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본질은 다름에서 닮음을 찾아내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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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本質)은 그것이 그것으로서 있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을 말한다.

금을 예로 들어보면 이런 것이다. 금으로 반지도 만들고 시계도, 목걸이도 만든다. 반지와 시계, 목걸이 등이 되기 위해 금은 녹여져 아예 그 형태가 변했지만 금은 여전히 금이다.

여기에서 금은 “본질”이고 반지와 시계는 “드러난 가치”로 분류해볼 수 있다.


프랑스의 여류 작가이자 철학자 시몬느 드 보봐르는 이 생각을 기본으로, “사람은 여자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자가 된다”라는 말로써 존재의 본질을 설명하기도 한다.

비즈니스에서도 바로 이 본질을 파악하고 다루는 역량은 기업의 운명을 결정짓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한국에서는 시들하지만 O2O(online to offline) 서비스의 대표적인 사례로써 손꼽히는 우버는 기존 택시 서비스로부터 불편을 겪어본 승객들의 수요를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기다려야 하고 목적지를 설명해야 하고 요금까지 실랑이해야 하는 문제들을 일순간에 해결해버렸는데, 2016년 현재 우버의 기업가치는 GM, 포드의 자산 규모와 맞먹는 625억 달러(한화로 약 80조)로 평가받고 있다.

사람들이 도시생활에서 겪게 되는 일상적인 문제의 본질을 들여다보고 해결해내는 것.
우버의 O2O 케이스는 문제의 본질에 대한 분석과 해결 과정에 대한 좋은 사례로 참조해볼 수 있겠다.

그렇다면 예술에 있어서 본질은 어떤 관점에서 얘기될 수 있을까?
예술의 본질은 다름에서 닮음을 찾아내는 과정이다. 당연히 그 본질을 꿰뚫고 다룰 줄 아는 사람들을 우리는 예술가라 부른다.

알파고와 같은 인공지능이 감히 넘볼 수 없는 영역이 예술가의 창의성이라고 한다. 예술가는 “꽃이 피면 벙어리도 운다는데”라고 표현할 수 있지만 인공지능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꽃’이 피어나는 현상과 ‘벙어리’의 신체적 제약 사항이 가지는 본질을 파악하여 은유하고 치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창의성이란 속성이 다른 여러 사물의 본질을 파악한 뒤 본질 간 경계를 허물어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능력이기 때문에 기계 따위가 범접할 수 있는 영역이 애초에 아니다.

그런데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작금의 세상은 이런류의 창의성이 천대받고 있다.

2016년 발간된 ‘예술인 맞춤형 사회복지사업 개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전업 예술인의 68.7%가 예술 관련 활동으로 벌어들이는 월수입이 100만 원 미만이며, 이 가운데 43.1%는 월수입이 50만 원 미만이라고 한다.

이런식의 가치 전도된 통계만 보더라도 우리가 사는 사회는 분명 어디에선가부터 문제가 생겼고 조율하지 못한 채 성장(?)해왔다.

다시 한번 본질의 의미를 생각해보자. “그것이 그것으로서 있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되는 것”

설 명절을 앞두고 만화 관련 협회들의 총회와 신년회 소식이 들려온다.
바라건대,“만화가 만화로 있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 무엇인지 본질적인 성찰과 토론이 함께할 수 있는 그런 자리들이 되셨으면 좋겠다.

더불어 부천시에도 한 가지 묻고 싶다. 예술 정책에 있어서 “정책 용어”는 사업의 본질을 담아내는 그릇인데 근래에 “만화 웹툰 중심도시”라는 이상한 신조어를 내보내고 있다.

이게 무슨말인지 궁금하다.
만화라는 본질에 해당하는 뿌리와 웹툰이라는 드러난 가치에 해당하는 열매를 동시에 풍성하게 키워보겠다는 정책적 의지를 엿볼수 있긴하다.
그런데,웹툰이 만화의 유일한 열매는 아니지 않는가?
….

본질을 추구하는 정책은 가치에 집중하고, 현상을 따라가는 정책은 좀 더 대중적인 반응과 트렌드에 목말라 한다.
그런데,현상을 쫓더라도 진정성있고 창의적이라면, 어느정도 이해가 되지만 그저 개념없이 숟가락 얹히는 태도라면 좀 볼썽사납다.

coreacartoonist

이코노텍스트에 무지 관심이 많습니다.

이 원영예술의 본질은 다름에서 닮음을 찾아내는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