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 성현

Readiens

재즈를 듣고 사진을 찍으며 철학과 인문학속에서 길을 찾고 있는 커피 로스터.

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28) – 재즈, 커피에 반하다 ② “Undercurrent (Bill Evans & Jim Hall, Blue Note) 와 과테말라 안티구아 커피”

앨범 Undercurrent (Bill Evans &Jim Hall, Blue Note)는 1962에 발매된 빌 에반스와 짐 홀의 역사적인 듀오 앨범이다. 당시로서는 다분히 희귀했던 피아노와 기타 듀오 구성의 연주임에도 이 앨범을 재즈 미학의 최 정점에 올려놓는 것에 이의를 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또한 두 연주자 모두 쿨 재즈의 대가들이므로 쿨 재즈를 언급할 때 빠트려서는 안 되는 앨범이다.

UNITED KINGDOM – MARCH 19: BBC 2 JAZZ 625 Photo of Bill EVANS and Bill EVANS (Piano) (Photo by David Redfern/Redferns)

UNITED KINGDOM – MARCH 19: BBC 2 JAZZ 625 Photo of Bill EVANS and Bill EVANS (Piano) (Photo by David Redfern/Redferns)

1962년이라면 빌 에반스 트리오의 베이시스트 스콧 라바로가 세상을 떠난 지 1년이 되는 해다. 최고의 파트너이자 친구였던 스콧 라바로의 죽음은 한동안 그에게 연주를 못할 정도의 큰 충격과 비통함을 주었다. 그렇기에 스콧 라바로 타계 이후 첫 녹음 앨범인 Undercurrent는 미처 슬픔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빌 에반스에게 매우 특별한 의미의 작품이다.

그래서일까? 이 앨범에서의 빌 에반스는 이전의 그와는 좀 다르다. 맑고 투명했던 그의 스윙은 뭔가 속마음을 애써 꾹꾹 누르듯 평소보다는 자제되어 있다. 스콧 라바로가 생전이라면 당연히 맡았을 리듬은 짐 홀의 기타가 적절히 감내하고 있다. 마치 스콧 라바로를 추억하는 듯하다.

이 앨범의 첫 번째 인상은 무엇보다도 강렬한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자켓 사진에서 비롯된다. 깊고 어두운 물위에 누워 있는 여인의 모습에서 음울함과 서늘함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완전히 가라앉지도, 그렇다고 부유하듯 떠 있다고도 볼 수 없는 모습이다.

개인적으로는 깊은 물에 트라우마가 있어 타이틀 Undercurrent(암류)와 자켓 사진 그 자체가 압박감이다. 집어들 때마다 늘 주저하게 된다. 마치 Undercurrent가 주는 단어의 의미처럼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불안한 움직임이나 슬픔 같은 감정이다. 음악적인 면을 별개로 하더라도 자켓 사진만으로도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는 앨범이다.

그러나 정작 담긴 음악은 이와는 다른 뉘앙스다. 자켓 이미지와는 정 반대다. 오히려 따뜻하고 포근한 기운마저 느껴진다. 빌 에반스와 짐 홀 두 사람 모두 화려한 스타일과는 거리가 먼 연주자인 만큼 차분하고 조용하다.

앨범이 처음 발매된 당시 피아노와 기타 듀오는 상당히 실험적인 구성이다. 거기에 빌 에반스의 피아노와 짐 홀의 기타는 누가 들어도 구분이 될 만큼 독자적이고 개성이 뚜렷하다. 이 두 사람만으로 구성된 팀이었으니 서로의 존중과 배려가 없다면 정상적인 인터플레이는 기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마치 오랫동안 연주를 통해 우의를 다진 친구들처럼 서로의 음악을 인정해주고 있다. 각자의 영역을 고수하면서도 자신의 빈자리를 메우러 들어오는 상대방을 결코 밀어내지 않는다.

그럼에도 난 이 앨범을 두려움과 불안으로 집어 들어 차분함과 따뜻함으로 듣다가 종래에는 슬픔으로 해석한다. 물론 강렬한 자켓 이미지 탓이 크겠지만 이런 양가감정은 어쩌면 드러내지 못하는 원천적 슬픔과 불안 때문일지도 모른다.

종종 즐겁고 신나야 할 일 앞에서도 그저 덤덤하니 무감해질 때가 있다. 오히려 가슴을 찔러대는 통증에 끙끙대야만 하는 일들이 많아졌다. 이런 저런 사회적 문제의 본질이 결국 내 문제일 수도 있다는 걸 자각하기도 한다. 더욱이 각자의 개인적인 빈곤과 차별, 낙오, 소외, 절망에서 비롯되는 불안과 슬픔은 대놓고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 SNS가 그 창구인 것 같지만 실은 그 반대일 수도 있다는 걸 점점 더 많은 이들이 눈치 채고 있다. 대체 불안과 슬픔이란 어떤 감정이기에 이렇듯 나를 지배하는 걸까?

스피노자는 에티카에서 ‘코나투스(Conatus)’라는 개념을 역설한다. 이에 따르면 모든 양태(사물)는 자신에게 유익한 것은 취하고 자신에게 부적합하거나 위협적인 요소는 피하게 된다. 이는 본성이고 자기 보존 욕망이다. 나아가 이러한 자기 보존 욕망이 증대되는 상태가 기쁨이고, 반대로 자기 보존 욕망이 침해를 받아 내 존재의 힘이 억압받는 상태가 불안이고 슬픔이다. 그러므로 불안과 슬픔은 기쁨에 비해 근본적으로 불완전하다. 기쁨으로 치환하기 위한 노력이야말로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과정인 셈이다. 스피노자의 궁극적인 목표는 행복한 삶을 찾는 것이다. 그러므로 순전히 스피노자에 따른다면 인간은 언제나 불안과 슬픔을 멀리하고 기쁨을 추구하는 삶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리라. 이것이 아마도 스피노자의 철학을 기쁨과 긍정의 철학이라 일컫는 이유일 것이다.

Undercurrent의 자켓 이미지와 연주가 서로 상충하는 이유를 혹 여기에서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불안과 슬픔을 안고 살아야 함에도 빌 에반스와 짐 홀이 그렇듯 타인의 존재를 인정하고 서로의 빈자리를 기꺼이 메워주는 것. 그런 노력을 하는 것. 그것이 불안과 슬픔을 조금씩이나마 이기는 방법이 아닐까?

앨범 Undercurrent의 자켓 사진은 불안과 슬픔의 이미지를 주는 것에 반해 실제 수록된 음악은 따뜻하고 다정한 음악인 것처럼 서로 상반된 이미지와 맛을 가진 커피가 있다. 과테말라의 커피가 그렇다. 과테말라 커피는 왠지 모르게 거칠고 강한 쓴맛의 이미지를 가졌으나 실은 밝고 따뜻한 풍미를 더욱 많이 가지고 있다.

과테말라는 국토의 대부분이 화산재 토양이다. 또한 일교차가 크고 건기와 우기가 뚜렷하다. 특히 화산재 토양의 특성상 미네랄이 풍부하고 배수성이 우수해 커피 재배에 최적이다. 커피 수출액이 과테말라 전체 수출액의 거의 3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커피 산업이 발달되어 있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과테말라 안티구아 (Guatemala Antigua)라는 명칭은 과테말라 내에서도 대표적인 커피 재배지로 유명한 안티구아 지역 커피를 의미한다. 화산재 토양의 고지대에서 주로 생산되는 커피로서 강렬한 스모크(Smoke) 향을 가진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산미 또한 엄청나게 풍부한 커피이기도 하다. 바디감이 뛰어난 건 물론이고 달콤함 마저 우수하다. 나무가 타들어갈 때 나는 훈제 향이 강하다는 인식 때문에 전통적으로 강하게 로스팅 하는 대표적인 품종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중간 혹은 약하게 로스팅 하는 추세가 늘어났다. 그래서 고유의 스모크한 향은 여전히 뛰어나면서도 상큼한 산미 역시 도드라진 과테말라안티구아를 많이 접할 수 있다. 한마디로 스모크 향이라는 강렬한 이미지 때문에 스트롱(Strong)한 향과 맛을 생각했다가 의외의 산미와 부드러움을 경험하는 것이다. 마치 음울한 불안과 슬픔이 배어 있는 이미지와는 달리 실제로는 밝고 따뜻하고 나른한 음악을 담은 앨범 Undercurrent 같다.

 

경 성현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28) – 재즈, 커피에 반하다 ② “Undercurrent (Bill Evans & Jim Hall, Blue Note) 와 과테말라 안티구아 커피”

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27) – 재즈, 커피에 반하다 ① “Clifford Brown With Strings & 케냐산(産) 원두”

1956년 6월 26일.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시카고로 향하던 한 대의 승용차가 도로를 달리던 중 5미터 높이의 제방 밑으로 추락하는 사고가 일어난다. 당시의 필라델피아의 기상은 폭우가 쏟아지던 상태였다. 차를 타고 있던 세 명의 승객 모두는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처음엔 단순한 교통사고로 보도되었을 뿐이다. 하지만 이 사고는 곧 재즈사에 영원히 언급될 한 젊은 연주자의 죽음을 의미하는 비극이 되었다.

클리포드 브라운(Clifford Brown). 그를 언급할 때마다 떠오르는 수식어가 있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신이 그의 재능을 질투한 바람에 너무나 빨리 세상을 등지게 된 천재. 26년의 짧은 생애. 레코딩 기간은 겨우 4년. 그리고는 신기루처럼 떠나버린 비운의 천재 트럼페터. 그러나 그 짧은 기간에 남긴 음반들은 하나같이 역사적인 명반으로 남았다.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고 하지만 그가 만약 그렇게 일찍 절명하지 않았더라면 과연 재즈는 현재 어떤 모습으로 우리 앞에 존재할까? 그의 음악은 끝까지 완벽함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그만큼 그가 남긴 흔적들이 강렬했기에 가능한 물음이고 가정이다.

사고 당일 그는 피아니스트 버드 파웰의 동생 리치 파월과 그의 부인 크리스와 함께 시카고의 클럽으로 연주하러 가던 길이었다. 불행하게도 자동차 주인인 리치 파웰은 미숙했던 그의 부인에게 운전을 맡겼고, 차는 빗길에 미끄러져 사고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마디로 일어나지 않아도 되었을 어이없는 사고였다는 것이다.

그의 죽음은 당시 재즈계에도 엄청난 충격을 불러왔다. 술과 마약으로 취해있던 대부분의 연주자들과는 달리 그는 마약에 전혀 손을 대지 않았고 깨끗한 사생활과 인성으로 주변의 평도 훌륭했다. 이튿날 사고 소식을 들은 디지 길레스피 악단의 멤버들은 공연 진행이 어려울 정도로 통곡하는 바람에 공연을 엉망으로 마쳤다는 일화가 전해질 정도였다.

애니메이션 치코와 리타에 깜짝등장하는 디지 길레스피악단

단명한 뮤지션으로 이토록 강렬한 인상을 주고 떠난 경우는 빌 에반스 트리오의 베이시스트 스콧 라바로 정도가 있을까? 이 시기를 대표하는 재즈 트럼페터는 당연히 마일즈 데이비스를 들 수 있다. 그러나 클리포드 브라운이 계속 활동을 했더라면 어쩌면 마일즈는 오늘날 그가 가지고 있는 명성의 상당부분을 클리포드 브라운에게 양보해야 할지도 모른다.

1930년생인 클리포드 브라운은 여러 악기를 다룬 아버지의 영향을 받았지만 고교 입학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음악을 시작하였고 대학 졸업 후인 1952년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단지 4년 후에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하게 되지만 이 짧은 시기 비교적 많은 앨범을 남겼다. 이 앨범들 모두가 비교할 수 없는 높은 완성도로 고고하게 빛나고 있으니 수혜를 받는 우리로서는 그저 다행할 뿐이다.

최초의 녹음은 1952년 5월 시카고에서 이루어졌으나 정식 앨범을 위해 작업한 것은 아니라서 그의 사후 기록을 뒤져 찾은 끝에 발매될 수 있었다. 결국 실질적인 데뷔 앨범으로 꼽는 것은 1953년 뉴욕에서 녹음한 ‘Clifford Brown Memorial Album’이다. 그러나 이 역시 앨범 제목에서도 볼 수 있다시피 그에 대한 추모 앨범 형식으로 사후에 발매되었다.

그가 생존했던 당시에 앨범이 발매되지 않았다는 건 당시만 해도 그가 그다지 중요한 인물로 부각되지 않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1953년에 입단한 라이오넬 햄프턴 밴드에서의 입지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밴드의 유럽 순회공연 당시 개별 음악활동 금지라는 규칙을 어긴 일로 밴드에서 쫓겨나게 된다. 하지만 곧 아트 블래키에 발탁되는 행운을 얻게 된다. 클리포드 브라운으로서는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1954년 2월 2일은 기념비적인 날이다. 뉴욕의 클럽 ‘버드랜드’에서 향후 재즈사에 남을 위대한 공연이 열렸기 때문이다. 진정한 하드 밥의 태동이 이날 이루어졌고 그 주인공은 단연 클리포드 브라운이다. 대중들이 그간 들었던 마일즈 데이비스의 트럼펫과는 완전히 대비되는 속주와 파워풀한 블로잉은 클리포드 브라운 자신은 물론 리더 아트 블래키와 그의 밴드 재즈 메신져스, 그리고 호레이스 실버의 등장을 알리게 된 엄청난 사건이 되었다.

이후 그는 자신의 입지를 확고히 굳히게 되어 드러머 맥스 로치와 더불어 ‘브라운 & 로치’라는 퀸텟을 만들게 된다. 두 리더를 제외한 멤버들의 교체로 구성에 다소 부침이 있었으나 워낙 클리포드 브라운과 맥스 로치의 역량이 뛰어났기에 큰 문제는 없었다. 특히 이 시기에 레이블 ‘엠아시’에서 녹음한 ‘Clifford Brown And Max Roach’를 비롯한 다수의 앨범과 다이나 워싱턴, 헬렌 메릴, 사라 본 등 실력 있는 여성 보컬과 각각 협연한 앨범들은 모두 명반으로 일컬어지는 수작이 되었다. 특히 이번에 소개할 ‘Clifford Brown With Strings’는 특이하게도 현악 오케스트라와 함께 했다.

‘Clifford Brown With Strings’는 1955년 작품이다. 이전에 나온 여타 엠아시의 앨범들에 비해 한결 부드러우면서도 감성적인 클리포드 브라운의 브로잉이 배경음으로 퍼지는 현악 오케스트라의 사운드와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클래식컬 하면서도 결코 재즈의 주제 선율을 잃지 않고 있다. 수록곡들 모두 주옥같은 재즈 스탠더드 발라드다. 언제, 어디서, 누가 들어도 만족할 만한 연주다. 절제된 맥스 로치의 드러밍 또한 놓쳐서는 안 될 명작이다.

이 아름다운 앨범 Clifford Brown With Strings에 어울릴만한 커피를 고른다면 제일 먼저 케냐산(産) 원두를 꼽는다.

19세기 후반 인접 국가인 에티오피아를 통해 도입된 케냐의 커피는 거의 해발 1,500미터 이상 고지대에서 재배되며 대부분 지역의 기온과 강우량, 토질, 일조량 등이 커피 재배 조건에 이상적이다. 전반적으로 품질이 균일하고 신뢰할 만하다. 재배와 가공, 선별, 판매 시스템이 국가적 차원에서 관리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AA 등급의 원두를 흔히 접할 수 있어 일반적인 등급으로 오해하기 쉬우나 AA 등급은 실제로 케냐 커피 중에서도 최고의 등급을 말한다. 그만큼 맛과 향을 보장할 수 있다. 또한 로스팅의 스펙트럼이 넓기로 유명하다. 즉, 약볶음부터 강볶음까지 어떤 포인트로 로스팅을 해도 저마다의 향미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발현된다는 뜻이다. 깊고 묵직한 바디감과 향기로운 꽃향, 감귤류의 산미와 너트류의 고소함, 다크 초콜렛의 쓴 맛과 달콤함, 중후함과 산뜻함을 동시에 가진 최고의 밸런스를 자랑한다. 커피는 원래 호불호가 극명한 기호품이지만 케냐 커피만큼은 누가 마시든 우호적으로 평가하는 몇 안 되는 원두다. 앨범 Clifford Brown With Strings이 누구나 좋아할 만한 보편적인 감성을 표현한 것과 비슷하다.

어쩌면 절정의 기량을 가진 상태에서 절명했기 때문에 클리포드 브라운이 더욱 위대한 이름으로 칭송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최고의 연주와 앨범을 만들어내고는 홀연히 사라져서 세인의 입에 오르내리기도 전에 이미 전설이 되었기 때문이다. 마일즈 데이비스가 오랜 기간 혁신과 창조를 우리에게 선사했다면 그 반대편엔 당대의 순간을 보석처럼 화려하게 빛나게 한 클리포드 브라운이 있다. 1952년부터 1956년까지는 그야말로 온전히 클리포드 브라운의 시대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는 고루한 말은 진정 클리포드 브라운 때문에 영원히 격언으로 남을 수 있게 되었다.

경 성현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27) – 재즈, 커피에 반하다 ① “Clifford Brown With Strings & 케냐산(産) 원두”

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26) – 자크 루시에 트리오(Jacques Loussier Trio)의 ‘Vivaldi, The Four Seasons (Telarc)

겨울은 쌩하게 추워야 제 맛이라고들 하지만 요사이는 도무지 겨울이 겨울답지가 않다. 눈을 본 지가 언제였는지 모르겠고 봄에만 잠깐 날아오던 황사와 미세먼지는 겨우내 우리를 괴롭혔다. 깜빡 한 눈을 팔다간 꼼짝없이 외투를 벗어야 할 판이다. 이럴 바에야 차라리 봄노래를 흥얼거리며 꽃 소식을 기다리는 게 낫겠다 싶다.

봄이 되면 주변에서 어김없이 들려오는 여러 음악들이 있다. 요한 슈트라우스의 ‘봄의 소리 왈츠’와 더불어 이번에 소개할 비발디의 ‘사계 역시 그 중 하나다. 사실 사계는 비단 봄뿐만 아니라 계절에 상관없이 듣게 되는 곡이기도 하다. 그래서 가장 익숙하면서도 동시에 가장 식상한 음악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본래 비발디의 사계는 바이올린 협주곡으로서 사계절을 4개의 부분으로 나누어 세밀하고도 풍부하게 묘사한 작품이다. 더욱이 악보의 중간 중간 들어 있는 지은이 미상 시(소네트)로 인해 표제 음악으로서의 기능에도 충실한 곡이다. 이 작품을 연주한 음반이야말로 셀 수없이 많지만 가장 대표적인 음반으로는 아무래도 이탈리아 챔버 앙상블 ‘이 무지치’와 바이올리니스트 펠릭스 아요의 협연 음반을 들 수 있다. 이밖에 파비오 비온디와 유로파 갈란테의 앨범 그리고 막스 리히터의 독특한 편곡으로 연주되는 앨범도 들을 만하다.

그러나 내가 가장 애청하고 있는 앨범은 ‘자크 루시에 트리오’(Jacques Loussier Trio)의 ‘Vivaldi, The Four Seasons (Telarc)이다. 자크 루시에와 그의 트리오는 바흐 스페셜리스트로서 바흐의 작품을 재즈로 연주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그의 음악적 지평은 바흐를 넘는다. 바로크 시대 작곡가인 헨델과 비발디의 앨범에서도 타 연주자들은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독특함과 예술성을 과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모차르트와 베토벤, 그리고 슈만과 쇼팽을 연주하고 여기에 인상주의의 작곡가인 라벨과 드뷔시, 사티 앨범까지 연이어 발표했다. 그러므로 클래식을 재즈로 연주한 아티스트를 얘기할 때 이들을 빼놓고는 한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다.

재즈와 클래식은 매우 이질적인 장르처럼 보이지만 사실 재즈의 탄생 초기 클래식이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 그래서 클래식을 재즈로 연주하는 것이 전혀 부자연스러운 것만은 아니다. 메인 스트림에 가려져 있기는 하나 오래전부터 많은 연주자들이 클래식을 재즈로 해석하여 연주해 오고 있다.

일반적으로 클래식을 재즈로 연주할 때에는 특히 원곡의 분위기와 구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재즈를 재즈답게 만드는 리듬, 즉 ‘swing’을 어떻게 구현하는지가 중요한 요소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자크 루시에는 가히 비교할 수 없는 매력과 능력을 가진 연주자임에 틀림없다. 앨범 전체에 일관되게 흐르는 스윙감이 ‘Vivaldi, The Four Seasons’이 재즈 앨범이라는 정체성을 확실하게 일깨워 준다.

 

음반을 데크에 올려놓고 플레이 버튼을 누르면 피아노 소리보다는 먼저 뱅샹 샤르보니에의 베이스와 앙드레 아르피노의 드러밍 소리에 귀를 쫑긋하게 된다. 곧이어 터지듯 들려오는 자크 루시에의 경쾌한 피아노 소리는 듣는 이로 하여금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지르게 만든다. 이 음악이 그토록 식상하게 들어왔던 비발디의 사계라니! 오 세상에나!!!

정통 클래식 연주에서는 맨 먼저 살랑거리며 불어오는 봄바람을 연상시키는 가벼운 현들의 울림이 귀에 들어오겠지만 이 앨범에서는 마치 봄에 움 트는 생명들의 경쾌한 움직임이 터져 나오는 듯하다. 전체 곡의 흐름 중에서도 특히 이 봄 부분이 가장 인상 깊은데 이는 오로지 자크 루시에의 창조적인 편곡과 연주 능력 때문이다. 비발디의 사계가 가지고 있는 익숙함을 단번에 날려버릴 만큼 신선하게 다가온다.

봄에서는 생명력이 가득 찬 1번 트랙 알레그로, 여름에서는 강렬한 폭풍우 소리가 들리는 6번 트랙 프레스토, 가을에서는 늦가을 느낌 그 자체인 8번 트랙 아다지오 몰토, 겨울에서는 눈 덮인 쓸쓸함을 느끼게 해 주는 11번 트랙 라르고가 특히나 아름답고 매력적이다. 여기에 각 계절에 붙어있는 소네트와 함께 즐긴다면 여태까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들어온 사계에 대한 진부한 선입견을 완전히 바꾸게 될 것이다.

한창 추위에 떨어야 하는 계절의 한복판임에도 연일 봄기운이다. 성급하지만 마음은 이미 봄이다. 자크 루시에의 스윙 넘치는 사계를 들으니 더욱 그렇다.

경 성현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26) – 자크 루시에 트리오(Jacques Loussier Trio)의 ‘Vivaldi, The Four Seasons (Telarc)

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25) – 재즈의 시대

“오히려 유럽으로 수입된 흑인음악과 춤이 더 위험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음악은 유럽의 문화 인구 전체를 정말 열광이라 할 정도로 완전히 끌어들였어요. 흑인들이 자신들의 물신들 주위를 돌며 춤을 출 때와 같은 몸짓의 끊임없는 반복이나 재즈 밴드들의 절분 된 리듬의 계속되는 소리가 아무런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갖지 않는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수백만의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대단히 광범위한 현상이에요. (중략) 나는 그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그가 더 이상 재즈를 들으며 커피를 마시는 일을 그만 둘 수 없으며 앞으로 그는 자신의 핏속에 있는 흑인의 색소를 잡아내기 위해 거울 안에 있는 자신을 보다 가까이 들여다 볼 것이라고 짐작합니다.” <감옥에서 보낸 편지> (안토니오 그람시, 민음사 168p)

20세기 가장 위대한 사상가 중의 한사람이자 파시즘에 대항한 영혼의 승리자이며 위험한 지식이라고도 일컫는 이탈리아 공산당 창시자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가 1928년 2월 20일 밀라노의 감옥에서 자신을 헌신적으로 뒷바라지 해 주었던 처형 타니아에게 보낸 편지 내용 일부다.

1891년 이탈리아의 사르데냐에서 태어난 그람시는 어린 시절 사고로 등이 굽는 장애를 얻었고 성년이 된 이후에도 크고 작은 병치레를 겪으며 결국 토리노 대학을 중퇴하게 된다. 그럼에도 1921년 이탈리아 공산당을 창당하고 1926년 1월 공산당 총서기에 선출되었으나 그해 11월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정권에 체포되어 20년의 형을 받고 수감된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당시 그람시에게 내려진 판결은 ‘20년 동안 저 사람의 두뇌가 활동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결국 형기를 다 채우지도 못한 채 1937년 생애를 마치게 되지만 감옥에서 보낸 10년 동안 노트 30여권에 이르는 많은 글을 남긴다. 그 중 <옥중 수고>와 <감옥에서 보낸 편지>는 그가 남긴 최고의 지적 결과물이다.

<옥중 수고>에는 마르크스 사상의 계보를 잇는 그람시답게 ‘헤게모니’와 ‘진지전’과 같은 정치적 개념과 철학, 역사, 문화에 걸친 방대한 내용을 담았다. 반면 <감옥에서 보낸 편지>는 당시 이탈리아의 정치 현실과 감옥 내에서의 개인적인 고통, 가족들에 대한 염려와 불안 등이 주 내용이다. 그람시의 개인적 면모를 알 수 있는 저작이다. 게다가 이탈리아 문학상까지 수상할 정도로 아름답고 명료한 문체로도 유명하다.

그람시는 편지에서 행상인이 파는 중국풍의 장신구를 이단시하여 유럽이 아시아화(化) 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는 한 복음주의자를 조롱한다. 아시아화(불교에 의한 우상숭배 신앙)를 걱정하면서도 정작 재즈(커피를 포함하여)의 급속한 전파로 인한 흑인화(최소한 혼혈아 단계)는 간과하고 있다며 놀리는 것이다. 커피는 이미 대중화 된지 오래되어 그다지 흥미로울 것이 없으나 재즈에 관한 언급은 의외다. 더욱이 그람시는 ‘춤을 출 때와 같은 몸짓의 끊임없는 반복’이나 ‘절분 된 리듬의 계속되는 소리’등으로 재즈의 특징을 설명하고 있다. 재즈의 ‘블루스’적인 요소와 ‘스윙’의 개념을 정확히 알고 있다는 뜻이다.

평생 자본주의를 경계하여 그 반대편에 서 있었던 그람시에게 조차 재즈와 커피는 우려의 대상이 아닌 민중이 누려야 할 최소한의 가치였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당시에 그람시가 들었던 재즈는 과연 어떤 형태였을까?

1900년대 초에 미국 남부 뉴올리언즈에서 탄생한 재즈는 1920년 중반부터 미시시피 강을 거슬러 올라가 대공황 직전인 1929년까지 ‘재즈의 시대’라고도 일컫는 시카고 시대를 보낸다. 우리가 알고 있는 스콧 피츠제랄드(F. Scott Fitzgerald)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의 배경이 되는 바로 그 시대다. 그람시가 감옥에서 편지를 쓴 시기와 정확히 일치한다. 놀랍게도 재즈가 본토인 미국과 유럽의 변방 이탈리아에서 거의 동시에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이다.

이 시기 대표적인 재즈 아티스트는 단연코 루이 암스트롱이다. 그는 재즈의 대중화 작업에 가장 큰 역할을 했고 솔로 연주와 보컬의 스타일을 정형화 시킨 인물이다. 재즈의 역사에서 그의 이름을 쓰지 않고는 단 한 줄도 이어나갈 수 없다. 한마디로 그의 생애가 바로 재즈의 역사 그 자체다.

1971년 세상을 떠나기까지 전 생애에 걸쳐 발표한 수많은 연주와 앨범은 어느 것 하나 빼놓을 것 없이 좋다. 그 중에서도 나는 1920년대 후반의 연주를 가장 좋아한다. 안토니오 그람시가 수감되어 편지를 쓰던 바로 그 시기다. 비록 소수의 애호가들만 즐기는 초기 재즈지만 루이 암스트롱의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넘치던 풋풋했던 시절의 연주답다. 블루스의 깊은 감성과 스윙의 경쾌함을 모두 품고 있다. 가장 순수한 모습의 재즈다.

경 성현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25) – 재즈의 시대

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24) – Goldberg Variations : Aria and 70 Variations Adapted, Arranged and Composed by Uri Caine

대학 입학 직전 날씨가 매섭게 추웠던 그 날 아침, 아버지와 동네 목욕탕에 가면서 들었던 음악은 바로 골드베르크 변주곡이었다. 연주자가 누구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이어폰으로 들리던 워크맨 속 피아노음은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차가운 날씨, 가슴을 때리던 명징한 피아노 소리, 그레이 컬러의 오버 깃을 올리시고 빠른 걸음으로 나를 재촉하시던 지금 내 나이쯤을 드셨던 아버지의 미소까지도 선명하다. 집에서 목욕탕까지의 거리는 불과 10여 분 남짓이어서 미처 연주를 다 듣진 못했다. 조급한 마음에 젖은 몸을 제대로 말릴 새도 없이 이어폰을 귀에 꽂으며 허겁지겁 목욕탕을 나섰다. 그런 기억 때문에 한겨울에 듣는 바흐의 골드베르크는 나에겐 정말 특별한 음악이다.

무수히 많은 골드베르크 앨범 중에서도 글렌 굴드의 데뷔 앨범인 1955년의 파격적인 연주와 로잘린 투렉이 1999년에 녹음한 정결하고도 사색적인 연주를 특히 좋아하는 편이다. 그 외에 재즈로 변주한 자크 루시에 트리오의 골드베르크 역시 빼놓을 수가 없다.

그러나 이번에 소개하는 골드베르크는 재즈 피아니스트 유리 케인이 그의 앙상블과 함께 2개의 CD에 가득 채워놓은 앨범(원제 Goldberg Variations : Aria and 70 Variations Adapted, Arranged and Composed by Uri Caine)이다.

레이블 W&W에서 발매된 이 앨범은 여타 골드베르크 앨범과는 비교할 수 없이 특이하다. 첫 번째 트랙인 ‘아리아’를 들을 때만 해도 싱커페이션이 다소 들어있기는 하나 평소에 들어왔던 골드베르크의 익숙한 멜로디가 별 거부감이 없이 들린다. 그리 특별한 앨범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러나 트랙이 점차 넘어갈수록 그야말로 파격을 넘는 다양한 스타일로 변주된다. 가히 골드베르크의 코스모스라고나 할까? 이 세상 모든 장르의 음악이 마치 바흐의 골드베르크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바로크 음악의 대가 바흐의 골드베르크가 재즈, 딕시랜드, 가스펠, 뮤지컬, 스윙, 일렉트릭, 힙합 등으로 변주되고 있으니 말이다.

이를테면 바흐 시대에 연주되었을 법한 익숙한 스타일의 변주가 나오다가 난데없이 1920년대 시카고 등지에서 연주되던 루이 암스트롱의 밴드 ‘핫 파이브’ 스타일의 변주가 튀어나온다. 그런가 하면, 현악 4중주와 피아노가 라흐마니노프를 연상케 하는 스타일로 연주되기도 하고 그렉 오즈비의 알토 색소폰이 등장하기도 한다. 급기야 뮤지컬 지킬 박사와 하이드를 능청스러운 남성 보컬로 듣게 되면 반쯤 넋이 나가게 된다. 이쯤에서 대부분의 리스너는 ‘대체 이 앨범의 정체는 뭐지?’라고 하면서 이마에 손을 얹고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 것이 뻔하다.

 

그렇게 두 개의 CD를 혼란과 경이로움 속에서 정신없이 듣다 보면 어느새 CD 2의 32번 트랙인 아리아의 익숙한 선율을 만나게 된다. 그제야 겨우 안도의 숨을 쉬게 된다. 두 시간이 넘는 혼란에서 간신히 빠져 나왔다고 믿는 것이다. 그러나 그 순간 유리 케인은 마음을 놓고 있는 청자의 허를 단숨에 찌른다. 정확히 2분 43초 동안 가느다란 파동만이 존재하는, 진정한 마지막 트랙 33번 ‘Eternal Variation’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희한하지 않은가. 음악을 담은 음반에 일정한 옥타브의 파동만 존재하는 트랙이라니. 이 앨범을 처음 들었던 당시엔 혹, 불량 음반이 아닐까 하고 의심했을 정도다.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은 ‘오리엔탈리즘’의 저자 에드워드 사이드와의 대담집 ‘평행과 역설'(도서출판 마티)에서 ‘침묵에 대한 저항’과 ‘침묵으로의 회귀’에 대하여 말한다. 두 사람이 ‘침묵에의 저항’의 예로 언급한 곡은 바로 베토벤의 교향곡 제 5번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주제 선율의 비장하면서도 강렬한 울림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알다시피 교향곡 제 5번은 운명의 문 앞에서 조차 결코 무력하게 순응하지만은 않는 인간의 위대한 저항을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이른바 ‘운명 교향곡’이라는 표제가 붙어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침묵으로의 회귀’의 적절한 예는 어떤 게 있을까? 책의 내용과는 별개로 감히 나는 이 앨범을 들고 싶다. 위에서 말한 CD 2의 33번 트랙 때문이다. 2분 43초간의 ‘소리 없는’ 마지막 트랙이야말로 ‘침묵으로의 회귀’ 바로 그것이다.

아리아로 시작하여 아리아로 끝나는 보통의 골드베르크와는 달리 이 앨범에서는 텅 빈 소리로 존재하는 33번 트랙을 듣고 나서야 겨우 한숨을 돌리고 눈을 지그시 감게 된다. 2시간 30여분에 걸친 골드베르크에 대한 긴 여정을 비로소 마치게 되었다는 뜻이다. 어찌 보면 인간의 삶 같기도 하다.

 

바흐의 골드베르크를 클래식 본연의 연주는 물론, 재즈, 뮤지컬, 일렉트릭, 힙합까지 아우르는 다양한 스타일로 변주하고 있으니 조금은 난감할 수도 있다. 그런 이유로 맨 정신엔 들을 수 없다고 꾀를 부릴 수는 있겠으나 CD 2의 마지막 트랙인 33번 트랙만큼은 꼭 들어보길 바란다. 2분 43초간의 침묵을 통하여 텅 빈 부족함에서 오히려 풍요로움을 느낄 수 있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독일의 레이블 ‘W&W’에서 발매된 앨범답게 앨범 자켓의 물성 자체 또한 예술적이다. 두툼한 아트지로 한 팩 한 팩 수공예로 제작되었기 때문이다. 여러 면에서 보석 같은 앨범이다.

경 성현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24) – Goldberg Variations : Aria and 70 Variations Adapted, Arranged and Composed by Uri Caine

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23) – ‘Duke Jordan’의 <Flight to Denmark>

겨울이 되면 어김없이 등장하여 거리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는 것이 있다. 붕어빵이다. 붕어빵은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부터 겨우내 보이다가는 날이 풀리면 언제 있었냐는 듯 자취를 감추어 버린다. 온전히 겨울에만 맛 볼 수 있다가 날이 풀리면 식상해져서 사라지든 말든 관심조차 없다. 그러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또다시 기다리게 된다. 굳이 말하자면 붕어빵은 겨울에만 먹을 수 있다. 특별히 감동을 줄 만한 맛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붕어빵이 없는 겨울 거리는 왠지 상상하기 힘들다.

이맘때가 되면 마치 붕어빵처럼 이런저런 매체에서 어김없이 다루어지는 앨범들이 있다. 말할 필요도 없이 겨울의 낭만을 느끼기에 충분한, 따뜻한 감성을 담고 있는 음반들이다.

그 중에서도 겨울 시즌에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앨범은 ‘Duke Jordan’의 <Flight to Denmark> (SteepleChase)이다. Flight to Denmark는 겨울철이면 세상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앨범일 것이다. 재즈 리스너에게 겨울에 어울리는 음반 하나만 고르라고 한다면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이 음반을 선택할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 차가운 겨울 이미지와 정서에 잘 맞는 대중적인 작품이다.

특히 온통 하얀 눈이 덮인 숲 속 빈터에 검정 외투를 입고 서 있는 피아니스트 듀크 조던의 앨범 표지 사진으로도 유명하다. 왠지 모를 신비로운 이미지마저 풍긴다. 그러기에 자켓 사진만으로도 눈길을 끌기에 충분한 앨범이다. 하지만 이러한 음악 외적 이미지도 풍부한 서정미로 넘치는 연주의 퀄리티를 희석시키지는 못한다. 종종 ‘또 이 앨범이냐?’ 하고 볼멘소리로 폄하하는 분들이 있기는 하나 그런 소리를 들을 만큼 허술한 앨범이 아니라는 건 분명하다.

앨범의 주인공 듀크 조던은 1940년대에 이미 찰리 파커, 스탄 겟츠, 마일스 데이비스 등과 같이 연주한 관록의 피아니스트다. 그러나 1960년 이후 별다른 빛을 보지 못하고 5년 동안이나 뉴욕에서 택시 운전을 하는 등 혹독한 시절을 보낸다. 결국 1973년에 덴마크를 방문하여 Flight to Denmark를 발표하게 되었고 앨범은 공전의 히트를 치게 된다. 타국의 낯선 곳에서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 셈이다.

근데 하필 왜 덴마크였을까? 어쩌면 택시를 운전할 정도로 어려워진 환경에서 재즈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이어가기에 당시의 유럽을 대체할 만한 곳은 없었을 것이다. 특히 덴마크를 비롯한 북유럽은 새로 발견한 약속의 땅이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이 앨범을 관통하는 정서는 앨범 재킷의 이미지에서도 느껴지는 겨울의 차가움이 주는 고독함이 아니다. 외롭거나 비장미가 흐르기보다는 장작 몇 개가 활활 타고 있는 벽난로를 연상시키는 따뜻함의 여유가 있다. 담백한 여백을 느끼기에도 충분하다. 매년 겨울 여러 매체에서 추천하는 음반이라 식상하다 여길 수도 있으나 그토록 오랫동안 계속해서 언급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연인이 있다면 꼭 곁에 앉혀두고 함께 듣길 바란다. 붕어빵 몇 개라도 먹으면서 듣는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그러면 서로의 온기가 얼마나 소중한지 더욱 느낄 수 있을 테니까. 우리가 혹독한 겨울을 견딜 수 있는 건 결국 이런 타인의 체온 같은 것들이 있기에 가능한 게 아닐까?

역설적이지만 잘 기억해 두었다가 뜨거운 여름에 이 앨범을 꺼내 들어도 좋다. 솔직히 말하면 난 겨울에 듣기보다는 여름에 더 자주 듣는 앨범이다. 생각해 보라. 자켓 사진만 봐도 더위가 싹 가시지 않겠는가.

경 성현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23) – ‘Duke Jordan’의 <Flight to Denmark>

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22) – 녹턴

‘가즈오 이시구로’는 2017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일본계 영국 작가다. 노벨문학상을 받기 이전에 이미 부커상을 받은 세계적인 작가였지만 처음 작품으로 접한 건 몇 해 전 다섯 개의 소설을 모아 펴 낸 소설집 <녹턴>을 통해서다. 개인적 관심사인 재즈가 무수히 언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재즈 스탠더드 넘버와 뮤지션들의 이야기를 작품에 삽입한 기법 때문에 솔직히 처음엔 무라카미 하루키의 아류쯤으로 생각했었다.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접하고 나서부터 비로소 그런 선입견을 버리게 되었고 하루키와는 다른 층위의 작가라는 사실을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마치 익히 알고는 있었으나 별 관심이 없던 사람의 진면목을 어떤 계기로 인해 새롭게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

작품집 <녹턴>은 애초에 ‘음악과 황혼에 대한 다섯 가지 이야기’라는 부제가 주는 뉘앙스처럼 조금은 가볍게 읽어나갈 수 있는 이야기로 생각했다. 예컨대 대표작인 부커상 수상작 ‘남아 있는 나날’ 같은 작품에 비해서 그렇다. 그렇게 생각한 배경에 실패자라는 존재의 무게는 당연히 가벼울 것이라는 생각도 한 몫을 했다. 화자인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이 그저 그렇고 그런, 결코 성공했다고는 볼 수 없는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목과 부제인 녹턴 혹은 황혼이 주는 의미마냥 결코 맥 빠진 인생만을 그린 것만은 아니다. 작품 속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지난 생을 관조하듯 바라보는 능력의 소유자들이다. 그래서 작가가 직접 희망을 말하지는 않지만 읽는 우리는 결국 미세한 긍정의 울림과 몸부림을 찾아내게 된다. 그리고는 안도한다. 그 미세한 울림과 몸부림은 실패하여 나락으로 떨어졌던 지난 시간뿐만 아니라 지금 이 순간도, 앞으로의 시간들도 모두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깨닫게 해 주기 때문이다.

특히 재즈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작품마다 등장하는 재즈 스탠더드를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읽기에 아주 그만이다. 작품 속에서의 재즈는 엄청난 위상이다. 재즈가 중요한 서사적 매개체가 되고 있으니 재즈를 빼버리면 그야말로 별 특징이 없는 밋밋한 작품으로 기억될 수도 있다. 그래서 작품에 들어있는 재즈에 대해 조금 더 세밀하게 감상해 보는 건 작품 자체를 이해하는데 매우 큰 도움이 된다.

가령 첫 번째 작품 ‘크루너’를 읽는 중에 크루너(Crooner)란 단어의 의미처럼 저음으로 노래하는 남성 가수들, 예컨대 프랭크 시나트라, 자니 하트만, 냇 킹 콜 등을 들으면 작품에 좀 더 깊게 몰입할 수 있다.

‘비가 오나 해가 뜨나’에서 레이먼드와 에밀리가 춤추며 들었던 곡 April in Paris는 콕 찍어서 사라 본과 클리포드 브라운이 함께 연주한 곡이라고 나온다. 작품 속에서는 두 사람이 54년에 녹음한 연주로서 러닝 타임이 8분간 이어진다고 묘사되고 있지만 내가 가진 54년 앨범에서는 6분이 조금 넘는다. 가즈오 이시구로는 아마도 레이먼드와 에밀리가 미묘한 감정을 주고받으며 춤을 추기 위해서는 좀 더 긴 러닝 타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모양이이다. 어찌 되었든 연주 시간까지 정교하게 계산했을 작가의 섬세함에 감탄하게 된다.

이밖에 네 번째 이야기 ‘녹턴’에서 린디에게 들려주었던 주인공 화자의 색소폰 연주곡 The Nearness Of You는 과연 누구의 연주로 듣는 게 가장 좋을지 궁리하는 따위도 즐거운 일이다. 나는 마이클 브레커가 2007년 팻 메스니와 찰리 헤이든 같은 엄청난 사이드맨들과 함께 발표한 <Nearness Of You : The Ballad Book>에서의 연주도 좋아하고, 브랜포드 마살리스가 팔팔한 20대였던 1988년에 내놓은 앨범 <Trio Jeepy>의 두 번째 트랙 The Nearness Of You도 좋아한다. 특히 브랜포드 마살리스의 연주를 머릿속으로 그려가며 이 대목을 읽으면 주인공과 린디 사이에 흐르는 미묘한 공기의 흐름까지 느껴질 정도로 좋다. 이 작품에서만큼은 특별히 브랜포드 마살리스의 연주가 더 잘 어울린다는 뜻이다.

종종 소설 속에 묘사된 어떤 장면에 특별하게 잘 어울릴 것 같은 재즈를 고르는 작업을 하곤 하는데 개인적으로 무척 즐거운 취미가 되었다. 그런 면에서 <녹턴>은 힘들여 수고할 필요가 없어서 더욱 좋다. 작품 속 연주를 한 곡 한 곡 천천히 찾아 들으며 책장을 넘기면 마치 작품 속에 나 자신이 들어가 있는 듯한 몰입감을 느낄 수 있다. 문학과 재즈의 매력을 동시에 주는 흔치 않으면서도 멋진 작품이다.

경 성현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22) – 녹턴

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21) – Ojos Negros

언젠가 모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커피가 주는 이미지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이는 어쩌면 직업적으로 커피를 다루는 나 같은 사람뿐만 아니라 커피를 좋아하는 애호가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생각해 본 물음일 수도 있다.

나는 ‘커피란 쓰고 검은 어떤 것’이라고 답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커피 맛을 발현하는 최근 추세가 산미를 도드라지게 표현하는 방식이라서 ‘쓰다’라는 표현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커피는 원래 쓴 맛이 본연의 맛이다.

이에 비해 커피의 색이 검은색이라는 말에는 별 이의가 없다. 로스팅된 원두가 대체로 검정색에 가까운 짙은 색깔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또 하나 간과할 수 없는 건 커피 생산지의 확대 과정에서 제국주의 열강들에 의한 식민지 착취라는 검은 역사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 소개하는 앨범 <Ojos Negros> (Dino Saluzzi & Anja Lechner, ECM)는 커피와 매우 잘 어울리는 앨범이다. 살루치와 레흐너가 들려주는 우수에 젖은 탱고의 리듬이 결코 달콤하지만은 않거니와 타이틀인 Ojos Negros (검은 눈동자)가 주는 어두운 이미지 또한 한 몫을 한다.

2007년에 발매된 앨범 Ojos Negros는 아르헨티나의 반도네온 연주자 디노 살루치(Dino Saluzzi)와 독일의 첼리스트 안야 레흐너(Anja Lechner)의 듀오 앨범이다. 디노 살루치가 연주하는 반도네온이야말로 탱고와는 떼어놓을 수 없는 악기이므로 당연히 탱고를 중심으로 한 음악이라고 짐작할 수 있는 앨범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리듬의 탱고 음악이 아니다. 춤을 추기 위한 음악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감상을 위한 탱고라고나 할까? 탱고라는 영역을 뛰어넘어 클래식의 영역에까지도 도달하고 있는 아름다운 앨범이다.

디노 살루치는 피아졸라의 뒤를 잇는 반도네온 연주자다. 연주뿐만 아니라 작곡 능력도 뛰어난 그는 고국이자 탱고의 발상지인 아르헨티나를 벗어나 유럽으로 진출한 이후 더욱 인기를 얻었다.

그의 음악 인생에서 획기적인 터닝 포인트가 된 지점은 무엇보다도 레이블 ECM의 오너이자 프로듀서인 만프레드 아이어(Manfred Eicher)를 만난 일이다.

디노 살루치의 음악에 영감을 받은 만프레드 아이어의 제안으로 1982년 ECM 데뷔작이 발매되었고 이후부터 지금까지 ECM의 여러 연주자들과 함께 한 음반들을 세상에 내놓고 있으니 말이다. 앨범의 또 다른 주인공 첼리스트 안야 레흐너 또한 클래식계에서 활약을 하면서도 탱고에 남다른 애정을 쏟아온 연주자다. 이 둘의 만남은 안야 레흐너가 뮌헨의 어느 극장에서 살루치의 연주를 듣게 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이후 둘은 서로의 음악에 매력을 느끼고 공동으로 작업을 해 왔으며 앨범 Ojos Negros는 두 연주자의 만남이 만들어낸 최고의 결과물이다.

앨범의 타이틀 곡 Ojos Negros는 Black Eyes, 즉 스페인어로 ‘검은 눈동자’라는 뜻이다. 이 곡만이 유일하게 아르헨티나의 탱고 작곡가 비센테 그레코(Vincente Greco)의 곡이며 나머지는 모두 디노 살루치의 곡이다. 물론 타이틀곡이 이 앨범의 정체성을 가장 확실하게 표현해 주고 있기는 하나 다른 트랙들 역시 결코 흘려들어서는 안 되는 곡들이다. 전체적으로는 탱고를 근간으로 한 음악들이지만 그렇다고 탱고에만 머물러 있는 곡들은 아니다. 클래식과 탱고, 거기에 재즈의 즉흥성까지 가미된, 굳이 말하자면 레이블 ECM이 추구하는 음악에 가장 근접하는 앨범이라고나 할까?

첫 트랙 Tango a mi padre는 살루치가 아버지에게 바치는 헌정곡이다. 반도네온과 첼로의 인터플레이가 마치 유년의 살루치와 아버지가 대화하는 듯 애틋하다. 내가 알고 있는 반도네온과 첼로의 협연 중에 이만큼 유기적으로 교감을 나누는 연주도 찾기 힘들다. Esquina, Duetto, Serenata 역시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곡들이다. 들을 때마다 뭔가 설명하지 못 할 아련한 노스텔지어를 느낀다. 눈물이 나도록 따뜻하다.

타이틀곡인 5번 트랙 Ojos Negros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검은 눈동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앨범 전체에는 검은 색이 주는 어두운 이미지뿐만 아니라 진지함과 따뜻함, 듣는 이로 하여금 향수를 느끼게 해주는 분위기가 관통하고 있다. 탱고가 과거의 리듬을 간직한 음악이이 지나간 시간을 조용히 발굴하여 현실에서 충분히 재현하기 때문이다. 살루치와 레흐너의 반도네온과 첼로가 이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해 내고 있음은 물론이다. 장르를 망라하고 내가 늘 추천하는 음반이다.

크리스마스 시즌이다. 무엇이든 더욱 아름답게 느껴지는 계절이다. 당연히 음악이든 커피든 밝고 유쾌한 것들이 어울리겠지만 이럴 때 오히려 반도네온과 첼로가 만들어 내는, 우수가 깊게 담긴 탱고 음악을 들어보는 것은 괜찮을 것이다. 여기에 깊고 진하게 내려진 커피 한 잔을 더해 마셔보는 것은 금상첨화다. 연말을 즐기는, 조금은 특별한 방법이 될 것이다.

경 성현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21) – Ojos Negros

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20) – ‘Gogol’

지금은 문을 닫았지만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 우측 담장을 끼고 들어가면 골목 초입에 ‘카페 코’라는 아담한 카페가 하나 있었다. 사연은 모르겠으나 문을 닫은 지 벌써 몇 년은 된 것 같다. 향미가 좋은 스페셜티 원두를 융 드립(Flannel Drip)으로 맛볼 수 있었던 흔치 않은 카페였다. 그리 크지 않은 장소였음에도 프라이버시를 지킬 수 있도록 세심하게 공간을 배치했고 발을 디딜 때마다 자갈 소리가 정겨웠던 야외 테라스를 겸한 조그만 마당을 가지고 있었다. 운이 좋은 날이면 지붕에서 노니는 고양이를 마당 테이블에 앉아 볼 수 있었으니 한적할 때 여유를 갖기에 안성맞춤인 아지트였다.

그러나 이 카페의 상징은 뭐니 뭐니 해도 골목에 면한 카페 대문 위에 떡하니 붙어 있는 커다란 ‘코’ 조형물이다. 말 그대로 사람의 ‘코’ 모양을 한 형상이다. 두 개의 커다란 콧구멍은 말할 것도 없고 마치 술 취한 이의 딸기코를 연상시키듯 커다란 숨구멍들까지 세밀히 표현해 놓았다. 이곳을 지나치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은 미소를 지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담한 카페의 출입문 위에 커다란 코를 붙여 놓은 이유에 대해서는 아는 이가 없었다. 심지어 카페의 바리스타들조차 왜 하필 사람의 코를 붙여놓았냐는 질문에 명쾌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이곳을 드나드는 지인들 대부분은 커피를 파는 카페이니 커피 향을 맡는 코를 붙여놓지 않았겠느냐는 막연한 추측을 했지만 어쩐지 너무 뻔한 상상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난 ‘카페 코’라는 이름의 연원을 다른 곳으로부터 찾았다. 19세기 러시아의 위대한 작가 ‘니콜라이 바실리예비치 고골(Nikolai Vasil’evich Gogol)’이 쓴 ‘코’라는 작품에서다. 물론 확인된 바 없는 나 혼자만의 상상이긴 하다.

1809년에 태어나 1852년까지 살았던 고골은 부패하고 부조리한 당시의 세속적인 욕망으로부터 헤어 나오지 못하는 속물근성의 인간상을 주로 그려냈다. 그 중에서도 소개하는 작품 <코>는 너무나도 단순하면서도 황당한 줄거리의 환상 소설이다. 인간 얼굴에 붙어 있던 코가 어느 날 이유도 없이 떨어져 나와 하나의 인격체로 변신해 거리를 배외하며 사람 행세를 하다가 결국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이야기다. 순전히 고골의 상상만으로 지어진, 서사의 인과성이 없는 구조다. 마치 1915년에 발표된 카프카의 초현실적인 작품 <변신>을 연상케 한다.

어느 날 이발사 이반 야꼬블레비치는 아침 식사용 빵 속에서 큼지막한 사람의 코를 발견한다. 이발사는 난데없이 나타난 코를 처리하기 위해 아무도 없는 다리 위에서 몰래 버리지만 곧 경찰관에게 발각될 위기에 빠진다.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에서 갑자기 단절되고 뜬금없이 코의 진짜 주인 8급 관리 코발료프 소령의 침실로 옮겨 간다. 코발료프는 여느 때처럼 일어나 거울을 보다가 코가 사라진 자신의 얼굴을 보고는 화들짝 놀란다. 그에게 코가 없어졌다는 건 보통 문제가 아니다. 상급 관리로 진급하기 위해서는 사교계에서 활동을 해야 하는데 코가 없어졌다는 건 진급은 이제 물 건너 간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코발료프는 길을 나서고 급기야 자신의 직급보다 높은 5급 관리 행세를 하며 거리를 돌아다니는 코를 발견하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코를 되찾게 되지만 코는 쉽사리 제자리에 붙지 않는다. 그러나 어느 날 아침 원래의 자리에 붙어 있는 코를 발견하고는 평화를 되찾게 된다.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황당한 이야기다.

고골의 작품들을 읽다 보면 늘 생각나는 연주자가 있는데 캐나다 출신의 피아니스트 ‘칠리 곤잘레스(Chilly Gonzales)’다. 그가 연주한 곡 중에 특별히 ‘Gogol’이라는 곡이 있어서 더욱 그렇다.

칠리 곤잘레스는 특이한 이력의 아티스트다. 딱히 재즈에만 국한하지 않는 피아니스트이자 프로듀서이며 영화의 각본, 음악은 물론 주연까지 맡아 열연한다. 그런가 하면 일렉트릭 뮤직에 랩까지 구사하는 토탈 엔터테이너다. 범상치 않는 그의 행보는 마치 고골 소설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면면만큼이나 평범하지 않다.

Rollin & Scratchin (Daft Punk)

I Am Europe

2010년쯤의 아이패드 광고음악인 Never Stop으로 대중성까지 확보했지만 역시나 그의 음악의 예술성은 피아노 솔로 앨범에 있다. 그중 내가 즐겨 듣는 건 첫 번째 앨범인 Gonzales Solo piano다.

모든 트랙이 다 좋으나 베스트 트랙은 단연 첫 번째 트랙 Gogol이다. 솔직히 곡 제목을 Gogol이라 붙인 이유를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들으면 들을수록 작가 고골의 이름에서 차용했다는 확신이 든다. 마치 소설 <코>에서 자신보다 직급이 높은 5급 관리가 되어 잔뜩 허세를 부리는 코발료프의 코이거나 <외투>에서 소중한 외투를 잃고 유령이 되어버린 아카키의 테마곡이라고나 할까? 아니 어쩌면 <광인일기>에서 서서히 미쳐가는 포프리시친의 주제곡일 수도 있겠다. 연주가 몽상적이어서 환상의 세계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잃고 방황하는 소설 속 주인공들의 우울함을 제대로 투영해 놓았다는 느낌이 든다. 그만큼 아스트랄 하다. 나도 모르게 “아. 딱 고골이네” 하면서 무릎을 치게 된다.

생각해 보면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는 시절이다. 현실과 환상은 얼마나 다를까? 아니 정말 다르기만 할까? 그냥 현실이 환상이고 환상이 곧 현실일 것만 같다. 그래서일까. 현재를 사는 우리와 고골의 환상소설 속 주인공들의 분투는 둘 다 눈물겨워서 별반 다르게 느껴지지 않는다.

어느새 12월이니 이제부터는 한겨울이다. 지금부터는 서로의 등을 데워줘야 한다. 그래야만 한다. 우린 비현실적이면서도 엄혹한 이 시대를 함께 살아내고 있는 동지들이 아닌가.

경 성현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20) – ‘Gogol’

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19) – Steal Away

11월은 일 년 중 가장 특별한 일이 없을 것 같은 달이다. 가을 분위기는 이미 퇴색되어 버렸고 그렇다고 떠들썩한 연말 분위기를 내는 건 너무 이르다 싶다.

그러나 지난 일 년을 돌아보며 회상하고 성찰하기엔 오히려 북적북적한 12월보다는 적기라는 생각도 든다. 잡다한 행사가거의 없어 번잡하지도 않을 테니 조용히 자기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시기다. 그런 11월도 어느덧 다 지나가고 있다. 그래서 이 시기엔 화려한 테크닉이나 스윙감이 풍성한 음반은 왠지 어울릴 것 같지 않아 다소 심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찰리 헤이든(Charlie Haden)과 행크 존스(Hank Jones)의 듀오 음반 ‘Steal Away'(Verve)를 소개한다.

앨범 주인공 중 하나인 찰리 헤이든은 1957년 오넷 콜맨의 밴드 일원으로 참여하여 프리재즈에 천착하였지만 10년 뒤(1967년) 키스 자렛과의 활동을 기점으로 서정적인 연주에도 일련의 활동성을 보여준 재즈 베이스의 거장이다. 특히 많은 연주인들과 녹음한 듀오 명반이 많기로 유명하다. 행크 존스와의 Steal Away를 비롯하여, 짐 홀과 함께 한 ‘Charlie Haden & Jim Hall’, 팻 메스니와의 ‘Missouri Sky’, 에그베르토 기스몬티와의 ‘In Montreal’, 키스 자렛과 함께 내놓은 ‘Jasmine’과 ‘Last Dance’ 등이다. 듀오 앨범이 많다는 건 기본적으로 상대방을 배려하는 인터플레이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앨범 Steal Away의 멤버로 참여한 행크 존스 역시 서정적이고도 부드러운 타건으로 대변되는, 본인만의 개성을 나타내기보다는 연주자 간의 조화를 중시하는 피아니스트로 알려져 있다. 엘라 피츠제럴드의 반주자로 활동했던 그의 연주 이력에서도 알 수 있다.

Steal Away는 흑인 영가와 찬송가, 포크송들이 가득하다. 수록곡들 대부분이 재즈의 원류가 되는 곡들이지만 앨범 전체에는 재즈 특유의 스윙감 보다는 차분히 가라앉은 분위기가 더 강하다. 게다가 두 연주자 간 인터플레이는 비워진 공간 같은 여백이 가득하다. 이런 경우 다소 심심하거나 허전하게 느껴질 법도 하나 들으면 들을수록 음과 리듬의 밀도가 무르거나 싱겁지 않고 담백하다. 결코 도드라지는 법 없이 서로를 존중하는 두 사람이기에 가능한 일이리라. 마치 두 사람이 따듯한 대화를 주고받는 듯하다. 한마디로 ‘감사와 배려가 충만한 대화’라고 표현할 만하다.

 

CHARLIE HADEN – STEAL AWAY (FULL ALBUM) 

한편 오래된 옛 교회의 모습이 담긴 재킷 사진과 수록된 곡들의 면면으로 종교적 필터를 끼우고 평할 수도 있으나 오히려 특정할 수 없는 어떤 보편적인 노스탤지어가 느껴진다. 연주는 단 두 사람에 의해 이루어졌지만 혼자서 들어도 좋고 둘이서 들어도 좋고 여럿이서 같이 교감을 나누며 들으면 더욱 좋을 음반이다.

’11’이라는 숫자를 노트에 적고 찬찬히 보고 있으니 숫자 ‘1’ 두 개가 사이좋게 나란히 서 있다. 마치 Steal Away의 앨범 재킷 사진 속 교회 앞에서 찰리 헤이든과 행크 존스 두 연주자가 웃으며 서있는 듯하다. 생각해 보면 이 세상에 나 혼자가 아닌 것만 해도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그저 감사한 마음으로 꽉 채우기만 해도 좋을 일이다.

경 성현경성현의 재즈 브루잉 (19) – Steal Aw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