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띠 우리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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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막바지쯤, 남편과 함께 친정에 갔다.

택배로 보내주는 김치를 받아만 먹다가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는 엄마의 손맛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대문에 들어서니 수북이 쌓인 김장거리 앞에 두 노인이 앉아있다.

남편과 내가 손을 보탤 틈도 없이 아버지와 엄마는 손발이 척척 맞았다.

배추를 절여 씻고 속을 만드는 일까지 아버지의 손길이 안 가는 곳이 없었다.

해마다 자식들에게 보내주는 김장도 두 분이 며칠씩 밤을 새워 담갔다는 걸 알았다.

저녁이 되자 아버지는 사위를 앉혀 놓고 술잔을 기울였다.

술은 입에도 못 대시면서 술 좋아하는 사위에 대한 배려였다.

아버지는 이번이 마지막인 양 사위에게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아버지는 1934년생 개띠로 올해 85세다.

일제 강점기를 보내고 11살에 해방을 맞았다.

8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새어머니가 들어왔지만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얼른 집을 떠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그때부터 아버지의 방랑이 시작되었다.

툭하면 집을 나가 친구 집을 전전하다 6.25를 겪었고 암울한 대학시절을 보냈다.

교사가 꿈이었지만 건강이 따라주지 않아 포기해야만 했던 심정을 이야기할 땐 아버지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 후 아픈 몸을 이끌고 정처 없이 객지를 떠돌았다. 방랑벽이 도진 것이다.

몇 번의 빚보증으로 그나마 모은 재산 다 날리고 가족을 궁핍으로 몰아넣기도 했다.

오징어잡이 배를 타다가 바다에 빠져 죽을 뻔하고 광산에서 일하다 청력을 잃은 이야기까지….

우리에겐 한 번도 들려주지 않았던 아버지의 파란만장한 일대기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아버지는 곁을 내주지 않는 자식들 대신 사위에게 자신의 삶을 정리하고 계신 거였다.

안 듣는 척 TV를 보고 있었지만 아버지의 인생사에 점점 빠져 들었다.

이야기가 끝날 즈음엔 아버지에 대한 오해가 사라지고 있었다.

50여 년을 자식으로 살면서 어떻게 한 번도 아버지와 그런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는지…

가정을 돌보지 않는 무능한 아버지라고 밀어내기만 했는지…

아버지도 꿈 많은 청년이었고, 가족을 부양하려고 노력했던 가장이었다는 걸 알려고 하지 않았는지…

죄스러움에 가슴이 답답해졌다.

말없이 견뎌왔던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치는지 아버지의 눈자위가 벌게졌다.

슬쩍 눈두덩을 훔치는 아버지의 손이 눈에 들어왔다.

마디마디 툭툭 불거진, 쭈글쭈글하고 쩍쩍 갈라진 손등에서 고단했던 삶의 무게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평생 가족이란 무게의 짐을 짊어지고 희생한 당신…

이제 그만 편히 쉬세요.

제가 당신의 팔지게가 되어드리겠습니다.

울 아버지의 팔지게 ⓒ 고구마

 

무술년 황금개띠 해가 밝았다.

개띠 중에 신사임당이나 소크라테스, 모파상 같은 훌륭한 인물이 많지만 지금 내겐 우리 아버지가 황금처럼 빛나 보인다.

자식들에게 부담 주지 않겠다며 수의며 사후 준비까지 마치고 씩씩하게 마감을 기다리는 아버지에게 황금 개띠 해에 증손자가 태어난다는 소식이 왔다.

hanregina

겉모습과 달리 빈틈 많고 털털한 사람. 17년째 수필을 공부하면서 수필집 '가시연 빅토리아' 겨우 한권 냈다. 10년동안 부천시청 복사골기자로 활동하다가 이제 시민 만화기자로 첫발을 내디뎠다. 내 주변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카툰으로 표현하고 싶어 '열공' 중이다. hanregina@cartoonfellow.org

한 성희개띠 우리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