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계의 허브를 꿈꾸던 ‘계간 만화’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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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만화에 푹 빠져 살았다. 학교가 파하면 만화방에서 살다시피 했는데 그것도 모자라 한 보따리씩 빌려와 밤새 읽었다. 불 끄라는 부모님의 성화에 이불을 뒤집어쓴 채 손전등을 비추며 읽다가 이불속에서 나오면 날이 훤히 밝아 있었다. 그런 열정이 중학교까지 계속되었다. 만화가가 되고 싶어 스케치북에 열심히 삽화를 그리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만화를 졸업했다. 이유가 뭔지는 모르겠다. 아마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소설책에 푹 빠져 그랬던 것 같다. 그 후로 30여 년을 만화를 잊고 살았다. 아이들이 어릴 때 TV에 방영되던 ‘들장미 소녀 캔디’나 ‘우주소년 아톰’ ‘은하철도 999’ 같은 애니메이션을 넋 놓고 본 기억만 있다.
‘만저봐’에 들어오면서 새로운 만화 세상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다양한 만화들이 숨은 보석처럼 곳곳에 박혀있었다.
지난가을 언리미티드 에디션(독립출판 제작자들이 모여 자신의 창작물을 판매하는 행사)에 갔다가 눈이 번쩍 뜨였다. 듣기도 생소해서 별 기대 없이 갔었는데 그렇게 사람이 많이 몰릴 줄 몰랐다. 마니아층이 두텁게 형성되어 있었다. 길게 늘어 선 줄 사이에서 ‘독립만화’의 시발점은 어디일까 생각해봤다. 그러다 ‘계간 만화’ 이야기를 들었다.


‘계간 만화’는 상업만화 즉 주류에 대한 대안으로 만든 잡지다. 만화의 침체기를 헤쳐 나가는 방법으로 서울산업진흥재단 서울애니메이션센터가가 제작비의 상당 부분을 지원했다.


마침 ‘계간 만화’ 발행인이었던 이재식 대표가 부천 만화영상진흥원 사무실을 두고 있다기에 찾아가 보았다. 어려서부터 만화에 관심이 많았고 20대까지 만화가를 꿈꾸다가 꿈을 접고 만화 편집의 길로 뛰어들었단다. 현재 ‘씨엔씨 레볼루션’이라는 만화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는 그는 상업만화 발행인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었다. ‘이미테이션’ ‘허니 블러드’ 등 몇몇 만화들이 히트를 치면서 우리나라 상업만화의 탄탄대로를 달리고 있다. (계간만화 시절 씨엔시 레볼루션을 그대로 회사명으로 쓰고 있다.)
그렇다면 2000년 초반에 만든 ‘계간 만화’는 어땠을까?

400쪽 분량의 두꺼운 책에 많은 작가들의 작품이 실렸는데, 생각지 못했던 기발한 생각과 창의력이 지면 곳곳에 숨어있다. 마치 여러 장르의 책을 한 번에 보는 종합지 느낌이 들었다.
창간 글 첫 줄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이 지면이 창작과 비평의 치열한 장이자 만화의 꿈, 만화를 사랑하는 모든 독자의 꿈이 함께 영그는, 새로운 감성과 상상력의 인큐베이터가 되기를…’ 하지만 제작을 맡았던 새만화책은 2003년 봄, 여름 호를 내는 것으로 그쳤다. 제작비 지원자인 서울산업진흥재단과 편집 방향이 맞지 않아서였다.
잠시 틈을 둔 뒤 2004년 봄 호부터 이재식 대표가 출판을 맡았다. 당시 30대의 나이로 젊음과 열정으로 똘똘 뭉쳐있던 그는 계간 만화 출간에 온 힘을 다 쏟았단다.
“서울산업진흥재단의 요구와 절충하며 서울시에서 정해준 룰대로 했지요. 텍스트, 정보, 평론을 싣고 대안만화의 목소리도 내기로 했어요. 연재는 물론이고 단편과, 콩트, 유명 작가와 평론가의 대담으로 우리 만화가 가야 할 길에 대해 폭넓고 진지하게 의논했습니다.” 그 결과 창의력 넘치는 작가, 기발한 아이디어를 담은 작가, 참신한 작가들을 많이 발굴해 냈다는 평을 들었다. 계간 만화는 상업과 대안의 절충이었다. 서울시의 지원을 받았지만 작가들에게 고루 기회를 주기 위해 여러 작가를 싣다 보니 제작비도 모자랐다. 나머지는 책 판 수입으로 대체했다.


그러나 너무 앞서 갔던 것인지, 정부의 정책이 바뀌어서인지 2005년 여름 호를 끝으로 계간만화는 폐간을 하게 된다. 만화계의 허브 역할을 다짐하며 희망차게 출발했던 계간 만화는 그 후로 현재까지 더 이상 출간하지 못하고 있다.
온 마음을 다해 열정을 쏟았던 이재식 대표는 지원사업이 끝난 이후에도 사업의 연속성을 위해 서울시에 조금이라도 추가 지원해 주면 어떻게든 출간해 보겠다고 호소했지만 아쉽게도 그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어느 장르나 그렇겠지만 예술가들은 가난합니다. 90년대까지만 해도 활성화되었던 만화시장이 축소되어 점점 시장이 줄어들었지요. 만화를 그리지만 실어줄 곳이 없고, 원고료가 없으면 생계를 유지하기가 힘듭니다. 책은 팔렸지만 시장이 워낙 좁다 보니 지원이 없으면 끌고 가기가 힘들어요. 그래서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겁니다.”
대안만화라고만 생각했던 ‘계간 만화’가 상업성도 있었다는 이 대표의 말이 좀 충격이었다.
하지만 그는 상업과 대안의 절충이었던 계간 만화가 많은 신인 작가 발굴에 기여하고 상업적인 만화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고 자부했다.


종이책 ‘계간 만화’가 폐간된 지 10년이 훌쩍 넘었다. 그 뒤로 새만화책이나 몇몇 종이책이 출간되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요즈음엔 네이버나 카카오를 통해 웹툰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시장의 규모가 커지고 있다. 한국식 웹툰을 선호하는 중국시장은 공략할 만하다는 그에게 독립만화의 시장 가능성에 대해 묻자.
“인디나 독립만화를 디지털에 접목시켜 유통 통로를 넓히면 시장의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했다.
굳이 그가 독립만화의 가능성을 점치지 않더라고 2016년 언리미티드 에디션에서 독립만화의 가능성을 확실히 느꼈다.
이제 정부기관의 지원에 기대지 않고도, 참신한 작가를 발굴해 그들이 빛을 볼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매체 ‘만저봐’의 ‘독립만화세상’이 ‘계간 만화’ 취지처럼 만화계의 다양성을 구축하는 허브 역할을 하길 기대해본다.

hanregina

겉모습과 달리 빈틈 많고 털털한 사람. 17년째 수필을 공부하면서 수필집 '가시연 빅토리아' 겨우 한권 냈다. 10년동안 부천시청 복사골기자로 활동하다가 이제 시민 만화기자로 첫발을 내디뎠다. 내 주변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카툰으로 표현하고 싶어 '열공' 중이다. hanregina@cartoonfellow.org

한 성희만화계의 허브를 꿈꾸던 ‘계간 만화’를 찾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