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갓집 맏며느리 우리 엄마! 그리고 명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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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밖에는 겨울을 노래하는 강한 바람과 눈꽃송이 그리고, 숨소리 죽여가며 조심조심하는 우리 인간들의 움직임이 배경음악인 양 내 귀를 정신없이 바쁘게한다. 겨울은 겨울인가보다. 바람을 막으려 고개를 숙이고 손이 시려워 저절로 주머니에 손을 넣어 장갑을 찾는다. 그래도 난 겨울이 참 좋다. 한 가지를 빼면…

조금 있으면 우리들의 명절인 설날이 다가 온다. 설은 음력 정월 초하룻날로 일 년동안 아무 탈 없이 지내게 해 달라는 바람에서, 한 해의 첫 날 전후에 치루는 의례와 놀이들로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 첫 아침을 맞는 명절이다. 여러 의미들이 있지만 17세기 문헌에 ‘나이’ ‘해’를 뜻하는말로 쓰여진 것으로 보아 ‘나이를 하나 더 먹는 날’의 의미를 가진 것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라고 한다.

누구나 맞는 명절! 받아들이는 의미는 모두 다 다르겠지만 명절만 되면 휴일이라고 좋아하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나는 명절이 기쁘지만은 않다.
시댁이 서울이고 맏며느리인 나는 결혼한 이후로 명절날 중 단 한 번도 친정을 가지 못했다. 친정이 멀리 있다는, 맏며느리라는 슬픈 핑계가 그 이유이다. 그러다보니 예쁜 한복을 차려 입고 부모님께 세배를 드리는게 소원이 되었지만 결국 이를 이루지 못하고 아버지는 9년 전 돌아가셨다.
설날, 그 날이 다가오면 시끌벅적한 종갓집에서 나는 소리, 내가 자란 우리 집의 옛 추억들이 뇌리를 스쳐 지나간다. 시간 여행이나 순간 이동이 가능하다면 그 때로 누구보다 간절하게 돌아가고 싶다. 그리고 그 날 이후 벌써 25년이 되었다.

이번 신정 연휴에는 아이들과 함께 큰 마음을 먹고 엄마한테 갔다. 앞서 말했던 점에 비추어 볼 때, 이 일은 나에겐 너무나 놀라운 일이자 경사가 아닐 수 없다. 속히 말하는 ‘대박 사건’이라고 할까. 엄마한테 가는 동안 좋으면서도 한쪽으로는 갸우뚱 거리기도 했다. 그건 아마 너무 좋아 믿기지 않았기 때문일테다. 한복은 입지 못했지만 소원이었던 세배를 엄마께 했다. 가슴이 뭉클하고 눈시울이 붉어져왔다. 아버지의 빈 자리가 조금 슬프게 했지만 25년의 슬픈 응어리가 한 방울의 눈물이 되어 나를 위로해준 너무나도 기쁜날이었다.

얼굴도 보지 않고 좋은 집안과 부잣집이라는 말을 듣고 19살에 시집 온 우리 엄마! 결혼을 하고 아버지는 나라의 부르심으로 그때 지원해서 군에 갔다고 한다. 남편 없이 당신 편 하나없는 시집 생활, 층층시하에 일꾼들 관리까지 새벽 5시에 일어나 저녁 11시가 되서야 잠을 청했다는, 들을수록 엄마의 주름이 얼마나 늘어났는지를 짐작할만한 그 시절 그 옛날 엄마의 이야기! 그렇게 7남매를 키우느라 당신은 벌써 잊은 채 우리들을 위해 머리카락은 파뿌리가 되었고 꼿꼿하게 서있던 허리는 어느새 고개를 숙였다. 그건 지난날의 힘들고 어렵던 고생의 흔적, 그 자체이다. 그리고 아버지 없이 보낸 시간이 어언 10년이 다 되었다. 아흔이 다 되어 가는 우리 엄마의 삶! 순수하고 예쁜 엄마의 그 마음은 스물을 갓 넘긴 내 쌍둥이 딸들과 공존할 때가 있다. 당신도 누군가의 예쁜 딸이었고 지금도 가끔씩 듣는 ‘할머니 너무 고우세요!’라는 말, 그 누구와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다운 여자였고 무엇보다 당신은 나의 소중한 엄마이다. 그 마음을, 어른이 된 다음에야 비로소 우리는, 엄마의 고개숙인 허리의 의미를 깨닫는다.

알록달록 예쁜 꽃을 보고 우리 엄마는 걸음을 멈추고 어린아이마냥 예쁘다 말하고 또 말한다. 어쩜 나와 엄마는 같은 세상에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그건 아마도 엄마이고 딸이어서겠지? 항상 우리 엄마는 말한다. ‘형제간에 우애있게 지내야 한다’고, 우리는 어릴 때부터 어른들의 덕담이나 위인전을 보고 들으면서 자랐다. 그것의 의미를 우리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잘 알고 있지만 가끔은 개개인의 생각차이로 이웃보다 못한 슬픔을 초래하기도 한다. 그것 또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엄마이기에 앞서 부모이기에 눈을 감으나 뜨나, 7명의 자식들에 대한 걱정의 끈을 놓지 못한다. 더 한숨이 나오게 하는건 아직까지 결혼을 안하고 있는 막내다. 알아서 살아간다고 걱정하지 말라해도 우리 엄마는 그 끈을 온 힘을 다해 붙잡고 있다. 그건 무엇으로도 형용할 수 없는 엄마의 큰 사랑이다.

명절이 되면 아버지가 많이 보고 싶고 너무나 그립다. 살아 계셨으면 같이 다니고 시간을 보내면서 얼마나 좋았을까! 누구보다 우리 엄마는 지금보다 더 행복하지 않을까? 우리집 책장에 60대 엄마 아버지가 나란히 찍은 사진액자가 있다. 우리 엄마는 종종 그 사진을 만지작만지작 거리며 아버지가 보고 싶다고 한다. 얼마나 보고 싶으련지 그 마음이 헤아려지질 않는다. 당신의 마음을 짐작만 할 뿐 우리는 그 깊이를 모른다. 얼마전에 엄마를 모시고 현충원에 갔었다. 아버지는 맨발로 정문에 나와서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를 보고 엄마는 오랜만에 아버지한테 울먹이며 인사말을 했다. 자주 못 와서 미안하다고… 엄마의 울먹거림은 평소에 엄마가 얼마나 현충원에 오고 싶었는지를 말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큰 소리로 반가워하며 반기고 있었다. 부부란 무엇인가? 같이 만나 같이 가면 얼마나 좋겠냐만 홀로 남아 그리워하며 쓸쓸하게 살아간다는 것이 모순되게도 참 슬프다. 오순도순 비슷하게 살아서 서로에게 필요한 동반자로 살아가야 하는데 그것 또한 쉽지가 않으니 슬픈일이다.

내 나이도 벌써 쉰을 만나고 돌이켜보면 괜스레 흘러가는 시간이 야속하고, 이토록 빠른 세월이 밉기도 하지만 내가 꿈꾸는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땅을 밟고, 하늘을 보고, 바람과 입맞춤할 수 있는 이 아름다운 세상이 내게 준 행복에 감사하며, 항상 내가 살아 숨쉼을 느끼게 해 줘서 고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또한 속 좁은 인간이기에 나만의 기도를 해 본다.

엄마를 홀로 두고 돌아오는 날, 엄마는 나를 바라보고 차가 보이지 않을 때 까지 손을 흔들고 있었다. 아니, 그보다 더 한참을 서서 헤어짐의 아쉬운 슬픔을 온몸으로 이겨내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런 엄마를 홀로 두고 오면서 창문에 비치는 멀어져가는 엄마의 뒷모습이 날 슬프게 했다. 그래도 지금 이 순간에도 언제든지 엄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엄마! 엄마는 누구에게나 가장 소중하고 그렇기에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아끼는 보물이다. 누군가의 편안한 휴식이자 따뜻한 행복이며 그 누구나 공감하는 사랑이다.
아아, 시간이 지날수록 엄마가 내게 주는건 그 모든것을 해결해주는 당신의 위대한 사랑이다.
엄마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아야 해! 엄마 사랑해!
엄마를 사랑하는 셋째 딸이….

정 정숙

각자의 출발지와 목적지가 다 다른 세상에서 설렘과 기쁨을 안고 새로움을 찾아 떠나는 나만의 길..감미로운 음악, 따뜻한 커피, 그리고 아름다운 책이 있을 그 곳을 향해서..

정 정숙종갓집 맏며느리 우리 엄마! 그리고 명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