 ‘Time Out’에서 가장 유명한 곡 ‘Take Five’를 작곡가로도 알려져 있다. 사실 상업적인 면이나 예술적인 면에서나 모두 성공한 이 앨범에 만약 폴 데스몬드가 없었다면 이처럼 뛰어난 결과는 기대할 수 있었을까 하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폴 데스몬드의 영향은 대단하다. 그만큼 작곡과 연주 모두에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아티스트다. 폴 데스몬드의 알토 색소폰은 누가 들어도 단박에 알아 챌 수 있을 만큼 달콤한 음색을 가진다. 금관 악기임에도 마치 목관 악기인 클라리넷의 소리를 연상케 할 만큼 부드럽다.

이밖에 쳇 베이커와 폴 데스몬드를 제외하고서라도 연주에 참여한 사이드맨들의 면면을 보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론 카터, 스티브 갯, 토니 윌리암스, 밥 제임스, 롤랜드 한나, 케니 배론, 짐 홀… 이렇게 화려한 라인업이면 뭐 별 수없이 들어야 한다. 앨범에서 자주 언급되는 연주는 6번째 트랙 Autumn Leaves이나 이제야 막 봄이 시작된 이때 가을 낙엽을 생각하기엔 너무 섣부르다. 대신 추천하는 트랙은 2번 트랙 You Can’t Go Home Again.

오래전에 활약했던 중국계 가수 겸 배우 ‘진추아’가 부른 ‘Never Gonna Fall In Again’의 그 멜로디라고 하면 어쩌면 아하! 하면 미소를 지을 것이다. 언젠가 피켜 스케이팅의 여왕 김연아가 이 곡을 배경으로 우아한 동작을 펼치기도 했다.

이 곡은 원래 1917년 제정 러시아가 무너진 직후 미국으로 망명한 작곡자이자 피아니스트였던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 2번 3악장에 들어있는 유명한 주제다. 라흐마니노프가 베버리 힐즈에서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고국 러시아를 너무나도 그리워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이나 사실 이 곡은 미국으로 망명하기 전인 독일 드레스텐에 거주했을 당시 작곡한 곡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곡의 명성에는 조금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곡 탄생에 관한 극적인 효과는 다소 덜하겠지만 말이다. 이는 순전히 망명을 미리 예감한 듯 이제는 더 이상 고향에 갈 수 없다는 상실감과 안타까움을 유려하고도 서정미 가득한 멜로디에 온전히 담아냈기 덕분이다. 그런 이유에서일까? 어찌나 쳇 베이커가 좋아한 곡이었는지 무수히 많은 앨범에서 그의 연주를 들어볼 수 있다. 마치 쳇 베이커를 위해 만들어진 곡처럼 말이다. 아, 그렇다고 이외의 곡들을 간과는 건 절대 아니다. 물 흘러 가는대로 몸을 맡기듯 첫 트랙부터 마지막 트랙까지 한곡도 빠짐없이 천천히 들어보길 권한다. 트랙의 배치가 얼마나 절묘한지 앨범을 다 듣기까지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라흐마니노프

앨범에서의 쳇 베이커와 폴 데스몬드의 연주를 이러쿵저러쿵 논한다는 건 별 의미가 없다. 그만큼 최고의 전성기 시절 연주들이기 때문이다. 컴필레이션 앨범의 특성상 각 트랙별 연주자들이 약간씩 다르나 이는 오히려 이 앨범의 매력이자 덤이다. 더구나 레이블 CTI가 만든 최고의 명반이자 영원한 베스트셀러인 짐 홀의 앨범 Concierto에 수록된 곡도 두 개나 들어 있으니 덤 치고는 무지 후한 덤이다.

경 성현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34) – Together (Chet Baker & Paul Desmond, Epic – 472984 2)

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33) – Love Songs(Anne Sofie Von Otter & Brad Mehldau, naive)

지난 2월 바르셀로나 어딘가에서 있었던 브레드 멜다우와 이안 보스트리지의 공연 소식을 들었다. 재즈 피아노와 테너라니… 멋진 콜라보에 감탄하고 공연장에 있었던 사람들이 한없이 부럽지만 나는 그저 유사 앨범이나 하나 듣는 수밖에 없다. ‬

<Love Songs>(Anne Sofie Von Otter & Brad Mehldau, naive)은 브래드 멜다우와 안네 소피 폰 오터의 듀오 앨범이다. 브래드 멜다우는 90년대에 데뷔, 이제는 엄연히 재즈 피아노의 거장이라고 불러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한마디로 작곡과 편곡과 같은 예술적 감각과 연주 실력을 모두 갖추었다. 빌 에반스와 키스 자렛의 계보를 잇는다는 찬사가 늘 뒤따른다. 또한 활동 기간에 비해 놀라우리만치 많고 다양한 스펙트럼의 앨범들을 때마다 쏟아내고 있다.

그런가 하면 스웨덴의 나이팅게일이라 칭송 받는 메조 소프라노 안네 소피 폰 오터는 또 어떤가. 화려한 기교의 소프라노가 아니라서 무대의 스포트라이트는 조금 덜 받는 낮은 음역대의 메조 소프라노이지만 그녀의 목소리에는 뭔지 모를 품위가 넘친다. 자신의 외모에서 풍기는 우아함과 지적인 아름다움마저 노래에 온전히 담겨 내는 듯하다.

안네 소피 폰 오터는 이전에 이미 엘비스 코스텔로와 For The Stars라는 앨범을 발표한 바 있다. 그래서 재즈 피아노와 정통 클래식 메조소프라노의 듀오 구성이 매우 독특하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녀의 경력으로 보면 그리 낯설지만은 않다. 브래드 멜다우 역시 예상치 못한 연주자들과의 협업으로도 유명하다. 다만 For The Stars의 무게 중심이 엘비스 코스텔로의 리드에 의존한 좀 더 파퓰러한 시도였다면 브래드 멜다우와 안네 소피 폰 오터의 Love Songs은 특별히 어느 한 쪽으로만 치우쳐 있지 않지만 다분히 폰 오터에 대한 멜다우의 차분한 배려가 느껴진다. 그러면서 재즈도 클래식도 아닌 장르의 모호성이 오히려 매력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멜다우가 폰 오터의 그림자만으로 존재하는 건 결코 아니다. 특히나 두 개의 Disc 중 Disc1은 전적으로 멜다우의 음악적 능동성이 돋보인다. 멜다우가 시인 커밍스, 필립 라킨, 사라 티즈데일의 시에 영감을 받아 Love Songs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작곡한 7개의 가곡으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멜다우가 의도한 바인지는 모르겠으나 경우에 따라서는 다소 현대 가곡을 들을 때의 불편함과 난해함을 감수해야 한다. 게다가 멜다우 피아노의 임프로비제이션은 생각만큼 도드라지지 않아서 멜다우가 추구하는 피아니즘을 특별히 기대했다면 조금은 실망할 수도 있다.‬

반면에 Disc2는 익히 알고 있을 레오 페레, 쟈니 미셀, 미셀 르그랑, 비틀즈, 번스타인 등의 친근한 곡으로 구성되어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좋은 건 1번 트랙 Avec Le Temps과 11번째 트랙으로 듣는 바그다드 카페의 Calling You 두 곡이다. 특히 Avec Le Temps을 듣고 나서는 당분간 다른 버전이 귀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프랑스 샹송을 미국 재즈 피아니스트의 반주에 스웨덴의 메조소프라노가 노래하는 격이니 이것만으로도 특정할 수는 없는 의미가 있다. 태생지를 초월한 음악의 근원적인 기능이자 모습이랄까?‬

​’시간이 흐르면 모두 사라지겠지’로 시작하는 가사. 차마 다음 트랙으로 넘기지 못해 몇 번을 반복해서 들었는지 모른다.

 

경 성현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33) – Love Songs(Anne Sofie Von Otter & Brad Mehldau, naive)

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32) – 새로운 시작의 창조자 마일즈 데이비스

무심하게 찾곤 하는 단골 카페가 하나 있다. 가끔 뭔가 끄적거릴 일이 있다거나 읽어야 할 책이 있을 때 종종 들른다. 그러니까 특별히 커피가 맛있다거나 들려주는 음악이 좋다거나 혹은 공간의 분위기가 좋아서가 아니라 다분히 습관처럼 들어가는 곳이다. 늘 비슷한 맛의 커피, 음악, 변함없는 인테리어. 굳이 이유를 들자면 낯설지 않음이 좋아서랄까?

이 카페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던 건 몇 년 전이다. 커피집으로는 결코 좋은 입지라 할 수 없는, 대로변에서도 한참 비껴난 주택가 골목 허름한 건물 일층에 새로 생긴 카페를 발견하고는 반가움에 들어섰다. 프렌차이즈 커피 전문점에서는 느낄 수 없는 정적인 느낌의 분위기가 왠지 마음에 들어 열렬한 단골은 아니더라도 가끔씩 들러 주인장과 아는 체 정도는 하게 되었다. 익숙한 커피 맛, 다분히 주인의 취향이었을 공간과 음악은 늘 한결 같았고 나는 어쩌면 그 익숙함 때문에 단골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오늘도 역시 평소 그랬던 것처럼 주인과의 인사치레를 마치고 늘 같은 창가 구석 자리에 앉아 커피를 한 잔 주문한다. 흘러나오는 음악 또한 평소와 다르지 않은 곡들이다. 그러나 곧 들어올 땐 미처 감지하지 못한 어색함이 느껴진다. 주변을 천천히 둘러본다. 아. 그럼 그렇지. 벽면 한구석에 있던 조그만 커피 원두 사진 액자 대신 이름 모를 작가의 그림이 걸려 있다. 액자 하나를 교체한 것뿐인데 전혀 다른 공간에 앉아 있는 느낌이다. 이윽고 주문한 커피가 내 앞에 놓인다. 평소처럼 특별이 맛이 있을 거라는 기대는 없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오늘은 유난히 향이 짙고 풍미가 좋다. 혹시 바리스타가 새로 들어왔나? 아니면 원두의 종류가 달라졌을까? 그것도 아니면 추출 방법에 변화를 주었을까? 물어보았지만 어느 하나 바뀐 것이 없단다. 주인장의 얼굴을 다시 본다. 이곳의 ‘익숙함’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내가 ‘낯섦’을 경험한 것은 여기에 처음 들어왔던 그 날 이후 처음 겪는 일이다. 희한한 일이다. 단지 액자 하나가 바뀌었을 뿐인데 커피 맛이 달라졌으니 말이다.

단골 카페의 그저 그런 커피가 달라졌던 이유는 작은 변화가 이루어낸 낯섦이다. 이를테면 카페 주인장은 조그만 액자 하나를 바꾼 최소한의 비용으로 커피 맛까지 끌어올린 경영의 고수가 된 셈이다. 그러니 자주 가는 카페의 커피 맛이 달라졌다면 우선 주위를 둘러보라. 뭔가 낯설게 느껴지는 변화가 있을지 모른다.

낯섦이란 철학적 사유다. 새로운 것에 대한 긴장이다. 기존의 모든 것들을 의심할 수 있는 에너지이며 세상을 탐구하고픈 욕구다. 모두 익숙함을 뒤로하고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낯설게 바라볼 때 비로소 시작된다.

재즈계에서 익숙함 보다는 새로운 낯섦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이름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단연 마일즈 데이비스(Miles Davis)다. 마일즈 데이비스의 위상은 대단하다. 메인스트림으로 이룩한 업적도 대단하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새로운 스타일의 재즈를 창조해 낸 위업이 더 높게 평가되는 뮤지션이다. 일찍부터 그는 줄리어드 음대의 정규 음악 교육 체제에 순응하지 않고 뒷거리 연주자들과의 교류를 더 즐겼다. 그는 40년대부터 80년까지 단 한 순간도 같은 스타일을 고수한 적이 없다. 비밥, 하드밥, 쿨, 모달, 재즈락, 퓨전 등 거의 모든 장르를 섭렵했다. ‘쿨’ 재즈의 시조가 되었고 재즈가 침체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는 시기에는 ‘재즈락’을 창시하여 돌파구를 마련하려 했다. 말하자면 결코 익숙함에 함몰되지 않고 기존의 스타일에서 한발자국 앞서가는 새로움을 추구했던 아티스트다.

마일즈 데이비스가 레이블 캐피탈 시절에 머물던 당시 1940년대 후반은 비밥의 광풍이 휘몰아치던 시절이었다. 마일즈 자신 비밥에 천착했던 시절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여기에 안주하지 않고 비밥의 열기를 식히는 앨범 하나 발표한다. 유명한 ‘Birth Of The Cool’이다. 비록 ‘Cool’이라는 이름이 레코드사가 임의로 지은 것이긴 하나 단어의 의미처럼 빠르고 열정적이었던 당시 비밥의 열기를 식히고자 했던 것만은 틀림없다. 그동안 찰리 파커라는 걸출한 레전드 밑에 있던 마일즈 데이비스에게는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고 이는 새로운 스타일의 창조를 의미하기도 했다. 이렇게 탄생한 ‘Birth Of The Cool’은 최초로 시도된 마일즈 데이비스의 혁신이 된다. 비록 상업적 성공을 이루지는 못했으나 낡은 스타일에 안주하지 않은 음악적 삶의 확실한 시초가 되었다.

한편, 1950년대 후반 그가 머물렀던 레이블은 프리스티지였다. 하지만 그에 대한 대우는 형편없었고 급기야 그는 컬럼비아 레이블로 이적을 감행한다. 그러나 프리스티지와의 계약상 미처 채우지 못한 4장 분량의 앨범이 남아 있었기에 부득이 이틀에 걸쳐 녹음을 하게 되는데 이로서 탄생한 앨범이 그 유명한 마일즈 데이비스의 ‘ing’ 시리즈다. 그러니까 네 장의 앨범 ‘Working’, ‘Steaming’, ‘Cooking’, Relaxing’은 놀랍게도 단 이틀에 걸쳐 녹음된 음반이다. 이렇게 짧은 시간에 네 장분의 앨범을 연주하고 녹음했다는 건 아마도 전무후무한 사건일 것이다. 급속히 만들어진 앨범이나 그렇다고 연주의 질이 떨어지는 건 절대 아니다. 존 콜트레인, 폴 챔버스와 같은 멤버들 역시 화려하다. 그렇기에 아이러니하게도 마일즈 데이비스의 여타 무수한 디스크 그래피 중에서 대단히 높은 판매 수위를 달리는 앨범들이다. 그만큼 명반이라는 이야기다. 가히 마일스 데이비스 전성기 시절의 명작이라 할만하다.

그렇다면 그토록 단기간에 연주하고 녹음된 음반이 이렇게 높은 퀄리티를 가지게 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아무리 재즈에서 일회성, 즉흥성을 중요시 여긴다 하더라도 극히 드문 일이기 때문이다. 말했다시피 마일즈 데이비스는 늘 변화를 추구한 아티스트였다. 아마도 그에게 익숙함만큼 따분한 일은 없었을 것이다. 늘 주도적이었고 환경의 변화를 이끄는 리더였다. 질시와 조롱에 휘둘리지도 상처를 받지도 않았다. 그가 내딛는 발걸음 자체가 혁신이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어 내는 일이야말로 그에게 있어서는 어떤 운명이나 소명 같은 일이었는지 모른다. 푸대접 때문에 프리스티지 레이블을 떠나기로 결정 했다기보다는 새로운 레이블에서 펼쳐야 할 구상에 더욱 갈급했을 것이다. 그런 갈급함이 오히려 재즈의 즉흥성에 영감을 불어 넣은 건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할 수밖에 없다. 새로운 곳에서 마음껏 펼칠 미래에 대한 들뜸은 오히려 기존의 스타일을 완벽한 형태로 마무리하게 되는 조건이 된 셈이다.

마일즈 데이비스의 혁신적인 앨범 중에서도 1969년 녹음되고 1970년에 발매되어 재즈락의 효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후 락과 펑크 뮤지션에게도 엄청난 영향을 끼친 ‘Bitches Brew’는 더욱 특별하다. 향후 락(Rock)음악의 우세를 점친 마일즈는 재즈에 과감히 락을 도입하는데 Bitches Brew는 그 최초의 앨범이다. 재즈락 혹은 퓨전 재즈의 기념비적인 앨범이라고 할 수 있다. 당연히 실험적인 요소로 가득하다. 전통적인 스타일과는 완전 동떨어진 혁신적 스타일로 인해 발매 초기부터 상반된 평가를 받았다. 더욱이 평소 마일즈 데이비스가 선호했던 방식처럼 각 연주자들에게는 최소한의 정보만 제공되어 리어설이 없이 즉석에서 녹음된 앨범으로 유명하다.

마일즈 데이비스가 트럼펫 연주 자체로 높은 평가를 받는 건 절대 아니다. 그가 재즈계에서 레전드라 불리며 회자되는 가장 큰 이유는 평생 새로운 스타일을 창조하려 추구했던 끊임없는 혁신과 열정에 있다. 익숙함을 절대 거부했던, 살아서 펄떡이는, 그래서 낯섦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던 정신에 있는 것이다.

낯섦은 때로 불안하고 위험하다. 그러나 낯섦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설렘이 있다. 설렘이 주는 기대는 나를 살아 있게 하는 원천이다. 익숙함에 굴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래서 삶의 경이로움을 매순간 경험할 수 있는 희열을 갖기 위해서는 낯섦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야 내 삶의 진정한 주인으로서 살 수 있는 것이다. 훗날 비참한 후회에 빠지지 않기 위해선 더더욱 그렇다.

경 성현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32) – 새로운 시작의 창조자 마일즈 데이비스

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31) – 영원한 바흐 스페셜리스트. 자크 루시에

지난 3월 5일(현지시간) 바흐 스페셜리스트라 불리며 평생 바흐의 음악을 재즈로 재해석 했던 프랑스 출신 피아니스트 자크 루시에(Jacques Loussier)가 영면하셨다. 향년 84세.

자크 루시에는 파리 국립음악원에서 정통 클래식 피아노를 전공한 후 클래식을 재즈로 연주하던 모던 재즈 퀄텟(MJQ)의 음악을 접한 이후에 클래식 음악을 재즈로 해석하고 연주하는 작업에 몰두하였다. 특히 바흐 음악에 심취하여 1959년 처음 베이시스트 피에르 미셸로, 드러머 크리스티앙 가로와 함께 ‘플레이 바흐 트리오’를 결성하였다. 곧바로 내놓은 바흐의 앨범들은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며 ‘바흐 스페셜리스트’라는 명성을 얻는다.

그러나 1978년 돌연 팀을 해체한 후 직접 녹음 스튜디오를 만들어 핑크 플로이드, AC/DC, 엘튼 존, 스팅 등 대중음악인들과 협업을 하는가 하면 영화 음악을 작곡하기도 하며 이전의 음악들과는 다소 거리를 두기도 했던 특이한 경력도 가지고 있다.

그러던 중 1985년 새로운 트리오를 결성하여 다시 바흐의 음악을 재즈로 연주하다가 1997년에는 바흐의 음악에서 탈피, 비발디의 사계를 재즈로 연주하여 새로운 음악적 전기를 마련한다.

이후부터는 헨델, 모짜르트, 베토벤, 쇼팽, 슈만, 그리고 인상주의의 대표적 작곡가인 라벨과 드뷔시와 사티의 음악까지 연주하는 등 클래식 음악 전반에 걸쳐 음악적 스펙트럼을 넓혔다.

개인적으로는 국내에 발매되고 있는 자크 루시에의 거의 모든 앨범을 소장할 정도로 좋아한다. 오래전 앨범 몇 개에 사인을 받으며 잠깐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그날 어찌나 기분이 좋았는지 밤새 앨범들을 어루만지며 기뻐했던 기억이 난다.

그간 클래식을 재즈로 연주한 연주자들은 무수히 많았으나 이렇듯 적절하게 스윙을 녹여낸 연주자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독보적인 위치에 서 있다. 그의 연주를 듣고 있노라면 재즈와 클래식의 경계를 나눈다는 것이 얼마나 헛된 일인지 금방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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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연주에서는 경쾌함을 유지하면서도 결코 가볍지 않은 스윙을 구사하기에 클래식의 깊은 해석과 재즈의 자유로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아마도 클래식과 재즈 애호가 모두를 이토록 완벽하게 만족시키는 연주자도 드물 것이다. 음악이라는 밤하늘에 너무나도 아름답게 반짝였던 별 하나를 또 하나 잃어버렸다.

경 성현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31) – 영원한 바흐 스페셜리스트. 자크 루시에

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30) – 재즈, 혁명을 노래하다.

겨우내 움츠려야 했던 몸을 기지개 펴듯 역동하게 만드는 봄이 시작됐다. 적어도 우리에게 봄은 혁명의 계절이기도 하다. 언제나 그렇듯 3월을 3.1 만세 운동 기념일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 역사에서는 4.19 혁명, 5.18 광주 민주화 운동으로 이어지는, 어떤 특정 정치 세력에 의한 것이 아닌 민중 스스로 이루어 낸 민중 항거가 유독 봄에 주로 일어났다. 애써 의미를 확대하자면 2016년 가을에 시작한 촛불 혁명 역시 이듬해 봄인 2017년 4월에 완성 되었다. 올해는 특히 “3.1 독립 만세 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이니만큼 봄을 대하는 마음이 사뭇 남다르다.Ego sum operarius studens (에고 숨 오페라리우스 스투덴스)

내가 좋아하는 ‘나는 공부하는 노동자입니다’라는 뜻의 라틴어 문장이다. 나는 이 말이 학문을 연구하는 직업을 가진, 예컨대 교수나 학자를 일컫기 보다는 노동을 하고 그 임금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유일한 여가인 밤에 시간을 쪼개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이라 생각하는 편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는 박사 학위 논문을 준비하는 중에 노동계급 자료 보관서를 뒤지다 1830 ~ 1850년대 노동자들이 남긴 문서들을 발견한다. 애초에 랑시에르가 노동자들이 남긴 자료에서 예상했던 것은 ‘난폭한 저항’ 따위의 거친 표현들이었다. 하지만 실제 발견된 것들은 뜻밖에도 고된 노동을 끝낸 후 휴식을 뒤로 한 채 치열하게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철학을 공부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이었다. 사유하고 철학하는 행위는 지식인들만이 공유하는 형식이라는 것에 저항하던 ‘프롤레타리아의 밤’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노동자들 스스로 노동자란 ‘사유하지 않아도 별 탈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운명’이라는 만연된 무력감과 보편적 정체성에 반기를 든 셈이다. 노동자란 그저 노동을 제공하고 그에 대한 임금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일상의 시간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수동적 존재로서가 아니라 그들의 유일한 휴식인 밤을 소환하면서까지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이끌어 나가는 ‘다른 존재’로서의 인간일 수 있다고 자각했던 것이다. 그들이야말로 Ego sum operarius studens라는 말이 의미하는 바로 그 공부하는 노동자들이다.

이 위대한 ‘프롤레타리아의 밤’의 발굴은 격동의 68혁명 당시 랑시에르가 혁명과 저항의 전선에서 전위(지식인)와 대중(노동자)은 결코 분리될 수 없다고 주장하여 스승인 루이 알튀세르와 결별하게 만드는 기폭제가 되기도 한다. 랑시에르에 의해 역사의 수면위로 부상한 노동자 스스로 생각하고 말 할 수 있는 권리를 알튀세르는 인정할 수 없었다. 마찬가지로 노동자(대중)는 노동에 전념하고 지식인(전위)은 생각하고 말하고 실천해야 한다는 기본 질서를 포기하지 않은 알튀세르를 랑시에르 역시 추종하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그러므로 이른바 전위와 대중의 ‘역할 분담’이라는 대전제가 뒤엎어지게 되었다.

내가 랑시에르에게 주목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알튀세르가 기본적으로 노동자 착취와 지배 구조에 대해 담론으로 접근했다. 반면에 랑시에르의 관심은 인간의 지적 능력을 포함한 문화 향유 욕구와 자격, 그리고 사유하고 표현할 수 있는 권리, 능력이 누구에게나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정체성의 문제에 있었다. 자격뿐만이 아니라 그러한 능력도 있다는 것을 노동자와 대중이 ‘자각’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의해 대변되어지는 노동자의 목소리가 아닌 노동자 스스로 발화하는 목소리가 존재하고 부당한 체제나 억압에서 해방되어야 하고 그 주체는 바로 노동자 자신들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자를 민중으로 변환한다 해도 의미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3.1 만세 운동, 4.19 혁명, 5.18 광주 민주화 운동과 최근의 촛불 혁명이야말로 이를 완벽히 증명했고 실천한 민중 혁명이다.

‘AVANTI!’ (Giovanni Mirabassi, Sketch)는 앨범 자켓의 디자인이 매우 강렬한 느낌을 주는 피아노 솔로 앨범이다. 붉은 색 바탕에 검고 굵은 서체로 쓰여 있는 ‘Avanti’라는 단어는 이탈리아어로 ‘전진’ 혹은 ‘진군’이라는 의미이다. 2001년 발표될 당시 엄청난 찬사를 받으며 이탈리아 출신 재즈 피아니스트 지오바니 미라바시(Giovanni Miravassi)를 세계적인 연주자로 각인시켰다.

‘AVANTI!’는 세계 곳곳의 민중 투쟁 현장에서 울려 퍼지던 혁명과 저항 음악만을 담은 앨범이다. 서정적인 피아니즘으로 유명한 엔리코 피에라눈찌(Enrico Pieranunzi)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알려주기라도 하듯 저항과 혁명이 주는 강렬한 인상을 서정미 가득한 아름다움으로 재편하고 재해석했다.

첫 트랙 ‘El pueblo unido jamas sera vencido’는 우리의 ‘임을 위한 행진곡’같은 저항 음악이다. ‘단결된 민중은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로 번역되는 이 노래는 1973년 피노체트에 의한 쿠테타에 맨몸으로 맞서 싸운 칠레 민중들이 거리에서 부르던 저항운동의 상징과도 같은 곡이다. 실제 미라바시는 내한 공연 중에 ‘임을 위한 행진곡’을 연주하기도 했다. 칠레의 투쟁 현장에서 울려 퍼지던 이 곡을 미라바시는 지극히 아름다운 서정미를 담아 연주한다. 이외에도 파리 꼬뮨의 상징 ‘Le Temps Des Cerises’, 체 게바라의 주제곡이라 할 수 있는 Hasta Siempre, 백인으로서 남아공의 아파르트 헤이트에 저항했던 자니 클렉의 ‘A Si M’Bonanga’, 2차대전 당시 이탈리아 파르티잔을 위한 ‘Bella Ciao’, 반전을 상징하는 존 레논의 ‘Imagine’과 자신의 자작곡 ‘Revolution’등이 수록되어 있다.

혁명의 계절이자 봄이 시작되는 3월, 혁명을 노래하는 앨범 ‘AVANTI!’만큼 의미 있는 재즈 앨범도 드물다. 거칠고 투박한 혁명의 목소리를 재즈 미학으로 다듬고 승화시켜 새로운 음악으로 만들어 낸 놀랍도록 아름다운 앨범이다.

경 성현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30) – 재즈, 혁명을 노래하다.

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29) – 크레올의 자존심 시드니 베세

어떤 책들은 평소에 눈에 들어오지 않다가 팍팍한 삶이 주는 어떤 문제들에 맞닥뜨려 손을 놓고 침잠할 때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주기도 한다. 이를테면 생텍쥐페리의 <야간 비행>이 그런 류의 책이다.

작가 생텍쥐페리는 남아메리카의 우편비행사업에 참여하여 수많은 비행 임무를 수행한 뛰어난 직업 조종사였다. 문학 작품을 남긴 작가로서는 매우 특별한 경우라 하겠다. 1936년 비행 중 사고로 사하라 사막에 불시착 했다가 극적으로 살아 귀환했던 경험은 후일 <어린왕자>로서 빛을 발하게 된다. 1944년 정찰 비행을 위해 이륙한 생텍쥐페리는 다시 한 번 실종되었고 결국은 돌아오지 못했다. 독일 전투기에 의해 격추 되었을 것이라고 추정될 뿐 정확한 실종 원인은 지금까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그래서 <야간 비행>은 조종사 파비앵이 지상으로 귀환하지 못하고 영원한 비행의 세계로 떠난 것처럼 마치 생텍쥐페리의 회고록처럼 남았다.

 

 

<야간 비행>의 시대적 배경은 항공기의 야간 비행이 위험천만한 모험이었던 시절이다. 어느 날 파타고니아, 칠레, 파라과이에서 각각 우편물을 싣고 이륙한 세 항공기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착륙하기 위해 날아오고, 이들의 우편물을 인계받아 즉각 유럽으로 향할 비행기는 이륙을 준비하고 있다. 당시의 항공기들은 항속거리가 매우 짧았다. 그러므로 장거리로 운송해야했던 국제 우편의 경우 항공기에서 항공기로 이어지는 릴레이식 운송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칠레에서 이륙한 비행기는 무사히 안착했으나 파타고니아발 비행기의 조종사인 파비앵은 뜻하지 않게 사나운 태풍을 만나 추락하게 된다. 사태에 대해 동요하는 지상 직원들과는 달리 항공 우편국 책임자인 리비에르는 무심할 정도로 냉철하다. 결국 파라과이에서 출발한 세 번째 비행기가 도착하면 우편물을 옮겨 싣고 곧바로 이륙할 수 있도록 유럽행 비행기를 대기시키라고 명령하면서 소설을 끝이 난다.

작품을 읽는 ​독자들은 내내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리비에르란 인물에 대한 의문이다. 동료의 비극을 뒤로하고 비행기의 이륙을 지시하는 리비에르를 과연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리비에르에 대한 평가는 1차 세계대전 이후 허무주의의 암운이 짙게 깔려있던 1930년대의 이른바 행동주의 문학을 추구했던 생텍쥐페리를 생각해 봐야 충분한 설득력을 가진다. 실존주의 철학과도 맥이 통하는 행동주의 문학은 주어진 운명에 대항하는 인간 개개인의 내면적 투쟁이 행동 자체로 이어질 때 진정한 힘을 가질 수 있다는 데에서 출발한다.

셍텍쥐페리가 이 작품에서 표면적으로 말하고 있는 건 파비앵이 안전하게 귀환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리비에르가 내린 다음 비행기의 이륙 명령에 대한 당위성이다. 목표의 완성 여부를 떠나 인간의 멈추지 않는 행동과 실천이야말로 우리를 구원해 준다는 메시지다.

그러나 한 가지 의구심은 셍텍쥐페리가 말하고 싶었던 진짜 이야기가 혹시 리비에르가 유럽행 비행기의 이륙 명령을 내리기까지의 고뇌 그 자체가 아닐까? 하는 것이다. 개인이 삶을 희생하면서까지 이루어내야 할 그 무엇에 대한 끊임없는 의문과 질문이 책을 덮고 나서도 오랫동안 머리에서 떠나지 않기 때문이다.

 

「새벽 1시쯤 되면 그녀는 남편이 가까워졌음을 느꼈다. ‘이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을 거야.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보고 있겠지……’ 그러고는 다시 일어나 그를 위해 식사와 따뜻한 커피를 준비했다.」 (야간 비행 p84, 펭귄클래식)

파타고니아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날아오고 있는 파비앵이 안데스 산맥 인근에서 한창 태풍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을 시각, 남편의 안착을 기다리고 있던 아내 시몬 파비앵이 여느 때처럼 식사와 커피를 준비하는 장면이다. 아마도 평소처럼 비행을 마치고 귀가한 파비앵이 대하게 될 따뜻한 정경일 것이다. 고단한 비행을 마치고 아내와 함께하는 식사와 따뜻한 커피. 파비앵이 감행하는 위험천만한 야간 비행의 대가가 고작 이런 거야? 라고 폄하할 수도 있을 만큼 소박하고 조촐하다. 언급은 없지만 재즈 역시 흘러나오고 있을 것만 같은 풍경이다. 그렇다면 이 시기 재즈의 모습은 어땠을까?

<야간비행>은 1931년 발표된 작품이다. 1929년에 시작된 대공황이 1935년에 끝이 나며 빅밴드에 의한 ‘스윙 재즈’가 시작되었으니 아직은 뉴올리언스에서 시작한 초기 재즈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15 Dec 1931, Manhattan, New York, New York, USA — The view of 1931 Manhattan from the 27th floor of the River House. — Image by © CORBIS[/caption]

당시의 대표적인 재즈 뮤지션이라면 단연코 루이 암스트롱이다. 하지만 그의 그늘에 살짝 가린 면이 있으나 색소포니스트 ‘시드니 베세’(Sidney Bechet) 역시 위대한 천재 예술가의 반열에 올린다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음악적인 면에서는 괴팍하고 까다로웠지만 한편으로는 사회적 예법과 도회적인 취향을 동시에 지닌 이색적인 인물이었다. 이름에서 유추해 볼 수 있듯이 그는 프랑스 혈통의 흑인, 즉 크레올이다. 그래서일까? 1925년까지 유럽으로 건너가 1931년 귀국할 때까지 유럽에서 활동을 한 것 외에도 1949년에는 아예 프랑스로 이주하여 59년 사망할 때까지 프랑스는 물론 유럽 전역에 큰 족적을 남겼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에게는 고작 영화 Midnight In Paris의 OST에 삽입된 Si Tu Vois Ma Mere 정도로 알려져 있다.

그가 부는 색소폰의 풍부한 음색은 늘 부드럽고 따뜻하다. 그래서 비행사 남편을 위해 따뜻한 식사와 커피를 준비하던 아내가 내내 듣던 음악이었을 것만 같다. 커피는 식사와 함께하는 것이니 진하게 내린 커피에 따뜻하게 데운 우유를 충분히 부어 만든 카페 오레였을 것이다.

 

겉으로 읽혀지는 이 대목의 풍경은 너무나도 평화롭다. 그러나 비행사 남편 파비앵의 소식이 들려오기 직전의 폭풍전야와도 같은 불길한 평화로움이다. 비극적 결말이 미리 예정되어 있어서 그럴까? 이 부조화가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난 <어린 왕자>를 이성으로 읽고 <야간비행>은 가슴으로 읽는다.

 

경 성현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29) – 크레올의 자존심 시드니 베세

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28) – 재즈, 커피에 반하다 ② “Undercurrent (Bill Evans & Jim Hall, Blue Note) 와 과테말라 안티구아 커피”

앨범 Undercurrent (Bill Evans &Jim Hall, Blue Note)는 1962에 발매된 빌 에반스와 짐 홀의 역사적인 듀오 앨범이다. 당시로서는 다분히 희귀했던 피아노와 기타 듀오 구성의 연주임에도 이 앨범을 재즈 미학의 최 정점에 올려놓는 것에 이의를 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또한 두 연주자 모두 쿨 재즈의 대가들이므로 쿨 재즈를 언급할 때 빠트려서는 안 되는 앨범이다.

UNITED KINGDOM – MARCH 19: BBC 2 JAZZ 625 Photo of Bill EVANS and Bill EVANS (Piano) (Photo by David Redfern/Redferns)

UNITED KINGDOM – MARCH 19: BBC 2 JAZZ 625 Photo of Bill EVANS and Bill EVANS (Piano) (Photo by David Redfern/Redferns)

1962년이라면 빌 에반스 트리오의 베이시스트 스콧 라바로가 세상을 떠난 지 1년이 되는 해다. 최고의 파트너이자 친구였던 스콧 라바로의 죽음은 한동안 그에게 연주를 못할 정도의 큰 충격과 비통함을 주었다. 그렇기에 스콧 라바로 타계 이후 첫 녹음 앨범인 Undercurrent는 미처 슬픔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빌 에반스에게 매우 특별한 의미의 작품이다.

그래서일까? 이 앨범에서의 빌 에반스는 이전의 그와는 좀 다르다. 맑고 투명했던 그의 스윙은 뭔가 속마음을 애써 꾹꾹 누르듯 평소보다는 자제되어 있다. 스콧 라바로가 생전이라면 당연히 맡았을 리듬은 짐 홀의 기타가 적절히 감내하고 있다. 마치 스콧 라바로를 추억하는 듯하다.

이 앨범의 첫 번째 인상은 무엇보다도 강렬한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자켓 사진에서 비롯된다. 깊고 어두운 물위에 누워 있는 여인의 모습에서 음울함과 서늘함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완전히 가라앉지도, 그렇다고 부유하듯 떠 있다고도 볼 수 없는 모습이다.

개인적으로는 깊은 물에 트라우마가 있어 타이틀 Undercurrent(암류)와 자켓 사진 그 자체가 압박감이다. 집어들 때마다 늘 주저하게 된다. 마치 Undercurrent가 주는 단어의 의미처럼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불안한 움직임이나 슬픔 같은 감정이다. 음악적인 면을 별개로 하더라도 자켓 사진만으로도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는 앨범이다.

그러나 정작 담긴 음악은 이와는 다른 뉘앙스다. 자켓 이미지와는 정 반대다. 오히려 따뜻하고 포근한 기운마저 느껴진다. 빌 에반스와 짐 홀 두 사람 모두 화려한 스타일과는 거리가 먼 연주자인 만큼 차분하고 조용하다.

앨범이 처음 발매된 당시 피아노와 기타 듀오는 상당히 실험적인 구성이다. 거기에 빌 에반스의 피아노와 짐 홀의 기타는 누가 들어도 구분이 될 만큼 독자적이고 개성이 뚜렷하다. 이 두 사람만으로 구성된 팀이었으니 서로의 존중과 배려가 없다면 정상적인 인터플레이는 기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마치 오랫동안 연주를 통해 우의를 다진 친구들처럼 서로의 음악을 인정해주고 있다. 각자의 영역을 고수하면서도 자신의 빈자리를 메우러 들어오는 상대방을 결코 밀어내지 않는다.

그럼에도 난 이 앨범을 두려움과 불안으로 집어 들어 차분함과 따뜻함으로 듣다가 종래에는 슬픔으로 해석한다. 물론 강렬한 자켓 이미지 탓이 크겠지만 이런 양가감정은 어쩌면 드러내지 못하는 원천적 슬픔과 불안 때문일지도 모른다.

종종 즐겁고 신나야 할 일 앞에서도 그저 덤덤하니 무감해질 때가 있다. 오히려 가슴을 찔러대는 통증에 끙끙대야만 하는 일들이 많아졌다. 이런 저런 사회적 문제의 본질이 결국 내 문제일 수도 있다는 걸 자각하기도 한다. 더욱이 각자의 개인적인 빈곤과 차별, 낙오, 소외, 절망에서 비롯되는 불안과 슬픔은 대놓고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 SNS가 그 창구인 것 같지만 실은 그 반대일 수도 있다는 걸 점점 더 많은 이들이 눈치 채고 있다. 대체 불안과 슬픔이란 어떤 감정이기에 이렇듯 나를 지배하는 걸까?

스피노자는 에티카에서 ‘코나투스(Conatus)’라는 개념을 역설한다. 이에 따르면 모든 양태(사물)는 자신에게 유익한 것은 취하고 자신에게 부적합하거나 위협적인 요소는 피하게 된다. 이는 본성이고 자기 보존 욕망이다. 나아가 이러한 자기 보존 욕망이 증대되는 상태가 기쁨이고, 반대로 자기 보존 욕망이 침해를 받아 내 존재의 힘이 억압받는 상태가 불안이고 슬픔이다. 그러므로 불안과 슬픔은 기쁨에 비해 근본적으로 불완전하다. 기쁨으로 치환하기 위한 노력이야말로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과정인 셈이다. 스피노자의 궁극적인 목표는 행복한 삶을 찾는 것이다. 그러므로 순전히 스피노자에 따른다면 인간은 언제나 불안과 슬픔을 멀리하고 기쁨을 추구하는 삶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리라. 이것이 아마도 스피노자의 철학을 기쁨과 긍정의 철학이라 일컫는 이유일 것이다.

Undercurrent의 자켓 이미지와 연주가 서로 상충하는 이유를 혹 여기에서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불안과 슬픔을 안고 살아야 함에도 빌 에반스와 짐 홀이 그렇듯 타인의 존재를 인정하고 서로의 빈자리를 기꺼이 메워주는 것. 그런 노력을 하는 것. 그것이 불안과 슬픔을 조금씩이나마 이기는 방법이 아닐까?

앨범 Undercurrent의 자켓 사진은 불안과 슬픔의 이미지를 주는 것에 반해 실제 수록된 음악은 따뜻하고 다정한 음악인 것처럼 서로 상반된 이미지와 맛을 가진 커피가 있다. 과테말라의 커피가 그렇다. 과테말라 커피는 왠지 모르게 거칠고 강한 쓴맛의 이미지를 가졌으나 실은 밝고 따뜻한 풍미를 더욱 많이 가지고 있다.

과테말라는 국토의 대부분이 화산재 토양이다. 또한 일교차가 크고 건기와 우기가 뚜렷하다. 특히 화산재 토양의 특성상 미네랄이 풍부하고 배수성이 우수해 커피 재배에 최적이다. 커피 수출액이 과테말라 전체 수출액의 거의 3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커피 산업이 발달되어 있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과테말라 안티구아 (Guatemala Antigua)라는 명칭은 과테말라 내에서도 대표적인 커피 재배지로 유명한 안티구아 지역 커피를 의미한다. 화산재 토양의 고지대에서 주로 생산되는 커피로서 강렬한 스모크(Smoke) 향을 가진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산미 또한 엄청나게 풍부한 커피이기도 하다. 바디감이 뛰어난 건 물론이고 달콤함 마저 우수하다. 나무가 타들어갈 때 나는 훈제 향이 강하다는 인식 때문에 전통적으로 강하게 로스팅 하는 대표적인 품종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중간 혹은 약하게 로스팅 하는 추세가 늘어났다. 그래서 고유의 스모크한 향은 여전히 뛰어나면서도 상큼한 산미 역시 도드라진 과테말라안티구아를 많이 접할 수 있다. 한마디로 스모크 향이라는 강렬한 이미지 때문에 스트롱(Strong)한 향과 맛을 생각했다가 의외의 산미와 부드러움을 경험하는 것이다. 마치 음울한 불안과 슬픔이 배어 있는 이미지와는 달리 실제로는 밝고 따뜻하고 나른한 음악을 담은 앨범 Undercurrent 같다.

 

경 성현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28) – 재즈, 커피에 반하다 ② “Undercurrent (Bill Evans & Jim Hall, Blue Note) 와 과테말라 안티구아 커피”

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27) – 재즈, 커피에 반하다 ① “Clifford Brown With Strings & 케냐산(産) 원두”

1956년 6월 26일.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시카고로 향하던 한 대의 승용차가 도로를 달리던 중 5미터 높이의 제방 밑으로 추락하는 사고가 일어난다. 당시의 필라델피아의 기상은 폭우가 쏟아지던 상태였다. 차를 타고 있던 세 명의 승객 모두는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처음엔 단순한 교통사고로 보도되었을 뿐이다. 하지만 이 사고는 곧 재즈사에 영원히 언급될 한 젊은 연주자의 죽음을 의미하는 비극이 되었다.

클리포드 브라운(Clifford Brown). 그를 언급할 때마다 떠오르는 수식어가 있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신이 그의 재능을 질투한 바람에 너무나 빨리 세상을 등지게 된 천재. 26년의 짧은 생애. 레코딩 기간은 겨우 4년. 그리고는 신기루처럼 떠나버린 비운의 천재 트럼페터. 그러나 그 짧은 기간에 남긴 음반들은 하나같이 역사적인 명반으로 남았다.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고 하지만 그가 만약 그렇게 일찍 절명하지 않았더라면 과연 재즈는 현재 어떤 모습으로 우리 앞에 존재할까? 그의 음악은 끝까지 완벽함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그만큼 그가 남긴 흔적들이 강렬했기에 가능한 물음이고 가정이다.

사고 당일 그는 피아니스트 버드 파웰의 동생 리치 파월과 그의 부인 크리스와 함께 시카고의 클럽으로 연주하러 가던 길이었다. 불행하게도 자동차 주인인 리치 파웰은 미숙했던 그의 부인에게 운전을 맡겼고, 차는 빗길에 미끄러져 사고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마디로 일어나지 않아도 되었을 어이없는 사고였다는 것이다.

그의 죽음은 당시 재즈계에도 엄청난 충격을 불러왔다. 술과 마약으로 취해있던 대부분의 연주자들과는 달리 그는 마약에 전혀 손을 대지 않았고 깨끗한 사생활과 인성으로 주변의 평도 훌륭했다. 이튿날 사고 소식을 들은 디지 길레스피 악단의 멤버들은 공연 진행이 어려울 정도로 통곡하는 바람에 공연을 엉망으로 마쳤다는 일화가 전해질 정도였다.

애니메이션 치코와 리타에 깜짝등장하는 디지 길레스피악단

단명한 뮤지션으로 이토록 강렬한 인상을 주고 떠난 경우는 빌 에반스 트리오의 베이시스트 스콧 라바로 정도가 있을까? 이 시기를 대표하는 재즈 트럼페터는 당연히 마일즈 데이비스를 들 수 있다. 그러나 클리포드 브라운이 계속 활동을 했더라면 어쩌면 마일즈는 오늘날 그가 가지고 있는 명성의 상당부분을 클리포드 브라운에게 양보해야 할지도 모른다.

1930년생인 클리포드 브라운은 여러 악기를 다룬 아버지의 영향을 받았지만 고교 입학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음악을 시작하였고 대학 졸업 후인 1952년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단지 4년 후에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하게 되지만 이 짧은 시기 비교적 많은 앨범을 남겼다. 이 앨범들 모두가 비교할 수 없는 높은 완성도로 고고하게 빛나고 있으니 수혜를 받는 우리로서는 그저 다행할 뿐이다.

최초의 녹음은 1952년 5월 시카고에서 이루어졌으나 정식 앨범을 위해 작업한 것은 아니라서 그의 사후 기록을 뒤져 찾은 끝에 발매될 수 있었다. 결국 실질적인 데뷔 앨범으로 꼽는 것은 1953년 뉴욕에서 녹음한 ‘Clifford Brown Memorial Album’이다. 그러나 이 역시 앨범 제목에서도 볼 수 있다시피 그에 대한 추모 앨범 형식으로 사후에 발매되었다.

그가 생존했던 당시에 앨범이 발매되지 않았다는 건 당시만 해도 그가 그다지 중요한 인물로 부각되지 않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1953년에 입단한 라이오넬 햄프턴 밴드에서의 입지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밴드의 유럽 순회공연 당시 개별 음악활동 금지라는 규칙을 어긴 일로 밴드에서 쫓겨나게 된다. 하지만 곧 아트 블래키에 발탁되는 행운을 얻게 된다. 클리포드 브라운으로서는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1954년 2월 2일은 기념비적인 날이다. 뉴욕의 클럽 ‘버드랜드’에서 향후 재즈사에 남을 위대한 공연이 열렸기 때문이다. 진정한 하드 밥의 태동이 이날 이루어졌고 그 주인공은 단연 클리포드 브라운이다. 대중들이 그간 들었던 마일즈 데이비스의 트럼펫과는 완전히 대비되는 속주와 파워풀한 블로잉은 클리포드 브라운 자신은 물론 리더 아트 블래키와 그의 밴드 재즈 메신져스, 그리고 호레이스 실버의 등장을 알리게 된 엄청난 사건이 되었다.

이후 그는 자신의 입지를 확고히 굳히게 되어 드러머 맥스 로치와 더불어 ‘브라운 & 로치’라는 퀸텟을 만들게 된다. 두 리더를 제외한 멤버들의 교체로 구성에 다소 부침이 있었으나 워낙 클리포드 브라운과 맥스 로치의 역량이 뛰어났기에 큰 문제는 없었다. 특히 이 시기에 레이블 ‘엠아시’에서 녹음한 ‘Clifford Brown And Max Roach’를 비롯한 다수의 앨범과 다이나 워싱턴, 헬렌 메릴, 사라 본 등 실력 있는 여성 보컬과 각각 협연한 앨범들은 모두 명반으로 일컬어지는 수작이 되었다. 특히 이번에 소개할 ‘Clifford Brown With Strings’는 특이하게도 현악 오케스트라와 함께 했다.

‘Clifford Brown With Strings’는 1955년 작품이다. 이전에 나온 여타 엠아시의 앨범들에 비해 한결 부드러우면서도 감성적인 클리포드 브라운의 브로잉이 배경음으로 퍼지는 현악 오케스트라의 사운드와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클래식컬 하면서도 결코 재즈의 주제 선율을 잃지 않고 있다. 수록곡들 모두 주옥같은 재즈 스탠더드 발라드다. 언제, 어디서, 누가 들어도 만족할 만한 연주다. 절제된 맥스 로치의 드러밍 또한 놓쳐서는 안 될 명작이다.

이 아름다운 앨범 Clifford Brown With Strings에 어울릴만한 커피를 고른다면 제일 먼저 케냐산(産) 원두를 꼽는다.

19세기 후반 인접 국가인 에티오피아를 통해 도입된 케냐의 커피는 거의 해발 1,500미터 이상 고지대에서 재배되며 대부분 지역의 기온과 강우량, 토질, 일조량 등이 커피 재배 조건에 이상적이다. 전반적으로 품질이 균일하고 신뢰할 만하다. 재배와 가공, 선별, 판매 시스템이 국가적 차원에서 관리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AA 등급의 원두를 흔히 접할 수 있어 일반적인 등급으로 오해하기 쉬우나 AA 등급은 실제로 케냐 커피 중에서도 최고의 등급을 말한다. 그만큼 맛과 향을 보장할 수 있다. 또한 로스팅의 스펙트럼이 넓기로 유명하다. 즉, 약볶음부터 강볶음까지 어떤 포인트로 로스팅을 해도 저마다의 향미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발현된다는 뜻이다. 깊고 묵직한 바디감과 향기로운 꽃향, 감귤류의 산미와 너트류의 고소함, 다크 초콜렛의 쓴 맛과 달콤함, 중후함과 산뜻함을 동시에 가진 최고의 밸런스를 자랑한다. 커피는 원래 호불호가 극명한 기호품이지만 케냐 커피만큼은 누가 마시든 우호적으로 평가하는 몇 안 되는 원두다. 앨범 Clifford Brown With Strings이 누구나 좋아할 만한 보편적인 감성을 표현한 것과 비슷하다.

어쩌면 절정의 기량을 가진 상태에서 절명했기 때문에 클리포드 브라운이 더욱 위대한 이름으로 칭송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최고의 연주와 앨범을 만들어내고는 홀연히 사라져서 세인의 입에 오르내리기도 전에 이미 전설이 되었기 때문이다. 마일즈 데이비스가 오랜 기간 혁신과 창조를 우리에게 선사했다면 그 반대편엔 당대의 순간을 보석처럼 화려하게 빛나게 한 클리포드 브라운이 있다. 1952년부터 1956년까지는 그야말로 온전히 클리포드 브라운의 시대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는 고루한 말은 진정 클리포드 브라운 때문에 영원히 격언으로 남을 수 있게 되었다.

경 성현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27) – 재즈, 커피에 반하다 ① “Clifford Brown With Strings & 케냐산(産) 원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