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의 작가시점

1 comment

한 해 동안 독립 출판된 책들을 한자리에서 살펴볼 수 있고, 독립 출판 제작자들과 창작자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이벤트! 제8회 ‘언리미티드 에디션 & 서울 아트북페어 2016’.

한 번도 체험해 보지 못한 축제였지만, 올해엔 행사 첫날 바로 그곳을 찾았다. 미술관 입구에 들어섰을 때 길~게 줄 서서 기다리는 관람객들을 보고 한 번 놀라고, 들어가서 문 앞에서부터는 꽉꽉 들어찬 관람객들로 인해 또 한 번 놀랐다.

한국인의 하루 평균 독서 시간이 10분이 채 안 된다는데, 그런 통계가 무색하게 이곳은 책과 사람, 이를 매개로 한 이른바 책 문화가 제대로 팔리고 있는 살아있는 현장과도 같았다.


[2016 언리미티드 에디션 현장]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열기 가득했었던 행사장 안에서는 일러스트, 만화, 카툰, 디자인, 사진, 잡지, 출판사들이 즐비하고 아티스트들과 참여자들은 설치된 부스에서 온몸으로 그들만의 열정을 내뿜고 있었다.

언리미티드에서 만난 전지 작가

1층에서 3층까지 꽉꽉 들어찬 관람객들틈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얼이 빠질 정도였다.

사람들을 헤치고 한 바퀴를 둘러보다 끝내 발길이 멈춘 곳에서 초록색 티를 입고 반기고 있던 전지 작가를 만날 수 있었다.
손바닥만한 크기, 검정 바탕의 표지로 된 ‘오팔하우스’라는 책에 이끌려 만나게 된 그곳에서 ‘오팔하우스외에 끙, 있을재 구슬옥.’이라는 작가의 세 작품을 만나볼 수 있었다.

문래동 작업실 거주 당시, 예술가로서의 자기 정체성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하고자 처음으로 그리기 시작했다는 오팔 하우스는 문래동 58번지에서 겪은 다양한 에피소드를 엮어 만화로 각색한 작품이었다.
그 외에도, 예술가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과 방향성을 네 편의 단편에 각각 깊이 있고 솔직하게 담아낸 이야기가 끙이라는 작품이었고, 마지막으로 있을지 구슬 옥이라는 이야기는 엄마의 생활 이야기를 가족 간의 끈끈한 정서로 작가가 감칠맛 나게 그려낸 작품이었다.

엄마의 이야기를 그려낸 가족 구술화 ‘있을재 구슬 옥’은 엄마에게서 거리두기를 염두에 두고 엄마를 관찰하며 담아낸 작업물이다 보니 첫 번째 책과는 달리 침착함이 전반적으로 깔려있는 작품이라고 한다. 같은 작가의 작품들이지만 그 안을 차지하고 있는 기본적인 감정은 너무나도 달랐다.

그리고 더 큰 차이는 첫 번째 책은 엄마를 보여 드릴수 없고 세 번째 책은 엄마방 한편에 자리하고 있다는…ㅎ.


[2015년 플리마켓에 함께 나선 전지 작가와 엄마 재옥씨]

작가는 세번째 책을 준비하면서 엄마의 속 내를 끌어내기 위해 카페를 많이 이용했다고 한다. 엄마가 집이랑 다른 이질적이면서 포근한 그런류의 공간에서 딸이랑 차 마시며 얘기하기를 평소에 좋아했다고 했다. 그래서 더욱 엄마랑 친근해지고 지금의 다정한 모녀가 된 이유중 하나라고 했다.

[2015년 그녀의 첫번째 언리미티드 에디션 참가 당시]

출판사 없이 자신의 힘만으로 출판한 만화책들을 보고 이에 큰 흥미를 느껴 그곳에서 만난 분들과 작업 동료로서의 큰 영감을 공유하며 2015년에 이어 두번째로 행사에 참여했다고 한다.

다른 행사와는 다르게 작품 제작자들이 주체적으로 여는 활기있는 행사이자 시장이므로 허례허식없고 담백하며 생동감이 넘치기에 각광받는 것 같다며, 이 언리미티드 에디션을 통해 독립출판제작이라는 장르를 소개해주고 제작자들을 조명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며 말을 잇는 작가의 당찬 목소리에서 결코 궁핍하지 않은 신선한 희망을 느낄 수 있었다.

전지 작가의 작품세계

언리미티드 에디션이 끝난 후, 카툰캠퍼스에서 전지 작가를 다시 만날 수 있었고, 짧은 만남이었었지만 이런 저런 속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90년대 후반, 안양 지하상가를 가득 채운 연필그림 화실 중 한 곳에서 대입 준비 대신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 화실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어느새 이 일에 깊게 빠지게 되었다는 그녀. 자전적인 이야기를 소재로 삼기에, 어느 날 문득 이 순간을 만화로 그려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자연스럽게 만화가로서의 여정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녀의 작품은 허구나 상상이 가득한 작품이 아닌 살아온 삶의 현장을 날 것 그대로 표현하고 담아내기에 작품 속 그림과 대화들은 우리들의 일상과 비교했을 때 전혀 거리감을 느낄 수 없고 나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만큼 친숙하다. 실제로 작가는 주변 사람을 작품에 배치시키면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는데에 중점을 두었다.

어렸을 때에는 부모님으로부터 하루빨리 자립하여 독립된 삶을 사는 것만이 옳고 바른 일인 줄로만 알고 지풀에 방황하며 부모님의 잔소리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다닌 적도 있었지만, 지금의 그녀는 어느덧 부모님과 아름다운 관계를 유지하며 가족 간의 그리운 감정과 애환을 담아내는 작가로 성숙해 있었다.
부모님 이야기를 하며 살며시 웃는 작가는 마치 소녀와도 같았다.

문래동 초창기 시절, 그녀는 그림을 전공했다는 이유만으로 마냥 기계와 같이 그림 작업만 하였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흥미와 열정을 잃게 되어 힘든 시기를 보냈다고 한다.

이후 심기일전하여 반나절 식당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하고, 장애인 활동 보조와 공공미술 프로젝트, 단기간 공동작업 활동을 하면서 보다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여 연결고리를 만들 수 있는 전환기를 찾게 되었다고 한다.

결혼을 하고 이제는 보다 안정된 삶을 영위하는 그녀는 이제는 흥미와 열정을 느낄 수 있는 방향을 확실히 찾은 것 같다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젊었을 때 여러 어려움이 가득한 문래동 작업실에서 겪었던 말로는 할 수 없는 경험이 지금까지의 양분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여러 현장을 방랑객의 입장으로 돌아다니면서 그림을 그렸던 경험을 통해 실력이 늘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며 가방에서 샤프를 꺼내 보여주면서 전지 작가는 보다 기술적인 이야기로 주제를 옮겨갔다.

처음에 만화를 그릴 때에는 펜촉 펜과 잉크도 구매하여 사용해봤지만 숙달되기 힘든 도구들과 그림을 그릴 때의 까끌거리는 느낌이 만족스럽지 않아 샤프로 선회하여 지금까지 오랜 시간을 함께 하고 있다고 했다. 연필과 샤프, 굵고 진한 흑연 막대를 즐겨쓰기는 하지만 최근에는 다시 펜촉을 시도해보면서 아직 서툴기는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자신만의 작품에 응용해보고 싶다며 웃음을 짓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연필과 샤프만을 즐겨 사용하는 나와 닮은 점도 있구나하고 인터뷰하는 동안 잠깐 생각이 들었다.

예술가로 살아가는 삶에 대해 그녀는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이 가끔은 자신을 불안하게 하지만, 스스로의 결정을 통해 여기까지 오게 되었기에 후회하지 않으며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해도 이 길을 택했을거라며 당당하게 말했다. 처음부터 예술가가 되기 위한 삶을 걸어온 것은 아니지만, 살아가며 맞닥뜨렸던 여러 선택의 기로들에서 택했던 길들을 정처없이 걸어가다보니 어느새 예술을 하고 있는 자신을 만든 것 같다고 했다.

예술가가 되기 위해서는 뛰어난 손기술도 필요하겠지만, 무엇보다 이야깃거리가 속내에 가득 차있어야 계속 무언가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녀는 본인이 그런 길을 걷는 사람이라 좋다고 하였다. 누구의 강요나 부탁이 아닌 본인이 원해서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속내에 가득 차있는 수많은 이야기꺼리를 작품으로 투영하며 살아가는 그런 작가가 나는 참 좋았다. 예술가라는 이름으로 자유롭게 인생을 살아가는 그녀의 모습은 왠지 때묻지 않은 순수한 어린 아이의 마음 같았다.

전지 작가의 커뮤니티 아트란?

커뮤니티 아트 (Community art) 란 공공 미술을 대부분 문화재단이 지원해서 진행하고 미술가들이 동네에 머물면서 벽화를 그리거나 설치물을 만드는 작업인데, 그곳의 주민들과 소통하여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다고 한다. 그렇기에 그 어떤 것보다 주민들과의 소통이 중요한 예술 활동이다.

전지 작가의 경우는 처음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할 때는 단지 생계유지의 수단으로 설치미술, 공공 미술 프로젝트와 같은 단기간 공동작업활동에 많이 참여를 하며 커뮤니티 아트에 발을 담그게 되었다고 하였다. 동네에서 주민들을 만나 그분들의 이야기를 미술로 재조명하는 과정이 이어졌는데 혼자 사는 할머니 집에 처마를 만들어 드리고, 버려진 의자를 수리해서 길목에 놓는 활동들이 기억에 남는 활동 중 하나였다며 회상했다.

주변 사람과 소통 없이 완성해가는 예술 활동과는 달리, 무엇보다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이 살아가는 공간을 함께 공유하며 소통한다는 점에 큰 매력을 느꼈다고 한다. 다른 예술에서도 기획은 중요하다고 인식되지만, 여러 사람들이 관여하는 커뮤니티 아트의 특성상 기획은 가장 중요한 단계라고 한다. 무늬만 좋고 속이 빈 기획이면, 작가는 겉핥기만 하면서 고생만 하게 되어 무익한 결과를 얻게 되고, 주민들은 귀찮기만 한 프로젝트로 전락될 수 있다며 작가는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하지만 제대로 기획이 되어 진행된 작업의 경우는 작업적인 면에서의 성숙뿐만 아니라 인간적으로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며 배우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더욱 성숙한 자기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한다.

현재에도 직접 참여하고 있는 커뮤니티 아트가 있냐고 묻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이어갔다. 예술가와 기관을 연결시켜 작가와 보다 창의적인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사업인데, 안양 석수시장에 파견되어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4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상가형 시장인 안양 석수시장에서 오래전부터 스톤 앤 워터라는 예술가 그룹이 활동을 해오고 있었고, 이러한 그룹 활동을 통해 시장에 예술가들이 머무르고 있다고 한다.

[석수시장 만화간판 시리즈]

작업을 시작하기 위해 6개월동안 시장에서 일하시는 분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는 그녀에게서 어느새 그들과의 단단한 공감대가 느껴졌다. 얼마 전 예술인 복지재단에서 진행하는 예술인 파견지원사업에도 참여했다는 그녀를 통해 전혀 새로운 예술 분야를 배울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었다.

[동네 할머니들의 손글씨 숫자와 함께 달력으로 제작될 예정인 수원 권선구 서둔동 벌터마을 드로잉]

다음 작품 계획은?

8살때부터 안양에 살았다는 작가는 안양에 대한 애향심을 가득 보여주며 말을 이었다. 비록 잠깐 서울에 살았지만 다시 이사를 하였고, 결혼한 이후에도 안양에서 살고 있는 작가는 최근 1인 출판사를 운영하시는 분께 안양 살이 이야기를 만화로 담아내면 어떨까하는 제안을 받았다고 했다. 이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작업에 들어가 2018년 여름부터 초가을 사이에 발표할 계획이라고 한다. 수십년 간의 일상적인 삶을 만화로 담아낸다는 점이 궁금하고 기대가 된다.

만화를 통해 이루고 싶은 삶의 궁극적인 목표는?

“그때그때 느끼는 것들에 즉각적으로 반응하여 표현해내어 때로는 뜨겁게 또한 자유 롭게 살고 싶다” 고 엄마에게 당당하게 말하는 작가를 보면서 그런 모습이 부럽기도 하고, 동시에 그런 용기 없이 현실이라는 우물 안에 안주하며 살아가는 내 자신에 대해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 작가를 보며 마지막으로 만화를 통해 이루고 싶은 삶의 궁극적인 목표가 무엇인지를 넌지시 물었다.

“마치 발바닥이 땅에 닿는 것 같은 이야기를 통해 자기 특유의 냄새를 뿜어대는 만화 책을 남기고 싶다. 그리고 만화가라는 직업을 그저 자기 자신을 합리화하는 도구로 안주하고 이에 전락하지 않는 것이 목표이다.” 라고 대답하는 그녀의 모습은 만화를 그리는 만화가라기보다는 삶을 만화에 투영하여 살아가고 있는 것만 같은 열정이 가득했다.

긴 시간동안 작가랑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작가가 예술가로서의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삶을 살아가지만 매 순간 세상과 부딪히며 겪은 회의, 걱정, 고민, 고통, 어려움, 힘듬, 슬픔 등에 대해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하고 알리고자 했던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여러 겹으로 포장된 이야기가 가득한 메세지이지만 그 중심에 위치하고 있는 감정은 정감있고 사람 냄새 가득한 가족간의 정서였다. 인터뷰를 마치며 겨울날 편안하고 따끈따끈한 온돌방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기사에 인용한 작품컷들은 전지 작가님의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viewpointofAo)에서 대부분 발췌하였습니다.

정 정숙

각자의 출발지와 목적지가 다 다른 세상에서 설렘과 기쁨을 안고 새로움을 찾아 떠나는 나만의 길..감미로운 음악, 따뜻한 커피, 그리고 아름다운 책이 있을 그 곳을 향해서..

정 정숙전지의 작가시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