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그 카툰 – 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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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시인이로소이다’는 시대가 만든 그림이었다

시인이로소이다 ⓒ 허어

그 때 그 시절 만화작가의 고해성사

극화, 스토리만화를 소설 혹은 산문이라고 한다면 카툰은 시(Poetry)라고 모든 사람이 말한다. 그래서 그런지 카툰 무크에서 내 만화[시인이로소이다]의 탄생 배경을 말해 달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되돌아보면 40년 이란 세월도 지났고 크게 성공한 작품도 아닌데 쑥스러운 고해성사를 하게 되었다.

1968년 주간한국지 10만원 현상 당선작 [장안치]연재가 끝난 후 (남들은 선풍적인 인기가 있었다고 하지만) 쪼매 인기가 있었다고 이듬 해, 1969년 계속 연재를 해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장안치]는 그림이 서툴러 말(대사)로 하는 에세이풍의 만화로 문제 제시를 하고 답하는 형식의 말 플레이로 엎어 치는 내용이라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 두 번이지 계속하면 극적인 변화가 없어 한계가 있었다. 요 몇 년 전 패턴이 비슷한 [광수생각]도 오래 지속할 수 없었던 이유도 그것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1969년도는 혁명 과업 외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살벌한 군사정권 치하이라 언론자유가 전혀 씨알이 먹히지 않을 때였다. 극화는 그림과 구성 능력이 없고 순정만화 역시 그림이 안되고 그래서 고육책으로 생각한 것이 시적인 만화를 그려보는 것이 어떨까 생각해 봤다 당시는 암울한 시기라 풍자시와 사회고발적인 시가 많이 발표될 때라 모른 척 하고 시에 편승해 가려운 곳을 긁고 꼬집을 곳을 꼬집자고 생각했다. 그 무렵 한국일보사에는 시인 소설가들이 많았다 신석초 씨를 비롯 박성룡, 이성부 채희문, 신세훈, 신동한 소설, 김용성, 안정효, 김청, 오인문, 최정협 등 20여 명 이상이 있었고 술시만 되면 모여드는 고은 천상병, 박봉우 시인들이 있어 그들에게 소재도 얻고 정보를 얻으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장안치]를 연재할 때 부터 황활원 씨가 운영하는 청진동 최초의 민속주점 [주촌]에서 술시마다 만난처지라 서울 시내 모든 시인과 어울려 다녔다. 길 건너 종로구청 앞에 신구문화사가 있어 이문구씨 일행, 동아일보 뒤편 낙지골목에 일자리 없는 시인 묵객들이 즐비하게 있었다. 예를 들어 데모 진압이 심할 때는 권일송 씨의 시 ‘아 이땅은 우리에게 술을 먹게 한다’와 슬픈 일이 있을 때는 박재삼 시인의 ‘아 울음이타는 가을 강’ 한 구절이면 만화 한편이 쉽게 생산되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었다. 또 자진해서 시집을 출판한 시인이 책을 보내 자기 시를 소개해 달라는 부탁도 받게 되어 시집 판매에도 일익을 담당하게 되어 뿌듯한 나날을 보냈다. 그러나 그것도 끝이 있는 법이라 이틀이 멀다하고 같이 술 마시던 천상병 시인이 동백림 간첩사건에 연루되어 중앙정보부에 끌려 가고 뒤이어 김지하 시인이 [오적]을 발표하여 끌려가고 명동 성당에서 발행하던 게재지 [광장]이 폐간되자 만화[시인이로 소이다]도 맥이 빠지기 시작했다.

만화연재를 접고 꿈도 야물게 ‘귀농’이란 아름다움에 끌려 경기도 양주군에 2년 동안 은둔 생활에 들어갔다. 모기는 뜯어쌓고 먹을 것도 없는 가운데 일간스포츠지를 창간하니 빨리 나와서 귀순하라는 유인물을 받고 다시 4칸 만화를 그리게 됐다. 또 똥고집으로 만화 주인공을 메이저가 아닌 마이너 리그의 찬밥[미스터 한데]라고 지었다. 연재 중 우여곡절은 지면 관계로 줄이고 만화와 또 한 번 이별하고 편집기자로 변신해 1년쯤 잘 지내는데 [미스터 펀치]와 만평을 연재하라는 특명을 받고 연재했으나 쉽지 않았다. 김상택이 스트레스로 사망하고 김성환, 정운경이 숨죽이고 있고 만평의 달인들이 만화를 떠나 후진만 양성하는 교수로 가는 것이 이해된다. 만평은 내가 무심이 던진 돌맹이에 개구리가 죽는걸 보고 촌철살인도 못할 짓 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리라.

끝으로 십여년전에 교과서에 수록된 시를 중고생을 위하여 만화로 그려 달라는 부탁을 받은 적이 있어 곰곰히 생각하니 시 원작자에게 모두 양해를 구하기도 힘들고, 가령 한용운님의 [님의 침묵]을 만화로 그린다고 치자 ‘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 하였습니다’ 라는 대목에서 ‘나는 님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라고 하며 주인공의 손목을 꽉 잡았다고 하자 이렇게 되면 시가 완전 망가가 되는 것이다. 국민시를 완전히 개그로 만드는 일이니 이건 아니다 하여 단호히 거절했다. 지금은 시를 만화화 하기는 어렵다 [시인이로소이다]는 그 시대의 산물이지 정보화 시대에는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이 시대는 시 한편과 같은 주옥같은 카툰 한편에 인생의 희로애락을 담아내는 시대가 온 것 이다. 외로운 카툰 작업자를 진심으로 존경한다.

ⓒ 허어

© 만저봐 & 카툰캠퍼스

인삼

책을 읽고 상상하기를 좋아하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 침대 머리맡에는 늘 책이 있어야 안심하고 자는 책 사랑꾼♡

Jihyun Youm그 시절 그 카툰 – 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