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 김

김수박의 손그림 에세이 (20) “가족”

나도 자유롭고 싶었다.
그래서 스무 살이 넘어서는
발길 닿는 데까지 달아나 보았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시늉도 실컷 했다.
세상의 밑바닥이 궁금하다며, 궁금해야 한다며
멋 부리며 어설프게 굴러다니기도 해 봤지만…

돌이켜보니 소리를 지르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어도, 도무지 자유롭질 않아서
멈춰 서서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자유.
본래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이 더 간절한 법’인가 하다가,
가슴 아래에
‘작지만 무거운’ 돌멩이 같은 것 하나가 콕 박혀있어
내가 아무리 달리고, 날고, 굴러도
나를 가볍게 하지 않았구나 싶은 것이었다.
가족이 언제나 돌멩이처럼 그곳에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자유롭고 싶다.
그래서 내 가슴 아래에서 신호를 보내면
가족을 돌아보기로 했다.
그러면 좀 더 자유로워지는것 같았다.

수박 김김수박의 손그림 에세이 (20) “가족”

김수박의 손그림 에세이 (19) “빈 땅에 기쁨”

자취하던 서울의 한 동네에 재개발이 결정되자
철거가 시작되었다.

집들이 하나씩 없어지고 그곳은 빈 땅이 되었다.
할머니들은 빈 땅을 그냥 놔두지 않았다.
상추와 깻잎, 파와 오이를 심더니 그것들이 자라자 나누어 먹었다.
젊은 나는 라면을 끓이거나 친구들과 삼겹살을 구워 먹을 때
파나 상추를 조금 훔쳐 먹은 게 사실이다. ㅡㅡ;;

어느날 내 집을 노크한 옆집 할머니께서 배추 두 포기를 주고 가셨다.
밭일이라곤 할 줄 몰랐기에 어찌하나 고민하다가
어머니가 보내주신 반찬들을 나누어서 갖다드렸다.
아직도 ‘오고 가는 기쁨’이 어색하지만,
그것이 기쁨임에는 틀림없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빈 땅들이
살아있는 초록으로 메워지던 모습은
하나의 설렘이었다.

얼마 후엔 나도 동네를 떠났고,
나중에 그곳은 당연히 네모난 아파트로 메워졌다.

수박 김김수박의 손그림 에세이 (19) “빈 땅에 기쁨”

김수박의 손그림 에세이 (18) “좋은사람”

언젠가 그는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라고 물었다.
나는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을 찾아 나섰다.
그는 아버지와 나라는 노래에서 진솔한 마음을 읊조렸고,
나로 하여금 무뚝뚝해서 미운 아버지를 끌어안게 했다.
나는 일상으로의 초대라는 노래가 좋았는데,
‘해가 저물면 둘이 나란히 지친 몸을 서로에 기댈’ 아내를 나는 만났다.
이란 호칭이 잘 어울리는 사람.
해철이 형.

그는 멈추지 않고 사람들을 더 새롭게 했고,
가만히 있지 않음으로써 사람들을 더 자유롭게 했다.
왜 좋은 사람이 먼저 가느냐는 물음이 자꾸 맴돈다.

그의 노래는 오래 남아 사람들을 더 새롭고 자유롭게 만든다.
무엇보다 그는 좋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수박 김김수박의 손그림 에세이 (18) “좋은사람”

김수박의 손그림 에세이 (17) “송년회”

“모였으니, 사진 한 장 찍어야지. 각자 잔을 들고..”
매번 카메라를 들이대면 일관되게 저 포즈들이다.

그래도 오랜만의 얼굴들이라 똑같은 자세도 새롭다.
누구에게 술 한 잔 권하는 걸까?
지난 한 해를 잘 보낸 나에게 한 잔.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할 나에게 한 잔.
돌아오지 못 할 세월에게도 한 잔.
그래도 다시 만나자며 한 잔.
건강하자고, 행복하자고 한 잔!
오랫동안 멀리 떠난다는 친구도 있다.
그 친구를 위해서 송년회는 잠시 송별회.
그래도 꼭 다시 보자며 한 잔 더.

노래방에서는 ‘고장 난 시계’라는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
‘그럼 내 시계는 망가졌나봐. 자꾸 뒤로만… 거꾸로 흘러만 가네~’

그러나 부르지 못했다. 울까봐…

 

수박 김김수박의 손그림 에세이 (17) “송년회”

김수박의 손그림 에세이 (16) “국밥집”

다른 도시에 가게 되면
혼자서라도 아무런 국밥집에 들러본다.

우리가 둘이거나 여럿이라면
서로의 말을 듣겠지만,
혼자라면 모르는 옆 사람들의 말을 듣게 된다.
다른 도시의 사투리도 실컷 듣는다.
다른 도시의 생활도 엿듣는다.
그렇구나 싶어서 나도 소주 몇 잔 기울이기도 한다.

서로 말을 주고 받기도 한다.
“어디서 왔소?”
“어디서 왔심더.”
우리는 서로 많이 많이 들어야 하는구나 싶다.

혼자라서 느낀 걸까?
말하기 바빠서 듣질 못했구나.

수박 김김수박의 손그림 에세이 (16) “국밥집”

김수박의 손그림 에세이 (15) “내 자리”

저곳은
누구의 자리인가?
청소, 육아…
다른 것은 몰라도
저곳은 내 자리이겠다고 다짐했다.

설겆이는 나의 것!
수세미,
주방세제의 교체도,
음식 쓰레기 처리도 내 몫이리라.

요즘 좀 바쁘다고
나라가 이 꼴이라며
내 자리를 잊고 살았네.
여보, 미안해.
그러나 오늘부터라도
저곳은 내 자리.

수박 김김수박의 손그림 에세이 (15) “내 자리”

김수박의 손그림 에세이 (14) “문방구”

어릴적에, 나는 커서 냉차 파는 아저씨가 되고 싶었고
(냉차를 실컷 마실 수 있을 것 같아서),

엿장수도 되고 싶었다. (같은 이유로).
학교를 다니면서 꿈을 바꿨다.
연필도 공책도 있지만, 신기한 장난감과
(어른들은 싫어하고) 아이들만 좋아하는
‘얄궂은’ 불샹식품이 가득한 보물창고 같은
문방구 주인이 되고 싶었다.

학교를 마치면 와글와글 모여드는
아이들을 보면서 흐믓한 미소를 짓고 싶었다.
(‘뽑기’ 상품을 숨겨놓고서).

어른이 되고 보니 문방구가 사라진다.

수박 김김수박의 손그림 에세이 (14) “문방구”

김수박의 손그림 에세이 (13) “밤 불빛”

이런들 저런들, 서울의 불빛은 아름답다.
특히, 다리를 가로질러 강을 건너는 지하철에서는…
차창에 머리를 기대면 흘러간 사람들이 생각나기도 하고,
이 매력적인 서울을 결코 떠날 수 없을 것만 같다.

한 동안 서울을 미워하기도 했다.
너무 많은 욕망들을 따라가기 숨이 차서.
나중에는, 미워하지만 사랑한다는 걸 깨달았다.
미워도 사랑할 수 있다.
서울은.

수박 김김수박의 손그림 에세이 (13) “밤 불빛”

김수박의 손그림 에세이 (12) “창문”

멋진 경치다.
저 수많은 창문 중의 단 하나도
내 것이 될 수 없다고 결론 내린지 오래다.
당연한 일일까?
뭐가 모자라서 저 수많은 창문 중 하나를
가질 자격을 처음부터 얻지 못했나?

‘자수성가(自手成家)’란 말을 믿고 자랐다.
만약 내가 저 창문 두 칸을 꿈꾼 적이 있다면,
자수성가란 도구로 가능했을까?
이런 방식이라면 자수성가 미신이다.
믿을 게 못된다.
우리나라는 그렇게 되었다.

수박 김김수박의 손그림 에세이 (12) “창문”

김수박의 손그림 에세이 (11) “정의”

분명히 초등학생 때부터 배웠다.
정의.
선생님께서 매일같이 말씀하시진 않았어도,
등하굣길에서 매일 보았다.
정의를 말하면 바보취급 받는 가운데에도,
커다란 돌에 ‘정의‘라는 단어가 새겨져 있었다.

지금도 많은 학교에 저 단어가 새겨져 있다.
선생님께서는 어른이 되면 필요 없는 것이라고
말씀해 주시지 않았다.
가끔 어른 흉내를 먼저 낼 줄 아는 녀석이 비웃기는 했어도,
마음속은 알고 있었다.
옳은 것정의란 것.
그러므로 저것을 비웃는 자를 비웃겠다.

“초등학교 때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았군!”

수박 김김수박의 손그림 에세이 (11) “정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