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 – 시인 정호승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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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겨울 밤 거리에서 귤 몇 개 놓고
살아온 할머니에게
귤 값을 깎으며 기뻐하던 너를 위하여
나의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 주겠다
…… 나는 이제 너에게도 기다림을 주겠다
이 세상에 내리던 함박눈을 멈추겠다
보리밭에 내리던 봄눈들을 데리고
추위에 떠는 사람들의 슬픔에게 다녀와서
눈 그친 눈길을 너와 함께 걷겠다
슬픔의 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가겠다
-정호승의 시 ‘슬픔이 기쁨에게’ 중에서.

2001년 5월 정호승 시인을 만났습니다.
정호승 시인은 “시를 모르고 인생을 사는 것은 밥을 먹지 않고 일생을 사는 것과 같다” 고 했습니다. 그가 쓰는 시의 밑거름은 어릴 때 체험했던 자연이라고 합니다.
꽃밭 가꾸는 어머니를 보면서 세상이 아름답다고 생각했고, 중 2때 처음 본 바다와 수평선은 지금도 충격으로 남아있답니다. 자연은 인간을 위로하고 아름답게 해주는 시가 됩니다. 한편의 시를 읽으면서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일들도 용서하게 된답니다.

그의 시 ‘서울의 예수’는 예수의 신성은 빼버리고 인간성을 부각시킨 시 랍니다. 시를 관통하는 것은 비극인데 그 비극적 서정성에 초점을 맞춰 시를 쓰겠다고 했습니다. 비가 온 뒤 사우디 사막에는 거대한 선인장이 쓰러져 있는데 그 이유가 있답니다. 비가 오면 물을 너무 많이 먹어 제 몸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쓰러져 버리는 거지요. 자신의 생존을 위해 물을 빨아들이지만 죽음에 이르는 어리석은 선인장처럼 물질적 욕망에 사로잡혀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 삶을 돌아보게 하는 것이 ‘시’ 랍니다.

한 그루 나무처럼 내 몸 속에도 서정의 물기가 흐르도록,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어디 여행이라도 떠나고 싶은 시간이었습니다.

hanregina

겉모습과 달리 빈틈 많고 털털한 사람. 17년째 수필을 공부하면서 수필집 '가시연 빅토리아' 겨우 한권 냈다. 10년동안 부천시청 복사골기자로 활동하다가 이제 시민 만화기자로 첫발을 내디뎠다. 내 주변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카툰으로 표현하고 싶어 '열공' 중이다. hanregina@cartoonfellow.org

한 성희‘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 – 시인 정호승을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