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사랑의 선물, 타지마할의 도시 아그라(Agra)

핑크 시티 자이푸르에서 버스를 타고 무굴제국의 또 다른 수도 아그라로 떠난다. 델리와 자이푸르에서 경험했던 끊이지 않는 경적 소리와 뿌연 먼지, 헤아릴 수 없는 엄청난 인파와 뜨거운 태양, 증발하는 아지랑이가 만들어 내는 혼돈들은 자이푸르를 벗어나면서 60년대 우리 시골 모습과 비슷한 정경이 펼쳐지자 어느새 사라져버린다.

자이푸르를 출발한 지 2시간 지나 작은 마을 아바네리에 있는 찬드 바오리 우물(아바네리쿤다 우물)을 들린다. 9세기에 건축된 13층 높이의 3,500개 계단으로 된 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계단식 우물이다. 이곳 사람들의 식수 공급을 위해 만든 우물이지만 여름에는 왕의 피서지로도 사용되었으며, 영화(더폴: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에도 자주 나오는 유적지다. 우물 위 회랑에는 근처 힌두교 사원에서 가져온 부조물들이 진열되어 있다.

아그라로 들어가기 전에 무굴제국 3대 황제 악바르가 세운 기하학적인 계획도시 파테푸르 시크리가 있다. 악바르는 후사가 없어 고민하는 자신에게 왕자 자항기르를 얻는데 도움을 준 시크리의 성자를 위해 아그라 서남쪽 40km 떨어진 곳에 이곳에 신도시를 건설한 후 이곳으로 천도한다. 시크리는 14년간 제국의 수도 역할을 하게 되지만 급수원의 부족과 역병의 유행으로 왕이 아그라로 돌아가는 바람에 30년 만에 버려진 신세가 되고 만다. 이후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채 오랜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지금은 무굴제국의 건축물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장소로 평가받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고 하니 이 또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자이푸르를 출발한 지 5시간 만에 무굴의 도시 아그라에 도착한다. 아그라는 델리에서 야무나 강변을 따라 약 200km 내려간 곳에 있는 한적한 지방도시다. 하지만 타지마할 때문에 인도를 방문한 수많은 여행객들이 꼭 들르는 관광명소다.

아그라는 프톨레마이오스의 세계 지도에도 나올 정도로 오래 된 고대도시다. 현대 아그라의 시초는 15세기 중반 로디 왕조가 수도로 삼고 16세기 중반 무굴제국의 제3대 황제인 악바르가 수도를 천도하여 짧은 기간 동안 제국의 중심지로 번영을 이룬 곳이기도 하다.

아그라에 도착하자마자 한 남자가 한 여자에게 준 가장 큰 사랑의 선물, 무굴 제국의 5대 황제 샤 자한(Shah Jahan)이 사랑하는 왕비 뭄타즈를 위하여 세운 아름다운 건축물 타지마할로 달려간다.

타지마할은 인도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유적지 중 하나이자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대리석 건물이다. 샤 자한이 자신의 14번째 아이를 낳다가 죽은 아내 뭄타즈 마할에 대한 변치 않는 마음을 간직하고자 만든 역사상 유례없는 화려한 무덤으로, 공사 연인원 20만 명과 1,000여 마리의 코끼리를 동원하여 아그라의 남쪽 야무나 강가에 1653년에 완성한 이 기념비적 예술품은 198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다.

이슬람 무굴제국을 나타내는 붉은 사암으로 된 아치형 정문 다르와자를 통과하면 넓은 뜰에 수로가 있는 무굴양식의 정원이 펼쳐진다. 길이가 약 300미터에 이르는 일직선의 수로 중앙에는 연꽃 모양의 수조가 있고, 분수가 물을 뿜어내고 있다. 수로에 비친 타지마할의 모습 또한 환상적이어서 수많은 사진가들이 이곳에서 시간을 보낸다. 사랑의 금자탑이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는 모습이다. 영국 왕세자 다이애나비가 앉아서 사진을 찍었다는 다이애나 체어 앞에서 줄을 서서 사진 촬영을 기다리는 사람들 모습이 진풍경이다. 성 입구부터 우리를 따라온 사진기사는 포즈까지 시범 보이면서 무조건 사진을 찍는다. 어리둥절한 우리에게 ‘No problem’을 연발하면서.

아내에 대한 지고지순한 한 남자의 사랑이 깃들었기 때문일까? 인도 이슬람 예술의 걸작 타지마할은 그야말로 시공을 초월한 절대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순백의 대리석은 태양의 각도에 따라 하루에도 몇 번씩 빛깔을 달리하며 보는 사람의 넋을 빼놓고, 웅장한 건물은 중압감은 커녕 오히려 공중에 떠있는 듯 신비롭고, 건물과 입구의 수로 및 정원의 완벽한 좌우대칭은 균형미와 정갈함을 느끼게 한다.

타지마할은 무굴 제국은 물론 이탈리아, 이란, 프랑스를 비롯한 외국의 건축가와 전문기술자, 그리고 기능공 2만 명이 동원되어 22년간의 대공사 끝에 탄생된 결과물이다. 최고급 대리석과 붉은 사암은 인도 현지에서 조달되었지만, 궁전 내외부를 장식한 보석과 준보석들은 터키, 티베트, 미얀마, 이집트, 중국 등 세계 각지에서 수입되었다고 하니 국가 재정에 엄청난 부담을 주는 대공사였음을 알 수 있다.

긴 수로의 끝에는 눈부신 순백의 대리석으로 지어진 본 건물이 서 있다. 네 모퉁이에 배치한 첨탑(미나레)을 비롯해 좌우가 정확한 대칭을 이룬 건물은 육중한 몸체에도 불구하고 공중에 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준다. 혹시 지진이 나서 첨탑이 넘어져 중앙의 돔을 파손하는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첨탑은 모두 바깥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내부와 외부의 벽면은 보석과 준보석으로 정교하게 장식되어 있다. 여기에는 대리석에 튤립, 수선화 무늬를 박아 넣는 피에트라 듀라(Pietra-dura) 모자이크 기법이 활용되었다.

덧신을 신고 뜨거운 대리석 바닥을 지나 건물 내부로 들어가면 1층에는 대리석으로 만든 왕과 왕비의 관이 있지만 빈 관이고 두 사람은 지하 묘에 안장되어 있다. 지독한 아이러니지만 순백의 타지마할이 너무 아름다워서 그런지 두 구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는 관을 목격하고서야 이곳이 비로소 무덤인줄 깨닫게 된다.

인도의 시성 타고르는 타지마할을 두고 ‘영원의 얼굴 위로 떨어진 눈물 한 방울’이라 말하지 않았던가.

테라스로 오르면 야무나강이 보인다. 샤 자한 왕은 애초 타지마할과 마주보는 야무나 강 건너편에 검은 대리석으로 자신의 묘를 짓고, 구름다리로 연결하려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우리 가이드 라지브 싱와는 자신이 직접 야무나 강 건너편에서 건물의 기단을 조성한 흔적을 보았다고 하는데 그 진위 여부는 아직 확실치 않다고 한다.

샤 자한은 타지마할이 완공된 후 10년 뒤인 1658년 3째 아들 아우랑제브의 반란으로 왕위를 박탈당하고 아그라 성의 무삼만 버즈 탑에 유폐되어 말년을 보내게 된다. 다행히도 아그라 성에서 2km 떨어진 타지마할의 모습을 볼 수 있었고, 1666년 죽은 뒤에는 그토록 사랑하던 부인 옆에 묻혔으니 마냥 불행하기만 한 말년은 아니었던 듯싶다.

타지마할은 도시 공해와 야무나 강에 서식하는 곤충의 배설물 등으로 인해 순백의 대리석이 황색으로 변색될 위기를 겪게 되자 작년에 대대적인 청소 작업을 실시한 후 한층 깨끗해진 모습이다.

변하지 않는 영원함이 존재하는지는 시간이 더 지나야 알 수 있겠지만, 후세의 갖은 노력으로 아름다움이 지속되는 타지마할을 보면서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도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타지마할. 곱씹을수록 그리워지는 곳으로 마음에 남을 것 같다.

타지마할에서 야무나강을 사이에 두고 2km 떨어진 곳에 아그라 성이 있다. 1565년 악바르 대제에 의해 건설된 아그라 성은 무굴제국의 권력을 상징하는 곳으로 엄청난 크기를 자랑하며 성 붉은 사암으로 된 외벽 덕분에 ‘붉은 요새(레드 포트)’로 불리기도 한다.

궁전 안으로 들어가면 붉은 색 외벽과 조화를 이루는 초록색 잔디와 정원수가 인상적인 대조를 이룬다. 성 내부에는 붉은 사암과 대리석으로 지은 크고 작은 궁전과 모스크 정원의 분수대가 있다.

타지마할을 지으면서 너무 많은 재정을 낭비한 샤 자한은 말년에 야무나강 너머 타지마할이 가장 잘 보이는 아그라 성의 무삼만 버즈에 유폐되어 탑의 창문을 통해 성을 바라보며 부인을 그리다가 생을 마감한다.

무삼만 버즈는 공사 중이라 들어가지 못하고 근처 성벽에서 잠시 샤 자한이 되어 타지마할을 바라본다. 사랑으로 빚어낸 찬란한 무덤은 오늘따라 수면 위에 떠 있는 하얀 연꽃처럼 보인다.

둘 사이를 갈라놓고 있는 갠지스강 지류인 야무나강은 평소 지저분하기로 유명한데 오늘따라 깨끗하다. 열흘 전 홍수로 강가 주변의 쓰레기가 다 떠내려가는 바람에 오랜만에 깨끗해진 야무나강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부인을 향한 샤 자한의 애절한 그리움은 서러움 되어 오늘도 야무나 강을 따라 흐르고 있다.

아그라의 타지마할에서 북서쪽으로 약 14km 떨어진 시칸드라는 인도 역사상 가장 위대한 황제로 추앙받는 악바르 대제의 영묘가 있는 곳이다. 무굴제국의 제3대 황제였던 악바르 대제는 마우리아 왕조의 아소카 왕과 함께 후대 인도인들에게 ‘대왕’이라는 칭호를 부여받은 인물이다. 정복 전쟁으로 인도의 영토를 넓히고 국력을 강화했을 뿐 아니라, 정복지를 다스리기 위해 이슬람교, 기독교, 힌두교, 자이라교 등 종교 대통합을 추진했다는 점에서 오늘날까지 성군으로 존경을 받는다.

시칸드라는 악바르 대제를 추모하고 그의 업적을 기리는 공간이지만 무덤은 의외로 소박한 분위기다. 사치를 좋아하지 않았던 왕의 성정을 따라 조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악바르 대제의 무덤 자체보다도 입구에 해당하는 높은 대문이 인상적이다. 커다란 문 네 개가 각각 다른 종교를 상징하는 형태로 독특하게 설계되었다. 이슬람교 이외의 종교와 화합을 추진하는 등 타 문화에 관용적이었던 악바르 대제의 마지막 안식처답게 그의 종교관이 건축 양식에도 고스란히 반영된 것이다.

정문을 통해 입장하면 영묘로 가는 길 좌우로 탁 트인 넓은 공간에는 아름답게 꾸며진 정원이 펼쳐진다. 야자수가 길게 일렬로 도열한 사이로 사슴과 공작, 원숭이들이 평화롭게 노니는 풍경은 마치 야외 동물원을 연상시킨다. 입구에서부터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따라오면서 핸드폰을 뺏다시피 하며 사진을 찍어준다. 여기서도 ‘No problem’을 연발하면서 촬영이 끝나자 1달러씩 수금해간다.

드넓은 녹지에 서 있는 3층 규모의 무덤은 건설 사업을 활발하게 벌였던 악바르 대제 자신이 직접 설계했다고 한다. 그가 건설한 다른 건축물들과 마찬가지로 붉은 사암에 대리석 상감 기법으로 장식되었고, 내부는 벽화로 꾸며져 있다.

1층 홀에서 무덤으로 가는 길은 어둡고 좁은 통로로 되어 있다. 악바르 대제의 유해는 지하 1층에 왕비, 두 딸의 유해와 함께 안치되어 있다. 웅장한 무덤 입구에는 황제의 마지막 안식처를 암시하듯 “이곳은 에덴의 가든이다. 영원히 머물기 위해 이곳에 들어온다.”라는 글이 적혀 있다.

찬란했던 무굴제국의 고대도시 아그라 일정이 끝나면서 인도의 골든 트라이앵글 세 도시 여행은 막을 내린다. 여정의 반이 지나면서 내가 느낀 인도는 과연 어떤 나라인가.

한 마디로 인도는 ‘No problem’의 나라다. 이 말은 인도인들이 외국인들에게 가장 많이 쓰는 말이기도 하다. 눈길을 맞추며 고개를 끄떡이면서 하는 이 한마디는 모든 것이 용납되는 마법의 용어다. 이것은 아마 힌두교 영향이 아닌가 싶다. 힌두교는 확실한 도그마가 없기 때문에 어떤 신념, 사상을 주장해도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 상반되기도, 모순되기도 하는 믿음과 의식이 공존하므로 영원한 본질이라는 의미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상황이 달라지면 생각이 달라진다. 생각이 달라지면 말도 달라진다. 이것은 저것이 될 수도, 또 저것은 이것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모든 것들의 결말에는 ‘No problem’이라는 말이 등장한다.

‘No problem’. 여기는 인도다.

– 다음편에 계속 –