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유선

chuyousun

운동, 숫자, 기계에 어마무시한 약점이 있는 1인으로 관심분야만 집중하고 이외는 그냥 허당으로 사는 삶을 기분좋게 가고 있습니다.

2019년 ‘비밀’을 풀기 위해 ‘고마움 돌멩이’ 하나 주머니 속에 품으면 돼~~~지!!

작은 행동일지 모르지 작은 마음의 씨앗 

얼마나 결과 내게 돌아올지 지금부터 설렌다.

 

  1.  감정은 대단히 중요하다.  감정은 우리가 뭘 생각하는지 알게 해주는 멋진 선물이다.
  2.  기분이 좋으면 동시에 부정적인 생각을 할 수 없다. 기분이 좋다면 좋은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3.  기분이 좋은 순간을 포착하고 그 순간을 최대한 활용하자. 기분이 좋을때 ‘좋은 일을 더 많이 끌어당기고 있음’을 꼭 기억하자.
  4.  내가 무얼 생각하는지 알게 해 주려고 ‘우주’가 보내는 신호가 바로 ‘감정’ 이다.
  5.  사랑이라는 가장 높은 주파수의 파장을 위해서 더 큰 사랑을 느끼고 내뿜을수록, 더 큰 힘을 이용할 수 있다.

 

시크릿 책을 읽고 난 다섯가지를 내 삶에 안착하고 싶어서, 2019년가지 행동을 결심했다.

 

추유선2019년 ‘비밀’을 풀기 위해 ‘고마움 돌멩이’ 하나 주머니 속에 품으면 돼~~~지!!

‘사랑에는 수고로움이 필요하다.’- 2018년 수고로움 1.2.3

사랑에는 이 필요하다.’

2018년 수고로움 1.2.3

1. 입 다물기

엄마, 아내, 주부가 하는 집안일을 어느 책에선가 ‘그림자 노동’이라고 쓴 글귀를  본 기억이 있다.
또 어느 기자가 모 프로에서 집안의 모든 일은 결국 ‘제자리 찾기’라며 본인은 제자리 찾기를 손에서 놓았다고 말했다.
내가 이 말들을 스치듯 읽고, 들었지만 그 어떤 명언보다 매 순간순간 내 머릿속에서 꾸물거린다.
결혼, 임신, 출산, 육아의 12년이 훌~쩍 넘는 시간동안 친정엄마 찬스나 기타 등등의 찬스는 1도 없는 삶이다보니
매일매일 반복되는 상황에 점점 크는 아이들에게 약이 바짝바짝 오를 때가 있다.
이 상황 그대로 아이들이 각자의 삶을 살기 전까지 일상이 이렇게 반복된다면..
난 제자리를 찾다가 인생을 마감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점점 커졌다.
어느 순간 내 이름 석 자는 이제 없고, 나를 불리는 호칭이 내 이름이 되는 헛헛함에 마음이 쫌… 그랬다.
그렇다면 우리 박남매가 유별나냐..라는 생각이 들 수 있겠지만 사실 유별난건 나다.
애들은 여느 집 아이들보다도 훨씬 더 정리정돈을 스스로 잘 하는게 맞다.
본인이 갖고 놀던 장난감이든 뭐든 상황이 종료되면 잘 마무리를 하는 게 맞다.
하지만 유별난 내가 어른 대하 듯 하면서 내 마음 편안하게 아침에 일어나 외출을 앞서서,
밤에 잠자리에 들 때 모든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기를 바라는 내 욕심이 큰 것이다.

 

세상에 태어날 때 아이는 20개의 돌(?)을 갖고 태어난다고 한다.
그 무게와 책임이 태어나서 어릴 적에는 엄마에게 오롯이 그 무게감이 전해지지만
한 살 한살이 더해가며 아이가 하나씩 가져가다 10살이 되면 서로의 무게가 같다보니
서로의 힘겨룸이 팽팽한 시간을 맞이하게 되고
20개의 돌을 다 가져가게 되는 20살에 스스로 홀로서는 자신을 만난다는 것이다.

 

팽팽하게 나와 힘겨루기를 시작하는 10살 딸랭구랑, 슬슬 누이랑 의견 충돌을 시작한 6살 아돌의 모습에서 유체이탈 되는 나를 보는 횟수가 점점 많아졌다.
작년 이맘때, 2018년을 앞둔 딱 이쯤에.. 단단히 결심을 했다.
아예 내 마음대로 리드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이들이 하고 싶다는 대로 가는 것도 아니고 정해진 규칙에서 내가 불편한 마음 없으려고 어설프게 하게 되는 상황에 입장(?) 정리가 필요했다.
필요하기보다 절실했다.
나보다 더 삶의 무게인 돌도 하나 더 가져가는 11살 되는 딸랭구랑..
말 징글징글 안들을 준비 가득 채운 7살 아돌의 전쟁이 예고되는 상황에서 나는 빠져야겠다고
그러기 위해서 난 입.을.다.물.어.야.한.다.
내 잔소리는 전~~~~~~ 혀 도움이 1도 안 된다 는걸.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전혀 바뀌지 않는 상황을 점점 커지는 목소리로 내성만 키우게 될 뿐이라 는걸.
내 마음 편하게 다하고 잔소리를 1도 하지 않을 것인지.
아니면
아예 아이에게 전적으로 맡기고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에 대해 잔소리를 1도 하지 않을 것인지.
양쪽 다 결국은 내 입을 다물어야 하는 것이다.
난…….
후자를 택했다.
조용히 문을 닫아서 나만 안 들어가면 속이 시끄럽지 않다.
대신 슬쩍이라도 눈에 보이는 심기 불편한 날은 진심 조심해야 한다.
묵혔던 잔소리가 돌덩어리로 발사 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18년 우리 집에는 보이지 않는 암묵적으로 공간이 분리가 되었다.
두 공간은 쓰레기봉투가 준비되는 D-day (누구든 밟고 지나다 다치는 일이 생길경우 공지가 되고 가차 없이 쓰레기로 취급되어 모두 버려지는 날)가 공지되는 시점에 맞춰서 분기에 한 번씩 같은 색깔을 보이지만 반나절도 가지 않는다.

 

 

  • 1년째 등교, 등원체크 1도 안하는 책가방과 유치원가방

 

스마트한 좋은 세상이라 아이들 알림장이 아니더라도 클***팅, 아**스쿨, 알*장 등 해마다 담임 선생님이 지정해주신 앱을 이용해서 상세하게 다음날 일정을 ‘띵똥~’하고 알려주신다.
사물함에 다 두고 다니지만 하교해서 책가방에서 알림장이랑 L파일(안내문 전용), 보온병 꺼내 바로 정리하고, 간간히 있는 숙제하고 이후 시간에는 뒹글뒹글 책을 보며 놀고 내일 학교 준비를 하는 그런 이상적인 상황을 기대하는 건 너~무 큰 욕심이거라는걸 알고 진작부터 손에서 놓았다.
아이에게 중심이 넘어간 이후부터는 전날 전해주지 않는 알림장 내용, 출발 직전 부랴부랴 서두르는 준비물이나 이외 방과 후 수업에 필요한 부분은 스스로 필요하다고 얘기하기 전까지는 앱으로 알고 준비해 놓아도 전해 주지 않았다.
대신 그 상황에 대한 잔소리 역시 전하지 않았다.
‘네가 얘기주지 않아 몰랐다. 어쩌느냐. ‘
보온병을 씻어 놓지 않으면 여름에 시원한 얼음물, 추워지면 따뜻한 차도 역시나 준비해 주지 않았다.
빈 보온병 갖고 가는 날도 수두룩, 오랫동안 씻지 않아서 결국 몹쓸 보온병이 된 것도 여러 개.
알면서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입 다물고 있기가 정말, 정말. 정말. 어려웠다.
돌려 돌려 아이가 생각이 날법하게 얘기를 전해보지만 기억 못하고는 그대로 출발.
준비물 없이 가는 뒷모습을 볼 때마다 기도하듯 되뇌었다.
‘지금 시행착오는 저 아이 인생에서 가장 싸게 먹히는 거야. ‘
그래도 불편한 마음은 내 몫, 저녁 먹으며 은근 물어보면.
아이답게 딱 그 나이답게 ‘이’ 없음 ‘잇몸’으로 어찌어찌 해결하고 온 걸 보면 참……
두 녀석 다 넘치는 에너지의 감사함으로 하루 종일 쉼 없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놀고 놀고 또 놀고…….
태권도, 줄넘기, 시범단까지 하루 2-4시간씩 태권도에서 사느라 바쁜 .
시범단 8시부 끝나고 둘이 오면 9시 15분. 그때부터 시끌벅적 집이 되고, 잠이 드는 건 ……. 음…
이렇게 3년 넘게 지내다보니 애들 자고 일어나는 게 참 쉽지 않았다.
8살, 4살에 시작한 태권도, 다음해 1품을 하고나서부터 시작된 시범단에
9살 예은이도 그렇지만 5살 태준이는 쌍코피와 팬더곰같은 다크서클은 함께 가는 동반자가 되었다.
그러다보니 나 역시도 분주하게 보내는 일상에서 내몸은 알람처럼 밤 10시 30분 넘기 시작하면 분노 지수가 오르기 시작했다.
너무 피곤한데 하루가 마무리가 안 되고 잠잘 기미가 보이지 않는 이 상황조차도 입을 다물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자는 시간에 실랑이 하느니 난 새벽을 위해 내가 먼저 잠들었고, 어느 사이엔가 옆에와 잠들어 있다.
5시 반 전후로 기상하는 내가 일어나 보면 잠자기 직전까지의 상황을 보여주듯 난리난 상황은 그대로 모아 모아 애들 방에 살며시 넣어두고 방문은 내 마음 편하게 닫고 하루를 시작한다.
엄마를 믿으면 안 된다고 난 이제 깨우지 않는다고 얘기한 이후부터 나름의 장치로 알람을 맞춰 놓았다.
7시부터 5분 간격으로 작동되는데도 8시가 넘어도 둘 다 일어날 기미조차도 없다.
알람소리에 일어날 피곤함이면 그간의 내가 힘들지 않았겠지.
8시 반이 넘어도 기척이 없으면 등을 톡톡 두드리고 ‘학교 곧 시작하는데…’  작은 목소리로 얘기하면 벌떡 일어나 허둥지둥.
누나의 허둥지둥 소리에 일어나는 작은 아이.
작년까지 여유 있게 먹던 아침을 올해는 허둥지둥 와중에 먹는다.
늦은 와중에도 과일까지 부랴부랴 먹으며 학교까지 15분.
엄청 뛰는 아이의 뒷모습을 베란다에서 보면 항상 왔다 갔다 하는 마음이 든다.
아직은 도움이 필요한 아인데 싶다가도 팽팽하게 알아서 하겠다는데 뭐. 알아서 하겠지 하는 마음이 왔다 갔다.
아침 활동을 해야 하는 특별한 일정이 있을 때는 간곡히 내게 부탁을 한다. 꼭 꼭 7시에 깨워달라고.
그리고는 본인도 일찍 누워서 자려고 애쓰기도 한다.
부탁받은 날은 본인이 원하는 시간에 깨워서 여느 때처럼 여유 있게 준비를 하곤  학교로 출발을 한다.
천천히 걸어가며 뒤돌아 손인사도 하고 아주 여유롭다.
특별한 일정이 없는 날은 또 다시 본인도 더 자고 싶은 마음에 또 허둥지둥.

 

  • 모든 옷을 다 뒤집어 하루에 2~5번씩 갈아입은 옷

 

매일매일 지치지도 않고 엄청난 양으로  꼭 뒤집어서 빨래바구니가 토하듯 넘치게 쌓아놓는 딸.
아무리 제대로 벗어야 된다. 얘기해도 되지 않아 ‘그래, 그럼.’ 결심하고 시작한 뒤집은 옷 그대로 빨아서 그대로 전해주기를 시작으로
모두 뒤집어져 있는 본인 빨래를 보고 투덜투덜 하지만 누굴 탓하랴. ㅋㅋ
아직도 가끔은 엉망진창으로 벗어놓지만 세탁된 빨래가 뒤집어 있는걸 다시 제대로 해서 입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역으로 제대로 벗어놓은 빨래가 많아졌다.
쉼 없이 벗어서 잔뜩 쌓여진 빨래를 나도 바쁜 일정이라 수급이 여의치 않아 그 많던(?)  옷이 어느 순간 텅텅 비어있는 본인 옷장에서 다른 계절 옷을 꺼내 입고 여름에는 폭풍 땀 흘리거나 추워지니 오들오들 떨거나.
좀처럼 나아지지 않아서 결국은 딸아이만 빨래바구니를 따로 쓰고 있다.
눈으로 직접 넘치는걸 보면서 다시 함께 쓰고 싶다고 별별 애교를 다 부리지만 순간의 약해진 마음에 허용이 되면 본인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산처럼 쌓아놓는 빨래더미로 내게 화답을 준다.

 

 

올해는.
사춘기 아이가 거리를 두고 싶어 하는 마음보다 앞서서
내가 오춘기를 겪듯이 내가 거리를 두고 싶었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시간이 지나면 기억도 의미도 없을 일을 갖고 그 시간만큼은 세상이 무너질 거 같은 분노로 아이들과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
누나 덕분에 자연스럽게 7살 아이까지 덩달아 스스로 하지 않으면 1도 제공받을 수 없는 상황이다 보니 유치원을 다니면서 스스로 챙기는 아이가 되었다.
내년 3월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는데 2018년 12달 동안 하루하루가 불편함이 많다보니 그 와중에 훌쩍 성장한 거 같다.
너무 밀접하게 붙어서  불편한 마음에 퉁명스럽게 말하고 싶지 않아서,
예쁘게 말하고 싶은데 그게 쉽지 않은 매일매일 반복이 나를 지치게 해서
작년 딱 이쯤에 결심을 하곤 1년을 바쁘게 보내고 다시 보니…
처음에는 화가 부글부글 하면서 입을 꾹.
그러면서도 입술 사이로 새어나오는 말을 참느라 힘이 많이 들어갔고.
점점 꾹 참고 있는 입에 힘이 덜 들어가는 걸 선선한 가을바람을 맞을 즈음 나 스스로 느끼면서 피식 웃음이 나기도 했다.
이렇게 여름 가을 겨울이 되어 다시금 돌아본 올해는 그 무엇보다도…
‘나의 가장 큰  2018년 사랑을 위한 수고로움 1. 2. 3 은…’

1. 입 다물기

2. 입 다물기

3. 입 다물기 

2018년 시행착오 많은 시간 보내느라 수고 많았던 아이들에게 고맙고고맙다.
마지막으로 애들이 혹여나 내가 알고 있으면서도 선뜻 먼저 전해주지 않았던 준비물 이었다 는걸 알면 아마도 얼굴에서 배신감을 깊이 배울 거 같아서 이 글은 두 아이에게 만큼은 절대 보이면 안 될 거 같다.
이런 여정 속에서 ‘부천 인문로드’를 만났고, 그 끝자락에서 ‘만를 만난 2018년이 그 어느 해보다도 나를 성장하게 함에 감사 감사한 마음이다.

 

추유선‘사랑에는 수고로움이 필요하다.’- 2018년 수고로움 1.2.3

[치치의 지극히 개인적 팬심] 1. 언제 만나도 즐거운 친구 Anne

첫번째, 언제 만나도 즐거운 친구 Anne    

좋아하지는 않아도 들어봤을 만화주제가일 것이다.
‘괴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울어~’ 를 부르던 들장미 소녀 ‘캔디’‘주근깨 빼빼마른 빨강머리~’ 초록색 지붕집의  ~을 만났다면 어땠을까?
두 사람은 사이좋은 친구가 되었을까?
앤을 사랑하는 길버트, 캔디를 사랑하는 테리우스 누가 더 멋진걸까?
캔디와 앤을 사랑하지 않고 자랐다면 난 어떤 어른이 되었을까?
어린시절 나는 긍정의 에너지와 엉뚱함이 가득한 앤의 말들에 위로와 지지받았다.
어른이 된 지금도 언제 만나도 반가운 옛날 친구를 만나듯, 책을 펼치면 어느 페이지도 상관없다.
바로 예전에 봤던 설레이며 봤던 그 마음과 바로 만나게 된다.
이렇게 빨리 기분좋은 시간으로 빨려들어가는 내가 신기할뿐이다.
언제 만나도 반가운 옛친구를 만나 듯 ‘앤’은 기분좋은 오래된 친구이다.
앤에게는…
묵묵하지만 애정이 가득한 눈빛으로 쉬지 않고 조잘대는 얘기를 흥미롭게 들어주는 매튜 아저씨.
사랑하는 마음을 전하기가 어려워 다정함이란 오히려 어색하지만 그 사랑의 단단함으로 앤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던 마릴라 아줌마.
공상의 세계와 현실을 오가며 마음을 나누던 영혼의 친구 다이아나.
좋은 경쟁자이자 친구이자 진정한 사랑을 깨닫게해 준, 함께 성장한 길버트가 있다.
좋은 사람들과 시간을 함께하는 앤은 진정 행복한 사람이었다.
내가 어떤 감정의 상태이든 상관없이 어느 순간에도 앤을 만나면 사랑으로, 기쁨으로 때론 황당한 재미로 나를 행복하게 해준다.
언제 찾아도, 어떻게 만나도 행복한 마음을 전해주는 친구가 있음에 나도 행복한 1인이지 싶다.

 

#작가 루시 모드 몽고메리  <1874-1942>

 

Lucy Maud Montgomery – author writer, diarist (b at Clifton, PEI 30 Nov 1874; d at Toronto 24 Apr 1942. In 1908 her first novel, Anne of Green Gables, became an instant best-seller. In 1911 Montgomery married the Rev. Ewan Macdonald and moved permanently to Ontario. Circa 1900

 

1874년    11월 30일 루시 모드 몽고메리(L.M. Montgomery)는 캐나다의 프린스 에드워드 섬의 클리프턴에서 태어났다.
1876년    그녀가 두 살이 되기 전에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아버지는 서부로 돈을 벌기위해 떠나며 그녀를 외가에 맡겼다.

닮은꼴의 몽고메리와 <빨강머리 앤>

 

캐번디시라는 도시에서 우체국장을 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밑에서 자랐으니 <빨간머리 앤> 이야기 속의 앤처럼 고아였던 셈이다.  
실제로 몽고메리와 앤 셜리는 서로 닮은 점이 많았다고 한다. 
<빨간머리 앤>의 앤 셜리가 주근깨 있는 얼굴에 마른 편이었듯, 몽고메리 역시 얼굴에 주근깨가 있고 마른편이었다. 
또한 앤 셜리가 다이애나와 우정을 맹세하듯, 몽고메리는 아만다라는 친구와 우정을 맹세했고, 길버트와 경재했다면 몽고메리는 네이트라는 남자 아이와 경쟁을 했다. 훗날 앤셜리가 대학을 졸업한 뒤 선생님이 되는 것도 몽고메리와 닮았다.
1880년    6세 때 캐번디시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1884년    10세 무렵 <가을 이라는 시를 지었고, 이때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해서 55년 동안 썼다고 한다
1890년    <루퍼스 곶에 대하여>라는 시를 써서 지방 신문인 <에일리 퍼틀리엇>에 처음 발표하기도 했다.
1893년    사럿타운의 프린스 오브 웨일즈 대학에 입학하여 공부 시작,  그 후 대학을 졸업하고 학교 선생님이 되었다.
1896년    외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외할머니와 함께 캐번디시 우체국을 이끌어 갔다.

 

영원히 먼지에 묻힐 뻔한 <빨강머리 앤>

 

우체국을 운영하던 몽고메리는 3년후에 <데일리 에코> 기자로 일하게 되면서 다시 캐번디시를 떠났다.
열심히 일하는 틈틈히 그녀는 글을 써서 여러 신문과 잡지에 발표했지만 크게 인정을 받지 못했다.
몽고메리가 <빨강머리 앤>을 쓴 것은 1904년 봄이었다. 그녀는 이 소설을 완성한 뒤 출판사에 보냈지만 거절당했다. 크게 실망한 몽모메리는 이 작품을 다락방에 처박아 두고는 몇 년 동안이나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런데 1907년 어느날 파티에 초대받은 그녀는 장식용 리본을 찾기 위해 다락방에 올라갔다가 이 작품을 발견하고는 그 자리에 앉아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읽어 내려갔다.
그녀는 다시 용기를 내어 이 작품을 미국 보스턴에 있는 한 출판사에 보냈고, 마침내 <빨강머리 앤>이 세상에 나오게 된 것이다.

 

1908년    출간되자마자 이 책은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고, 몽고메리는 단숨에 유명 작가가 되었다.
             <톰 소여의 모험>으로 유명한 마크 트웨인도 “<빨강머리 앤>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만큼이나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다.” 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1909년    <빨강머리 앤> 의 속편 <에이번리의 앤>을 발표했고, 그 이듬해에는 <과수원의 세레나데>라는 작품을 잇달아
             발표하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1911년    몽고메리가 작가로서 성공을 거둘 무렵 외할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그녀는 37세 때 목사인 맥도널드와 결혼을 했다.
1938년    작품활동을 활발히 하였으나 건강이 악화되어 고통을 받는다.  이후 건강은 다시 회복되지 않는다.
1942년    4월 24일 세상을 떠날때까지 그녀는 남편의 교회 일도 돕고 글도 쓰면서 살았다.
             그녀의 묘지는 에이번리의 ‘초록 지붕의 집’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에 있으며 캐번디시 국립공원 입구에는 지금도
             그녀를 기리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Anne of Green Gables

1908년  [Anne of Green Gables] 출간

1908년 초판(좌) 과 그 삽화 (우) 출처 google image

 

1919년에 무성영화로 제작

Copyright 1919 Film Daily, Internet Archive archive.org

감독: William Desmond Taylor
주연: Mary Miles Minter
지금은 필름이 사라져 남아있지 않다. 원작자는 ‘할리우드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특히 후반부에 성조기가 휘날리는(…) 장면에 분개한 듯하지만 대체 각색이 어쨌길래 캐나다 이야기에 성조기가 등장한 것인지는 없어진 영화라 확인할 수가 없다.

 

1934년 초기에 유성영화로 제작

 

 Copyright 1934 RKO Pictures, US – Photo manipulation by Romantist aogg.egloos.com

감독: George Nicholls, Jr.
주연: Anne Shirley
앤 역의 배우 이름도 앤 셜리인 것은 배우가 이름을 바꿨기 때문이다. 본명이 돈 이블린 패리스(Dawn Evelyeen Paris)였던 이 배우는 데뷔하면서 돈 오데이(Dawn O’Day)라는 예명을 쓰다가 이 영화 이후로는 앤 셜리로 예명을 바꾸어 활동해서 지금은 앤 셜리로 유명하다. 당시 할리우드에서 자기가 연기했던 배역의 이름을 따서 예명으로 삼는 것은 흔하지는 않지만 그렇게 드문 일도 아니었다고 한다.
원작자는 길버트와의 로맨스에만 지나치게 집중한 후반부와 마릴라가 자신의 이미지와 다르다는 점[4]에 대해 불평한 걸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마음에 들어했다.
6년 후인 1940년, Anne of Windy Poplars이 후속작으로 만들어졌지만 이 영화는 필름이 사라져버린 작품이다.

1972년 영국 텔레비전 미니시리즈

 

감독: Joan Craft
주연: Kim Braden
34년 영화를 제외하고 (어찌어찌) 구할 수 있는 앤 실사화 영상물 중 가장 오래된 것. 본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당시 촬영 관행이었는지 설정상 야외 장면까지도 몽땅 실내에 꾸며놓은 세트라 답답하고, 영국식 악센트도 고치지 않고 연기해서 좀 황당하다고.
이 버전도 75년 속편이 만들어졌다.

1979년 일본 후지 TV에서 빨강머리 앤’ 이라는 제목으로 애니메이션을 제작

 

1979년 1월 7일부터 같은 해 12월 30일까지 세계명작극장 시리즈의 일환으로 후지TV 를 통해 최초 방영되었다.

타카하타 이사오가 감독과 연출을 담당하고 미야자키 하야오도 레이아웃 (장면 설정·화면 구성 )이라든지
여러 분야에서 제작에 참여했다.

우리나라에서는 1985년과 1986년에 KBS2를 통해 최초 방영되었으며 1990~2000년대까지 꾸준히 재방영되는 등,
아시아권에서 빨강머리 앤의 인기를 크게 높이고 친 캐나다 정서의 발흥에 기여한 일등공신이다.
국내 방영 당시 녹음연출은 최수형 PD, 번역은 신순남이었다

(후지 TV 일본어) https://youtu.be/JXS6RDKGVxE

(EBS 한국어)  https://youtu.be/OH3GdvftaaI

1985년 캐나다 CBC 방송국에서 제작자 겸 감독인 캐빈 설리반이 ‘빨강머리 앤’이란 2부작 드라마를 제작

 

감독: Kevin Sullivan
주연: Megan Follows
최우수 어린이 프로그램으로 에미상]을 수상했고, 캐나다의 텔리베전상인 제미니상의 15개 분야를 휩쓸게되었다.
기타 세계 곳곳에서 받은 상의 종류와 수상 횟수는 이루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이다.
<빨강머리 앤>의 성공으로 <에이번리로 가는 길> 이란 연속극을 제작하게 되었고 캐나다의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한 연속극으로 기록되었다.
<빨강머리 앤> 1. 2. 3편은 세계 3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고 145개 이상의 나라에서 방송되었다.

1987년 ‘빨강머리 앤 2편’과 2000년 ‘빨간머리 앤 3편’도 시청자들의 열광적인 호응을 이끌어내며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150여국에서 방영됐다. 지난해 제작된 ‘빨간머리 앤 4편’은 노년기로 접어든 앤이 고아원에 가기 전을 회상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EBS ‘가족극장’이 드라마 <빨강머리 앤>의 전 시리즈를 21일부터 9주에 걸쳐 매주 토요일 오후 6시에 방영했다.
드라마 ‘빨강머리 앤’은 캐나다의 설리번 엔터테인먼트사가 장장 23년에 걸쳐 프린스 에드워드 섬을 배경으로 원작 소설의 분위기를 영상으로 제대로 살려낸 고전 드라마.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주근깨 소녀 빨간머리 앤의 꿈과 사랑, 그리고 이별과 기억의 대서사시를 750분 동안 섬세한 손길로 풀어냈다. 이미 소설과 일본 애니메이션으로 친숙한 작품이지만 원작에 충실한 전개를 담은 드라마판 <빨강머리 앤>은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왔다.
20주년을 맞아 2006년 KBS미디어는 <빨강머리 앤> DVD를 출시했다.

2009년 일본감독인 다카하타 이사오가 ‘빨간머리앤 : 네버엔딩스토리’를 애니메이션 영화로 제작

2010 · 일본 · 애니메이션 / 1시간 40분
감독 : 다카하타 이사오

2017년 5월 netfix와 CBC가 합작으로 ‘Anne’이라는 이름의 시리즈 시작

 

제작 : 넷플릭스와 캐나다 CBC 합작
감독 : 니키 카로

주연 : 앤 역 루에이미베스맥널티 / 길버트 역 루카스 제이드 주만

2017년 공개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빨간머리앤은 원작에서 막 튀어나온 듯한 싱크로율로 사랑스러운 앤을 연기하는 에이미베스 맥널티가 큰 화제가 되었다.  더불어 그림과 같은 영상미를 통해 계절별 아름다운 캐나다의 풍경을 선사하며 작품의 재미를 더한다.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에 방문하면 꼭 봐야하는 뮤지컬

 

뮤지컬  Anne of Green Gables 은 매년 약 3개월 동안만 관람할 수 있다고 한다.
<6월 중순~9월 중순까지>

국내에서 볼 수 있는 뮤지컬 앤ANNE

극작가 겸 연출가 오세혁(36)이 속한 극단 걸판 (대표 최현미)이 창작 뮤지컬 ‘앤(ANNE)’ 을 선보였다.
이외에도 다양한 형식으로 빨간머리앤이 공연되고 있다.

 

빨간머리앤은 다양한 형식으로 다가오며 언제나 나의 마음을 설레이게 해준다.
추유선[치치의 지극히 개인적 팬심] 1. 언제 만나도 즐거운 친구 Anne

사랑하는 딸랭구 예은이에게..

사랑하는 딸랭구 예은이에게..

2008년 10월 23일 10시 11분 너를 만난 시간.

항상 분주하고 바쁘게 움직이며 많은 일들을 해야 했던 나. 책임감에 눌려있던 나.

지금 돌아보면 예은이가 태중에 있던 그 시간은 정말이지 너무나 무심하고 무책임한 예비 엄마였다.

무심하다는 말로는 부족할 만큼 진정 난 단 한 번도 너에게 편하게 쉼을 전하지 못했었다는 걸 둘째 태준이가 태중에 있던 그때 알았단다.

나 스스로 옭아맨 그물 안에서 허욱적 대면서 만족을 모르고 조금만 더하면 좀 더 뭐가 될꺼 같아서 손에서 놓지 못하는 병이었어. 고질병. 완벽할 수 없는 일에 감히 완벽하고 싶은 욕심병.

태명, 짤똥 공주였던 넌 참 힘들었을 거야.

조심은 1도 없고, 늦은 야근에 무지하기에 용감해서 조심성 없이 만삭에도 뛰어다니고 12시가 다되어서나 퇴근해 잠들 준비를 하고 항상 긴장된 상황에서 지내야 했으니 넌 얼마나 피곤했겠니?!

임산부인 엄마는 9개월이 다되어도 끝나지 않는 입덧에 정말 뭐하나 편하게 먹어본 기억이 없고, 막달에는 역류성 식도염으로 타버릴꺼 같은 식도에 엄청 힘들었는데..

내가 힘들었던 그만큼 너도 많이 힘들었지? 정말. 정말. 미안. 미안. 미안할 뿐이야.

출산 예정 3일 전에야 휴직을 하고 출산 준비 부랴하던 난 사실 준비한 게 없더구나.

그놈의 일이 뭐라고, 스치는 바람처럼 시간이 지나면 없어질껀데 어쩜 놓음 무슨 일이라도 생길꺼 같아서 마지막 순간까지도 편하게 마무리를 못했는지 난 참 일중독자로 바보였어.

 

너를 만나기 위해 출산, 육아 관련 책 몇 권 준비한 거랑 기본적인 거 몇 개.

꼭 프로젝트 준비하는 업무처럼 모르는 미지의 세계를 배우겠다는 마음을 갖고 어마 무시한 무지를 품은 난 정말이지 지금 생각하면 어의 없음의 끝이었다.

너를 만나고 하나씩 통곡의 젖몸살을 시작으로 눈물로 깨달으면서 배웠고 무엇 하나 쉽게 지나는 법 없이 하나하나 순간순간에 머문 그 느낌들이 바로 어제 일처럼 눈앞에 주마등처럼 지나는 게 수많은 감정들이 가득하구나.

 

너를 만나는 날 새벽 3시, 양수가 먼저 터지고, 이제 세상에 나오겠다는 너의 신호를 받고도 마무리되지 않은 일을 위해 컴퓨터를 켜고 마지막 책임감으로 쓴 메일들이 동료들에게는 사고 없이 진행되는 업무들 중 하나겠지만 세상에 나올 너에게는 얼마나 어이없는 순간이었을까?

나오겠다는데 3시간이나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엄마’란 이름의 내가 참 어의 없었을거야.

그렇게 업무를 마무리 하고 출산 가방이라고 챙겨놓은 가방 들고 소박하니 출발한 출산길..

병원도착 아침 7시 30분. 병실로 자리를 옮겨서 시간을 보니 8시 30분.

슬슬 오기 시작하더니 9시30분 즈음 쏟아질듯 급하게 진행되더니 10시 11분 세상에 태어나 내 품에 안긴 넌 참 많이 참고 있다가 ‘쓩~’ 하고 밀고 나오더구나.

‘모자병동’이라 네가 태어나 30분 후즈음 병실서 만난 우리모녀의 그 어색함은 나아지지 않는데,  3일째 되는날 퇴원을 하면서도 아직 이 상황이 무엇인지 인지하기엔 무지했단다.

초유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난생 처음 엄마의 가슴으로 역할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가슴도 아무 준비가 없었던 상황에 점점 단단하게 뭉쳐가는 가슴과  빨려보아도 쉽사리 잘 나오지 않는 모유에 문제는 커지기 시작했고, 젖몸살이 무엇인지, 이 난국을 어찌 해결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는  나로서는 모든 분유통을 뜯기 시작했고 젖병에 우유를 타기 시작하면서 멈추지 않는 너의 울음을 잠재우고자 했지만 태어나 분유를 거부하는 넌 일주일도 안 된 아기인건 분명한데 배고픔에서 오는 그 살기 어린 눈빛은 신생아기인 너를 사뭇 어른처럼 바라보게 만들었다.

분유, 젖병을 모두 거부하면서 멈추지 않는 네 울음소리에 정신이 없어지고 어찌어찌해서 똑똑 떨어지는 모유를 모아서 수저로 먹여보지만 그 쬐려보는 눈빛, 배고픈 사자의 눈빛을 보일뿐 입도 열지 않았지.   T.T  젖병에 별의별 젖꼭지를 다 사다가 다시 시도해보는데 모두 실패.

1주일을 제대로 먹지 못한 넌 으르렁하면서 살겠다는 목표를 두고 빨기 시작했고, 그렇게 통곡하다 모유 반 유두상처로 나오는 피 반으로 배를 채우기 시작했지.

그리고 찾아온 그 평온한 얼굴.

굶주림에 꼬마 사자처럼 으르렁대며 밥을 달라 울부짖는 소리가 젖몸살로 끙끙거리는 내게는 너무나 무서운 소리였단다.

혼합수유 그게 그리 용납해줄 수 없었던 거니?   뜯어 놓고 버린 분유통과 젖병이 몇 개인지.

병원에서 퇴원하고 집에 오는 차안에서 10월의 마지막 주인데 눈발이 내리는데 첫눈이라고 하기엔 너무 이르지만 흩날리던 눈발을 보며 귀가해서 다시금 세상 밖으로 100일 만에 나온 그때의 난, 그 시간 동안 굶은 애기 사자의 울음소리와 배고픔이 해결되지 않아서 정말 어마 무시한 고통을 우리 둘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좌충우돌 겪었고 모유로 묶인 떨어질 수 없는 관계가 되었고, 내 껌딱지로 사는 너에 대한  오만가지 감정이 뒤섞인 사랑이 시작된 거 같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네가 달리 생각하면 젖이 돌고 나서는 고통을 감당해주는 나를 살려주는 구세주였오.

젖몸살의 고통을 겪어보지 않았다면 그게 뭐~ 라고 할 수 있지만 피가 줄줄 흐르는 상황으로 한달 동안 흘린 눈물 생각하면 정말 무덤가서도 잊지 못할 고통이었다.

초자였던 나에게 ‘육아’는 산하나 어렵게 넘었는가 했는데 더 큰 산이 앞에 턱하고 버티고 있는 느낌.

어쩜 돌전 애기가 잠도 없는지 책에 나오는 아이는 어디 사는지 나는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구나. 낮잠은 뉘집 애가 자는 건지..

6개월에 이유식을 시작, 우리 모녀의 숟가락 전쟁이 시작하고 모든 본인이 넣지 않으면 입을 벌리지 않는 너를 보면서 세상은 온통 물음표 투성이었단다. 이유식, 카시트, 유모차 모두 실패하고 드라마에서 보듯 책 내용처럼 무엇하나도 내용대로 되는 게 없는 시간을 겪으면서 세상 태어나 처음 좌절의 연속이었던 1년을 보내고 나니 첫돌을 맞은 너.

1년 동안 밤낮 바뀐 삶을 사는 네 덕분에 그 시간에 미국 왔다 생각하면 너의 몸이 원하는 시차에 내 몸까지 맡기다보니 돌아온 선물은 어마, 무시한 피로감과 다크서클과 빠지지 않는 몸무게와 우울함을 잠재울 폭식뿐이었지만 일독에 빠져서 일 안하면 죽을거 같이 홀릭되어 살던 내가 너를 만나고 새로운 세상에 정신을 못 차릴 만큼 휩쓰리고 있었어.

 

넌 그런 아이야.

일에 미처 있던 나를 꺼내서 다른 그릇에 담아준 유일한 사람.’

 

참 신기해.  너랑 좌충우돌하는 그 사이에 난 너무 피곤해서 규칙적으로 잠드는 습관도 생기고, 네 이유식 시간에 맞춰서 애써 만든 정성은 가득하나 맛은 별로인 이유식을 버리기 아까워 같이 먹다보니 조금씩 건강해지는 위, 놀이터에서 지치지 않는 네 덕분에 받는 광합성을 재산으로 건강을 다시금 돌려받고 있었어.

뻥 뚫리듯 공허했던 감정을 갖고 일에 중독된 사람으로 살아온 내가 조금씩 너의 조그만 손을 잡고 세상을 보며 공감하는 마음을  채우고 있더구나.

건강해지고 있었어.  네 덕분에 엄마인 내가 건강해지고 있었더라.

온몸에 오랜 시간 동안 찰거머리처럼 함께 하던 고질병들도 조금씩 찾아오는 기간이 길어지고 나아지면서 의식된 즐거움이 아닌 진심에서 나오는 즐거움으로 나를 놓아버릴 수 있는 시간이 조금씩 많아지고 있었어.

긴 시간 엄마의 건강을 돌봐주시던 의사선생님과 많은 지인들이 지금의 엄마가 건강해짐에 놀랬단다.

그러면서 내 이름 석자는 점점 없어졌지만, ‘엄마’라는 이름으로 불러주는 네가 있어서 건강한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함에  네게 진심으로 감사해.

네가 항상 순응해주고 매사 쉽게 지났다면 이렇게까지 나란 사람이 치열하게 고민하고 그 치열함 속에서 답을 찾아 행복해지고자 노력이 더하지 못 했을거야.  쉬우니까 더 쉽게 가는 방법을 찾았을 꺼야.

28개월에 낮잠거부로 어린이집을 등원을 거부하면서 집에 혼자 있겠다는 너, 복직을 앞둔 시점에 결국 퇴사를 하게 되고, 이후에도 항상 마지막의 선택에 있어서 항상 너의 안위가 내가 하고 싶은 일보다 우선이 되는 게 나 역시도 낯설었지만 참 신기해.  싫다는 걸 억지로 적응하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그렇게 원하던 일이 기회가 왔음에도 그 기회를 선뜻 잡지 못하는 나를 보면서 나 스스로도 너무 낯선 나 자신을 만나게 됨에….

시간이 훌쩍 지나 이제는 11살.  예쁜 딸,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너를 보면서  삶의 균형감을 아는 마음의 근력이 좋은 건강한 아이가 되었으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초등학생이 되고 학년이 올라가면서 사이사이 보여주는 문제를 해결하는 너의 씩씩함에 믿음이 더 해지고 있단다. ‘고맙다 예은아!’

나 역시도 네 덕분에 몸만 커버리고 삶을 균형 있게 살지 못했던 내가 이제는 나의 ‘내면아이’도 위로받고 성장하면서 건강도 좋아지면서 현존하는 삶을 살 수 있는 준비가 되어 더디지만 성장하고 있음을 진심으로 느끼고 있단다.

우리가 겪는 일상에서 어렵지만 함께 성장하는 엄마와 예쁜 딸로 앞으로도 잘 지내보자.

나랑 많이 닮아서 또 너무나 달라서 서로가 다름을 이해하기에는 이슈가 끊이지 않지만,  매순간 최선을 다하며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오늘이 즐거워 지치지 않는 너.

너를 감당하기 어려워서 조금만 쉽게 가면 안 되겠냐고 푸념하던 나였던 시간도 있었는데..

11살까지 굴하지 않고 지치지 않는 에너지로 열심히 여기까지 온 만큼 앞으로도 지금처럼 열정 빼면 시체인 너로 잘 지내기 바래.

너의 앞이나 옆에서가 아닌 너의 뒤에서 시행착오 많은 그 시간 네가 걷는 그 길을 뒤에서 엄마도 걷고 있다는 거, 언제든 돌아보면 넌 혼자가 아니라는 걸 전할 수 있는 너무 멀리도 그렇다고 너무 가까이도 아닌  그 즈음(?)에 있는 엄마가 되도록 할게.

예쁘고 예쁜 건강한 네가 내 딸이어서 정말 고맙다. 사랑한다. 딸랭구..

네 덕분에 엄마가 되어 부쩍 성장한 유선이가

 

 

 

추유선사랑하는 딸랭구 예은이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