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원영

coreacartoonist

이코노텍스트에 무지 관심이 많습니다.

인디경향을 주도하는 생활캐치만화 – 살북

(살북) 홍인식 작가 등 만화가 그룹에서 만드는 만화잡지, <살북>은 2007년 창간되어 2009년까지 명맥을 유지했었던 만화잡지다. 어른들 위주의 만화 마니아층을 위한 작품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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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원영인디경향을 주도하는 생활캐치만화 – 살북

카페 그램

…이전엔 길을 걷다 분위기 좋은 카페를 발견하면, 특징이 뭔지, 손님이 많은지, 어떤 메뉴가 있는지
공부하듯 눈여겨 바라보았다. 이젠 분석하지 않는다. 스윽 지나치며 기분 좋게 커피향을 맡을 수
있게 되었다. 카페는 역시, 주인으로 있을 때보다 손님으로 찾아갈 때가 더 좋은 것 같다. 그런데
종종 커피 내리는 꿈을 꾸는 걸 보면, 언젠가 다시 작은 카페를 또 열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땐
좀더 소박하고 유연하고 따뜻한 곳이 되었으면 좋겠다. 손님 같은 주인이 되고 싶다. -‘작가의 말’ 중에서

이 원영카페 그램

화끈

이 원영화끈

예술의 본질은 다름에서 닮음을 찾아내는 과정이다.

본질(本質)은 그것이 그것으로서 있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을 말한다.

금을 예로 들어보면 이런 것이다. 금으로 반지도 만들고 시계도, 목걸이도 만든다. 반지와 시계, 목걸이 등이 되기 위해 금은 녹여져 아예 그 형태가 변했지만 금은 여전히 금이다.

여기에서 금은 “본질”이고 반지와 시계는 “드러난 가치”로 분류해볼 수 있다.


프랑스의 여류 작가이자 철학자 시몬느 드 보봐르는 이 생각을 기본으로, “사람은 여자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자가 된다”라는 말로써 존재의 본질을 설명하기도 한다.

비즈니스에서도 바로 이 본질을 파악하고 다루는 역량은 기업의 운명을 결정짓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한국에서는 시들하지만 O2O(online to offline) 서비스의 대표적인 사례로써 손꼽히는 우버는 기존 택시 서비스로부터 불편을 겪어본 승객들의 수요를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기다려야 하고 목적지를 설명해야 하고 요금까지 실랑이해야 하는 문제들을 일순간에 해결해버렸는데, 2016년 현재 우버의 기업가치는 GM, 포드의 자산 규모와 맞먹는 625억 달러(한화로 약 80조)로 평가받고 있다.

사람들이 도시생활에서 겪게 되는 일상적인 문제의 본질을 들여다보고 해결해내는 것.
우버의 O2O 케이스는 문제의 본질에 대한 분석과 해결 과정에 대한 좋은 사례로 참조해볼 수 있겠다.

그렇다면 예술에 있어서 본질은 어떤 관점에서 얘기될 수 있을까?
예술의 본질은 다름에서 닮음을 찾아내는 과정이다. 당연히 그 본질을 꿰뚫고 다룰 줄 아는 사람들을 우리는 예술가라 부른다.

알파고와 같은 인공지능이 감히 넘볼 수 없는 영역이 예술가의 창의성이라고 한다. 예술가는 “꽃이 피면 벙어리도 운다는데”라고 표현할 수 있지만 인공지능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꽃’이 피어나는 현상과 ‘벙어리’의 신체적 제약 사항이 가지는 본질을 파악하여 은유하고 치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창의성이란 속성이 다른 여러 사물의 본질을 파악한 뒤 본질 간 경계를 허물어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능력이기 때문에 기계 따위가 범접할 수 있는 영역이 애초에 아니다.

그런데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작금의 세상은 이런류의 창의성이 천대받고 있다.

2016년 발간된 ‘예술인 맞춤형 사회복지사업 개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전업 예술인의 68.7%가 예술 관련 활동으로 벌어들이는 월수입이 100만 원 미만이며, 이 가운데 43.1%는 월수입이 50만 원 미만이라고 한다.

이런식의 가치 전도된 통계만 보더라도 우리가 사는 사회는 분명 어디에선가부터 문제가 생겼고 조율하지 못한 채 성장(?)해왔다.

다시 한번 본질의 의미를 생각해보자. “그것이 그것으로서 있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되는 것”

설 명절을 앞두고 만화 관련 협회들의 총회와 신년회 소식이 들려온다.
바라건대,“만화가 만화로 있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 무엇인지 본질적인 성찰과 토론이 함께할 수 있는 그런 자리들이 되셨으면 좋겠다.

더불어 부천시에도 한 가지 묻고 싶다. 예술 정책에 있어서 “정책 용어”는 사업의 본질을 담아내는 그릇인데 근래에 “만화 웹툰 중심도시”라는 이상한 신조어를 내보내고 있다.

이게 무슨말인지 궁금하다.
만화라는 본질에 해당하는 뿌리와 웹툰이라는 드러난 가치에 해당하는 열매를 동시에 풍성하게 키워보겠다는 정책적 의지를 엿볼수 있긴하다.
그런데,웹툰이 만화의 유일한 열매는 아니지 않는가?
….

본질을 추구하는 정책은 가치에 집중하고, 현상을 따라가는 정책은 좀 더 대중적인 반응과 트렌드에 목말라 한다.
그런데,현상을 쫓더라도 진정성있고 창의적이라면, 어느정도 이해가 되지만 그저 개념없이 숟가락 얹히는 태도라면 좀 볼썽사납다.

이 원영예술의 본질은 다름에서 닮음을 찾아내는 과정이다.

기회의 신 – 카이로스(Kairos)

나의 앞머리가 무성한 이유는 사람들이 나를 보았을때 쉽게 붙잡을 수 있게 하기 위함 이고, 뒷머리가 대머리인 이유는 내가 지나가고 나면 다시는 나를 붙잡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며, 발에 날개가 달린 이유는 그들 앞에서 최대한 빨리 사라지기 위해서이다. 나의 이름은…..기회이다.
-이탈리아 토리노 박물관에 있는 기회의 신 ‘카이로스(Kairos)’ 의 석상에 적힌 글귀이다.

기회에 대한 비유치고는 꽤나 시크하고 낭만적인 표현인듯하다.
근데 늘 운명과 현실의 경계를 주유(周遊)하는 저 기회라는 신을 우리는 살아가면서 얼마나 만나고 있는걸까?

특히 생애 처음으로 자신이 만든 세계와 이야기속으로 독자들을 끌어들여야 하는 신출 내기 창작자들에게는 이미 공고하게 시스템화되어있는 퍼블리싱 플랫폼과 자본들로 부터 간택을 받기위해 어떤 기회들의 머리채를 쥐어잡아야 하는걸까?

여기 기회의 신 ‘카이로스(Kairos)’를 만나는 대신 자신이 스스로 ‘카이로스(Kairos)’가 되어버린 작가들을 소개해볼까 한다.

저술 경험이 전혀 없었던 노년의 여성 클레어 디킨스(Clare Dickens)는 워싱턴의 지역에 위치한 독립 서점 “정치와 산문 (Politics and Prose)에서 에스프레소 북머신 을 활용하여 즉석에서 자비로 책을 출간했다.

그녀의 아들 타이더스(Titus)는 양극성장애(조울증)를 앓다가 결국 25살의 나이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는데 그녀의 출간 목적은 바로 상업적인 이익이 아니라 자신의 아들과 같은 병으로 고생하는 다른 사람들을 돕고자 함이었다.

그녀의 회고록 위험한 재능(A Dangerous Gift)은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권당 $10.38 비용이 들었고, 책은 권당 16불에 판매되었다. 한 달 만에 수백권이 팔려나갔고, 페이퍼백으로 5,000권 이상이 팔렸다. 이것은 대형출판사의 저자들보다 좋은 성적이었다.

하버드대 출신의 신경과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었던 리사 제노바(Lisa Genova)는 알츠하이머에 걸린 자기 할머니의 사연을 토대로 소설을 집필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소설 원고를 들고 다수의 출판사를 찾아갔지만 전부 거절당했다.

제노바는 450달러를 들여 과감히 자비출판을 단행했는데 그렇게 나온 책이 바로 (스틸 앨리스)다.
입소문으로 시작된 작품의 인기는 보스턴 글로브지 비벌리 베컴의 서평을 필두로 평단의 호평을 이끌어냈고 2015년 배우 줄리안 무어에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안겨주는 행운을 이어갔다.

독일 작가 넬레 노이하우스는 남편의 소시지 공장에서 20년 가까이 일한 것 외에는 책을 출간한 경력이 없었다.

그녀의 첫작품 “타우누스”는 출판사에서 관심을 보이지 않아 자비로 출판하였는데, 이후 2009년 ‘타우누스’ 시리즈 신간 (너무 친한 친구들) 은 독일에서 성탄 시즌 <해리 포터> 신간을 누르며 대박을 터뜨렸다.

“미국과 유럽을 사로잡은 마약 작가” 로 불리는 콜린 후버Slammed(국내 출간 명: 내가 너의 시를 노래할게)은 아마존에서 자비로 출판된 작품으로는 최초로 뉴욕타임스 3주 연속 1위를 차지 했다.

그 후 발간하는 책마다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랭크되고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유럽 권에 수출되며 미국에서 유럽까지 지지를 얻고 있다.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일하는 앤디 위어가 쓴 첫 장편 (마션)은 그의 블로그에 친구들을 상대로 소소하게 연재한 작품이었으며, 2012년 전자책을 자비로 낸 데 이어 2014년 크라운출판사와 계약해 종이책으로 출간했다.

화성 탐사 승무원들의 실패 사례를 작품 소재로 활용한 그의 작품은 이후 리들리 스콧 감독,맷데이먼 주연으로 영화화되었고 책은 현재 독일·중국·일본·스페인 등 29개국에서 번역 출간되었다.

영국의 폴라 호킨스는 기자로 일하다가 불경기로 실직한 뒤 필명으로 로맨스를 썼으나 잘 풀리지 않았고, 스릴러로 방향을 틀어 첫 책으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케이스다.

최근에 영화로도 나온 (걸 온 더 트레인)이 바로 그녀의 작품이다.

클레어 디킨스(Clare Dickens),리사 제노바(Lisa Genova),넬레 노이하우스,콜린 후버,앤디 위어,폴라 호킨스외에도 자비출판을 통해 인기 작가의 반열에 오르는 성공 사례는 당분간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근래 네이버에서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자사 플랫폼에서 활동중인 예술가들의 규모는 아래와 같다고 한다.

웹툰 연재 작가 400명
웹소설 작가 150명
일러스트레이터 10,000명
예비 뮤지션 3,300명

이외에도 다양한 군소 플랫폼에서 치열하게 살고 있는 창작자들을 포함하여 한말씀 드리고 싶다.
“기회의 신 ‘카이로스 (Kairos)’ 는 이미 당신안에 웅크리고 있습니다. 파이팅!!”

이 원영기회의 신 – 카이로스(Kairos)

허공도 캔버스다. 카투니스트 사이로와 부르노 카탈라노

카투니스트 “사이로”는 그의 작품집 <사이로, 카툰 꿈꾸는 선>에서 여백의 미학에 대한 자신의 예술적 견해를 이렇게 밝혔다.

(사이로 작가,1965.8.아리랑 신인 만화상으로 데뷔)

“여백이란, 표현을 하고 어쩔 수 없이 남는 빈 곳이 아니라, 공간을 먼저 생각하고 그 공간들이 화면을 지배할 때 우리는 그 공간을 여백이라 한다” -사이로,2010년
비우는 것이 곧 채우는 과정이라는 그만의 패러독스는 당연히 그의 작품 활동 전반을 지배하는 세계관이기도 한다.


(사이로,작품명:드골)

(사이로,작품명:스케이드보드)

(사이로,작품명:위기)

(사이로,작품명:무제)

(사이로,작품명:고추잠자리의 전설)

(사이로,작품명:하늘카누)

(사이로,작품명:정유년아침)

그리고 여기 30넘은 나이에 독학으로 조각 공부를 시작하여 지금은 대가의 반열에 오른 프랑스 조각가 부르노 카탈라노의 여백을 함께 즐겨보자.


(부르노 카탈라노,조각,가방을 든 여행자 연작중)

(부르노 카탈라노,조각,가방을 든 여행자 연작중)

(부르노 카탈라노,조각,가방을 든 여행자 연작중)

(부르노 카탈라노,조각,가방을 든 여행자 연작중)

(부르노 카탈라노,조각,가방을 든 여행자 연작중)

(부르노 카탈라노,조각,가방을 든 여행자 연작중)

자연적 공간을 대상으로 하는 비움과 채움의 과정이 카투니스트 사이로의 예술적 접근이라면 부르노 카탈라노는 관념적 공간을 그 대상으로 비움과채움을 시도하고 있는듯하다.
그리고 좀 더 적극적으로 도시와 사람, 일상이 작품과 자연스럽게 결합될 수 있는 영리한 장치로써 조각 예술을 활용하고 있다.

“서정이란, 작가가 어떤 대상에 대해서 아주 깊은 명상으로 객관화시킨 감정이다”
-카투니스트 사이로,2010년

원로 작가의 말씀처럼 서양이든 동양이든 여백이 “서정”이라는 하나의 미학적 가치를 품어내기까지는 결코 녹록치 않은 작가적 고뇌와 명상이 필요했을것이다….미루어 생각해보며 이땅의 모든 예술가들에게 따뜻한 응원을 보내고 싶다.감사합니다.

작품 출처
부르노 카탈라노: http://brunocatalano.com/
사이로 : 사단법인 한국카툰협회

이 원영허공도 캔버스다. 카투니스트 사이로와 부르노 카탈라노

균와아집도(筠窩雅集圖) – 조선시대 최고의 콜라보레이션

균와아집도(筠窩雅集圖) – 조선시대 최고의 콜라보레이션

작품의 우측에 쓰여진 발문의 내용은 이러하다.
“책상에 기대어 거문고를 타는 사람은 표암(강세황). 곁에 앉은 아이는 김덕형. 담뱃대를 물고 곁에 앉은 사람은 현재(심사정). 치건을 쓰고 바둑을 두는 사람은 호생관(최북)… 퉁소를 부는 사람은 홍도(김홍도)이다.”

그렇다.한 사람의 작품이 아니다.

오늘날의 회화비평에 해당하는 조선시대 화평(畵評)의 영역을 개척한 표암 강세황,심사정, 최북, 김홍도, 김덕형 등 무려 다섯명의 대가들이 함께 만든 작품이다.

강세황은 그림의 위치를 배열했고, 최북은 색을 입혔고 김홍도는 인물을, 심사정은 소나무와 돌을 그렸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발문은 조선후기 학자이자 화가였던 허필이 썼다.

어느 한적한 소나무 그늘 아래에서 출신 성분의 차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어떤 마음으로 이런 콜라보레이션을 함께 했을까?

말 그대로 협업은 협업이며 예술은 예술이다.
노동이 아니기에..최소한 작품안에서는 평등했고 서로를 지극히 존중했다.
명작은 그래서 명작으로… 오래 살아남을 이야기를 품고 우리곁에 남는다.

그리고…균와아집도(筠窩雅集圖)의 “균와(筠窩)”는 지금의 안산으로 추정되는 지역이다.

이 원영균와아집도(筠窩雅集圖) – 조선시대 최고의 콜라보레이션

블랙 리스트와 제임스 달턴 트럼보(James Dalton Trumbo)

1993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하일랜드 극장(지금의 돌비 극장)에서는 매우 특별한 시상식이 열렸다.

바로 40년 전 이뤄졌었던 제26회 아카데미 각본상에 대한 시상식이 다시 진행되었고 1954년 당시 수상자였었던 이안 맥켈란 헌터에서 각본의 진짜 작가인 달튼 트롬보에게 재수상하는 행사였다.

작품은 우리도 익히 알고 있는 오드리헵번,그레고리펙 주연의 “로마의 휴일” 이었고 달튼 트롬보는 이미 1976년에 사망하였기 때문에 그의 아내 클레오 트롬보가 대리로 수상했다.

흔히 매카시즘 시대라 불리는 1950년부터 1954년의 기간 동안 미국을 휩쓴 공산주의자 색출 열풍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블랙리스트에 오르거나 직업을 잃었다.

특히 영화 산업에서는 300여 명이 넘는 배우 및 작가, 감독들이 비공식적인 할리우드 블랙리스트에 오르며 해고당하였다.

제임스 달턴 트럼보(James Dalton Trumbo)는 바로 이 시기 반미활동 조사 위원회 (HUAC) 주도의 적색 공포에 맞서 끝까지 저항한 인물 중에 한 명이다.

그와 그의 동료들은 결국 의회 모독죄로 기소되었고 1년간(1950년) 실형을 선고받게 되며 영화계에서 퇴출되는데 그들이 이른바 ‘할리우드 10인'(Hollywood Ten)이다.

알마 베시, 새뮤얼 오니츠, 애드리언 스콧, 달턴 트롬보, 레스터 콜, 링 라드너 주니어, 존 하워드 로슨, 앨버트 몰츠 그리고 감독 겸 작가였던 허버트 비어먼과 감독인 에드워드 드미트릭.

그런데. 세상을 따뜻하게 만드는 진짜 스토리텔링은 달튼 트롬보가 감옥에서 출소한 바로 그해부터 시작된다.

트롬보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삼류 영화사인 “킹브라더스” 의 시나리오를 차명(借名)으로 작업하게 되는데 이때 사용한 이름이 에드먼드 H. 노스, 이안 맥켈란 헌터, 휴고 버틀러, 펠릭스 루츠켄돌프, 존 애봇, 로버트 리치등 무려 11개에 이른다.

그리고 이중에서 놀랍게도 두개의 작품이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하게 되는데 로마의 휴일(이안 맥켈란 헌터로 차명),브레이브 원(로버트 리치로 차명)이 바로 그의 작품이며 이외에도 스파르타쿠스,빠삐용,영광의 탈출,호스맨 등 무수한 히트작이 그의 손을 거쳐갔다.


드디어 1960년 그는,케네디 대통령의 집권과 배우 커크 더글라스(스파르타쿠스),오토 프레민저 감독(영광의 탈출) 그리고 수많은 헐리우드 영화인들의 양심적 지지를 다시 이끌어내면서 무려 10년만에 달튼 트롬보라는 이름을 되찾기에 이른다.

달튼 트롬보의 공산주의 이념에 대한 신념은 무척이나 심플하였는데 한때 아버지가 공산주의자로 지목되자 자기도 공산주의자냐는 딸의 물음에 트럼보는 이렇게 말한다.
“도시락을 싸왔는데 점심을 안 갖고 온 친구가 있다면 나눠 주겠지. 친구에게 일자리를 구하라고 충고하거나 그를 외면하지 않겠지. 그럼 너도 공산주의자야.”

2017년의 대한민국에서 우리도 우리의 아이들에게 저렇듯 담백하게 얘기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매… 씁쓸하기 그지없다.

(2016년 10월30일 런던에서 입국하는 최순실 – 카투니스트 박비나)

누구는 유럽과 청와대를 제집 드나들듯이 드나들고,이념도 신념도 뭣도 아닌 주체할 수 없는 욕망 덩어리를 끌고 다니는데..우리는 그들을 대리해 광야에 서 있는듯하다.

하지만 우리…쓸쓸해하진 말자.
달튼 트롬보처럼 우리 나름의 욕조에 몸 담그고 언제나 그랬듯 그냥 우리의 길을 가자.

요즈음 헐리우드에서는 영화화 되지 않았었지만 호평받는 작품들을 지칭하는 명칭으로도 ‘블랙리스트’가 사용된다고 한다. 실제로 그 블랙리스트 작품들중에는 뒤늦게 재평가되어 발굴된 슬럼독 밀리네어, 킹스스피치, 소셜네트워크 ,스토커등이 있다.

이렇듯 어찌보면 우리의 일상이 블랙리스트려니…언젠가 찾아올 반전을 기대해본다.

이 원영블랙 리스트와 제임스 달턴 트럼보(James Dalton Trumbo)

극(劇)만화는 허기를 채워주지만 카툰은 가슴을 따뜻하게 해준다.

중국 청나라의 문인 오교(吳喬)는 산문(散文)은 쌀로 밥을 짓는 것이요,시(詩)는 쌀로 술을 빚는 것이라 비유했다.

밥은 먹으면 배가 부르고 술은 마시면 취하게 되니,무릇 풍류와 미학의 정서적 본향(本鄕)은 시가 더 으뜸이라 하신듯하다.

만화 예술 장르에 있어서 카툰과 극(劇) 만화도 오교 선생의 말씀으로 비유할 수 있겠다.



(카투니스트 박비나 – 낮잠)

극만화는 허기를 채워주지만 카툰은 가슴을 따뜻하게 해준다.

작품을 빚는 카투니스트에 따라서 잘 익은 술 냄새가 나기도 하고 코를 찌르는 독취가 올라오기도 한다.

똑같은 카툰 작품으로부터도 어떤 독자는 일본 나가타 지역의 간빠레 오또상 같은 사케를 맛보고 어떤 이는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지역의 밸런타인을 맛볼 수 있다.


(카투니스트 박비나 – 휴식)
그만큼 만드는 이도 음미하는 이도 식탐이 아닌 미식(味食)의 철학을 갖추어야 제대로 볼 수 있다는 얘기이다.

사석에서 “꼬집히면 벙어리도 운다”라고 표현한 소설가 김동리 선생의 경상도식 발음을 “꽃이 피면 벙어리도 운다”로 잘못(?) 알아듣고 동료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는 서정주 시인의 일화처럼 카투니스트의 오감(五感)은 늘 외계로 열려있다.

만화가 산업적 소재로만 평가받고 더 이상 미학적 담론을 이끌어낼 수 있는 예술 장르로써의 역할과 지위를 잃어버린 쓸쓸한 지금.

카투니스트 - 홍승우
(카투니스트 홍승우 – 뜨거우니까 조심하세요)
2016년을 아쉽게 보내며 술 한잔 청하는 마음으로 비주류 장르를 보듬고 있는 모든 카투니스트들에게 글로나마 위로를 보낸다.

이 원영극(劇)만화는 허기를 채워주지만 카툰은 가슴을 따뜻하게 해준다.

공감능력 부족한 카투니스트들에게..

“아는만큼 보이고,보이는 만큼 생각하고 생각하는 만큼 행동한다.”

논어(論語)에 나오는 이야기로써 이것은 무릇 사람이 세상일을 자각(自覺)하는 단계에서의 지식과 경험이 이후의 행동을 결정짓는데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비유할때 많이 사용된다.

인식론에 관한 이 에피소드가 한때 앞뒤 잘린 채 유홍준 교수의 베스트셀러,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아는만큼 보인다”로 응용되어 누구나 한번쯤 문화에 대한 자신의 무지함을 자책할때 한번 쯤 입에 머금게 되는 유행어로 회자되었었다.

서양에서는 독일 문학의 종결자로 불리는 괴테가 “우리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만 본다”라는 말을 남기는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식과 미학이 움트고 퍼지며 사람들을 이끌어 감에 있어서 기본적이고도 본질적인 문화적 소양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인식은 대개 그 견해들이 비슷하셨던듯하다.

카투니스트가 한컷의 그림속에 자신만의 메세지를 숨기며 자신도 함께 그 속에 웅크리고 틀어앉아 낯선 독자와의 만남을 기다릴 수 있는 것은 분명 독자가 누가 되었건 최소한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미학적 장치를 자신의 작품속에 남겨놓았다는 자신감에 근거한 것이리라 생각해본다.

무릇 볼 줄 알고 느낄 줄 아는 최소한의 공감대를 이해하고 활용할 줄 아는 능력이 바로 작가의 기본 소양일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고백하건대 20세기 초 미국 추상 미술계의 우상인 작가 프랭크 스텔라가 남긴 말처럼 “당신이 보는 것이 당신이 보는 것이다.(What you see is what you see) ” 는 식의 오만함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창작 태도를 갖고 있는 공감 능력 부족한 카투니스트들 또한 더러 많이 만나곤 한다.

여튼..2017년엔 보아주시고 생각해주시고 함께 행동해주실 수 있는 그런 카툰 공동체가 되었으면 좋겠다.

카툰무크지 제3호 “의기양양”에서 발췌

이 원영공감능력 부족한 카투니스트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