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를 찾아서-④ “용석이는 나에게 관포지교이다”

10 comments

 

용석이는 나에게 관포지교이다

용석이형은 나에게 이다

수아저씨는 아빠와 한 마을에서 나고 자란 고향친구다.

왕석이 삼촌은 아빠랑 사촌이다.

그러니까 상수아저씨랑 왕석삼촌은 한 마을 사람이다.

익산 강경에 내려온 김에 일타쌍피(?)로 두 분께 아빠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사투리 때문에 번역 작업이 조금 힘들었던 것도

인터뷰의 추억이니까 기록해둔다.

재밌는 것 한가지,

아자씨들은 처음에는 ‘뭐 인터뷰를 해~’ 이러시다가도

이야기를 하다보면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 많아서 탄력을 받으시는지!

추억에 젖어 신나게 얘기하신다.

자꾸 군대얘기와 동물 사냥, 역사 얘기 등 삼천포로 빠지는게 문제였지만..

장장 2시간에 걸친 긴 인터뷰를 소개한다.

상수아자씨~ 우리아빠와 유년시절을 함께한 친구로써!!

맨 처음 기억나는 아빠와의 추억은 어떤거에요?

맨 처음 만난건 글쎄..

딱히 기억은 없는데.. 하튼~

아주 더듬어서 올라가면

아빠 꼬마적에는 언덕위에 집이 있었어.

지게지면 바듯이 올라갈 정도의 오솔길 사이를 지나서

언덕 위에 용석이 집이 있었어.

초가집이에요?

그럼 그때는 다 초가집이였지

기와집은 한두군데 밖에 없었어~

그러다가 지금 거 고산리에 집터있지?

거기 그 길가 집에 살았어. 맞은편이 이발소였고..

아저씨네는요?

내가 세 살때 쯤인가 용석이네 맞은편에 살았고

그러다가 안동네로 이사갔지~

안동네로 이사가서 십수년을 살았고..

울아빠가 종종 상수아저씨 얘기를 하셨는데

두분이 단짝친구 이런거 였어요?

친하다기보다 빨가둥이 친구지~

친하다고 얘기할 수 없지~

옛날에는 그 어디 모여서 놀러다니고 하는 거 없어 해외가고~

그 동네에서만 마을애덜이 모여서 노는거였어~

(마을 애들이 아니고 마을 애덜 ㅋㅋㅋ)

자치기 하고 팽이돌리기 하고

울 아빠 어떤 어린이였어요? 기억나는대로 말해주세요

용석이는 바둑을 좋아했어~

같이 바둑뒀지~

용석이가 나를 가르쳐줬거든?

할아버지가 용석이한테 바둑을 알려줬고

용석이가 그걸 나한테 가르쳐줬지

알 따먹는 것을 알려줬지~

~ 지금도 집에서 바둑두시는데 그때부터 바둑을 좋아하셨군요~~^^

아빠 말로는 싸움도 잘했다고 하던데

바다 어디 갔을 때 둘이 몇 대 몇으로 싸웠다고..

(한참 생각)

.

.

.

그럼 나랑있을 때 아닌디?

아~ 바다면 그 거긴가?

지금 군산 있지? 거기 선유도에 갔는데…

지금 거기가 뭐 뭐라거지?

 고군산군도

군산에서 두어시간 가량 배타고 들어가는데 있어.

고군산군도 얘기해줄게

거기 니네아빠랑 갔는데

외지에서 온 아가씨 3명도 있는거야

그러고? 무더기로 한 20명이 놀러온 애들이 있었어

논두렁 깡패였나봐 걔들도 ㅋㅋ

(논두렁 깡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두렁에 관한 설명 약 1분간..)

아가씨덜하고 지들이 어울리고 싶어가지고

우리있는데 와 가지고 텃세를 부리는거지 인제-

니네아빠랑 살살 실랭이 하다가 같이 타고 있던

아줌마, 아저씨가 좋게좋게 말렸지~

입싸움하다가ㅋ ㅋ

그런 일이 있었어요?!

근데 우리 아빠는 상수아저씨를 용감하고 불의를 못참는 분으로 기억하고 계세요.

아저씨, 정의의 사도였다면서요?

 글쎄 몰라 난~ 난 소심혔어.

그건 모르고..

학교다닐 때 기억나는건..

자전거타고 한 6km 타고 다녔어~

금강 뚝방길 따라서 자전거 타고 다녔지.

지금은 큰 도로로 다니고 제방으로는 잘 안다니지..

그때만해도 비포장길이라..

그때는 자전거가 자가용이였어!

비가 오나 눈이 와도 타고 다녔지.

학창시절에 공부 잘하셨어요?

난 못혔지.

니 아빠는 공부를 잘했지.

그때만 해도 니네 할아버지가 엄해가지고 까불고 밖에 못돌아다녔어.

학교갔다오면 책이나 읽어라.. 하는 분위기 였다니까~

할아버지 돌아가시기 전에 엄청 엄했지.

느네 아빠가 외아들이라 느네 할아버지가 쪼꼼 엄하게 키웠지..

그렇게 많이 맞았다든데.. 정말로 많이 맞았어요?

아빠 잠버릇 나쁘다고 잠자는데 회초리들고 맞았다고 그랬어~

니네 아빠만 맞은게 아니라

대전 큰아빠, 밑에 돌아가신 양반들 둘, 천석이 삼촌 다 엄청 맞았어~

사촌개념이 없어 그때는~ 우리 집안만큼은 친 형제간처럼 지냈다고.

근게 할아버지가 일찍 일어나가지고

눈온 날 집앞에 눈을 안 쓸었다, 그러면 다 맞았어, 여직까지 쳐 자빠져 잔다고..

조카들 진짜 많이 맞았어…

본인 집앞에 눈 일찌감치 쓸어놓고.. 그 새벽에

울 집에 왔는데 눈이 안 쓸려있고 자고있다-하면 난리가 나브러

써글노무새끼들 이러면서 올려붙였지 그냥

  1. (사투리 작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작대기로 두드려맞았다..

상수아저씨도 혼났어요?

나는 안혼났지~허허

용석이가 슬슬 겼지. 밖에 나가려면 아버지 눈치를 많이보고 나왔지.

집밖에를 잘 못나왔지, 공부하느라고.

뭐 때문에 그렇게 엄하셨어요?

딸래미 한테는 안그러고 외아들이라 공부쪽으로 엄했다.

니 아빠~ 힘들었지~

 지금 할아버지가 그렇게 안해서 지금 이만하게 됬어~

공부 안하고 까불러 다녔으면 지금 이렇게 됬겠냐..

용석이형도 공부하기 싫다고 나간적 있었어 한번~

21살 때 부산가서 한 6개월인가 있었어!

할머니 몰래 나갔어..

신발공장 갔나…

21살 먹었을 때 니네아빠 왈

부산에 있을 때 자기가 부르면 사람들이 막 피하고 그랬댜..

 우리 집안이 그런가봐~

꼭 강남 터미널에서 다른 사람 다 지나가는데

나만 얼굴땜에 걸리고 그랬다~

부산 하숙집에서 용석이가 나오면 다 도망갔띠야~

내가 보는 용석이는 순하고 점잖은 사람인데

아빠보고 도망갔댜

대화가 없어서 인사하고 지내고 그랬으면

그런일이 없었겠지만 인사도 별로 않고 그랬으니까

구면이다 보면 그런게 없겠지만

아는 사람들끼리는 말을 잘하는데

첨 보는 사람들한테는 대화가 없거던

간지 조금 돼서 부산에 있다고 누나하고 얘기가 되고 해서..

지금 보면 등산화같은 거 만드는 공장에 다녔다.

사무직으로 들갔는지, 생산직으로 갔는지….

태화고무 들어가서 뭔일 허셨냐고 물어봐

그러다가

아빠 28-29살 때.. 내가 장가갔을 때 청주 있었어

삼촌이 군대갔다와서 니네엄마 결혼식 갔다 간다고

늦어가지고 탈영병 될뻔했다고

90년대 제대했으니까 89년쯤…

그때 엄마아빠 결혼했었다

이상하게 그때 포상휴가를 나왔는데 결혼식날 내가 복귀했다.

부대 복귀할라고 군복입고 아버지랑 어머니가 가는길에 청주 잠깐 들렸다가자..

복귀 날 할머니,할아버지 모시고 바로 출발한다는 것이 한잔허다가 한 30분 수그리고서는

버스를 탔는데 다 왔겠지-하고 일어났는데 차가 맥혀서 고속도로 한가운디네..

5분 지났던가 전엔가 들어갔어

내 후임이 위병소까지 나와있더라고

하도 안들어오니까

한 30분은 중대장이 저기를 봐줘

한시간까지는 봐줘

근데 5분 정도 +,- 쳐서 탈영안됬어….. 그게 기억에 남어

동두천에서 내려서 술,담배,닭을 사갔지

휴가를 나왔다 들어가면 소대원들 술한잔씩 먹을 수 있게

소주 같은걸 사가지고 갔어, 담배 한갑씩 돌려고

야~ 니네는 세련됬다. 외박 나갔다오잖아?

우리는 담배한가치씩 쭉~ 돌렸어

담배를 지급해줬어

하루에 한갑인지 어쩐지는

일인당 한달에 20갑인가 나왔어

그래서 군대가면 담배 배운다고 하는구나..

엉~ 담배 일발 장전! 이라고 했어

10분간 휴식하면 담배를 피운다

한가치 담배도 나누어 피자 – 군가중에 그런게 있다~

군대 얘기 이제 그만~~!!하시구유.

우리 아빠 얘기 좀 해주세요~

또 기억에 남는게

.

.

.

할아버지가 기사리막(게 그물망) 쳤지.

그때는 사투린가 뭔가 ‘게’를 ‘기’라고 했어.

비올적에 게가 많이 잡히거던?

니네 아빠 쪼그려 앉아가지고

밤에 촛불을 켜놓고 게 잡으면 하루 저녁에 한통씩 잡았어요.. 한 200마리..

메기, 빠가사리, 민물뱀장어까지 있었어

한겨울에도 물고기가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니네아빠가 학교 다닐때는 먹을것이 귀했어

요즘은 배고파서 굶어죽고 그랬다고하면

‘라면끓여먹으면 되지?’ 이러잖아

그때는 먹는게 귀했어

참새도 잡아먹었다고 하던데요 아빠가

 그때만해도 공기총으로

총에 압을 넣어서 참새 잡아먹었어~

손잡이에 쇠로 된 구슬을 넣어가지고 참새가 있으면 쏜다?

쫙 총알이 퍼져나갈거 아니야

참새가 겨울에는 토실토실해, 겨울에는 먹지~~

껍데기 베껴서 가슴살 하나 잡으면 소주가 몇잔이다

어른들 틈에 꼽사리 껴서 먹었지

요즘도 가스총으로 비둘기 잡으러 간다?

 허허 불법이다 그거이~

추억이 많으시네요. 근데 다들 각지에 살면 왕래가 좀 뜸해질 것 같어요..

먹고살려고 그러지.

서울에 있을때만 해도 자주 보고..

직장생활을 다 하다보니까 그러다보면 왕래가 줄어드는거지 뭐

아 또 생각나는 거 있다.

(대화는 삼천포로 저멀리.. 아저씨..)

니네 아빠는 바둑을 워낙 좋아해가지고

나랑 한 수 겨뤄서 이기면 그날 기분이 좋았다

중3때 교복입던 시절..

내가 용석이보다 실력이 많이 떨어졌는데 동네 선배들하고 몇 번 뒀더니 실력이 많

이 늘었다?

니 아빠가 한번씩 지고 그러면 기분이 그렇게 좋았어

여름에 나무그늘 밑에 가보면

바둑판, 장기판 쫙 있었지~

근데 울 아빠 인기 많았어요? 아빠가 많았대요.

뭐.. 점잔혔어.

보편적으로 니네 할아버지가 뭐라 글까- 외골수적인 아들에 대한 집념이 있었나봐.

니네 아빠 피곤했지.

나가지도 못했지.

너네 할아버지가 무서웠어~ 할아버지가 기운이 장사였어

힘이 좋았었어

옛날에 쟁기질할 때 논갈다가

산토끼가 이만한걸 잡아다가 마당에 놨는데 굉장히 컸어

작대기로 두드려 패다가 잡아왔어

아빠의 연애담은요?

연애?! 없어~~

무슨 연애야~

아빠 학교다닐때도 특별히 뭐.. 여자 쳐다보지도 못했었고

그런 일은 없었다..

생긴게 크게 잘생겼다거나..하진 않으니까..

자화자찬이지… 스스로 그런게 있었겠지

귀한 아들이었겠지 외아들이니까

공부도 조금 했고..

공부를 잘허는 애들은 어른들이 조금 귀하게 여겼지 그뿐이야~

떠받들여줬어 공부 잘하는애들을

진실이 하나하나 밝혀지고 있네요..

! 그러면 이제 시간이 다 되었으니까..

우리 아빠를 한마디로 표현해주세요..

(긁적긁적.. 침묵의 1분…)

.

.

.

.

.

.

아저씨 먼저!

.

.

.

“뭐….. 많은 왕래는… 안하지만…… 계속 보고싶고……

끝까지 우정을 지키는 친구이다…….??“

그러니까 그걸 한마디로..

“용석이는 나에게 관포지교이다”

삼촌은?

“뭐긴 뭐야~ 형이지…”

그러니까 어떤 형

사촌 형중에도 마음이 끌리는 형이다

그러니까 한마디로요

용석이 형은 나에게 ‘형’이다..

** 인터뷰 후기!!

익산 강경.

울 아빠의 고향에 내려왔다.

나에겐 제2의 고향처럼 이 곳에 오면 마음이 편안하다.

반겨주는 외할머니도 계신다.

여기서 나는 아이돌보다 더한 대접을 받는다.

버스를 기다리면 ‘오메~ 뉘집 딸래미가 이렇게 예뻐?’라고도 해주시고

용석이 아빠 딸이에요. 하면 ‘용석이는 못생겼는디 딸은 이쁘네~’라고도 해주신다.

인터뷰 끝나고 상수아저씨한테 갈비도 얻어먹었다.

삼촌은 딸기니, 오렌지니, 시내 초입에 있는 과일가게에 들러

한 손가득 내 손에 들려주셨다.

그 정도로 정이 철철 넘치는 곳이다.

시골에서 왜 연고가 중요하다느니, 텃세가 심하다고 하는지 알 것 같기도 하다.

이렇게 아는 사람이 있으면 만사해결이니!

(중국 꽌시도 아니고.. 꽌시보다 더하네..)

예전에는 지나가다 시비만 붙어도 ‘니가 우리 가족을 때려?’하고 패싸움이 날 정도였다고 하니

가족 사랑, 마을 사람 사랑이 대단했나보다.

눈 앞에 생생히 그려졌다.

아빠가 게 잡는 모습, 참새 구워먹는 모습, 금강에서 헤엄치던 모습,

교복입고 자전거로 등교하는 모습, 여자들 앞에서 가오잡는 모습..

지금과는 또 다른 아빠 고향의 무성한 나무와 풀, 계곡, 물고기, 새 등을 상상하면서

아빠도 나랑 비슷한 시절이 있었다는 걸 상기하면서

생생히 눈앞에서 재현되는 느낌이 들었다.

인터뷰 하지 않았으면 이 생생한 걸 어떻게 내가 들을 수 있을까?

아빠의 인생에 가까이 갈 수나 있었을까?

내가 태어나기 전 아빠의 인생을 초, 중, 고, 성인 시절을 찬찬히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또 그렇게 일터를 옮겨다니던 아빠가

지리학자가 꿈이였던 아빠가

우리를 낳고 기르느라 부천에 정착해 한 직장에서 쭈욱 근무를 했다-는 사실을 듣고 철렁했다.

지금의 팔랑거리는 내 모습과 같구나-

근데 우리를 낳고 기르면서는 한 군데 정착해서 사느라 얼마나 갑갑했을까?

안정된 직장도 얻고 생활의 안정감은 얻었을지언정 자녀들을 길러내느라 어깨가 무겁지 않았을까?

아부지께 잘해야겠단 생각이 든다.

삼촌이 그랬다.

“할아버지가 엄하게 공부시켜서 니 아빠가 지금 ‘이만하게’ 사는거여~”

공부 안하고 까불러 다녔으면 지금 이렇게 됬겠냐“

상수아저씨도 끄덕였다.

공부를 잘했다던 아빠의 자랑이 거짓이 아니였다는게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아빠는, 우리는 충분하다~ 싶은데도 그렇게 잘하라고 했나보다.

아빠의 아빠가 그랬듯, 우리 아빠가 계심에 우리가 또 ‘이만하게’ 사는거겠지?

삼촌의 말은 명언이다.

아빠는, 우리에게 공기처럼 눈에 보이진 않지만 가까이서 도와주는 존재다.

강경까지 애써 내려와서 ‘참 고생스럽네’ 생각하다가

인터뷰 말미에는 ‘인터뷰 안했으면 어쩔뻔했어~’ 이 생각이 들었다.

인터뷰 하지 않았더라면 우리 아빠의 역사가, 이분들이 이렇게 얘기하고 싶었던

그들 유년의 역사가 꺼내보지도 못하고 묻히는게 아닌가!?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는 생각에 프라이드가 생긴다.

특별하지 않은 것 같지만 들여다보면 특별해지는 한명 한명의 사람!

그리고 우리 아빠이기 전에 역사를 가진 한 사람!

새삼 시민 한명한명의 소소한 이야기를 발굴해서 우리 아빠를 들여다보게 만들어준

카툰캠퍼스 만화저널세상을봐 에 감사하다.

부천으로 올라가 내 일상도 특별하게 만들어봐야지- 하고

생각한 따뜻한 인터뷰였다.

(인터뷰 마치고 옥녀봉 정상에서!)

tjqhdud1001

글쓰기와 독서, 여행 등 좋아하는 것이 넘쳐나 행복한 사람이다. 지금은 채움에서 내가 사는 지역을 좀 더 행복한 곳으로 만드는 상상력을 실험하고 있다.

서보영아빠를 찾아서-④ “용석이는 나에게 관포지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