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를 찾아서-⑧ “용석이는 나에게 기둥이다” 아빠의 누나, 잠실고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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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석이는 나에게 기둥이다”

아빠의 작은 누나, 서명석

 

“나에게 용석이는 동생이지만 항상 마음으로 기댈 수 있는 사람이야.

나무처럼 움직이지 않고 든든하고..

어릴때부터도 동생이지만 철들은 오빠처럼 그렇게 믿음직한 동생이야

 

 

 

고모~ 부끄러워 하시면서도 인터뷰 응해주셔서 감사해요.

고모를 인터뷰한다고 하니까 저도 왠지 긴장되는데요?

울 아빠랑 일촌이시니까.. 다른 분들보다 더 많이 아실 것 같고요^^

 

우리아빠랑은 어떤 관계이신지~

독자들을 위해 설명해주세요.

(▲고모한테 받은 빛바랜 사진)

용석인 내 동생이지.. 

 

아빠를 찾아서 이 인터뷰를 제가 요청했을 때 기분이 어떠셨어요?

 

잘할 수 있을까? 긴장이 되지.

 

너무 나이먹은 사람으로서 세대에 뒤떨어진 그런 대답이나 하지 않을까? 걱정도 되고.

 

늦게 글로나마 동생한테 그동안의 것을 표현할 수 있어 좋네..

 

고모~ 긴장하지 마시고 알고계신 것만 편하게 대답해주시면 되요.

 

고모를 만나면 아빠랑 고모가 함께 살았던 어린 시절을 꼭 여쭤보고 싶었는데..

어렸을 때 고모랑 아빠는 어땠어요? 각별했나요?

우리 가족은 성격들이..

 

각별하긴 했어도 티를 잘 안냈어~~

 

우리는 그저..덤덤하니 그냥..

 

덤덤해도 마음으로.. 통했다. 행동으로 막 그런게 아니고..

 

표현을 겉으로 하지 않고..

 

 

 하하.. 우리 아빠 어릴때 어땠는지 얘기 좀 해주세요.

(할머니와 하나뿐인 아들, 우리아빠)

니 아빠? 굉장히 쪼그만했었지.

 

쪼그맸어도 야무졌어. 친구들하고 다마(구슬) 그런거 해도

 

별명이 ‘용코’였어~ (처음 듣는 별명 등장!)

 

용코로 잘맞춘다고 별명이 용코였다.

 

별명이 깜찍한데요?

 

남의 걸 아주 잘 따왔지~

 

한없이 구슬해서 집에 들어오면 막 아버지 모르게 감춰들어오고 그랬어.

 

체구는 조그만해도 그런것도 잘하고, 공부도 남 떨어지지 않게 잘했고

 

남한테 뒤지지 않고.. 그랬지.

 

아빠는 지금도 잘하시는게 많아요.

고모는 어릴 때 어떠셨어요?

 

나는..

 

아버지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걸 못했지.

 

전혀 겉으로 표현도 못하고 내색도 못했고 속으로만 끙끙 대고 살았던 기억이 나네.

 

하고 싶은게 많으셨어요?

 

그럼~

 

공부도 많이 하고 싶었고 대학도 가고 싶었지.

 

아빠는 했잖아요!!

 

할아버지가 그런게 많았어.

 

옛날 어른들은 딸은 별로 교육에 대한 그런거 없고, 안받아도 된다는 생각이였지.

 

여자는 그런거 안해도 된다..는 생각이 강했다. 아들은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했고..

 

어떻게보면 큰언니랑 나는 피해자지.

그랬군요. 너무 불공평해요.

고모는 장래희망이 어떤거였 어요?

 

국어선생님을 하고 싶었다.

 

고모 책 좋아했어요? 아빠한테 들었어요.

 

책도 좋아했지.

 

지금도 안 늦으셨잖아요~ 글쓰셔서 작가로 데뷔하심 되잖아요.

저랑 같이 써요.

 

지금 해보니까 글쓰는게 재주가 없더라고.

 

살면서 삭막해지고 감성이 메말라 버렸나봐. 푸하하하.

 

어린시절에 기억나는 에피소드?

 

음~ 글쎄?

 

아, 어릴 때 할아버지가 아빠한테 밖에도 못나가게 하면서 공부하라고 많이 했었는데

 

아빠는 어쨌든간 하고 싶은 걸 다했어.

 

하루는 밤에 자는데

 

방에서 뭐가 개굴개굴 울어~

 

그래서 알고봤더니 니 아빠가 개구리를 잡아서 주머니에 넣고 잠이 든거야.

 

그래서 개구리 소동이 한번 났었지.

 

불쌍한 개구리..

왜 아빠한테 잡혀서..

그래서 그 개구리 어떻게 하셨어요?

 

그래서?

 

외할아버지한테 자다가 혼났지.

 

너네 아빠가 그렇게 개구진 면도 있었어.

 

(잠실고모, 할머니, 아빠, 막내고모

촌스러운 패션..^^;;)

고모랑 인터뷰하니까 아빠의 어린시절이 생생해요~

아빠도 새삼 누나가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앞으로의 아빠에게 응원을 해주신다면?

 

평생을 성실하게 가정과 자녀들을 위해서 수고 많았지..

 

앞으로의 시간은 돌아다니는 것도 좋아하고 여행도 좋아하고 하는 사람이니까

니 엄마랑 건강해서 그렇게 여행도 즐기고 살면 좋겠어.

 

본인이 평소에 하고 싶었던 여행, 생활 잘 꾸려가면서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 건강을 잘 지키고

지금은 좀 더 몇 년은 고생을 하자..

 

다만, 딸 셋이잖아?

자녀들은 내 마음대로 다 되는게 아니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조금만 자녀들한테서 욕심을 내려놓고

순리대로 살면 좋겠다. (아빠, 잘 들어요)

(흔들려서 알아보기 힘든 사진, 맨 왼쪽이 우리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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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마치며..

 

어릴 때 우리가 서울에 살 때,

고모네와 집이 가까운 탓에 왕래가 잦았다.

언제부턴가 거리가 멀어지면서 고모와 자주 만나지 못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 이름, 잠.실.고.모!

 

고모와 고모부, 특히 고모부는 우리가 커가는동안

만날때마다 애정표현을 많이 해주셨다.

 

간만에 만나면 고모부는 늘 성장의 흔적을 눈치채고

“보영이 미스코리아 나가도 되겠네~”

“다 커서 시집가도 되겠네~” 등 폭풍 칭찬을 해주실때

빈말인걸 알면서도 나는 누구에게도 받지 못하는 그런 칭찬을 들으려고

은근히 고모와 고모부를 기다렸다.

고모와 고모부는 아실까?

 

고모를 인터뷰하면서 그런 감사한 기억이 떠올랐다.

 

그리고 나와 아빠를 분리해서 생각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나는 아직도 아빠 품에 있고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의지하려 하지만

아빠는 어렸을때부터 누나가 ‘기둥’,’나무같은 존재’라고 얘기할 정도로

특유의 똑부러지고 듬직하고 울타리(?) 같은 기질은 어릴때부터도 가지고 태어났나보다.

역시, 많이 다른 면이 있다.

 

인터뷰 내내 아쉬웠던 건

지금은 안계신 할아버지(아빠의 아빠)가 너무 무서우셨던 모양이다.

시대가 그랬겠지만 아빠도, 고모도 하고싶은 일을 마음껏 하고 살 수 없었다는게

마음이 아팠다…ㅠㅠ

아빠가 아직까지도 본인에게나 우리들에게나 지나치게 엄격한 모습을 하실때도 있고..

그런 엄격했던 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으신건 아닐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건 나에겐 당연한 일인데..

인터뷰를 통해서 사람이 살아가는 환경은 또 이렇게 다르고 달랐구나. 하고 느낀다.

그렇게 아빠의 유년시절을 통해 아빠의 지금을 되짚어 본다.

앞으로는 자식이나 가족을 위해 해야한다는 책임감 말고

여태까지 고생하신 시간만큼

즐거움으로 아빠의 남은 날을 채워가셨으면 좋겠다.

 

그 간에 하지 못했던 말을 전한다는 고모를 보면서

예전처럼 다시 왕래도 잦아지고

가족들이 뭉쳐 하고싶었던 일도 다시 해보고..

인터뷰 후속으로 고모들과 함께 소원했던 여행까지 이어진다면

더욱 바랄 것이 없겠다.

잠실고모~ 고마워요.

 

 

 

다음 아빠를 찾아서는?!!!!

 

인터뷰 대신 아빠의 주머니를 몰래 습격해보려고 한다.

 

커밍 쑨~ Coming soon!

 

 

 

tjqhdud1001

글쓰기와 독서, 여행 등 좋아하는 것이 넘쳐나 행복한 사람이다. 지금은 채움에서 내가 사는 지역을 좀 더 행복한 곳으로 만드는 상상력을 실험하고 있다.

서보영아빠를 찾아서-⑧ “용석이는 나에게 기둥이다” 아빠의 누나, 잠실고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