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아람 약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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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찌뿌드드하고 천근만근 무거울 때 ‘하늘아람 약국’에서 지어온 약을 먹는다. 사소한 일로 다퉈 남편과 냉전중일 때도 이약을 먹는다. 한번만 복용해도 효과는 금방 나타난다. 피곤이 가시고 활기가 넘치고, 남편과도 스르르 화해를 한다. 오직 하늘아람 약국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이 약은 자주 복용해도 부작용이 없다.

설날 아침, 음식 준비로 파김치가 된 내게 약이 배달되었다. 약사는 손아람. 내 며느리다. 직장일로 자주 찾아오지 못하고, 일도 못 도와주는 미안한 마음을 담아 약봉지를 건넸다.

약 봉투에는 환자 이름 한성희 님. 하루 3회, 매식 후 30분 1포씩 복용. 복용시 참고 사항 ‘자신이 할 일을 다 한 후에 먹어야 효과가 있습니다.’ 라고 적혀있었다.

‘사랑이 마구 넘치는 화목한 가정이 되는 약’ ‘몸 튼튼 마음 튼튼 매일 건강한 약’ ‘글이 안 써질 때 명문이 써지는 약’ ‘아들 며느리가 속상하게 할 때 말 잘 듣게 해주는 약’ ‘라이프 업! 동안 피부 미인이 되는 약’ 등 한 번 복용하는 약봉지에 예쁜 그림과 함께 이런 문구가 들어있다. 순간 피곤이 싹 가시고 섭섭했던 마음도 사르르 녹아버렸다.

명절준비는 나 혼자 할 수 있으니 오지 말라고 했지만 내심 섭섭한 마음이 있었다. 30여 년을 혼자서 하는 일은 능률도 안 오르고 외로웠다. 여러 며느리들이 모여 북적거리며 웃음꽃 피는 그런 집이 부럽기도 했다. 아들을 결혼시키고 맞는 첫 명절이기에 며느리와 오붓하게 음식 만들 일에 들떠있었다. 거기다 아들까지 덤으로 오면 가족이 다모여 명절 준비를 하는 거였다. 그런 꿈이 빗나갔다. 교대 근무하는 아들이 올 수 없다는 거였다. “그럼 며느리 혼자 오면 되겠네.” 라고 단순하게 한마디 툭 던졌더니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아들 목소리가 왠지 떨떠름하다. 순간 알아차렸다. 아직은 며느리 혼자 시댁에 오는 것을 불편해 한다는 것을….

“식구도 없는데 음식도 조금만하고 전은 그냥 한 접시 사서 놓지 뭐. 내일 아침에나 일찍 와라.”

“그래도 되겠어요? 아직은 나도 처갓집 혼자가라면 마음이 안 내킬 것 같아”

그렇게 또 혼자만의 명절준비가 시작됐다. 전은 사자고 했지만 차마 그럴 수 없어 조금씩 부치다 보니 양이 많아졌다. 별로 한 것도 없는데 정신없이 하루가 지났다.

명절날 아침 일찍 아들 부부가 왔다. 며느리는 전날 와서 못 도와준 미안함이 온 몸에 묻어있다. 어제의 통화는 며느리 의향을 묻지도 않고 아들이 내린 결정이라는 걸 알았다. 그래도 본분을 지켜야한다며 결정을 무시하고 시댁 행을 감행할 강단은 없었으리라.

차례가 끝나고 좀 한가로운 시간에 약봉지를 열어봤다. 초콜릿과 비타민, 견과류, 사탕을 넣은 이틀 분의 약이 들어있다.

반 아이들과 한 알 한 알 정성스럽게 넣었다는 약봉지에는 며느리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자신이 할 일을 다 하지 못했다는 죄스러움과 시어머님에 대한 고마움이 봉지마다 가득 차있었다. 참 이쁘다.

오늘은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이 안 써질 때 명문이 써지는 약’을 입에 넣고 오물거린다. 금방 퍼질 약 효과를 기대하면서….

 

hanregina

겉모습과 달리 빈틈 많고 털털한 사람. 17년째 수필을 공부하면서 수필집 '가시연 빅토리아' 겨우 한권 냈다. 10년동안 부천시청 복사골기자로 활동하다가 이제 시민 만화기자로 첫발을 내디뎠다. 내 주변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카툰으로 표현하고 싶어 '열공' 중이다. hanregina@cartoonfellow.org

한 성희하늘아람 약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