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희의 작가산책-소설가 이순원의 ‘그대 정동진에 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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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마음씨 좋은 이웃집 아저씨 같고 자상한 학교 선생님 같았습니다. 1957년 강릉에서 태어난 그는 사백 년 전에 조직된 대동계가 아직도 그 자손들에게 이어지고, 이 땅에서 유일하게 촌장제가 유지되고 있는 마을에서 십구 일장으로 지낸 할머니의 장례와 일 년 소상이나 삼 년 대상을 치르는 유교적 전통 속에서 성장하였습니다. 그런 평범하지 않은 환경에서 자란 그가 문학을 하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답니다. 그가 보고 들은 게 다 소설 거리였습니다.

그가 쓴 소설 중 (수색 그 물빛 무늬) 는 어머니가 써주고 (아들과 함께 걷는 길) 은 아버지가 써주고 (망배)는 할아버지가 (그가 걸음을 멈추었을 때)와 (말을 찾아서)는 친척들이 써주고 (첫사랑) 과 (강릉가는 옛길) 은 초등학교 동창들이 써주고 (영혼은 호수로 가 잠든다)는 고등학교 동창들이 (순수)는 고향사람들이 써주고, 정말 자신이 쓴 것은 (압구정동엔 비상구가 없다) 와 (은비령) 그리고 (19세) 정도 밖에 없다고 농담을 할 정도로 그의 고향은 이야기가 많은 동네였습니다.

게다가 그는 고등학교 1학년 때 학교를 때려치우고 대관령에 올라가 두 해 동안 배추농사를 지었답니다. 대학도 문학 쪽이 아니라 경영대학에 들어가, 금융기관에서 십 년간이나 직장생활을 했습니다. 그때 다시 학교로 돌아가지 않고 계속 배추농사를 지었다면 지금 자신이 어떻게 되었을까 의문이 든답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는 작가가 되었을 겁니다. 고등학교 시절, 학교에 가면 현대 속에 있었고, 이 십리를 걸어 집으로 돌아오면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중세 속에 살았던 그였기에,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의 삶의 방식을 표출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은 역사의 파수꾼도 아니고 사회의 파수꾼도 아니랍니다. 그저 소설을 통해 따뜻한 삶에 대한 그리움을 이야기하는 내면의 파수꾼이고 싶다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속이 꽉 찬 배추가 지천인 대관령을 떠올렸습니다.

 

codnjs5241

만화는 제9의 예술이다. 만화만이 줄 수 있는 감동이 있다고 믿고 활동합니다. codnjs5241@naver.com

채원 김한성희의 작가산책-소설가 이순원의 ‘그대 정동진에 가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