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오르한 파묵(Orhan Pamuk)’의 역사 추리 소설 ‘내 이름은 빨강’은 동서양의 문명이 교차하는 16세기 말 오스만 제국의 수도 이스탄불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작품은 세밀화를 그리는 궁정 화가들이 연쇄적으로 살해되고 그들의 죽음에 대한 비밀을 풀어내는 과정에서 이슬람의 역사와 전통, 문화를 매우 심도 깊게 다루고 있다.

세밀화가들의 사랑과 음모를 다룬 작품답게 소설 전편에는 세밀화에 대한 전문적 지식이 곳곳에 스며있을 뿐만 아니라 당시에 이미 보편화된 음료로 자리 잡은 커피와 커피숍 등에 대한 흥미를 유발한다.

‘우드’의 아름다운 선율이 나를 이끌어서였는지, 아니면 내 추억과 욕망이 더 이상 그 피클 장수의 말을 참을 수 없게 만들어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곧 그 자리를 떴다」 (내 이름은 빨강, 민음사 26p)

12년 만에 이스탄불로 돌아와 나중에 살인자를 쫒는 탐정격의 ‘카라’는 이스탄불에 대한 그간의 사정을 애기하는 피클 장수의 말을 피해 자리를 뜨는데, 이 대목에서 자신을 이끌 정도로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어 내는 ‘우드’(Oud)를 언급한다. 아름다운 선율이라 함은 곧 악기의 소리를 말하는 것이다.

카라가 말하는 우드는 과연 어떤 악기일까?

우드는 터키를 중심으로 중동과 중앙아시아, 북아프리카 지역 즉, 이슬람을 기반으로 한 지역 전반에서 연주되는 현대 기타의 원조라 할 수 있는 현악기다. 기타와 비슷한 모양새를 가졌으나 목이 현저하게 짧고 5개의 현으로 되어 있다. 유럽의 류트의 전신이 되었으며 이후 기타로 계보가 이어진다. 고대로부터 전래되어 온 악기임에도 현재에도 많이 연주되고 있다.

우드의 이슬람 풍 사운드는 그 독특함으로 인해 현대 재즈의 다양성 안에서도 매우 특별하게 느껴진다. 이는 음악과 악기에 대한 우열의 문제가 아니라 단순히 이슬람 지역 문화와 음악의 대면 기회가 상대적으로 낮아서 그럴 것이다. 그러나 때로는 이 독특함과 이국적인 특징이 오히려 큰 매력으로 다가와 재즈와의 묘한 조화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그 중심에 우뚝 서 있는 연주자는 바로 튀니지 출신의 아누아르 브라헴(Anouar Brahem)이다. 고국 튀니지에서 우드 연주자로 이름을 얻은 그는 당시 80년대 초 유럽 재즈의 중심 파리에 정착하여 다양한 음악적 경력을 쌓게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큰 그의 음악적 전환의 계기는 ECM의 만프레드 아이허를 만난 일이다. 1991년 첫 앨범을 시작으로 얀 가바렉과 존 서먼 등 ECM의 간판스타들과의 협연, 그리고 1999년 발표된 <Astrakhan Cafe>으로 ECM의 주요 연주자로 올라섰다.

이후 2006년에 <Le Voyage De Sahar>를, 2009년에 <The Astounding Eyes of Rita>, 2015년에 <Souvenance>, 2017년에는 데이브 홀랜드와 잭 드조넷 등과 함께 한 <Blue Maqams>를 발표해 우드라는 악기의 생소함을 신비로운 서정으로 치환하는 작업을 해 오고 있다.

 

그 중 이번에 소개하는 앨범 <Le Voyage De Sahar>는 2002년에 발표된 전작 <Le Pas Du Chat Noir>와 마찬가지로 피아노의 프랑수아 쿠투리에, 아코디언의 장-루이 마티니에와 함께 했다. 피아니스트 프랑수아 쿠투리에는 특히 클래식과 재즈에 모두 정통한 연주자로 타르코프스키 쿼텟의 리더이기도 하다. (장-루이 마티니에 또한 타르코프스키 쿼텟 멤버)

<Le Voyage De Sahar>는 전작에서도 보여주었던 바와 같이 우드의 이국적인 색채의 사운드와 쿠투리에의 정제된 피아노, 마르티에의 따뜻하면서도 뭔가 텅 빈 공간을 부유하는 듯한 아코디언 역시 여전하다. 그러나 <Le Pas Du Chat Noir>에 비해 연주자들의 개별적인 연주의 확장성을 한층 더 느낄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좀 더 재즈의 어법에 더 가까워진 느낌이라고나 할까?

베스트 트랙은 4번 <Vague / E La Nave Va>. 앨범 타이틀이 ‘사하라 사막 여행’으로 읽혀지는 것처럼 <Vague / E La Nave Va>은 마치 무한으로 펼쳐진 사하라의 지평선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 느낌을 주는가 하면 어쩔 땐 유기적인 연주자간의 플레이가 오히려 침묵으로의 침잠을 강요한다. 거기에 서정성은 또 어찌나 내면을 이렇게 저리게 하는지, 아름답다 못해 차라리 처연하기까지 하다.

지금 이 순간 나는 공간도 방향도 시간의 흐름도 가늠할 수 없는 캄캄한 한밤중의 사하라에 홀로 서 있다. 이곳에는 오직 가슴으로 스며들어와 나를 꼼짝 못하도록 얼어붙게 만드는 서늘한 사막의 냉기뿐. 여길 빠져나가야 할까, 아니면 이 신비로운 선율이 이끄는 대로 그냥 나를 맡겨야 할까?

 

Anouar Brahem “Leila Au Pays Du Carrousel” – Live at Cully Jazz Festival – 2004

<Vague / E La Nave Va>의 링크가 여의치 않아 대신 이들의 다른 연주 실황을 붙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