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지가 된 섬, 석모도의 풍경 속을 걷다

 

가끔은 걸어야 할 곳을 선택하는 것도 고민이다. 새로운 곳, 아니면 다녀온 곳 중 들 중의 하나일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이중적 심리가 적용되는 경우도 있다.

다녀왔지만 많이 변한 곳.

이번에는 육지가 된 섬, 석모도의 풍경 속을 걷기로 한다.

바다를 딛고 선 섬의 산정에서 내려다보이는 흰색 꼬리를 달고 달리는 배들이 연출하는 생동감 넘치는 풍경화가 눈에 아른거린다. 어디 그 뿐이랴. 산하의 수목들은 해풍에 머릿결을 살랑거리며 해조음에 맞춰 아름다운 율동을 보여준다.

그 모습이 눈에 선해 아침 일찍 석모도로 달려간다.

연육교인 석모대교가 개통되기 전, 강화도 외포리와 석모도를 오가는 카페리 뱃전에서 새우깡을 들고 갈매기 떼에게 먹이를 주던 풍경은 이제 아득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다리가 놓이기 전, 차와 사람으로 붐비던 선착장에 이제 남은 것은 짠내 머금은 바람뿐이다.

석모대교를 지나 도착한 전득이 고개 주차장에는 인기척이 없다.

석모도 주봉은 해명산이다. 전득이 고개에서 시작해서 해명산(327m), 낙가산(235m), 상봉산(316m)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석모도를 동서로 나눈다. 4시간 정도 걸리는 종주 산행은 산세가 그리 험하지 않고 산과 바다의 정취를 동시에 즐길 수 있어 산꾼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전득이 고개 구름다리를 건너 제법 경사 있는 산길을 따라 작은 봉우리에 올라서니 흩날리는 진눈깨비 사이로 시야가 넓게 펼쳐지면서 너른 서해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고 코앞 강화도 산자락 끝 포구 가까이로는 밭을 일구어 밭농사 짓고 있는 여남은 채 농가와 작은 고깃배가 모여 있는 어촌 정경이 그리도 안온하게 다가온다.

산줄기 좌측 보문사 쪽은 드넓은 갯벌과 염전이, 우측 삼산면 쪽은 너른 들판이 펼쳐진다. 옛날 이곳은 갯벌이었는데 고려 때부터 근래까지 간척사업을 벌여 큰 농토로 탈바꿈 하게 되었다.

갯벌은 신비로움과 경이로움을 덧입혀 더 풍성해진다. 밀물과 썰물이 오가며 만든 갯벌의 잿빛 무늬와 아름다운 질감이 햇살을 반사시키며 아찔하고 장엄하다.

바닷물은 햇살을 받아들이고, 바람에 제 몸을 말려 소금이 된다. 멀리 보이는 소금밭에는 햇살을 받아들이고 바람에 제 몸을 말려 머지않아 새하얀 소금으로 다시 태어날 바닷물이 그득하다. 그렇게 바닷물은 인간의 기다림 속에서 순백의 꽃으로 피어날 것이다.

산허리를 돌아 몇 굽이를 넘어서서 해명산 정상에 올라서면 석포리와 외포리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정상에 서면 마니산과 매음리의 염전과 주문도, 볼음도가 보이고 낙가산과 상봉산, 서해바다에 점점이 흩어져 있는 크고 작은 섬들이 조망된다.

산줄기는 방개고개와 새가리고개를 지나서 수십 명이 앉아 쉴 수 있는 넓은 회백색 바위 천인대로 이어진다. 천인대에 서니 고깃배들이 하얀 포말의 선을 긋지만 이내 지워진다.

바다를 가슴에 담아가리라. 그리하여 저잣거리에 돌아가서 삶이 힘들거나 가슴이 답답하면 바다를 꺼내보리라.

석모도에서 가장 전망이 뛰어난 눈썹바위가 있는 낙가산은 관음보살이 상주한다는 보타낙가산(普陀洛迦山)에서 산이름이 유래되었는데, 바로 아래에 불교 성지 보문사가 있다. 눈썹바위에서 감상하는 서해 낙조도 석모도 산행의 백미다.

낙가산까지 산행 후 보문사로 하산하기가 아쉽다면 절고개에서 상봉산을 오르는 것도 좋다. 석모도 북쪽에 솟아 있는 바위산 상봉산 정상에서 서남쪽 볼음도 방향으로 바라보는 노을과 올망졸망한 섬들의 모습을 그냥 지나치기에는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낙가산 중턱에 자리잡은 보문사는 우리나라 3대 관음도량 중 하나로 관음보살의 터전이다. 눈썹바위 아래에 있는 높이 9.2m의 마애석불좌상과 천연동굴로 이뤄진 석실이 유명하다.

산을 내려오면서 지나온 길을 되돌아본다.

어찌 산이 변할 것인가. 어찌 바다가 변할 것인가. 예나 지금이나 산은 푸르고 바다는 아득하다.

영혼이 자유로운 사람들이 자연 속에서 ‘물아일체(物我一體)’의 심미적 조화로 하나 된 시간들. 이것이 바로 장자(莊子)가 궁극적으로 추구한 ‘유(遊)’가 아니던가.

오늘은 육지가 된 섬, 석모도의 풍경 속을 걸으며 장자의 ‘소요유(逍遥遊)’를 마음껏 즐긴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