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에서 피어난 숨비소리 그리고 휘이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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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부터 성년이 되기까지 아주 오랜 기간 가난과 아빠의 엄마를 향한 일방적인 주폭(酒暴)에 그대로 노출된 채 살아왔다. 그래서 휘이 작가는 속으로는 제대로 저항하지 못하고 견뎌온 엄마 또한 많이 원망하며 자랐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녀가 자신의 엄마라는 존재로 아직 함께 숨 쉬고 있음에 늘 감사할 따름이다.


(작품 숨비소리의 한장면)

그녀는 요즘 시대의 아들, 딸들과 다르게 효녀다. 외면하고 싶어도, 혼자 자유롭게 살고 싶어도, 눈에 밟히는 존재라고 그녀는 말한다. 지지고 볶아도 같은 공간에 있어야 마음이 놓이는 사람, 불쌍하고 나이 들어 약하고 아픈 사람, 그래서 화나게 하고 외면하지 못하게 하고 힘들게 하는 그런 여자!
영원히 자기와 함께 하면서 끝없이 미안하고 불쌍하고 안타까운 감정을 주는 존재, 그녀에게 엄마란 그런 존재이다.
얼마 전부터는 블로그에 엄마의 이야기를 하루에 한 컷씩 연재하고 있다. 결혼하기 전에 엄마와 함께 한 이야기들을 더 하고 싶고, 행복한 추억으로 남기고 싶어서라고 그녀는 말한다.

어렸을 때부터 힘들거나 기분이 안 좋을 때 만화를 많이 즐겨 보았는데, 그러고 나면 신기하게 축 쳐져있던 기분이 좋아지고 마음이 즐거워졌다. 그렇게 엄마가 일을 마치고 들어오기 전까지 새벽 내내 기다리며 만화책을 보게 되었다. 만화를 보면서, 웃다가 울기도 하고 때로는 즐겁기도 떨리기도 하면서 이에 푹 빠져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면서 막연하게 만화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다만, 넉넉하지 못한 살림에 대학에 갈 엄두가 나지 않았고, 그렇다고 전문적으로 배운 적도 없다. 처음 아카데미에서 만화를 배울 때를 회상해보아도 생계 문제에 계속 신경을 쓸 수 밖에 없었고, 처음이라 익숙하지 못했던 작품을 그려가는 작업은 더욱 어려웠다. 첫 도전에 크게 좌절하고 있을 때, 옆에서 누군가가 해준 ‘완벽한 그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스토리가 더 중요하다’라는 말에 자신의 마음을 읽은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고 용기를 얻었다. 자신감을 가지고 절실함을 무기로 그려낸 작품을 통해 20, 30 대까지 그림을 그리다보니 그녀는 어느새 지금의 휘이로 만화를 그리고 있다고 했다.

그녀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이 만화를 그리는 일이기에 만화라는 존재는 그녀에게 있어서 너무나 좋고 고맙지만, 반면에 ‘지금 하고 있는 만화는 잘 하고 있는 것일까?’, ‘이 다음 만화는 잘 해낼 수 있을까?’, ‘연재 계약을 할 수 있을까? 이를 통해 먹고 살 수 있을까?’ 와 같이 꼬리의 꼬리를 무는 생각들을 낳아 자신을 불안하게 한다고도 했다. 양날의 검인 셈이다.

그렇기 때문인지, 한 곳에서 하는 만화를 마감하기 전에 다음 연재를 준비한다는 그녀는 망설임 없이 당당하게 도전한다. 생계의 불안에서 오는 행동들이 어느새 손에 익은 습관이 되어 버렸다고도 볼 수 있겠다. 그렇지만 만화는 생계 수단 이외에도 감정과 이야기를 풀어내는 표출구로서 작용하기에, 너무나도 고마운 소울메이트와 같은 존재라고 그녀는 털어놓았다.

본격적으로 만화 작업을 하기로 마음을 먹으면서 20대 중반에 4-5년간 봉사 활동을 한 경험을 토대로 ‘소녀, 일흔살’이라는 작품을 1인 출판 지원을 받아서 책으로 냈다.


(작품 소녀,일흔살의 에피소스들)

봉사 활동을 하면서 각기 다른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고, 그 사람들의 서로 다른 가치관들을 자신만의 특색 있는 방법으로 담아내고 싶었다고 한다. 그녀 주변의 많은 작가들로부터 영향을 받아, 우울하고 어두운 현실을 지루하지 않고 가볍게 잘 풀어내는 만화를 담았다. 지금 생각나는 작품은 ‘스누피’, ‘자학의 시’,‘푸른 알약’ 이 있으며, 특히, ‘자학의 시’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 이후에는 어린이 만화를 비롯해 단편 등 두 세 작품들을 하다가, 30대 초반에 진입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살아 온 경험을 토대로 ‘숨비소리’라는 작품을 레진 코믹스에 연재하게 되었다고 한다.


흑백의 색으로 그려낸 작품이지만, 이를 웹툰이라는 포맷으로 연재를 할 수 있다는 점에 너무나 감사했다. 하지만 연재를 하는 중간 중간에도 항상 언제 짤릴까 전전긍긍하면서 작업을 이어갔다고 한다.
2년 후, 다행히 완결까지 마무리 할 수 있게 되었고, 이런 자신을 그녀는 운이 좋은 행운아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이 외에 초등학생에서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만화 강의를 한 지 10년 정도가 되었고, 지금도 서울에니메이션센터와 한국만화박물관에서 의뢰가 들어 올 때 마다 하고 있다. 그림책을 좋아하고 일러스트 그리는 것도 너무나 좋아하는 그녀기에, 가끔 잡지표지 의뢰가 들어올 때도 있는데 그때는 즐거운 마음으로 그림을 그린다고 한다.

애착이 가는 자신의 그림을 골라달라고 하자, 그녀는 야생화 그림을 골랐다. 어린이 만화를 연재하던 때에, 만화 속에 들어간 일러스트인데 야생화를 좋아하기에 동심으로 돌아가 즐겁고 재밌는 마음으로 그렸다고 한다.

(휘이 작가의 일러스트 작품 컷)

그녀가 보여준 이 그림을 보면서 작가와 엄마의 간절한 자석같은 사랑이 느껴졌다. 수묵화와 수채화의 살아 움직이는 야생화 그림은, 아름다운 색감을 자랑한다. 살아있는 자연을 노래하는 그림 속에 그녀의 존재를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지금은 첫 19금 연애 만화 ‘이것도 연애’ 를 레진 코믹스에 연재중이다.

다음 작품은 좀비물로 하고 싶은데, 요즘에 좀비물이 비단 만화뿐만 아니라 영화에서도 볼 수 있듯이 너무 인기가 많고 훌륭한 작품들이 많이 있어서 작가만이 할 수 있는 특별한 좀비 만화를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고 했다. 그녀만의 가늘고 아름다운 그림으로 그려내는 좀비물은 어떠할지 너무나 기대가 된다.

휘이 작가가 바라는 미래의 만화상…
‘요즘 만화의 장르가 예전과 비교했을 때 많아지고 다양해졌다고 하는데, 그 장르와 종류가 더욱 더 다양해졌으면 좋겠다.’
‘만화를 그리는 작가들은 대부분 생계에 대한 부담과 불안감을 안고 만화를 그린다. 그런 걱정 없이 훌륭한 작품들을 많이 만들 수 있게 되는 그런 만화판이 되었으면 한다.’

그녀에게 만화를 통해 이루고 싶은 궁극적인 목표가 무엇인지 물었다. 미소를 지으며 그녀는 하고 싶은 이야기를 꾸준히 하면서 자신과 가족, 친구들 혹은 애인과 같이 많은 사람들과 순간순간 행복을 느끼면서 살아갈 수 있는 좋은 에너지와 생활력을 얻는 것이 자신의 꿈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가늘고 길게 살면서 나이를 먹어 할머니가 되어 손이 덜덜 떨리더라도, 그 떨리는 손으로 죽기 전까지 만화를 그리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소박하지만 너무나 아름다운 인생의 목표가 아닐까?

그녀는 그녀의 작품을 통해서, 마치 그녀와 같은 사람들에게 비록 겉이 화려하거나 빛나지는 않지만, 그들 모두 너무나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현실이 구질구질하더라도 그 속에서 반짝이는 별들을 찾아내어 굳이 멋부리지 않더라도 있는 그대로 그 빛을 표현할 수 있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이러한 현실 그대로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그리고 이야기하는 것에 있어서 제한을 두지 않고 품을 수 있는 한, 모두 이야기할 수 있는 무제한의 작가로 그녀는 어엿하게 우뚝 서고 싶다.
이런 그녀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친구나 지인들은 꾸역꾸역 열심히 살아가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나도 기특하고 대견하다고 말을 아끼지 않았다. 매일매일이 불안하고, 하루하루 살아가는게 지치고 힘들더라도 좋아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것들을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그들과 함께할 때는 온전한 행복을 느낄수 있다고 하는 그녀는 밝고 가공하지 않은 원석의 순수함을 가득 품고 있었다.

누구나 다 어린 시절의 상처를 떠안고 자라면서 어른이 된다. 사람이 살다보면 이런저런 불행한 경험을 하기는 마련이지만, 어린 시절의 상처는 어른이 되어 생기는 상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치명적이다. 사람은 어렸을 때 있었던 일들을 뚜렷하게 회상하여 읊을 수는 없지만, 몸은 그 상처들을 기억한다고 한다. 그렇기에, 행복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린 시절의 상처를 치유해야만 할 것이다.
그녀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무척이나 강했고, 동시에 밝고 예뻤다. 많은 상처와 아픔과 어려움을 겪고 힘들게 살아왔고, 지금도 생계에 대한 걱정으로 불안해하고 있지만 그녀는 지금의 자기 자신이 너무 행복하다고 한다. 너무나 좋아하고, 하고 싶었던 만화와 함께하기 때문에 행복한 그녀는 도전하는데에 있어 망설임이 없다. 어둠 속 깊이 자리잡고 있는 누군가에게 한 번 쯤은 ‘휘이’ 하며 숨을 쉬라고, 그리고 아무리 어둡고 깊은 곳에 있어도 빛은 비추어 진다고 그녀는 말한다.

위대한 예술 작품들은, 비록 글이나 그림 그리고 음악과 같이 그 형태는 달라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심금을 울릴 수 있다는 점에서 큰 공통점을 갖는다. 그래서 그녀는 그녀만의 만화로 시공을 초월해 많은 사람들과 공감하며 어두움 속에서 빛을 찾아간다. 그것이 그녀에게 있어 만화를 하는 이유이자 앞으로도 계속해야 하는 까닭이기에..

그녀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생각나는 아티스트가 있다.
자라온 환경이나 시대는 다르지만, 불우한 유년 시절을 이겨내고 오로지 예술에 대한 열정과 도전으로 달려와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 뮤지션으로서의 고뇌를 털어 놓을때 그의 눈빛, 목소리, 표정에서 묻어나는 진실함이란 엄청난 소용돌이 같은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그의 삶을 지탱해주는 힘이기 때문이다.


(리처드용재 오닐의 공연 사진)

리처드 용재 오닐, 그의 음악은 따뜻하고 감미롭다.
‘섬 집 아이’라는 유명한 동요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해 낸 연주를 들을 때에는 그 곡 안으로 들어가 빠져 나오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는 내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그 감정이 무엇일까 한참을 곱씹어보다 엄마라는, 그리고 휘이 작가의 그림에서 묻어나는 애절함과도 맞물려 있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그리고 저 어딘선가 ‘숨비소리’ (해녀가 잠수했다가 숨이차서 밖으로 나올때 ‘휘이, 휘이’하며 숨을 내쉬는 소리) 가 들려온다.

정 정숙

각자의 출발지와 목적지가 다 다른 세상에서 설렘과 기쁨을 안고 새로움을 찾아 떠나는 나만의 길..감미로운 음악, 따뜻한 커피, 그리고 아름다운 책이 있을 그 곳을 향해서..

정 정숙어둠 속에서 피어난 숨비소리 그리고 휘이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