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의 술애바퀴-첫 번째 잔 “주도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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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

안중근 의사의 명언처럼

이러면 좋으련만…..

난…

“하루라도 술을 먹지 않으면 술집 사장님들의 매상이 걱정돼서 일이 손에 잡이지 않는다.”

알코올 중독자라고 오해받을까 봐 변명하는 글은 절대 아니다.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술 좋아하는 사람 치고 호인 아닌 이 별로 없고 그 덕분에 주변에는 형님, 동생, 친구들로 넘쳐난다. 술집에 처음 들어갈 때는 사장님과 손님으로 만나지만 같은 곳을 문지방이 닳도록 들락거리다 보면 어느새 친구 같은 존재가 된다. 서로 고향이 어디이고, 취미는 무엇이며, 결혼은 했는지, 자식들은 몇 명인지, 집에 땅은 좀 있는지, 건강은 어떤지, 요즘 매상은 좀 어떤지 다 알게 된다.

물론 모든 애주가들이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나는 적어도 그렇다는 이야기다.

앞서 언급했던 “하루라도 술을 먹지 않으면 술집 사장님들의 매상이 걱정돼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의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정”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같은 하늘 아래 살면서 술을 통해 관계를 맺고 정을 쌓았으니 어찌 걱정하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내가 술과 사람, 정을 중시하는 데에는 애주가인 아버지의 생간 DNA를 물려받은 이유도 있겠지만 어릴 적 환경적인 영향이 컷 던 것 같다.

어릴 적부터 태어나고 자랐으며 현재도 부모님이 터를 잡고 계시는 나의 고향은 “돌~굴~러~가~유~”, “에유~그렇게 급하면 어제 오지 그랬슈” 로 유명한 충청도 영동의 한 시골마을이다.

마을 규모는 약 60가구 정도로 시골마을 치고는 꽤 많은 주민들이 살았다.

그 당시 여느 시골 마을들이 그렇듯이 이웃주민들끼리 누구 아무개네 숟가락이 몇 개인지 훤히 다 알 정도로 친하였다.

그러다 보니 기쁜 일로 잔치가 있을 때나, 상을 당했을 때나 너 나 할 것 없이 격려해주고 도와주는 정이 넘치는 마을이었다.

아무튼 이런 정이 넘치는 마을에서 제일 좋았던 것은 따로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일이다.

시골이다 보니 농번기 때면 농사 준비하고 수확하는데 정말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다. 그럴 때 면각 가정마다 날짜를 정해서 오늘은 “이 아무개네”, “내일은 저 아무개네”, “낼모레는 그 아무개네”로 쭈욱~ 돌아가며 서로 품앗이를 했다.

그렇게 여러 집을 돌다 보면 자연스레 우리 집 차례도 돌아온다.

시골에서는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농사일하는 것에 예외는 없었다. 그리하여 우리 형제도 새마을 모자 비스무리한 것에 목장갑에 장화를 신고 끌려나가야만 했다.

그 당시에 우리 집은 자두 과수원을 하고 있었고 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다 보니 집에서 꽤 걸어야만 했다. 걷고 또 걷고 농사일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우리 형제는 산행하느라 진을 다 빼야만 했다.

우리와는 달리 아버지, 어머니, 동네 아저씨, 아줌마들은 연륜 때문인지 매우 여유로워 보였다.

마치 말년병장과 자대 배치받고 처음 훈련 나간 이등병의 차이쯤이랄까…..

과수원에 도착해 일을 시작한 지 두어 시간이 지났을까! 분명 아침에 머슴밥 두 그릇을 비우고 왔는데 목도 바짝바짝 마르고 시장기가 몰려왔다. 그도 그럴 것이 자두의 수확시기가 여름인 탓에 뙤약볕을 맞으며 산행과 노동을 하였고, 먹어도 먹어도 뒤돌면 배고플 나이가 아니었던가!

아~난 여기 왜 있나 자괴감이 들 때쯤…

그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목소리!

애주가 울 아버지의 새참가는 길<고구마>

 

“새참 왔어유~~우”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려보니 잠시 전만 해도 옆에서 일하셨던 어머니가 쟁반에 먹거리를

가득이고 오시는 게 아닌가. 엄마는 신출귀몰 도깨비인가 싶다.

새참이 오자 일에 열중하던 아버지, 동네 아저씨, 아줌마들은 그제야 허리를 펴고 “오늘은 뭐 맛난 거 한겨~”, “물 한 사발만 가져오면 되는데” , “쓸데없는 짓을 하고 그랴~”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약속이나 한 듯 내뱉으신다. 역시 충청도다(ㅎㅎ)

새참을 보니 “수육에 김치”, “노릇노릇 감자전” , “새콤달콤 비빔국수” 등 손 큰 어머니답게 푸짐하게 장만해오셨다.

풀밭에 뺑 둘러앉아 맛난 음식 먹을 준비를 할 때쯤 동네 아저씨들이 한 결 같이 말씀하신다. “거~없어” 하니 아버지가 손뼉을 치며 “거~있지”하며 부리나케 어디론가 쏜살같이 달려가신다.

울 아버지의 막걸리 전용주전자<고구마>

 

잠시 후에 나타난 아버지의 손에는 커다란 말통이 들려져 있었고 동네 아저씨들은 얼굴에 화색이 돌면서 “거~왔네”하며 반가워하였다.

알고 보니 말통의 정체는 막걸리였다. “거~없어”의 뜻을 풀이하니 “막걸리~없어?”였다.

아침에 경운기에 싣고 온 막걸리를 시원하게 마실 수 있도록 한 여름에도 차가운 계곡물에 미리 담가 둔 것이다. 장인정신까지 느껴지기도 하고, 역시 애주가 아버지답다.

냉면사발에 막걸리를 벌컥벌컥 마시는 아저씨들의 목 넘김 소리와 “캬~” 감탄사가 어찌나 시원해 보이던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때였다!

동네 아저씨가 쓱 다가오더니 “함~혀(한번 먹어볼래)” 하시는 게 아닌가!

형은 망설였으나 나는 어른이 권하는 술은 못 이기는 척하며 먹어도 된다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들어 막걸리를 두 손 모아 경건하게 원샷하였다.

아~황홀한 맛이었다! 집에서 몰래 찔끔찔끔 먹던 막걸리 하고는 차원이 달랐다.

타들어가던 갈증은 사라지고 허기진 배는 벌떡 일어나니 천하를 다 얻은 기분이었다.

이 맛에 아저씨들이 “캬~”하는구나 그렇구나~ 깨달았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너희 아버지 아들 맞네”, “내 잔도 받아” 하시며 몰아주셨다.

두 번째 들어오는 술잔 공격을 받아내고, 에라 모르겠다! 세 번째 술잔, 네 번째 술잔을 넙죽넙죽 받아내다 결국 필름이 끊겼다.

그리고 한참이 지났을까..

누가 어깨를 흔들며 깨우는 것 같았다.

눈앞에 아버지가 희미하게 보였다. 사방을 둘러보니 동네 아줌마, 아저씨들은 없고 웬 익숙한 풍경의 방이었다. 알고 보니 과수원에서 술 먹고 꽐라 되어 잠든 나를 아버지가 둘러업고 와 집에 눕혔다 한다.

이 사건 이후로 나는 동네 창피해서 한동안 일부러 밖을 않나 갔는데 이런 나의 생각은 기우에 불과했다. 오히려 붙임성 좋고 남자답다는 소문이 돌아 한순간에 동네의 엄친아가 되었다.

참 지금 봐도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지만 막걸리가 내 인생의 일부분으로 자리 잡는 계기가 되었는데 그 당시 과수원에서 일하던 부모님과 동네 어르신들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본다.

단비<고구마>

 

“열매를 수확하기 위해 힘든 노동을 하는 농부”들에게 가뭄에 단비 내리 듯 갈증을 해소해주는 막걸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내게 있어 좋은 사람들과의 정이 넘치는 술자리도 떼려야 뗄 수 없는 숙명이 아니겠는가 싶다. 오늘도 숙명적 만남을 위해 휴대폰 전화번호를 뒤져 음주 화이트리스트들에게 번개를 날린다.

 

고구마의 술애바퀴 다음 2편도 많이 기대해주세요!

artboy96

인생이 주태배기인 술전문 카투니스트 고구마입니다. 술잔을 즐겁게 함께한 인연은 절대 놓치지않는 집요함이 있지요! "오늘도 어느주막에 뿌리를 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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