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람푸에서 여섯날

7 comments

여행하지 않은 사람에겐 이 세상은 한 페이지만 읽은 책과 같다.
-아우구스티누스

여행과 병에는 자기 자신을 반성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다케우치 히토시

참 좋은 말들이지만 쉽게 실행하기 어려운것 처럼, 살아내는 것 그 자체에 지치고 힘들어도 누구든 잠시 일상을 멈추고 어디든지 잠시 다녀오기란 결코 쉽지 않다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특히 홀몸이 아닌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는 주부들의 입장에서 이는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요즘은 예전 같지 않아 많은 이들이 각자의 삶을 돌보기 위해 투자를 많이 하고 산다는걸 주위에서 흔히 보고 듣곤 한다.
그것도 개인의 취향에 따라 여러 종류로 나누어지는데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을 두루기도 하고, 좋은 차를 타고 좋은 집에 살기도 하며, 온 세계를 여행하는 사람도 있다.
어떻게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떤 계획이든 꿈꾸는대로 나의 삶을 개척 할 수 있다는 것은 그 무엇에도 비유할 수 없이 행복한 일이다.

북적거리는 주위의 시선과 환경에서 벗어나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는 것!
살면서 수백번 넘게 생각해본 일이지만 부끄럽게도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 항상 아이들과 가족이 함께였고 시간이 지나면서 후회만이 나를 슬프게 했다. 이제는 예전과는 다르게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떠날 수도 있으나, 추억은 지금 만들 수 있는게 아니다.

‘방람푸에서 여섯날’ 은 작가가 어느날 무력한 삶에 실종되어있는 중요한 무언가를 찾기 위해, 잠시 일상을 멈추고 무계획이 주는 막연한 기대감을 바탕으로 두 번 가 본 적이 있는 방콕의 서쪽 구시가지인 방람푸로 일주일을 다녀오면서 써내린 여행기이다. 나도 종종 맛있는 음식을 만들면서 나만의 레시피로 책을 내거나, 이곳 저곳으로 여행을 다니면서 담는 아름다운 사진으로 책을 내고싶다. 라고 생각을 가끔씩 해 본 적이 있어 더욱 반갑게 읽어내려갈 수 있었다.


여행을 하다 보면 여행지에서 여러 커플들을 만나게 된다. 그 사람들을 보다 보면 일상 생활에서 종종 잊기도 하는 아름다움이 가득 묻어 난다.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다니는 부부, 예쁜연인들, 무엇보다 인상적인건 노부부의 모습이다. 몸도 마음도 건강한 노년은 우리가 꿈꾸는 아름다운 인생 그 자체가 아닐까?

글쓰기에 거창한 의미를 두지 않고 생각을 정리하는 수단으로 글을 택했다는 작가는 ‘글을 쓰는 시간’ 이란 ‘생각을 정리하고 기록 해 두는 시간’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번 여행을 통해 해야할 유일한 일이라고 작가는 역설한다.
직업이 작가인 이유로 여행을 가서도 하루에 글을 쓰기로 한 시간은 상당 부분을 차지하지만, 그런 자기만의 독립된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도 여럿이 아닌 혼자만의 여행이 주는 특권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룸피니 공원’은 별 기대없이 우연히 조우하게 된 공원이다.
엿새동안 틈나는대로 방문한 곳, 사람들이 많았지만 이상하리만치 조용한것이 신기했고 사람들은 그저 벤치에서 신문을 읽거나 벤치에 기대어 졸거나 아주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고 어떤 사람은 멍하니 강가를 바라보며 앉아서 휴식을 취하는 곳이었다.
사람들로 북적되는 서울에서는 보기 드문 풍경들이었다. 그리고 시끄러운 음악소리 보다는 공원의 맑은 공기와,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들이 내는 소리가 더욱 아름다운 곳. 그런곳으로 여행을 떠나고 싶은 건 내 자신은 물론이고 대부분 사람들의 로망일 것이다.

아이들을 키울 땐 아이들 속에서, 아이들과 함께 지지고 볶으며 때론 안달복달하며 그것이 여행인 양 정신없이 살아 왔다. 정신적 위안을 떠나 육체적인 도리로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계속되는 여정 중에 더위가 지독한 어느날 탐마삿 대학교와 예술대학인 씰파곤 대학교를 탐방했다. 캠퍼스 곳곳의 예쁘고 눈에 띄는 곳들과 그리고 삼삼오오 앉아서 얘기하고 있는 풋풋한 대학생들을 보고 작가는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띄며 잠시 생각한다. 마치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처럼,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가는 것들이 있었다.
작가는, 이제 대학생의 모습을 통해 현재의 모습보다는 바야흐로 과거의 모습을 비추어보게 된 나이가 되었음을 새삼 신기하게 느낀다.
나로서도 너무나 공감이 가는 대목이었다.

수요일에 들렀던 ‘사란롬 공원’
공원이라고 하면 누구나 휴식과 편안함을 목적으로 방문하여 생각의 보따리를 채우러 찾는 곳이다. 화려하고 예쁘지 않아도 자연이 주는 자연스러운 아름다움과 자유로움에 빠져 들어 시간의 개념을 잊어버리는 곳.
그런 곳이 공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나라에도 아직 때묻지 않은 자연이 가득한 그런 곳 들이 많이 있어 가끔 들르곤 한다. 마지막 날 그녀가 찾은 ‘짐 톰슨 하우스’ 도 마찬가지였다.
입구의 열대식물이 가득한 정원의 아름다움은 인위적이면서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고 설렌 마음을 안고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어떤 곳을 처음 방문할때는 화려한 곳이나 널리 알려진 곳, 혹은 누구나 가보고 싶었던 곳을 지나치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 이들을 둘러 보게 된다. 여행에서 좋은 체험은 화려한 유적지나 명소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라고 작가가 말하듯이, 두 번, 세 번 방문하게 되면 기존 여행과는 다르게 골목골목 잘 알려지지 않은 장소들을 둘러보고 탐험해 볼 여유가 생기는것은 여행의 또 다른 장점이다.

목요일 날의 아침, 작가는 게스트하우스에서 호텔로 숙소를 옮겼다. 투숙하게 된 호텔은 누구나 희망하는 휴가의 전형적인 풍경을 그려내고 있었다. 강이 보이는 전망 아래 테라스에는 숲이 우거져 있고 바람이 불어 나무들이 내는 소리는 마치 그녀의 지친 마음을 어루어 만져주는 듯 했다. 테라스에 앉아 나무가 들려주는 자장가는 그 옛날 엄마의 달콤한 속삼임이었다.

마침내 여행의 마지막 날이 밝고 호텔에서 조식을 먹고 있던 작가는 서양인 노부부의 아름다운 풍경을 본다. 할아버지는 다리 한 쪽에 목발을 짚고 다녀야 할 정도로 불편한 상태로 보였지만, 그 부부의 표정에서 어떤 신체적 불편함도 그 아름다움을 이길 수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과 노부부와 같은 그림을 그리고 싶듯이, 부부의 아름다운 표정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아름다운 언어로 이를 말하고 있었다.

마지막 목적지로 그녀는 짐 톰슨 하우스근처에 있는 방콕아트센터를 방문하기로 정했다.
갤러리에서 강한 인상을 주는 작품들을 보면서 그녀는 이틀 전에 예술학교 갤러리에서 본 학생들의 그림이 떠 올랐다. 그들도 졸업을 하고 전문적인 작가가 된 후에는 본격적으로 전시도 하고 좋은 그림들을 그리게 될 것이기에, 마치 예술학교와 아트센터가 같은 연장선상에 있는 장소로서 느껴졌다. 특히나, 9층 갤러리에서 전시되고 있었던 어느 원로 작가의 회고전을 보면서 그림도 한 사람의 인생을 아름답게 연속적으로 나타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들을 보고 그녀는 작품 자체의 아름다움이 선사하는 순수한 감동을 느끼면서 어느새 갤러리의 작품들과 자기 자신의 그림을 비교해보며 자신의 작품을 시시하게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자기 자신과 자신의 작품에 대한 부끄러움을 깨닫는 순간, 앞으로는 보다 괜찮은 그림을 그릴 수 있을 것 같다는 묘한 희망과 자신감을 얻는다. 그것은 갤러리의 전시가 작가에게 영감을 준 무엇보다 소중한 경험이었다고 한다.
여행을 통해 자기 자신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하고 영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일까!

여행을 마치면서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오는 길에서 그녀는 방콕의 거리, 방콕의 진짜 모습들을 말하고 있다. ‘공항’! 비행기들과 여행자들이 가득 차있는 표준화 된 공간이지만, 공항과 여행은 닮은꼴이다.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지고 출발지와 목적지가 다른 새로운 세상을 연결하는 곳이자, 설렘과 기쁨이 있고 그로 인한 새로움으로 부터 자극 받는 곳! 여행은 공항에서 시작되고 공항에서 끝난다.

이곳에서 작가는 시간의 소중함에 대해 깊이 생각한다. 천천히 그리고 아주 오랫동안 인내심을 갖고 시간을 들여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일들이 세상에는 너무나 많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서울로 돌아가서도 소소한 시간의 아름다움을 느끼며 살 수 있을까?” 하고 자신에게 반문한다.
마침내 서울로 돌아오는 공항에 도착한 작가는 수많은 공항안의 사람들을 마주하지만, 예전과는 다르게 한사람 한사람들이 세세히 눈에 들어 오고 자세하게 보게 된다. 조바심이 난 사람, 지쳐 보이는 사람, 권태로워 보이는 사람, 평안해 보이는 사람, 어디로부터 떠나 온 것만 같은 사람, 떠나갈 준비를 하는 사람이 공존하는 공항은 그곳의 특별한 공기가 사람들을 타고 전해진다.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있지만, 그들 모두 이 여정의 끝에 제자리로 무사히 돌아 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만큼은 똑같을 것이다.

밤에서 아침으로 향하는 경계를 시간이 아닌 공간으로 넘어가는 순간, 방콕으로 오면서 빚진 두 시간을 서울로 돌아가며 갚는 것만 같아 마음이 한결 가벼워짐을 느낀다. 어느새 방콕의 밤은 두 시간의 거리만큼 멀어져 갔고 서울의 아침은 여섯날이 하루인냥 그 익숙한 표정으로 작가를 반겨 주었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 지름길을 안내하는 표지판처럼 여행도 삶의 또 다른 시작을 암시하듯 ‘이것은 끝이 아닙니다’ 란 문구를 맞이하고 나니 마치 나도 작가를 따라 방람푸에서 여섯날을 보내고 돌아온 것처럼 뭉클한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iamport_payment_button title=”책구매” description=”아래 정보를 기입 후 결제진행해주세요.” name=”방람푸에서여섯날” amount=”13000″ pay_method_list=”kakao,samsung,card,trans,vbank,phone”] 13,000원 결제하기 [/iamport_payment_button]

정 정숙

각자의 출발지와 목적지가 다 다른 세상에서 설렘과 기쁨을 안고 새로움을 찾아 떠나는 나만의 길..감미로운 음악, 따뜻한 커피, 그리고 아름다운 책이 있을 그 곳을 향해서..

정 정숙방람푸에서 여섯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