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 언저리가 일그러질 때, 이슬비 내리는 11월처럼 내 영혼이 을씨년스러워질 때, 관을 파는 가게 앞에서 나도 모르게 걸음이 멈추거나 장례 행렬을 만나 그 행렬 끝에 붙어서 따라갈 때, 특히 심기증에 짓눌린 나머지 거리로 뛰쳐나가 사람들의 모자를 보는 족족 후려쳐 날려 보내지 않으려면 대단한 자제심이 필요할 때, 그럴 때면 나는 되도록 빨리 바다로 나가야 할 때가 되었구나 하고 생각한다.」 (모비 딕, 허먼 멜빌, 작가정신 31p)

작품 속 화자 ‘이슈메일’을 통해 거대한 흰 고래를 잡으려는 인간의 집착, 광기, 비극과 파멸의 과정을 그린 허먼 멜빌(Herman Melville)의 위대한 소설 ‘모비 딕’(Moby-Dick)의 첫 장에 나오는 장면이다.

그리하여 이슈메일은 맨해튼을 떠나 어느 12월 토요일 밤 뉴베드퍼드에 도착한다. 포경선이 출발하는 넨터컷에 가기 위해서는 이곳에서 이틀을 더 보내야만 한다.

「이제 나는 뉴베드퍼드에서 하룻밤과 하루 낮, 그리고 다시 하룻밤을 더 보내야만 목적지인 항구로 떠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동안 어디서 먹고 자느냐가 당장 걱정거리가 되었다. 몹시 불안해 보이는, 아니 무척 캄캄하고 음산한 밤, 살을 에는 듯 춥고 쓸쓸한 밤이었다. (중략) 정말 황량한 거리였다! 길 양쪽에 있는 것은 집이 아니라 시커먼 덩어리들이었다. 여기저기 드문드문 보이는 촛불은 무덤 속을 돌아다니는 촛불 같았다. 일주일의 마지막 날 이 밤늦은 시간에 이 도시의 그 구역은 거의 텅 비어 있었다. (중략) 나는 계속 걷다가 마침내 부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밖에 내걸린 희미한 불빛을 보고, 공중에서 쓸쓸히 삐걱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문 위에서 간판 하나가 그네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간판에는 안개 같은 물보라를 뿜어 올리는 고래 그림이 하얀 페인트로 희미하게 그려져 있고, 그 밑에 ‘물보라 여인숙 – 피터 코핀’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다.」 (38 ~ 40p)

을씨년스러운 밤에 대한 묘사는 읽을 때 마다 마치 내가 잠자리를 찾아 그 캄캄하고 추운 거리를 헤매고 있는 듯 몸을 웅크리게 하는 마력이 있다.

모비 딕의 이 첫 장을 대할 때마다 생각나는 앨범이 있다. 미국의 트럼페터 데이브 더글라스(Dave Douglas)의 앨범 ‘Charms of the Night Sky'(W&W)의 앨범을 들을 때 역시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모비 딕이 차가운 겨울밤을 빌려 첫 장에서부터 비극적인 서사를 암시하듯 Charms of the Night Sky는 먼저 앨범 자켓 사진의 차가운 겨울 밤하늘 이미지로 음악적 정체성을 드러낸다.

미국 재즈 뮤지션들임에도 전혀 미국적인 냄새가 나지 않는 앨범이다. 굳이 장르를 말하자면 아방가르드, 포스트 밥에 동유럽 스타일의 민속 음악 정취가 물씬 풍긴다. 피아노와 드럼이 없는 트럼펫, 아코디온, 바이올린, 베이스의 구성인데다 예의 데이브 더글라스의 음악이 거의 그렇듯 평범함을 뛰어 넘는 음악들이다. 다만 그간 난해함으로 접근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던 데이브 더글라스가 이 앨범에서는 차가운 겨울밤의 한줄기 따뜻한 온기로 다가온다. 거기에 Guy Klucevsek의 아코디온과 Mark Feldman의 바이올린, 돋보이지는 않지만 묵묵히 제 할 일을 다 하는 Greg Cohendml 베이스 또한 따뜻하고 부드럽다.

첫 번째 트랙이자 타이틀 곡인 Charms Of The Night Sky는 초반부터 아코디언과 베이스의 무게감이 압권이다. 곧이어 합류한 트럼펫과 바이올린이 주는 긴장감은 트랙이 끝나고 나서도 쉽게 가시지 않는 여운을 남긴다. 아코디언의 Guy Klucevsek가 작곡한 The Girl With The Rose Hips, 허비 행콕의 Little One 역시 감동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제일 인상 깊은 트랙은 세 번째 트랙 Sea Change. 제목처럼 마치 모비 딕의 이슈메일이 증언 할, 흰 고래 모비 딕과 광기의 선장 에이해브가 만들어 내는 비극적 서사를 예언하는 것 같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레이블 Winter & Winter의 앨범답게 음반의 물성 자체가 예술적 결과물이다. 평범한 플라스틱 케이스가 아닌 두툼한 아트지로 한 팩 한 팩 수공예로 제작되었기 때문이다. 음악과 절묘한 조합을 이루는 앨범 속지의 겨울 밤하늘 사진들 역시 W&W가 아니면 흉내 낼 수 없는 예술성을 자랑한다. 여러 면에서 보석 같은 앨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