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브룩클린’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단어들이 있다. 전쟁, 실업, 군인, 식량, 창녀, 게이, 신분, 시위, 갱, 폭력, 폭행, 노조, 최루탄, 맨해탄, 해고 등이 그 예이다.

브룩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는 휴버트 셀비 2세(1928-2004)가 1964년에 발표한 소설로 1989년에 영국과 서독의 합작으로 영화화가 되었는데, 원작이 워낙 엄청난 구설수에 휘말렸던 작품인만큼 다소 순화되어 영화화 되었다.

영화는 폭력과 마약, 알코올로 인한 희망이 보이지 않는 하층민들의 삶을 통해 전쟁과 파업으로 혼란한 1952년 뉴욕의 우범지대인 브루클린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마약과 동성애, 폭력과 무질서가 난무하던 그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생존을 위협하는 노조 파업으로 인한 그들의 처참한 삶의 고통과 애환을 담은 이 영화는 1950년대 미국 사회의 어두운 모습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동성애, 그 당시의 이야기 소재로서는 상당히 파격적인 소재가 아닐 수 없다. 동성애와 마약, 갱과 폭력, 폭행을 일삼는 그들의 삶. 미성년자인 소년을 성폭행하는 것도 모자라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한 여자를 집단 성폭행하는 장면까지 나와 있어, 영화를 볼 때마다 그들의 행동을 통해 어두운 내면의 모습과 고통스러움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파업을 주도하는 노동조합 선전부장 해리(Harry Black : 스티븐 랭 분)는 결혼한 한 아이의 아버지이다. 그는 열성적으로 파업에 참여하지만 우연히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깨닫고 방황한다. 여장 남자와의 사랑에 빠져 그의 환심을 사기 위해 공금을 횡령하면서, 노동자와 구사대간의 치열한 싸움에서 보여준 영웅적 행동도 보상받지 못한다. 급기야 동네 소년을 범하려다가 불량배들에게 집단 폭행을 당하게 되고 게이 조젯트는 온갖 괴롭힘을 당한 끝에 교통사고로 죽음을 당한다.

노조 파업이 한창인 뉴욕의 브루클린, 창녀 트랄라(Tralala : 제니퍼 제이슨 리 분)는 남자를 만나러 맨하탄에 갔다가 거리에서 한국전에 참전을 할 병사들을 유혹하고, 그 중 진심으로 자신을 사랑해주는 한 남자의 진정한 사랑을 만난다. 병사들이 배를 타고 배치 받은 곳으로 떠나는 날, 많은 군인들 중에 그녀를 사랑하는 그 사람도 배에 타고 있다. 떠나기 전 그는 그녀에게 편지를 주고 간다. 그 편지에는 그가 그녀를 진정 사랑하고 있다고 이야기하며, 돌아 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한다. 하지만 그 사랑보다 몇 푼의 돈이 당장 더 중요한 그녀는 끝없는 좌절 속에 몸을 던진다. 그런 와중에 가치관의 혼란도 겪게 되지만 폭력과 좌절 속에서 그녀는 꿋꿋이 버티면서 살아간다.

 술집에서 수십 명의 사람들에게 성폭행을 당하는 트랄라, 생각해보면 그녀가 스스로 그 일을 자초했었는지도 모른다. 오죽했으면 그랬을까?하는 생각에 가슴이 아프다. 스스로 파탄에 빠지듯 그들을 부추겼으니까. 마치 오늘이 마지막이듯이, 지옥 같은 삶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을까. 가슴을 열어젖히고 옷을 벗으며 자신의 슬픔을 토로하는 그녀를 온 거리의 남자들이 그녀를 짓밟는다. 만신창이가 된 그녀, 착한 심성의 소년 스푹은 모두가 손가락질하는 그런 트랄라를 사랑한다. 그녀 앞에 나타난 그 아이는 울부짖지만 도리어 그 때 그녀가 아이를 안으며 울지 말라고 한다. 그 장면에서 흐르는 음악의 애처롭고도 잔잔한 선율은 인간의 슬픔을 극대화시키면서 동시에 가슴 깊숙이 파고든다.

작가는 이 작품에 대해 “이 작품은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그대로 쓴 것이다. 허구라기보다는 다큐멘터리에 가깝다. 이 작품에 나오는 인물들은 실제의 인물들이다. 소설 속의 추잡함이나 잔혹함은 독자들 자신에게도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알아주기 바란다.” 라고 했다고 한다.

사실 영화를 보면서 나오는 인물들을 살펴보면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정상적인 사람은 없었기에, 이 영화를 처음 접했을 때 정말이나 많이 놀랐던 기억이 난다.

영화가 개봉된 지 30년이 지났지만 영화에 수록된 OST는 수작으로 평가 받고 있으며 여전히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영화 음악을 맡은 마크 노플러는 다이어 스트레이츠를 이끌던 전설적인 기타리스트인 바로 그 마크 노플러이다. 바이올린 선율이 무척 아름다워서 다이어 스트레이츠 음악을 전혀 떠올릴 수가 없을 정도인 “A LOVE Idea”와 같은 걸작이 이 영화에서 나왔다.

오래된 영화이고 제니퍼 제이슨 리라는 배우가 열연해서 꽤 유명한 고전 영화로 알려져 있지만, 영화를 보면서 그리고 본 후에 영화 속에 삽입된 “A LOVE Idea” 를 찾아서 들어보기를 추천한다. 마크 노플러의 능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OST가 있어 더욱 뜨거운 영화이자, 나 역시 처음엔 음악이 좋아 이 영화를 보게 되었다. 아름다운 이 가을날 이 연주곡을 들어보길 바란다. 사실 계절에 상관없이 언제 들어도 깊이 빠지게 되는 좋은 노래이다.

 ‘삶’의 정답은 없다고는 하지만 삶을 살아가는 것이 이토록 어려운 것일까? 나오는 인물들은 마치 삶의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는 탈선한 열차처럼 치열하게 살아간다. 우리 모두 내일은 좀 더 나은 삶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현재는 절망 속에 있더라도 희망을 꿈꾸면서  허우적거리며 살아간다. 그러나 영화에서 열연을 펼치는 배우들은 희망을 향해 나아가기 보다는 스스로 절망의 구렁텅이 속으로 빠져드는 듯한 인물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들은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모든 저열한 잔인성을 묘사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트랄라 역의 제니퍼 제이슨 리는 이 영화로 뉴욕비평가협회와 보스턴영화 평론협회에서 최우수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아직도 눈을 감으면 선명하게 펼쳐지는 그녀의 연기를 보았을 때, 정말 수상할 만한 훌륭한 배우가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마침내 파업은 종료되고 일터에 나간 사람들의 얼굴엔 다행이도 웃음이 남아있고 희망이 보인다. 어느덧, 희망의 아침이 밝아온 것일까? 어쩌면 그들은 아직 오지 않은 그 밝은 날이 오기를 희망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오늘만 사는 것이 아니라 희망을 품고 있는 그들은, 어제의 일은 모두 잊어버리고 내일을 이야기하며 웃으면서 뿌연 연기 속 공장안으로 들어가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영화가 나온지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를 이야기 해 주고 있다. 부정과 부패, 그리고 갈등과 강요하는 삶 등. 우리가 처한 이 현실을 영화를 통해 투영해본다면 그 뿌연 연기 속 공장안으로 들어가서 매일 매일이 같은 삶을 살아가는 노동자의 삶처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사회는 참 우울할지도 모른다. 삶이란 내가 원하는 정답을 찾아 온 몸을 던지는 그 안에서 분노와 갈등과 미움과 배신과, 슬픔과 아픔을 필연적으로 만나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50년대 미국 브룩클린을 비롯하여 현재 우리가 사는 세계는 많이 변하였다. 물론 모든 것이 완벽하게 바뀐 것이라고 하기에는 갈 길이 멀지만, 영화에서 느낄 수 있는 어두움은 많이 걷히고 따뜻함이 우리들과 공존해오고 있다. 

지금의 우리들은 어떠한가? 일상적인 삶의 질이 객관적으로 볼 때 크게 높아졌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50년 전에는 상상할 수조차 없었던 정도의 물질적, 경제적인 풍요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그 속에서 서로가 다투기 일상이며, 불안한 이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는 여유가 전혀 없다. 무한 경쟁이라 부르는 복잡한 세상에서 결과적으로는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사람이 되어 자기 자신을 소외시키고, 치열함속에서 끊임없이 자기를 채찍질하며 하루하루를 바쁘게 살아간다. 과연 이런 삶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진정 마음속으로 행복하다고 느끼고 있는 것일까?

때론, ‘내가 추구하는 삶은 무엇일까?’ ‘나는 왜 행복하지 않은 걸까?’라는 질문 앞에 설 때가 있다. 물론 자신의 삶에 100% 만족하며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면서, 그로 인한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더 이상 삶에서 진지함을 찾으려 하지 않고 단순한 흥미와 즐거움으로 도피하여 삶에 지극히 무관한 자세를 유지한다. 내가 도대체 누구인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왜 사는지 등에 대한 스스로의 답도 알지 못한다. 진지하게 질문을 던지지 않고 회피함으로 인해, 느끼는 행복감의 수치 또한 상대적으로 매우 낮게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치열한 삶을 살아가고 있더라도 우리는 꿈꾸는 밝은 날이 있기에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는 점이다. 개인적인 일이든 국가를 위하는 일이든 뭔가를 시작했으면 ‘용두사미’ 가 아니고 ‘유종지미’가 되길 간절히 바란다. 내 자신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파이팅!을 외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