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가다 멈추면 보이는 것 – ‘눈이 내리면’ (문 지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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첸 카이거의 영화 ‘패왕별희 ’를 보면 그런 장면이 나온다.

경극배우를 꿈꾸는 어린아이들이 경극 공연을 보면서 감탄을 할 때 주인공 소년은 운다.

그 모습을 보면서 ‘왜 울어?’라고 물어볼 때 그 소년은 답한다.

“저렇게 하기까지 얼마나 매 맞고 힘들었을까?”

물론 매 맞으면서 공부한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보고 있으면 왜인지 그런 생각이 든다. 능숙하고 스피디하게 그려진 그림 이면의 고민과 노력들이 보인다고 할까.

아마 그것은 영화의 소년들이 경극배우를 꿈꿨듯이 기사를 쓰는 나 역시 ‘유려하게 그림을 그리는’ 만화가를 꿈꾸는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눈이 내리면’ 이라는 서정적(?) 제목과는 달리 문지욱 작가의 만화는 계속 장난스럽고 유쾌한 색깔을 띤다. 미국에서 감리교 신학대학교와 메모리 대학교 신학대학원을 나왔음에도 조 쿠버트 만화학교에 다시 입학하여 3 년간 얼마나 치열하게 그림을 그렸는지는 특유의 가벼운 그림에 나타난다.

 

-여담이지만 작가와의 만남에서 이 멕시코 친구에 대해서 물어봤다. 열심히 그림을 그렸던 그녀는 연락이 닿지는 않지만 풍문으로 멕시코에서 작가로 데뷔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씀하셨다.

‘만화 작가 문지욱’으로 불려지는 게 아직도 생소하다는 그와 2017년 9월 13일 카툰캠퍼스에서 만남을 가졌다.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당연히 목회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한다.

하지만 종교보다 더 그를 끌어당기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만화였다.

(작가는 직접 자신의 그림을 순차별로 자료로 만들어서 가져왔다.)

열광적으로 만화를 좋아하던 소년은 문득 만화를 잊어버리고 어느 새인가 목회자가 되는 길을 걷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강의시간에 억울한(?) 지적을 당한 작가는 문득 어릴 때 봤었던 만화의 언어로 당시의 기분을 손으로 끄적거렸다고 했다. 그리고 그 만화로 표현된 자신의 생각이 즐겁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국민학교 이후에 최초의 만화그림-보관하고 있는게 놀라웠다.)

그는 이 그림을 시작으로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맞이하였다고 세심하게 말했다.

 

만화 그리기에 몰두하느라 정작 학점을 많이 잃어버렸다고 하니 말 다했다.

그리고 만화를 만화의 언어로 잘 그리고 싶어서 전문 만화학교까지 진학했다. 바로 눈이 내리면의 주요 무대가 되는 DC코믹스의 만화가이자 디렉터였던 존 쿠버트가 설립한 학교이다.

만화학교에서도 의욕과 달리 하고 싶은 만화(히어로물)와 다른 자신의 타고난 그림 스타일 때문에 고민도 많이 하였다 한다.
 

(문지욱 작가 )

차분하고 조곤조곤 한 목소리로 만화를 잘 하고 싶다는 간절함에 대해 여러 번 말했다.

(만화공부를 하는 동안 스타일에 대한 치열한 고민의 흔적이다.)

시종 유쾌발랄(?)한 느낌으로 만화학교의 생활을 그리다가 작가는 다람쥐의 죽음. 까마귀의 죽음에 대한 만화는 서정적으로 그린다.

물론, 향수병을 표현한 듯한 ‘눈이 내리면’ 의 작품도 그렇지만. 유달리 동물의 장례식은 작가에겐 무언가 메시지를 주었던가 싶다.

멈춰 서서 그들의 죽음에 장례식을 치러준다.쓸쓸한 다람쥐에게 작가는 목회하시는 아버지의 가방모찌(?)를 하며 따라다닌 경험을 더듬어 장례식을 직접 진행했지만, 까마귀는 그들의 장례식을 존중하여 그저 객으로서 묵념을 해준다.

 

 

문지욱 작가는 한국에 돌아와서 하고 싶은 만화(히어로물)와 잘 하는 만화를 조율하며 소설가인 형님과 협업도 하고 상도 받고 책도 만드는 등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만화영상진흥원에서 진행한 다양성 만화사업 공모에 뽑혀 단행본 ‘아날로그 보이’를 준비 중이다. 동시에 한국예술인 복지재단과 하는 만화 ‘어벤저스 가족’을 현재 진행 중이다

겸손하게 멈춰 서서 누군가의 쓸쓸함을 바라볼 줄 아는 작가의 시선이 가볍지도 지나치게 어둡지도 않으면서 독자에게 전해주는 울림이 있다.

 

‘눈이 내리면’ 은 작가의 서투름과유려함. 편집자의 배려와 꼼꼼함이 잘 어우러진 만화책이다.존 쿠버트 학교의 생활이 담긴 진짜 이야기와 그 시절 그렸던 가상의 단편들이 버무러져 한국만화스타일과는 다른 새로운 느낌의 그림과 색상들로 아기자기하게 채워져있다.

자신있게 추천한다.

 

 

aron73

열심히 걷는걸 좋아합니다. 부천지역신문 콩나물서 "부천댁"을 연재하며 시국부터 사소한 것 일상의 기쁨을 기록하려 합니다. aron73@cartoonfellow.org

박 현숙달려가다 멈추면 보이는 것 – ‘눈이 내리면’ (문 지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