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의 술애바퀴-두 번째 잔 “애주가&애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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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마의 술애바퀴두 번째 잔 애주가&애주가

*애주가&애주가 : 술을 사랑하는 사람&술로 애먹이는 사람

 

평생을 국가와 가정의 안위를 핑계로 애주가로 사신지 76년째 되시는 아버지.

아버지의 생간 DNA를 하사 받은 지 41년째 되는 오늘….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아버지는 지금의 내 나이 때 어떤 과연 모습으로 살고 계셨을까?

나는 어떤 모습으로 아버지를 기억하고 있을까 말이다.

이 세상에 날 태어나게 해주시고 건강히 길러주신 아버지의 헌신적인 모습도 있겠지만 이런 아름다운 기억은 마음으로 담아두기로 하고, 나에게는 파격적이었던 기억! 아버지에게는 감추고 싶은 기억! 을 꺼내볼까 한다.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 1987~1988년쯤. 올림픽 개최로 나라가 떠들썩할 무렵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어릴 적 아버지는 충청도 시골 마을의 사람 치고는 외모가 제법 뛰어났다. 그 당시 키 182의 건장한 체격에 얼굴은 훈남 스타일에 소싯적에 동네 처자 여러 명 울렸을법한 외모였다.

 

<고구마 아버지>

 

동네 친구 분들은 아버지를 “돼지”라고 부르셨다.

“우리 록이는 뭐 하나 빠지는 게 없어요”

떡대 “돼지”

얼굴 “돼지”

인기 “돼지”

30년이 지난 지금 들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아재 개그로 기억한다.

외모뿐만 아니라 자기 일에 있어서는 성실함도 “돼지” 자식들에게는 한없이 자상함도 “돼지” 친구들에게는 우리가 남이가! 의리도 “돼지”

뭐 하나 안 되는 것 없이 다되는 아버지! 동네를 넘어 읍내까지 “돼지”로 통했던 나름 시골에서 꽤 인기 있었던 아버지였다.

그런데 인류는 공평하다고 했던가….

뭐 하나 빠질 것 같지 않던 아버지에게도 한 가지 결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술~ 술~~ 술~~~ “술!”이다.

주체할 수 없는 힘을 해만 지면 풀어야 했던 아버지는 “하루라도 술친구를 안 만나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 희귀병? 과 투병 중이셨다.

그 당시 정보원들의 기록에 의하면 낮에는 “우리 동네 돼지”로 통하지만

평일 밤에는 “밤에 피는 장미”, 주말 밤에는 “밤에 피고 아침에는 더 피는 장미”였다고 한다.

아버지가 밤에 피실 때 주특기가 있었는데 피기 직전 공중전화로 집에 전화를 걸어 “한잔만 먹고 바로 출발할게! 맛있는 거 사갈께 “였다.

한잔만 드시고 맛있는 것을 사 오실 아버지를 위해 해장국을 준비하는 엄마와 먹을 것에 매우 들뜬 우리 형제.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한 시간, 두 시간이 지나고 자정이 훌쩍 지나도록 오시지 않는 아버지였다!

 

“한잔만 먹고 바로 출발할게! 맛있는 거 사갈께 “는 ”짜장면집에서 지금 출발했어요 “라는 멘트와 전혀 다를 게 없다는 것을 몇 번의 값진 경험을 통해서 깨달았다.

평일은 물론 주말에는 더욱더 어머니를 기다림에 지쳐 긴 밤 지새우게 하고, 해가 뜨기 직전 영롱한 아침이슬 맞고 귀가하는 아버지!

이런 아버지의 술사랑으로 인해 그 피해는 오로지 우리에게로 왔다.

초딩 형제의 천국인 일요일 아침! 학업의 지친 피로를 풀기 위해 늘어지게 자려했건만……

성탄 특선영화 “나 홀로 집에”가 매년 되풀이되듯이 우리 집은 일요일 아침만 되면 어김없이 아버지를 향한 “어머니의 바가지 퍼포먼스”가 되풀이되었다.

그 소리에 형제는 군대 기상나팔 소리에 깨듯이 눈이 자동으로 떠졌다.

맨 처음에는 고통스러웠지만 반복될수록 익숙해져만 갔다..

그래도 제일 고통스러운 것은 죄를 지은? 아버지가 아닐까 싶다.

평소에는 그렇게 당당할 수가 없는데 아침이슬을 맞고 들어오신 날은 그렇게 초라해 보일 수가 없었다.

눈치 빠른 우리는 아버지의 “얘들아~니들이 좀 도와줘”라는 구원의 눈빛을 보내면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질 수 있으니 애써 눈을 피하고 몸을 잽싸게 대문 밖으로 숨겼다.

<울 엄마의 바가지>고구마

냉정함을 잃지 않고 현명하게 대처한 우리의 행동이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들리진 않았지만 아버지의 서운함, 원망이 눈앞에 아른거리는 거 빼고는 말이다.

“아버지 다 인과응보예요. 시간이 약이니 조금만 참고 견디세요! 쨍하고 해 뜰 날 올 거예요.” 하며 마음으로 응원만 보냈다.

어머니의 바가지 퍼포먼스가 시작된 지 두어 시간이 지나고 해가 중천에 뜰 무렵

아버지는 어머니의 “모진 바가지 고문”을 끝내고 어렵사리 풀려나시어 대청마루에 걸터앉아 참회의 담배 한 모금을 피우신다. 다크서클이 발톱까지 내려온 걸 봐서 고문의 강도가 예측이 된다.

속 보이지만 그대쯤… 우리 형제는 해맑은 표정으로 아버지를 향해 달려갔다.

무슨 말이 필요 있을까~ 대충 위로하는 척 만 하고 형제가 향한 곳은~~

부엌이다.

대장금도 울고 갈 형제의 속풀이 해장라면 하나면 아버지의 서운함도 확 풀리는 것을 알기에…

시무룩했던 아버지의 입가엔 미소 가득. 우리 형제도 공로를 높이 인정받아 공기 사발에 라면을 하사 받는다. 밥보다 라면이 더 맛있었던 그때 “원님 덕에 나팔 분다는 게 이거구나? 생각했다.”

“三부자” 는 게눈 감추듯 라면 국물 한 방울까지 남기지 않고 맛나게 먹었다.

원더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형제의 해장라면에 감탄하시는 아버지.

그제야 어머니의 분노도 “에그 내가 자식들 때문에 참는다.”며 푸념으로 바뀐다.

형제의 눈치코치 작전으로 가정의 평화를 되찾은 후 부엌의 마무리 작업은 항상 서열 막내인 내가 자처해서 맡았다.

그런데 그날 부엌에서 평소와는 다르게 무언가를 보았고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울 아버지의 성냥갑>고구마

그 당시엔 단지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야사시한 성냥갑이라 잠시 흐뭇해했을 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아궁이에 버렸다.

그 후로도 가끔 아버지에 대한 어머니의 바가지 강도가 유난히 센 날이면 야사시한 성냥갑이 집안 어디에선가 꼭 발견되었는데 왜 꼭 내 눈에만 뜨였는지는 아직까지도 미스터리다.

시간이 흐른 뒤 어른이 되고 난 뒤 비로소 성냥갑의 숨겨진 진실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술에 얽힌 사랑싸움”이 3년 정도 지속되다 내가 중학교 입학할 무렵에 종지부를 찍었다.

어머니한테 여쭤봤다.

“엄니 요즘 아버지가 정신 차리고 꽤 일찍 들어오시네요” 하니

어머니 왈

“요즘 낮술 혀”

라는 말씀을 하시고는 대청마루에 자리를 피시더니 다듬이질을 야무지게 하신다. 어머니의 허탈한 웃음과 다듬이질 소리가 “애주가 남편을 둔 여인의 가슴앓이”처럼 들린다.

 

“훨훨 동네 구석구석 울려 퍼져라~~~~~”

 

<애주가 남편을 둔 여인의 비녀>고구마

-2부끝-

 

artboy96

인생이 주태배기인 술전문 카투니스트 고구마입니다. 술잔을 즐겁게 함께한 인연은 절대 놓치지않는 집요함이 있지요! "오늘도 어느주막에 뿌리를 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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